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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23th]신입 찾기

괴담 번역 2024. 8. 1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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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올 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다.

몇십년 전, 할아버지가 도시에 있는 대학에 막 입학해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는 할아버지에게 신신당부하셨다고 한다.



[도시에는 젊은이를 망치는 유혹이 잔뜩 있단다. 게다가 너는 시골에서만 살던 신입생이니 속여먹으려는 사람투성이일 거야. 나쁜 친구들이 놀자고 꾀더라도 결코 넘어가서는 안된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고 며칠 뒤, 대학 입학식이 있던 날 밤.

다른 방 선배가 [오늘은 신입생 환영회를 할테니, 밤 11시에 우리 방으로 오도록 해. 술도 잔뜩 마시자고.] 라며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당시 할아버지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 18살, 미성년자였다.

증조할아버지의 당부도 마음에 걸려, 혹시나 선배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쭈뼛거리면서도 권유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배는 [그래도 하룻밤 정도는 괜찮잖아. 기숙사 사람들이랑도 친해질 기회라고.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셔도 돼. 먹을 것도 잔뜩 있다니까.] 라며 권유를 멈추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 라고 거절했다.

선배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래? 그렇구나... 음...] 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섰다.

환영회날 밤, 할아버지는 성실하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편 선배네 방에서는 모두가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내심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정이 되어갈 무렵, 한 10명쯤 되는 선배들이 [아무리 그래도 너도 한잔 같이 마시자니까!] 라며 방으로 쳐들어왔다.



좁은 방에 사람이 꽉 들어차서 불편했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을 챙겨주러 온 것에 기뻐 같이 떠들며 놀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자정이 지났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사이사이, 가끔씩 [쾅!] 하고 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가 방을 드나드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규칙적으로, [쾅! 쾅!] 하고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게다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선배에게 [누가 문을 열었다 닫는 거 같은 소리가 나네요.] 하고 말을 붙였다.

[뭐, 그렇지. 다른 방에서도 다들 마시고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쓸 거 없어.]

선배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도 [쾅! 쾅!] 하고 문을 여닫는 소리는 점점 커지며,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저기, 계속 다가오는데요!] 하고 선배한테 달라붙었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래도. 자, 이러면 안 들리지?]

선배는 침대에서 이불을 가져와 할아버지를 덮어버렸다.



할아버지는 어쩐지 기분 나쁘고 무서워서 이불을 꼭 뒤집어 쓴 채 식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이윽고, 선배가 이불을 젖히고 할아버지를 끌어냈다.

[아이고, 올해도 끝났네. 이제 맘껏 놀아.]



선배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이 기숙사에는 "신입 찾기" 라고 불리는 무언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1년에 한번, 4월 입학식날 밤.



기숙사 각 방의 문을 열고서는 안에 신입생이 있는지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문이 차례차례 열렸다 닫힐 뿐이다.

문을 잠그더라도 덜컹 열리고, 다시 문이 닫히고나서 확인해보면 그대로 잠겨있다.



단지 그것 뿐이고 딱히 해는 없는데다, 정말 신입생을 찾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걸 맨정신에 혼자서 보기라도 하면 너무 무서울테니, 다같이 모여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문이 열릴 때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했더니 술을 마시고는 정체를 확인하곘다며 방에서 나간 신입생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복도에서 모습이 사라진 뒤,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단 "신입 찾기" 가 다 지나간 후에야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그 다음해부터는 할아버지도 신입생을 데려와 술판을 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제 여든이 넘으셨지만, 그 기숙사에서 같이 지냈던 동료들과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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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동안 번역한 괴담을 유튜브 등 타 플랫폼에서 낭독하여 컨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선의로, 괴담을 다루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대부분 흔쾌히 허락을 했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괴담을 컨텐츠화 할 때는 오디오 쪽으로 다루는 데 관심이 있어서 좀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면 하기도 했고, 직접 오디오 괴담 제작을 잠시 하기도 했었죠.
세월이 흐르다보니까 블로그 관리에 있어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하는 것도 있고, 허락만 해놓고 이야기가 떠도는 것에 대한 관리가 안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10여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연락하며 여러가지 많은 도움도 주시고 함께 작업을 이어오신 쌈무이님 작업 쪽 정도만 남겨두고 싶네요.
현 시점 이후로는 유튜브 컨텐츠에 있어서 본 블로그의 번역괴담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자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께 너른 양해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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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좀 무서운 일이 있었다.

이제 좀 진정되어 글을 남겨본다.

나는 건강을 위해 매일 밤 걷고 있는데, 운동 코스 도중에 지하도가 있다.



철도 밑을 지나가는 길로, 높이는 2m, 길이는 10m 정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지만, 전등이 많아 밝은 덕에 그리 무섭지는 않다.

그날도 평소처럼 지하도를 지나가려 하는데, 출구 근처에 누군가 있는게 보였다.



방금도 말했지만, 그 지하도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어서 호기심에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멈춰 서 있었다.

벽을 바라본채로.



당황해서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한동안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도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 터널처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마 그 사람이 무언가 중얼거린게 울려서 들린 것이겠지.

그러더니 그 사람은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서서는 무언가 중얼중얼 되뇌이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겁이 나서 등을 돌려 달아났다.



그 사람과 나는 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달려서 도망치면 금방 떨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얼거리는 소리는 멀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크게 들려왔다.

달리면서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들려온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소리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아...!] 라던가,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집까지 어떻게든 전력질주해서 도망쳤다.

집 현관문을 열 무렵에는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황급히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한숨 돌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도대체 그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뭐, 어찌 됐든 도망쳤으니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거실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 사람이 벽을 향해 서 있었다.

거실 벽에 이마를 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 되뇌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다시 도망쳤다.

그리고 그대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이상한 것한테 쫓기고 있어. 무서워 죽을 거 같아.]



벌벌 떨면서 편의점까지 온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겁에 질린 내 모습을 보고 믿어주었다.

나는 이미 귀신이라고 어느정도 믿고 있었지만, 친구는 스토커나 미친 사람일 가능성도 있으니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게 더 현실적일테니, 나는 경찰에 연락하기로 했다.



이상한 사람에게 쫓겨서 도망쳤는데, 집에 와보니 그 사람이 있었다고 신고하자 경찰이 와주었다.

우리는 경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당분간 인근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친구는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나는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늦은 밤, 여러모로 피곤했을텐데도 잠에서 깨고 말았다.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잘 생각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친구가 자고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싶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친구는 서 있었다.

깜깜한 방 안, 벽에 이마를 대고서.



무언가 중얼중얼 되뇌이고 있다.

나는 아까 지하도에서 마주쳤던 사람이 떠올라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결국 친구를 내버려두고 다시 밖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치는 와중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마음 속에서 거듭했다.

다시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숨이 차고 무릎이 벌벌 떨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아, 주차장 콘크리트 블록에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사이, 친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나자, 친구를 버리고 왔다는 생각에 무서웠지만 집에 돌아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 내내 만약 이렇게 됐으면 어떻게 하나, 저렇게 됐으면 어떻게 하나, 온갖 생각에 마음을 졸였다.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은 조용했다.

작게 친구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큰맘먹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친구는 자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볍게 코를 골면서.

나는 마음이 놓인 나머지 눈물이 났다.

아까 있었던 일도 혹시 그냥 내가 잠결에 착각한 건 아니었나 싶었다.



안심이 되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나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친구는 이미 일어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좋은 아침.] 이라고 말을 건네자,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 속에서 친구는 콘크리트 같은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이라던가, [빨리!] 라던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옆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그 누군가를 잡기 위해 쫓아가는 내용의 꿈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어제 그런 일을 들어서 그런가?] 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친구에게는 그저 이상한 사람이 쫓아왔다고만 말했을 뿐, 벽을 향해 이마를 대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안했으니까.

전날밤 있었던 일과 친구의 꿈, 그리고 밤 중에 벽에 이마를 대고 있던 친구의 모습...

너무나도 일치했다.



그 후 아직까지 친구에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유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얼굴로 친구를 대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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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아래에는 - 카지이 모토지로

잡동사니 2023. 4. 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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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다!
이것은 믿어도 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나 훌륭하게 핀다니 믿을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저 아름다움을 믿을 수 없기에, 요 이삼일간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드디어 깨달을 때가 왔다.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다. 이것은 믿어도 되는 사실이다.

어째서 내가 매일밤 집에 돌아가는 길, 내 방에 있는 수많은 도구 중, 고르고 골라 조그맣고 얇은 것, 안전 면도기의 면도날 같은 것이, 천리안처럼 머릿 속에 떠오르는가――너는 그걸 알 수 없다고 했지만――그리고 나에게도 역시나 알 수 없는 일이지만――그것도 이것도 역시 같은 일임에 틀림없다.

어떤 나무의 꽃이라도, 이른바 만개한 상태에 달하면, 주변 공기에 일종의 신비한 분위기를 퍼트리게 된다. 그것은 잘 돌던 팽이가 완전한 정지에 이르듯, 또한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여 어떠한 환각을 동반하듯, 불타오르는 생식의 환각을 불러 일으키는 후광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밖에 없는, 신비롭고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어제, 그저께, 내 마음을 몹시 우울하게 만든 것도 그것이었다. 나에게는 그 아름다움이 어쩐지 믿을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반대로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고, 공허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너, 이 만발하여 화려하게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에, 하나하나 시체가 묻혀있다고 상상해 보도록 해라. 무엇이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했는지 너도 납득할 수 있겠지.
말과 같은 시체, 개와 고양이 같은 시체, 그리고 사람 같은 시체, 시체는 모두 부패하여 벌레가 꼬이고, 참을 수 없는 냄새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수정과 같은 액체를 질질질 흘려댄다. 벚나무의 뿌리는 탐욕스러운 문어처럼, 그것을 끌어안고, 말미잘의 촉수 같은 모근을 끌어모아 그 액체를 빨아들인다.
무엇이 저런 꽃잎을 만들고, 무엇이 저런 꽃술을 만드는지, 나는 모근이 빨아들인 수정 같은 액체가, 조용히 행렬을 지어, 관다발 속을 꿈처럼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 듯 하다.


――너는 무얼 그리 괴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아름다운 투시술이잖아. 나는 지금 드디어 눈동자에 의지해 벚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제, 그저께, 나를 불안하게 만들던 신비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삼일전, 나는, 여기 계곡을 따라 내려가, 돌 위를 따라 걷고 있었다.  물보라 속에서는 여기저기서 명주잠자리가 아프로디테처럼 태어나, 계곡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거기서 아름다운 결혼을 한다. 한동안 걷자니, 나는 이상한 것과 마주쳤다. 그것은 계곡물이 말라붙은 모래톱에, 작은 물웅덩이가 남아있는, 그 물 속이었다. 뜻밖에 석유를 흘린 것 같은 광채가, 수면에 떠올라 있었다. 너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수만마리라고 셀 수도 없는, 명주잠자리의 시체였다. 틈 없이 수면을 메우고 있는, 그들의 겹치고 겹친 날개가, 빛을 반사해 기름같은 광채를 흘리고 있었다. 그곳이, 산란을 마친 그들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무덤을 파헤치며 시체를 탐하는 변태와 같은 잔인한 기쁨을 나는 맛보았다. 이 계곡에는 무엇 하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없다. 꾀꼬리나 박새도, 하얀 햇살을 받아 푸르게 피어오르는 나무의 새싹도, 그저 그것만으로는 흐리멍텅한 심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비극이 필요하다. 그 평형이 있음으로, 그제야 나의 심상은 명확해져 간다. 나의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에 목말라 있다. 나의 마음에 우울이 완성될 때에만, 나의 마음은 잦아든다.


――너는 겨드랑이 밑을 닦고 있구나. 식은땀이 나는건가.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무엇도 그것을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끈적끈적 말라붙은 정액 같다고 생각해 보렴. 그렇게 우리들의 우울은 완성되는거다.
아아,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다!
도대체 어디서 떠올라 온 공상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시체가, 지금은 마치 벚나무와 하나가 되어,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저 벚나무 아래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권리로, 꽃놀이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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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에 코우군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코우군은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타입이었지만, 혼자 노는 건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나와도 딱히 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교실에서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느 여름날 하굣길.

수풀 옆을 지나가는데, 검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싶어 자세히 보니, 그것은 책가방이었다.



누군가 있었다.

뭘 하는건가 싶어 다가가 보니, 책가방을 메고 있는 건 코우군이었다.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어?]



코우군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별 거 아니야. 개구리 가지고 놀고 있는 것 뿐.]

[개구리를 좋아하는구나.]



수풀 사이로 흐르는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은 채, 코우군은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그래. 개구리를 이렇게 하는 게 즐거워.]

왼손으로 참개구리 한마리를 잡아들더니 내게 보여줬다.



[어! 뭐야, 그거!]

코우군은 참개구리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참개구리의 왼쪽 다리는, 허벅지 부근에서 사라져 있었다.



[코우군이 자른거야? 그거...]

코우군의 오른손에는 미술 공작 시간 때 쓰던 커터칼이 들려 있었다.

칼날에는 붉은 피가 살짝 묻어있었다.



[맞아. 여기 있는 개구리의 왼쪽 다리를 모두 잘랐어.]

그렇게 말한 뒤 코우군은 손에 잡고 있던 참개구리를 놓아주고, 근처에서 뛰어다니는 새 개구리를 잡으려 했다.

놓아준 참개구리는 비틀비틀 기어가다, 개울로 들어가 그대로 흘러갔다.



어제, 3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동네 슈퍼에 들렀다가 어릴 적 친구인 다이군과 우연히 만났다.

나는 코우군이 문득 떠올라,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우군은 내가 목격하기 전, 훨씬 어릴 때부터 개구리 왼쪽 다리를 자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녀석, 개중에서도 올챙이가 발이 자라나기 직전에 잘라내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했었지.]

잘 잘라내면 상처가 아물어, 마치 선천적으로 왼쪽 다리가 없는 개구리처럼 된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은 그런 짓 안하지?]



우리도 이제 20대 후반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그런 짓을 하지 않을거라 믿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아, 그 녀석 죽었어. 오토바이 사고였지. 뭐랄까, 비 오는 날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는데, 어떻게 부딪힌건지 왼쪽 다리가 허벅지에서 잘려나가는 바람에 출혈과다로 살릴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



다이군의 말에 충격을 받아,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도 다들 개구리의 저주 아니냐는 소리를 하더라. 코로나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벌써 한 4년 됐나? 너도 시간 있으면 코우네 집에 가서 향이라도 피우고 와라.]
다이군은 그 말을 남기고, 카트를 끌어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주라던가 액운이라던가 그런 건 모르지만, 그저 인과응보라는 단어가 머릿 속을 맴돌았다.

무엇이 코우군에게 개구리 왼쪽 다리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날 수풀 속에서 다리가 잘려나간 개구를 보며 행복해하던 그의 미소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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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20th]소의 무덤

괴담 번역 2023. 3. 1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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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몇년 전 개축을 통해 지금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 됐지만, 내가 다닐 무렵만 해도 곳곳이 낡아빠진 오래된 학교였다.

역사만큼은 현 내에서도 손꼽히는 이 학교에는, 오래 전부터 남몰래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괴담이 있었다.

통칭 "소의 무덤" 이라는 이야기.



제목만 들으면 오컬트 판에서도 유명했던 "소의 목" 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

내가 오컬트 판에 들어오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지만, 우리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소의 무덤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의 목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스타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기하게 일치했다.



하지만 어느 선배는 [안보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 학생운동과 관련된 이야기 같아.] 라고 말하고, 우리 학교를 나온 10살 많은 사촌형은 [타이쇼 후기에서 쇼와 초기 시절 이야기라던데.] 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제목도 소의 무덤(墓, はか / 하카) 이라는 설과 소의 바보(バカ / 바카) 라는 설이 있어서, 그야말로 정체불명의 괴담이라 할 수 있다.


[소의 무덤 전설을 자세히 조사해 보자.]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넨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인 A였다.

막 하복으로 갈아입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A는 나와 달리 우등생이라,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오칼트나 판타지 쪽에 상당히 심취해 있어서, 이 이야기도 원래는 A가 정년퇴직을 앞둔 노교사로부터 듣고 온 게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소의 무덤 (혹은 바보?) 전설 에 대한 조사는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

A는 도서관에서 지역판 신문을 뒤지고, 졸업한 동문을 찾아가기도 하고 대학 도서관까지 들락거렸다.



그야말로 수많은 자료를 쉴 새 없이 조사했던 것이다.

나도 A의 조사에 몇번 동행한 적이 있는데, 그의 열의는 어딘가 이상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A는 그때 이미 무언가에 홀려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A는 학원에서 여름방학 특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향토사를 찾아보는 등, 여전히 소의 무덤에 관해 지치지도 않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A와는 다른 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것도 있고, 여름방학 직전부터 같은 학원을 다니는 여자아이랑 친해지면서 불순한 목적이지만 학원에 신경을 더 쏟고 있었다.



8월 초순, 나와 A가 속해있던 동아리의 여름 합숙이 열렸다.

여름 합숙이라고는 해도 동아리 활동 끝나고 부원들끼리 학교에 있는 숙박실에서 하루 묵는 것 뿐이었지만.

그날 밤, 오랜만에 A를 만난 나는 그동안의 조사 상황에 대해 물었다.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있던 건 진짜 같아.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공개되지 않은 또다른 사건이 과거에 있었다는 얘기를 어느 나이 많은 졸업생한테 들었어. 아무래도 그 이야기야말로 소의 무덤 사건의 숨겨진 진실과 닿아 있는 것 같아.]

A는 분명히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을 지금 찾고 있어.]



그 후, 관례대로 한밤 중까지 동아리원들이 모여 이런저런 괴담을 늘어놓던 도중, 한 여자부원이 [콧쿠리상 할래?] 라는 제안을 했다.

A는 거기 찬성해서, 말을 꺼낸 여자아이와 함께 10엔 동전에 손가락을 올렸다.

나는 오컬트는 좋아하지만 쫄보였기에, 다른 부원들과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실내의 공기가 묘하게 축축하다고 할까, 끈적끈적하고 점기가 있는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영감이 없는 나조차도 [아, 이건 좀 위험한 거 같은데.] 라고 느낀 순간, 콧쿠리상을 하고 있던 여자아이와 A의 손가락 밑에 있던 10엔 동전이,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싫어... 뭐야, 이거...]



주변을 둘러싼 나와 다른 동아리 부원들의 안색도 나빴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며 멈추지 않는 10엔 동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여자아이와 A의 안색은 파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할 지경이었다.

방 한구석에 누군지 모를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지만, 몸이 벌벌 떨려서 그 쪽을 볼 용기도 없었다.

다른 여자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너희들 뭐하는거야!]

갑자기 큰 소리가 나더니, 전 부장이자 작년 졸업생인 B 선배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B 선배는 여자아이와 A의 뺨을 때리더니, 10엔 동전을 낚아채 모기장을 열고 밖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콧쿠리상 할 때 쓴 종이를 들고 합숙소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종이를 구겨서 화장실 변기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농반진반이래도 이런 건 하지 말라고, 너희들.]



B 선배는 꽤나 영감이 강해서, 자던 도중 기분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져서 깨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한 사람이다.

[이제 너희들 좀 얌전히 자라.]



A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지만, 어물어물 일어나 남자 숙소로 가려고 했다.

[아, 그리고 말인데.]

그 뒷모습을 향해 B 선배는 말을 건넸다.



[나쁜 말은 안 할테니까, 적당히 해둬라.]

A는 아무 대답도 없이 나갔다.

결국 제대로 잠도 못 잔채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우리는 해산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2주 정도가 지나, 여름방학도 절반 정도 남은 어느날 밤, A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소의 무덤 사건 말인데.]

[너, 아직도 그거 조사하고 있었어? B 선배도 말했지만 적당히 해두라고.]



[거의 알 거 같아. 또 하나의 이야기의 진상을 알게된 여자한테만 저주가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더라.]

[여자한테만?]

[그러니까 우리는 괜찮아. 그래서 학생운동 시절의 이야기를 자세히 안다는 사람을 내일 만나기로 했어. 모레 동아리 활동 때 다 들려줄테니까, 기대하라구.]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 날, 결국 A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해서 밤에 A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몇번을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A와 연락이 닿지 않은 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A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A네 집은 창문이 모두 닫힌 채, 현관 신문꽂이에는 신문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물론 초인종을 눌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점점 커지는 막연한 불안감만 안은 채, 그 여름방학이 막을 내렸다.

2학기가 되어도 A의 모습은 학교에서 찾을 수 없었다.

A한테는 1학년이던 여동생이 있었기에 1학년 후배에게 물어봤지만, 그 여동생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한 후배 여자아이에게 소문을 듣게 되었다.

A의 여동생이 여름방학 때 갑자기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매우 밝고 활기찬데다, 친구들 중 누구도 그런 낌새는 느끼치 못했는데, 갑자기 자기 방에서 칼로 목을 그었다고 한다.



학교에는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그대로 처리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학의 이유에 대해서는 결코 말해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



아직도 A의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는 채다.

결국 나는 A에게 "소의 무덤 사건" 의 진상을 듣지 못했다.

아무도 내용을 모르는 가장 무서운 괴담이라는 점에서도, "소의 목" 과는 희미한 공통점이 나타나지만...



다만 아직도 신경 쓰이는 것은, A가 "소의 무덤 사건" 에게 대해 조사하며 적은 노트를 2권 가량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조사 기록을 A의 여동생이 읽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면 갑작스러운 그녀의 자살시도를 설명할 수 없는데...



나중에 B 선배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B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 그날 밤 콧쿠리상을 하기 전부터 뭔가 안 좋은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었어. 그림자가 진하다고 할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혼을 빼앗긴 것은 예감이 들었지. 나는 그게 신경 쓰였던 거야. 아마 그건 원념이 아니었을까.]

A군, 아직 네가 그 조사 기록 노트를 가지고 있다면 하루빨리 불태워 버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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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대부분 어머니에게 들은 소문이라,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장례식 자체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 무사히 끝났다.



철야가 끝나자 모였던 친척들도 다들 돌아가고, 어머니와 두 삼촌만 남아 술에 취한 채 조의금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고 있던 숙모가 다가왔다.

[여보, 참배를 하고 싶다는 분이 왔는데...]



상당히 취해있던 어머니와 삼촌들은 이상하다고 여겨, 혹시 참배를 하는 척 조의금을 훔치러 온 사람은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동요하고 있었으리라.

모처럼 찾아와 준 사람인데,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을테고.



조의금도 다 꺼냈겠다, 유사시에는 삼촌들 둘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거라 낙관적으로 생각해, 그 남자를 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물어봤지만, 남자의 모습은 확실치 않다고 한다.

어쨌거나 남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중년인 것 같기도 하고, 노인인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옷차림도 올 때와 갈 때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남자의 몸에서 생선 비린내 같은 게 났던 점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웃고 있는데도 어쩐지 기분 나쁘고 섬뜩했어.] 라고 말했다.

남자는 불단에 들어서자마자, [향을 끄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묘한 말을 꺼냈다.

무례한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껏 찾아온 참배객이니만큼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는 [저와 고인 둘만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상주를 물리는 무례한 부탁이었지만, 향도 다 치웠고 조의금도 없는데다 딱히 불심이 깊은 집안도 아니라, 남자가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장지문을 닫고 옆방에서 상황을 살피는데, 경을 읽는 기색도 없다.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생각에, 유체에 해코지라도 하는건 아닌가 싶어 슬쩍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자는 할아버지의 얼굴 코끝에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대고, 빙그레 웃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그 상태로 할아버지를 만지려는 것 같았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결코 유체를 만지려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동안 보고 있자니, 남자의 중얼거림이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남자는 그렇게 분명히 되뇌이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삼촌들은 갑자기 겁이 나, 장지문을 조심스레 닫고 옆방에서 한마음이 되어 경을 읊었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쾅!] 하고 장지문이 열렸다.

남자는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돌아갔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혹시 할아버지에게 해코지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 관을 확인했다.



관 바깥쪽에는 무수한 발톱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짐승 털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발톱자국은 커녕, 짐승의 털 한 올도 묻어있지 않았다고 한다.



안도감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어머니와 삼촌들은 급히 청소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스님이 찾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스님은 [짐승 냄새가 나는구려. 만약을 대비해 돌아가신 분 방에 향을 피워두길 잘했소.] 라고 말했다.



어제 일이 현실이었구나 싶어,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나는 그런 짓을 하는 건 필시 여우일거라 여겨,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바보야, 괜찮아. 여우님은 그런 나쁜 짓은 하지 않아. 우리 집에서는 모시지 않지만, 여우님을 나쁘게 말해서는 안된단다.] 라며 나를 꾸짖었다.



[그럼 뭔데?] 라고 되묻자, 어머니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그날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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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109th]뉴욕 지하철

실화 괴담 2023. 3. 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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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jh5967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는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괴담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사람이 하는 말 치곤 웃긴 이야기지만, 저는 평소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아마 어느 순간 괴담에서 귀신으로 나오는 존재는 억울한 일로 원한을 품게 된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걸 깨달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부조리를 당하다 자살한 병사의 귀신이나, 성적을 비관하다 결국 자살한 학생의 귀신은 수없이 많지만, 재벌집 귀신이나 국회의원 귀신 얘기는 들어본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거기다가 귀신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지만,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하는 등 타인의 악의로 인한 고통을 겪은 경험은 있다보니 아마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된 것 같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러한 제 가치관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경험 중 하나입니다.



때는 약 3개월 전, 제가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혹시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뉴욕시는 크게 맨하튼, 브루클린, 퀸스, 그리고 브롱스 총 4개의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보통 사람들이 뉴욕하면 생각하는 곳은 맨하튼이죠.

저는 맨하튼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맨하튼의 월세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서 맨하튼이 아닌 퀸즈에 친구와 집을 구해 살고 있었습니다.

퀸즈라고는 해도 맨하튼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저희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약 30~40분 정도 거리였기에 통학하는 게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가지 불편했던 점은, 아마 마지막 학기여서 그랬을까요.

제가 듣던 수업 중 반 이상이 밤이 돼서야 끝이 나는 수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이라곤 해도 오후 9시 즈음, 한국이라면 돌아다니기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뉴욕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치안이 좋지 않아 조심스럽게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요새 뉴욕의 치안은 과거에 비하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고, 저도 밤에 친구들과 같이 놀러다닌 적도 많았지만, 진짜 문제는 지하철이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뉴욕 지하철은 더럽고 냄새나기로 유명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스크린 도어도 없어 위험하고, 시궁쥐가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노숙자들입니다. 

뉴욕 지하철은 한국의 1호선 빌런들은 우습게 보일만큼 노숙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냥 조용히 앉아있는 노숙자들도 있지만, 지하철 자리 한 열 전체를 차지하고 누워서 자는 사람은 물론이고, 노상방뇨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끽해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정도인 한국 노숙자들과는 달리, 이곳의 노숙자들은 마약에 중독되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미국 특유의 의료제도 덕에 치료를 받지 못해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 역시도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지하철로 통학을 하며 이런 일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무서웠던 일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수업을 마치고 혼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타는 역과 내리는 역은 둘 다 출입구가 플랫폼 양 끝에 위치해 있는 형태였습니다. 

쉽게 말해 지하철 맨 앞 열차쪽, 그리고 맨 뒷쪽 열차쪽에 출입구가 있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서 가까운 쪽의 출입구는 남행열차 기준으로 맨 뒷칸 열차쪽에 위치해 있었지만, 학교가 있는 역의 출입구는 맨 앞칸쪽으로 나가야 했기에, 항상 지하철 양쪽 끝으로 오고 가곤 해야 했습니다.



평소와 같이 전철 플랫폼에 내려가, 반대쪽 방향 맨 끝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플랫폼 반대편 끝에, 어느 한 노숙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타 노숙자와 다를 바 없이 꾀죄죄한 옷차림에, 면도는 하지 못한 듯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숙자들은 먼저 눈을 마주치거나 다가가지 않는 이상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기에, 저는 평소대로 그 노숙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시선을 다른곳에 두면서,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계속 시선 한켠으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몇달 전, 한 아시아인 여자가 노숙인에 의해 선로에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기에 평소에도 조금은 경계를 하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문득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습니다. 



다른 노숙자들과는 달리, 그 노숙자는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 노숙자들이랑 눈을 마주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날처럼 그렇게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노숙자와의 조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플랫폼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수업에 지쳐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그냥 노숙자가 있던 플랫폼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플랫폼 반대편으로 계속 움직이니, 점차 노숙자와 거리가 가까워져 어느덧 그 노숙자와는 한 3m 정도 거리만을 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노숙자는 저를 계속 쳐다보곤 있었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을 하진 않았기에 그냥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차가 오기까진 2분 정도가 남았기에, 노숙자로부터 시선을 돌려 핸드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에어팟을 끼고 있었기에 주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문득 신경이 쓰여 고개를 노숙자 쪽으로 돌리자, 그 노숙자가 빠른 속도로 저를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그 노숙자가 저를 선로로 떨어뜨리기 위해 밀려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순간 몇달 전 살해당한 아시아인 여자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저도 이렇게 죽나 싶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부모님 생각과 오만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노숙자는 저를 밀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안이 벙벙해 있자, 그 노숙자는 마치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는 듯 누런 이빨을 보이며 기분 나쁠 정도로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툭툭 치며 농담이었다는 듯 뭐라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순간 맞장구를 치며 웃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웃음을 짜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아마 마약이나 조현병 등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고,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남자가 저한테 뛰어든 후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마치 영겁의 시간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 일은 제가 여태까지 겪은 일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목숨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정말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타인의 악의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실제로 겪고나니 너무나도 오싹해졌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존재 여부가 불분명한 귀신과는 달리, 마약에 취해있거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환각을 보는 노숙자는 흔하디 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언제든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 

원한을 품고 저주하는 귀신도 당연히 무섭지만, 저에게는 이유도 없이 제게 달려드는 노숙자가 더 실질적인 위험이자 공포의 존재였습니다.

새삼 느끼지만, 저는 역시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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