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은 더 된 이야기지만, 다른 세상 같은 곳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여중생으로, 방과후나 점심시간에는 언제나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곤 했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1년 정도 다니자 흥미가 있을만한 책은 대충 다 읽게 된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있던 도중, 어느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지지 않는 태양".
도서관 가장 안쪽 책장, 맨 아랫단에 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소책자라 부르는 게 어울릴지도 모른다.
표지는 태양이 달을 녹이고, 그 아래 있는 인간계와 인간들도 녹아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표지를 본 순간 핵폭탄을 의미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던 거 같다.
내용은 기묘했다.
어느 페이지에는 눌러 말린 꽃이 끼워져 있고, 다른 페이지에는 "태양은 지지 않는다. 태양이 지지 않으면 숨을 수 없다." 라고 써 있었다.
어느 페이지에는 이상한 그림이 끝도 없이 그려져 있었다.
모든 페이지에는 태양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딱 한 페이지만 레몬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을 뿐인 그림이 있었다.
테이블에는 "어서오세요" 라고 써 있었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그 책은 페이지 수가 완전히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레몬이 그려진 그림은 책 한가운데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페이지였다.
기분도 나쁘고 웬지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책을 내려놓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책을 읽어나갔다.
그대로는 무슨 의미인지 도췌 알 수가 없었기에, 아래 써 있는 페이지를 따라 책을 뒤적이며 읽어나갔다.
레몬 그림은 단순한 표지이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태양이 나와 서서히 모습을 바꾸며 인간을 녹여 갔다.
마지막에는 태양이 인간의 형태가 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완성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멀리서 무언가가 소리치는 게 들려오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초리는 어째서인지 번쩍거리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나는 도서관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어쩐지 공기가 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과민반응일 것이라 스스로를 타이르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무의식 중에 계속 걸어간다.
어째서인지 불안감은 없었던 게 기억난다.
한동안 나아가자, 본 적 없는 방파제에서 낚시꾼 몇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는 먹물처럼 새까맣고, 하늘은 빨간색에 가까운 핑크색이었다.
이상한 모습의 생선이 낚시꾼의 양동이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낚시꾼은 가까이 다가온 나를 보고 순간 놀란 듯 했지만, 시선을 돌려 다시 낚시에 열중했다.
내가 멀어지려는 순간, 속삭임소리가 들려왔다.
[잡아먹힐거야.]
[네?] 라고 반문한 순간, 나는 까마귀 같은 새에게 손을 쪼였다.
그와 동시에 낚시꾼은 양동이 속의 생선을 새들에게 던졌다.
새들은 그리로 모인다.
낚시꾼은 한 방향을 가리키며 [서둘러라.]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중간에 딱 한 번, 뒤를 돌아봤었다.
태양이 다가와 있었다.
낚시꾼도, 새도, 경치도 모두 태양에 녹아들어 증발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병실 침대 위였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말을 걸자, 곧바로 의사를 불러주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책을 읽다 갑자기 넘어져 한 달 넘게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머리맡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쓴 롤링 페이퍼가 있었다.
이윽고 부모님이 왔지만, 두 분 모두 통곡하는 바람에 달래는 게 큰일이었다.
나는 단순히 꿈을 꾼 게 아닐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그게 평범한 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그 세계에서 나를 살려준 낚시꾼은, 내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우리 삼촌이었다.
삼촌이라고는 해도 워낙에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서, 나는 두세번 밖에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옛 앨범을 뒤지다 삼촌의 사진을 발견한 내가 깜짝 놀라 아버지에게 물어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 후로 나는 매년 삼촌 묘에 성묘를 가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그 세계에서 새에게 쪼인 상처는 현실에 온 후에도 내 손에 나 있었다.
나는 임사체험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손에 남은 상처만은 미스터리다.
만약에 그 때 새들에게 온 몸을 쪼이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일어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자살한 것이었다.
K라는 남자아이로, 나와는 별 친분이 없는 양아치스러운 아이였다.
주변 평판도 그닥 좋지 않았고.
그런데 그가 남긴 유서에, "지지 않는 태양"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라곤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더욱 놀랐다.
후일,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한 번 더 그 책을 찾아보았다.
책은 없었다.
얼마 뒤, 나는 K와 친했던 S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K는 내가 기절하기 전 읽고 있던 책을 읽어보려 했었다고.
S는 말렸다지만 K는 무시하고 그 책을 찾아내 빌려갔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읽은 직후에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였고, 오히려 저주 받은 책이라며 그걸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서서히 K는 이상해지더니, 결국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무서워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평범하게 대학도 졸업하고 지금은 열심히 살고 있다.
책은 지금도 무척 좋아한다.
다만 그 때 이후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책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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