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서 일하던 시절 이야기다.
집을 팔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물건도 확인할 겸 직접 찾아갔다.
현관 앞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정원도 잡초투성이라 한눈에 봐도 사람 손 닿지 않는 폐가 같은 모양새였다.
초인종을 누르다 문득 시선을 돌리니, 마당에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아이는 급히 달아났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 다를 게 없었다.
여기저기 옷가지와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고, 부엌에는 술병이 굴러다닌다.
그런 풍경 와중, 창가에 놓인 새빨간 책가방과 노란 모자만은 오히려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집주인인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로, 목욕도 한참을 안했는지 지독한 체취와 술냄새를 펄펄 풍기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아내가 도망을 쳤는지, 아내에 대한 푸념이 대부분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각 방 상태를 확인하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발을 옮겼다.
2층에서 아까 그 여자아이가 나를 내려다봤다.
[아빠, 괜찮았어?]
뭐가 괜찮냐고 물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안심한 듯, [다행이다. 아빠가 기운 없어서 걱정했어.] 라며 활짝 웃었다.
[방 좀 보여줄 수 있니?] 라고 묻자,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복도를 후다닥 달려가더니,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2층으로 올라가 여자아이가 들어간 듯한 방으로 향했다.
거기는 다른 방과는 달리, 다른 여자아이들 방처럼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무리 저런 아버지라도, 자기 딸 방만큼은 더럽히지 않는구나 싶어 묘하게 감탄했다.
자세히 보니 그 방과 연결된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를 위한 방 같이 보였다.
아버지가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건가 싶어 의아해진 나는, 여자아이에게 물어보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다른 방으로 가버린 것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2층을 대충 돌아보고, 나는 다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러갔다.
문득 생각나서, [아이는 두 명인가요?] 하고 물었다.
[아, 어린 것은 아내가 데리고 갔습니다. 큰 아이 위패도 가져가버려서, 저한테는 이게 위패 대신입니다.]
그러면서 창가에 놓인 새빨간 책가방을 가리켰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새로 사 놓은 책가방 한번 메어보지 못하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단다.
아내는 정신에 문제가 생겨 어린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떠났고, 남자는 그저 술로 속을 달래고 있더란다.
아버지가 걱정되서 딸이 성불도 못하고 있잖아요, 라는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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