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2017/01

[실화괴담][82nd]의문의 전화

실화 괴담 2017. 1. 8. 23:46
320x100



*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랜서님이 방명록에 적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중3때 겪은 일입니다.


그날 저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핸드폰을 하다가 뺏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주일 뒤에 돌려준다며 서랍에 보관하신다고 하셨죠.




핸드폰을 워낙에 사랑하던 저는 여러번 그런경험이 있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핸드폰을 뺏겼다는 말을 하고, 학원에 가기 전에 잠깐 컴퓨터를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 전화가 오더니 조금 곤란해 하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가 약간 놀란 얼굴로 [너 핸드폰 뺏긴거 맞니?] 라고 물어오셨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죠.


하지만 그 후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의문투성이였습니다.




그날, 보충이 있다고 일찍 오라는 말을 전하러 학원선생님께서 제 폰으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전화를 받은 뒤, [여보세요.] 라고 대답까지 했다는겁니다.


학원 선생님이 [A야. X학원이야.] 라고 말씀하자 갑자기 제가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건 학원에 갔을때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전화를 받을 때 나오는 버릇을 그대로 알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하기가 굉장히 귀찮아서, 평소에도 여보세요보다는 "여ㅂ세ㅇ" 정도에 가깝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가 딱 그런식으로 전화를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선생님은 이전까지 저와 통화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놀랄 수 밖에 없었죠.


선생님이 쓸데없이 장난을 치셨을 것 같지도 않고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핸드폰은 담임선생님한테 있고 그분은 여자분이시며, 핸드폰을 뺏길 때도 꺼져있는 상태였다고 구구절절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학원 선생님께서는 믿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동녹음된 파일이 있다고, 진실을 밝히자며 학원 교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파일을 틀었을 때 저와 그곳에 계셨던 모든 선생님들이 들었습니다.


[끼기기기기기기긱...] 하는 알수 없는 파열음 같은 소리를요...


중간중간에 선생님의 목소리까지 들렸습니다.




[A...야... X학..원...이..야...]


그날 제가 무서워서 잠을 설치던 중, 아버지께서 달마가 그려져 있는 부적을 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어떤 꿈을 꾸었는지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습니다.




잘 때 땀이 젖을 정도의 계절은 절대 아니었던 것만 기억합니다.


그 뒤로 저는 그 부적을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영적 존재를 믿게 되었죠.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804th]할머니와 형

괴담 번역 2017. 1. 7. 23:26
320x100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일정으로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다.


첫날밤은 토호쿠의 어느 여관에서 묵고, 둘째날은 우리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작은 별장에서 자기로 했다.


별장을 살 무렵에는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할머니를 별장에 모셨었다.




그렇기에 할머니가 쓰시던 일본식 방도 있어, 거기를 침실로 삼아 자기로 했다.


하룻밤을 보내고 일어났더니,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친구가 보이질 않았다.


나와보니 부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친구는 내가 일어난 걸 보고는, [야! 나오면 나온다고 최소한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냐!] 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소리쳤다


잠이 막 깬 터라, 틀림없이 벌레 이야기를 하는거라 생각했다.


[벌레? 약을 친다고 쳤는데 나왔나 보네... 거기 스프레이 있는데 그거 쓰지 그랬냐...]




그랬더니 오히려 화를 빽 냈다.


[그거 말고! 귀신!]


친구의 말에 따르면, 한밤 중에 누가 이름을 부르는 거 같아 눈을 떴다고 한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질 않고, 왠 할머니가 자기 얼굴 바로 옆에서, [A야...] 하고 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 이름은 A가 아니다.


그렇기에 [제가 아니에요!] 라고 필사적으로 외치며, [내 이름은 K입니다.] 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A야... A야...] 하고 밤새도록 불러댔다는 것이다.


A라는 이름은 우리 형 이름이었다.


실은 10여년 전, 그 친구와 만나기도 전에 이미 죽은 형.




바다에 갔다 사고로 익사했는데, 하필 그 무렵 할머니가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해 계셨었다.


할머니에게는 충격을 받으실까봐 형의 죽음을 숨겼는데, 결국 할머니는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나셨다.


혹시 할머니는 내가 나랑 비슷한 또래를 데려왔으니, 그게 형이라고 착각하셨던 걸까.




그렇다면 할머니는 죽어서도 아직 형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일까.


나는 그게 못내 슬프다.

320x100
320x100




이비인후과 의사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병원에 귀가 안 좋은 아저씨가 찾아왔더란다.


진찰을 해보니 한쪽 고막이 찢어져 있었다.




그것도 상처가 심해, 화농이 지고 고름이 고여 있었다.


반대편 귀는 원래 들리지 않는 듯 해, 남자는 꽤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바로 치료하려 했지만, 갑자기 같이 온 아줌마가 장애인이라고 인정하라고 따지기 시작했단다.




[아니, 우선은 치료를 해야죠. 상처를 치료한 다음 여전히 청력에 문제가 있으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아줌마는 장애인이라고 인정하라고 떠들 뿐이었다.


아저씨의 상태가 어떤지, 나을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한마디 묻지도 않고.




끝내는 미친 의사라고 욕까지 먹고, 당신 같은 의사는 의사도 아니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결국 병원 사무장이 나와 같이 설득했다고 한다.


사무장을 부르러 갈 때, 아저씨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미안합니다...] 라고 말했다.




괴로운 듯한 얼굴이었다.


결국 상처는 치료하게 되었지만, 아저씨도, 아줌마도 그 후로 병원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아저씨 귀를 아줌마가 상처낸 것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320x100

[실화괴담][81st]제사상과 두부

실화 괴담 2017. 1. 4. 23:18
320x100



*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광절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거실에서 가족끼리 치킨을 뜯으면서 티비를 보고있었는데, 모 미식 프로그램에서 두부가 나왔습니다. 


가마솥에 두부를 끓이는 것을 보며 어머님께서 저희 외갓집은 제사상에 두부를 내놓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두부구이를 제사상에 내놓는것이 드물거나 유별난 일도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옛날, 다들 집에서 가마솥으로 밥을 하던 시절에는 두부도 집에서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과학시간에 두부를 만들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두부는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손이 모이는 명절날, 그것도 돈 좀 있는 양반집이나 먹었다고 합니다. 


그날은 명절날, 새 며느리가 부엌에서 두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두부는 제조 공정상 끓이면서 계속 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며느리는 가마솥에 불을 때우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나무주걱으로 갈아내서 걸러낸 콩물을 열심히 저었습니다.


이 며느리는 아들을 낳은 며느리였습니다. 


그것도 집안의 첫 손주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 기간동안 쉬다가, 손이 필요한 명절이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방에 들어간 것입니다. 


등에는 아직 젖먹이를 포대로 업은 상태였습니다. 


가마솥을 실제로 써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이게 굉장히 깊고 큰데다, 가마솥의 높이가 주방일을 하기에 굉장히 비효율적인 높이입니다. 




불은 앉아서 때야 하고, 솥 안을 보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 높이지요. 


요즘 인테리어로 보면 인체공학에는 영 꽝입니다. 


돈 많은 양반집이니 식구도 많고, 먹는 입이 많으니 먹는 양은 또 오죽하겠습니까. 




게다가 옛날에는 한번 만들면 옆집에도 주고 그랬잖아요. 


거기에 나라 관리가 된 양반은 백성들에게 항상 은덕을 배풀어야 하는 입장이라, 양반이 한번 일을 벌이면 그 마을사람들은 양반나으리나 먹는 귀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대대로 무관에 급제하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유서 깊은 지방 유지 집안의 며느리는 당연히 가마솥 가득 콩물을 끓였답니다. 



 

군대에서 삽질 했던 분들은 아마 아실겁니다. 


아니 삽질까지 갈 필요도 없나요. 


고추장이나 된장을 담가보거나, 취사병 일하시는걸 보신 분들은 큰 솥에 쓰던 나무주걱이 굉장히 크다는걸 아실겁니다. 




삽만큼 큰 나무주걱을 온몸으로 젓다보면 허리가 아프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가득 콩물을 담았으니 힘들기는 또 엄청 힘들겠죠. 


출렁거리는 콩물을 젓다가 겨우 한숨 내쉬며, 며느리는 콩물이 얼마나 끓었나보려 몸을 좀 더 숙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등에 업혀있던 젖먹이가 가마솥 안에 풍덩 빠졌습니다.  


펄펄 끓던 가마솥에 젖먹이가 통으로 빠졌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요.


채 돌도 지나지 못한 아이는 온몸이 익어서 죽어버렸습니다.



 

집안의 첫 손주였으니 그 슬픔은 더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갓난손주의 죽음에 즐거워야 하는 명절은 비탄과 절망 속에서 보냈고, 당시 집안어른이셨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나 죽고나서는 제사상에 두부를 올리지 말거라.] 



 

저희 외갓집에서 4, 5대 전에 일어났던 실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저희 외갓집은 제사상에 두부가 올라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802nd]떠오른 시체

괴담 번역 2017. 1. 2. 23:46
320x100




20여년 전, 지역 해수욕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생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가, 며칠 지난 뒤 그 시체가 바다에 떠올랐다.


거기까지는 안타깝고 참혹한 사고일 뿐,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떠오른 사체에는 뼈가 없었다.


대신 살가죽 안에 조개와 게만 가득 들어있을 뿐.


그 아이 가족과 우리 할아버지는 사이가 좋았기에, 장례식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아이 어머니는 [무덤에 넣을 뼈가 없어! 뼈를 돌려줘!] 라며 반쯤 미쳐 울부짖었다고 한다


결국 뼈 대신 조개와 게가 들어있던 이유는 차마 묻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따로 들은 이야기는 없다고 하지만, 이유도 알 수 없을 뿐더러 그 가족이 불쌍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이의 몸 안에 들어가 있던 게와 조개는, 뼈를 잡아먹고 거기 서식하고 있던걸까?


그렇다면 왜 부드러운 살이 아니라 뼈를 먼저 먹어치운걸까.


알 수 없지만 섬뜩한 이야기였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801st]짧은 창

괴담 번역 2017. 1. 1. 23:06
320x100




증조외할머니 장례식날, 친척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증조외할머니 시신 곁에 짧은 창이 있길래 이상하게 생각해 친척분에게 여쭤봤었다.


그 창은 증조외할머니가 직접 마련해 두신 것이었다고 한다.




옛날, 증조외할머니의 친척이 돌아가셨을 때, 증조외할머니가 향을 올리려는데 시신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증조외할머니는 기겁해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고조외할머니가 안방에서 짧은 창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랬더니 시신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추더라는 것이다.


증조외할머니가 사는 곳에는 이따금씩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 부적 삼아 짧은 창이나 날붙이를 시신 옆에 놓아두는 것이다.




혹시 죽은 게 아니라, 아직 살아있던 사람이 움직인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확실히 몸이 차가워지고 심장도 멈췄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었다고!] 라던가, [목을 졸릴 뻔 했었어.] 라고 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그 때문에 증조외할머니는 생전부터 자신이 죽으면 꼭 시신 곁에 짧은 창을 두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왜 짧은 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풍습이다.


산속, 그리 많은 사람이 살지는 않는 시골 마을 이야기였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