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후 2개월이던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보다 다섯살 많은 누나와 나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내가 4살 되던 해에 재혼을 하셨다.
새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병적으로 혐오해, 낙서 하나 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림 그리는 걸 싫어하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나 누나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그린 그림을 가져오면, 그걸 스스로 찢고 태우게 시킬 정도였다.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그림책 같은 것도 우리 집에서는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다.
새아버지는 결코 폭력을 휘두르는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나가 중학교 2학년 때, 지역 그림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자 반년 가량 누나를 완전히 무시하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
누나는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자 아버지와 누나 사이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누나가 학교 만화 동아리에서 만든 회지나 몰래 만든 동인지를, 아버지가 누나 없을 때 방을 뒤져 찾아낸다.
그리고는 누나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 스스로 욕하게 시키고, 자기 손으로 찢고 태우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몇번이고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림 따위는 제대로 된 인간이 그리는 게 아니야. 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간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누나는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지만, 당연히 아버지가 허락할리 없었다.
결국 어머니가 몰래 삼촌에게 상담을 해, 아버지에게는 일반 대학에 다닌다고 속이고, 누나를 삼촌댁에 머물게하고 미대에 보내줬다.
하지만 우연히 숙모가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게 아버지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격분하더니 그 자리로 주민센터를 찾아가, 누나의 사망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게 수리되는 바람에, 나중에 큰 소란이 일어났고 결국 누나는 미대를 자퇴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누나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그 사건으로부터 몇년 후, 누나는 나와 두 동생에게만 말한 뒤 결혼해 집을 나왔다.
나와 두 동생은 누나의 조언도 있고해서, 집에서는 아버지 뜻대로 따랐다.
근래 들어 몸상태가 영 좋지 않은 탓인지, 아버지도 과거처럼 방을 뒤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에, 나는 독립해 집을 얻을 때까지 혼자 조용히 숨어서 그림을 그릴 요량이었다.
그리고 몇년 전, 아버지는 말기암 진단을 받고 반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신고 사건 이후 단 한번도 집을 찾지 않았던 누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장례식에는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십여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장례식 내내 계속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지만,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슬픈 모양이구나, 하고 나도 두 동생도 생각했다.
장례식이 순조롭게 끝나, 각자 헤어지기 전날 밤, 누나가 나를 불러 누나네 차에 올라탔다.
누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너한테만 좋은 걸 보여줄게!] 라며 차 안에 있던 큰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납으로 된 인형이 수백개 들어있었다.
거기다 그 인형 하나하나마다 무수한 바늘이 박혀있었다.
누나는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
[이거 말이야, 그 때부터 계속 저 새끼를 저주하면서 만든거야. 하루에 하나씩, 저 새끼 얼굴을 떠올리면서 '죽어, 죽어! 괴로워하면서 죽어버려!' 라고 빌면서 찔렀단다. 그랬더니 신도 내 소원을 들어줬나봐. 드디어 죽어버렸잖아!]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누나는 계속 말했다.
[장례식 때는 너무 기뻐서 웃어제끼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시체에 침이라도 뱉을 걸 그랬어. 이번에는말이야, 이걸 하루에 하나씩 '지옥에서 괴롭게 지내라!' 라고 빌면서 태울거야! 죽어도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을거니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저주할테니까!]
그 때 본 누나의 얼굴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만화 같은 데서 보면 정신이 나간 사람의 눈을 ◎◎ 같은 형태로 그리곤 한다.
그 때 누나의 눈은, 정말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누나의 모습이 너무도 무서워서 나는 점차 누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그 무렵 두 동생들도 성인이 되어 각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동생 부부에게, [큰누나가 너무 무서워.] 라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물었더니, 한 달에 두세번씩 누나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전화 내용을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문법이나 문맥이 이상한 게 아니라,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었다.
[노쿠싯카타칸! 요맛솟로메라츠나치키시! 하노키세!]
이런 식으로, 그저 아무 소리나 입에서 나오는대로 소리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한 주에 몇번씩 조카들에게서 [엄마가 이상한 말을 해서 너무 무서워요.] 라고 전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당시 매형은 파견을 나가있어, 혼자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 탓에 아이들이 전화로 엄마가 이상하다고 호소를 해도 [또또 그러네. 아빠를 놀래키려고 해도 안 속는다니까!] 라면서 웃어넘기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나와 어머니가 매형에게 연락을 했고, 그제야 매형은 녹음된 누나의 전화를 듣고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후 누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밖에서 문이 잠겨있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린데다 24시간 감시카메라가 작동하는 병실이다.
그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매형과 삼촌, 어머니가 수많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에게 누나를 데려갔고, 몇번이고 대형 병원 정신과에 입원을 시켰었다.
하지만 원인은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고, 증상이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무렵, 딱 한 번 누나에게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봤던 누나의 눈은, 아버지 장례식 때와 똑같은 ◎◎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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