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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번역괴담][2ch괴담][179th]플라네타리움

괴담 번역 2011. 5. 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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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가을.

꼬박 하루가 걸려서 방을 청소한 뒤 나는 여자 친구 R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정확히 정오.



시작은 3일 전, R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라며 내 집에 오고 싶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R이 가지고 온다는 것도 물론 신경 쓰였지만, 나에게 더욱 중요했던 건 R이 집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서로의 집에 찾아간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 때가 첫 방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사이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R이었습니다.



R [어머,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새빨개!]



나 혼자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R은 탁자 위에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올려 놨습니다.

거기에는 [The Planetarium] 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R [플라네타리움이야! 역 앞에서 팔고 있더라구. 사람들 잔뜩 줄 서 있었어.]



마지막 남은 1개를 산 거라고 했습니다.

R은 상자를 열고, 검은 구체를 꺼냈습니다.

자세히 보니 표면에는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안에 조명을 넣으면 구멍으로 새 나오는 빛이 별처럼 보이게 되는 구조였죠.

나는 방에 딱 하나 있는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날 따라 날씨가 영 좋지가 않았던 탓에 방 안은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R이 조명의 스위치를 켰습니다.

어두운 방 안은 아름다운 밤하늘로 변했습니다.

우리들은 과학 시간에 이름만 들어봤던 별이나 별자리를 찾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휴대폰을 보니 오후 2시 반 정도였습니다.

슬슬 어둠이 눈에 익숙해집니다.

별 찾기가 조금씩 질려올 즈음 문득 나는 플라네타리움의 구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구체에는 전원 스위치는 있었지만 전원 코드나 건전지를 넣는 곳은 없었습니다.

태양광 발전인가 싶기도 했지만 충전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나는 안을 슬쩍 엿보기로 했습니다.



구멍이 작았기 때문에 얼굴을 완전히 밀착시켜서야 겨우 안이 보였습니다.



나 [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안에는 무수한 조그만 빛이 보였고, 중심에는 커다란 빛 덩어리가 떠 있었습니다.

마치 우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중앙의 빛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빛은 점점 나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빛을 향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플라네타리움 안에 들어온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하 속도는 점점 빨라져 엄청난 공기 마찰을 느끼고, 매우 숨이 찼던 것이 기억납니다.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떨어지는 것도 무서웠지만, 이러다 빛까지 다가가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더욱 무서웠습니다.

계속 떨어지다 결국 나는 그 빛에 상당히 가까워졌습니다.



빛은 이미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모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떨어지고 있자니 빛 안에 무언가 검은 점이 보였습니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나는 그것이 검은 구멍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순간 [구멍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들어가면 끝이다!] 라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하지만 그저 떨어지고 있을 뿐인 나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른 채 그저 미친듯이 소리만 지를 뿐이었습니다.



그 사이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찰로 인해 몸이 불에 휩싸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목이 마르고, 뜨겁고,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꺄아아아악!] 이라던가 [우와아아악!] 같은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주변에는 나말고도 수많은 불덩이가 보였습니다.

얼굴이 눌어 붙어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는 것.



팔이나 다리가 사라진 것.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귀가 이상해질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낼 기력도 없어 신음소리만 내고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인가 싶어서 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내 귓전에 울려퍼졌습니다.

R의 목소리였습니다.



R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변의 불덩이 안에 R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 하는 유달리 큰 비명이 들리고, 바로 그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나는 구멍 바로 앞에 와 있었습니다.

바로 전에 비명을 지르던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마 그 구멍에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겠죠.

주변의 불덩이들이 계속 구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구멍의 안 쪽은 어두워서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R의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구멍에 점점 가까워져 시야는 이제 암흑에 가깝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 지 무서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나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멍으로 빨려가고 있었습니다.

더욱 속도가 빨라지고, 뜨거워지고, 무섭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구멍에 빨려 들어갈 때쯤, 나는 힘껏 오른뺨을 얻어 맞았습니다.

나는 옆으로 쓰러져 무엇인가에 쾅하고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주변이 어두웠기 때문에 나는 아까 그 구멍에 빨려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까까지 느껴지던 부유감이나 공기의 마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땅바닥에 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주변이 밝아졌습니다.



형광등 불빛이었습니다.

틀림 없이 나는 내 방에 있었습니다.

R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R [괜찮아? 때려서 미안해...]



아마 이렇게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R의 말에 따르면 나는 플라네타리움을 들여다보다 갑자기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큰 소리로 나를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창문이나 문도 열리지 않는데다 불도 켜지지 않고 전화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사이 점점 내가 뜨거워지기 시작해서 R은 패닉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나를 때려버렸다는 것입니다.

방의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선 환기를 할 생각으로 창문을 열었습니다.



밖은 어두웠습니다...

밤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공원의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플라네타리움은 지금도 내 방 벽장에 쳐박혀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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