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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는 과식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자기 언니의 식사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꽤 잘 먹는 편이었지만, 간식을 먹는 일도 잦아지고 식사량도 매끼 2인분은 족히 먹을 정도였다.




스스로 운동은 조금 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식욕은 더해갈 뿐이었다.


이전까지는 평범한 표준체형이었던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 되니 누가 봐도 비만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언니가 과식증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지만, 다른 가족, 특히 어머니는 언니에게 거의 관심이 없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언니는 성격이 얌전한데다 부모님이랑 잘 맞지를 않았다.


그 탓에 학교나 친구에 관한 이야기는 잘 꺼내질 않았었다.


하지만 성적은 평균 정도였고, 운동신경도 꽤 좋은 편이었다.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자주 집에 데려오거나 놀러가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싫은 표정 보이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여름 무렵이 되자 그것도 점점 뜸해져 갔다.


나는 걱정이 되어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괜찮아? 너무 많이 먹는 거 같아.]


[응? 뭐가?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운동할 거니까!]


언니는 웃으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어머니는 점점 살이 쪄가면서도 끝없이 먹어대는 언니가 보기 싫었는지 고함을 쳤다.


[너는 집안 살림을 다 들어먹을 작정이니! 더 먹어 댈거면 집에서 나가버려!]


언니는 조금 슬픈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음날부터 평범한 정도로 식사량을 줄였다.




언니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식사량을 유지했다.


나도 과식증이 이렇게 쉽게 낫는건가 싶어 의아하면서도, 다행이라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




그로부터 2주 가량 지난 8월 어느날, 새벽 1시 너머였다.


나는 영 잠이 오질 않아 물을 마시려고, 2층 내 방에서 내려와 1층 거실로 갔다.


거실 불을 켜려고 하는데, 안쪽 부엌에서 잘그락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 뿐 아니라 어렴풋한 빛도 보였다.


혹시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몰래 부엌을 살펴봤다.


거기에 있던 건 언니였다.




언니는 반쯤 열린 냉장고 앞에 앉아서는, 일심불란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질겅질겅, 껌을 씹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불을 켜자, 언니가 뭘 먹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날고기였다.


어머니가 사 온 쇠고기를, 언니는 익히지도 않고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언니가 앉은 주변에는 닭고기, 채소, 햄, 날달걀, 마가린, 소스와 마요네즈 같은 조미료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뒤쪽 서랍도 열려, 건어물과 핫케익 믹스 같은 것들도 마구 널려 있었다.


그리고 언니가 토한 듯한 엄청난 양의 구토물이 바닥 가득 쏟아져 있었다.




나는 패닉에 빠져 언니의 어깨를 잡으며 날고기를 뺏었다.


[언니! 왜 그래! 뭘 먹는거야! 왜 그러는거야!]


하지만 언니는 이제껏 본 적도 없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듯한 눈초리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응? 아, 괜찮아. 아하하. 괜찮아.]


말투만은 평상시와 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봐도 망가져 버린 것 같은 언니의 모습을 보자, 도저히 공포를 참을 수 없어 나는 울부짖었다.




도와달라거나 부모님을 부르지도 못하고 단지 울고 있자, 그걸 듣고 부모님이 뛰쳐나왔다.


[뭐니, 이게! 너 뭐하고 있는거야!]


[야, 이게 무슨 일이야!]




부모님은 제각기 설명을 구했지만, 나는 계속 울고 언니는 이전처럼 조금 슬픈 듯한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그 후 다시 토하기 시작한 언니를 보고 부모님은 서둘러 언니를 병원에 데려갔다.


곧바로 위세척을 받았지만, 위장에 균이 들어갔을 우려가 있어 회복할 때까지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 사건이 터지자 그제야 간신히 부모님도 언니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듯 했다.


퇴원 후에는 지금까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게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언니를 신경쓰기 시작했다.


언니는 날뛰거나 폭언을 하는 것 하나 없이, 그 후에도 이전과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우리를 대했다.




지금까지 이상했던 것들에 관해서는 [나도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라고 인정하기도 하고, 정신적인 치료도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언니는 진학을 위해 공부에 힘쓰고, 나도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이전보다 조금 상냥해진 부모님과 함께, 아무 일 없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지난 겨울.


언니는 자살했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로, 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네 집에 놀러갔던 터였다.


집에 돌아왔다가 [친구네 집에 뭘 두고 왔네. 가지러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 다시 나갔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 전날도, 심지어 집을 나가기 직전까지도 언니에게 뭔가 변화는 없었다.




이전보다 조금 밝아졌을 뿐,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었다.


언니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속에서, 나무에 줄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옆에 떨어져 있던 받침대 옆에 [미안해요.] 라고 쓴 유서를 남긴 채.




그 후 장례식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분주했기에 언니의 방은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겨우 모든 일들이 끝나고 조금 안정을 찾을 무렵, 나는 부모님과 이야기해 언니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서랍 안을 정리하다 뒤죽박죽 쑤셔 넣어져 있던 봉제인형과 잡동사니 속, 3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화려하지 않은 표지에는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은 XX를 먹었다. OO도 먹었다. KK에 가서 TT도 먹었다. 물론 가장 큰 사이즈로. 아... 배 아파.]




[저것이 또 내 이야기를 무시한다. 그 쓰레기 이야기만 들어대고. 빨리 죽어.]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같은 장소에 모여드는 걸 보면 기분 나빠. 벌레만도 못한 것들. 개미만도 못한 것들. 트럭이라도 날아와 받아버리면 좋겠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거기에는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적혀있는 한편, 우리 가족과 학교 교사, 친구들의 언행과 거기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붉은 볼펜으로 노트 가득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일기였던지 거의 매일 페이지 하나를 가득 채울만큼 글이 적혀 있었다.


가장 오래된 날짜는 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날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장 오래된 노트 첫 표지에는, "6권 더 있었지만 태워버렸어." 라고 적혀 있어, 이전부터 이런 걸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니가 죽은 마지막날 일기에는 날짜와 더불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페이지 한가운데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모양새로, 언니가 생긋 웃으며 목을 매달고 있는 그림이.




지금은 나도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다.


물론 언니가 저런 말로를 걷게된 건 분명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언니와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을 작정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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