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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실화괴담][102nd]기어오는 군인

실화 괴담 2017. 11. 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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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메일로 김민기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2014년, 제가 군 복무할 무렵 이야기입니다.


저는 가평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일병 5호봉이던 시절, 탄약고 경계초소근무를 서던 전번초 근무자, 후임 김일병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야, 일어나. 근무 가야지.] 


김일병은 불침번 근무자이자 고참인 신상병이 깨워 잠에서 일어났답니다. 


밖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었 날이었지요. 




근무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가장 피곤하고 졸린 시간대. 


네 소대가 번갈아가며 한달에 1번씩 서는 탄약고 근무였습니다.




탄약고는 언덕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투입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했죠.


그런 탓에 다들 탄약고 근무를 서는 날이면 매우 싫어했었습니다. 


거기다 비까지 오는 날이니,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였습니다. 




김일병은 서둘러 환복을 하고, 단독군장을 차고 방탄헬멧을 쓴 뒤, 행정반에 가서 시건된 총기를 꺼내고, 대검을 받은 뒤 보고를 했습니다.


[당직사관님. 보고드립니다. 탄약고 근무 투입하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졸고 있다 막 잠에서 깬 당직사관은 졸음이 덜 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대대 실장에게 보고 후, 팀장에게 공포탄을 받아 검사 후 출발을 했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우비를 써야하는데, 김일병은 계급에서 밀리다보니 찢어진 우비를 받았더랍니다. 




그걸 쓰고 가니 비는 새고 옷은 젖어, 잠이 금세 확 깼다네요. 


그렇게 올라올라 탄약고에 도착해,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고참과 같이 서는 근무.




고참은 초소 안에 들어가 쉬고, 짬이 안되는 후임은 밖에 서서 감시하는 당연스러운 전개로 흘러갔습니다. 


십분, 삼십분, 한시간... 


시간은 흘러가고, 김일병은 그저 멍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탄약고 언덕길을 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2시간 근무 중 1시간 20분 가량이 흘렀을 때, 김일병은 그 언덕길에서 보면 안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비가 흘러내리는 언덕을, 무언가가 꾸물꾸물거리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찰박... 스윽... 찰박... 스윽... 찰박... 스윽...]



 

웅덩이를 짚는 짙은 소리와, 무엇인가 끌고 오는 소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기어오고 있던 것이었죠. 




김일병은 이때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해짐과 동시에, 제대로 된 사고가 마비됐다고 합니다.


극도의 공포와 마주치면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고들 하죠. 


입도 마비되어, 같이 근무 들어온 염상병을 부를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졸고 있는지 자고 있는지, 초소 안 기둥에 기대어 있을 염상병을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지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오고, 기어오는 것은 언덕길 중간에 파놓은 배수로를 지나오고 있었습니다. 


[철벅... 스윽... 철벅... 스윽... 철벅... 스윽...]  




짙게 들리는 물을 짚는 소리와 더불어, 그것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낡은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었습니다.


허리 아래부분은 날아간건지 절단된건지 없었고, 찢어진 상의 옷가지만 끌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검은 형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기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졸도할 지경인데, 김일병을 더 미치게 만든건 그것의 얼굴이었습니다.


두 눈구멍은 뻥 뚫려 눈알은 보이지 않고, 턱은 찢어져 간신히 붙어있는 채 덜렁거리고 있었답니다. 


그런 녀석이 말라 비틀어진 팔로 기어오는 모습을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갈만도 하죠.




김일병은 자기도 모르게 공포탄 장전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한발을 쏜 뒤 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총소리를 듣고서야 잠에서 깬 염상병의 긴급보고로, 거품 물고 실신한 김일병이 대대 팀장 및 오분대기조에게 실려 내려왔습니다. 


그 탓에 당시 졸고 있던 염상병은 진급이 누락당했고요. 




김일병은 쓰러진 이유를 대대 실장 및 대대장, 중대장, 주임 원사, 탄약관에게 죄다 보고했지만, 군대라는 곳이 어디 귀신봤다고 넘어가주는 동네겠습니까.


결국 군의관에게 "정신착란으로 인한 극도의 공포에 의한 발포" 라는 길고 얼토당토않은 판정을 받고 나서, 휴가도 잘리고 진급도 누락당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이 이야기의 진상을 알게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염상병도 전역을 하고, 저와 김일병 모두 상병 계급장을 달고나서야 이야기 해주더군요. 


[김상병님, 제가 그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응? 뭔데?]




김일병이 공포탄을 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겁니다. 


그 기어오는 질척한 소리가 가까워 올수록,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처음엔 [....줘 ...놔줘...] 하고 들렸는데,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니 겨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쏴줘" 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그 낡은 군복을 입고 기어오는 게 낮은 목소리로 "쏴줘" 라고 하더란 말입니다.]




아마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하반신을 잃고 숨을 거둔 군인의 혼령이었을까요.


이유를 알고나니 마음이 착잡해지더군요.


6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다니며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군인의 혼령이라니. 




군 복무하는 도중,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뼈에 새겼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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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101st]친구네 집

실화 괴담 2017. 11. 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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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메일로 지나가던 모찌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저희 집은 부모님이 그냥 풀어 키우시는 스타일이라, 서울로 이사오고 난 5살 때부터 저는 혼자 놀이터에 나가 놀았습니다. 


지금이야 놀이터가 휑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을 데려나와 놀게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았던데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니 괜찮다고 생각하셨던 거겠죠.


그 때 서울에서 처음 사귄 친구라고 기억되는 아이가 있습니다. 




당시 유치원 선생님 말씀으로는, 제가 특정한 친구와 엄청 친해지기보다는 두루두루 친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마 제일 친했던 건 그 친구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꿉친구라고 생각되는 아이들도 7살 때 유치원을 그만두고 논술과외를 함께 하면서 친해진거니까요.



 

하여튼 그 친구, 남자 아이는 저희 유치원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놀이터에서만 만났거든요. 


하지만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근처에 유치원만 두 개인데다가, 멀리 버스 타고 다니는 유치원에 보내는 아줌마들이 그 때에도 있었거든요.


유치원이 끝나면 집에도 안 들르고 바로 놀이터로 가서 그 남자 아이와 놀았습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이상합니다. 




제가 놀이터에 오기 전부터 그 남자애는 모래밭에서 절 기다리고 있었고, 없어도 제가 먼저 가서 놀고 있으면 금방 등장했거든요. 


정말 제가 사정이 안될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함께 놀았습니다. 


엄마도 나중엔 유치원 끝나도 놀이터에 있겠거니, 하시면서 아파트 복도에서 제 이름 한번 불러 확인하기만 하실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자 아이가 문득 [우리 집에 가서 놀자!]라고 제안해왔습니다.


저야 환영이었죠. 




친구 집에 가서 노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거니와, 서로 집에 초대하는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조금 쑥쓰러웠기 때문에 쭈뼛쭈뼛하고 있으니, 엄마도 널 데려오랬다면서 제 손을 잡아 끌더라고요.


저는 결국 걔를 따라 저희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습니다. 




저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건 이번에 처음이었거든요. 


그 애의 손을 잡고 모르는 길을 지나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그 애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애의 집은 저희 집과 달리 주택이었습니다. 


대문을 여니 안에는 진짜 하얗다, 하고 탄성이 나올 듯한 커다란 개가 있었습니다. 


개가 절 보고 짖으니 안에서 뭔가를 소리치며 아줌마 한 분이 나와 개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애 뒤에 숨은 절 보더니 웃으시더군요. 


부러웠습니다. 


저희 집은 개는 커녕 물고기 하나 키우지 않고 우리 엄마는 저렇게 상냥하게 예쁘지 않았거든요. 




어머님은 저를 반기시면서 집 안으로 이끄셨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 친구의 표정이 조금 뭔가 불편해보였던 것 같습니다.


눈치 없는 저는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간식을 먹으며 그 애의 방에서 마음껏 뛰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창 밖을 보니 날이 어둑어둑해진겁니다. 


아주 밤은 아니고 슬슬 해가 지는 초저녁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문이 열리더니 어머님이 자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좋았죠, 친구랑 밤 늦게까지 놀 수 있을테니까.


제가 알았다고 하자, 어머님이 이불을 꺼내오시겠다며 문을 닫고 나가셨습니다. 


그때, 남자애가 제 손목을 잡았습니다.




[안되겠어.]


느닷없는 소리에 그 애를 보자 엄청 화난 표정이었습니다. 


저희 오빠처럼 무표정한 얼굴이라 순간적으로 겁이 났습니다.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착한 친구였는걸요. 


제가 왜 그러나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절 끌고 방에서 나가 눈치를 보면서 현관 밖으로, 그러니까 마당으로 나가더군요. 


그리고 개를 피해 집 옆으로 돌아가더니 절 보고 [넌 안되겠어. 안돼.] 이런 말을 하더니 덤불이었나 돌이었나를 치우더라고요. 




그 뒤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모르는 제가 뒤에 서있자, 남자 아이는 절 구멍으로 잡아끌더니 나가라고 하는거예요.


왜냐고 물으니까 [너희 엄마가 걱정하실거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제서야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심지어 말도 안 하고 왔으니 엄청 혼날 것 같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대문은 생각도 못하고 구멍으로 나가려고 움직이는데, 걔가 뭘 손목에 끼워주더군요. 




파란색 팔찌였습니다. 


비즈인지 돌인지 그런 게 꿰어진 팔찌였죠.


그리곤 웃기에, 저도 인사를 건네고 구멍으로 나와서 왔던 길 쪽으로 가던 와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이 나는 게, 걔네 엄마한테 인사를 안하고 온 거죠. 


엄마가 인사는 잘 하고 다녀야한댔어요. 


어차피 대문을 지나쳐 가야하니까 초인종으로 인사드리고 가자는 생각으로 가는데, 걔네 집이 무척 소란스럽더라고요.



 

그렇게 상냥하던 아줌마가 [어디 갔어! 어디다 놨어!] 하고 소리 지르는 게 들리고, 개가 그 대형견 특유의 큰 울음소리로 컹컹 짖어댔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서 울면서 막 집으로 달려갔죠. 


그리고 다음에 눈 떴을 땐 병원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작은 오빠가 학교 갔다 돌아오는데, 놀이터 어디에 사람이 모여있더래요. 


가보니까 중간에 제가 쓰러져 있었더라나요. 


오빠들이 놀라서 엄마 불러오고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답니다.




문제는 오빠가 절 발견한 날이 제가 그 애랑 그 애 집에 갔던 날의 낮이었다는겁니다. 


저는 하루종일 걔네 집에서 놀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나왔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눈을 뜬 건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후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해가 안 가서 나는 분명히 수요일에 그 친구네 집에 갔다고 주장을 했지만, 오히려 엄마는 그 친구가 누구냐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엄마께 여쭤보니 목격자 분들도 제가 혼자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쓰러졌다고 했다고 합니다. 


오빠도 상상의 친구다, 꿈꾼거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상상의 친구라고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이제 성인인 지금에 와서도 여전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전까지 제가 가지고 있었을리 없던 그 애가 줬던 팔찌가 제 손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사준 것도 아니라 엄마도 그건 어디서 난 거냐고 물으셨을 정도죠.


그 이후로 전 병원 침대 신세를 져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 아이는 누구였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그 아이에게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한참 지난 어릴 때의 일을 갑자기 꺼낸 이유는 딱히 별 건 아닙니다.




늘 지니고 다녔던 그 아이가 준 팔찌의 끈이 얼마 전 끊어져 버렸거든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언젠가 이 글을 쓸 수 없기 전에 누군가에게 말해놓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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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여자아이 어머니가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단다.


신변정보를 말해주면 실종된 사람의 생사를 맞춘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과는 교신할 수 없기 때문에, 교신이 되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거지.




죽었을 때 나이, 날짜, 계절, 장소, 죽은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의뢰한 적이 없지만, 아동 실종사건 같은 게 일어났을 때 실제로 맞추는 걸 몇번 봤으니 아마 진짜 영험한 분인 것 같다.


그 아주머니는 집 1층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고, 그 능력을 돈버는데는 쓰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숨기려 드는 편이라, 직접 찾아나서더라도 연줄이 꽤 닿아있지 않으면 아마 부탁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여기저기서 봐달라고 부탁해오는 게 귀찮다는 것.




두번째는 만약 찾아달라는 사람이 이미 죽어버렸다면, 그걸 유가족한테 말해주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장난삼아 찾아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두려우니까" 라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무섭다니, 뭐가?] 라고 물었다.




친구는 [장난 치러 왔던 사람이 죽어버릴테니까.] 라고 대답했다.


옛날부터 아주머니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면, 그 상대가 뜻밖의 죽음을 맞아왔다는 것이다.


사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지, 옆집 고양이가 갑자기 차에 치여죽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창문으로 들어와 아주머니가 좋아하던 테이블보를 흙투성이로 만들고, 비싼 꽃병을 떨어트려 깨버리곤 했다나.


아주머니 본인은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니까.] 라고 극력 부인했다.


하지만 친구는 [꽤 쉽게 욱하는 분이니까 절대 화나게 만들면 안된다.] 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했다.




친구네 아버지는 친구가 7살이던 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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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100th]창 너머 하얀 손

실화 괴담 2017. 11. 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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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새벽녘, 비몽사몽간에 본 것이라 진짜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요.


블로그를 오랫동안 보아오신 분이라면 아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수도권에 처음으로 생긴 공립 외국어 고등학교였는데, 특이하게도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는 학교였습니다.


저는 근처 포천시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것도 있고, 아버지가 군인이시라 자주 이사를 다니는 집안 환경상 기숙사 학교가 마침 딱 들어맞았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3년간 내내 기숙사에서 살아야만 했죠.




기숙사는 학교 본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지행동이 지금만큼 개발이 되지가 않아서 학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개발 들어가면서 이주한 폐가들이 학교 근처에 서너채 남아있었고, 제가 2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학교 근처에 매점도 딱 하나 있을 정도로 외곽이었죠.


이렇게 외진 곳이다보니, 기숙사 뒤쪽에는 산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이 조선시대 성균관 대사성까지 오르셨던 어느 선비님의 선산이더라고요.


크게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하필 아래쪽에 있는 무덤 몇개는 기숙사 뒤쪽 창문을 열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기숙사 3층 정도 위치에서 문을 열면 무덤과 바로 눈이 마주치는 방이 몇곳 있을 정도였죠.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가 하필 그 방을 배정받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창문만 열면 보이는 무덤 때문에 좀 오싹하고 꺼름칙하기도 했지만, 방을 같이 쓰던 친구들이 이전부터 친하던 녀석들이라 금세 잊고 신나게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8월 즈음, 저는 그 방에서 이상한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습니다.


문득 자다가 깨어난 저는, 목이 말라 책상 위에 떠놓은 물을 마시려 일어섰죠.


몸을 일으켰는데, 문득 책상 너머 더워서 열어뒀던 창문 밖이 보였습니다.




순간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창문 너머, 바로 보이는 무덤 앞에 무언가 희뿌연게 떠 있었거든요.


저는 시력이 좋지가 않아 안경을 써야 앞이 제대로 보입니다.




조금 더 다가가, 책상 위에 올려놨던 안경을 쓰는 순간, 그제야 희뿌연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손이었습니다.


몸도 없고, 그저 희뿌연 손만이 허공에 둥둥 떠서 이리 오라는 듯, 천천히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쳐서, 그대로 줄행랑쳐서 침대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불을 푹 덮어쓴 채, 날이 밝을 때까지 벌벌 떨고 있었죠.


당시 기숙사 기상 시간은 6시였는데, 기숙사 기상 음악이 울릴 때까지 제정신이 아닌 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있던 게 생각나네요.




그 후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 이야기를 기숙사 사감 선생님한테 했다가 들은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야, 어차피 너희 기숙사 뒤쪽에 있는 무덤들은 다 가묘라서 안에 묻힌 사람도 없어.]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줬지만, 다들 헛꿈 꾼 거라고 한마디씩 거들 뿐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는데다, 같은 방에서 이상한 걸 본 사람은 저 뿐이었으니 아마 꿈을 꾼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가끔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비어있는 가묘를, 제가 들어가서 메워야한다는 뜻의 손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해, 저는 수능은 망했지만 괴담 번역을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괴담 블로그 운영자가, 인생에 딱 한번 겪어본 기괴한 사건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그 손 안 따라가길 천만다행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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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98th]버려진 금고

괴담 번역 2017. 11. 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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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체험한 실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무서웠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약간 시골에 살고 있지만 면허가 없어서, 근처 편의점에 갈 때는 늘 걸어서 갑니다.




편의점까지 가려면 숲이 우거져서 터널 같이 된 길을 30m 가량 지나가야 합니다.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지나가는 길이라 눈에 익은데, 어느날 터널 중간 즈음에 있는 공터에 웬 금고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금고는 잠겨있는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별 생각 없이 지나갔는데, 2주쯤 지나가도록 그 금고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금고 이야기를 했더니, 정말 있냐는 반문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증거 삼아 사진을 찍어 보여주기로 하고, 그 다음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역과 편의점은 반대 방향에 있다보니 아마 가족들은 그 길을 다닐 일이 없어 금고를 못 본 듯 했습니다.


찍어온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꺼름칙하다느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날.


저와 사진을 본 가족들은 원인 불명의 고열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가족 4명 중 유일하게 사진을 보지 않았던 사람만 멀쩡했고요.


나는 열이 42도까지 치솟아 병원에 후송됐는데, 병원에서도 마땅히 문제는 없다는 진단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사진을 본 가족들은 둘 다 38도 정도까지 열이 올랐었고요.




병원에서는 사흘 정도면 나을 거라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열은 40도 근처에서 떨어질 조짐이 없었습니다.


혈액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독감도 아니었습니다.


종종 목을 졸리는 것 같은 감각이 덮쳐왔지만, 편도선이 부은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머리카락으로 목을 꽉꽉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목에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할퀸 상처가 수도 없이 생겼고요.


열로 몽롱한 의식 와중, 문득 내 머릿속에는 그 금고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사진을 찍은 다음날부터 열이 났다는 것도요.


사진을 지워버린 순간, 계속 느껴지던 오한이 약간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지운 다음날, 거짓말처럼 열은 떨어졌습니다.




남은 건 지친 몸과 여기저기 느껴지는 근육통 뿐.


그 금고는 무언가 위험한 존재였던걸까요.


사진을 지운 것 만으로 멀쩡해지다니 믿을 수는 없지만요.




그 후, 한동안은 더 멀리 있는 다른 편의점으로 피해다녔습니다.


하지만 사흘 전, 무심코 그 숲길을 다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금고는 아직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건 금고의 문이 비틀려 열려 있었다는 거였죠.


사진만 봐도 그렇게 경을 쳤는데...


그 금고를 열어제낀 사람이 어떤 꼴을 당했을지, 생각하기도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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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 전까지 저주 대행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회사는 심령 DVD 같은 걸 주로 만드는 프로덕션으로, 업계에서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곳입니다.


그 외에도 부적이나 점술 도구 같은 걸 통신판매로 팔고 있고요.




지금도 잘 영업하고 있습니다.


내가 담당했던 것은 부두 계열 저주였습니다.


의뢰자에게 저주를 걸 상대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받은 뒤, 부두 진흙인형에 집어넣고 주문을 외우며 바늘로 찌르는거죠.




모든 과정은 사진을 촬영해서 의뢰인에게 보고합니다.


요금은 3단계 플랜으로 나눠져 있고 나름대로 가격이 좀 됩니다만, 3개월 이내에 효험이 없으면 전액 환불이 가능했습니다.


아마 70% 정도는 환불을 받아갔던 거 같네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두달 정도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세달째 되던 무렵부터 온몸에 심한 발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내부 장기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 것이라는 진찰을 받았고요.


그 무렵부터 내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키우고 있던 고양이가 나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뭐, 원래부터 그렇게까지 붙임성 있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수족관에 키우던 열대어들이 전부 죽어서 둥둥 떠 있던 적도 있습니다.




뜰에 있는 나무 한그루가 말라죽고, 주변에는 바퀴벌레나 파리 같은 벌레가 드글드글했고요.


한번은 책을 열었더니 큰 지네가 한마리 끼어있던 적도 있습니다.


뭐, 그래도 집이 외곽 쪽 동네에 있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부터 아버지의 모습이 점차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50대로 꽤 엄격한 회사에 다니십니다.


그런데 새벽 3시가 넘으면 잠옷 차림으로 집밖으로 나가시더라고요.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오시는데, 손이 진흙투성이인데다 손톱 안까지 흙이 빽빽하게 차 있습니다.


게다가 큰 소리를 내면서 나가는데도, 아침에 물어보면 어디 나간 적 없다고 대답하시는 겁니다.


같이 살던 누나네 세살 난 조카가, 자다가 배를 혼자 쥐어뜯어 피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죄다 우연이 겹친 것이라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도 그 무렵 매일 같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내가 방 침대에서 자고 있으면, 7명의 사람이 나를 둘러싼 채 내려다 보는 겁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들 일본식 잠옷 같은 걸 걸치고, 나를 내려다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내젓고 있었습니다.


이런 꿈을 2주 가량 계속 꾸었습니다.


괴상한 일들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저주 대행 아르바이트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에게 상담을 했더니, 점을 보는 지인을 소개시켜줬습니다.


영험하다기에 한번 만나보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죠.


아니나다를까, 저주 대행 아르바이트 때문에 점점 나쁜 기운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히나 부두 계열 저주는 본인보다는, 주변의 아끼는 것들에게 재앙이 몰린다고 합니다.


나를 꿈속에서 내려다보던 7명은 "미사키" 라는 것으로, 나를 지키는 7명의 조상인 것 같다더군요.


나는 1주일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고, 거짓말처럼 이상한 일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발진은 2달 정도 있다 나았고요.


그 후 추석날, 가족끼리 근처에 있는 위패를 모신 절에 성묘를 갔습니다.


후미진 곳에 있는 무덤 주위 흙이, 유골함이 보일 정도로 마구 파헤쳐져 있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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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96th]타케다

괴담 번역 2017. 9. 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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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무렵, 우리 반에는 타케다라는 난폭한 자식이 있었다.


보기에는 멀쩡한데, 기본적으로 과묵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하면 대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이었다.


게다가 바로 손찌검을 하기 일쑤라 다들 싫어했었다.




싸움실력도 보통이 아니다보니, 덩치가 더 큰 녀석이라도 맞설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옛날에는 그런 놈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걷잡을 수 없게 됐다는 듯 했다.


그놈하고 싸울 때면 얻어맞는 것도 물론 기분 나쁘지만, 깨무는 게 정말 싫었다.




특히 머리카락을 마구 물어뜯어, 정말 미친놈인가 싶을 정도였다.


나도 한번 당한 적이 있는데, 아무 짓도 안했는데도 흠씬 얻어맞고 엉엉 울었다.


코피가 멈추지 않아 무서웠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살던 마을은 주택가에 있었다.


단지와 아파트가 잔뜩 자리잡은 그곳에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가면 번화가가 나온다.


니시키마치라는 곳이었다.




중학생 정도 되면 자전거로 30분 거리는 근처로 여기고 자주 쏘다니게 된다.


그날 역시 니시키마치에 갈 예정이었지만, 무슨 바람인지 나는 평소와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여름이라 땀투성이가 되면서도 자전거 페달을 밟아나가자, 신사가 있었다.




주변은 주택가라 어디 나무 한그루 안 보일 지경이었지만, 그 신사 안에는 삼나무니 벚나무니 잔뜩 자라 시원해보였다.


나는 거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경내에서 한숨 돌리는데, 굵은 자갈 속에 무척 예쁜 돌이 있었다.




하얗고 달걀보다 약간 작은 정도 크기였다.


투명한 느낌에 잘 닦은 듯 윤이 나는, 마노 같은 돌이었다.


너무 예뻐서 나는 그걸 가지고 가기로 했다.




땀도 식었겠다, 주머니에 돌을 넣었다.


다시 니시키마치를 향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거기서 니시키마치까지는 5분도 안 걸리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신호등마다 죄다 빨간불이었다.




초조해하면서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놀라 돌아보니 타케다가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온화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가까이 하기는 어려운 인상이었다.




타케다는 옛날부터 이 근처를 자주 돌아다녀서 지리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오늘도 산책을 하다 나를 봤는지, 말을 걸어왔다.


[저기 근처 그늘에서 좀 이야기나 할래?]




옛날과는 사뭇 다른 태도에, 나는 타케다를 따라갔다.


물론 옛날에 코피 터진 기억이 있으니 엄청 경계하면서였지만.


그 근처 건물 그늘로 가자, 타케다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주머니에 있는 거, 맡아둘게.]


내가 [무슨 소리야?] 라고 되묻자, 타케다는 [그거 들고 가면 경을 칠거다.] 라고 대답했다.


[보고 있었어?] 라고, 나는 뾰루퉁해서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알 수가 있어. 돌이겠지. 마음은 알겠지만 그걸 가져가면 안돼.]


타케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더욱 손을 뻗어 재촉한다.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나는 포기하고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깜짝 놀랐다.


그냥 돌이었으니까.


매끄럽고 둥그런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새하얗지도 않고 투명한 느낌도 없었다.




주웠을 때처럼 맨질맨질하지도 않았다.


타케다는 그걸 받아들더니, [이번에는 내가 돌려놓을게. 이누야마 신사지?] 라고 물었다.


나는 아직 놀라움에 젖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역의 물건을 멋대로 가져가면 좋은 꼴은 못 봐. 특히 너는. 음, 지금은 괜찮은데... 할아버지인가? 제대로 성묘 좀 다녀라.]


타케다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웃었다.


겨우 안정을 되찾은 나는,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그걸 감추듯 [도대체 뭐가 뭔데!] 라고 소리를 질렀다.


옛날 같았으면 이 시점에서 얻어맞았을텐데, 그날 그 녀석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신사라는 곳은 대개 평범한 곳이 아니야. 결계도 있고 안이랑 밖이 분명히 다르지. 안에 있는 건 좋은 것도 아닌것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장난질을 치는게 있거든. 신의 눈을 속이려고 말이야.]




평소라면 이미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겠지만, 그 녀석의 목소리가 조용한데다 마치 카드 마술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한테 물려받아서 말이야, 그냥 다른 사람이랑 좀 다른 게 보이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이거저거 귀찮은 일이 많지.]


타케다는 익살스럽게 웃어보였다.




[아버지? 돌아가시지 않았어?]


[그래. 죽을 때 물려받은거야. 쫓아내는 방법 같은 것도 배우긴 했는데, 하다 말아버려서 말이지. 결국 거의 독학 비스무리하게 됐지.]


[물려받다니, 대체 뭘?]




[보통 영감이라고 말하는 거. 사람을 돕는데 쓰라더라. 나쁜 신이 들린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도우라고 다짐까지 받았거든.]


나는 마침내 이 자식이 돌았구나 싶었다.


타케다도 그걸 느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듯 입을 열었다.




[미친 거 같지? 그러니까 다른 녀석들한테는 설명 안하고 쉬운 방법으로 한다니까.]


[쉬운 방법?]


[패버리는거지.]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끌어오기 위해서 상대 신체의 일부가 필요해. 가장 빠른건 머리카락이지. 아프지도 않고.]


아니, 얻어맞는 시점에서 아프다고.




[얻어맞거나 깨물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게다가 갑자기 사내 자식이 머리카락 좀 달라고 하면 줄 사람이 있겠냐. 뭐, 그냥 날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응, 기분 나빠, 너.


그냥 날뛰는 거 같고.




[이쪽에서 간섭하려면 만만치가 않아. 저 녀석들도 나름대로 힘이 있는데다 오라고 해도 쉽사리 넘어오지도 않을테고. 그래서 내가 대신 홀려버리는거지.]


저 녀석들이라고 쉽게 말해버리는 건가.


[상대의 신체 일부분마다 녀석들을 옮겨서 나에게 데려오는거야. 나한테 직접 씌이는 거지만 대부분은 나한테 뭔 영향을 못 주고. 그저 힘을 잃고 사라질 뿐이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곤란했다.


[뭐, 안 믿어줘도 그걸로 됐다만.]


타케다는 돌을 들고 손을 올리더니 가기 시작했다.




[나도 엄청 얻어맞았지만 머리는 안 뽑아갔잖아.]


문득 떠올라서 입에 담았다.


저 녀석 말대로면 나는 그냥 얻어맞은 거 뿐이잖아.




[코피, 엄청 났잖아. 피는 나도 맛 없어서 싫은데...]


기억하고 있는건가?


어, 맛 없다니 무슨 소리람?




[나한테 데려온다고 그랬잖아. 몸 안에 집어넣는거라고. 뭐랄까, 그런 배 유령 같은 거에 씌여서 어슬렁거리는 걸 보면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타케다한테 얻어맞은 건 여름방학 직후였다.


8월 들어 바다에 갔다가, 학교에 가자마자 얻어맞은 거였으니...




[타케다, 아까 우리 할아버지가 어쩌니 했었지?]


[아, 할아버지는 너를 걱정하면서 거기 계신다. 할아버지가 지켜주시고 계시니까 자잘한 나쁜 것들은 너한테 안 달라 붙을거야. 그 때는 안 계셨었으니까 그 이후 돌아가신건가... 그래, 1년 정도 되셨겠네.]


타케다는 혼자 중얼대더니,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들어보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멈춰서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2년이 훌쩍 넘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타케다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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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무렵 이야기.


당시 나는 아버지와 둘이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여섯시,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는 작업복 차림으로 분주하고 출근하곤 하셨다.




나는 조금 있다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머리가 아팠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하루쯤은 괜찮겠거니 싶어 학교를 쉬기로 했다.




집에서 혼자 탱자탱자 놀면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차피 밤 늦게서야 돌아오실테니 들키지 않을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낮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분명 혼이 날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변명을 하고 있는데, 왠지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산책을 나가자.]


혼나지 않으면 뭐든 괜찮다 싶어, 생각도 않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근처 강둑에서 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었다.


그동안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딸과 손을 잡고 웃으며 산책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즐거웠기에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동안 걷고 있던 도중, 갑자기 잡고 있는 손이 아플 정도로 힘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아파.] 하고 말해봤지만,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손을 잡을 뿐.


손을 잡아당기며, 둑 아래로 내려간다.




평소에는 그 정도로 울 내가 아니지만, 그때는 뼈가 부러지도록 꽉 잡힌 손이 아픈데다 아버지의 미소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에,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깜짝 놀란듯, 손을 뗐다.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서,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모르는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자 아버지는 없었다.


두고갔나 싶어 더욱 슬퍼져 나는 계속 울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근처 파출소에 데려다 주셨다.


미아로 처리되어,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 집 주인에게 연락이 갔다.


우리 집에는 그 무렵까지도 전화가 없었거든.




잠시 뒤, 집주인한테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얼굴이 새하얘져서 달려왔다.


그제야 처음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아버지는 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하곤 했다.




당연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도 작업복을 입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 나와 강둑을 산책했던 아버지는, 그제까지 본 적 없는 폴로 셔츠와 정장바지 차림이었다.


아버지는 일하던 도중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기묘하게도 집주인은 내가 수수께끼의 아버지와 외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래서 경찰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오히려 집주인이 더 기겁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경찰에서는 집주인이 사람을 잘못 봤고, 내가 모르는 사람을 멍청하게 따라갔다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파출소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났다.


평소대로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몇시간 전, 함께 있었던 것도 분명히 아버지였을 터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던걸까?


집주인도, 아버지도 고인이 된 지금, 내 가슴 속에만 남아있는 수수께끼 같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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