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중 '씹덕후'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야한 피규어나 구체관절인형 같은 데까지 손을 뻗치는 녀석들 말이지.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머리 한구석에라도 넣어뒀으면 한다.
평소 너희가 수집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진성 씹덕후다.
겉으로는 미소녀 티셔츠를 입거나 하는 건 자제하고, 최소한 일반인처럼 보이려고 하지만, 집 안은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마굴이라고 부를 수준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회사 동료나 평범한 친구는 몇 있다.
그래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집에 들어오는 순간 혐오감을 느끼지 않게 대비를 해 뒀다.
물론 오타쿠라는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 건 당연히 무리다.
그래서 대충 소년 만화 캐릭터의 피규어나, 로봇 피규어, 프라모델 같은 것만 겉에 내놓는다.
남자 동료들은 종종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라며 괜찮은 반응을 보이고, 여자들도 [대단하네...] 라며 그저 쓴웃음 한 번 짓고 넘어가는 정도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는 비밀이 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시답지 않은 것들 뒤에는, 사실 전라에 온갖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미소녀 피규어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말이지.
아마 아무도 상상치 못할 것이다.
옛날 만화에 나오는 비밀 기지에서 영감을 받아, 회전식 수납장을 만든 것을 말이다.
앞뒤로 수납장이 달려 있는 전용 회전 아크릴 케이스를 만들어, 약간 손을 쓰는 것만으로 회전이 가능한 녀석이다.
그 뒤쪽에 온갖 피규어들을 쟁여 놓은 것이다.
다른 가구와 밸런스도 맞춰야 하고, 회전한다는 사실이 쉽게 들키면 안 되기에 이리저리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 가면서 레어한 피규어나 스태츄 같은 걸 모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슬슬 지금까지 모아 놓은 것들도 질리기 시작하고, 마땅히 마음에 드는 피규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 열정이 사그라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무심코 보고 말았던 게, 구체관절인형이었다.
30cm 정도 되는 크기인데도, 피규어와는 다르게 섬세하면서도 인형 특유의 느낌에, 사랑스러운 아이 같아서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이미 피규어보다 훨씬 비싼 스태츄 쪽에도 손을 뻗고 있을 무렵이었으니, 가격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질렀다.
참고로 이름은 유우짱이다.
피규어와는 달리 직접 옷이나 상황을 설정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유복한 집 아가씨처럼, 옷이나 잠옷을 갈아입히고, 침대라던가 신변 물품도 잔뜩 사서 갖춰두었다.
그 후에도 한눈에 들어온 아이를 "맞아오곤" 했다.
유명한 캐릭터의 외모를 기반으로 한 시즈짱이라는 아이였다.
가게에서도 실제로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판매했기에, 마치 인신매매를 하는 느낌까지 들어 짜릿짜릿했다.
그렇게 열정과 생각을 담아 대하는 것에 더해, 인간과 무척 닮은 존재라는 성질까지 더해지다 보니, 그 아이들의 표정은 왠지 내 감정과 동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점차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인형도 나와 함께 울고 웃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솔직히 나는 '아, 저 인형들이 정말로 살아 움직여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종 인형에 얽힌 괴담 같은 걸 듣곤 하지만, 피규어나 구체관절인형 오타쿠인 입장에선 반가운 이야기였으니까.
외려 내 생각과 염원을 먹고, 진짜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는 계속 새로운 취미에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2년 정도가 지날 무렵. 나는 어쩐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종종 유우짱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곤 했는데, 아무리 봐도 분명히 유우짱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같은 종류의 다른 인형들과는 달리, 유우짱만.
이전부터 생각하던 망상과는 달리, 진짜로 싱글벙글 웃는 것 같은 사진이 몇 장인가 찍힌 것이다.
왠지 기분이 나빠져서 실제 인형을 곰곰이 뜯어봤지만, 인형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다.
하지만 사진에서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다.
빛 조절을 잘못 했나 보다 싶어 그 사진은 지우고, 다시 찍었다.
너무나도 확실히 찍힌 사진에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이상한 일은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난 어느 밤에 벌어졌다.
일을 마치고 지쳐서 집에 돌아온 후, 불을 켜고 수납장을 회전시켜 피규어와 인형들이 있는 쪽을 꺼냈다.
그랬더니 인형들이 전부 내 쪽을 향해 서 있었다.
평소 만에 하나 하는 생각에 언제나 인형들은 수납장 쪽을 바라보게 두어서, 회전시켜도 등 쪽이 보이게 해 놨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전부 얼굴을 내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인형은 사람을 일정한 크기로 줄여놓은 모양이다.
설령 회전 때문에 넘어지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정도면 몰라도, 아예 한 바퀴 회전해서 서 있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나는 조금 오싹했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조심스레 전부 방향을 돌려놓았다.
그런 일이 두 번 정도 반복되자,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결국, 나는 유우짱과 다른 구체관절인형들에게서 관심이 식었다.
마침 그 무렵 한정판 피규어나 복각판 염가 피규어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그쪽으로 흥미가 이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인형을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강했기에, 아예 수납장에서 인형을 꺼내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결국, 그대로 한 달 정도, 인형을 방치해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전의 기분 나쁜 일도 슬슬 잊혀져 갈 무렵의 어느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깼더니, 피규어들을 진열해 두는 아크릴 선반이 눈에 보였다.
평소에는 언제나 로봇 피규어와 소년 만화 피규어가 전면에 나와 있을 터였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잠에서 막 깬 터라 사고가 잘 이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우선 선반을 평소처럼 돌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회전축이 되는 부분이 녹아내려 굳어서, 당최 움직이질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회전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당시가 여름이었다고는 하지만, 방 안 온도가 아크릴이 녹아내릴 정도로 올랐다면 분명 나도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것은 회전축 접합부뿐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당시엔그리 겁에 질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뒤로 돌아간 로봇 피규어는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당황하면서도, 일단은 꺼내져 있는 피규어와 인형들의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체크를 하고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 그곳은 새까만 어둠 속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해 우선 소리를 질렀지만, 좁은 공간인지 그 안에서만 소리가 울릴 뿐 아무런 응답이 없다.
무척 불편한 곳이라, 나는 곧 가슴이 답답해져 토할 것만 같았다.
[야, 야! 이게 뭐야! 누구 없어!]
주변을 마구 때려봤지만, 손만 아플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치 어느 영화에 나왔던, 산 채로 관에 갇혀 묻혀버린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며칠이고 갇혀 있었다.
나가지도 못하고 목이 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목소리도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하고, 어떻게든 물이 마시고 싶었다.
주변 온도는 딱히 더운 것도, 추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외려 그 애매함이 사람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공간...
누가 날 여기서 꺼내 줘! 살려줘! 살려달라고!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미쳐버리기 직전, 갑자기 주변이 빛으로 가득 찼다.
[안녕, A짱. 오늘도 귀엽네요.]
유리로 된 4개의 눈이,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평소처럼 침대 위였다.
악몽을 꿨구나 싶어 한숨 돌리려는데, 내 옆에 유우짱이 앉아 있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쳐 [으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유우짱을 발로 차 버렸다.
온 힘을 다해 차버린 탓에, 유리로 된 왼쪽 눈에는 금이 갔고, 예쁜 얼굴도 한쪽이 움푹 패이고 말았다.
나는 노이로제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뭐가 옳고 그른지는 상관 없었다.
그저 이딴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토막을 내 버리는 건 무서웠기에, 태워버리기로 했다.
유우짱을 위해 샀던 옷이나 소품도 전부.
불 속에 내던져져서 서서히 타들어가는 사이,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입에서는 불경이 흘러나왔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일은 그리 쉽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 무슨 불제 같은 걸 안 받았던 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악몽은 이어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인형의 위치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변해 있다.
실제로 뭔가 나쁜 일을 겪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씩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타쿠 기질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피규어나 인형을 처분하겠다는 생각은커녕 오히려 방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만화처럼 어디 영능력자를 쓱 찾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절에 찾아가 봐도 이상한 소리를 하는 놈으로 몰려 대충 설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점차 나는 회사에도 나갈 기운이 없어 며칠이고 계속 일을 쉬게 되었다.
그러자 나를 걱정한 것인지,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A냐? 너 요즘 어떻게 지내는 거야? 괜찮은 거야? 너희 부서 C과장님도 병문안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데?]
[어, B냐... 과장님이 오신다고...? 그건 좀 그런데... 그냥 몸 상태가 계속 안 좋은 것뿐이야...]
[야, 그럼 병원에 가야지! 갔다 왔어?]
[내과랑 정신과에 가 봤지만, 원인 불명이라는 대답뿐이더라.]
[잠깐만, 정신과라고? 그쪽 문제인 거야? 처음 듣는 소리잖아! 야, 말 좀 해 봐.]
[아, 미안. 요새 왠지 뭘 해도 의욕이 안 생겨서.]
[그럼 진짜 우울증 같은 거 아니야? 다른 병원도 가서 추가 소견을 듣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지, 좀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너 혹시 오컬트 같은 거 믿냐?]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게?]
[그게 말이지, 뭐랄까... 저주 같은 걸 받는 거 같아, 나.]
[응? 저주라니 무슨 소리야? 진짜로?]
[진짜로.]
[으하하하, 잠깐만... 뭐야 그게, 하하하하...]
[아니, 진짜라니까. 웃을 일이 아니라 진짜로.]
[...뭐? 정말이야? 장난치는 게 아니라?]
[응. 그러니까 혹시 너 아는 사람 없어? 영능력자 같은 거. 점쟁이라던가.]
[뭐...? 당연히 모르지. 아니, 그것보다 너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잖아. 내 노이로제인지도 모르지만, 진짜로 저주받는 걸 수도 있잖아.]
[저주라니, 나 참... 음, 일단은 심각한 거 같으니까 어이가 없긴 해도 주변에 좀 알아볼게. 그런거 좋아하는 놈은 몇 있으니까 혹시 도움이 될 만한 놈이 있을지도 모르지.]
[응, 고마워. 진짜로 부탁 좀 할게.]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힘내라.]
동료의 목소리를 들은 덕인지, 왠지 기운이 좀 나는 듯했다.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털어놓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다른 사람에게 상담조차 않고 혼자 앓고 있던 것일까.
그런걸 능동적으로 할 기력조차 없었던 것인가.
문득 곁을 보니, 내 옆에는 어느샌가 시즈짱이 놓여 있었다.
그저 곁에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곁에 와 있다는 것이 이미 무언가를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B의 연락은 의외로 빨리 왔다.
바로 다음날 전화가 온 것이다.
그런 쪽에 자세하게 아는 사람이 있어서 상담을 했더니,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B의 목소리가 마치 천사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처음으로 희망의 빛 같은 것을 본 느낌이었다.
D라고 하는 타 부서 사람으로, 이전까지 말 한 번 섞은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일단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집은 다른 사람이 들어올 만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반가워요, D입니다.]
[아, 네... A라고 합니다.]
왠지 좀 양아치 같은 느낌이 드는 가벼운 녀석이다.
정말 괜찮으려나...
[A씨, 무슨 저주 같은 걸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야? 영능력자한테 소개해 주려면 좀 자세하게 알아야 해서 그러니까 이야기 좀 해 줄래?]
[네... 다만 내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어서, 그 부분도 감안해서 누군가에게 좀 조언을 듣고 싶어요.]
[정신적인 문제라면, 무슨 악몽을 꾸거나 환각 같은 걸 보는 건가?]
[환각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그게, 실제로 물건의 위치가 바뀌기도 하고 선반이 녹아내리기까지 했거든요.]
[그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인이 한 건 아니고?]
[CCTV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라 확실히는... 일단 병원에선 몽유병 같은 건 없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그렇구나. 그래서,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데?]
결국, 나는 크게 마음을 먹고 인형에 관한 것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는 조건으로, 내 방 모습도 보여줬다.
꽤 꼴사납게 보고 있다는 건 느꼈지만, 일단 인형의 불제라던가, 심령 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를 돌려보냈다.
처음으로 뭔가 진전한 느낌이 들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다음날, 마음이 편해진 덕인지 기력이 좀 돌아와, 오후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회사에 가자마자 C과장님께 인사를 하러 갔는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며칠을 내리 쉬었으니 화가 나셨나 싶었지만, 주변을 보니 왠지 다들 나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다.
당황해 있자 B가 다가와서는, [야,잠깐만...] 이라며 나를 급탕실로 끌고 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너... 말이지, D씨랑 이야기했었지, 어제?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한 적 있었어? 나한텐 뭔 이야기를 했는지 말을 안 해 줘.]
[무슨 이야기라니... 심령 쪽으로 좀 상담을 했을 뿐인데.]
[그게 아니라니까! 왠지 너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아침부터 잔뜩 퍼트리면서, 널 놀려먹고 있어. 그 사람한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뭐...? 소문이라니, 무슨 이야기를?]
[그게, 야한 피규어랑 인형한테 둘러싸여 살고 있는 씹덕후라고... 환각을 봐서 인형이 진짜 살아있다고 믿는다느니 그러더라고.]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게 단지 관용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자... 잠깐만... 뭐야, 그게!]
[아, 아니... 나는 그거 말고는 못 들었지만, 아침부터 계속 그러고 있어. 저주 관련해서 이야기 한 거 아니었어?]
[했었어! 그 일 때문에 상담했던 거잖아!]
[하지만 그 사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씹덕후라고 마구 폭로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 우리 과에도 이야기 다 넘어왔어.]
[도대체 왜! 나는 그런 걸 부탁한 게 아니었잖아!]
[그 저주라는 게, 인형이 살아있다던가 하는 거였어? 그 사람 하는 말 다 맞아?]
[나도 몰라! 멋대로 아크릴 케이스가 녹거나, 물건의 위치가 분명히 바뀌어 있는 게 다 환각이라고?!]
[아니, 그건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네 말을 안 믿어 준거야? 뭐, 일단 본인한테 확실히 따져 물어봐야겠다. 너는... 어디 좀 숨어있어.]
[싫어, 나도 갈래. 비웃음당할지 몰라도 갈 거야.]
어째서 나는 그렇게 경솔히, 지금까지 숨겨왔던 취미를 타인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일까.
들킨 상대가 적어도 친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D와 나눴던 대화는 다시 생각해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끄럽고,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D는 내가 했던 말을 전혀 믿어주지 않았었다.
원래 D라는 인간 자체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뿐이라, 단순히 그쪽 취미가 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은 거의 양아치 수준이었다.
그런 같잖은 녀석에게, 나는 처음 만나자마자 술술 내 치부를 까발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 아무 일 없이 갑자기 구토가 나오기 시작해, 나는 아예 회사에 발을 끊게 되었다.
그저 D가 밉고, 또 미웠다.
그 생각만을 반복하는 하루하루였다.
변함없이 시즈짱은 마음대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나중 가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 이상으로 D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강했다.
[증오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옛날 그런 장면이 나왔던 만화가 있었다.
설마 나 자신이 그런 걸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줄이야.
이제는 인형의 악몽이 아니라, D가 나를 비웃는 악몽만 꾸게 되었다.
회사에도 가지 않고, 상사에게 전화가 와도 대충 받아넘기기 일쑤였다.
사회인으로서 완전히 무언가를 결여 당한 나는, 일 따윈 이미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인형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인다 해도, 왠지 미소가 지어질 뿐이었다.
적어도 내 눈앞에서 움직이고, 나를 위로해 준다면 좋을 텐데.
기분 탓인지, 시즈짱이 미소 지은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밤, 갑자기 B에게 전화가 왔다.
두서없는 잡담을 10분 정도 늘어놓은 후, B는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에 말이야... D 자식이 죽었어.]
[뭐? 어떻게?]
왜 그걸 나에게 일부러 말하려고 전화까지 건 걸까.
아니, 애초에 그 자식은 왜 죽은 걸까.
[아니... 여러 일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너한테 D를 소개해 줬던 것도 나였고. 그리고 그 녀석 죽었을 때에 관한 이야기를 아까 전에 들었거든.]
[무슨 소리야?]
[D 말이지, 교통사고였어. 운전을 잘못해서 벽을 들이받고 즉사했대.]
[...아, 그래.]
[그런데 그 사고 차 핸들에, 사람 머리카락이 아니라 무슨 인형 머리카락 같은 게 잔뜩 휘감겨 있었다는거야. 게다가 어쩐지 인형이 탄 것 같은 잔해도 나왔다더라.]
[뭐라고...?]
[뭐, 교통사고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왠지 네 이야기가 계속 신경 쓰이더라고. 이런 일이 계속 터지니까 요즘 회사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왜?]
[아무도 입 밖으로는 내지 않지만... 왠지 저주라던가 그런 걸 생각하나 봐. 나도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타이밍이 안 좋아서 다들 기분 나빠 한다고. 그런 상황이라는 건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알았어. 하지만 정말로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무슨 우연이라도 겹친 거라고.]
[응, 그렇겠지... 그런데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 회사에는 더 못 있겠지. 나도 회사에 남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만둘 거야.]
[...그러냐.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잖아... 진짜 미안하다.]
[아니, 원인은 나한테 있어. 원인이 뭐였던 간에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
그대로 일주일간 회사를 결근하다가, 나는 상사를 찾아가 퇴사를 신청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백수로 살고 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인형이 나오는 악몽이나 괴현상들은 대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하고 싶은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결국, 유우짱은 어떻게 된 것일까?
모든 게 나의 환각이었던 것일까?
다만 아직도 가끔씩, 아주 가끔...
시즈짱의 얼굴을 보노라면 눈이 끔뻑끔뻑 움직이거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만큼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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