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괴담 번역

[번역괴담][2ch괴담][797th]어둠

괴담 번역 2016. 12. 24. 23:38
320x100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 무렵, 세미나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세미나가 끝나고, 회식자리에서였다.




세미나는 도중부터 인간 심리에 관한 시시껄렁한 잡담 같이 됐던 터였다.


그래서 나도 편하게 [선생님, 뭔가 재밌는 이야기 있으면 좀 들려주세요.] 라고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꽤 재밌는 분이라, 심리학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하듯 풀어놓는 걸 좋아하는 분이시다.




다만 그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좀 의심스러운 것 투성이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몇십년 전, 어느 나라에서 은밀하게 실험이 행해졌다.




실험 내용은 폐쇄 공간에서 감각을 차단시킨 뒤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차단하는 감각은 시각, 그리고 시간 감각도 같이 빼앗아 보기로 했다.


지금은 감각 차단이 치료 요법으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그 무렵에는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피험자는 중범죄자들이었다.


사법거래로, 실험에 응하면 형을 감면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통해 실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피험자는 약을 먹고 잠에 든다.




눈을 뜨면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폐쇄 공간 속이다.


피험자는 완전한 어둠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시간도 알 수 없다.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이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인간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완전히 미쳐버렸다.




애시당초에 중범죄자들이었으니 미치든 죽든 나라 입장에서는 신경도 안 썼겠지.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요인 중, 시간 감각의 결여가 있다.


다들 시간이라고 하면 시계를 떠올리겠지.




하지만 그렇게 정확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해가 떠올랐다 지고, 밤이 오고.


그런 너무나도 당연한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감각이 완전히 차단되면, 끝내 정신에 이상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약하기 짝이 없는 생물이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인간이 가진 상상력이 문제였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인간의 상상력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판별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여러분 모두 악몽을 꾸거나, 밤에 혼자 거닐다 보면 괴물이 나오지 않을까 겁에 질리곤 하겠지?




하지만 그건 대체로 지금까지 보아온 이미지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자기 경험과 기억을 기반으로, 뇌 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뇌 속에 있는 경험과 기억 이외의 상상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보았다.


뇌 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을 듯한 공포를.


진정한 어둠이라는 극한 상황과, 극한까지 몰아붙여져 갈려버린 정신 속에서.




그들은 그 자신의 상상을 보고 미쳐버린 것이다.


단순한 뇌 속 이미지인데도, 그것에 미쳐버리다니.


역시 인간은 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아, 어째서 그 사람들이 상상의 영역을 넘은 존재를 보았다고 생각하냐고?


실험이 끝난 뒤, 미쳐버린 이들에게 최면을 걸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그들이 그린 것은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저런 것들이 나온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존재도 있고, 그들에게 당한 피해자도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 누구나 납득할만한 존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간다.




최면이 점점 깊어지면, 이제 누구도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연구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고 한다.


사람의 뇌는 한계를 넘으면 뇌 속 기억 이상의 존재를 보게 한다고.




그리고 최면에 걸린 이에게 [마지막으로 본 게 무엇인가?] 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실험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으니, 덤으로 말이지.


그랬더니 모든 이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어둠.]


그들은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빛이 사라진 어둠 뿐인 공간 속에서, 그들은 그 이상의 어둠에 삼켜지고 만 것이다.

320x100
320x100




과거, 심령 스폿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담력시험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밤인데도 잔뜩 흥분해 있다.


얼굴만 봐도 마치 장난을 잔뜩 친 아이 같은 표정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놀려주는 걸 좋아했다.


의미심장한 말투로, [혹시... 그곳에 다녀오셨습니까?] 라고 말을 건네는 거야.


그러면 상대는 놀람 반 기쁨 반으로, [네!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대답해온다.




그러면 나는 손님이 산 물건에다가 젓가락 같은 걸 집어넣으면서 말하는 것이다.


[인원수대로 넣겠습니다.] 라고.


그래놓고는 실제 손님 인원 수보다 하나 더 집어넣는거지.




그러면 다들 기겁하는 게 꽤 재미있거든.


어느날, 평소처럼 담력시험하고 온 일행이 편의점에 들어섰다.


총 4명이었기에, 나는 여느때처럼 나무젓가락을 5개 집어넣었다.




하지만 손님은 [미안합니다. 이건 필요 없어서요.] 라고 말하며 2개를 돌려주었다.


어라, 싶어서 가게 안을 둘러보니, 손님은 세명 뿐이었다.


[앗, 죄송합니다.] 라고 가볍게 사과한 뒤 계산을 마쳤다.




손님들은 차를 타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지만, 확실히 차에는 세 사람 뿐이었다.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제대로 데리고 돌아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795th]LED 라이트

괴담 번역 2016. 12. 17. 23:48
320x100




문득 마음내키는 대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도중에 산길 같은 길이 있었는데, 거기로 접어들어 달리는 도중 엔진이 멎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벼랑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보닛을 열었다.




나름대로 정비 지식도 있고, 꾸준히 점검도 받아왔던 터다.


배터리 때문인가?


아니면 발전기?




연료 펌프나 벨트가 끊어졌나,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여기저기 점검해봐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뭘 하는거야?] 라고 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린다기보다는, 머릿속에 직접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큰일났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두리번대고 있는데, 차를 세운 곳 옆에 있는 대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 숲 안쪽에서 엄마와 작은 아이가 손을 잡고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반쯤 투명해서, 한눈에 봐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가 들려온다.


[뭘 하는거야!]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해야할까 당황한 나머지, 나는 그만 보닛 안을 비추고 있던 LED 라이트를 그쪽으로 비췄다.


젠토스의 500루멘짜리 고조도 라이트였다.




그러자 귀신인 듯한 모자가 분명히 "우왁! 이게 뭐람!" 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슥 사라져버렸다.


보험회사에서 찾아오기까지 1시간 가량, 정말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정비소에 차를 맡겼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결과가 돌아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귀신에게 강렬한 빛을 비추면 물러간다는 교훈을 얻은 날이었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794th]인형굽기

괴담 번역 2016. 12. 16. 23:54
320x100




어느 여름날 이야기다.


그날은 이전부터 가려고 마음 먹었던 근처 신사를 찾았다.


나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거나, 이상한 걸 보는 걸 취미로 삼고 있다.




이날 역시 지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따라 신사를 찾은 터였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 신사에는 대량의 인형이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인형신사" 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리 유명한 신사가 아니라서, TV에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근처라고는 해도 차로 한시간 반 거리다.


도중 산길로 들어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차안에서 혼자 목적지를 생각하며 나아갔다.




신사에 도착해 차를 멈추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상당히 긴 계단이었다.


평소 운동부족 때문에 숨이 차올랐지만,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기묘한 고양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계단이 길면 길수록, 더 큰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단으로 가려진 경치가 드러나고, 마침내 신사가 모습을 나타낸다.


훌륭한 기둥문을 지나, 눈앞에 건물이 나타난 순간.




귓가에 이상한 귀울림이 울려퍼졌다.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영감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감각은 진짜로 겁에 질리는 동시에, 반대로 의욕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슨 의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빨리 경내를 둘러봤다.




훌륭한 신사다.


상당히 넓고, 구조도 깔끔하다.


하지만 역시나 거기에는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신사에 다 안치하지 못한 인형들은 마룻바닥에까지 깔려 있었다.


수많은 눈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찌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그만큼 압권이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한동안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정면의 큰 건물, 아마 본전이겠지.


거기서 하카마를 입은 사람이 당황한 모습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홀로 근처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경건하지 못한 일이지만, 내심 잘됐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인형이 안치되어 있는, 남자가 뛰쳐나온 본전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본전에서 또 사람이 둘 후닥닥 튀어나왔다.


그 중 한 사람을 잡아 무슨 일인지 물었다.


[바쁘니까 나중에 부탁합니다.]




남자는 그렇게만 말하고, 또 후닥닥 인형들을 향해 사라져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석연치 않은 얼굴로 잠시 서 있자니, 이번에는 본전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대로 된 옷을 갖춰입은 신주 같은 사람이 나왔다.




[인형을 치료하러 왔는가?]


나는 [아뇨, 그냥 참배하러 왔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주 같은 사람은 [그러면 돌아가시게. 안 좋은 말은 하지 않을테니. 오늘은 날이 좋지 않아. 다시 오게나.] 라고,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과감하게 물어봤지만, 신주는 [관련되지 않는게 좋다네.] 라는 말만 남기고 본전으로 돌아갔다.


여기저기 이삿날처럼 소란스러운데, 왠지 나만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덩그러니 놓여진 기분이었다.




어차피 인형이 도망갈 일도 없으리라.


여기서는 신주가 말하는대로 돌아갔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 싶어 돌아설 때였다.


웅성대며 아까 세 사람에 더해, 두 사람이 더 나왔다.




관처럼 큰 상자를 들고 있었다.


기묘한 일행은 본전 뒤로 사라졌다.


곧이어 신주도 나와 똑같이 본전 뒤로 향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나 역시 자연스레 본전으로 발걸음을 올리고 있었다.


경고에 대한 공포심보다, 호기심이 더 컸던 탓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끝까지 가는 수 밖에.




본전 옆 길을 나아간다.


길은 나무가 무성해 어슴푸레하고, 이끼가 끼어있었다.


조금 나아가니 전방이 탁 트인 광장 같은 곳이 나왔다.




신주와 그 일행은 분주히 캠프파이어 장작 같은 걸 네모나게 쌓고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아까 그 관 같은 상자가 가장 튼튼해 보이는 나무토막 위에 놓여 있었다.


신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혼이 날까 겁이 났지만, 딱히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작업에 계속 임하고 있었다.


왠지 허락을 받은 느낌이 들어, 나는 나무그늘을 벗어나 광장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기대와 불안에 안절부절 못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시야에 사람이 비쳤다.


신주도, 하카마를 입은 이도 아니다.


보통 할아버지였다.




내 오른쪽 20m 정도 위치에 서서, 나처럼 신주와 그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가요?]




[인형굽기라네.]


할아버지는 상냥하게 대답해주셨다.


[지금부터 인형을 구워 공양하는게야.]




[인형굽기... 입니까.]


따라오길 잘했다 싶었다.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왜 이런 시기에?


나는 틀림없이 이런 건 연말에나 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오늘은 그저 여름날일뿐, 특별한 날도 아니다.




[자주 보러 오십니까?]


할아버지에게 여쭸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란 말이야, 이게. 이런 시기에 하는 것도 드물고, 이렇게 큰 인형을 굽는 것도 처음이라네.]




잠깐 뜸을 들이고, 할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하다네.]


한발 더 내딛어 보기로 한다.




[특별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내 질문에,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표정이 흐려졌다.


잘못 물어봤나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네만...]


그런 이야기라면 당연히 대환영이다.


[실은 저 인형, 원래 본전 옆에 있는 창고에 엄중히 보관되던 것이라네. 하지만 오늘 이른 아침, 사흘만에 신주가 창고를 들여다봤는데 그 인형이 사라졌다지 뭔가. 신주랑 신사 사람들이 총출동해서 해가 중천에 뜰 무렵에야 겨우 찾아냈다네. 어디 있었을거 같나?]




[어디에 있었습니까?]


[밝아질 때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어. 그것도 그럴게, 그 인형은 누가 올려둔 건지 본전 지붕 위에 있었으니 말일세. 신사 사람들도 다들 경악했다는구만. 인형이라고는 해도 마네킹 크기 아닌가. 성인 남성 크기의 마네킹을 높은 본전 지붕까지 올려놓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치고는 손도 많이 갈 뿐더러, 저런데 올려놔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어찌 됐든 그걸 내리러 올라갔다네. 그런데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가, 마네킹을 들었던 남자가 그만 미끄러져 마네킹이랑 함께 떨어졌다지 뭔가. 그 친구, 다리가 부러져서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네. 계속 "인형이 물었어! 인형이 물었다고!" 라고 소리를 치더구만.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어 신주가 직접 나선걸세.]


[꽤 사정을 잘 아시네요.]


갑자기 믿기는 좀 그런 이야기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살짝 심술을 부려봤다.




[매일 아침 여기를 산책하고 있거든. 마네킹을 내릴 때부터 계속 지켜봤다네.]


과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준비는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이제 막 불을 붙이려는 듯 했다.


신주가 갑작스레 구령을 붙인다.


거기에 맞춰, 하카마를 입은 남자들도 일제히 주문 같은 걸 외우며 불을 들고 상자를 둘러쌌다.




잘 보면 상자는 철사 같은 것으로 칭칭 감겨있었다.


첫번째 남자가 상자 네 귀퉁이에 있는 장작에 불을 붙인다.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활활 타기 시작한다.




뒤를 이어 두번째, 세번째, 끝내는 상자를 제외한 모든 장작에 불이 붙어, 격렬한 불기둥이 피어오른다.


50m는 족히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그 열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신주가 한가운데 장작에 송진불을 던지듯 불을 댔다.




장작에는 나뭇잎이 끼어있어 흰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한가운데 상자 주변에서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우욱...!]


나는 무심코 코를 막았다.




어느새인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짐승 냄새 같은 역한 냄새가 주변에 자욱했다.


신주와 그 일행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그 순간...




[교오에에에에에! 캬아아아아아아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이 광장의 정적을 찢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자가 덜컹덜컹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심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나는 놀라 기겁할 것 같았다.


도망칠까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완전히 오금이 저린 듯 했다.




상자는 쾅쾅 안에서 소리를 내며 불길에 휩싸인다.


혹시 사람이 들어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불은 활활 타오르는데, 상자는 덜컹덜컹 흔들리고, 신주와 그 일행은 소리를 높인다.


이윽고 비명은 말이 되었다.


[꺼내줘! 여기서 꺼내줘! 돌려줘, 돌려줘!]




말하고 있다...


설마 사람인가...?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애시당초에 저런 상황에서 사람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돌려줘" 인 줄 알았지만, 천천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돌려놔라, 돌려놔! 나를 아내와 아이가 있는 곳에 돌려놔!]




상자는 여전히 덜컹덜컹 흔들리며 안에서는 쾅쾅 소리가 났다.


[너는 사람이 아니다!]


신주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너는 인형이다! 인형이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라!]


그렇게 말하고는, 신주는 다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아니야! 나는 사람이다! 돌려보내라!]




상자는 더욱 흔들려, 불에 탄 구석 뚜껑이 내려앉았다.


아니, 거기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고 해야할까.


거기서 새까맣게 탄 손이 나와 미친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불이 약해졌다.


나는 혹시 불이 꺼지는 게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신주는 뒤를 돌아보더니, 놓여있던 통을 들고 왔다.




통 안에는 물 같은 액체가 있었지만, 곧바로 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짐승냄새 사이로 술 냄새가 감돌고 있었으니까.


신주는 술통을 들고 불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알코올이라지만, 물이 잔뜩 섞인 술이다.


타오르기 어려울 뿐더러, 저렇게 끼얹으면 불이 꺼져버릴텐데...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술을 끼얹어 불은 놀랍도록 타올랐다.




[갸아아아아악! 이기기기기기기기기긱! 네노오오오옴! 아내와 아이를 만나게 해다오! 돌려보내라! 나를 돌려보내!]


[너는 사람이 아니다! 인형이다! 너는 너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말하고, 신주는 품에서 손거울을 꺼내 상자로 던져넣었다.




그리고 하카마를 입은 남자들이 장작을 가운데로 넘어트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신주는 통을 들고, 남은 술을 모두 상자에 퍼부었다.


불길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맹렬하게 타올라, 거대한 불기둥이 되었다.




[갸아아아아악!]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는 큰소리를 지르는 것도, 상자가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땀투성이였다.


신주와 그 일행은 불이 잦아들 때까지 계속 주문을 외웠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스스로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확실히 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일상에서 그저 한걸음 내딛었을 뿐이다.


그것 뿐인데, 세상은 그 색을 달리 하고 있었다.




그 후, 신주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딱히 몸가짐을 정돈하는 것도 없이 신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불제는 드려줄테니 따라오시게.]




나는 신주를 따라 본전에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신주와 앞에서 걸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면인 듯 했다.




본전에서 나와 할아버지는 간단한 불제를 받았다.


그 후, 망연자실이라고 해야할까, 정신이 빠져있는 상태였던 나에게 신주는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인형은 말이야... 오랫동안 사람으로 살아왔다네. 그 마네킹을 가져온 할머니가 말하길, 자기 딸이 소중히 간직했던 것이라더군. 딸과 손자는 사고로 죽어버렸는데, 그 마네킹만은 상처가 없었다는게야. 할머니는 유품이지만 기분이 나빠 우리 신사에 맡긴거고. 사고를 당했을 때도 차에 싣고 있었을 정도니, 분명 상당히 소중히 다뤄왔겠지.]




나는 아무 말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감정을 이입하면, 점차 사람은 그 인형이 살아있는 존재라고 착각하고 만다네.]


그 다음 들은 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인형도 마찬가지야. 너무 소중하게 대해버리면, 스스로가 사람이라고 착각해버리는게지. 왜냐하면 그들도 살아있으니까 말이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듯,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 있었던 일이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793rd]R

괴담 번역 2016. 12. 14. 23:31
320x100




어른이 된 지금도, 혼자서는 엘리베이터를 못 탈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 일이 있다.


중학교 시절, 같이 어울려 다니던 후지사와라는 녀석이 있었다.


우리 둘다 한창 반항기일 때라, 허구한날 밤 늦게까지 아무 목적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곤 했지.




어느날, 후지사와네 부모님이 출장 가서 안 돌아온다기에, 걔네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그날 역시 한밤 중까지 밖에서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 돌아가기로 했다.


아마 12시는 넘었을 시간이었을 게다.




후지사와네 집은 고층 아파트 10층에 있었다.


고층 아파트라고는 해도, 지은지 한참 지나 대문에 오토락도 없고 여기저기 지저분한 건물이었다.


아무도 없는 홀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뒤, 10층 버튼을 누른다.




곧 문이 닫힌다.


하지만 문이 닫히기 직전, 갑자기 손이 들어와 [쾅!] 하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문이 열렸다.


억지로 올라탄 건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였다.




후지사와도 나도, 내심 기겁할 정도로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고 짜증난다는 듯 남자를 노려봤다.


하지만 남자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눈이 보이질 않았다.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남자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거기서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12층까지만 버튼이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남자가 누른 버튼은 "R"이었으니까.




옥상으로 가는 버튼 같은게 있었나 싶어, 후지사와를 바라봤다.


후지사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순간 눈이 마주쳐, 서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엘리베이터가 평소보다 느리다 싶어 문자판을 올려보는데, 후지사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야, 우리도 옥상 보러 갈까?]


나도 솔깃하긴 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나는 문자판을 계속 바라보며, [됐다. 배고파.] 라고 대답했다.




후지사와는 의외라는 듯, [그래? 뭐야... 빨리 돌아가자.] 라고 말했다.


10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였다.


뒤에서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뒤돌아봤다.




닫히고 있는 문 사이로,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확실히 보였다.


죽은 사람 같이 창백한 얼굴에, 눈에는 검은자위가 없었다.


입은 반쯤 벌리고 있는 괴상한 얼굴이었다.




지릴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문에 달린 유리창 너머 보인 엘리베이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조용히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간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집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차리고 다시 소름이 끼쳤다.




1층에서 남자가 올라탔을 때, 그렇게 급히 나타났는데도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었다...


후지사와네 집에 불이란 불은 다 켜고, 밥을 먹으며 아까 전 이야기를 나눴다.


후지사와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나도 발소리 못 들었어... 애시당초에 옥상으로 가는 버튼은 있지도 않은데, 뭐야, 저건...]


하지만 진짜 충격은 그 다음 후지사와가 한 말이었다.


[네가 갑자기 옥상에 가자고 했을 때는, 진짜 어떻게 해야하나 싶더라...]




[어? 그건 네가 말한거잖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는, 소름이 끼쳐 엉엉 울었다.


다음날 아침, 완전 쫄아서 확인해봤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은 12층까지밖에 없었다.




후지사와네 부모님에게 전해듣기로는, 그 아파트는 정기적으로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집값이 싸다고 한다.


부동산에서는 정신병원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라고 했다지만...


후지사와는 그 후 곧바로 멀리 이사를 가서, 연락도 끊어졌다.




아직도 나는 한밤 중에 엘리베이터 타는 게 무섭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792nd]또다른 세계

괴담 번역 2016. 12. 10. 23:47
320x100




이상하지만 지금도 확실히 떠오르는 기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방학이었다.


집 뒤쪽에 있는 큰 공터에서, 여름방학 자유과제였던 "근처의 곤충 찾기"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터 구석, 콘크리트 바닥에 하수도로 통할 것만 같은 녹슨 철문을 발견했다.


흥미가 동한 나는 문을 열어봤다.


아래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보인다.




모험심에 가슴이 달아올라, 나는 곧바로 집에 돌아와 회중전등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두근거리면서 그 사다리를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와보니, 바닥은 철망으로 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지하 배수로가 있는지, 작게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하수도는 아닌 듯 했다.




통로는 앞뒤로 쭉 펼쳐져 있었는데, 나는 우선 정면을 향해 걸어가보기로 했다.


회중전등으로 발 밑을 비추며, 두근두근 한동안 걸어갔다.


눈앞에는 철조망이 나타났다.




막다른 곳이었다.


옆에는 위로 이어진 사다리가 있었다.


더 굉장한 걸 기대했는데, 아무 것도 없어 실망하면서 나는 사다리를 올랐다.




얼마 걷지도 않았으니 처음 들어온 곳 근처로 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뚜껑을 열고 나온 곳은 처음 들어온 곳과 똑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황혼이 지고 있었다.




분명 들어간 건 한낮이었는데.


어쩐지 무서워져서 나는 집에 돌아가려 공터를 떠났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할까, 풍경이 미묘하게 달랐다.


대부분은 비슷하지만, 맨날 과자를 사먹던 가게가 본 적도 없는 집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고, 동사무소가 병원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다.


도로 표지판도 본 적 없는 이상한 마크가 붙어있었다.




서둘러 집에 와보니 역시 미묘하게 이상했다.


뜰에는 커다란 선인장이 꽃을 피우고 있었고, 스포츠카를 세로로 압축한 것 같은 이상한 디자인의 새빨간 차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현관 옆에는 인터폰 대신 아래로 기울어진 작은 레버가 붙어 있었다.




네발에 털이 난 기린 장식물이 문 양 옆에 있었고.


하지만 우리 집이었다.


세세한 곳은 다르지만 어떻게 봐도 우리 집이었다.




명패도 그대로였고...


왠지 모르게 다른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집 뒤쪽으로 돌아가 부엌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실에서 보라색 기모노를 입은 아버지랑, 어째서인지 학교 음악 선생님이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문득, 당시 플레이하고 있던 드래곤 퀘스트 3을 떠올렸다.


그 게임에는 또다른 세계라는 게 나오거든.




딱 그 느낌이었다.


내가 또다른 세계에 와 버리다니!


당황한 나는 공터로 뛰어갔다.




그리고 다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뒤, 원래 왔던 길을 더듬어갔다.


정말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늦으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처음 들어왔던 사다리를 타고, 나는 원래 세계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나는 그 공터가 무서워져서 다가가지 않게 되었다.


공터 쪽을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다.




거기 가까이 가면, 또 나도 모르는 사이 또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는 사이 우리 집은 이사를 가게 되었고, 결국 그 또다른 세계가 무엇이었는지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았다.




하지만 반년 전, 일 때문에 주변을 지나갈 기회가 있어서 슬쩍 살펴본 적이 있었다.


반쯤 주차장처럼 사용되고 있었지만, 공터는 아직 거기 있었다.


그 무렵의 공포감이 떠올라서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철문도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320x100
320x100




고향의 공립 고등학교는 한때 영 분위기가 흉흉했었다.


교사가 학교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었거든.


교사들 사이의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신경쇠약이 원인이었다.




그 이후, 옥상 문은 자물쇠로 잠겨 절대 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 앞 계단 층계참은 담배 피우기에는 최고의 장소였지.


그날 역시 나는 친구와 둘이서 땡땡이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가 계단을 올라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황급히 담배를 끄고, 누가 올라오는지를 기다렸다.


[뭐야, 너희들 수업은 어쩌고 여기있냐.]




마음이 놓였다.


백발의 사무원 할아버지였다.


[아, 좀 일이 있어서요...]




실실 웃으면서 받아 넘기려 했다.


할아버지는 [너희, 옥상에 나가고 싶지?] 라고 말하며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서 수많은 열쇠가 걸린 열쇠꾸러미를 꺼냈다.


우리는 혹시 얼굴을 기억했다가 담임한테 일러바치면 큰일이다 싶어, [아뇨아뇨, 이제 갈 거에요.] 라고 말한 뒤 재빨리 계단을 내려왔다.




쉬는시간에 같은반 녀석들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옥상 나가볼 수 있으면 가보고 싶은데...] 라며 그 사무원 할아버지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선생님한테도 물어봤지만, [그런 사무원은 없는데?] 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확실히 평소 보던 사무원은 한 명이고, 아저씨일 뿐 백발도 아니었다.


게다가 옥상 문 열쇠는 몇십년이 지나는 사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어차피 열 일이 없으니 새로 열쇠를 맞추지도 않았고.




그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만약 그 문이 열렸더라면...


[너희, 옥상에 나가고 싶지?]




할아버지의 그 말을 떠올리면 오싹해진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790th]두번째 계단

괴담 번역 2016. 12. 4. 23:35
320x100




거래처가 사무실을 옮겨, 축하도 할 겸 찾아갔다.


그곳은 1층이 가게고 2층이 사무실인 건물이었다.


우선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가게 안쪽 탕비실에서 이어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계단은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아래로부터 2번째 단만 폭이 좁고 높이가 높았다.


사무실에 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계단에 관한 일은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돌아갈 때는 그만 깜빡하고 발을 평범하게 내딛었다가 넘어질 뻔했다.


계단 위에서는 [거기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내려가.] 하고 사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건 좀 빨리 말해주지.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 회사는 실적은 그리 좋지 않지만, 사장이 인품이 좋은데다 사원들이 다들 부지런해서 어떻게든 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들이 새로 들어선 건물은 옛날부터 터가 좋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전에는 대기업 대리점이 들어서 있었지만, 역시 얼마 가지 못해 사라진 터였다.


아마 그 때문에 임대료가 낮아서 들어간 거겠지.


몇달 지나, 간만에 그 가게를 찾았는데 사장이 없었다.




가게를 지키던 부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사고로 입원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머릿 속에 자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 했다.




병원이 어디냐고 묻자,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사무실로 올라오세요.] 라고 말해 나는 2층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부인 역시 자살미수를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다.




또 아래에서 2번째 단이었다.


부인도 [여기, 알고 있어도 늘 넘어진다니까요. 왜 여기만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라며 웃었다.


나는 병원으로 향해 사장을 만났다.




부상이 심해 한쪽 눈은 실명 직전이었지만, 생각외로 건강했다.


단순한 사고가 맞구나 싶을 정도로 밝고 적극적이었고.


사고에 관해 물으니, 혼자서 그만 시속 60km로 고속도로 콘크리트 교각에 정면 충돌했다고 한다.




왜 정면에서?


누구나 그런 의문을 품으리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어볼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살할 생각 따위 없었어. 하지만 사고 전후로 기억이 안 나. 가게 일을 멍하니 생각하면서 운전하고 있던 것 같아.]


몇개월 지나면 퇴원하고 다시 일도 할 거라기에, 나는 [퇴원하시면 가게로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인사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사장이 입원한 몇달 사이, 실적은 점점 나빠져갔다.


끝내는 [그 회사 슬슬 위험해보이던데.] 라는 이야기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의 부고가 날아들어왔다.




장례식은 이미 마쳤고, 회사도 문을 닫기로 했다는 부인의 전화였다.


상담을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기에, 나는 가게로 찾아가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사장은 퇴원 후 부인의 차로 병원을 나서 가게로 돌아오다, 전봇대에 충돌해 죽었다고 한다.


왜 갑자기 가게로 향한 것인지도 모르고, 왜 또 혼자 정면충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정말 사고일지 아닐지도.




부인은 [혹시 자살일지도 몰라요...] 라고 말하고는, 쓰러져 울었다.


나 역시 솔직히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쓰러져 우는 부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있었다.




폐업 관련 수속 처리를 알려드린 후, 사무실 계단을 내려왔다.


이번에도 아래에서 두번째 단을 밟다 넘어질 뻔 했다.


그 순간, 가슴에 꽂혀 있던 볼펜이 굴러 떨어졌다.




나는 펜으로 주우려고 손을 뻗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바라봤다.


한순간, 아주 잠깐이었지만 첫번째 단과 두번째 단 사이, 병원에서 보았던 사장의 얼굴이 있었다.


한쪽 눈이 부어오른 사장의 얼굴이.




그리고 부어오른 손이, 그 얼굴을 슥 잡아당겨 끌고 가는 것도.


그 후 그곳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섰지만, 얼마 지나지 못해 곧바로 문을 닫았다.


지금 그 부지는 빈 채로 남아있다.




가게가 자주 바뀌는 곳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