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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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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밖에 사는 심씨 성을 가진 양반이 있었다.

집이 무척 가난하여 외출을 할 때면 남편과 아내가 한 벌의 옷을 서로 바꿔 입고 번갈아 나갈 정도였다.

그나마 병마절도사 이석구와 친척이어서, 간혹 이석구가 도움을 주어 죽이나 겨우 먹고 다녔다.



작년 겨울 한낮에 심씨가 한가롭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방 지붕에서 쥐가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심씨는 쥐를 내쫓으려고 담뱃대로 천장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당신을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여기에 왔으니 나를 박대하지 마십시오.]

심씨가 놀라서 분명 도깨비인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대낮에 어떻게 도깨비가 나오겠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하는데 다시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내가 먼 길을 와서 몹시 배가 고프니 밥 한 그릇만 주시오.]

심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가족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심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당신들끼리 모여서 나 몰래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과 부인들이 놀라 달아나니까 귀신도 부인을 따라가면 계속 외쳤다.



[놀라서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것입니다. 곧 한 집안 식구가 될텐데 나를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부인들이 여기저기 가서 숨었지만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머리 위에서 밥을 달라고 계속 소리를 쳤다.

결국 밥과 반찬을 한 상 차려서 대청마루에 놓아 두었더니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이 밥을 잠깐 사이에 다 먹어 치웠으니, 다른 귀신들이 제사를 지내면 음식의 향만 맡고 가는 것과 달랐다.

심씨가 놀라서 물었다.

[너는 어떤 귀신이고, 무슨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이라 합니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 집에 들어온 것이오. 배부르게 밥을 먹었으니 이제 가겠소.]

곧 작별을 하고 귀신이 떠났다.



그런데 다음날 귀신이 또 찾아와서는 어제처럼 먹을 것을 요구하고 다 먹은 다음 가 버렸다.

이후 귀신을 매일 찾아왔고, 어느 날은 하룻 밤을 자고 가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온 집안 식구들이 익숙해져서 귀신이 와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심씨가 귀신을 쫓아내려고 벽에 부적을 붙이고 온갖 잡귀를 쫓아내는 물건들을 구해 집 앞에 내어 놓았다.

그랬더니 귀신이 또 와서 말했다.

[나는 요귀가 아닙니다. 그런 수작이 무서울리가 있겠습니까? 빨리 그것들을 치워서 나같은 손님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주시오.]



심씨가 어쩔 수 없이 물건들을 치우고 물었다.

[너는 미래의 운명에 관해 알고 있느냐?]

귀신이 말했다.



[아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은 미래에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69살까지 살겠지만, 평생 불우할 것입니다. 당신 아들은 몇 살까지 살 것이고, 손자에 가서야 겨우 과거에 급제할 것이오. 하지만 그나마도 쉽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심씨가 그 말을 듣고 놀랄 뿐이었다.



집안 식구 중 어떤 부인은 몇 살까지 살고, 아들은 몇 명이나 낳을지 물어보니 귀신은 일일히 다 대답해주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쓸 곳이 좀 있으니 엽전 200냥만 좀 베풀어 주십시오.]

심씨가 말했다.



[네 눈엔 우리 집이 가난해 보이냐, 부자로 보이냐?]

[가난이 뼛 속까지 사무치지요.]

[네가 봐도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냥을 마련해 주겠냐?]



[당신 집안에 숨겨둔 상자 속에 조금 전 빌려온 200냥이 있는 걸 내가 아는데 왜 그 돈을 나한테 주지 않습니까?]

[내가 쓸 돈도 없어서 겨우 빌어서 꿔 온 돈인데, 이 돈을 지금 너한테 주면 나는 저녁 먹을 거리도 없을 것이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당신 집에 아직 쌀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저녁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오. 어째서 거짓말로 때우려 하는 것이오? 내가 이 돈을 가져갈테니 화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귀신은 훌쩍 가버렸다.

심씨가 상자를 열어보니 자물쇠는 제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돈은 사라지고 없었다.

심씨는 손해가 점점 커지는 것에 고민하다 부인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도 친한 친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랬더니 귀신은 친구 집까지 쫓아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어째서 나를 피해 이런 곳까지 와서 빌어 살고 앉았소? 당신이 만약 천 리를 달아난다 해도 내가 못 찾을 것 같소?]

귀신은 이번에는 그 집 주인에게 밥을 달라고 했다.



주인이 밥을 안 주자 귀신은 온갖 욕을 해대며 그릇들을 깨부쉈다.

이토록 밤새도록 소란을 피우니까 주인은 심씨에게 원망을 하며 깨진 그릇 값까지 물게 했다.

심씨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귀신은 부인들의 친정까지 찾아가 똑같이 소란을 피워서 부인들도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귀신은 평소처럼 심씨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귀신이 말했다.



[이제 오랫동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할테니 부디 몸을 잘 관리하시구려.]

심씨가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던 좋으니 부디 빨리 여기서 떠나라. 우리 집안 사람들도 편하게 좀 살아보자!]



귀신이 말했다.

[우리 집은 경상도 문경에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노잣돈이 없구려. 그러니 유엽전 천냥만 내게 주시오.]

심씨가 말했다.



[내가 가난해서 밥도 잘 못 챙겨 먹는건 너도 알 거 아니냐? 그렇게 많은 돈을 내가 어디서 구하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 친척인 절도사 이석구 집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면 쉽게 빌려줄 겁니다. 어째서 돈을 안 구해 와서 내가 집에 못 가게 합니까?]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안의 모든 것은 절도사께서 주신 것이다. 입은 은혜가 너무 큰데 하나도 보답을 못해서 항상 부끄러워 하고 있는데 또 천냥을 빌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귀신이 말했다.



[내가 당신 집에서 소란을 피운 걸 이미 절도사도 알고 있을 것이오. 당신이 이것만 해주면 요괴를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하면 어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즉시 이석구의 집으로 달려가 사정을 모두 말했다.



이석구는 화를 냈지만 결국 돈을 주었다.

심씨가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상자 깊숙이 감춰 두고 앉아 있으니 곧 귀신이 와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잣돈을 넉넉히 가져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덕분에 노잣돈을 얻었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테요.]



심씨가 귀신을 속이려고 말했다.

[내가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와서 너한테 노잣돈을 주겠냐?]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 번에 선생이 봐서 알텐데 왜 쓸데 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잠시 뒤 귀신은 또 말했다.

[내가 이미 상자 속의 당신 돈을 가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250냥은 남겨 두었으니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십시오.]



귀신이 인사를 하고 사라지니 심씨 집안의 모든 이들이 좋아서 기뻐 날뛰며 서로 축하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자 또 공중에서 귀신이 인사를 했다.

심씨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 쳤다.



[내가 다른 사람에서 구걸까지 해서 천냥을 마련해서 고향에 가게 해 줬으면 너는 감사한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니 너는 은혜도 모르는구나! 내가 관우 사당에 가서 너에게 벌을 주라고 빌어야겠다.]

귀신이 말했다.

[저는 문경관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은혜를 저버렸습니까?]



심씨가 말했다.

[문경관이 아니라고? 그럼 너는 누구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의 아내입니다. 당신 집에서 귀신을 잘 대접한다고 남편이 그러길래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반갑게 맞이해야지 욕이나 하고 있군요. 남녀를 모두 공경하는 게 선비일텐데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도 없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웃었다.

귀신은 또 날마다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심씨의 소식이 끊겨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호사가들은 앞다투어 심씨 집에 가서 귀신과 이야기를 했으니 심씨 집 문 앞이 시장바닥 같았다.

학사 이희조는 심지어 그 집에 하룻밤 묵으면서 귀신과 대화까지 했다고 한다.

아!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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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의 한 포수가 묘향산에서 사냥을 했다.

묘향산은 큰 산이어서 인적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았다.

포수가 사슴 한 마리를 보고 거의 잡을 뻔 했으나 결국 잡지 못했다.



하루 종일 쫓아다녔지만 결국 사슴을 잡지 못하고 떠돌다 깊은 산 속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날까지 저물어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위태로운 상황에 겁을 먹고 있는데, 깎아 세운 듯한 골짜기 가운데 작은 길이 있어 앞으로 몇 리를 나아가니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은 12칸이 길게 통해 있었는데, 한 칸만 주방이었을 뿐 나머지는 문도, 창도, 벽도 없이 길게 통해 있었다.

주방에서는 아름다운 한 여자가 저녁밥을 짓고 있었는데, 포수를 보고도 별로 놀라거나 이상히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포수가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그 예쁜 여자는 정성스럽게 응대하였다.



포수가 젊은 나이의 치기로 시험 삼아 유혹을 했더니 여자 또한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 없어 쉽게 관계를 맺었다.

잠시 후 여자가 저녁밥을 내왔는데 반찬은 곰발바닥, 사슴포, 산돼지 고기 등이었다.

포수가 남자는 없느냐고 물어보자 여자는 [사냥 나갔다.] 고 대답했다.



4시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자 여자는 바로 뛰어나가 맞이하였다.

포수가 나가보니 거인이 뜰에 서서 등에 지고 온 짐을 땅에 풀어 놓고 있었고, 그 짐의 크기는 집 한 칸만 했다.

그 사람은 몸도 크고 키도 커서 지붕보다 30m는 더 높이 솟아 있었기에 방 안에서는 도저히 그 사람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거인이 아내를 보며 말했다.

[오신 손님을 잘 대접하였소?]

[예, 잘 대접해 드렸습니다.]



거인이 마침내 방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키가 너무 컸으므로 방으로 똑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리부터 서서히 구부려 들어와
그대로 누웠다.

그 누운 길이가 11칸의 방을 모두 채웠다.

그 거인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누운 것은 그의 앉은 키가 대들보보다 높아 몸을 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인이 포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종일 사슴을 쫓았지만 잡지는 못하지 않았소?]

[예, 그렇습니다.]



[당신은 저 여자와 관계를 갖지 않았소?]

포수는 [저 거인이 이처럼 신령하고 거대한데다 내가 지은 죄를 이미 헤아리고 있구나!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며 사실대로 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거인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내 비록 저 여자를 이 곳에 두고 있지만 음식을 시중들게 한 것 뿐 처음부터 가까이하지 않았다오. 당신이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해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니 두려워할 필요 없소.]

그리고 거인은 여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먹을 것을 준비해 오시오.]



여자는 명령을 받들어 조금 전 거인이 메고 왔던 큰 돼지 한 마리를 잘라 큰 그릇에 가득 담아 내왔다.

모두 날고기였고 다른 음식은 없었다.

거인이 고기를 모두 먹고난 뒤, 잠잘 때가 되자 다시 여자에게 말했다.



[저 손님과 함께 자시오.]

여자가 비록 포수와 함께 누워 있었지만, 포수는 의아스럽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밤새 그냥 잠만 잤다.

다음날 아침 다시 그 거인을 보자 그저 사람과 비슷할 뿐, 진짜 사람은 아니었다.



포수의 마음 속에서는 별의별 괴이한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날이 밝자 그 거인은 누운 채 여자를 불러 말했다.

[손님의 밥과 내 밥을 같이 차려오시오.]



여자가 명령을 받들어 밥을 준비하여 내왔다.

포수의 것은 밥과 반찬을 익혔으나, 거인의 것은 어제처럼 날고기만 그릇 가득 담겨 있었다.

음식을 다 먹자 거인은 긴 몸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왔는데, 마치 긴 이무기가 요동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부터 똑바로 기어나온 거인은 바깥 뜰에 나와서야 드디어 앉고 말했다.

[내가 당신의 관상을 보니 정말 복이 대단하구려. 그대가 어제 이 곳에 온 것 역시 내가 유인했던 것이오. 저 여자는 이 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니 두려워말고 데려 가시오. 또 내가 모아 놓은 호랑이, 표범, 노루, 사슴, 곰, 돼지 등의 가죽은 이 곳에 쌓아 놓아도 소용이 없으니 당신에게 주겠소. 그렇지만 당신은 힘이 약하여 많이 짊어질 수 없을테니 내가 힘을 다해서 운반해 주리다.]

거인은 동굴 속에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던 가죽들을 큰 그물에 담아 어깨에 메고 나오더니 말했다.



[당신은 저 여자를 데리고 나보다 먼저 가다가 어느 곳이던 배가 멈추는 곳에서 멈추시오.]

포수가 안주 항구에 이르니, 그 거인도 산더미 같은 가죽을 등에 짊어지고 그 곳에 도착해서 말했다.

[이것들을 팔면 당신들 집안이 평생 먹고 살 재산을 될거요. 나 또한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소. 닷새 후 소를 두 마리 잡고, 소금을 100석 사서 이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내가 그 때 반드시 다시 오리다.]



마침내 포수와 거인은 거기서 작별했다.

포수는 배를 빌려 여자와 가죽을 실었다.

여자는 아내로 삼고, 가죽은 팔아서 엄청난 돈을 얻었다.



그 거인이 사람인지 아닌지는 여자 역시 모르는 것 같았다.

닷새 뒤 포수는 소를 잡고 소금을 구해서 약속한 장소에 나가 기다렸다.

역시 거인이 왔는데, 지난번처럼 등에 가죽을 지고 왔다.



거인은 소는 모두 먹어 치우고, 소금 100석은 가죽을 담아온 그물에 넣어 짊어졌는데,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거인은 또 [닷새 후에 또 소금 100석을 가져와서 이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라고 말하고 갔다.

포수는 거인의 말대로 소금을 준비했는데, 혹시 소는 거인이 잊어먹고 말하지 않은 것인가 싶어 소 두 마리도 잡아서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거인은 또 가죽을 등에 잔뜩 짊어지고 왔다.

역시 예전처럼 소금을 그물에 넣어서 가져가다, 잡아온 소를 보고는 보기도 싫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만일 소가 먹고 싶었다면 먼저 내가 말했을 것이오. 이치상 이번에는 당연히 먹지 않아야 하오.]



고개를 흔들면서 가는데, 포수가 절실한 마음으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아니고 또 오랜 친구도 아닌데 당신은 나에게 예쁜 아내와 큰 재산을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소를 잡아온 것은 비록 당신의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한 입 먹어보지도 않고 가십니까?]

포수가 또 간청하니 거인이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고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비록 5일의 기한을 늦추더라도 정성을 받아들여야겠구려.]

거인이 고기를 다 먹고 가면서 말했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오. 좋은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부디 스스로를 안전히 보호하시오.]



포수가 다시 거인 앞에 꿇어 앉아 길을 막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상대를 대함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마당에 아직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으니 마음이 아파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짐승이십니까? 도깨비십니까? 아니면 산신령이십니까?]

거인이 말했다.



[정해진 법이 있어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대는 내년 단오날에 낙동강 나루터에 가서 기다리다가 초립을 쓰고 청색 도포를 입은 채 검은 말 위에 앉아 있는 미소년을 만나면 그에게 물어보시오.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거인은 홀연히 가버렸다.

포수는 한편으로는 이상하고 괴이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슬펐다.



집으로 돌아와 가죽을 모두 팔아버리고, 드디어 평안도 지방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포수는 다음해 단오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낙동강 나루터에서 기다렸다.

과연 한 미소년이 보였는데, 거인이 말한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포수는 말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고 그 소년에게 거인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 분은 우 임금이십니다. 우 임금이 물체로 존재하면 다행이지만 없어지는 것은 불행입니다. 보통 천지의 정기가 변화하여 영웅, 호걸이 됩니다. 임금이 성스럽고 신하가 충직하고 국가가 태평하며 백성이 편안하면,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도 세상을 구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웅이 되지 못한 정기들이 모여서 우 임금의 모습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우 임금은 깊은 산 골짜기에 몸을 감췄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져서 액운이 나타날 것 같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때 소금이 꼭 필요하지요. 우 임금이 목숨을 거두면 정기가 우주에 흩어져 수많은 영웅들이 무더기로 태어납니다. 영웅이 태어나는 것에 어찌 까닭이 없겠습니까? 그가 소금을 달라고 했던 것은 소금을 먹고 죽으려 했던 것입니다. 소금은 첫번째 5일 동안 먹으면 몸이 쇠약해지고, 그 후 두번째로 5일 동안 소금을 먹으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중간에 만약 생고기를 먹으면 5일을 더 버틸 수 있게 됩니다. 우 임금이 두번째에 굳이 쇠고기를 사양했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 이제 30년 안에 우리나라에 중국 삼국시대처럼 영웅 호걸들이 넘쳐날테니 우리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복은 정말 축하를 받을만 하군요. 우 임금은 당신을 친구로 삼고, 덕 있는 아내를 주었습니다. 그가 그 여자를 범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사람이 타고나는 기는 남자는 양기이고 여자는 음기입니다. 그러나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여자라고 음기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에게는 양기 중에 음기가 있고 여자에게는 음기 중에 양기가 있어서 그 때문에 교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 임금은 완전히 양기만을 가진 신령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와 관계할 수 없지요.]



포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신기해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소년이 말했다.

[내 이름은 정몽주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갔다.

이후 30년도 되지 않아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고, 수많은 영웅들이 연달아 나타났으니 이것은 죽은 우 임금으로 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백성들이 전란에 시달려 고깃덩이가 되는 것이 예삿일이었지만, 그 포수만은 온 집안이 무사하여 죽은 사람 하나 없었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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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밤이 깊자 함께 뜰을 거닐었는데, 갑자기 별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 죽었구나.]



그리고 노인은 또 탄식했다.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어찌할꼬?]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행랑 속에 있던 책에 그 날짜를 적어두고 노인에게 물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화를 피할 수 있습니까? 부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강릉이나 삼척 쪽으로 피난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다음 날 선비가 석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평구에 들러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날짜를 물어보니 과연 별이 떨어지던 그 날 밤이었다.



그 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을 생각해내서 아내를 데리고 삼척으로 피난을 가서 온 집안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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