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괴담][2ch괴담][580th]짐승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우리 할아버지댁은 꽤 시골 촌구석에 있다.

어릴 적에는 자주 놀러갔었다.

할아버지는 지역 유지 같은 위치라, 땅이 엄청 많았다.

그걸 임대해주는 것만으로도 꽤 수입이 짭짤했던 듯 하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직접 꾸리는 건 자그마한 밭 몇뙈기 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와 두 살 어린 동생은 매년 여름방학 때마다 할아버지댁에 1, 2주 정도 묵고 가곤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장난꾸러기였기에 할아버지댁 창호지에 구멍을 다 뚫어놓는다거나, 비누로 온갖 장난을 치는 등 말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잔뜩 화를 내며 우리를 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장난마저 그저 손자들이 귀여우셨는지 오히려 부모님을 설득해 우리가 방학마다 놀러오게 해주셨다 한다.

그래서 그 해 역시,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댁에 놀러갔던 것이다.

할아버지댁 뒤에는 밭이 있고, 그 주변에는 숲이 있었다.

숲 한가운데에는 연못이 있고, 거기서 잉어를 기르고 있었다.

동생은 낚시를 좋아해서, 인근 호수에서 종종 잉어를 낚으면 보란듯이 가져와 그 연못에 풀어넣곤 했었다.

당연히 할아버지는 기특해하며 좋아해주셨고.

다만 매일 같이 낚시를 가서 잉어를 연못에 채워넣었는데도, 연못에 잉어가 가득차는 일은 결코 없었다.

할아버지는 [들고양이들이 잉어를 잡아먹는게야.] 라고 하셨고, 우리도 그럭저럭 납득했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형, 숲 속 연못에서 낚시해보자.] 라고 말을 꺼냈다.

나는 딱히 낚시에 흥미는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절대 숲 속 연못에 혼자 가서는 안 된다!] 라고 신신당부했기에 어쩔 수 없이 동생과 같이 가주기로 했다.

나는 꽤 독실한 불교신자라, 무의미한 살생은 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낚시를 하더라도 잡았다 놓아줄지, 잡아먹을지를 사전에 정해놓고 가는 게 기본이었다.

쓸데없이 뭔가를 죽이는 것에 죄악감이 컸으니까.

어쨌든 그러다 동생이 잉어를 한마리 낚아 올렸다.

나는 [잉어한테 세제를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보자!] 라고 멍청한 소리를 꺼냈다.

내 제안을 듣고 동생도 신이 나서, 우리는 집에서 세제를 가져와 잉어에 뿌렸다.

당연히 잉어는 죽어버렸다.

죽은 잉어를 보자 어린 마음에도 죄책감이 들었지만, 내버려두면 고양이가 먹겠지 싶어 그냥 내버려두고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동생이 [형, 고양이가 잉어 잡아먹는 거 보고가자!] 라고 또 멍청한 제안을 했다.

뭐, 나도 동물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사자가 얼룩말을 덮치는 걸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 정도 박력은 없겠지만, 사냥씬을 바라보면 재밌겠다 싶어 근처 수풀에 숨어 있기로 했다.

한동안 숨어있자, 숲 안쪽에 있는 가장 큰 나무가 부스럭거리며 나뭇잎이 흔들렸다.

당시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아, 고양이는 나무 위에 사나보구나."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동생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원숭이.]

나는 "엥?"하고 그 나무 위를 올려다봤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고양이치고는 너무 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짐승은 여름인데도 털투성이였다.

그 짐승이 나무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웬지 모르게 파충류 같다고 느껴지는, 기분 나쁜 움직임이었다.

그 "뭔지 모를 짐승"은 천천히 연못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느새인가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옆을 보니 동생도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떨고 있었다.

그 짐승이 다가옴에 따라, 무언가 사람 목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보자, 그 짐승이 무언가 중얼대고 있었다.

[...것 ...것 ...것...]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당초 목적을 잊고, 여기서 도망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아마 동생이 함께 있는게 아니었다면 오줌까지 쌌을 터였다.

그 정도로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이윽고, 그 짐승이 완전히 다가오자 얼굴이 확실히 보이고 말소리도 제대로 들려왔다.

그 짐승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얼굴은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 무표정하게 중얼대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것 ...키우는 것 ...빌려가는 것... ...살아있는 것 ...키우는 것 ...빌려가는 것...]

그러더니 우리가 버려둔 잉어에게 다가가더니, 그걸 내려다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되었다.]

그리고는 잉어를 내버려둔 채 돌아가버렸다.

우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숨죽이고 있었다.

멍하니 있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

겨우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평소에는 다니지 않는 뒷문 샛길로 숲을 빠져나와 집까지 도망쳤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밥이 넘어갈리 없었다.

나와 동생은 둘다 저녁상 앞에서 기운 없는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걱정스러운지 [왜들 그러니?] 라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저기, 형, 역시 그 원숭이...] 라고 말해버렸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사람의 얼굴색이 그렇게 한순간에 바뀌는 건,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때 딱 한 번 봤다.

할아버지는 어쩐지 화가 난 것 같은 느낌으로 [무슨 일이 있었냐.] 라고 물었다.

나는 체념하고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얼굴을 마주 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분은 어떠냐. 아무 문제 없어?] 라고 끈질기게 나와 동생에게 물어왔다.

이대로 잔뜩 혼이 나는 것인가 싶어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은 할머니가 현관으로 데리고 나와, 어딘가에서 가져온 술병 속의 술을 뒤집어 썼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우리에게 소금을 뿌렸다.

집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는 전화를 마친 후였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고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너희는 이 집에 오면 안 된다. 우리 둘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결코 여기 다시 오지 말거라.]

동생은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말에 [왜요? 왜요?] 라며 울며 아우성쳤다.

나도 할아버지댁을 무척 좋아했기에 너무 슬펐다.

우리들이 겨우 안정을 되찾자,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설명해주셨다.

[너희가 이 땅의 수호신을 화나게 해버렸기 때문이란다. 수호신이라고는 해도 부처님 같이 선한 존재가 아니야.]

대충 기억나는 건 우리 선조가 신에게 산 제물을 바쳐, 후대에 액운이 내리는 대신 큰 부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살생이 금기시되는 건 불교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신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만약 신이 드는 경우에는,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 이 땅에 속박되고, 액을 받아 진정시켜야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마친 할아버지는 무겁게 말했다.

[오늘 밤까지만 여기 묵거라. 하지만 안심해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켜줄테니까. 내일 아침 날이 밝자마자 돌아가야 해.]

얼마 후, 아까 할아버지가 전화를 했던 사람이 왔다.

낯선 여자로, 내겐 보통 아줌마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 전해 듣자니 지역에서 꽤 유명한 영능력자라고 한다.

아줌마는 우리 형제를 쓱 보고 말했다.

[어머, 이건 꽤 큰일이네요. 일단 이걸 가지고 다니세요.]

그렇게 말하며 부적을 한 장씩 꺼내주었다.

그동안 할머니는 잘 준비를 해놔서, 우리는 불간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불간은 작은 방이었는데, 딱 하나 있는 창문은 신문지로 가려져 있었다.

이불이 두개 깔려 있고, 평소에는 없던 TV와 과자 같은 먹을거리가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알았냐. 지금부터 너희는 단 둘이 밤을 새야만 해. 그 사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결코 너희를 찾지 않을거야. 잘 듣거라. 누가 뭐라고 말하던 절대 문을 열어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이미 잔뜩 겁에 질려 있었기에 할아버지랑 같이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동생 둘만 남았다.

처음에는 TV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했지만, 서서히 피로가 우리를 덮쳐와 어느새인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눈을 뜬 건 몇시쯤이었을까.

아직 주변은 어두웠다.

왜 일어난건가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더불어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것 ...것 ...것...]

순간 심장이 바싹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온몸의 혈관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쾅, 쾅쾅하는 소리와 함께, [...주세요. ...주세요.] 하고 목소리가 들린다.

문득 동생 쪽을 보자, 어느새인가 일어나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형, 저게 뭐야... 나 무서워...] 라며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동생 곁에 붙어, 창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열어주세요... 열어주세요...]

그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갓난아기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창 밖의 그림자는 결코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어쩐지 저 녀석도 필사적이구나 하는 이상한 기분이 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동생이 외쳤다.

[안돼, 형!]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창문을 열려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공포가 돌아와, 나는 그대로 동생 곁으로 돌아가 둘이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꼼짝도 않고 아침을 맞이했다.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할아버지야. 아무 일 없었니? 괜찮아?] 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나는 완전히 의심암귀에 걸려있어서 그 목소리조차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해도 떴고, 내가 직접 여는 게 아니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제 그 영능력자 아줌마, 그리고 부모님이 들어왔다.

아줌마는 [애 많이 썼구나.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야.] 라고 말해주었다.

흰색이었던 부적은 녹이 슨 것처럼 변해 있었고, 원래 크기의 반 정도로 줄어 있었다.

그 후 우리 형제는 집으로 돌아왔고, 두 번 다시 할아버지댁에는 가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할아버지의 부고가 들려왔다.

부모님은 어째서인지 사인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어머니에게 그 "짐승"과 관련이 있는거냐고 따져물었지만 아무 말 않고 대답을 피했다.

할머니에 관해서는 [천천히 치매가 오고 있으신 것 같더라.] 라고 말할 뿐이었다.

결국 그 "짐승"과 조부모님의 죽음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그 날 내가 저질렀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 뿐이다.

할머니의 병구완을 하기는 커녕,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드리지 못한 게, 너무나도 가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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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