꽤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다.
거실에 들어서자, 거기 어머니가 불도 안 켜고 귀를 막은채 어두운 방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어머니가 이러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초조해져,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을 걸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왜 방에 불도 안 켜고 이러고 있어?]
어머니는 갑작스레 내가 말을 걸어 놀란 듯 했지만, 곧 내 얼굴을 보고 안심한 것 같았다.
[뭐야, 너구나... 사람 좀 놀래키지 마렴.]
아니, 놀란 건 난데.
어두운 방에서 불도 안 켜고 귀 막고 웅크리고 있던 사람이 할 소리인가, 그게.
기막혀 하고 있자니, 어머니가 이상한 걸 물어봤다.
[그건 그렇고 너, 어디로 집에 들어왔니?]
어디로?
이상한 질문에 기가 막히면서도 대답한다.
[저기, 엄마. 어디로 집에 들어왔다니, 당연히 현관이지. 아니면 도대체 어디로 들어왔을거라 생각하는...]
말을 마치기도 전, 바로 그 현관에서 똑똑하고 유리를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누가 왔나?]
나는 누가 왔는지 확인하려 현관을 들여보려 했지만, 어머니는 초조한 듯한 모습으로 나를 말렸다.
[또 온거야... 아까 그놈이야, 분명...]
아까 그놈?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돌아왔을 때 이상했던 어머니 모습과 "아까 그놈"이라는 게 뭔가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아까 내가 왔을 때 이상한 꼴하고 있던 게 그 "아까 그놈" 때문에 그런거야?]
내 질문에 어머니는 입을 다문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말야, 계속 현관에서 노크를 하는거야. 네가 오기 조금 전부터. 엄마는 그게 무서워서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 그래서 계속 귀를 막고 그게 없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 사이 네가 돌아왔지 뭐니, 그것도 현관으로.]
어머니의 얼굴은 새파랬다.
나는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거 뭔데? 봤을 거 아냐.]
어머니는 고개를 아래로 푹 떨구고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도 현관에서는 계속 똑똑하고 노크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잠깐 보고 올게. 아까랑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혹시 택배라도 왔으면 빨리 확인해야 하고.]
하지만 어머니는 잡은 팔을 놓지 않았다.
[안된다니까! 안 가는 게 좋아. 분명 후회하게 될거야.]
[괜찮다니까. 위험한 놈이면 현관문 안 열고 슬쩍 보고만 올게.]
어머니의 팔을 억지로 뿌리치고, 나는 현관으로 향했다.
우리집 현관은 흐린 유리가 끼워져 있는 미닫이 문이다.
현관을 열지 않아도, 밖에 어떤 놈이 있는지는 대충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나는 현관까지 가, 그 노크하는 놈이 어떤지 살폈다.
아마 어머니도 손님이 왔나 싶어 현관까지 왔다 이걸 봤었겠지.
현관에 서 있는 빨간 사람 그림자를.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한 사람 그림자였으니까.
키는 아마 초등학생 정도였던 것 같다.
빨갛다는 걸 빼면 말이지.
그래서 나는 단순히 손님인가 싶어, 현관을 열려 유리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 순간, 노크하는 손이 유리 너머로 똑똑히 보였다.
새빨간 사람 손이.
정말로 새빨갰다.
빨간 장갑 같은 게 아니라, 새빨간 맨손이었다.
그 순간 "아, 이건 인간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터였다.
왜냐하면 현관을 열려고 가까워진 사이, 그 녀석도 내 존재를 알아차렸으니.
가까워진 내 존재를 알아챈 그놈은, 이후 엄청난 기세로 현관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
정말 엄청난 기세였다.
현관 유리가 깨지지 않을까 싶은 기세로 계속 두드려댔다.
바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새빨간 사람 그림자가 엄청난 기세로 현관을 두드려대는 것이다.
문에서 철컹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나이 먹을대로 먹은 어른인데도, 그 광경을 보니 오금이 저려 발도 못 뗄 지경이었다.
하지만 계속 거기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너무 무서웠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거기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묘하게 달려 도망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상대가 모르게 서서히 도망치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나는 천천히 뒤로 몸을 뺐다.
그러자 사람 그림자도 약간 변화를 보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 어쩐지 키가 커진 것 같았다.
하지만 노크하는 팔의 위치는 아까와 다름없다.
키가 커지고 있는게 아니라, 자라나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가.
목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정말 머리만 위로 쭉쭉 자라나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자라난 머리는, 서서히 현관 위에 있는 작은 창에 다가서고 있었다.
하필 그 작은 창은 채광용이라 흐린 유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 작은 창으로 머리가 다가서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시점에, 나는 눈을 피했어야 했다.
하지만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 오히려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봐버렸다.
새빨간 사람 그림자의 얼굴을.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된 아이라고 생각한다.
새빨간 얼굴에, 머리카락과 눈썹이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떡하니 열린 새까만 입과 부릅 뜬 눈.
그 눈으로 흘깃흘깃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니 완전히 한계였다.
나는 [으와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소리지르며 도망쳤다.
그리고 거실로 가, 어머니와 함께 귀를 막고 덜덜 떨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귀를 막고 있었기에 감각이 없었지만, 갑자기 [야, 왜 그래!] 하고 누군가 어깨를 잡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였다.
[아버지잖아! 놀라게 하지 마세요!]
[뭘 놀라게 해! 놀란 건 나야. 어떻게 둘이 불도 안 켜고 시커먼 방 안에 웅크려있어!]
갑작스레 날아온 목소리에 놀라기는 했지만, 아버지 얼굴을 보니 좀 안심이 됐다.
그리고 무심코 물었다.
[아버지, 도대체 어디로 집에 들어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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