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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번역괴담][2ch괴담][765th]쿠로다군

괴담 번역 2016. 10. 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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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내가 살던 곳은 시로 지정은 되어있었지만, 도시는 아니었다.


편의점은 집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몇 곳 있지만, 전부 로손이었다.



 

패션잡지에서 옷을 보고 사고 싶어도, 전철을 30분은 타고 나가야 살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내가 자라고, 그와 만난 곳은 그런 동네였다.


그는 극히 평범한 보통 소년처럼 보였다.




그는 쿠로다 이오[각주:1]의 팬이었기에, 쿠로다군이라고 불렀다.


고등학교 1학년치고는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얗고 깔끔했다.


조금 싹싹하면서도 남자다운 데다, 고등학생답게 시끌벅적한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분위기 타기도 하고, 말도 잘하는 아주 평범한 반 친구였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사건을 겪고, 종종 말을 섞게 되기 전까지는, 그는 내게 그리 신경 쓰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체육대회 직후로 기억하고 있으니, 아마 1학기 말이었던 것 같다.




반 친구들 얼굴이랑 이름도 거의 외우고, 슬슬 고등학교에 들어와 사귄 친구들도 늘어날 무렵이었다.


초여름 밤도 어느새 깊어가고, 고등학생이 돌아다니기에는 약간 늦은 시간.


나는 동네에서 가장 큰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사러 갔었는데, 뜻밖에 늦어졌던가 그랬던 것 같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깔린 보도 옆에는 빽빽이 불을 켠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교차로와 횡단보도 근처, 상점이 없는 곳,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있는 가드레일.


나는 신호대기를 하며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드레일에 허리를 기대고, 어쿠스틱 기타를 어깨에 메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딱히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날도 거기 이르기까지 몇 명인가 기타 치는 사람을 지나쳐 왔으니.


하지만 그는 소리 질러 노래 부르지도, 허리를 숙여 죽어라 기타를 치지도 않았다.




그저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기타를 조용히 치고 있을 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기타 치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니, 쿠로다군이었다.




그는 반에서도 꽤 떠들썩한 녀석이었지만, 음악 얘기를 좋아한다거나 밴드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어안이벙벙했다.


쿠로다군도 나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밴드라도 하는 거야?]


내가 묻자, 쿠로다군은 조금 수줍은 듯 웃었다.


[그렇지도 않아. 하지만 밤에 혼자 어슬렁거리면서 기타 치는 걸 좋아해.]




나는 뻔뻔하게도 [뭐 하나 쳐봐, 그럼.] 하고 말했다.


쿠로다군은 역시 조금 수줍은 듯 웃고, 카펜터스[각주:2]의 "Sing"을 연주했다.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기타를 치는 건 대단하다 싶었지만, 스스로에게는 무리라고 여기고 있었지.


쿠로다군의 연주는 그런 내 입에서 [우와!], [진짜 잘 친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쿠로다군은 [부끄러우니까 비밀로 해줘.] 라고 역시 수줍은 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버리였던 나였지만, 그 약속은 잘 지켰다.


쿠로다군이 기타를 친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됐을 때였다.




그 무렵 친하게 지내던 친구 녀석이 [담력시험 하러 가자.] 라며 권유해왔다.


오컬트 같은 건 관심이 없었던 내가 거기 끌려가게 된 건, 당시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같이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담력시험이라고는 해도 별것도 아니었다.




번화가 한가운데 교차로에서 몇달 전 사망사고가 있었는데, 그 후 거기 죽은 부녀가 서 있다고 하는 이야기였다.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그렇다고 넘기기도 좀 그런, 흔해빠진 소문을 확인하러 가자는 싱거운 것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 우리에게는 가슴 뛰고 두근거리는 모험이었을 테지만.




주말 밤, 시간은 11시 조금 넘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이 그 교차로로 향했다.


번화가 한가운데, 교차로 옆.




가게들이 이어지다 사라진 곳.


거기로 향하는 사이, 나는 거기가 쿠로다군이 기타를 치던 곳이라는 걸 떠올렸다.


잔뜩 들떴던 마음이 순간 확 식었다.




정말 뭐가 나온다면 그런 곳에서 쿠로다군이 기타를 계속 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녀석 성격에 뭘 봤다면 다음날에는 반 전체에 이야기가 쫙 돌았을 거였거든.


그것도 온갖 허풍이 잔뜩 붙어서 말이지.




나는 담력시험에 완전히 흥미가 떨어져, 좋아하던 여자아이 뒷모습이라도 감상하려 고개를 들었다.


여자아이 머리 너머, 교차로가 보였다.


쿠로다군의 호리호리한 실루엣이 보인다.




역시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잖아.


멍청하게 이게 뭐람.


다른 녀석들은 생각도 못 한 쿠로다군의 기타 연주에 주목했지만, 나는 완전히 김이 빠져버렸다.




[여기, 귀신 나오지? 안 무서워?]


[엥? 나 아무것도 못 봤는데. 담력시험 같은 거 하러 오는 사람은 꽤 있지만, 다들 아무것도 못 보고 금세 돌아가더라.]


귀신은 안 나온다고 웃는 쿠로다군을 따라 다들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오싹해졌다.


말하면서 쿠로다군은 계속 내 쪽을 힐끗힐끗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로다군이 여기서 기타를 연주한다는 걸, 그것도 아마 매일 저녁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그 나를 경계하듯 보며, "아무것도 못 봤는데." 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쿠로다군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그 후, 기껏 모였는데 노래방이나 가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1학기 시작할 때 받아서 집 전화 옆에 던져놨던 긴급연락망을 꺼내 들고, 쿠로다군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며 시선으로 번호를 찾는다.




곧바로 PHS[각주:3]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째서인지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번호를 누르는데, 아래층에서 누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쿠로다군이라는 애가 전화했는데!]




그 순간, 이후 쿠로다군 때문에 맛본 공포 중에서도 가장 큰 무서움이 온몸을 덮쳤다.


아래층까지 어떻게든 내려가 무선 전화를 손에 들었지만, 무서워서 혼자 쿠로다군과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 목소리가 들리게, 누나와 남동생, 아버지가 있는 거실 구석에서 통화를 시작했다.




[어, 나야. 늦게 받아서 미안.]


한여름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이까지 덜덜 떠는 나와는 정반대로, 쿠로다군은 평소처럼 말을 걸었다.


[뭐 하고 있었어?] 라던가, [나도 지금 막 돌아왔어.] 라는 둥 한동안 별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윽고 조금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전 일인데... 너한테는 다시 한 번 들켜버렸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말해주려고.]


한숨을 크게 쉬고, 쿠로다군은 말을 이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야, 자기가 죽었다는 걸 몰라. 알아차리기도 전에 죽으면 멍하니 거기 계속 있거나 하는 거지. 하지만 몹시 소중한 것이나 중요한 일은 기억하고 있어. 거기 있던 건 여자아이 아버지야. 여자아이는 없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아저씨는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아차리기 전에, "소중한 딸이 피를 흘리고 있다" 는 걸 마음에 새겨버렸어. 딸이 다쳤다는 큰일 앞에, 자기가 죽었다는 건 사소한 일로 느낀 걸까. 딸을 도와야 한다고 느끼지만,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는 거야.]




쿠로다군의 목소리는 떨려오고 있었다.


[눈앞에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게 보이는 것 같아. 계속 필사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지. 하지만 아무도 돌아봐 주질 않고. 종종 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도, 겁에 질려 도망가버리고 말이야. 그건 어떤 기분일까. 그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자기 팔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걸 계속 느끼고 있어. 그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아저씨랑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내 딸 좀 살려주세요." 그 아저씨는 계속 울고 있었어. 나는 "곧 구급차가 올 거예요. 따님은 괜찮아요." 라고... 몇 시간이고 그러고 있으면, 아저씨는 겨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며 울음을 멈춰.]


그럼 한이 풀리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이어 들려온 쿠로다군의 말에 그 생각은 깨지고 말았다.





[근데... 그다음 날 거기에 가면 또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면서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매일 거기에 가는 거야. 그저 위로밖에 못하지만, 언젠가 그 아저씨가 딸이 더는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딸의 곁에 갈 때까지... 함께 있으면서 "구급차가 올 거예요." 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 수화기 너머 쿠로다군은 역시 곤란한 듯 수줍게 웃었다.


딱히 눈에 띄지도 않고, 반에서 언제나 평범했던 쿠로다군은,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하게 지내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었으리라.




한여름 길가에 몇 시간이고 서 있기 위해, 반쯤 재미 삼아 오는 우리 같은 녀석들에게 [여기 계속 있어도 아무것도 못 봤는걸?] 이라고 말하기 위해.


중학교 때 시작했다는 기타는, 그러는 사이 실력이 늘었던 것이다.


아직도 카펜터스의 "Sing"을 들으면 쿠로다군이 떠오른다.




  1. 黒田硫黄. 1971년생 일본 만화가. 국내에는 작품 중 '가지' 상/하권이 발매되었다. [본문으로]
  2. The Carpenters. 리처드 카펜터와 캐런 카펜터 남매로 구성된 미국의 팝 듀오. 1970년대를 풍미하며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본문으로]
  3. Personal Handy-phone System. 국내에서도 애용되었던 발신전용 이동전화, 시티폰의 발전된 버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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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64th]놀자 아저씨

괴담 번역 2016. 10. 1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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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내가 살던 도쿄 어느 지역에는 "놀자 아저씨" 라는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무렵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종이봉투에 좌우가 비뚤어진 눈을 그리고, 그걸 쓰고 다녔습니다.




목 부분은 줄로 묶어서요.


학교에 8시가 넘도록 남아 있으면, 그 아저씨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우리 집은 맞벌이라 집에 가도 나는 늘 한가했기에, 그날은 아저씨를 만나볼 생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학교에 7시 반 즈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한테는 그 정도 시간만 돼도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정면 현관은 자물쇠가 잠겨 열리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관 밖에 누군가 있었습니다.




[놀자, 놀자.]


몇번이고 반복하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하다고 느낀 나는, 죽어라 달려 다른 출구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복도 창문 밖을 보니 아저씨도 달리고 있었습니다.


달리며 외치고 있습니다.


[놀자아아아아...]




나는 너무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넓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체육관까지 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곳에 불도 안 켜고 있자니 너무 무서웠습니다.


나는 서둘러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후회했습니다.




체육관 창문 전부에 아저씨가 달라붙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으니까요.


[놀자.]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선생님에게 엄청 혼났습니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체육관 밖에는 종이봉투가 잔뜩 버려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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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이야기다.


동아리 친구 20명 정도가 모여, N현에 있는 산에 캠핑을 갔다.


이틀째 밤, 캠프파이어를 하고, 그대로 거기서 먹고 마시며 신나게 놀았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 술도 음식도 바닥났다.


하지만 아무래도 술이 더 먹고 싶어, 누가 내려가 더 사오기로 했다.


술을 사러 가는 건 차를 타고 와서 술을 마시지 않았던 A로 일단 정해졌다.




하지만 A는 [혼자 가기 싫어.] 라고 말해, 가위바위보로 세 명을 더 뽑기로 했다.


결국 나랑 B, C가 추가로 더 뽑혔다.


네 명 모두 남자였다.




캠핑장을 나와, 우리는 A의 고물 블루버드에 올라타 산을 크게 돌아 아래로 내려왔다.


하산하는 동안에는 딱히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로웠고, 산기슭에 있는 편의점에서 술과 과자를 샀다.


그리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오던 터였다.




한동안 달리고 있는데,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고 있던 B가 [야, 지름길 있는 거 같은데?] 라고 말을 꺼냈다.


우리가 처음 타고 온 우회로 말고, 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지도를 보고, 확실히 지름길이라고 느꼈기에 우리는 그 길로 들어섰다.




한동안 달리고 있는데, 왼편에 신사인지 절인지, 흰 벽이 보였다.


아래는 자갈이 쫙 깔려 있었고.


이런 곳에 웬 신사인가 싶어 보고 있는데, 그 벽 근처 수십 미터 거리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멍하니 다가 가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가 세명, 여자가 한명 있었다.


두 남자가 여자의 다리를 한쪽씩 잡고, 질질 끌고 있었다.




다른 한 남자는 그 두명 앞에 서서, 길을 이끌 듯 걷고 있었다.


여자는 양다리를 잡혀 있으니, 머리가 자갈길에 완전히 갈리고 있었다.


우리는 놀라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때는 그것이 영혼이 아니라 무언가 위험한 사건을 목격한 것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C가 말했다.


[내리자.]




나는 솔직히 정말 싫었다.


하지만 C는 현 유도대회에서 3등을 차지할 정도의 유단자였던데다, 인원수도 우리 쪽이 많았다.


지지는 않을 것 같아 잠자코 그 말을 따랐다.




차를 세우고, 회중전등을 손에 든 채 뒤에서 따라간다.


세 남자와 한 여자는, 벽을 따라 계속 걷고 있었다.


여자를 질질 끌고 있기에 걷는 속도는 꽤 느렸다.




5분 정도 걸었을까.


흰 벽이 끝나는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앞에 가던 이들이 벽을 직각으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우리도 그 모퉁이에서 옆으로 돌았다.


하지만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순간 사라졌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우리는 가지고 온 회중전등으로 주변을 비추었다.


가까운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더 안쪽을 비춰봤다.




그러자 거기에는 회중전등 불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수많은 묘비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우리는 미친듯 달려 도망쳤다.


다들 엉엉 울고 있었다.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고, 죽어라 달려 캠핑장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기다리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만, 당연히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차 타고 오면서 그런 이야기나 꾸미고 있었냐?] 라는 반응일 뿐.




하지만 다들 엉엉 울며 소리치니, 결국 텐트에 한 명씩 끌려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당연히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우리 이야기는 전부 일치했고.


우리가 본 건 그것뿐이었고, 그 이후 딱히 이상한 일 같은 건 없었다.




지금도 그때 우리가 본 게 뭐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날 차를 탔던 우리 4명은 분명히 똑같은 것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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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으로 질투를 하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상냥하지만 묘하게 부정적인데다 외로움쟁이였다.


내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누구에게 무슨 용건인지, 집요하게 캐묻곤 했다.




휴일에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했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거나 하면, 10분에 한번꼴로 연락이 계속 온다.


내 모든 행동을 관리하고 싶어했다.




또, 내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이웃사람한테 인사하는 것조차.


레스토랑 같은데를 가도 종업원이 여자면 꼭 여자친구가 주문을 했다.




친하게 지내던 누나가 있었는데, 그 누나도 여자친구한테 시달리다 연락을 끊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여자친구네 가족한테 상담을 해봤다.


[우리 아이는 전에 사귀던 남자한테 차이고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해졌다네. 그래도 자네랑 사귀고 많이 안정을 찾은거야. 조금 이상한 구석도 있겠지만, 불쌍한 아이니 지켜봐 주게나.]




언중유골.


더 이상 딸이 이상해지지 않게 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경찰로 일하는 친구에게도 상담을 해봤지만, 실질적으로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공권력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돌봐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야기로 풀기에도 너무 늦었고.


더 이상 같이 있다간 내가 미칠 것만 같았다.




여자친구네 집에 가, 가능한 한 온건하게 돌려서 이별 이야기를 꺼내봤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사람 같지 않은 형상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설득을 시도했지만, 여자친구는 집요하게 내 눈알을 뽑아내려 들었다.




겁에 질린 나머지, 나는 여자친구를 냅다 밀치고 말았다.


멀리 나가떨어진 여자친구는,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오한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맨발로 여자친구 집에서 뛰쳐나왔다.


엘리베이터를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문을 부수듯 박차고 나왔다.


맨발에, 손에는 식칼을 든 채.




그걸 보자마자 엘리베이터는 포기하고 계단을 향해 뛰었다.


아파트 계단을 구르듯 달려 내려왔지만,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여자친구 발소리가 들려왔다.


1층 현관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사이, 여자친구는 더욱 빨리 쫓아왔다.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귀에는 여자친구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바로 뒤에 여자친구가 왔다 싶은 순간 그대로 주저앉아 발을 걸었다.


여자친구는 내게 걸려 넘어져, 그대로 얼굴부터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떨어트린 식칼을 발로 멀리 차고, 여자친구가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내 차로 향했다.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낸다.


문을 열고 안에 몸을 던진 후, 곧바로 시동을 건다.




후진해 방향을 돌리고, 주차장 밖으로 나가려 액셀을 밟으려는 찰나.


운전석 문이 덜컥 열렸다.


숨을 들이마시는 바람에 [히익...] 하고 꼴사나운 비명을 외치고 말았다.




여자친구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쓰레기 소각로가 활활 타오를 적,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여자친구는 그때 느꼈던 맹렬한 열기와 닮은 느낌이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액셀에 발을 올리고, 힘껏 밟았다.


여자친구는 문을 잡고 따라오며 내 이름을 절규하듯 외쳤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지면서, 결국 손을 놓치고 말았다.




손톱이 벗겨진 듯, 운전석 문에는 피로 선이 그려졌다.


밤거리를 미친 듯 달리며, 나는 흐느껴 울었다.


그날로 짐을 정리해 친가로 도망쳤다.




그 후 두번 다시 그녀는 보지 못했다.


그녀한테도, 그녀의 친가에서도 전혀 연락이 없었기에 혹시 자살한 건 아닌가 두려워했지만, 다른 친구 말로는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마음을 좀 놓은 나는,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라도 만들 요량으로 냉장고를 열자, 작은 상자가 들어있었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지만 열어봤다.


안에는 그날 여자친구네 집에 신고 갔던 구두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리고 편지봉투가 하나.


그걸 보자마자, 그날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심장은 갑자기 날뛰고, 입안은 바짝바짝 말라 기분 나쁜 맛이 느껴졌다.




가빠져가는 호흡을 간신히 달래며, 조심조심 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편지가 아니라 딱딱한 꽃잎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진 그것이 벗겨진 손톱 10개라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내던졌다.




당황해 친구에게 연락을 하려 했지만, 집 전화는 신호가 가질 않았다.


자세히 보니 전화선이 끊겨 있었다.


목 안에서 이상한 신음을 내며, 충전기에 꽂아둔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동시에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에게서.


아까 전 손톱처럼, 나는 기겁해 핸드폰을 내던졌다.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내 뒤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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