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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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커피숍 창가로 악마를 보거든
나는 그날을 처음부터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5월 24일이었어요. 그날 난 커피숍 창가 너머의 악마와 만났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비유나 은유, 시적인 표현으로써의 악마를 말하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그자는 일견 악마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말인즉슨 헐벗고 벌그죽죽한 몸뚱이도, 제멋대로에 날 선 치열도, 막 자라 굽어진 손발톱의 모습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악마는 못 봐줄 몰골로 음험하게 나타나는 족속이 아니었던 거죠.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성미 급한 당신이 지금쯤 몸을 들썩이며 지루해하고 있을 테니까요.
2015년 5월 23일. 나는 본가가 있는 경기도 외곽으로 향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고 실질적으론 두 번째 이유로 인한 방문이었다.
이유 첫 번째,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할아버지(늘 사냥감을 막 놓친 호랑이마냥 날이 서 있었다던)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 급성 심장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그 냥반은 갈 때도 뒤 한번 안돌아보고 갔지.' 아빠가 한 말이다.
이유 두 번째, 독립한 지 4년 반 만에 돈이 다 떨어졌다. 하여 본가에 들러 내가 똬리를 틀만 한 둥지가 있는지 정세를 살펴야 했다. 이유 두 번째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 말하자면, 내 직업은 글쟁이다. ('돈이 떨어졌으면 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잖아?'라고 중얼거렸었다면 이 대목에서 조금은 납득이 갔겠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글쟁이 직업에 대한 이야기 좀 해볼까 한다. 글쟁이가 직업적으로 갖는 단점이야 모두들 알고도 넘칠 터이니(돈! 돈! 돈!) 남들이 언뜻 모를 수도 있는 장점을 말해보겠다.
먼저, 어느 곳에서든 살 수가 있다. 서울 밖은 물론 도심이 아닌 어느 교외 지역에서든. 이건 어디서건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적 배경에 있어 무척이나 편리한 부분이다. (베개와 책만 주시라!) 글쟁이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려는 치들(왜 굳이 이 짓을 하려는 거지?)에게 유경험자로서 하나 조언하자면 가장 좋은 거주지는 부모님 둥지라는 거다. 일단 들어가라. 그리고 골방에서 조용히 지내라. 그럼 해결되리라. (베개와 책 외에는 원하지 마시라!)
하나 첨언하자면, 특히 이 직업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에게 그야말로 감당 못 할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헛된 망상을 붙들지 말 것. 그 재능은 어떻게 파악하느냐고? 경험을 토대로 말해주자면 파악할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면 이미 재능이 없는 거다.
또 하나 장점은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에게든 좋은 첫인상을 줄 수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식이겠다.
"실례지만, 지금 하시는 일이 뭔가요?"
"아, 글을 쓰고 있어요."
"작가시구나!"
그러면 상대는 이제 밑도 끝도 없는 호감을 보내온다. 당연히 인간적인 호감 부문에 한정해서. 물론 그러한 호감은 내가 무언가를 이룩해서가 아니다. 사실 상대는 내가 어떠한 글쟁이인지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호기심에 무슨 종류의 글을 쓰는지야 묻겠다만. 이건 정말이다. 그들이 근본 없는 호감을 품는 원천엔 숱하게 많은 글을 남긴 '오래된 작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신 작가'를 줄줄이 꿰고 있는 괴짜는 거의 없다)
즉, 그들은 나를(혹은 글쟁이인 당신을) 바로 그 옛날 굶주린 주둥이로도 아편은 빨아 재끼며 작품을 완성해간 예술가들로 투영해 보는 것이다. 그네들은 아편 빤 예술가를 삼위일체처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 얼마나 우스운 불로소득인지. 그러니 만약 당신이 글로 돈을 벌고 있다면 이 예술가 선생들이 쌓은 다리 위에서 기꺼이 춤추길. 참고로 나는 앞뒤로 신나게도 흔들어댔다. 끝이 언제 올지 모를 땐 격렬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본가로 향했다. 5-6년 전 유명 작가의 이름을 딴 공모전에서 입상, 내 이름이 딸린 글이 출간, 단군 이래 호황이었던 적이 아직 없다는 출판계에서 신입 작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세를 기록(물론 액수를 본 월급쟁이들은 '그거 정말 못 해먹을 직업이구나'라고 자기 위안이 담긴 동정을 보내겠다만), 인세로 서울에 반전세 집을 장만.
그리고 지금은 글쟁이의 직업으로써 장점인 '어디에서나 살 수 있다'와 '가장 좋은 곳은 부모님 둥지'라는 절대 명제를 깨고서 서울 생활을 만끽하던 이 늙어버린 청춘은 아직 자신의 둥지가 남아있나 확인을 하러 가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별수 있으랴, 사람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결코 현명해질 수가 없는 법 아니던가. 언제든 또 다른 글로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글쓰기 재주가 어디로 떠나는 건 아니니까.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 재능은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내게 남겨진 길은 두 개였다. 사형선고를 받들어 아사할 때까지 미련에 매달리거나, 유배지로 쫓겨나 부자유 속 자유를 누리거나. 4년 반 내내 별 볼 일 없는 연재처들에 궁둥짝을 빌어대며 월세로 보증금을 바람 빼먹듯 구멍 내던 나는 그렇게 본래의 둥지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허나 '최소한 글은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다'라는 위안을 위해 부모님께 사실을 전하고 혈정(血情)에 매달려야 했거늘 결국 제사 다음 날까지 끝내 체면치례하던 입속에다 점심밥을 밀어 넣던 나는 민망함에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선 황망히 시외버스터미널로 나섰다. 그렇게 집을 나와 시내까지 걸었다. 십수 년 전 등교하던 때처럼 그저 그래야하는 거니까 발을 끌어가며 걸었다.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걸 제외하곤 이제 목적지가 없었다.
그렇게 들어선 시내엔 제법 많은 수의 가게가 존재했다. 헌데 우습게도 몇 년 새 군청 지휘 아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만 그 좁다란 시내에서 보이는 거라곤 커피숍뿐이었다. 그곳엔 내가 아는 대형 커피 체인점과 내가 모르는 대형 커피 체인점이 모두 있었다. 두 걸음 뗄 때마다 커피숍이 나타나곤 했는데 아마 이곳 커피숍 주인들은 매번 자기 옆집 커피숍에 잘못 들어가 한숨을 푹 내쉬곤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시킬 게 틀림없었다.
덕분에 내 기분은 놀랄 만큼 좋아졌다. 둥지만 되찾는다면야 어느 커피숍이곤 굽히고 들어가 한자리 차지하고 말 테다. 그럼 본가에 눌러앉아 다시금 글을 쓸 수 있는 면책권이 생기리라. 모든 게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나는 금세 사치와 안락, 그리고 자축을 누리고파 마땅한 커피숍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글쟁이들은 본디 현실감각을 거부하며 사는 법이다)
바로 그때였다. 가게명으로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간판명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긴 조합의 글자로 이루어진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 조합은 외국의 인명 내지 지명 같기도 했는데 간판명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이질감'이었다. 입구의 간판명 밑으로 나무 계단이 위로 늘어져 있기에 그것이 2층의 가게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게의 건물 외관 역시 간판명만큼이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횡단보도 너머의 그 가게를 한동안 넋이 빠져라 보고 있었는데 만약 누가 내게 다가와 저 건물은 아직 나라가 독립한 사실을 몰라 숨어 사는 투사들의 아지트라 했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만큼 건물의 외관은 너무도 오래된 풍의 양식을 띠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나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2층 창가로 보이는 높다란 테이블로 보아(그리고 지역색으로 미루어) 그곳이 분명 커피를 파는 곳이라는 것을. 허나 가게 안으로 향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게는 마치 현지인들의 터부이거나 혹은 너무도 형편없어 찾는 이라곤 옆의 2층짜리 대형 커피 체인점 사장뿐인 것 같았다. 그 사장은 아마 오늘도 계단을 올라 그 가게에 들어섰다가 '아, 제발!'이라는 한탄과 함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겠지.
나는 곧 내 안의 충동이 무책임하게 설득해오는 것을 느꼈다. 혹시 모르지, 저곳이 밀리언 달러 베이비일지. 보통 그렇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구약에 나오는 사탄은 바로 이 '혹시 모르지'로 둔갑해선 우리들 속에 똬리 틀고 있다.
그 순간 그 2층 가게의 창가로 무언가가 나타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손에 컵을 든 남자였다. 내 나이대의(당시 나는 고작 서른하나였다) 사람이 이렇게 표현하는 게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그는 젊은이였다. 헤어스타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는 절대로 단정한 옆머리를 하지 않으니까. 옆머리를 단정하게 치면 길거리 공무원들로부터 딱지를 끊는 줄 알거든.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자 마음먹었던 게 그를 보기 전이었는지 아니면 본 후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당시 그를 통해 앞으로 있을 도전에 대비해 일종의 평온을 맛본 것만은 확실했다. 설령 저 가게에 들어가더라도 주인이나 손님이 나를 쏘아보며 '대관절 저렇게 어린 놈이 여긴 왜 오는 거야?'라고 중얼거릴 일은 없을 테니까. 노인네나 젊은이나 모두 똑같다. 그들 모두 미덕을 지키지 않는 얼뜨기에겐 조소를 보내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비법이니까.
계단에 올라서자 그 끝엔 나무로 된 구식 출입문이(열쇠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왔다. 나는 순간 너무도 클래식한 모양새에 기가 죽어선 잠시 문이 자동으로 열리길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문은 제 모습을 유지했고 나는 맥없이 싸구려 도색의 손잡이를 돌렸다.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생각 이상으로 정상이었다. 지나침 없이 정갈한 원목 바닥재, 실용성을 강조한 심플한 디자인의 테이블, 천연화산재로 마감된 벽면, 바닥재를 자연스레 비춰주는 색상의 조명등들(부검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조명이 아니라), 사방에 자리 잡은 이국적인 관엽식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책들.
다음으로 시야에 들어온 건 바로 내 쪽으로 향해 선 노인이었다. 노인은 아내를 떠나보낸 지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차림새였다.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결코 아내 없인 사람 많은 곳으로 나서지 않으며 아내가 새로 사주지 않는 이상 마음에 드는 옷만을 주야장천 입어댄다) 비닐 재질의 얇은 단색 재킷과 그 안으로 피케이 티셔츠(본래 색상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할 수 없는) 차림을 한 노인은 내 쪽을 향해 어정쩡한 자세로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처음 가게를 두고 했던 고민에 이어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여섯 발자국 앞의 노인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하는. 그냥 자연스레 지나쳐가면 될까? 그러기엔 이 노인이 너무 가까이 있는 데다 테이블 사이의 통로 또한 극적으로 비좁았다. 비켜달라고 할까? 안 돼, 아직 이곳이 노인들의 텃밭이 아니라곤 장담할 수 없으니까. 같은 요청이라도 자기 집 현관문에서 들으면 기분 나빠지는 법이 아닌가.
그렇게 우뚝 서 있던 나는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노인은 지팡이에(그가 입은 잿빛 기지 바지만큼이나 싸구려로 보이는, 그러나 깃털 같은 몸을 지탱하기엔 충분히 단단해 보이는) 의지해 겨우 눈치챌 만한 느릿한 발동작으로 출입문 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2시간도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그러했던 듯싶다.
나는 이내 문 안쪽 좁다란 옆 공간으로 비켜섰다. 노인은 신중하게 지팡이질을 해가며 경사진 계단을 내려갔고 그 노인으로 인해 그때까지 고민 중이던 내 마음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적어도 이 집 커피엔 저 노인네가 목 부러질 각오로 올 만큼 특별한 게 있으리라.
밝아진 기분으로 다시 눈을 가게 내부로 돌리자 이번엔 창가의 그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는 내가 유령이라도 되는 양 눈길 한 번 주지 않고선 노인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남자는 팔목까지 어설프게 걷어 올린 진한색상의 데님 셔츠에 검정 슬랙스 밑단으론 복숭아뼈가 깡총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책장 바로 옆에 위치한 테이블 아래에다 짐가방을 끌어다 놓은 뒤 조금은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카운터를 향했다. 가게엔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으며(주인인지 직원인지도) 카운터 바로 앞 우측의 목제 기둥에는 벽걸이용 블랙보드 메뉴판과 스피커가 자리하고 있었다.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즈풍 노래가 흐르던 90년대풍 싸구려 스피커에서 글렌 밀러의 '문라이트 세레나데' 전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남자가 싱거운 어조로 내뱉었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내 눈에다 시선을 맞춘 상태에서(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정확한 발음의 저음을 내놓았기에 무뚝뚝함보단 정중함에 가깝게 느껴졌다. 남자의 본새가 제법 멀끔했기에 긴장과 더불어 의구심도 풀렸던 나는 그러나 시외교통비만 한 가격표를 확인하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우라질, 커피값 받는 거로 건물 외관을 뜯었어도 열두 번은 했겠네. 그래도 책을 읽을 수가 있으니 영 손해는 아닐 것이다. 저 많은 책 중 봐줄 만한 거 하나는 있을 테니까.
남자는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주며 커피는 자리로 갖다 주겠노라고(거, 참. 편리하군) 했다. 나는 손님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굉장히 상투적인 목 돌림으로 가게 이곳저곳을 채점하고는 이내 책장 앞으로 갔다.
남자가 테이블에 프러시안 블루색(그럴듯하게 들리지?) 컵을 내려놓고는 쌩하고 돌아갔다. 나는 <목수들이여,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란 책을 마저 꺼내 든 뒤 의자를 바짝 붙여 앉았다. 컵 안엔 진한 색상 위로 하얀 하트가 사무적이게도 수놓여 있었다. 어쨌건 맛은 좋았다. 그건 인정해야겠다. 내 취향에 거의 근접한 달콤쌉싸름이었다. 에스프레소가 영 저질은 아니었나 보다.
커피 맛도 괜찮고, 손님도 들지 않아 평화롭고, 친근한 척 말 건네는 가게 주인도 없고, 모든 게 밀리언 달러 베이비였다. 그렇게 절로 콧소리를 내며 잔을 반쯤 비우곤 책 속 주인공이 결혼 당사자가 불참한 결혼식장에 당도한 부분을 읽어내려 갈 때였다.
"커피 맛은 괜찮나요?"
어느새 맞은편으로 자리를 차지한 남자가 꼭 짐짓 꾸며내는 듯한 어조로 쾌활히 물었다. 마치 투덜대며 눈 치우러 나왔다가 이웃집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나는 어설픈 미소로 그렇다고 대답함과 동시에 다시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나 남자는 내 완곡한 의사 표시에도 아랑곳 않고선 어느새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친근한 척 말 건네는 가게주인도 없고'는 정정해야겠다)
"..임대료가 좀 부담이 돼야죠. 이럴 거면 뭐 한다고 이런 깡촌까지 내려왔는지.. 사실 여기 목도 내 입장에선 힘에 부치거든요. 세상에 귀신보다 무서운 게 부동산이라더니. 잘하는 거 없는 사람은 어찌 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개만도 못하니 개 같은 것들만 판을 치고."
어느새 나는 책장을 덮고선 남자를 향해 적당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남자는 내 또래로 보였으나 분명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인 듯했다. 상대에게 사적인 불평을 털어놓으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와 유쾌함을 느끼게 하려면 천성적인 말재주 외에 남이 하지 못한 경험이라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가게 문 열고서 처음으로 온 손님이 아까 그 노인네였다니까요. 환장하겠는 건 매번 이런식 이라는 거거든요. 노인네 냄새 가까이서 맡아본 적 있으세요? 죽음의 냄새가 뒤엉킨 찌릉내. 그런 사람들이 여기 손님의 다라니까요. 아, 내가 뭐 나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던가 그런 건 아닌데요.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은 도통 원하는 게 없다는 거예요. 마음속에 '바라지 않는 것들'만 가득 차 있다 이 말이에요. 나는 그런 사람들 싫어요. 아주 질색이거든요. 사람이라면 자고로 원하는 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죠. 언제 어느 때라도요. 그래서 난 노인네들이 여기 오는 거 싫어요. 그 사람들은 '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기엔 너무 늙었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여기 깡촌 것들도 죄다 마음에 안 들어요. 실은 도시 것들도 그렇지만요. 사람들이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지 알아요? 아침 되면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노인정에 갔다가 밤이면 집으로 기어가고. 자기 일 외에는 모든 게 스스로 굴러간다고 생각한다니까요? 워낙 등신들인지라 정치라면 대통령 인기투표가 전분지 알죠. 사내새끼들은 그저 쑤셔댈 곳 없나만 생각하고 기집들은 TV에다 인생을 허비하고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은 것들이에요. 서서 싸냐 앉아 싸냐만 빼고 죄다요. 거짓말 아녜요. 남자든 여자든 하는 거라곤 마냥 배부를 때까지 입속에다 뭐든 쳐넣는 거라니까요. 지가 뭘 원하는지도 몰라요. 잊어버리기로 했거든요. 먹고 자기 위해 사는 주제에,
그것밖에 생각하는 게 없으면서 겉으론 지들이 어찌나 괜찮은 사람인 척들을 하는지! 그거 범죄예요. 우리끼리 법전에다가만 써놓지 않기로 한 거지 범죄라니깐요. 사람들이 그걸 알아야 되는데. 모든 범죄가 나쁜 놈이 저지르는 게 아니라고요. 담배만 몸에 해로운 게 아니라고요. 하긴 어쩌겠어요. 인간이 본래 죄 많은 동물로 살아야 하는 법이잖아요. 그래야 구원받거든요. 성경에 나온 것처럼요."
나는 식어버린 컵을 의미 없이 돌려대며 적당한 웃음으로 계속해서 반응해주었다. 남자가 무슨 말을 더할지 사뭇 궁금했기 때문이다. (본디 극단적인 게 재미있는 법이다) 비록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있더라도 어쨌건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남자의 말본새를 보고 있자니 적잖이 유쾌했다.
"손님, 책 아주 좋아하나 보네요?"
난데없는 질문에 나는 말끝을 흐리며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이내 말을 덧붙였다.
"실은 글 쓰는 일 하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한 나 자신에게 적잖이 놀랐다. 상대가 끈덕지게 물어오지 않는 이상(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다. 빌어처먹을 세무원 같은 것들) 글을 쓰는 일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 이후의 뻔한 레퍼토리들('책도 냈나요?', '뭐에 대한 거예요?')이 언제나 나를 꽤나 우울하게 만들어서였다. 그들은 뻔한 질문을 하고 뻔한 표정과 뻔한 생각으로 나를 본다. 마치 광대를 광대로만 바라보는 것처럼.
"오, 작가님이셨네."
남자가 한 차례 입꼬리를 양옆으로 길게 늘어뜨리곤 말했다.
"사실 그쪽이 가게에 왔을 때부터 알았어요. 작가님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걸요. 그래서 작가라는 대답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
잠시 이게 무슨 말인고 눈알을 굴리고 있자니 남자가 말을 이었다.
"내 말은, 그쪽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나는 작게 '그렇군요.'라고 대꾸하고는 좌우로 컵을 돌려대는 오른손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글쟁이이기에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언제나 환영이지만 그 주제가 나를 향할 경우엔 정말이지 사양이다. 더구나 그게 훈계조라면. 차라리 얼굴에 침을 맞는 게 낫지.
"저기요, 의미 없는 짓 좀 그만 해요. 이미 사는 동안 충분히 그랬을 거 아녜요."
잔을 돌려대던 내 손목을 짓누름과 동시에 남자가 쇳소리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의 손 마디 마디는 보기 좋은 것을 떠나 다소 괴상할 만큼 기다랗고 가늘었다. 그리고 손목에 느껴지는 감촉은 그 옛날 초등학교 과학 시간 개구리 배때지를 갈라보라는 선생님의 엄포에 떠밀려 쥐었던 메스 손잡이를 떠올리게 했다.
"내 얘기했으니까 이제 작가님 얘기도 해봐요. 토요일 대낮부터 쫓겨난 행색으로 젊은 사람이 다 무너져가는 외벽 안으로 기 들어온 이유요."
손목에서 손을 뗀 남자가 재차 쇳소리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동시에 내 머릿속에선 성난 눈알로 개구리 배때지와 내 얼굴을 번갈아 쏘아대며 '그어! 그으라고!' 명령하던 과학 선생의 음성이 떠올랐다. 나는 짐짓 꾸며낸 동작으로 허리를 반쯤 추켜세우곤 카운터 너머의 벽시계를 훑는 척했다.
2시 19분에서 20분으로 가기 직전.
"..이제 가봐야 돼서, 시외버스 타야 하거든요."
나는 시선을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짧게 내뱉고는 고개를 떨군 채 짐가방을 챙기기로 했다. 맞은편의 남자와 같은 부류들을 꽤나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시시한 이유를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사유로 탈바꿈하는 치들. 시비를 걸어도 될법한 상대에게라면야 뭐든 시도하는 치들. 그러한 분노로만이 스스로를 가치평가 할 수 있는 치들. 세상의 대다수가 그와 같은 얼치기들이기에 나는 그런 부류를 꽤나 잘 안다고 확신한다. 내가 컵을 돌려대서? 호응이 시원찮아서? 웃는 게 비웃는 것처럼 보여서? 뭐든 좋다. 어떤 것이든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 임대료만큼 손님이 들지 않는 가게를 지키는 남자에게 있어 무엇이든 이유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남자가 이유 두세 개를 더 만들어내기 전에 적당히 둘러대곤 도망치는 꼴로 피해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몸을 숙여 테이블 밑을 사방으로 둘러봐도 짐가방이 보이질 않았다. 짐가방은 남자의 옆자리에 놓여있었다. 남자는 테이블 위로 깍지 낀 양손(손가락이 거의 손목뼈에 닿을 정도였다)을 하고 있었다.
"시외버스 타러 가야 한다니까요.. 지금 안 가면 시간을 제때 못 맞춰요."
내 목소리가 어쩐지 애원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들려 갑자기 창피함이 몰려왔다. 남자는 내 말에 과장스레 감탄과 웃음소리를 꾸며내고는 답했다.
"작가님이라서 그런지 말을 재밌게 하시네. 저기요, 그렇게 시간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행색으로 이런 싸구려 건물을 왔다 갔다 하는 처지가 됐을까요? 도대체 그 티셔츠랑 신발은 뭐예요? 어디 가면 돈 주고 살 수 있는 거예요? 옌병, 그 바진 차라리 아까 나간 노인네 쪽이 더 세련됐네."
순간 발가벗겨진 기분에 사로잡힌 나는 황급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벗겨진 치부들을 그나마 가릴 수 있도록. 남자가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사뭇 인자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름 대신에 작가님이라고 계속 불러도 되죠? 언제나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요즘 글은 잘 써져요?"
나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미소가 아닌 웃음을 터뜨린 건 거진 1년하고 3개월 만이었다. 내 눈가는 순식간에 불그스레 물들었다. 글이 잘 써지냐는 물음을 들은 것 역시 1년하고 3개월 만이었으니까.
"4,506자, 4년 동안 내가 쓴 차기작 단편의 글자 수예요. 남들 하는 거 따라 하며 살려고 쓴 연재 글의 글자 수는
그 수십 수백 배가 되겠지만요."
내 목소리가 마치 쥐 새끼가 구녕으로 꽁무니를 뺄 때 낼법한 요상한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그거참.. 힘들었겠네요."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음성, 눈빛, 표정에는 어떠한 불순물도 첨가물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콧잔등까지 벌게져선 연신 콧물을 먹어댔다.
"4년 동안 혼자 그렇게 싸운 거예요?"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이전 당시 내 또래들이 그랬듯 동네 태권도 도장에 다닌 적이 있다. 본래 태권도가 끝나면 봉고차에 태워져 집 앞에서 내려야 하거늘 언젠가는 같이 다니던 친구 놈 집 앞에서 내린 적이 있다. 그놈의 오락기 있다는 말에. 친구 집에서 놀고선 집에 가기 위해 차도 하나를 건넌 적이 있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 엉엉 짜면서 엄마한테 말했었다. 친구 집에서 놀고 혼자 차도를 건너왔다고. 적잖이 혼날 걸 각오했었던 나를 엄마는 살짝 안아주고는 그저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혼자서 차도도 건너고 대단하다면서. 마치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남자가 나를 감싸 안듯 물어온 게. 그러자 우습게도 나는 여지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다른 모든 이들 앞에선 스스로를 만들어내느라 감히 할 필요가 없었던 내 사생활에 대해서 말이다.
"그걸 다 말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테이블 위로 냅킨을 집어 들어 흘러내리는 콧물만 살짝살짝 닦아내며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여긴 올라오는 계단이 많아서 노인네들이 오려면 입구에서 안쪽까지 족히 1시간은 걸릴 거거든요. 그거 보단 길지 않죠? 그럼 좀 곤란해서."
웃음보가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는 듯한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나는 웃음보를 참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예요. 그러니까 국민학교 때죠. 학교에 검프라고 불리는 애가 있었어요.."
이어 작당을 모의하는 소년들처럼 서로를 마주 보던 중 내가 말했다.
"야, 포레스트 검프!"
퍽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소리가 난다 싶으면 그곳엔 항상 검프가 있었다. 학교의 공식 지정 바보였던 검프. 뭔가 짜증이 난다거나 재밌는 게 보이지 않을 땐 남자애들은 검프 뒤로 살그미 다가가 참으로 호쾌하게도 뒤통수를 갈기곤 했다. 여자애들은 눈만 마주쳐도 앙칼지게 쏘아붙여 댔는데 그래도 그게 뒤통수를 맞는 것보단 나았으므로 검프는 주로 여자애들 근처를 서성였다.
나? 나는 아마 유일하게 학교 남학생 중에서(동급생 중에서) 검프의 뒤통수를 갈기지 않는 애였을 것이다. 그건 정의감에서가 아니라 쑥스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그때부터 철부지에다 까불이인 동시에 어떤 부분에선 기벽이라고 할 만큼 애어른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나에게 있어 검프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건 마치 반 애들 앞에서 춤을 춰대는 것과도 같게 느껴졌다. 모르겠다. 나는 이미 그때부터 괴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쨌건 앞장서서 검프를 놀려대거나 뒤통수를 갈기지 않으면서 남자애들끼리의 암묵적 증표를 마다한 나였으나 다행히 그걸 꼬투리 잡는 애들은 없었고 따라서 내 뒤통수도 무사할 수 있었다. 애들은 철부지 까불이 또는 괴짜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검프는 바보였는데 당시 우리끼리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 바보'는 아니었다. 반에서 꼴찌는 도맡았지만 그 앞의 녀석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으며 말이 어눌하고 행동거지가 둔했지만(물론 이따금 침도 주르륵 흘리고) 그것 빼곤 사실 특별하게 우리들과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무렵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미 바뀌었었다) 때였다. 우리는 달마다 짝꿍을 바꾸곤 했는데 그 날은 짝꿍 바꾸는 날 전일이었다. 종례시간이 모두 끝나고 떼 지어 나가는 애들 틈에서 나를 끄집어낸 담임선생님이 살며시 말했다.
"잠깐 남아서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할래?"
본디 반 남자애들과 곧장 축구시합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나는 남자들끼리의 신뢰를 그 자리에서 팽개치곤 얌전히 선생님을 따라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보기 좋게 각진 얼굴 가운데로 진하고 얇은 눈썹에다 항시 구불거리는 풍만한 머리채를 단정히 치켜 묶고 다녔으며 가끔씩 청바지를 입기도 했다. (당시 선생님이, 특히나 여선생님이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온다는 건 애들에게 있어 쇼크에 가까웠다.)
또, 선생님에게선 늘 좋은 화장품 냄새가 났다. 그래서 우리 반 여자애들은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비록 내색하지 않느라 애들을 써댔지만 그건 남자애들도였다. 학교 최고의 덩치이자 말썽꾼이었던 녀석도 선생님 앞에선 곧잘 생글거렸을 정도였다. (우리는 녀석의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오싹함에 몸서리를 쳤다.) 그런 선생님이 반장도 부반장도 아닌 나를 따로 불러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느라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선생님은 교실 한 가운데 자리에 나를 앉히고는 자신은 그 앞자리 의자에 몸을 거꾸로 돌려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어른이 우리처럼 그렇게 의자에 앉는다는 게 참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뭐든 들어줄게요!) 재욱이 있잖니. (아, 검프 놈이 왜요?) 내일이 짝꿍 바꾸는 날인데 재욱이랑 여기 이 자리에 앉아도 될까?"
나는 선생님이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몰라 그 깨끗하고 반질한 얼굴을 올려다봤다. 평소처럼 '이달의 불행한 아이'가 나올 때까지 종이 뽑기로 짝꿍을 정하거나(그렇게 불행한 아이가 된 여자애는 책상에 금을 긋곤 검프 놈이 움직일 때마다 기겁하기 일쑤였고 남자애가 짝꿍이 된 날엔 이따금씩 퍽 하는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아니면 안경잽이 반장 부반장 중 하나를 시키면 될 일 아닌가?
"선생님은 네가 재욱이 짝꿍이 돼서 선생님이 말한 것들을 해줬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내 카라 한쪽을 바로 잡아주며 말했다.
"왜요?"
억울한 마음을 감추느라 다소 괴상해진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뒤통수를 갈기지 않는 것과 짝꿍이 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건 비밀인데.. 선생님은 너를 제일 좋아하거든. 이 학교에서 제일로. 다들 재욱이를 싫어하지? 그래서 너희들에겐 이게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잖아. 그러니까 선생님은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선생님은 제일 좋아하는 애를 제일로 믿거든. 선생님 부탁 들어줄래?"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선생님이 말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팔을 움직일 때마다 말도 안 되게 좋은 화장품 냄새가 났다. 이어 선생님은 나를 똑바로 향한 채 눈과 입으로 환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날 조회 시간. 종이 뽑기를 하기도 전에 나는 검프 놈 옆자리에다 가방을 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검프 놈의 짝꿍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애들은 쉬는 시간이 되자 일제히 나를 둘러싸고선 위로를 건네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나는 위로를 받을 만큼 슬프지가 않았다. 아니, 실은 기쁘기까지 했다. 선생님이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지 그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검프 놈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때마다 점잖게 꾸지람을 놓았고 급식 시간에는 반찬을 남기지 않도록 감독관 역할도 수행했다. 그리고 남은 학기 내내 검프 놈과 짝꿍을 자처했으며 졸업식 날 선생님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헷갈리는 얼굴로 나를 꼭 안았다.
짝꿍을 정하는 날 전일, 선생님은 내게 가장 완벽한 미소를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내게 주었던 건 하나가 더 있었다.
짝꿍을 정하는 날, 저마다 위로를 건넨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갔을 무렵. 한 여자애가 내 바로 앞으로 다가와선 무섭도록 깨끗한 눈동자를 한 채 또렷하고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너 진짜 멋지다. 정말로."
그 애의 이름은 김초현이었다. 하지만 남자애들은 그 애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남자애들은 그 애를 '로보캅'이라고 불렀다. 그 애는 5학년 때 전학 왔다. (그때도 같은 반이었다) 처음 그 애가 교실에 나타났을 때 우리 모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우뚱 기우뚱
그녀는 선생님을 따라 좌우로 양어깨를 갸웃거리며 한 발 한 발 큰 걸음으로 교탁까지 나아갔다. 교통사고가 그녀에게서 너무 빨리도 커다란 걸 앗아간 셈이었다. 애들은 그 애를 놀려대지 않았다. 적어도 앞에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맘 편히 놀려 먹을 수 있는 게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검프 놈 놀리기에도 지칠 때면 남자애들은 지나가는 그 애 뒤를 쫓아가 걸음걸이를 흉내 내곤 키득거리기 일쑤였다. 더불어 남자애들끼리 그 애를 입에 올릴 때면 반드시 '로보캅'이라는 지칭으로 불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애를 사랑하는 거로 간주되었고 그건 초등학생 남자애에게 있어 너무도 큰 형벌이었다.
물론 여자애들은 그러한 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애가 결코 인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애는 집이 가까운 둘 셋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친구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물론 그 애의 신체적 특성으로 인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겠으나 어른스러우면서도 깐깐한 성격 또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검프 놈 건으로 그 애가 내게 말을 건네기 전까진 나는 그 애와 두 번이나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말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다만 인상 깊은 기억 두 개는 가지고 있었다. 남자애들이 자기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걸 분명히 알아차렸음에도 그 애는 뒤돌아본다든지 자리에 멈춰 울음을 터뜨린다든지 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그 애는 언제나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걸어 나갈 뿐이었다. 고개 전방, 힘차게. 기우뚱 기우뚱
다른 하나는 그 애가 친구 둘과 함께 하교할 때의 일이었다. (사실 그 애는 우리 아파트 뒷동으로 이사를 왔었다) 그날 난 같이 하교하던 친구 놈이 청소 당번이었던지라 홀로 가던 중 우연찮게 동행 아닌 동행을 하게 되었다. (물론 여자애들이랑 같이 가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충분히 거리를 두고서) 동네 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커다란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서 그 애 옆의 한 여자애가 지극히 꾸며낸 듯한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초현아, 찻길 건너고 할 때 무섭거나 그러지 않아? 그러면 말해. 우리가 손잡아 줄게."
그러자 그 애는 여전히 맞은편 신호등에다 시선을 둔 채로 대답했다. 마치 엄마가 자식의 물음에 답하는 듯한 어조로.
"교통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들 중에서 자주 일어나는 거에 포함되는 게 아니야. 나는 이미 한 번 겪었으니까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어. 게다가 다리 한쪽만 저는 정도라 나쁜 일 중에서도 좋은 일이었던 거고. 살면서 있을 나쁜 일을 이렇게 미리 운 좋은 수준으로 끝냈으니 다행이지."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애와 또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같은 반이 된 거였다.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일은 학기 초 담임 선생님의 주관으로 각자 자기소개를 할 때의 일이었다.
처음으로 급격한 변화와 새로운 만남을 맞닥뜨리게 된 아이들은 저마다 터질 듯 불안한 마음을 감춘 채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소개 발표 시간을 소화해야 했다. 여기엔 난관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과 함께 자신의 별명을 소개하는 게 그것이었다. 아마 구시대적 발상에 매인 담임은 그게 더할 나위 없는 친교의 역할을 하리라 믿었던 듯싶다. (아니면 그저 생각 없이 전통을 따르던 거던가)
나는 그 시간 내내 가슴 한편이 짓눌러지듯 불편했다. 그건 그 애의 발표 때문이었다. 그 애가 걱정스러워서라기보단 그러한 난감한 상황을 직접 경험해야 하는 게 영 껄끄러워서였다. 그래서 속으로 담임을 어찌나 욕했는지 모른다. 그 애의 차례가 되고, 그 애는 자리에서 삐딱이 일어나 교탁으로 걸어 나갔다. 고개 전방, 힘차게. 기우뚱 기우뚱
교실의 모든 시선이 그 애의 다리 쪽으로 쏠렸다.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도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배가 땅겨와 잠시 상반신을 수그려야 할 정도였다. 기우뚱 기우뚱
그 애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차분히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별명을 발표(?)하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였다. 1, 2초간 반 아이들을 좌우로 훑고는 그 애가 변함없는 어조로 말했다.
"제 별명은 로보캅입니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되어 걸음걸이가 이상하거든요. 아마 이 별명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다친 쪽 다리가 더 이상 좋아질 수가 없으니까요. 제가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면서 겪을 큰 고통을 미리 겪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남이 주는 것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저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저를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제가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든 저 스스로를 보는 눈은 변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연이어 박수 소리를 내는 가운데 쑥스러운지 고개를 조금 수그리고선 잰 보폭으로 자리로 돌아가던 그 애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 연설(난 그게 감히 연설이었노라고 생각한다)로 그 애가 인기스타가 되었던 건 아니었다. (학교에선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법이다) 그 애는 여전히 여자애 둘 셋하고만(그중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 같이 다니던 애였다) 어울려 다녔다. 다행히 그 애를 로보캅이라고 놀려대거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남자애들도 없었지만 그건 그날의 연설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도 이젠 연민이라는 감정을 학습하게 되는 시기여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건 그날의 연설을 가슴 속에 품게 된 아이가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와 그 애가 학교에서 어울리는 일은 여전히 없었지만 같은 학원에서 만나게 된 걸 계기로
이따금 동네에서 마주칠 때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애는 한마디로 말이 통하는 동지였다. 어떤 주제로든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동네에서 마주쳤을 때 우리는 동네 청과점에서 맥주 한 캔씩을 사 예전처럼 놀이터 구석 벤치에 앉아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재미있는 건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마 그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을 꽤나 가치있게 생각했던 것 같고 그럴 때의 감정을 잃게 되는 게 싫었나 보다.
군 입대를 이틀인가 남겨두었을 때 그 애와 마주쳤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애는 내 밤톨 머리를 보곤 모든 걸 깨닫게 되었는지 꽤나 오랜만에 마주쳤음에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중학교 때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의 차례가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일순 지었던 그 표정과 똑같았다. 그날 헤어지던 때 그 애는 마치 지가 내 어미라도 되는 양 양손으로 내 얼굴을 살며시 감싸고는 힘주어 말했다.
"가서 잘 지내야 돼."
나는 그 애가 한 말을 지켰다. 다친 데 없이 제날짜에 제대했으니까. 그 애를 다시 만난 건 공모전에서 입상 후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날 오랜만에 고향의 동네를 거닐다가였다. (내 부모님은 내가 군대에 있을 당시 전원생활을 위해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했었다) 은행원 같은 차림새의 여자가 저 멀리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기우뚱 기우뚱 나는 정말 발작적으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고 뒤를 돌아본 그 애는 언제나처럼 큰 보폭으로 갸웃거리며 내게로 걸어왔다. 고개 전방, 힘차게.
그녀는 고향 동네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놀이터 벤치에서 몇 캔이고 맥주를 깠다.
얼마 후 내 첫 책이 제법 히트를 치고, 나는 고향 동네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에다 반전세 집을 구해 들어갔고,
그 애는 이따금, 아니 종종 내 집을 방문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됐다. 그 애는 내 어미였으며, 내 아비였고, 내 누이였으며, 즐거운 벗이었고,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며, 어루만져주고픈 아이였다. 그리고 그 애는 내 청춘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즐거운 것에는 그 끝이 더 빨리 있는 법이다. 4년간 어떠한 창작도 해내지 못한 내게 어느 날 그 애가 걱정을 억누르지 못하고서 글이 잘 써지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걸 공식적인 내 사망 진단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 책과 같은 것을 몇 개는 만들어낼 줄 알았다. 결코 자만도 과신도 아니었다. 재능이란 어디로 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결국, 시간이 다 된 것이었다. 지금 그 애와 헤어진다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남자가 속 좁게도 여자를 몰아세우곤 헤어지게 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 그 애와 헤어진다면 여자는 헤어진 연유를 자신에게로 몰아세울지도 모른다.
시간이 되기 전 첫 번째만큼의 작품 몇 개를 더 내놓고 금전적 여유를 잡을 수 있었다면 아무 걱정 없이 그 애와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고개 전방, 힘차게. 하지만 이제 금전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고스란히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건 '행복'이었지 '만족'이 아니었다. 우리 둘이 스스로와 서로를 기만하며 시간 바깥에서 숨죽여 지내길 결코 원하지 않았다. 끝내 시간에게 들켜 다시 안쪽으로 끌려와 비참한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인간다운 게 아니니까. 그럴 바엔 강바닥에다 몸을 던지는 게 낫다.
그녀를 앙칼지게 밀어낸 지 1년 3개월. 그간 나는 지리한 미련을 감히 떨쳐내지 못하고선 매일 점심시간 그 애가 일하는 우체국 앞으로 향했다. 그리곤 식사 후 돌아오는 그녀를 바라보는 10여 초가 내 변하지 않는 일과였다. 그녀 역시 매일같이 돌아가는 길에서 나와 10여 초간 눈을 마주치는 게 일과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무언의 대화를 이어나갔고 나는 그게 그녀 또한 내가 그녀를 밀어낸 연유를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도 내 재능이 다시금 세상에 팔리기 시작하면 끊겨진 시간을 이어붙일 수 있으리라 생각할 거라고 직감했다. 때론 직감이 가장 우수한 이론인 법 아닌가.
허나 나는 이제 곧 그녀를 실망시키게 되리라. 나는 시간 바깥으로 줄행랑을 치고자 마음먹었으니까. 나 하나뿐이라면 언제까지고 바깥에서 숨죽인 채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미련을 모두 저버린다면 말이다.
"..참, 현실적이라 더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침 삼키는 걸 이제야 떠올렸는지 남자가 목젖을 한 차례 상하로 흔들고는 말했다.
"본래 뻔한 게 제일 안타깝고 슬프고.. 그렇더라고요."
거의 바깥까지 흘러내린 한쪽 코를 냅킨으로 훔치고는 내가 말했다.
"작가님, 내 생각에요.. 만약 금전적인 상황이 괜찮은 수준이었다면 작가님은 아주 행복할 수 있었겠죠?"
잠시간 뜸을 들이곤 남자가 말했다.
"그렇겠죠. 그 애랑 같이 있으면서.. 또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엄청 행복할 수 있었겠죠."
잠시간 뜸을 들이곤 내가 말했다.
"덤으로 그 여자분 다리도 멀쩡했다면 더 좋겠고요. 그쵸?"
남자가 말했다.
"덤이 너무 커요."
내가 말했다.
"작가님, 만약에요. 내가 그 두 가지를 이뤄주면 어쩔 건가요?"
남자가 말했다.
"좋죠, 그러면."
내가 미소를 참지 못하고선 말했다.
"'어떻겠습니까'가 아니라 '어쩌겠습니까'라고 물은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면 어쩌겠습니까?"
남자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럼 나도 그쪽이 원하는 걸 해야겠죠."
나도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뭐로 받아가야 하나.. 분명 경쟁업체가 이런 걸 급여에서 10% 떼가는 형식으로 일하곤 하는데.. 사실 나는 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시간'이죠. 좋아요. 역시 시간이 좋겠어요. 작가님의 행복한 시간, 그 시간을 아주 조금만 나눠주세요. 약속하면 작가님에게 아까 말한 걸 이뤄줄게요."
남자가 미소를 거두곤 말했다. 나는 장난스레 그러겠노라고 맞장구치곤 남자가 내민 손을 잡아 몇 차례 흔들어댔다. 무언가를 털어놓으니 그래도 잠시간은 후련했고 이 모든 불행이라 생각했던 게 고작 세 치 혀로 설명이 가능하단 걸 깨달으니 깊은 곳에서 힘이 솟구치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 애 생각이 났다. 오늘 내가 갑자기 모습을 안 보인다면 걱정할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럼 그 애는 내 의중을 판단하고 존중하느라 끝내 쥐고 있던 가느다란 실뭉치를 그대로 놓아버릴지 모른다. 비록 그게 단 하루뿐일지라도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그 애가 단 하루라도 슬퍼지는 게 더는 싫었다.
카운터 너머로 시간을 확인했다. 서두른다면 시외버스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럼 퇴근 시간 전에 우체국에 모습을 비출 수가 있으리라. 그리고 말하리라.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기다려보라고. 너와라면 언제 어디서든 춤을 춰도 쑥스럽지 않다고.
나는 남자에게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고, 덕분에 즐거울 수 있었다고, 지금 당장 시외버스를 잡으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말 없이 옆자리의 짐 가방을 번쩍 들어 테이블 위로 사뿐히 내려놓았다. 나는 짐 가방을 낚아채듯 쥐어 들고선 그대로 달려나갔다. 고개 전방, 힘차게.
택시까지 잡아타고선 내리자마자 숨도 돌리지 않고 뜀박질을 했건만 매표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차량 출발 시간을 5분은 넘긴 때였다. 나는 막연한 기대를 붙들고선 표를 끊어 플랫폼으로 내달렸다. 드센 숨을 몰아쉬며 손에 들린 표가 그 너풀거림을 멈췄을 때 본디 없었어야 할 차량이 태연히 그 자리에 정차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량 바로 옆에는 전형적인 운전사 복장을 한 남자가 가느다란 담배 하나를 입에 물어 연신 자신의 생명줄을 뿜어내고 있었다. 표를 보인 나는 허겁지겁 차 안으로 기어들어 가 자리에 날리듯 몸을 던졌다.
이런 운수 좋은 날이 있나. 내게서 발작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몇 차례 터져 나왔고 가짜 구찌백을 동여맨 옆옆 자리의 아줌마가 그런 나를 흘기듯 쳐다보았다. 아줌마, 이런 운수 좋은 날이 있을까요.
이내 둔탁한 엔진음과 함께 덜컹거리며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이 빠져버린 나는 몇 분 안 있어 꾸벅꾸벅 졸아대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몸을 크게 들썩이며 얕은 잠에서 깨어났던 나는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나는 몸과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는 걸 느꼈다.
다음 순간. 눅눅한 느낌이 전해지는 눈꺼풀을 한 번, 두 번 들어 올리자 그곳엔 낯선 풍경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낯익은 풍경이 들어왔다.
낯선 풍경, 어느 모로 둘러봐도 병원이었다. 개인 입원실. 군데군데 색이 다소 바랜 흰색 벽지, 전형적인 색상의 목재 사물함, LCD 텔레비전, 가정용 절반 크기만 한 냉장고,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볕,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바짝 붙어있는 간이침대.
그리고 낯익은 풍경. 그 애였다. 그 애가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이어 내 쪽으로 날듯이 뛰어와선 너스콜인지 뭔지를 미친 여자마냥 두드려댔다. 손을 쫙 펴선 인정사정없이 퍽. 그래 맞다, 남자애들이 검프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때도 저렇게 손을 쫙 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 애가 뛰어왔을 때, 그 애는 전혀 기우뚱거리지 않았다. 내 얼굴 위로 자꾸만 눈물 덩어리를 떨구며 제자리에서 동동거리는 순간에도 그 애는 전혀 갸웃거리지 않았다. 청바지 너머로 그 애의 탐스러운 허벅지 탄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이 모든 것에 영문을 몰라 그 애를 위아래로 훑고는 그저 따라서 눈물만 떨궈댈 뿐이었다. 이게 무어냐. 이게 무슨 운수 좋은 날이냐.
그렇게 수 초간 정신을 못 차리고서 뜻 모를 감탄음만 내뱉던 때였다. 웬 조그마한 여자애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곤 양손으로 내 손목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선 손등에다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놀라서 한차례 숨을 훅하고 들이마시며 내가 쳐다보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운 눈과 코를 한 그 여자애가 오물오물 입을 놀리며 말했다.
"아빠가 일어났어."
낯익은 얼굴들. 엄마, 아빠, 누나, 그 애, 그 애의 부모님, 그 애의 여동생. 처음 보는 얼굴. 좀체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는 조그마한 여자애. 그리고 나를 포함한 그런 모두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 흰색 가운 물결들을 꼬리처럼 달고 온 소갈머리 희끗한 의사. 의사가 내 초점에다 시선을 맞춘 채로 뜻 모를 말을 이어나갔다.
"환자분,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이죠?"
"2015년 5월이고.."
"네, 그리고요?"
"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날을 말해볼래요?"
"..5월 24일, 버스를 타고 있었어요. 시외버스요. 거기서 잠깐 졸았는데.. 근데 깨보니까 여기고.. 옷차림들을 보니까 겨울인 것 같고.."
"네, 환자분. 보호자분들 동의가 있었으니까 지금 상황을 모두 말해드릴게요. 오늘은 11월 7일입니다. 근데 2015년이 아니고 2017년이에요."
평소 많이 자는 편이긴 하지만 2년 반은 조금 너무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를 둘러싼 이들이 하나둘 방정맞게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아마 의사 말이 사실인가 보다.
"..교통사고가 나서 2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있었던 거네요."
"아니요. 환자분, 이제부터 잘 들으세요. 오늘이 9일째예요. 환자분 2017년 10월 29일 자택에서 저녁 식사 도중
의식 잃고 쓰러져서 여기로 입원하신 거예요."
무슨 미친 소리를 늘어놓는 건가 싶어 기가 차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둘러싼 이들은 여전히 코만 훌쩍이고 있었다. 여자애는 '아빠가 갑자기 넘어져서 엄마랑 119 불렀어.'라고 오물거렸다.
"환자분, 환자분 병명은 뇌동정맥 기형입니다. 아마 들어본 적 없을 거예요. 0.1% 미만에게서만 나타나는 희귀병이거든요."
희귀병이라는 말에 일순 오금이 저린 나는 여자애에게 붙잡혀있던 손에 힘을 꼭 주었다.
"쉽게 말씀드릴게요. 우리 몸은 동맥, 모세혈관, 정맥의 혈관을 거쳐서 피가 공급돼야 합니다. 그런데 환자분 뇌 뒷부분에서 손톱 반만 한 크기의 혈액이 응고해버린 거예요. 굳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쪽이 막히니까 뇌에서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동맥에서 정맥으로 그대로 연결되면서 문제가 생기겠죠? 이게 뇌동정맥 기형입니다. 왜 이런 병이 생기는지는 현대 의학에서도 자세히 밝혀지지 않아서 원인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여기까지 이해가 가셨죠? 이 병 때문에 환자분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지금 혼동하고 계신 거예요. 환자분 혼수상태에 있던 게 2년이 아니라 9일이에요. 뇌가 잠시 손상을 입어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에
이제 쉽게 말해 컴퓨터처럼 오류가 났다가 덮어씌워진 거죠. 환자분 지금 수술이 아주 잘 됐어요. 합병증 증세도 없고요. 한두 달 입원하면서 추이 좀 보다가 퇴원하면 일상생활 가능합니다. 다만, 한 번 뇌 기능이 중단돼서 기억이 손상된 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왜 컴퓨터도 지워진 공간에다 새로 파일 만들어지고 하면 예전 파일은 쓸 수가 없게 되죠? 그거랑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의사가 기계적인 어투로 내 보호자를 찾았고 곧이어 흰색 가운 물결들을 따라 그 애와 우리 가족이 병실 문을 나갔다.
자, 9일을 자면서 2년 반 동안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단다.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여자애의 단풍잎 같은 두 손을 뿌리치고는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무도 내 얼굴을 볼 수 없도록. 가능하다면 언제까지고 그러고 싶었다.
그 애와 그 여자애(얘가 내 딸이란다. 세상에 마상에!)는 다음 날부터 내내 내 옆에 붙어 내가 자느라 잊어먹은 과거의 일들을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노벨 문학상은 누가 탔어?"
"여자 작간데.. 그.. 이름이 길고 어려워. <체르노빌의 목소리> 썼던 사람."
"..2016년은?"
"밥 딜런."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아무래도 내가 자는 동안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나 보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어."
"그게 누군데?"
"도널드 트럼프."
"그 부자?"
"더 놀란 거 말해줘?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중간에 탄핵됐어."
"어? 왜?"
"그리고 감옥소에 있어, 지금."
"뭔 말이야, 그게? 쿠데타라도 일어났어?"
그 애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싯팔.. 아무래도 내가 자는 동안 진짜 큰일이 일어났나 보다.
잠에서 깨어 한 달 반. 그간 나는 바깥에서 일어난 2년 반의 공백을 그럭저럭 메울 수 있었다. (가끔 그 애가 잘못된 정보를 주고는 신나하느라 시간이 좀 더 소요되긴 했지만) 그리고 나와 그 애 사이의 공백 또한.
나와 그 애는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책이 나온 해에 결혼했단다. 속도를 위반해서라고 하는데 누가 신호를 지키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단다. 그 직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18평이 채 안 되는 월셋집을 신혼집으로 구해선 나머지 돈과 대출금을 탈탈 털어 장사를 시작했단다.
그렇게 그 애는 만삭 중에도 모든 것을 프로듀싱하며 동네 골목 가에다 희한한 가게를 오픈했다. 그 가게는 좌석이 그리 많지 않은 테이크아웃 위주로, 아시아 각국의 주전부리들을 한데 모아 인스턴트식으로 쉽고 빠르게 제공하는(손님이 직접 그 자리에서 취향에 맞게 조리할 수 있는) 가게였다. 그리고 1년 만에 체인점을 내더니 지금에 와선 2개의 체인점(그중 하나는 대학가 주변에 입점한)을 운영하고 있으며 본점은 임대 가게가 아닌 자가 건물이 되었단다. ("바깥에 나가보면 요즘 죄다 우리 꺼 따라 하느라 비슷한 가게들뿐이야." 그 애가 덧붙였다)
우리 딸 애는 올해 미운 네 살로, 얼마 전까진 그림 그리기에 환장하다시피 하더니 요즘은 놀이학교에서 배운 영어 노래를 밤낮으로 염불 외듯 중얼거린단다. 나는 이제 딸 애가 병원에 오면 종일 업고 다니며 제 엄마를 빼닮은 눈꺼풀과 콧방울에다 하염없이 입을 맞춘다.
"..너, 다리는?"
어느 날, 참다못한 내가 그 애에게 슬며시 흘리듯 물었다.
"다리가 뭐?"
"다리가 불편하다든지.. 예전에 다친 적이 있다든지.."
"그런 적 없는데?"
그 애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과거의 기억 중 몇몇이 잘못 보존되거나 하여 틀린 기억을 가지게 되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남들처럼 걸어 다녔다. 나는 커피숍의 남자와 악수를 하던 게 떠올랐다. 그건 그저 9일간의 꿈이었을까? 아니, 꿈이란 건 꾸고 있을 땐 몰라도 깨어난 뒤에는 아는 법이다. 그게 꿈이었는지 아닌지. 남자는 내게 말했었다.
"작가님의 행복한 시간, 그 시간을 아주 조금만 나눠주세요."
그리곤 말했었다.
"약속하면 작가님에게 아까 말한 걸 이뤄줄게요."
크리스마스가 있던 주에 나는 퇴원했다.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양손으로 두 여자의 손깍지를 꼭 쥐고선 중얼거렸다.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차례네."
그 주는 내내 너무도 행복했다. 살면서 가장. 높고 넓은 전셋집에서 딸애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엔 그 애와 트리 아래로 선물 꾸러미를 가득히 채워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침, 아주 이른 아침. 나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발광하듯 뛰어다니는 딸애와 장난감 칼싸움을 하며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빠, 이제 선물 풀어봐도 돼?"
칼에 찔려 죽는시늉을 하는 내 모습에 이젠 질렸는지 딸애가 칭얼거리며 물었다.
"엄마 곧 일어날 거야. 그럼 다 같이 산타가 뭘 놓고 갔는지 확인해보자, 알았지?"
그때였다. 일순 집 안으로 가스 냄새 같은 게 풍겨왔다. 가스 밸브에는 문제가 없었다. 냄새는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 때 알코올램프에서 나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과학실에서 과학 선생은 항상 눈을 부라리며 외쳤었다.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열고 닫았었는지 기억이 안 나면 다시 열었다, 닫았다!"
방 안에서 그 애가 아직 꺼벙한 눈을 한 채로 걸어나왔다.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가스 냄새 같은 거."
내가 물었다.
"아니, 안 나는데."
그 애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 애는 나를 지나쳐 딸 애의 뒤편에 우뚝 서더니 내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의미 없는 건 그만 물어봐."
영문을 몰라하는 내게 그 애는 장난감 칼을 쥐고 있는 내 한쪽 손을 가리키며 외치듯 명령했다.
"그어! 그으라고!"
이어 딸 애가 장난감 칼을 바닥에 거세게 부딪혀대며 자지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그 순간 한층 강해진 가스 냄새와도 같은 게 내 코를 덮으면서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금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땐 여전히 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채였다.
내 귓가엔 글렌 밀러의 '문라이트 세레나데'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내 콧속으론 다소 미약해진 가스 냄새가
여전히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내 눈동자론 맞은편으로 의자 뒤에 한껏 등을 기댄 커피숍의 남자가 들어왔다.
가스 냄새의 정체는 유황 내음이었다. 남자는 포만감과 권태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약속대로, 행복한 시간 조금을 나눠 가졌다."
남자 뒤편 카운터, 그 카운터 너머로 벽시계의 긴 바늘이 숫자 '4'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fin-
후기
누구나 인상에 남는 꿈 한 두 가지쯤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자면서 보는 꿈. 나 또한 그렇다. 꿈 중엔 분명 다른 꿈들과는 다른 성질의 것들이 존재한다. 주제나 내용을 떠나 꿈꾸는 중에 어떤 특별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들 말이다. 그런 특별한 감정은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농밀한 감정선들이고, 그래서 나는 그런 꿈들을 아무리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잊지 않고 떠올린다.
해당 이야기는 바로 이런 꿈들 중 하나를 베이스로 한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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