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백화점에 갔었다.
쇼핑을 마치고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별 생각 없이 옆에 있던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은 거의 비어 깨끗했지만, 휴대폰이 하나 버려져 있었다.
내버려뒀으면 좋았을텐데, 멍청하게 그걸 주워들었다.
폴더폰인데 힌지가 뒤틀려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쓰레기통에 다시 내버리려다, 문득 메모리카드를 확인해 보니 1GB짜리 미니 SD가 들어있었다.
운이 좋다 싶어 신이 난 나는, 메모리카드만 챙겼다.
이게 잘못이었다.
집에 돌아와, PC를 켜고 카드를 꽂아보았다.
뭐가 들어있나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야한 사진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근대며 열어보니, 사진이 100장 정도 있었다.
첫번째 파일을 열고 순서대로 사진을 봤지만, 재밌는 건 전혀 없었다.
중년의 여자와 그 딸인 듯한 젊은 여자의 사진이 주로, 그거 말고는 도쿄나 후쿠오카의 랜드마크 사진이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가족이랑 출장 나가서 찍은 사진들 같았다.
시시하다는 생각에 두근거림은 잦아들었지만, 별 생각 없이 계속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게 나왔다.
어두운 방 안, 긴 머리카락의 여자 뒷모습이 보인다.
조금 기대했다.
왜냐하면 여자가 알몸이었거든.
두근거리면서 다음 사진을 보자, 여자가 이쪽으로 목만 돌려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라? 싶었다.
몸은 그대로인데, 목만 완전히 돌아와 얼굴은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마치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 같았지만, 더욱 기분 나빴던 건 따로 있었다.
여자의 눈이 없었던 것이다.
머리에 가려있다던가 하는게 아니라, 눈 부분이 피부처럼 되어 있었다.
마치 뺨처럼 자연스럽게.
이게 뭔가 싶어 나는 다음 사진을 열었다.
그랬더니 새까만 화면이 펼쳐졌다.
그 다음도, 그 다음장도 새까매서, 3장 연속 새까만 화면만 뜨고 끝났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지만, 휴대폰 주인이던 아저씨가 장난이라도 친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카드를 포맷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포맷을 클릭한 순간, 방의 불이 나갔다.
나는 아파트에서 자취하고 있는데, 5년 살면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밤 10시 정도였기에 당연히 어두웠지만, 노트북만은 켜져 있어 깜깜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자 슈퍼 불빛이 보였다.
정전은 아닌가...
두꺼비집이 떨어졌나 싶어, 현관으로 가는데 부엌에서 또각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했다.
자취니 나말고 다른 사람이 집에 있을리 없다.
기분 탓이리라 심호흡하고, 복도로 나왔다.
어두컴컴해 빛 대신 아까 전까지 쓰던 노트북을 들어 비췄다.
그 순간, 또각또각또각! 하고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구두를 신고 걸어오는 소리가...
더 이상 기분 탓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준이 아니었다.
확실히 들려오는 걸.
나는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현관으로 뛰쳐나갔지만,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반쯤 울먹이며 두꺼비집 전원을 올리자, 두세번 깜빡이다 불이 들어왔다.
평소처럼 흰 복도 그대로다.
물론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방에서는, TV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켜져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가보니, TV가 켜져있고 소리도 최대로 되어 있었다.
두꺼비집 떨어질 때까지 TV는 켜지도 않았고 소리도 보통 수준이었을텐데.
TV를 끄고, 나는 아직 내 손에 노트북이 들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니터에는 [포맷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떠 있었다.
그걸 보니 왠지 모르게 끝났다 싶었다.
아까 전 들려왔던 발소리도 기분 탓이리라 싶었다.
잠을 청했지만, 솔직히 무서워서 방에 불을 켜고 누웠다.
어느 정도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 나는 눈을 떴다.
일어나기 직전, 마치 호흡이 멈췄던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헉헉 숨을 내쉬며, 불을 켜려고 했다.
어...? 자기 전에 불을 켜놨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엌이 아니라 내가 있는 방안에서.
부스럭부스럭부스럭부스럭...
곤충이 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마 바퀴벌레겠지.
싫기는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려 했지만, 몸은 이미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심장은 터질 듯 빠르게 뛰고, 귀는 막힌 것처럼 멍해졌다.
일어나 불을 켤까 싶었지만, 만약 또 두꺼비집이 내려간 거라면, 이번엔 현관까지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얼굴 위를 무언가가 어루만졌다.
감촉으로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다.
그리고 귓가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구?]
굉장이 작은 소리였지만 틀림없이 들렸다.
여자였다.
내가 할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을 꼭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부스럭대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그것은 멀어져갔다.
어느새인가 잠에 빠진 나는, 이튿날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 가득 실같이 가늘게, 새빨갛게 부은 자국 투성이였다.
우선 회사를 쉬고 병원을 가려 했지만, 그 전에 신경이 쓰여 노트북을 켰다.
어제 그 메모리카드를 열었다.
포맷을 했는데도 안에는 파일이 들어있었다.
울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젯밤 일이 신경 쓰여 다시 사진을 열었다.
역시 그 눈이 없는 여자가 찍혀 있었다.
새까만 사진들을 보던 와중,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제는 몰랐지만 새까만 와중, 아주 약간 빛이 보였다.
구멍처럼.
다음 사진도 그래서, 가장자리 쪽에는 검은빛이 엷어지고 그 너머에 피부색이 보였다.
신경 쓰여 포토샵을 써서 밝기를 조정하고 확대하던 도중 나는 알아차렸다.
이거 혹시, 렌즈에 머리카락이 감겨 있는 건 아닐까?
저 너머에 있는 건 그 여자의 눈 부분인 건 아닐까?
혹시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메모리카드를 뽑고, 할머니가 준 부적을 꼭 쥔 채 근처 신사로 달려갔다.
그리고 메모리카드를 경내 구석에 묻고, 온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 날은 회사도 쉬고 피부과에 가서 약을 받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올 무렵에는 스스로가 바보 같아 공포감도 옅어졌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자, 어쩐지 심장이 아파왔다.
귀도 이상하다.
왜인가 당황해 노트북을 확인했지만, 당연히 메모리카드는 없었다.
신경과민인가 싶어 모니터를 보니, 내 문서에 본 적 없는 폴더가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열어보니, 역시나 그 사진이었다.
전부 들어있었다.
결코 파일을 옮겨놓은 적이 없었는데도.
이제 무리라고 생각한 나는, 그날 중으로 노트북을 중고가게에 넘겼다.
일단 포맷을 하기는 했지만 어떨지는...
그 후로는 무서워서 차마 컴퓨터를 살 생각도 않고 있다.
얼굴에 난 부은 자국도 사라졌고, 이상한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종종 긴 머리카락이 주머니에 들어있곤 하지만 뭐, 기분 탓이겠지.
여러분도 뭘 주울 때는 조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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