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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는 해운회사에서 항해사로 일했다.


입사 직후 있었던 일이다.


내가 타던 배가 정기점검 때문에 조선소로 보내져, 평소에는 닫아두던 곳들도 전부 개방해 내부를 점검하게 되었다.




그 배는 전체 길이 300m 이상의 초대형 유조선이었다.


원유탱크와 이어진 파이프에 누수나 파손이 있지는 않은지 내부에서부터 정밀점검을 하게 된 것이었다.


워낙 큰 배다 보니 갑판과 배 밑바닥 사이에는 30m 가량 공간이 있었고, 파이프는 배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굵기가 직경 60cm 정도인 파이프가, 200m 가량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구부러진 형태가 아니라 일직선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이프 안은 암흑천지다.




상사와 둘이서 점검을 위해 들어가게 되었지만, 폐소공포증이 있는 내게는 도저히 참기 힘든 곳이었다.


가로로 늘어선 파이프 중, 딱 한 곳 세로로 서 있는 곳이 있어, [거기 들어가면 나올 수도 없어. 도울 방법도 없으니까 조심해라.] 라고 선배가 말했다.


파이프 입구부터 시작해, 밸브 사이의 좁은 틈새를 억지로 파고든다.




팔꿈치와 무릎에는 보호대를 차고, 회중전등을 든 채 새까만 파이프 안을 네 발로 기어간다.


앞에 먼저 기어가는 선배를 필사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조선소였기에, 날씨도 찌는 듯 더웠다.




일단 내부점검 때문에 들어온 것이었지만, 말단이었던데다 공포 때문에 책임감도 전혀 없었던 내게는 주위를 점검할 여유 따윈 없었다.


단지 어떻게든 빨리 출구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내가 들어간 파이프는 직경 60cm 짜리였지만, 같이 들어갔던 상사는 이전에 45cm 짜리 파이프에도 점검차 들어갔던 적이 있다고 한다.




직경 45cm 파이프를 200미터나 기어가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미칠 것 같았다.


유조선의 기름탱크는 최소 10개 이상으로 나뉘어 실려 있다.




특별히 작은 걸 제외하면, 탱크 면적 하나가 체육관 급이다.


아까 언급했다시피, 탱크가 있는 곳은 높이 30m의 넓은 공간이다.


출입구는 천장에 있는 직경 1m 정도의 해치를 제외하면 주변의 맨홀 몇개 뿐이다.




입구를 열고 빛이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간에 어슴푸레한 빛이 머금어드는 무척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허나 안에 직접 들어가보면 배 밑바닥과 외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보강재 때문에 가려지는 곳이 많아, 위에서 본 것과는 달리 사각이 많다.


그리고 점검이 끝난 후 위에서 대충 내려다 보기만 하고 확실하게 체크하지 않은 채 해치를 닫아버리면, 안에서 점검하고 있던 사람은 그냥 갇혀버리는 것이다.




유조탱크는 정전기 같은 작은 자극에도 인화성 물질이 반응해 대폭발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한 번 내부 점검이 끝나면, 산소농도가 엄청나게 낮게 조절한 가스를 탱크 내부로 넣어, 산소를 없애 폭발이 일어날 조건 자체를 없애버린다.


즉, 안에 갇힌 사람은 암흑 속에서 천천히 산소결핍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것이다.




이전 어느 배에서 실제로 그런 사고가 있었고, 발견된 시체는 입구 부근에 넘어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해치를 미친듯 손톱으로 긁어, 핏자국이 남아있었다던가.


뭐, 실제 탱크 안에 가스를 넣는 건 출항 이후고, 그 때까지 승무원 중 누가 사라졌다면 선내 수색이 이루어질테니 아마 거짓일테지.




하지만 요새 정기점검을 도맡는 조선소는 대개 경비 절약을 위해 동남아시아 부근에서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곳에서 점검을 맡는 건 대개 일용직 노동자지.


그들 중 하나가 유조탱크에 갇혀 행방불명이 되더라도, 그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공허하고 어슴푸레한 공간에 혼자 들어가 있노라면, 이런 생각마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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