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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번역괴담][2ch괴담][904th]친구가 본 것

괴담 번역 2017. 12. 1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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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하게 지내는 회사 동료가 어째서인지 바다에 가는 것만큼은 한사코 거절한다.


이유를 물어봤지만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색이었고.


궁금해서 같이 술 한잔하면서 취한 다음에 캐물었다.




그가 아직 학생일 무렵,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었단다.


기말고사 끝난 다음이랬으니 한겨울이었을 것이다.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어딜 정해놓고 가는 건 아니고, 친구네 개까지 셋이서 차를 타고 정처없이 달려가는 마음 편한 것이었다.




며칠째였나, 어느 바닷가 한적한 마을에 접어들 무렵, 해가 저물어 버렸다.


곤란하게도 휘발유가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다.


해안가 오솔길을 달리며 내비게이션으로 찾아보니 금방 주유소를 발견했지만, 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뒷문 쪽으로 돌아가보니, 문에 큰 소쿠리가 매달려 있더란다.


그걸 밀고 초인종을 누른다.


[실례합니다. 휘발유가 다 떨어져서 그러는데요.]




잠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무시하나본데.]


동료는 왠지 화가 뻗쳐서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쳤다.




[실례합니다!]


끈질기게 소리치자 현관 불이 켜지면서 유리창 너머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누구야?]




[휘발유가 다 떨어져서...]


[오늘은 쉬는 날이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화난 것 같은 목소리가 돌아온다.




[어떻게 좀 안될까요...]


[안돼. 오늘은 벌써 장사 접었어.]


어쩔 도리도 없이, 동료는 친구와 차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래서 시골은 안된다니까.]


[어쩔 수 없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자. 내일 아침에 문 열면 보란듯 찾아가서 바로 기름 넣고 뜨자고.]


차를 세울만한 곳을 찾아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주유소 뿐 아니라 모든 가게와 집이 다 문을 닫고 있더란다.


자세히 보면 어느 집이고 처마 끝에 바구니나 소쿠리를 매달고 있다.


[무슨 축제라도 하나?]




[그런거 치고는 너무 조용한데.]


[바람이 너무 세서 안되겠는데. 야, 저기 세우자.]


그곳은 산기슭에 있는 작은 신사였다.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는 돌계단 아래에다 차를 세웠다.


작은 주차장처럼 울타리가 있어, 바닷바람을 막아줄 듯 했다.


신사 기둥문 그늘에 차를 세우자, 주변은 이미 어두워진 후였다.




할일도 없겠다, 동료는 친구와 이야기나 좀 나누다 모포를 덮고 운전석에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개가 으르렁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강렬한 비린내가 나고 있었다.




개는 바다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친구도 눈을 떴는지, 어둠 속에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바다는, 낮에 본 것과는 달리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살풍경한 콘크리트 암벽에 꿈틀거리는 파도가 비친다.


[뭐야, 저거.]


친구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처음 그것은, 바다에서 기어나오는 굵은 파이프나 통나무 같이 보였다.


뱀처럼 몸부림치며, 천천히 뭍에 올라왔지만 이상하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놈의 몸 자체가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 덩어리 같아, 실체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대신, "우우우..." 하는 귀울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구역질 나는 비린내는 점점 심해질 뿐이었다.




그 녀석의 끄트머리는 해안가 길을 가로질러 건너편 집까지 닿고 있었다.


아직 반대편은 바다에 잠긴 채였다.


집 처마를 들여다보는 듯한 그 끄트머리에는,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 같은 게 분명히 있었단다.




두 사람 모두 담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을 본 순간부터 "불길하다" 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해 몸이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고 한다.


마치 심장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것은 처마에 매단 소쿠리를 계속 바라보다가, 이윽고 천천히 움직여 다음 집으로 향했다.




[야, 시동 걸어.]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에, 동료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움직이지 않는 팔을 간신히 들어 키를 돌리자, 적막한 가운데 엔진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이 천천히 이쪽을 돌아본다.


"위험하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눈을 마주치면 안되는 직감이 들더란다.




앞만 바라보며 액셀을 밟아 급발진했다.


뒷좌석에서 미친 듯 짖던 개가 훅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타로!]




무심코 돌아본 친구도 히익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그대로 굳었다.


[멍청아! 앞을 봐!]


동료는 친구의 어깨를 강제로 잡아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친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고 한다.


동료는 정체 모를 공포에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 액셀을 밟았다.


그나마 남은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달려간 뒤,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고 한다.




친구는 의식이 불명확한 상태로 근처 병원에 입원했고, 일주일 가량 고열에 시달렸다고 한다.


회복된 뒤에도 그 일에 관해서는 결코 입을 열려 하지 않았고, 이야기만 꺼내려 해도 불안해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들을 수 없었고, 졸업한 뒤에는 그대로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개는 심한 착란 증세를 보인 끝에, 가까이 오는 사람은 누구에게든 거품 물고 달려들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안락사시켰다고 한다.


그것이 뭔지, 동료는 아직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바다에는 결코 가까이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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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서 일하던 시절 이야기다.


집을 팔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물건도 확인할 겸 직접 찾아갔다.


현관 앞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정원도 잡초투성이라 한눈에 봐도 사람 손 닿지 않는 폐가 같은 모양새였다.




초인종을 누르다 문득 시선을 돌리니, 마당에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아이는 급히 달아났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 다를 게 없었다.




여기저기 옷가지와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고, 부엌에는 술병이 굴러다닌다.


그런 풍경 와중, 창가에 놓인 새빨간 책가방과 노란 모자만은 오히려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집주인인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로, 목욕도 한참을 안했는지 지독한 체취와 술냄새를 펄펄 풍기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아내가 도망을 쳤는지, 아내에 대한 푸념이 대부분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각 방 상태를 확인하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발을 옮겼다.


2층에서 아까 그 여자아이가 나를 내려다봤다.




[아빠, 괜찮았어?]


뭐가 괜찮냐고 물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안심한 듯, [다행이다. 아빠가 기운 없어서 걱정했어.] 라며 활짝 웃었다.




[방 좀 보여줄 수 있니?] 라고 묻자,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복도를 후다닥 달려가더니,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2층으로 올라가 여자아이가 들어간 듯한 방으로 향했다.




거기는 다른 방과는 달리, 다른 여자아이들 방처럼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무리 저런 아버지라도, 자기 딸 방만큼은 더럽히지 않는구나 싶어 묘하게 감탄했다.


자세히 보니 그 방과 연결된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를 위한 방 같이 보였다.


아버지가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건가 싶어 의아해진 나는, 여자아이에게 물어보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다른 방으로 가버린 것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2층을 대충 돌아보고, 나는 다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러갔다.


문득 생각나서, [아이는 두 명인가요?] 하고 물었다.


[아, 어린 것은 아내가 데리고 갔습니다. 큰 아이 위패도 가져가버려서, 저한테는 이게 위패 대신입니다.]




그러면서 창가에 놓인 새빨간 책가방을 가리켰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새로 사 놓은 책가방 한번 메어보지 못하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단다.


아내는 정신에 문제가 생겨 어린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떠났고, 남자는 그저 술로 속을 달래고 있더란다.




아버지가 걱정되서 딸이 성불도 못하고 있잖아요, 라는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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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902nd]열이 나던 날

괴담 번역 2017. 12. 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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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아직 대학생이던 무렵 이야기다.


그날은 몸에 열이 좀 있어서, 아침부터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침 8시쯤, 엄마가 [일 다녀올게.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전화하렴.] 하고 말한 뒤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나는 고양이가 침대에 들어오면 신경 쓰여서 잠을 못 이룬다.


몸도 안 좋고, 한숨 푹 자야겠다 싶어서 고양이는 방 밖에 내어놓았다.


집이 낡은 탓에 고양이가 문을 세게 밀면 문이 열리기 때문에, 문도 잠그고.




잠시 누워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친구와 라인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몸상태가 확 나빠졌다.


몸이 너무 무겁고 추운데다, 눈앞이 마구 흔들려 기분이 나빴다.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전파 상태가 나빠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문 밖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야옹.] 하고, 평소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어딘가 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목소리가 아랫쪽이 아니라 윗쪽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바닥이 아니라, 사람이 말하는 정도 위치에서.


너무 무서운 나머지 나는 문도 못 열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걱정되서 돌아왔어.]


분명 엄마 목소리인데, 그것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목소리 톤이나 단어 선택 같은게,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직 엄마가 일하러 나간지 2시간도 안 된 터였다.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올리가 없었다.




문밖에, 뭔가 알 수 없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워서 문을 바라보려 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춥고 무서워서 이가 덜덜 떨렸다.




다음 순간, 문 손잡이가 덜컹덜컹하고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물쇠도 오래 되서 약한 탓에, 저렇게 돌리면 금세 열려버릴텐데...


숨도 못 쉬고 있는 사이, 문 손잡이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문 앞에서 "무언가" 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나지막하게 들었다.


휴대폰을 보니 전파가 닿고 있어서,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했다.


역시나 엄마는 집에 돌아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후, 걱정이 되어 일찍 돌아온 어머니는 현관에서 고양이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운차던 고양이가, 상처 하나 없이 누운 채 죽어있었다.


우리 고양이는 문 밖에 있던 "무언가" 가 데리고 가 버린 것일까.




만약 그때 문을 열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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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901st]남자의 사진

괴담 번역 2017. 12. 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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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은 된 이야기다.


친구 A가 갑자기 배낭여행을 떠나겠다고 말을 꺼냈다.


산지 얼마 안된 디지털 카메라를 시험해보고 싶었으리라.




나도 별 생각 없이, [조심해서 다녀와.] 라고 말한 뒤 배웅했다.


하지만 사흘 정도 있다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나흘이 지나도 닷새가 지나도 A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연락도 없었고.




마침내 A의 가족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일주일 뒤, A가 발견됐다.


익사체가 해변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 속 유류품을 통해 신원이 판명됐다고 한다.


며칠 뒤, 나는 A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경찰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사진 한장을 보여주며, [혹시 이 남자 모르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거기 찍혀 있는 것은 웃고 있는 A였다.


그리고 그 옆에, 본 적 없는 수염 난 남자가 서 있었다.




30대쯤 된 것 같았다.


이 사진은 A의 디지털 카메라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A가 죽기 직전 찍은 마지막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진이 몇장 더 있었다.


혹시 이 남자가 A를 죽인 건 아닐까?


나는 남자를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역시 그렇겠죠...] 라고 고개를 떨궜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입니까?]


경찰은 넌지시 귀띔했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 이 남자는 10여년 전에 실종된 사람이에요. A씨가 사고를 당한 부근에서 사라졌고요. 지금도 저희가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A가 이 남자와 만난 직후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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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동창회 소식을 알리는 편지가 왔다.


중학교 동창회로, 20살때 한번 만났던 친구들이다.


어느덧 10년이 지나, 이제는 서른이 됐다.




어릴적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이제는 왕래가 뜸해졌다.


오랜만에 만나 옛 정을 되살리고 싶어, 참석하기로 했다.


동창회 당일, 꽤 많은 친구들이 나와 왁자지껄 사는 이야기도 늘어놓고, 어릴 적 추억도 풀어놓았다.




정말 즐거운 모임이었다.


서른살쯤 되니 아저씨 아줌마가 다 된 친구들도 있고, 머리가 벗겨진 친구도 있다.


새삼 다들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나 스스로도 아저씨가 됐다는 건 애써 무시하면서.


결혼한 친구들이 꽤 많아서, 아직 미혼인 나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렸던 모양이지만, 지병 때문에 거동이 어려우셔서 아쉽게 못 오셨다고 한다.




서서 식사하는 곳에서 가볍게 1차를 마친 뒤, 2차는 술집으로 향했다.


반 조금 넘는 인원이 2차에 참여했다.


나도 다음날 일이 없었기에, 조금 과음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2차에 따라갔다.




조금 취기가 돌고, 다들 1차 때보다 개방적이고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던 그때.


새로운 참가자가 나타났다.


A였다.




A는 중학교 시절 친구가 많지 않은 녀석이었다.


나 역시 그와 이야기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10년 전 동창회에도 참석했었고, 그때는 나름대로 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다만 중학교 시절부터 겁먹은 듯한 태도라, 이야기하다 왠지 모르게 말문이 막혀 맥이 끊기곤 했다.


하지만 다들 술도 들어갔겠다, 기분이 거나해진 친구들은 A를 반가이 맞이했다.


[이야, A잖아!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난입이냐!]




간사인 B가 먼저 말을 건넸다.


B는 나와 사이가 좋아, 지금도 가끔이나마 연락을 하는 몇 안되는 동창이다.


다른 친구들도 제각기 [오랜만이다! 앉아, 앉아!] 라던가, [지금 분위기 딱 좋은데 잘 맞춰왔네.] 라면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A는 B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나는 A를 보고 새삼 놀랐다.


전혀 늙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조금 힘이 없어보였지만, 10년 전 동창회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마가 조금 넓어져가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A는 이전보다도 더 과묵해져 있었다.




무언가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는 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 마실래?] 하고 B가 물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이 없었다.


[일단 생맥주 한잔 시키지 그럼. 안 마시면 내가 먹는다.]




하지만 A는 그렇게 시킨 생맥주도, 안주에도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그쯤 되자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나말고 다른 녀석들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하던 일이 안 풀려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했다.




그래서 가급적 밝은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이야, 그나저나 A 너는 정말 늙지도 않았네. 부럽다. 나는 완전 아저씨가 다 됐어.]


A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 몇도 거들었다.


[그러니까! 한눈에 알아보겠더라니까. 전혀 안 변했지 뭐야. 뱀파이어라도 되는 줄 알았어!]


[안 늙는 체질도 있더라니까.]




A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B도 한마디 거들 생각이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 혹시 A는 진짜 사람이 아닌 거 아냐?]




결코 바보취급 하거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고, 그저 농으로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에, 그제껏 미소만 띄우던 A의 표정이 달라졌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 모습에 놀란 B는 곧바로 [아, 내가 말실수를 했나보네. 기분 나빴어? 미안, 미안.] 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듯, A는 계속 벌벌 떨 뿐이었다.


다른 녀석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다들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역시 마음에 병이 있는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하기 짝이 없게, B의 가벼운 농담에 과민반응해서 분위기를 깨버린 A를 책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말 미안해. 마음 풀고 다시 마시자.]




B는 다시 사과했다.


다른 녀석들은 아까 일은 잊은 듯, 다시 잡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A의 떨림은 점점 커져서, 의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나도 말을 걸었다.


[야, 괜찮냐?]


그러자 A가 기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웃는 듯, 화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등과 손등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하고, 일정한 박자로 박수를 친다.


"우와, 뭐지 이녀석. 무섭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A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절규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그 순간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괴물 같던 그 얼굴.




우리 동창회 멤버들은 물론이고, 다른 손님과 점원까지 다들 놀라서 망연자실했다.


다시 술을 마실 분위기도 아니고, 결국 그날은 그대로 모임이 파했다.


훗날, B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자기 때문인 거 같아 죄책감도 들어, A네 집에 연락을 해봤단다.


B는 A의 가족에게 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을 에둘러 전하고, 혹시 연락을 받은 건 없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그것이 사실인지, 어디 있는 가게인지 되묻더니, 한참 있다 A가 10년 전 실종됐다고 말하더라는 게 아닌가.


10년 전 동창회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이번 동창회 초청장을 받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바빠서 답장을 잊고 있었단다.




10년 전 사라진 A가, 동창 중 누구와도 연락이 없던 A가, 어떻게 동창회 2차 자리를 알고 찾아온 것일까.


나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돌이켜보면 10년 전 동창회 때, A가 말문이 계속 막혔던 건 사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꺼내놓지 못해서는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A는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건강하지는 않더라도, 부디 어디에선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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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102nd]기어오는 군인

실화 괴담 2017. 11. 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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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메일로 김민기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2014년, 제가 군 복무할 무렵 이야기입니다.


저는 가평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일병 5호봉이던 시절, 탄약고 경계초소근무를 서던 전번초 근무자, 후임 김일병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야, 일어나. 근무 가야지.] 


김일병은 불침번 근무자이자 고참인 신상병이 깨워 잠에서 일어났답니다. 


밖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었 날이었지요. 




근무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가장 피곤하고 졸린 시간대. 


네 소대가 번갈아가며 한달에 1번씩 서는 탄약고 근무였습니다.




탄약고는 언덕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투입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했죠.


그런 탓에 다들 탄약고 근무를 서는 날이면 매우 싫어했었습니다. 


거기다 비까지 오는 날이니,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였습니다. 




김일병은 서둘러 환복을 하고, 단독군장을 차고 방탄헬멧을 쓴 뒤, 행정반에 가서 시건된 총기를 꺼내고, 대검을 받은 뒤 보고를 했습니다.


[당직사관님. 보고드립니다. 탄약고 근무 투입하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졸고 있다 막 잠에서 깬 당직사관은 졸음이 덜 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대대 실장에게 보고 후, 팀장에게 공포탄을 받아 검사 후 출발을 했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우비를 써야하는데, 김일병은 계급에서 밀리다보니 찢어진 우비를 받았더랍니다. 




그걸 쓰고 가니 비는 새고 옷은 젖어, 잠이 금세 확 깼다네요. 


그렇게 올라올라 탄약고에 도착해,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고참과 같이 서는 근무.




고참은 초소 안에 들어가 쉬고, 짬이 안되는 후임은 밖에 서서 감시하는 당연스러운 전개로 흘러갔습니다. 


십분, 삼십분, 한시간... 


시간은 흘러가고, 김일병은 그저 멍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탄약고 언덕길을 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2시간 근무 중 1시간 20분 가량이 흘렀을 때, 김일병은 그 언덕길에서 보면 안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비가 흘러내리는 언덕을, 무언가가 꾸물꾸물거리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찰박... 스윽... 찰박... 스윽... 찰박... 스윽...]



 

웅덩이를 짚는 짙은 소리와, 무엇인가 끌고 오는 소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기어오고 있던 것이었죠. 




김일병은 이때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해짐과 동시에, 제대로 된 사고가 마비됐다고 합니다.


극도의 공포와 마주치면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고들 하죠. 


입도 마비되어, 같이 근무 들어온 염상병을 부를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졸고 있는지 자고 있는지, 초소 안 기둥에 기대어 있을 염상병을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지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오고, 기어오는 것은 언덕길 중간에 파놓은 배수로를 지나오고 있었습니다. 


[철벅... 스윽... 철벅... 스윽... 철벅... 스윽...]  




짙게 들리는 물을 짚는 소리와 더불어, 그것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낡은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었습니다.


허리 아래부분은 날아간건지 절단된건지 없었고, 찢어진 상의 옷가지만 끌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검은 형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기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졸도할 지경인데, 김일병을 더 미치게 만든건 그것의 얼굴이었습니다.


두 눈구멍은 뻥 뚫려 눈알은 보이지 않고, 턱은 찢어져 간신히 붙어있는 채 덜렁거리고 있었답니다. 


그런 녀석이 말라 비틀어진 팔로 기어오는 모습을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갈만도 하죠.




김일병은 자기도 모르게 공포탄 장전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한발을 쏜 뒤 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총소리를 듣고서야 잠에서 깬 염상병의 긴급보고로, 거품 물고 실신한 김일병이 대대 팀장 및 오분대기조에게 실려 내려왔습니다. 


그 탓에 당시 졸고 있던 염상병은 진급이 누락당했고요. 




김일병은 쓰러진 이유를 대대 실장 및 대대장, 중대장, 주임 원사, 탄약관에게 죄다 보고했지만, 군대라는 곳이 어디 귀신봤다고 넘어가주는 동네겠습니까.


결국 군의관에게 "정신착란으로 인한 극도의 공포에 의한 발포" 라는 길고 얼토당토않은 판정을 받고 나서, 휴가도 잘리고 진급도 누락당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이 이야기의 진상을 알게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염상병도 전역을 하고, 저와 김일병 모두 상병 계급장을 달고나서야 이야기 해주더군요. 


[김상병님, 제가 그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응? 뭔데?]




김일병이 공포탄을 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겁니다. 


그 기어오는 질척한 소리가 가까워 올수록,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처음엔 [....줘 ...놔줘...] 하고 들렸는데,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니 겨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쏴줘" 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그 낡은 군복을 입고 기어오는 게 낮은 목소리로 "쏴줘" 라고 하더란 말입니다.]




아마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하반신을 잃고 숨을 거둔 군인의 혼령이었을까요.


이유를 알고나니 마음이 착잡해지더군요.


6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다니며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군인의 혼령이라니. 




군 복무하는 도중,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뼈에 새겼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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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데스데이, 2017

호러 영화 짧평 2017. 11. 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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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공포영화가 아니다" 라는 카피를 대놓고 들고 나왔고, 정말 정직하게 그 말이 맞았습니다!

슬래셔 장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슬래셔의 요소를 빌려온 호러 코미디 영화라고 정의하는 게 옳을 거 같네요.

아마 슬래셔 영화나 호러 영화에 약하신 분들이라도, 이 작품은 그리 어렵지 않게 감상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잔인한 장면도 딱히 나오질 않고, 점프 스케어도 별로 없을 뿐더러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영화는 예고편에서부터 밝히듯, 타임루프를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매일 생일날을 반복하며 똑같은 하루 속, 베이비 페이스 가면을 쓴 살인범에게 죽게 됩니다.

과연 살인범의 정체는 무엇인지, 죽음을 피하고 무사히 다음날을 맞는 게 목표가 되는거죠.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적절히 가져가면서도 유쾌한 편이라, 보는 내내 시간이 훅 지나갑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아주 제격인 셈이죠.





다만 그렇다고 다 좋은 영화는 또 아닙니다.

살인범이 쓰고 나오는 베이비 페이스 가면 자체는 나름대로 친근함과 섬찟함 그 어딘가를 잡아내긴 했는데, 정작 진범과 살해동기가 납득하기 미묘합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 미워하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만, 그래도 타임루프까지 하면서 사람을 죽여대는데는 좀 그럴듯한 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다 사용한 트릭과 타임루프의 원인까지 죄다 빈틈 투성이입니다.

생일은 물론 누구에게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날입니다만, 타임루프의 당위성까지 마련해주는 날은 아니잖아요.

영화 보는 도중에는 대충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딱히 건질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 트리 역을 맡은 제시카 로테는 그야말로 극을 하드캐리했습니다.

유쾌하고 똘끼 있는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낼 뿐 아니라, 예쁜 장면에서는 예쁘고 망가지는 장면에서는 망가져주더라고요.

영화 나머지 등장인물이 다 별로였지만, 주인공 하나만큼은 확실히 매력적인 캐릭터라서 좋았습니다.

이런 류 코미디 작품이 그렇듯, 멘탈이 정말정말 단단합니다!





정리해보자면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벼운 킬링 타임으로 나쁘지 않은 영화입니다.

타임루프물의 고전 사랑의 블랙홀 포맷에, 슬래셔 요소를 적절히 잘 끌어온 게 잘 먹힌 거 같아요.

저예산 영화인데, 미국 흥행이 대박이 나면서 이미 속편 제작이 확정났다고 하네요.

제작비가 5백만 달러도 안 들었는데 미국 흥행만 5천만 달러를 넘겨서 10배 장사에 성공했습니다.

여세를 몰아 다음편에서는 좀 더 납득할만한 핍진성을 보여준다면, 더욱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 점수는 6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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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101st]친구네 집

실화 괴담 2017. 11. 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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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메일로 지나가던 모찌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저희 집은 부모님이 그냥 풀어 키우시는 스타일이라, 서울로 이사오고 난 5살 때부터 저는 혼자 놀이터에 나가 놀았습니다. 


지금이야 놀이터가 휑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을 데려나와 놀게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았던데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니 괜찮다고 생각하셨던 거겠죠.


그 때 서울에서 처음 사귄 친구라고 기억되는 아이가 있습니다. 




당시 유치원 선생님 말씀으로는, 제가 특정한 친구와 엄청 친해지기보다는 두루두루 친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마 제일 친했던 건 그 친구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꿉친구라고 생각되는 아이들도 7살 때 유치원을 그만두고 논술과외를 함께 하면서 친해진거니까요.



 

하여튼 그 친구, 남자 아이는 저희 유치원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놀이터에서만 만났거든요. 


하지만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근처에 유치원만 두 개인데다가, 멀리 버스 타고 다니는 유치원에 보내는 아줌마들이 그 때에도 있었거든요.


유치원이 끝나면 집에도 안 들르고 바로 놀이터로 가서 그 남자 아이와 놀았습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이상합니다. 




제가 놀이터에 오기 전부터 그 남자애는 모래밭에서 절 기다리고 있었고, 없어도 제가 먼저 가서 놀고 있으면 금방 등장했거든요. 


정말 제가 사정이 안될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함께 놀았습니다. 


엄마도 나중엔 유치원 끝나도 놀이터에 있겠거니, 하시면서 아파트 복도에서 제 이름 한번 불러 확인하기만 하실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자 아이가 문득 [우리 집에 가서 놀자!]라고 제안해왔습니다.


저야 환영이었죠. 




친구 집에 가서 노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거니와, 서로 집에 초대하는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조금 쑥쓰러웠기 때문에 쭈뼛쭈뼛하고 있으니, 엄마도 널 데려오랬다면서 제 손을 잡아 끌더라고요.


저는 결국 걔를 따라 저희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습니다. 




저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건 이번에 처음이었거든요. 


그 애의 손을 잡고 모르는 길을 지나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그 애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애의 집은 저희 집과 달리 주택이었습니다. 


대문을 여니 안에는 진짜 하얗다, 하고 탄성이 나올 듯한 커다란 개가 있었습니다. 


개가 절 보고 짖으니 안에서 뭔가를 소리치며 아줌마 한 분이 나와 개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애 뒤에 숨은 절 보더니 웃으시더군요. 


부러웠습니다. 


저희 집은 개는 커녕 물고기 하나 키우지 않고 우리 엄마는 저렇게 상냥하게 예쁘지 않았거든요. 




어머님은 저를 반기시면서 집 안으로 이끄셨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 친구의 표정이 조금 뭔가 불편해보였던 것 같습니다.


눈치 없는 저는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간식을 먹으며 그 애의 방에서 마음껏 뛰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창 밖을 보니 날이 어둑어둑해진겁니다. 


아주 밤은 아니고 슬슬 해가 지는 초저녁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문이 열리더니 어머님이 자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좋았죠, 친구랑 밤 늦게까지 놀 수 있을테니까.


제가 알았다고 하자, 어머님이 이불을 꺼내오시겠다며 문을 닫고 나가셨습니다. 


그때, 남자애가 제 손목을 잡았습니다.




[안되겠어.]


느닷없는 소리에 그 애를 보자 엄청 화난 표정이었습니다. 


저희 오빠처럼 무표정한 얼굴이라 순간적으로 겁이 났습니다.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착한 친구였는걸요. 


제가 왜 그러나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절 끌고 방에서 나가 눈치를 보면서 현관 밖으로, 그러니까 마당으로 나가더군요. 


그리고 개를 피해 집 옆으로 돌아가더니 절 보고 [넌 안되겠어. 안돼.] 이런 말을 하더니 덤불이었나 돌이었나를 치우더라고요. 




그 뒤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모르는 제가 뒤에 서있자, 남자 아이는 절 구멍으로 잡아끌더니 나가라고 하는거예요.


왜냐고 물으니까 [너희 엄마가 걱정하실거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제서야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심지어 말도 안 하고 왔으니 엄청 혼날 것 같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대문은 생각도 못하고 구멍으로 나가려고 움직이는데, 걔가 뭘 손목에 끼워주더군요. 




파란색 팔찌였습니다. 


비즈인지 돌인지 그런 게 꿰어진 팔찌였죠.


그리곤 웃기에, 저도 인사를 건네고 구멍으로 나와서 왔던 길 쪽으로 가던 와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이 나는 게, 걔네 엄마한테 인사를 안하고 온 거죠. 


엄마가 인사는 잘 하고 다녀야한댔어요. 


어차피 대문을 지나쳐 가야하니까 초인종으로 인사드리고 가자는 생각으로 가는데, 걔네 집이 무척 소란스럽더라고요.



 

그렇게 상냥하던 아줌마가 [어디 갔어! 어디다 놨어!] 하고 소리 지르는 게 들리고, 개가 그 대형견 특유의 큰 울음소리로 컹컹 짖어댔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서 울면서 막 집으로 달려갔죠. 


그리고 다음에 눈 떴을 땐 병원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작은 오빠가 학교 갔다 돌아오는데, 놀이터 어디에 사람이 모여있더래요. 


가보니까 중간에 제가 쓰러져 있었더라나요. 


오빠들이 놀라서 엄마 불러오고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답니다.




문제는 오빠가 절 발견한 날이 제가 그 애랑 그 애 집에 갔던 날의 낮이었다는겁니다. 


저는 하루종일 걔네 집에서 놀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나왔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눈을 뜬 건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후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해가 안 가서 나는 분명히 수요일에 그 친구네 집에 갔다고 주장을 했지만, 오히려 엄마는 그 친구가 누구냐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엄마께 여쭤보니 목격자 분들도 제가 혼자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쓰러졌다고 했다고 합니다. 


오빠도 상상의 친구다, 꿈꾼거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상상의 친구라고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이제 성인인 지금에 와서도 여전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전까지 제가 가지고 있었을리 없던 그 애가 줬던 팔찌가 제 손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사준 것도 아니라 엄마도 그건 어디서 난 거냐고 물으셨을 정도죠.


그 이후로 전 병원 침대 신세를 져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 아이는 누구였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그 아이에게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한참 지난 어릴 때의 일을 갑자기 꺼낸 이유는 딱히 별 건 아닙니다.




늘 지니고 다녔던 그 아이가 준 팔찌의 끈이 얼마 전 끊어져 버렸거든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언젠가 이 글을 쓸 수 없기 전에 누군가에게 말해놓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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