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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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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무렵 이야기다.


친구 A,B와 함께 천체관측을 하게 되었다.


B가 생일선물로 천체 망원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A네 집은 주택가였고, B네 집은 약간 떨어진 외곽에 있었지만, 집 뜰에서는 영 마뜩치가 않았다.


결국 B네 집 근처 신사에서 천체관측을 하기로 했다.


여름방학 중이었기에, B네 집에서 하루 묵는 것도 겸해서.




10시 가까이 게임을 하다, 슬슬 출발하기로 하고 벌레 쫓는 스프레이랑 이거저거 챙겨서 신사로 향했다.


경내에 들어서자 벌레 우는 소리만 약간 들릴 뿐 조용했다.


천체 망원경을 설치하고, 회중전등을 끄자 주변은 깜깜해졌다.




처음에는 별자리 이름도 알아보고 이것저것 시끌벅적하게 놀았지만, 점점 질리기 시작했다.


저배율의 천체 망원경으로 올려다봐야 거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니.


슬슬 돌아갈까 싶어 회중전등을 찾았지만,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관리를 맡았던 A가 [어디 있지?] 라며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쾅... 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소리일까.




A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필사적으로 주변을 찾는 사이, 나와 B는 그 소리가 신경 쓰여 소리가 들려오는 신사 구석으로 향했다.


우리는 신사 앞 기둥문을 나와, 왼편 광장에서 천체관측을 하고 있었다.


소리는 오른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쪽에서는 불빛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다.


소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나는 축시의 참배[각주:1]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초조해졌다.


B는 잘 몰랐던지, [저거 뭐야?] 라고 물어왔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아가며, 위험한 것 같다고, 돌아가자고 B에게 말하려던 순간.




뒤에서 A가 [야! 회중전등 찾았다!] 라고 소리치며 회중전등 불빛을 빙빙 돌리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쾅... 쾅...] 하는 소리가 멈췄다.


들켰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도망치자!]


내가 소리치자, A와 B는 당황한 듯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어라 달리는 걸 보고 당황했는지, A는 울면서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B는 [천체망원경!] 이라고 말하고는 광장 쪽으로 가버렸다.


기둥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까지 도망친 우리는 B를 기다렸다.




1분 정도 기다렸지만, B는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A에게 물었지만, 애시당초 A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나를 따라온 것 뿐이라 별 의견이 없었다.


돌아가서 B의 부모님에게 말해야 할지, 우리 부모님한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계단 위에서 불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B가 천체망원경을 든 채, 울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손에 촛불을 든 소복 입은 여자가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B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흐느껴 우는 B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A가 회중전등으로 비쳐보니, B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미안해...] 라며 사과했다.


여자도 엉엉 울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나, 다들 침착해지고 나서 여자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축시의 참배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들켜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신 우리를 죽이려는 거라 지레짐작했지만, 정작 여자는 "아, 실패했구나." 하고 체념하는 정도였단다.


하지만 그 후 큰 소리가 나서 놀라 광장으로 가보니, B가 굴러 넘어져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엉엉 우는 B를 보니 자기 탓인것 같아, 책임을 느낀 나머지 여자도 통곡했단다.


다행히 B는 여기저기 까진 것 뿐, 큰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상처를 물로 씻어내자, B는 눈물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 후 주차장에 있던 자판기에서 여자가 음료수를 사줘서, 약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시내에 사는 OL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그 상사를 저주할 마음으로 축시의 참배를 했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고, 자판기 불빛 아래로 본 얼굴은 오히려 미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소복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냥 평범한 흰 옷이었다.


그 후, [혹시 B의 상처가 덧나기라도 하면 연락하렴.] 이라며 전화번호를 받았다.




[밤 8시 이후나 일요일에만 받을 수 있지만 말이야.]]


나는 다친 B 대신 천체망원경을 들고 B네 집으로 향했다.


B네 부모님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B는 까진 상처도 다 나았다.


나는 여자에게 연락을 해주기로 했다.


예쁜 사람이었으니, 한번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고.




아마 나말고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내가 받았다는 이유에서 나한테 굳이 전화를 떠넘긴 것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라고 몇번씩 사과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정말 기쁜 듯 이렇게 말했다.


[맞아맞아, 그 때 그 저주, 효과가 있었지 뭐니?]




나는 차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 없었다.


결국,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 여자와는 연락한 적이 없다.



  1. 丑の刻参り. 축시,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 신사 신목에 짚인형을 못으로 박아 상대를 저주하는 행위. 누군가에게 들키면 그 저주의 효력이 사라진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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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63rd]달려가는 목

괴담 번역 2017. 5. 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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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이바라키현 미토시에 살고 있었다.


볼일 때문에 도쿄에 갈 일이 있어, 미토역 홈에서 특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상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안내방송이 울려퍼져, 나는 별 생각 없이 히타치 열차가 들어오는 카츠타 쪽을 바라보았다.


대개 안내방송이 나오면 열차가 이미 보일 무렵일텐데, 보이지 않았다.


어라, 하고 당황해하고 있는데, 선로 2개 사이, 거의 중앙의 낮은 부근에서 무언가 둥근게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뭘까 싶어 바라보고 있자, 그것은 점점 다가왔다.


사람의 목이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지나쳐갔지만, 확실히 목이었다.




한쪽 눈이 튀어나와 있는 것까지 정확히 보였다.


떡하니 입을 벌린채, 그 목은 그대로 도쿄를 향해 달려갔다.


아니, 날아갔다고 해야하나.




너무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지만, 목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생겼었다.


그렇기에 더 어안이벙벙해서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뒤,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카츠타-미토 사이 구간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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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98th]창밖의 도깨비불

실화 괴담 2017. 5. 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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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익명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더운 여름날이었어요. 


저는 다른 도시에 일이 생겨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집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가기 전, 문득 아버지가 병원에서 당직을 서시는 날이라는게 생각 났습니다.




간만에 커피나 한잔하면서 잠깐 말동무를 해드리려고, 아버지가 계시는 당직실로 향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라, 평소보다 운전하고 나서 더 피곤하더군요.


차를 끌고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밤이라 정문은 잠겨있어, 장례식장이 있는 후문에 차를 대고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들어갈 때 보니 누군가 상을 당한 모양이던데 장례식장 안은 쓸쓸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더군요. 


저는 아버지와 간단하게 차를 마시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들려드렸습니다.




슬슬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싶어 일어나자, 시간은 이미 11시 넘어서 있었습니다. 


후문을 나서니 아직도 습한 공기가 폐를 채웠습니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내리더군요. 




주차장으로 가, 차에 시동을 걸고 나오려고 하는데 차를 돌릴곳이 마땅치 않아 장례식장 옆쪽으로 나있는 공터까지 갔습니다.


자갈이 깔린 공터에 들어서니 새까만 운구차가 묘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공터 한가운데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차를 돌리려 운구차 주위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운전했습니다. 




기분은 조금 음산했지만 별 신경 안쓰며 집으로 돌아왔죠.


집에 돌아와 간단히 정리를 하고, 피곤한 마음에 얼른 눈을 붙였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깊은 새벽이었을까요. 




제가 누운 자리에서 맞은편에 창문이 나 있는데, 푸르스름한 기운이 들어 눈을 떴습니다.


아! 시퍼런 눈동자 두개!


도깨비불 같이 이글거리며 불타오르는 두개의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겉이 다 헤진 거적떼기를 머리에 뒤덮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보려했지만, 그림자, 아니, 심연에 가까운 어두움 때문에 거적떼기 밑으론 두개의 눈동자만이 보였죠.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다시 깨달으니 너무 괘씸한겁니다. 




저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곤 저는 제 입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낮은 중저음으로 이렇게 호통을 쳐대었죠.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붙이는게냐! 네가 감히 나한테 붙으려고 하는게냐!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괘씸한 행동을 한단 말이냐! 얼른 너의 자리로 돌아가라!]




속으로 괘씸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제 목소리와는 살짝 다른, 힘차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호통을 칠 줄은 저 스스로도 몰랐습니다. 


제가 호통을 치니 집은 지진난 것처럼 흔들렸고, 집안에는 시퍼렇지만 무언가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불빛이 일렁였습니다. 


하늘에선 비오는 와중에 천둥이 몇번 치더니, 이윽고 그 형체는 사라졌습니다.




개운한 마음이 들어 창문을 짚은 제 팔을 보는데, 무언가 화를 내고 엄하던 분위기는 제 마음에서 사라지고, 아까 제 창문을 엿보고 있었던 그것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결 편한 마음에 잠자리에 다시 들었는데, 정작 눈을 감는 순간 저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모든 게 꿈이었던거죠. 




하지만 그 꿈이 너무 현실 같고 생생했기에,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렇게 꿈을 꾸고 난 후, 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내가 왜 그런 꿈을 꾸고 왜 그것이 우리집에 붙어있나 생각해봤습니다.




전날 밤 운구차 주위를 차로 한바퀴 돌며 나온게 원인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저는 측은한 마음에, 마음속으로 간단히 망자의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전날 밤 보았던 그 두개의 눈동자 너머로, 단지 두려움과 괘씸함이 아니라, 배고프고 쓸쓸하고 외로웠던 한 사람의 인생이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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