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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 밖에 사는 권진사는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놀러다니기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마천처럼 세상을 유람하는 풍취가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전국을 두루 돌아다녀 안 가본 곳이 없었으며, 명산대천과 경치 좋고 조용한 곳은 모조리 찾아갔고 어떤 곳은 두세번 가기도 하였다.




그가 어느날 춘천 기린창에 갔는데, 그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권진사가 주막에 앉아 있는데 약립을 쓰고 소를 탄 어떤 사람이 주막에 오더니 그 곳의 주모에게 물었다.


[저 방 손님은 어떤 양반이오?]




주모가 말하였다.


[저 분은 서울에 사시는 권진사님입지요. 전국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저희 집에도 3번이나 오셨기에 편히 지내고 계십니다.]


[저 양반이 잘 아는 게 있소?]




[풍수지리학에 꽤 통달하셨지요.]


[그럼 내가 혹시 저 분을 좀 모셔갈 수는 없겠소?]


[아마 괜찮을 겁니다.]




잠시 뒤 주모가 방에 들어가 권진사에게 고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첨지가 진사님의 재주를 듣고 지금 진사님을 모셔가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진사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잠시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권진사는 주막에만 며칠을 있어 심심했기에 바로 대답했다.




[이 곳에서 멀지만 않으면 한 번 놀고 오는 것을 내 어찌 마다하겠소?]


이에 첨지라는 자가 와서 권진사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진사님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제가 지금 소를 타고 왔으니 잠시 누추한 제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떠실지요?]




권진사가 물었다.


[첨지의 집이 이 곳에서 몇 리나 되오?]


[이 곳에서 30리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같이 소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첨지는 고삐를 잡고 뒤에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정오 무렵이었다.


타고 있던 소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대략 3, 40리쯤 갔을 때 권진사는 첨지에게 물었다.


[영감께서 사시는 마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려.]


[제가 사는 곳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몇 리쯤 온 것이오?]


[80리 정도 왔습니다.]


권진사는 몹시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지금 이곳까지 거의 100리를 왔는데도 마을이 아직도 멀리 있다니요? 그럼 어째서 처음에 30리라고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영감은 나를 속여 데려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막 주인은 내가 30리쯤 되는 마을에 산다고만 알지, 내가 진짜 사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권진사는 마음 속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와버린터라 그냥 가기로 했다.




마을로부터 30리 정도 나오자 그 후에는 계속 깊은 산과 골짜기였다.


낙엽은 사람 정강이까지 차올라 있는데, 그 사이에 단지 작은 길 하나만 나 있었다.


오후 세네시쯤 되자 첨지가 소를 멈추며 말했다.




[잠시 내려서 요기나 하고 가시지요.]


권진사는 소에서 내려 물가에 가서 앉았다.


미리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물을 떠서 마신 뒤 다시 소를 타고 갔다.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시간은 황혼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뒤 멀고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나자 첨지가 [왔네!] 라고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권진사가 소의 등 위에서 보니 수십명이 횃불을 들고 고개를 넘어오는데,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횃불을 가지고 권진사와 첨지 가는 길을 인도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어렴풋한 가운데 한 큰 마을이 있고, 닭과 개 짖는 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곧 어떤 집에 도착해 소에서 내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방과 창이 정교하고 깨끗하였으며 용마루와 처마가 앞이 탁 트여 널찍하였으므로 산골 촌사람들이 사는 곳 같지 않았다.




그 다음날 마을을 두루 살펴보니, 인가는 200여호 되는 것 같았고 앞에 펼쳐진 평야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모두가 기름진 땅이었다.


그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자 20여리라고 하였으니, 이 곳은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 밖 무릉도원이었다.


또 벽을 사이에 둔 대여섯간의 방에서는 밤마다 책 읽는 소리가 들려 물어보니, 마을의 젊은이들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며 놀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모여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권진사가 팔도를 두루 유람하면서 소원이 무릉도원을 한 번 보는 것이었기에 너무 기쁜 나머지 첨지에게 무릎을 꿇고 물었다.


[주인께서는 신선이십니까, 귀신이십니까? 이 마을은 무슨 마을입니까?]


첨지가 놀라서 말했다.




[진사님! 어째서 갑자기 존댓말을 하십니까! 나는 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대에는 경기도 고양에 살았는데, 우리 증조부께서 마침 이 곳을 찾아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때 친가 외가 친척을 통틀어 따라오고 싶어했던 30여호가 따라왔지요. 일단 이 곳에 온 후에는 세상과 연을 끊기로 하고 경서 몇 권과 소금, 양념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땅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어 먹을 것을 해결하였고, 결혼은 이 안에서 해결해서 우리끼리 살고 있습니다. 자손이 번성하여 이제 마을에 집만 200채 가까이 됩니다.]


[먹고 입는 것이여 이 안에서 농사 짓고 베 짜는 것으로 한다고 하여도, 소금 같은 것은 어찌 하십니까?]


[진사님께서 어제 타셨던 소는 하루에 200여 리를 갑니다. 저희 증조부께서 이 곳에 오실 때 데려온 소가 새끼를 낳은 것인데, 이처럼 잘 걷는 소가 매년 한 마리씩 태어납니다. 이웃 마을에 다닐 때는 이 소를 타고가서 소금을 사옵니다. 산에 노루, 사슴, 멧돼지, 산양이 있으니 그 고기를 먹고, 산 주변에 벌꿀통 300여개를 치고 있는데 주인이 없이 서로 양보하며 쓰고 있습니다.]




하루는 첨지가 소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권진사님을 모시고 물고기나 좀 잡아오거라.]


그 소년들 중 어떤 소년은 겨와 쭉정이를, 어떤 소년은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를 가지고 일제히 한 연못에 모였다.




물 속에 겨를 풀어 넣고 그것이 아래로 가라앉자, 소년들은 일시에 몽둥이를 가지고 수영하며 내리쳤다.


조금 지나니 한 자나 되는 물고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무슨 고기냐고 묻자 [목멱어] 라고 하였는데, 붕어와 비슷하였으나 흰 비늘이 있었다.




권진사는 한 달 가량 그 마을에 머물며 모든 것을 구경하였다.


그 마을을 떠날 때 첨지는 거듭 부탁했다.


[이 마을은 춘천도, 또 낭천도 아닙니다. 이 너른 들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몇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데다 사람들이 이곳에 온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진사님이 이 곳에 오셨던 것도 다 인연이니, 이 산을 나가신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리지 마십시오.]




권진사가 말했다.


[나도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첨지가 말했다.




[쉽지 않을 것이오. 쉽지 않을 것이오.]


권진사는 산을 나온 이후 늙도록 집에서 머물며 매일 탄식하였다.


[내 평생에 한 번 진짜 무릉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만 속세일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까닭에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그 곳에 가지 못하였구나!]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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