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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했던 고양이가 죽었습니다.

13살, 심장마비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예로부터 죽은 자와 같은 길을 지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면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은 자가 따라온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 아이가 따라와 준다면 오히려 기쁠 거라는 생각에, 나는 일부러 같은 길을 지나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조금 늦은 저녁이었지만,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배도 고프지 않았습니다.

잠시 혼자 있고 싶다고 가족에게 말한 뒤, 내 방 캣 타워에 남아 있던 그 아이의 털을 긁어모으고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뜬 것은 밤 늦게서였습니다.



고픈 배를 달래려 느릿느릿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는데, 현관문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습니다.

문은 제대로 닫혀 있어 그럴리 없을텐데.

문득 나는, 그 아이가 돌아오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엌에서 과자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거기서 기다렸습니다.

분명 돌아와 줄거야.

그 아이는 똑똑해서 길을 헤매지 않는 걸.



한시간은 그렇게 서 있던 것 같습니다.

12월 중순이라 꽤 추웠는데,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을만큼 나는 필사적이었습니다.

문득, 나는 뭐하는 걸까 싶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쓴 웃음을 지으며 체념하고 방으로 돌아가려, 문을 닫으려 일어난 것과 거의 같은 순간.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과자 봉지가 복도 끝까지 날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에, 재빨리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내 시야 한 구석에 하얀 무언가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르시아 고양이였던 그 아이는, 하얗고 긴, 푹신푹신한 털이 예뻤으니까요.

굳이 내가 빗질을 하지 않아도, 항상 스스로 깔끔하게 가다듬곤 했었습니다.



눈물이 울컥 솟아나왔습니다.

나는 그저 기뻐서, [기다리고 있었어.] 라고 말하며 현관문을 닫고, 내 방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입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좀체 올라오질 않았습니다.



아까처럼 시야 한 구석을 바라보니, 역시나 하얗게 그 아이가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다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시야 한구석에 움직이는 그 아이가 보입니다.



나는 만족해서, 평소처럼 심야 B급 영화를 조금 보다가,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 아이는 고양이답다고 할까, 무척 자기 맘대로라, 원래 자기 마음에 내킬 때만 다가오곤 했었어요.

하지만 불을 끄고 내가 침대에 누우면, 그래, 이런 식으로, 발 근처에서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들어와서...

그 아이의 털은 언제나 푹신푹신했습니다.

막 내온듯한 우유 빙수처럼, 부드러운 촉감.



그럴 터였습니다.

내 발에 닿은 건, 조금 딱딱하면서 뻣뻣해서, 그건 마치... 마치...

사람 머리카락 같은...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튀어올랐습니다.

내가 실패해서 무언가 다른 걸 불러들이고 말았다는 것.

그걸 깨닫자 겁에 질려, 이불을 덮을 마음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방에서 도망쳐, 22살씩이나 되서 부모님 곁에서 잤습니다.

부모님은 그 아이를 잃은 충격이 커서 그런거라 여기셨는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겁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탓인지, 부모님이 달래주는 사이 나는 지쳐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어두운 장소에 있었습니다.

좌우상하 분간조차 되질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일터인데, 꿈 속의 나는 그게 꿈이라는 걸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귀를 막고 벌벌 떨었습니다.

뭔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거야?

...되는 거야?

서서히 그 목소리는 커져, 명확히 들려옵니다.



...안 되는 거야?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꿈 속에서 나는 그저 사과할 뿐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부모님의 침실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일어나셨는지, 나 혼자였습니다.



부모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내 방에 조심스레 돌아가보니 닫아뒀던 창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째서인지 그게 돌아가 줬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은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기에 이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내가 불러왔던 게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떻게 죽은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지나온 애완동물 장례식장 근처에는, 수많은 무덤과 화장장이 있었습니다.

역시 죽은 자와 같은 길로 돌아오는 건 하면 안되는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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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현 북부, 어느 온천 마을 여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벌써 20년은 더 됐다고 하네요.

관광지에 안 좋은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매출에 지장이 오는만큼, 아직도 그 지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쉬쉬하는 사건이랍니다.



그곳은 마을 전체가 높은 산간에 있어, 겨울이 오면 눈 속에 파묻힐 지경입니다.

그 마을에서 2km 가량을 더 들어간 곳에,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도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 있는데, 그 호텔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호텔에서 일하게 된지 몇년 된 프런트맨이 있었다고 합니다.



온천 주변이니만큼, 겨울은 성수기입니다.

호텔에도 손님이 잔뜩 찾아왔기에, 그날도 신발함에는 손님들이 신고 온 다양한 신발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신발들을 현관에 죽 늘어놓는 것이, 그가 맡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평소처럼 일을 하다, 어느 펌프스 구두를 손에 든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옅은 베이지색 구두인데, 안에 검붉은 피 같은 게 묻어 있다는 것을요.

구두 바닥 전체가 들쑥날쑥하게 얼룩진 채, 차갑게 젖어 있었습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 호텔을 나섭니다.

현관에 놓인 신발도 하나둘 줄어들더니, 마침내 마지막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아까 그 더러운 펌프스 구두였습니다.



11시가 넘어갈 즈음에야, 마침내 펌프스 구두의 주인이 프론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 인상에 남지 않는, 굳이 말하자면 어딘가 음침한 인상의 여자였습니다.

싸구려인 듯한 수수한 옷을 입고, 한손에는 애완동물을 넣는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구가 담요로 막혀 있어, 안에 들어있는 개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에 상처라도 입으셨나요?]

프론트맨은 일단 물어봤습니다.



[주제 넘은 말이지만, 손님 신발에 그런 것 같은 흔적이 있어서요.]

여자는 [신발은 애완동물이 더럽힌 거에요.] 라고 대답한 뒤, 곧 돌아가 버렸습니다.

1시간 정도 지나, 방을 청소하러 간 여성 종업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까 그 손님이 묵었던 방이, 이상하다고 소란이었습니다.

그 방으로 가보니, 다다미 위에 발자국이 어지러히 찍혀 있었습니다.

피에 젖은 발자국이.



방 한켠에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마치 귀신이 춤을 추기라도 한 듯한 참상이었다고 합니다.

욕조 배수구에는 작은 동물의 사체조각 같은 게 잔뜩 막혀 있었습니다.

데리고 온 애완동물이 쥐 같은 걸 잡아, 방을 더럽힌 듯 했습니다.



호텔 입장에서는 큰 피해였습니다.

다음날, 마을 주민이 수상한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했습니다.

국도에서 100m 가량 떨어진, 눈으로 덮인 숲 속에서.



온천 마을의 보일러 관리인이, 숲길을 지나가다 발견했다고 합니다.

비닐봉지 안에서는 아기의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땅에 아기를 내려두고 몇번이고 밟은 것인지, 두개골이 산산조각난 채였다고 합니다.



아마 깊은 원한이라도 있었던 것이겠죠.

그 소식은 금세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여자가 가지고 있던 애완동물 가방은 비어 있었을 것이라고, 프론트맨은 곧 깨달았습니다.



경찰에게 신고한 결과, 다다미에 묻어 있던 피는 역시 사람의 것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여자는 곧 전국에 수배되었지만, 호텔 기록에 남긴 이름과 주소는 가짜였습니다.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프론트맨 뿐이었습니다.



프론트맨은 여자의 몽타주를 만드는 데 협력했습니다.

온천 마을은 소문이 나서 매출에 지장이 올까 두려워,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걸 한사코 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나, 계절은 여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여자의 행방은 찾을 수 없어, 수사는 진전 없는 미궁 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어느덧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과거의 평온함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프론트맨 역시, 평소처럼 호텔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내일 예약을 좀 하고 싶은데요, 지난번에 전화했을 때는 A씨라는 분이 담당하셨던 거 같은데...]

[제가 A입니다.]

[A씨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내 몽타주를 그린 게, 너구나?]



그 후, 프론트맨은 곧바로 호텔에서 사직하고, 도쿄로 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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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를 동경하던 나는, 앞뒤 생각 않고 오키나와행 여객선에 올라탔다.

베트남 전쟁 말기, 오키나와에는 미군 불하품이 대량으로 나돌고 있었다.

나는 군복 바지와 전투화를 싼값에 손에 넣었다.



짐짓 미군 기분을 내며 걷고 있는데, 초면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헤이, 브라더! 이리 보러 오라고!]

가게 없이 땅에 돗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는, 흑인 같은 일본인 남자였다.



간단한 영어를 섞어, 잔뜩 수상한 토크를 이어갔다.

그래도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라,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의 이름은 톰.



미군 기지에서 일하던 여자를 현지처로 삼는 건 흔한 이야기다.

톰도 그런 성장과정을 거친 듯 했다.

내가 히피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톰은 더플백과 침낭을 건네줬다.



나는 오키나와 본도를 거쳐 이시가키 섬, 이리오모테 섬으로 향했다.

이리오모테 마을 반대편에는 히피들이 모이는 해변이 있었다.

그곳을 목표로, 이리오모테 종단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리오모테에는 섬을 일주하는 도로가 없었기에, 그 해변까지 가려면 정글을 헤치고 가야만 했다.

정글에서의 첫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엄청 무서운 일을 겪었다는 느낌만은 남아 있었다.



침낭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났다.

다음날 역시 악몽을 꾸었다.

역시 강한 공포감을 느낀데다, 그날은 엄청난 고통까지 함께 찾아와 눈을 떴다.



해변까지는 사흘에서 닷새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매일밤 꾸는 악몽 때문에 좀체 발걸음이 나아가질 않아 일정은 지연되고 있었다.

정글에서 일정이 지연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다.

나는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흘째 밤, 역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고통부터 찾아왔다.

배가 타는 듯, 뜨겁고 날카로운 게 박힌 것 같은 아픔이다.



오른손은 뜨거웠다 차가웠다, 쿵쾅쿵쾅 통증이 멈췄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주위는 무언가 외치고 있어 시끄럽다.

내 몸이 둥실 공중에 떴다.



아니, 몇명이 나를 옮기고 있는건가?

그리고는 귓가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영어 같았다.



내가 끄덕이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잦아들고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다시 귓가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내가 끄덕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걸 몇번이고 반복했다.

눈을 뜨자, 처음으로 꿈 속의 광경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좁은 시야 가운데, 주변은 흑인 병사들 투성이.



그 중 한 사람이 키스라도 할 것 마냥 가까이 얼굴을 가져오고, 다음은 귓구멍을 보인다.

그 남자가 고개를 가로젓고, 나는 강제로 눈이 감겨진다.

무언가에 갇히고, 지퍼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후로부터는 더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완전한 무를 느꼈다.

완전한 무? 아니, 다르다.



이건 죽음, 죽음이야!

그렇게 이해한 순간, 눈을 떴다.

그리고 해변까지 며칠 더 걸려 가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더 죽음을 체험했다.



해변에 도착하자, 수많은 히피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 다들 맨몸이다.

나도 발가벗고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해변에 오고서도 악몽과 죽음의 체험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체험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말했다.



[네가 자는 그 침낭, 그거 영현백이야.]

그제서야 나는 겨우 깨달았다.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던 것이다.



왜 빨리 가르쳐주지 않았냐고 묻자, 죽을 때 맞는 대량의 모르핀이 주는 쾌감을 즐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히피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라고 한다.

영현백 드러그라고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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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아직 학생이던 시절, 미야자키에 단체 여행을 갔었다.

파워스폿을 좋아하던 선배가 일정을 짰기에, 타카치호 협곡, 타카치호 신사, 아마노이와토 신사 같은 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단풍 구경도 즐길 수 있을 거라기에, 그게 오히려 메인 아닌가 싶긴 했지만.



선배 왈, 가장 추천하는 곳은 아마노야스가와라라는 곳이란다.

파워가 너무 강해서 컨디션 안 좋은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다던가.

나는 아무 사전지식 없이 찾아간 곳이었는데, 확실히 압권이라고 할만한 풍경이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돌을 쌓으면 좋다고 하는데, 정말 이곳저곳에 무수하게 돌이 쌓여 있었다.

이만저만 시간이 들지 않고서는 이렇게 되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였다.

같이 온 녀석들도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느니,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느니 각각 소원을 말하며 돌을 쌓았다.



막다른 곳에 작은 동굴 같은게 있는데, 그게 사당인 듯 했다.

구석에서 아직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돌을 쌓으며 놀고 있었다.

런닝셔츠에 허름한 바지, 게다가 어머니가 직접 잘라줬나 싶은 바가지 머리까지.



완전 80년대 아이들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 완전 시골동네구나 싶어, 묘하게 관심이 갔다.

중얼중얼 떠들고 있길래 별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A는 더는 안 되겠구만.]

[오늘 밤으로 끝이야.]

[B한테 원망을 사버렸으니 말이야.]



묘한 대화가 들려왔다.

[자, 밥 먹으러 가자!] 라며 선배가 내 팔을 잡고는 반강제적으로 출구까지 끌고 나왔다.

당황하면서도 끌려 나오자, 선배는 [그렇게 쳐다보지 않는 게 좋아.] 라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뒤를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아까 그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요? 괜히 바라보다 변태 취급 당할까봐?] 라고 반문했다.

[이 바보야, 그 아이들 주변 못 봤어?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돌이 가득 쌓여 있었다고. 어디 지나가면서 무너진 흔적 하나 없이. 게다가 지금 11월인데, 그렇게 한여름 차림인 것도 이상해.]



선배의 대답을 듣고 나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곳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다시 갔다가는 또 만나게 될까 두려워 차마 다시 가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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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에 있는 쿠라시키라는 동네를 알고 있을까?

오컬트판 보는 놈이라면 "뚜껑" 이야기 하면 아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거기 미관지구라는 관광지가 있다.



나는 일 때문에 그 근처를 종종 거닐곤 한다.

아이비 스퀘어라고, 지역에서는 유명한 호텔 옆을 지나, 수제 전병집이나 외국인 대상으로 기모노나 조리 같은 걸 파는 가게가 널린 대로를 지나 수로로 향하는 게 내가 다니는 루트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그날따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념품점이나 먹을거리 파는 노점들도 쉬는 날인지 문을 닫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로를 운행하는 나룻배에도 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미관지구가 통째로 죽은 거 같구나, 하고 멍하게 있자니, 배가 한 척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손님은 타고 있지 않다.

노 젓는 연습이라도 하는걸까? 싶어, 별 생각 없이 계속 지켜봤다.

움직임으로 보아하니 사공은 꽤 나이 먹은 노인인 듯 했지만, 삿갓을 쓴 탓에 얼굴은 그림자 져서 보이지 않았다.



오하라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람 하나 없는 관광지도 꽤 희귀한 풍경이다 싶어, 사진이라도 찍을 요량으로 천천히 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다리도 있고 사진 찍을 구도가 나올테니.



다리 근처와 강과 버드나무를 찍으며, 배에서 눈을 뗐지만 아마 3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배는 사라지고 없었다.

배가 없으니 당연히 사공도 없다.



배가 나아가던 방향은 지나가지 못하게 경계를 세워둔 곳이었다.

그렇다고 뭍에 상륙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배를 끌고 올라왔다면 그야 한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수로에 백조는 떠 있는데, 배는 없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그대로 수로변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곧 다리 아래, 물은 지나가도 백조는 지나가지 못하는, 게다가 배라면 더더욱 지나가지 못할 은빛 경계가 보였다.



역시 못 지나가겠지?

개폐식이라도 있던 것도 아닐테고, 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계 너머에서 사람 얼굴이 쑥 나타났다.

[으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쳤다.



누가 강 아래 떨어지기라도 한건가 싶어 경계 너머 쪽으로 돌아가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없고, 아까와 방향만 달라졌을 뿐.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한순간 보았을 뿐인 그 얼굴은, 내 기억 속에 기분 나쁘게 달라 붙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 알 수 없었고 무표정했지만, 몹시 분노한 것 같은 느낌이 시선에서 전해졌기에.

겁에 질린 것은 아니었지만,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방금 전까지 더웠는데도 양팔에는 소름이 쫙 돋아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귀에 뚜껑이라도 덮인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뭐라고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철벅, 철벅...] 하고, 물에 젖은 맨발로 걷는 듯한 소리가.

뒤돌아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었지만, 누가 됐건 이런 곳에서 흠뻑 젖어 맨발로 걸어다니는 존재는 멀쩡할 리 없다 싶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아까 그 경계 너머로 보였던 얼굴이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제발 착각이었으면 좋을텐데.

돌아봐야 하나, 고민했다.

기분 탓일거라 생각하며 확인하고 싶은데, 몸이 굳어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조금씩 발소리가 다가온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양팔에는 소름이 돋아있는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더운건지 추운건지, 이제는 분간도 잘 가지 않는다.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몇분이나 서 있었을까.



뒤에서 다가오는 것과는 다른, [철썩.] 하고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니, 배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아까 사라졌던 그 배인 거 같지만, 어째서 앞쪽에서 다가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배는 내 근처, 아까 그 경계 앞에서 멈췄다.



역시 저기를 넘어갈 수는 없는 거겠지.

[타겠습니까?]

사공이 그렇게 물었다.



의외로 쉬지 않은, 조금 높은 목소리였다.

눈앞에 있는데도, 고개를 수그리고 삿갓을 써서 역시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 나에게 묻는건가?



안 탈거에요, 저는 관광객이 아니니까.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말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사공은 다시 한번, [타겠습니까?] 하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제 바로 뒤까지 그놈이 와 있는데. 타겠습니까?]

그놈이라니, 누구야, 뭐야!

무서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확실히 발소리는 바로 뒤라고 느껴질만큼 다가온 터였다.

어찌 되었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게 안전할까?

뱃삯은 얼마지?



돈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타겠습니...] 까지 입을 움직였다.

바로 뒤에서 철벅거리는 발소리.

사공이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씩 웃는 입가가 보였다.



장사꾼이니까 손님을 받으면 웃는 게 당연하겠지, 하고 나는 최대한 희망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삿갓 그림자 아래 가려져 있던 얼굴이 보인 순간.

더는 못 돋겠다 싶을 정도로 돋은 소름이, 한단계 더 맹렬하게 돋고야 말았다.



[타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걸 이 악물고 [안 타요!] 라고 바꿔 외친 뒤, 나는 미친 듯 달렸다.

전력 질주할 생각이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휘청거렸기에, 아마 누가 봤다면 얼빠진 꼴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몸이 움직여 준 덕분에, 휘청거리면서도 겨우 넘어지지 않고 원래 있던 길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전병집 할머니가 평소처럼 가게를 지키고 있는 걸 보고서야, 겨우 마음 깊이 안도했다.

주차장에서 정산할 때, 손이 떨려서 동전을 떨어트릴 뻔 했을만큼, 나는 정말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잠깐 세워뒀을 뿐인데 요금이 천엔이나 나왔던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설령 5천엔쯤 나오더라도 그대로 던져주고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요새는 국내여행도 좀 늘어서 미관지구에도 관광객이 드문드문 보이게 되었다.

그날은 밤에 잠도 못 이루고 벌벌 떨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점점 기억이 흐려진 탓인지, 사실 현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 현실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 배의 사공, 양 눈알이 파인 것마냥 텅빈 구멍만 보여서, 지릴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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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 Y에게 들은 이야기다.

몇년 전, 큰 태풍이 왔던 날 밤.

Y는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 침수된 도로를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정 근처.

저녁 지날 무렵부터 호우경보가 내린 상태였기에, 그 무렵에는 다른 차도 거의 없었다.

그저 수십미터 간격으로 놓인 가로등 불빛만 따라갈 뿐, 시야는 최악이었다.



도로는 점점 불어나는 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Y는 어떻게든 쏟아지는 빗속에서,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켠 채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침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와버렸다.



창을 열고 차 아랫쪽을 살피니, 타이어가 거의 물에 잠길 수준이 되어, 문틈새로 물이 서서히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Y는 자신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 회사에 전화해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분명 특약 중 "집중 호우 상황에서의 구조" 관련 조항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런 걸 부르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하며 전화를 했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사 측에서는 바로 대응에 나섰다.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하자, 곧바로 구조 팀을 파견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Y는 자신이 현재 있는 위치를 상세하게 전한 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바람도 요란하다.

밖은 어두운데,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

빨리 안 오려나, 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사이드 미러에 뒤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다가오는 게 보이더란다.



겨우 구조가 왔구나 싶어, Y는 안심했다.

소형 트럭 같은 차가 Y의 차 뒤에 딱 멈추더니, 우비를 입은 스태프가 나타났다.

창문을 콩콩 두드리기에 살짝 열자, [괜찮습니까?] 하는 질문이 날아왔다.



생각보다 더 젊은, 아직 청년 같은 남자였지만, Y에게는 구세주처럼 보였다.

[빨리 오셨네요.]

[나오실 수 있겠어요?]



[수압 때문에 문이 안 열릴 거 같네요...]

[그럼 창문으로 나오시죠. 제가 끌어드릴게요.]

솜씨 좋은 스태프 덕분에, Y는 무사히 차에서 나왔다.



스태프는 자신이 입은 것과 같은 우비를 Y에게 건네고, 뒤편 트럭까지 안내했다.

Y는 구조 차량 조수석에 타고, 스태프가 건넨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스태프는 Y의 차 엔진과 침수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아, 이건 서비스입니다. 몸이 좀 따뜻해질거에요.]

스태프는 Y에게 보온병을 내밀고,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서비스 좋네, 하고 감탄하며, Y는 보온병 안에 든 것을 컵에 따랐다.



홍차였다.

따뜻하다.

김과 함께 좋은 향기가 차 안 가득 퍼져나간다.



뜨거운 걸 잘 못 먹는 탓에 야금야금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보험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구조가 잘 도착했나 확인하려고 전화했나 싶어, Y는 전화를 받았다.



[아, Y씨 되시나요? A보험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떠신가요?]

[아, 네, 감사하게도...]

[실은 정말 죄송하게도, 지금 B길이 호우경보 때문에 출입통제 중입니다. Y씨가 계신 곳까지는 크게 우회해서 가야되서, 아마 스태프가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최소 40분 내지 50분은 걸릴 거 같아요.]



[...네?]

[여보세요?]

[......]



[여보세요, Y씨? 괜찮으신가요?]

[저...]

[네.]



[저기, 스태프 분, 벌써 오셨는데요.]

[네?]

[10분 전쯤에... 남자분, 젊은분이요. 벌써 덕분에 차에서 나왔습니다.]



[네? 정말이신가요?]

[네. 지금, 홍차도 주셔서...]

[홍차요?]



대화가 영 이어지질 않는다.

보험사 직원은 잇달아 질문을 해온다.

그 구조 차량은 몇시쯤 왔는지, 어떤 차량인지, 어떤 인상착의에 몇명이 와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하나하나 대답하는 사이, 휴대폰을 쥔 Y의 손에는 식은땀이 배어갔다.

불안 때문에 자신이 점점 빠르게 말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보험사 직원은 [Y씨, 일단 진정하세요.] 라고 말한 뒤, 한 호흡 쉬고 이렇게 물었다.



[저... 그 사람, 정말 저희 직원입니까?]

보험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Y에게 온 남자는 복장이나 차량 모두, 자기네 회사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통상 호우로 인한 구조를 나갈 때는 최소 두명 이상의 인원이 편성되는데다, 홍차 같은 걸 서비스로 준비하지도 않는다고.



Y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보험사 직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구조 인력과 연락해서, 현황을 확인하는대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Y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Y는 잠시 멍하니 있었지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천천히 돌아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란다.

앞에 보이는, Y의 차량 옆에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우비를 입은 남자.



저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보험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소형 트럭은 대체 무엇일까.

이 홍차는 왜 준걸까.



여기서 도망을 쳐야할지, 아니면 가만히 기다려야 할지, Y는 혼란스러운 와중 열심히 생각했다.

창밖을 보니 비는 아까 전보다는 약해져 있었다.

만약 도망친다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로?

게다가 도망치기에는 물이 불어나 최악인 상황이었다.

문득 앞을 보니, 남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당황한 Y는 앞유리에 서린 김을 닦고 다시 살폈지만, 역시나 아까 전까지 보이던 우비 입은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걸까.

Y는 결국 큰맘 먹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아까 남자가 준 우비를 입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차에서 내리니 물은 무릎 밑까지 차 있었다.

Y는 조심스레 소형 트럭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남자와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영락없이 비명을 질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순간, 전화가 왔다.

보험 회사였다.



[아,Y씨 괜찮으신가요?]

[네.]

[10분 정도 있으면 구조 인력이 도착할 거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괜찮으신거죠?]



[별로 괜찮지 않아요.]

[저기, 혹시 몰라서 경찰에도 신고를 했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고 있을거에요.]

[저는 여기 계속 있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도망치는 게 나을까요?]



[저, 사실은요...]

[네.]

[Y씨가 계신 그 근처, 교도소가 있다고 하거든요.]



[네?]

[그 주변에 평소 같으면 경찰차가 밤에 순찰도 돈다고 하는데, 오늘밤은 태풍이 와서 순찰도 쉬고 있던터라, 금방 출동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불안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전화는 끊겼다.



전화는 끊겼지만, Y는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소형 트럭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남자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진 것이 어쨌든 불안했으니까.



그리고 Y가 딱 소형 트럭 바로 뒤까지 돌아간 순간, 갑자기 트럭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싶었지만, 쏟아지는 빗속에서 소형 트럭은 지축을 흔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후진으로.



Y는 황급히 물을 헤치며 뒤로 도망쳤다.

하지만 소형 트럭은 아직 후진하고 있었다.

무척 느린 속도로.



Y가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굳이, 느린 속도로 천천히 후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Y는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진 채였다.

도망쳐도 도망쳐도 트럭은 뒤에서 계속 따라온다.



그때, 헤매던 Y의 눈에 이리로 다가오는 자동차 불빛이 들어왔다.

Y는 그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번에는 보험 회사의 로고가 찍힌 진짜 대형 트럭이었다.



소형 트럭은 Y를 쫓아오던 걸 그만 두고, 전방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

Y는 지친 나머지 빗속에 주저앉았고, 보험 회사 구조 인력에게 부축을 받았다.

보험 회사 직원 두명도 Y를 덮치려 하던 소형 트럭을 분명히 봤다고 했다.



Y의 차에는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유리창이 깨지거나 문이 뜯어지거나, 시트를 칼로 난자하거나, 타이어가 모두 펑크가 나 있거나 앞유리에 손자국이 잔뜩 나 있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비로 인한 침수 피해만 있고, 인위적인 손상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그 남자가 빗속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수수께끼의 홍차도, 독이나 수면제 같은 걸 탄 것도 아닌 그냥 홍차였다.

Y는 경찰에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알렸지만, 지명수배범 중 그런 사람은 없었고, 근처 교도소에서 그날 탈옥한 죄수 또한 없었다.



그 근처는 사고가 있었다거나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곳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그 청년이 누구고 무엇이 목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 갑자기 Y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후진을 했는지도 수수께끼인 채다.



단지 묘하게 기분 나쁜 사건이었던 때문인지, 그 후 보험 회사 쪽에서는 Y에서 계약 해지를 먼저 제안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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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973rd]저주 받은 산

괴담 번역 2020. 7. 1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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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도시에 이사해서 살고 있지만, 어릴적에는 시골 마을 같은데 살았었다.

우리집 뒤에는 산이 있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산이었는데,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마을에서는 그 산을 "저주 받은 산" 이라고 불렀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절대로 그 산에 가면 안된다고 나에게 당부했었으니까.



나 역시 산에는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산에 들어서면 그걸 기점으로 뭔가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산에 들어간 사람은 그대로 실종된다고 하고.



마을에서는 유명한 심령 스폿이었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심령 스폿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언제나 일정하게 누군가는 산을 찾았다.

이른바 여행객이었다.



저주 받은 산이라는 건, 아마 마을 안에서만 도는 소문이었겠지.

마을에는 딱히 기념품을 파는 곳 하나 없었기에, 솔직히 왜 이 마을에 관광을 오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하필 산을 찾는 것도 의문이었고.



하지만 여행객들은 산에 들어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려온다.

아니,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어느 여행객이 말하길, 산 속에는 허물어진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다른 여행객들도 저마다 그렇게 말했기에, 정말이겠거니 하고 나도 생각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친구가 산 속에 있는 신사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궁금한 것 같았다.



"왜 신사가 있는데도 산이 저주를 받았는지" 말이다.

나도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러자 친구는 내게 함께 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마 그때 내게, 공포심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여행객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사히 돌아오는 걸 봤었으니까.

분명 저주 같은 건 미신이라고 결론 내린 나와 친구는, 방과 후 같이 산에 가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 회중전등과 모기약, 간식을 가지고 나섰다.

친구랑 산에서 같이 간식을 먹자고 얘기했었거든.

친구도 우리집에 들렀다가 같이 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행선지가 어디인지, 어른들에게는 말하지 않은채로.

산에 들어섰지만,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다.

잔뜩 들뜬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학교를 마치고 온 탓에, 해도 슬슬 기울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간식 먹을 시간은 없겠네...] 하고 아쉬워하며, 나와 친구는 무난하게 신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 도착해서야, 우리는 후회하게 되었다.



신사... 딱 사당 안에서, 뭔가가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옴짝달싹 못하게 멈춰서버렸다.

무언가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실제로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는데...



기분이 나빠졌다.

친구는 얼굴이 완전히 굳어있었다.

도망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발길을 돌리려해도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다.

저주 받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질 않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그러다 어딘가 먼 곳에서, [덜컥!] 하는 소리가 났다.

망치를 땅에 떨어트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가위가 풀려, 나는 친구의 손을 잡아 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도중 몇번이고 나무 뿌리에 발을 걸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넘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필사적이었으니까.

문득 나는 깨달았다.



아직까지는 은은하게 아직 밝은 기운이 남아있던 하늘이, 점차 어둠에 깔리고 있다는 것을.

공포심이 점점 커질 무렵,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뒤에서 뭔가가 쫓아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쫓아오고 있었다.

버석거리며 풀을 헤치고, 확실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잡히면 죽는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뒤를 흘끗 보자, 거기에는 끔찍한 꼴을 한 검은 원숭이가 쫓아오고 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이대로 죽을거라고 생각하며, 미친 듯이 달려 겨우 산에서 빠져나왔다.



산에서 나오니 검은 원숭이도 쫓아오지 않았다.

겨우 한숨 돌린 뒤, 나는 떨리는 손발로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집안 사람들은 왠지 어두운 얼굴이었다.



특히 할머니는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불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들켰나 싶어 동요했지만, 딱히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을 다 먹을 무렵, 전화가 왔다.

나는 아직 산에서 겪은 공포를 잊지 못해, 어머니 곁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어머니가 든 수화기에서 전화 내용이 새어 들려왔다.



나는 망연자실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나와 산에 같이 같던 친구의 어머니였으니까.

[A가 아직 집에 안 왔네요. 혹시 그 댁에 있지 않나요?]



더는 뭐가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공포에 질려 산을 달려 내려올 때, 같이 손을 잡고 있던 친구는 사실 없었던 것이다.

친구는 산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내 바로 곁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혹시 모르니?] 하고 물어봐도, [몰라요.] 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실로 어마어마한 거짓말쟁이였다.

전화는 끊어졌다.

친구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고 한다.



죄책감이 나를 에워쌌다.

거실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대뜸, [산에 갔느냐.] 하고 물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노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째서 간거냐! 그곳은 저주 받은 곳이야! 너는 이미 씌어있어. 곧 찾으러 올게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찾으러 온다니...



그 원숭이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네 친구도 갔었지? 그 녀석은 너를 대신해 잡혀간거야.]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친구가 나 대신 잡혀갔다는 말을 듣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나에게는 다행히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에게는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일이다.

저주 받은 산.



과거 내가 살던 마을은, 식인 마을이었다고 한다.

식인종의 더러운 피를 증오한 나머지, 산의 신성한 신사가 저주를 내렸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사의 저주가 너무 강해 잦아들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저주를 직접 받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오르면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행객들이 아무 문제 없이 산을 내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친구는 나를 대신해서 잡혀간 탓에 나는 멀쩡한 것이고.



처음부터 저주를 받은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였던 것이다.

저 원숭이 같은 것은 산신인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이후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않고 있다.



다음에 가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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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다른 사람의 심령 현상이나 공포 체험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은 심령 현상이라...

어제라고 해야하나, 자정이 넘었으니 시간으로는 오늘 있었던 일이다.



나는 외식업에 종사하다보니 날이 바뀌고서야 귀가하는 일도 잦다.

어제는 오늘 휴가인 것도 있고, 단체 손님 예약이 들어오기도 해서 혼자 남아 좀 마무리를 했다.

새벽 1시 반쯤 지날 무렵, 슬슬 집에 가야겠다 싶어 가게를 나왔다.



문제는 바로 그 귀갓길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올 때는 역 가운데를 가로질러 오면 약간 지름길이 된다.

그런데 그 역 벤치에 아주머니 한 명이 앉아 있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페트병에 든 차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에도 사람 한둘은 앉아있는 곳이었기에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줌마가 나를 째려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병을 입에서 결코 떼질 않았다.

괜히 엮이지 않으려 재빨리 앞을 지나가는데, 내가 지나가자마자 아줌마는 일어서서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속으로 제발 좀 그냥 봐달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혹시 단순한 자의식 과잉은 아닐까 싶어, 걷는 속도를 늦춰 봤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아줌마가 나를 추월해 지나가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뒤쪽에서 [까륵... 까륵...] 하고 뭔가를 씹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아줌마가 아까 그 페트병을 깨물며 뒤에서 따라오는 거라 생각해, 완전히 미친 사람에게 찍혔구나 싶었다.



조금만 더 가면 편의점이 있으니까, 일단 거기까지만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제든지 달려서 도망칠 각오를 하며,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

3분 정도 걸어, 곧 있으면 편의점이 나올 무렵이 되자 뒤에 있던 아줌마가 걸음을 재촉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온힘을 다해 편의점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겨우 살았다 싶었는데, 아줌마도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이라도 불러야하나 싶었던 순간,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무슨 일 당한건 아니고?]

...?

무슨 말을 하는건가 싶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하고 되받아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줌마 말을 들어보니, 내가 편의점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뒤에 누가 달라붙어 있었다고 한다.

아줌마는 역 앞에서 마중 나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뒤에서 머리가 길고 흑백 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오더라는 것이다.



옆을 지나칠 무렵, 뭔가 이상하다 싶더란다.

앞서가는 나는 뒤를 전혀 신경 쓰질 않고, 뒤에 따라가는 여자는 딱 달라붙어 걷는데 서로 말 한마디도 없었으니까.

혹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달라붙은 게 아닌가 싶어 따라왔다는 것이다.



편의점 다가와서 속도를 냈던 건, 나를 잡고 편의점에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편의점으로 뛰쳐들어가고, 여자는 그대로 걸어나갔다고 한다.

아줌마는 내가 걱정이 되서 일단 편의점에 들어왔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줌마가 뒤를 쫓아온다고 느낄 때부터 몇번이고 뒤를 돌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결코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지만, 더 얽히고 싶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줌마는 곧바로 역 쪽으로 돌아갔다.

조금 무서웠기에 편의점에서 잠시 어물거리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바로 자려고 옷을 벗었는데, 등골이 오싹해졌다.



옷 뒤에 긴 머리카락이 잔뜩 붙어있었다.

언뜻 봐도 열 올은 족히 될 것 같았다.

혼자 살고 있으니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고, 직장에도 머리를 기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내 머리카락도 아니고.

기분 나빠서 옷을 버린 뒤 샤워를 했다.

새벽 가장 먼저 오는 쓰레기차에다가 던져버리고.



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줌마는 그 뒤 여자가 어딘가로 걸어갔다고 말했지만...

혹시 내 뒤에 다시 붙어 우리 집까지 온 건 아닐까...



누군가 도와줬으면 한다.

정말로 무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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