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분류 전체보기

728x90

 

야마가타현 O 지방에 있는 어느 산 이야기다.

그곳에는 과거 대규모 산림도로 계획이 좌초되면서 버려진 터널이 있다.

육지의 외딴섬이라 불리던 그 지구와 옆 도시를 잇는 산림도로 계획이었으나, 개통되지 못하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특별 천연기념물의 생식지와 겹친 탓에, 자연보호 관점에서 공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무책임하게 태어나 버려진 인공물의 껍데기들.

누구도 다니지 않는 도로.



물이 흐르지 않는 화장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터널.

버려진 인공물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나는 알 수 있다.

고독한 인공물들은 외로워 하고 있다.

터널 안에 버려진 수많은 아이들의 신발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에 버려진 붉은 하이힐은 아직도 걷고 싶어 한다.

터널은 호흡을 반복한다.

지역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는 산.



생각해보면 공사 중 귀신 소동이 있었다고 관계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덩치가 큰 여자가 해질녘 터널 안을 오간다고.

고개를 숙인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과, 그럼에도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만큼 커다란 입.



여자는 웃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단순히 이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는 본 적이 있다.



커다란 여자의 실루엣.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

그 터널 건너편.



커다란 입 건너편에.

그런 것을 보고서도 나는 그 산에 계속 찾아가고 있다.

그 산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여러분도 부디 찾아와주세요.

728x90
728x90

 

내가 아직 TV 방송국에서 일하던 무렵.

전 참치 어부인 A씨를 취재할 때 들었던 이야기다.

후술할 사정으로 인해 방송은 못하고 창고에 박히게 된 증언이었고, 상부에서 압력이 가해져 결국 보도할 수 없었다.



이제는 한참 세월이 흘렀으니 투고해보려 한다.

지금보다 훨씬 원양어업이 활발했던 쇼와 시대 어느 무렵.

폭풍 속에서 어선의 엔진이 고장나는 바람에 표류하게 된 끝에, A씨가 타고 있던 어선은 낯선 해역으로 흘러들어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폭풍은 곧 그쳤고 근처를 운항 중이던 미 해군이 SOS 신호를 포착했다.

선원들은 구조가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 A씨는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곳은 멀쩡한 어부라면 얼씬도 않는, 플랑크톤이 거의 없어 물고기가 잡히지 않기로 유명한 해역이었다.



거기서 갑자기 기묘한 부표 하나가 어선에 부딪힌 것이다.

폭풍에 부표가 떠내려온 것인가 싶었지만, 문제는 그 부표에 적힌 내용이었다.

검은 사각형 테두리에 노란색 배경으로, 검고 목이 긴 공룡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경고문까지 적혀 있는,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표였다.

선장도 [처음 보네. 이건 무슨 뜻이지?] 라며 당황했었다고 한다.

물론 A씨도 의미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주변에서 강렬한 썩은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냄새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해수면 위에 무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부패 사체가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한 마리, 한 종류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의 거대한 부패 사체가 둥둥 떠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명확하게 고래나 상어가 아니었고, 하나같이 분명 공룡 같은 모습이었다고 A씨는 증언했다.

[잘못 보신 거 아닌가요?] 라고 재차 묻자, A씨는 단호하게 답했다.



[썩은내도 꽤 독특해서, 고래나 상어랑은 달랐다고. 평생 바다에서 산 우리 어부들이 잘못 보기라도 했을까봐?]

그러더니 A씨는 불단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 후에 하늘이 맑아지더니 이놈이 나타나더지 뭔가!]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바다에 던져버리고, 필름만 비닐에 싸서 삼켜서 숨긴 덕분에 나중에 구조하러 온 미군의 신체검사에도 발각되지 않아, 압수를 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진이 이 취재가 묻히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번은 초자연 현상 특집 프로그램에서 이 사진을 내보내려 했는데, 유독 이 사진에 대해서는 윗선에서 강한 압력이 들어왔고, 방송국에서 가지고 있던 사진의 복사본마저 압수당했다.



그 후 A씨의 집에도 도둑이 들어,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하여, 나는 지금도 그 사진이 진짜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사진에는 바다에 떠 있는 수수께끼의 부패 사체들과, 앞서 말한 그 부표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바다 위 상공에는 울창한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정글이 바다에 잠겼다거나, 정글로 뒤덮인 절해의 고도가 찍힌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정글이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폭풍이 지나가고 이놈이 나타났을 때는 다들 놀라서 주저 앉아버렸다니까. 혹시 저기 살아남아 있던 공룡들이 폭풍 때문에 떨어져서 죽어버린 건 아닐까?]



태평하게 웃으며, A씨는 자신의 가설을 들려주었다.

 

728x90

[번역괴담][5ch괴담][1033rd]카츠오 쇼

괴담 번역 2026. 6. 21. 23:17
728x90

 

초등학교 때, 아직 부모님과 함께 조부모님 댁에 얹혀살던 시절의 일이다.

가족 구성은 만화 '사자에상'과 비슷했다.

나는 타라짱(손자) 포지션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사자에상의 카츠오 포지션이랄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참고로 그 삼촌(이하 카츠오라고 부르겠다.) 은 대학교를 중퇴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지금으로 치면 니트였다.

가끔씩 발작하듯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었던 것 같다.

집에는 삼촌과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일하러 가거나 외출해서 둘만 남는 날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카츠오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묻곤 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서운 경험 해볼래?]

[머리가 어떻게 돼버릴 것 같은 일 해줄까?]



나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너무 무서웠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카츠오와 둘만 남겨진 날. 마침내 카츠오가 일을 저질렀다.

카츠오는 나를 2층 다다미방으로 데려가더니, 기둥에 내 두 손을 뒤로 돌려 묶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저항 한 번 못 하고 가만히 당했나 싶지만, 당시엔 어렸고 카츠오가 무서워서 반항할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덜덜 떨고 있는데, 카츠오가 갑자기 TV 프로그램 MC처럼 비정상적인 하이텐션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을 선사해 드리려고 합니다! ○○(본명)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



이런 소리를 지껄이며 혼자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만 있었는데, 카츠오는 마치 내가 거기 없는 사람인 양 신이 나서 별의별 소리를 다 했다.

무슨 쇼가 어떻느니, 천국이 어떻느니 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내 앞에 떡 하니 서서 말했다.

[너,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면 안 돼. 너도 나쁘다는 걸 알아야지.]

그러고는 옆에 둔 상자에서 바늘을 꺼내 들었다.



나는 나를 찌르려는 줄 알고 그제야 [싫어! 하지 마!] 하고 울음을 터뜨렸는데, 카츠오는 갑자기 그 바늘로 자기 배를 찌르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야, 아프다고! 대단하잖아!]

카츠오는 악을 쓰듯 소리쳤고, 나는 이미 공포를 넘어서서 머리가 새하얘진 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늘 5개 정도를 찔러넣더니, 카츠오는 옆 다다미방과 이어진 미닫이문을 열고 그 너머에 있던 의자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다시 처음처럼 기괴한 하이텐션으로 돌아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이 쇼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박수!!]



또 혼자 박수를 쳤다.

바늘에 찔린 배도 엄청 아팠을텐데, 정말 제정신은 아니었던 거겠지.

그리고 바늘과 같이 두었던 밧줄을 꺼내 들고 의자 위로 올라가 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시점까지도 나는 넋이 나가서 멍하니 보고만 있었는데, 카츠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상인방과 자기 목에 밧줄을 묶는 순간, 미친 듯한 공포가 엄습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며 악을 쓰고 울부짖었지만, 카츠오는 이미 내 목소리 따윈 듣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여러분, 축하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카츠오는 의자를 걷어차고 목을 맸다.

나는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미친 듯이 비명만 꽥꽥 질러댔다.

한 1시간쯤 지났을까, 체감상으로는 훨씬 긴 시간 후에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외출에서 돌아오셨고, 2층에서 악을 쓰는 내 목소리를 듣고 계단을 뛰어 올라오셨다.



나와 목을 맨 카츠오를 본 두 분은 한동안 넋을 잃고 굳어 계셨다.

이내 할아버지가 나를 묶은 밧줄을 풀어주셨고, 할머니가 나를 꽉 안고 1층으로 데려가 주셨다.

그대로 할머니가 곁을 지키며 1층 안방 이불에 나를 눕혀주셨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경찰과 우리 부모님에게 연락해 뒷수습을 하셨던 것 같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지만, 할머니가 [자거라, 그냥 푹 자두거라.] 하시며 다독여서 그냥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이후 이런저런 경찰 조사와 간단한 장례식이 끝난 뒤, 부모님과 나는 곧바로 그 집을 떠나 이사했다.



지금도 명절이나 추석 때 조부모님 댁에 가긴 하지만, 아직도 2층에는 무서워서 절대 올라가지 못한다.

목을 매고 미동도 없다가 갑자기 발작하듯 몸을 부르르 떨던 모습이라든가, 몸 안의 배설물들이 뚝뚝 떨어지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끔찍하게 생생하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서운 경험" 을 시켜주겠다는 카츠오의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된 셈이다.



최악의 형태로.

두 달 전쯤, 나도 당시의 카츠오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참 기분이 복잡하다.

728x90

[번역괴담][5ch괴담][1032nd]Not Deer

괴담 번역 2026. 6. 18. 23:58
728x90

 

길고 안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기에 올려본다.

5년 전, 대학 여름방학 때 친구 A와 여행을 가서 겪은 일이다.

여행지는 A의 고향인 간사이 지방 어느 시골 마을.



산간부 분지 지형이라 K산을 목적으로 타지에서 등산객이 가끔 찾아오는 정도고, 그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곳이었다.

젊은 남자 둘이서 여행 갈 만한 장소는 아니다 싶겠지만, 우리가 이곳을 여행지로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시골에는 A의 삼촌이 살고 계셨는데, 코티지를 몇 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관광 수요가 조금 있었던 데다 최근의 캠핑 붐까지 겹쳐서, 외진 곳치고는 나름대로 이용객이 있었다고 한다.

코티지는 K산 근처에 총 3개 동이 있었는데, 그중 한 동만 묘하게 떨어진 곳에 있었고, 크기도 3개 동 중에서 가장 작았다.

그런데 최근, 그 가장 작은 코티지에 묵었던 손님에게서 클레임이 들어왔다는 이야기였다.



[한밤중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짐승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는 내용이었다.

그 손님은 도시에 살다 온 온화한 노부부였는데, 평소와 달리 불같이 화를 내며 항의를 하는 바람에 A네 삼촌도 꽤 당황했다고 한다.

A네 삼촌은 영업에 지장이 생길까 봐 일단 그 코티지의 예약을 막아두고 일주일 정도 순찰을 돌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수상한 사람이 나타난 게 아닌지, 당연히 경찰에도 상담했지만, 결국 짐승을 잘못 봤거나 자연현상일 거라며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A네 삼촌은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꽤 경계하고 있었고, 그 코티지의 영업을 재개할지 망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A가 본가에 내려갔다 친척 모임에서 삼촌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클레임 내용에 흥미를 느낀 A는 삼촌에게 이렇게 제안했다고 한다.

[그럼 나랑 내 친구가 그 코티지에 자보고 아무 일도 없으면 만사 해결이네!]

삼촌도 [영업을 계속할지 판단하려면 일단 사람이 묵어봐야 하니 부탁하마. 감시 카메라도 설치할게.] 라며 승낙하셨다고 한다.



A는 대학 강의가 끝난 뒤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여행을 즐기는 기분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 개인 사정으로 알바를 못 하던 시기라 시간 때우기로도 딱 좋았거든.

게다가 사연이 있는 곳이라 숙박비도 엄청나게 깎아준다고 하니, 돈 없는 대학생 입장에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날 바로 전화로 A네 삼촌에게 2박 3일 묵겠다는 뜻을 전하고 허락을 받았다.

여행 당일, A와 함께 그 코티지에 도착하니 A네 삼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현관 앞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작동 테스트를 하던 참이었단다.



체크인을 하고 열쇠를 건넨 뒤, A네 삼촌은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 후로 우리는 평범하게 근처 강에서 낚시도 하고, 점심부터 고기도 구워 먹고, 산기슭을 산책하며 시골 여행을 마음껏 즐겼다.

난생 처음 해본 낚시가 의외로 재밌었다는 것과, A가 가져온 지역 특산물 토마토랑 소 안심구이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게 지금도 기억 난다.



그렇게 여행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훌쩍 밤이 되었다.

코티지 안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밖에서 [꺄아아악-!] 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울려 퍼진 소리에 놀란 나는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산기슭이라 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달빛과 코티지 조명에 의지해 창밖을 살피고 있는데, 숲 입구 근처에 검은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사슴만 한 크기였고, 아무래도 이쪽을 향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A가 [저거 사슴이네. 저게 클레임 원인인가?] 하고 묻길래, 나는 [울음소리 낸 건 저 녀석일지도 모르겠네.] 하고 대충 대답했다.

울음소리의 원인은 찾았지만, 클레임에 있던 "사람 그림자" 로는 보이지 않았다.

A는 [사슴 울음소리에 놀라서 헛것을 본 거 아냐?] 라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형체를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에 휩싸이면서, 아직 뭔가 더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내 예감은 빗나갔다.

한참 동안 그 사슴 같은 형체를 주시했지만 어느새 녀석은 사라져버렸고, 결국 아무 일 없이 첫날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A는 어젯밤 일을 삼촌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그러자 삼촌은 [그 코티지 영업은 당분간 중단해야겠구나. 너희도 일정을 앞당겨서 빨리 돌아오는 게 좋겠다.] 라며 충고하셨다.

하지만 A는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벌써 가긴 싫어요. 아무 일도 없었고 괜찮다니까요.] 라며, 내게도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어제 기분 나쁜 예감이 들긴 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걸 떠올리고는, 코티지에 계속 머물겠다고 A에게 말했다.

하룻밤 푹 자고 상쾌하게 일어나니 현실 감각이 돌아와서 어제 일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었거든.

결국 우리는 이틀째도 코티지에 남았다.



전날 밤의 기괴한 체험을 잊어버릴 정도로 신나게 낚시를 즐겼다.

낚시를 마치고 코티지로 돌아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저녁 먹을 무렵이었다.

저녁에 구워먹을 고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산 쪽에서 다시 [꺄아아아악!!] 하고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숲에서 들려왔던 바로 그 소리였다.

A는 [낮에 사슴이 우는 건 드문 일이네.] 라며 태평하게 말했지만, 나는 이때 전날 밤과 똑같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 후로도 쉴 새 없이 그 날카로운 비명이 몇 번이고 울려 퍼졌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바람도 불지 않는데 주변 나무들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A가 [이쪽으로 오는 거 아냐?] 하고 중얼거리자, 그제야 겁이 덜컥 난 나는 바비큐 준비를 멈추고 코티지로 피난하자고 제안했다.

A는 그 소리를 듣고도 별 생각이 없는지 유유자적하게 소리가 나는 곳을 찾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A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어 코티지 안으로 들어갔다.



코티지 안으로 A를 밀어 넣고 현관문을 잠근 그 순간.

[똑똑...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아주 얌전하고 정중한 노크 소리였다.

여기서 A도 일련의 상황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표정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팽팽하게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코티지 안에 울려 퍼졌다.



창문으로 현관에 있는 존재의 정체를 확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노크 소리가 멈추었고, 우리는 안도했다.



조심스레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무도 없다고 말하자, A는 바비큐 세트를 치워야 하니 밖에 나가겠다고 했다.

온갖 소동 때문에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의욕이 완전히 사라진 거였겠지.



솔직히 다음 날 아침까지 코티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고기를 구우려다 바깥에 방치하는 것도 안 될 일이라 나도 A의 의견에 찬성했다.

A는 조심스레 자물쇠를 풀고 문을 조금씩 열었다.

그 순간, 밖에서 엄청난 힘으로 확 잡아당기며 문이 활짝 열려버렸다.



거기에 있던 것은 사슴이었다.

창문으로 현관 밖을 확인했을 때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몸통의 외형은 평범한 사슴인데도, 나는 곧바로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얼굴, 특히 눈의 위치가 이상했다.

보통 사슴은 얼굴 측면에 눈이 달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녀석의 눈은 정면, 인간처럼 얼굴 중앙 부근에 달려 있었다.



그 눈은 보면 볼수록 기괴하고 형태도 일그러져 보였다.

말로 형용하기 어렵지만 [아, 이거 사슴이 아니구나.] 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을 만큼 소름 끼치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사슴 같은 형체는 A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보통 야생동물이 인간과 눈을 맞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마련인데, 그 녀석은 명확하게 A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분노에 찬 동물의 눈빛이었고, 우리에게 명백한 악의를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문 닫아!!] 하고 소리친 순간, 사슴 같은 그것이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며 이쪽으로 돌진해 왔다.



A는 옆으로 몸을 날려 직격을 피했지만, 요란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사슴 같은 것은 그대로 코티지 안으로 난입해 방 안쪽 벽에 처박혔고, 그 충격으로 근처에 장식되어 있던 꽃병이 박살 났다.

녀석은 비틀거리면서도 내가 있는 쪽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나는 무심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고, 몸이 굳어버렸다.

핏발이 선 그 눈은 우리를 향한 격렬한 증오가 느껴질 정도라 선명하게 인상에 남았다.

내가 겁에 질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자, A는 내 손을 잡아채며 현관으로 달렸다.



그러자 녀석은 [갸아아아악!!!] 하고 날카로운 포효를 내지르며 우리 쪽으로 돌진해 왔다.

나는 A에게 끌려가듯 현관을 빠져나왔다.

A가 곧바로 문을 닫자, 사슴 같은 것은 문에 격렬하게 부딪혔는지, 둔탁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녀석은 밖으로 나오려는 건지 [쾅!', 우당탕!] 하며 문 너머에서 현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녀석이 문이나 창문을 부수고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수십 초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다시 [똑똑... 똑똑...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울렸다.

조금 전까지 미쳐 날뛰던 모습과 너무나도 갭이 커서, 녀석이 현관문을 열게 하려고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 사슴 같은 것에게 지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미치도록 무서워졌다.

[문, 안 잠갔는데…….]

A가 그 말을 꺼냈을 때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나는 A와 함께 코티지에서 전력으로 도망쳤다.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A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겪은 공포 체험을 털어놓았다.

A네 삼촌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셨는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차를 몰고 곧바로 달려오셨다.



삼촌은 A에게 방금 상황을 다시 캐물은 뒤, 지역 엽우회에 소속된 친구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냥꾼 친구분은 코티지가 있는 지역에 살고 계셨는데, 법률 문제 때문에 총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당장 우리 쪽으로 달려와 주셨다.

사냥꾼 친구분과 삼촌이 짐승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코티지 문을 열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코티지 안으로 들어가 보니 녀석이 박살 낸 꽃병과 쓰러진 액자만 있었을 뿐, 방 안쪽 벽에는 녀석의 털만 조금 남아 있고 핏자국 같은 건 없었다고 한다.

삼촌은 사냥꾼 친구분에게 우리가 겪은 일을 말씀하셨지만 그다지 믿지 않는 눈치였고, 엽우회에 보고하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그대로 돌아가셨다.

이상한 동물을 봤다는 목격담 자체는 옛날부터 흔했고, 그중 대부분이 헛것을 본 걸테니 사냥꾼 친구분이 우리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삼촌은 우리가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고 뭔가 짚이는 게 있으셨는지, 그 코티지만 당분간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셨다.

그 코티지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는 웬일인지 영상 데이터만 손상되어 있어서 녀석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디오를 재생해 보니 얌전한 노크 소리와 요란하게 현관에서 날뛰는 소리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단다.



삼촌은 우리에게 [무서운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 고 사과하셨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삼촌의 경고를 무시해서 벌어진 일이니, 우리도 삼촌에게 거듭 사과하고 그대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날 이후로 별다른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남은 대학 여름방학을 평화롭게 보냈다.



그 체험으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 무렵.

A에게서 그 코티지에서 조우했던 녀석의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코티지에 나타났던 사슴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해 봤는데, 그거 미국에 있는 낫 디어라는 도시전설 같더라.]



그것은 최근 미국에서 떠도는 도시전설로, 애팔래치아 산맥에 서식하는 괴물이라고 한다.

Not Deer, 사슴이 아닌 것.

낫 디어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것의 눈을 본 순간, 이것은 사슴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걸 직감했다.] 고 증언한다.



그것은 우리가 목격했던 그 사슴 같은 것과 똑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낫 디어는 아득히 먼 미국 땅의 도시전설이고, 일본 시골 구석의 코티지와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냐고 A에게 따졌더니, [요괴도 글로벌화 시대인가 보지 뭐.] 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결국 그 사슴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데다, 노부부가 목격했다던 수상한 사람도 그 이후로는 보고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 작은 코티지만은 지금도 여전히 폐쇄된 상태다.

지금은 A네 삼촌의 코티지에 그 녀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728x90

[번역괴담][5ch괴담][1031th]산 깊은 마을

괴담 번역 2026. 6. 16. 23:53
728x90

 

신상이 밝혀지는 건 싫으니까 장소랑 시간은 감춰둔다.

실화지만 증거 내놓으라거나 하는 건 참아줘.

그냥 털어놓고 싶을 뿐이니까.



몇년 전, 일 때문에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에 몇번 오가게 되었다.

인구가 줄어들어 집도 뜨문뜨문하고, 밤에도 가로등 하나 없는데다, 휴대폰 전파도 겨우 잡히는 곳이었다.

주민센터에 마을 이름을 말한 순간 [아...] 하는 반응을 하길래, 그때부터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마을 입구에는 돌이 2개 세워져 있고, 새끼줄 같은 게 감겨 있었다.

신사에서 쓰는 금줄 같은 게.

결계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빴다.



차를 세우고 내리자, 갑자기 근처에 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이름을 대지 마라.]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싶었다.



[네? 일 때문에 온 건데요.]

[직함도 필요 없다. 이름을 말하지 마라. 여기서 이름을 대면 불려간다.]

할아버지 눈빛은 진지해서,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내 발밑을 보면서, [다시 밟고 들어와라.] 라고 말했다.

입구 지면에 작은 돌로 선이 그려져 있었는데, 거길 넘어가기 전에 신발 밑을 닦으라는 것이었다.

[더러운 걸 털어내는 건가요?]



[바깥 흙을 뭍힌 채로 들어오면 섞인다. 섞이면 돌아갈 수 없어.]

무슨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그 말대로 신발 밑을 닦고 선을 넘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이걸로 흙은 네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기분 나쁜 말이다.

뭐란 말이야, 흙이 내 거라니.



마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상이 좋았지만, 질문을 하면 공기가 얼어붙었다.

특히 옛날부터 전해지는 행사나 풍습 같은 걸 물어보면 노골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날 작업이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밤길이 위험하니 자고 가라.] 는 말을 들었다.



거절하면 묘하게 떫은 표정을 지어서, 호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머물게 된 집은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다만 벽 한 면만 널빤지가 새것이었다.



거기만 새로 덧댄 티가 노골적으로 났다.

게다가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저녁 식사 때 할머니가 말했다.



[밤에는 문을 열지 마라. 창문도 열지 마라. 밖에 나가지 마라.]

[곰인가요?]

[곰은 문을 두드리지 않아.]



할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문을 두드리는 건 곰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무척이나 집에 가고 싶어졌다.



밤에 잠들기 직전, 밖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딸랑딸랑하는 게 아니다.

불규칙하게 [딸랑... 쨍, 쨍...] 하는 식의 소리였다.



짐승을 쫓는 방울이려니 했지만, 소리가 가까웠다.

집 외벽 근처였다.

할머니가 불을 끄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소리를 내는 날인가.]

할아버지는 [입, 다물고 있어라.] 라고 말했다.

내가 [무슨 날...] 이라고 물으려 하자, 할머니는 쉿, 하고 제지했고 곧 불이 꺼졌다.



어둠 속, 밖에서 무언가가 걷는 소리가 났다.

흙 위를 걷는 소리가 아니었다.

젖은 걸레를 질질 끄는 듯한, 축축한 발소리.



[철벅... 철벅...] 하는 듯한.

그러더니 현관 앞에서 멈췄다.

[똑... 똑...] 하는, 얌전한 노크 소리.



예의 바른 노크였다.

결코 강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대답하지 마라.] 고 했고, 할아버지는 [이름을 불려도 대답하지 마라.] 고 했다.



이름? 이라고 생각한 순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줘.]

여자 목소리.



젊다고 하기보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다음 순간, 그 목소리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 마을에서 한번도 내 이름을 댄 적이 없었다.



주민센터에서도 전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이름을 다 불렀다.

등골이 오싹해진다기보다 내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는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고, 할아버지가 귓가에 대고 말했다.

[불려도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면 빌려주게 된다.]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입을.]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어머니 목소리와 똑같았다.

[A야, 열어줘. 추워.]



여기에 진짜 어머니가 있을 리가 없는데도 마음이 흔들렸다.

목소리에 온도가 느껴진다.

옛 기억을 직접 어루만지는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열어줄 뻔 했다.



그때 다시 방울 소리가 울렸고, 노크 소리가 바뀌었다.

[똑... 똑...] 하던 소리가, [드득... 드득...] 으로 변했다.

손톱으로 긁는 소리.



나무를 깎아내는 소리.

할아버지가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여는 날이다. 네가 와서 앞당겨졌어.]



[뭘 여는거에요...]

[길을.]

할머니가 [옛길.] 이라고 말했다.



그 단어만 묘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날 밤, 긁어대는 소리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조용해졌고, 새가 울 무렵에야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현관 앞 흙바닥이 파헤쳐져 있었다.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 발자국이 아니었다.



맨발 같은 자국이 겹겹이 찍혀 있었는데, 발가락 수가 많은 느낌이었다.

개수를 세어보려 하자, 할머니는 [보지 마라.] 라며 빗자루로 단숨에 지워버렸다.

그 후, 마을회관 같은 곳으로 끌려갔다.



젊은 남녀도 모여 있었지만 다들 말수가 적었다.

촌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땅에 소금을 뿌려 원을 그렸다.

그 원 안에 새끼줄을 놓게 했는데, 줄이 축축하고 무거웠다.



검붉은 얼룩도 묻어 있었다.

촌장이 [입을 다물어라.] 라고 하자, 전원이 일제히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따라 했다.



말을 꺼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위험할 정도였다.

그러더니 촌장이 수풀 뿌리 쪽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스윽.



수풀이 갈라지더니, 그곳에 길이 나타났다.

진짜 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풀이 무성하던 곳에 흙길이 한 줄기 뻗어 있었다.



일직선이라 안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변했다.

습한 흙냄새가 단숨에 짙어졌다.



흙이라기보다는 젖은 이불 같은 냄새.

길 안쪽에서 발소리.

[철벅... 철벅...]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나도 볼 수 없다.

보면 끝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발소리가 멈췄다.

바로 눈앞에서 멈췄다.

있다.



거기에 "무언가" 가 있다.

그런데도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촌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올해는 누가 닫을텐가.]

침묵.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야 그렇겠지.

닫는다니, 대체 뭐람.

촌장이 나를 보았다.



[외부인. 빌려준 입이 있구나.]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젊은 남자들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부축하는 듯한 손길이었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재워줬던 할아버지가 내게 소근거렸다.

[미안하다. 규칙이다. 열린 해에는 외부인이 필요해.]

나는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물었다.



[왜 하필 내가.]

[온 시점에서 경계를 넘었다.]

눈앞의 무언가가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척이 났다.



그리고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귓가.

어머니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렴.] 하고.



나는 울컥해서 고개를 들 뻔했다.

할머니가 내 등을 치며 [보지 마라!] 고 소리쳤고,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탁 풀렸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촌장이 내게 새끼줄 끝을 쥐게했다.

길 입구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줄을 둘러, 좌우의 돌기둥에 묶으라고 했다.

손이 떨려서 제대로 묶을 수가 없었다.



[매듭은 대충 지어도 된다. 조이는 것만큼은 틀리지 마라.]

내가 새끼줄을 두르고 있는데, 줄이 움직였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길 안쪽으로 당겨졌다.



내 몸까지 통째로 끌려가서, 발이 길 안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발바닥의 감촉이 최악이었다.

흙이 아니다.



미지근한 고기를 밟은 것처럼 물컹하고 가라앉는다.

가라앉는다기보다 얽혀든다.

발이 먹히는 기분이었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만 울릴 뿐.

뒤에 있던 젊은 남자들이 나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당겼지만, 새끼줄의 힘이 강하다.



길 안쪽에서 목소리.



[착한 아이네.]

[이쪽이야.]

[추워.]

[열어줘.]



전부 어머니 목소리 그대로였다.



촌장이 소리쳤다.

[조여라!!]

나는 반사적으로 새끼줄을 꽉 조였다.



매듭을 힘껏 당겼다.

그 순간, 길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자의 비명이 아니었다.



짐승 같은, 짓눌린 목구멍에서 나는 비명.

발밑의 "고기 같은 흙" 이 움찔하며 수축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고,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 길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손놀림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널빤지를 들고 뛰어나와 길 입구에 못질을 하고, 흙을 덮고, 수풀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마지막으로 방울을 매달았다.

너무 익숙했다.



지나치게 능숙했다.

방울이 불규칙하게 울렸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날뛰는 것처럼 요란하게.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스윽 조용해졌다.

길은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당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제지당했다.

[오늘은 안 된다. 경계가 열려 있어. 밤을 넘기고 가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자 또 방울이 울렸다.

이번엔 현관이 아니었다.

집 안, 새로 판자를 덧댔던 그 벽 쪽에서 소리가 났다.



바로 곁에서.

[쨍... 쨍...] 하고 무척 가깝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절대로 벽을 보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그런데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려줘.]

[입, 돌려줘.]



내 입안이 갑자기 미지근해졌다.

혀 위에 까끌까끌한 감촉.

모래인가 싶었는데 흙이었다.



씹으니까 자작거리며 이빨에 닿는다.

뱉어내려 해도 뱉어지지 않았다.

입이 안 열렸다.



진짜로 안 열렸다.

아침이 되자 할아버지가 나를 깨우며 말했다.

[신발 밑창을 문질러라. 돌아보지 마라. 여기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마라.]



나는 시키는 대로 입구의 돌 위에서 신발 밑창을 문지르고, 선을 넘어 나왔다.

정말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무서워서.



산길을 다 내려와 휴대폰 전파가 잡힌 순간,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괜찮니?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 라고 하셨다.



그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평범한 세계로 돌아왔구나 싶어서.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반년 정도 지난 겨울의 끝자락.

집에서 욕실 청소를 하던 중 배수구에 얽힌 쓰레기를 끄집어 낼 때였다.

손가락에 가느다란 새끼줄 섬유 같은 것이 엉겨 붙었다.



실부스러기인가? 싶어 냄새를 맡아보니, 그 냄새였다.

젖은 이불 같은 흙냄새.

그 순간, 현관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쨍... 쨍...] 

불규칙하게.

우리 집에는 방울 같은 건 달아두지 않는다.



현관으로 가보니, 문고리에 작은 방울이 묶여 있었다.

매듭법이 그 마을의 방울과 똑같았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줘.]

어머니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된다.



어머니는 본가에 계시고, 열쇠도 나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린다.

[추워.]



[흙이 말라버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문 너머가 아니다. 



방 안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 뒤에서, [드득... 드득...] 하는 소리.

손톱으로 긁는 소리. 



나무를 깎는 소리.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 목소리 "같은" 게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사용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온도가 느껴지고, 그래서 거역할 수 없게 된다.

방울은 떼어서 버렸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문고리에 달려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말하는 순간 정말로 "빌려준 입" 이 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 마을 입구에서 할아버지가 했던 말,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다.

[이걸로 흙은 네 것이다.]



아니다.

내가 흙을 가진 게 아니다.

흙이 나를 가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베개 밑이나 신발장 구석에서 축축한 흙이 나온다.

청소를 해도 계속 나온다.

그리고 방울이 울릴 때면, 가끔 속삭임이 들린다.



[올해도 열려.]

[닫아줘.]

728x90
728x90

 

직장인 2년차가 되어,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모이게 되었다.

모인 건 나와 B, C, 그리고 A.

A는 대학 시절, 가장 사이가 좋던 친구였다.



일이 바빠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라인으로는 계속 연락을 해왔기에, 오랜만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었다.

술집에 들어서고, 처음에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떠들어댔다.

[오랜만이다!]



[회사 상사가 진짜 짜증나서 말이야!]

[우리 회사, 남자친구 후보감이 하나도 없다니까!]

여자들이 모이면 나오는, 늘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A만은 어딘가 이상했다.

계속 무표정인데다, 말수도 적었다.

내가 [A, 잘 지냈니?] 라고 말을 걸었지만, A는 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응.] 하고 작게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A도 조금씩 웃게 된데다, 평범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조금 마음이 놓여, 오랜만에 넷이 만나 한잔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막차 시간이 다가와, 슬슬 모임을 정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 조만간 모이자!]

[다음은 B네 집에 가서 마시는거야!]



역으로 향하던 도중, A가 갑자기 멈춰섰다.

[...어라?]

A가 작게 속삭인다.



[왜 그래?]

내가 묻자, A는 새파래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나, 이 모임에 초대 받았었어?]



[어?]

B와 C가 마주 본다.

[무슨 소리야? A가 라인 단체방에서 일정을 잡았잖아.]



[그래그래, A가 제일 먼저 "만나자!" 라고 했었잖아?]

A는 벌벌 떨면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A가 한번도 단체방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남아있었다.

대화 이력에도 A의 발언은 하나도 없다.

애시당초, A는 그 라인 단체방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다.



[그럴수가, 잠깐 기다려...]

C는 자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B도, 나도 황급히 확인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스마트폰에는 제대로 A의 발언이 남아있었다.

[나도 갈래!]

[기대된다!]



그렇게, A가 당연히 참가했을 터인 대화 이력이.

A의 얼굴은 점점 더 새파래져간다.

[...이상해. 나... 죽었을 텐데...]



A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한순간 취했나 싶었지만,  A의 눈은 제정신 그 자체였다.

B도, C도 굳어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상해...]

A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대며, 흔들흔들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에 끌려가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우리들은 겁에 질려, 차마 A를 멈춰세울 수 없었다.

A는 그대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다음날 아침, A의 부고가 전해졌다.



A는 전날 아침, 자택인 맨션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경찰의 이야기로는, 발견된 시신의 상황으로 봤을 때는 사망 추정시각은 저녁 즈음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나 모임을 가질 무렵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분명히 A는 거기 있었다.

우리 곁에, 함께 웃으며, 떠들고, 건배를 했었다.

그때, A는 [나, 죽었을 텐데.]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얼굴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어서, 정말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A는 자신이 죽은 것을 마음 속 어딘가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평소처럼 라인에 답장을 하고, 모임에 참가한걸까?



하지만 A는 더는 없다.

라인 단체방을 봐도, A의 발언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A의 존재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단 하나, 내 스마트폰 갤러리 속에는 전날 모임에서의 사진이 남아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이서,  A 곁을 둘러싸고 찍었을 터인 사진.

하지만 A가 앉아있었을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728x90
728x90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

휴일에 직장 선배와 둘이서 휴가를 맞아, 효고현에 있는 유명한 마키즈시집에 가기로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키즈시집까지는 약 200km.



운전은 선배가 했고, 저는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장거리 운전에 점점 피곤해져서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시골길이라 뭐 하나 마실까 해도 자판기가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봐도 진행 방향에는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자판기라도 없을지 주변을 찾았는데, 앞에 내비게이션에는 표시되지 않는 편의점이 보였습니다.

산비탈 아래 자리한, 대형 체인점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듯한 이름 없는 편의점이었습니다.



어딘가 세트장처럼 값싸 보이는 가게였습니다.

우리는 그대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캔커피나 하나 사자.] 하고 자동문 앞에 섰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편의점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불은 켜져 있고 진열대에는 본 적 있는 상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어쩐지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습니다.



점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 옆에 붙어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부 처음 보는 브랜드의 음료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커피가 있길래 선배 몫과 제 몫, 두 개를 사서 차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편의점이네.]

우리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출발시켰고, 캔커피를 따서 마셨습니다.



맛없어!

물을 세 배로 탄 듯한 옅디 옅은 맛. 

도저히 마실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선배에게도 건넸지만, [뭐야, 이거. 진짜 맛없다.] 는 반응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커피를 홀더에 꽂아둔 채, 목적지인 마키즈시집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 세면대에 커피를 쏟고, 캔은 쓰레기통에 버린 뒤 마키즈시를 즐겼습니다.



돌아오는 길, 그 편의점 근처를 지나갈 무렵.

나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편의점이 있었을 건물은 검은 얼룩투성이의 더러운 폐허였습니다.



주차장은 울퉁불퉁했고 풀까지 무성했습니다.

[저거… 우리가 들어갔던 편의점 아니야!?]

선배가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왔습니다.

선배가 집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는데, 거기엔 편의점이 아닌 폐허가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폐허 입구를 제가 서성이는 모습까지 그대로 찍혀 있다고 합니다.



그날 우리가 산 캔커피가 뭐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728x90

[번역괴담][5ch괴담][1028th]공중전화 점검

괴담 번역 2025. 3. 25. 00:43
728x90

 

일을 하다 겪게 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NTT 하청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업무 중에는 공중전화의 점검 및 수리를 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공중전화 쪽 업무는 무척 편하기 때문에, 그날은 점검을 담당하게 되어 아침부터 신을 내고 있었습니다.

점검이라고는 해도 동전이나 전화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 고장 판정을 내고 수리를 하는 것인데, 매달 다른 업체가 돌아가며 점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장난 채 방치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날은 하루 동안 4곳을 천천히 돌고 사무실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공원과 아파트 앞에 있는 공중전화를 각각 점검하고, 점심을 먹은 뒤 2시간 정도 낮잠을 잤습니다.

그 후 다음 장소로 향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내비게이션을 설정했습니다.

세번째 점검 장소는 제가 살고 있는 현에서는 꽤 유명한 심령스폿인, 터널 근처의 공중전화였습니다.



저는 원래 무서운 건 딱 질색이라 영 내키지가 않았지만,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공중전화는 산 쪽에 있었기 때문에, 출발지인 편의점에서는 30분 정도 거리였습니다.

가는 동안 지나다니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마주오는 차도 없었습니다.



터널 앞 공중전화에 도착한 뒤, 점검을 위해 공중전화 박스를 여는 열쇠와 드라이버, 그리고 점검용 스마트폰을 챙겨 부스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공중전화 부스를 열려고 해도 무언가 단단히 잠겨있기라도 한 것처럼 꿈쩍도 하질 않았습니다.

부스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점검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본사 쪽에 연락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산 속이라 그런지 전파가 약해 통화가 터지질 않아,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조금 걸어가니 전파가 잡혀서, 본사 쪽에 연락해 세번째 점검 장소인 터널 공중전화 부스 문이 열리지 않으니 수리업체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 순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슬쩍 공중전화 쪽을 바라보니, 긴 머리의 여자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고, 산 속이라 안개인지 습기인지가 끼어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전화 중이었지만 그만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본사 쪽에서는 수리업체에 전달해야 하니 현장 사진을 몇장 찍어 보내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무서워서 거절할까 싶기도 했지만, 곧이곧대로 이야기를 해봐야 믿어주지도 않을 것 같아 그냥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다시 공중전화 쪽을 바라보니 아까 있던 여자는 사라지고 없어서, 내가 잘못 봤나 싶었습니다.



공중전화 쪽으로 다가가서 바깥 사진을 몇장 찍고, 문이 열리지 않는 모습을 찍으려 부스 문에 손을 댔는데, 아무 문제 없이 문이 쓱 열렸습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문이 열려버렸으니 점검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동전을 넣고 수화기를 들어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봤습니다.



문제 없이 신호가 갔습니다.

동전 쪽은 OK.

그 다음 전화카드를 넣어보려 했는데, 기계로 카드가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 공중전화 내부의 전력장치가 고장났거나 카드 삽입부가 고장일 수 있어, 차에서 그 두 부품을 가지고 와 교체해 보기로 했습니다.

대부분 카드 삽입부 쪽이 문제였던 경험이 있기에, 우선 삽입부 쪽을 교체해봤습니다.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끼우니 전화카드가 정상적으로 들어가고 전화도 잘 갔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점검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 네번째 점검 장소로 향했습니다.

네번째 점검도 무사히 끝났고, 시간이 꽤 남아 나쁜 줄은 알면서도 근처 공원에서 또 낮잠을 잤습니다.

오후 4시 반에 알람이 울려 회사로 돌아갔죠.



회사에 돌아오자마자 세번째 공중전화에서 교체한 카드 삽입구를 상자에 담은 채 정비 담당자에게 전달했습니다.

2층 사무실에서 차량 사용일지를 작성한 뒤, 선배와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정비 담당자에게 전화가 오더니, 부장이 1층에 가서 확인 좀 해보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1층으로 가서 정비 담당자 쪽으로 갔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냈습니다.

[아까 네가 가져온 전화카드 삽입구를 확인해 봤는데, 모터 부분이...]

그러면서 내게 삽입구를 보여주었습니다.



삽입구 모터에는 긴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엉켜있었습니다.

전화카드가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엉킨 머리카락 때문에 모터가 회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순간 공중전화 부스 안에 있던 긴 머리의 여자가 떠올라, 등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정비 담당자에게는 교체한 장소만을 전달하고, 그날은 그대로 퇴근했습니다.

며칠 후 그날 찍었던 사진을 다시 확인해 봤지만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그 터널에서 무슨 사건 같은 건 없었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조사도 해봤지만, 딱히 짚이는 바는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후로 딱히 이상한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꺼름칙해지는 체험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