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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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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산마루에 온갖 잡신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는데, 그 효험이 꽤 영험했다.

산 주변 마을을 다스리는 이들이 이 곳을 지날 때면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절을 한 뒤, 돈을 모아 신들에게 굿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이상한 재앙을 맞곤 했다.



그러던 와중 한 관찰사가 새재 너머의 마을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성품이 강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무슨 화를 입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가 새재를 넘다 사당 앞에 도착하니, 아전들이 몰려들어 예전 사또들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관찰사는 그런 요사스러운 짓은 말도 안 된다고 물리친 뒤 말을 타고 한달음에 그 곳을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갑자기 바람이 세게 휘몰아치더니, 난데없이 비가 관찰사가 탄 가마에만 집중적으로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주변 사람들은 귀신의 소행이라며 몹시 두려워했다.



관찰사는 마부에게 명령해 사당에 불을 지르라고 시키고, 명령을 거르스는 자들을 죽였다.

아랫 사람들이 마지못해 그 명령을 따라 사당을 태우니, 곧 사당은 싸늘한 재가 되었다.

관찰사는 그대로 새재를 내려와 문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관찰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새재의 신이오. 새재 사당에서 제삿밥을 먹은지 100년이 넘었소. 그런데 당신은 예도 올리지 않은데다 내 집까지 태워버렸으니, 나는 당신의 맏아들을 죽여버릴 것이오.]

관찰사가 노인을 꾸짖으며 말했다.



[요망한 귀신이 사당에 눌러 앉아 사람을 괴롭히니, 내가 왕명을 받들어 요사한 것을 제거했다. 이것은 내 직분인데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해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느냐!]

귀신은 화를 내며 가 버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관찰사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큰 아드님께서 여행의 피곤함 때문에 병이 드셨는데, 갑자기 위독한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관찰사가 가서 아들을 보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관찰사는 곡을 하고 아들의 염을 한 뒤, 곧 관청에 들어섰다.



그 날 밤 귀신이 또 관찰사의 꿈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내 사당을 불태운 것을 회개하고 새로 사당을 지어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당신의 둘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관찰사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을 지키며 지난 번처럼 귀신을 꾸짖어 물리쳤다.



아침이 되자 관찰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집안 사람이 와서 둘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고했다.

관찰사는 매우 슬퍼하며 아들의 장례를 치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찰사의 꿈에 귀신이 또 나타나 말했다.



[첫째를 죽이고 또 둘째를 죽였으니 당신의 자식은 점점 줄어갈 것이오. 이번에는 셋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이 불쌍해서 내가 기회를 주려하니, 빨리 내 사당을 지어주면 셋째 아들의 목숨은 살려주겠소.]

하지만 관찰사는 이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귀신은 점점 화를 내며 온갖 협박을 하고, 끝내 좋은 말로 달래기까지 했다.



관찰사는 화가 나서 칼을 빼어들고 귀신을 베려고 했다.

그러자 귀신은 뒤로 물러나더니 뜰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말했다.

[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어르신의 두 아드님은 수명이 다하여 돌아가실 예정이었기에 제가 그것을 알고 어르신을 협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셋째 아드님은 그 지위가 높이 오르고 오랫동안 건강하실테니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르신께 온갖 공갈 협박을 한 것이었지만, 어르신께서는 끝내 올바름을 지키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르신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관찰사가 딱히 여기며 말했다.

[네가 오랫동안 황폐한 사당에 살면서 지냈는데, 내가 어찌 네 집을 마음대로 부수고 싶었겠느냐? 네가 너에게 화가 났던 것은 요망한 술수로 사람들을 희롱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가 그것을 자백하니 불쌍히 여길 수 밖에 없구나. 내가 새로 너의 집을 지어주마. 하지만 만약 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당장 부숴버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귀신은 감동하여 흐느끼며 절하고 돌아갔다.



관찰사는 다시 사당을 세우고 그가 꿈에서 본 귀신의 모습을 흙으로 빚어 세워 두었다.

그 이후에 문경새재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근심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관찰사의 셋째 아들은 오랫동안 살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 갔으니, 귀신의 말이 과연 맞았다.



Illust by 엥비(http://blog.naver.com/junk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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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류가 병조좌랑이던 때 임진왜란이 터졌다.

당시 이경류의 둘째 형은 나라를 위해 붓을 내던지고 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조방장 변기가 전쟁에 나서면서 이경류의 둘째형을 종사관으로 삼기 위해 임금님에게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하필 이름을 잘못 써서 이경류의 이름이 올라가고 말았다.

둘째 형이 이경류에게 말했다.

[내가 전쟁에 나서야 하는데, 이름이 네 이름으로 잘못 올라갔구나. 하지만 당연히 내가 전쟁에 나가야 옳을 것이다.]



그러자 이경류가 말했다.

[이미 제 이름을 보고 임금님이 허가를 하셨으니 제가 가야합니다.]

이경류는 무구를 챙겨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전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변기가 영남에서 크게 패하고 죽어버려서, 장군을 잃은 진중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경류는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혼자 말을 타고 그 곳으로 가서 윤섬, 박호와 함께 이일의 밑에서 머물렀다.

이일의 군대가 전투를 치렀으나 형세가 불리하여 진이 함락되고 윤섬과 박호도 크게 다쳤다.



이경류가 진 밖으로 나가니 시종이 말을 끌고 이경류를 기다리고 있다 흐느끼며 아뢰었다.

[주인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서둘러서 이 말을 타고 서울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경류가 웃으며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처했는데 어찌 내가 죽지 않고 욕되게 살라고 하느냐?]

그리고 지필묵을 꺼내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써서 도포자락 속에 감춘 뒤, 시종에게 그것을 전하라고 시켰다.

이경류가 말을 타고 적진 가운데로 향하려고 하자, 시종은 그를 껴안고 울면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경류가 말했다.

[너의 정성이 갸륵하구나. 내가 네 말을 따라 서울로 돌아가겠다. 그런데 내가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니 밥을 좀 구해왔으면 좋겠구나.]

시종이 그 말을 믿고 주변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차려 돌아와보니 이경류는 이미 적진으로 향한 뒤였다.



시종은 적진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이경류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경류는 적진에서 맨손으로 왜구를 쳐 죽이다 결국 상주 북문 밖 평야에서 죽었으니, 그 때 24살이었다.

시종이 말을 끌고 서울로 돌아가니, 집안 사람들이 그제야 이경류의 죽음을 알았다.



편지를 쓴 날을 기일로 삼고 장례를 치뤘다.

시종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말 또한 먹이를 먹지 않더니 굶어 죽었다.

가족들은 이경류가 남긴 물건들을 거두어 관에 넣어 경기도 광주에 장사 지내고, 그 옆에 시종과 말의 무덤도 만들어주었다.



상주의 선비들은 제단을 지어서 이경류의 제사를 지내 주었고, 조정에서는 도승지를 추서했다.

을묘년에는 정조 임금께서 친히 충신의사단이라는 글을 써서 북평에 사당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경류는 죽은 후 매일 밤 집에 왔는데, 그 목소리와 웃는 모습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부인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나 음식을 마련하여 올리면 먹고 마시는 것이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나중에 보면 음식은 그대로 있었다.

이경류는 매일 날이 저물면 왔다가 닭이 울면 문을 나섰다.



부인이 이경류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의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알 수 있다면 고향으로 모셔와 제대로 장례를 치루겠습니다.]

이경류가 슬피 울며 말했다.



[그 수많은 백골이 쌓여 있는 곳에서 어떻게 내 몸만 찾을 수 있겠소? 그냥 두는 게 더 좋을 것이오. 게다가 내 몸이 묻힌 곳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곳이오.]

죽은지 1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이틀에 한 번씩 오기 시작했다.

죽은지 2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말했다.



[나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오.]

그 때 이경류의 아들 제는 나이가 겨우 4살이었다.

이경류는 제를 어루만지며 탄식했다.



[이 아이는 과거에 급제하겠으나, 그 후 불행해질 것이오. 그 때가 오면 내가 다시 오겠소.]

그 말을 남긴 뒤 이경류는 사라졌는데, 그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윽고 20여년이 흘러 광해군 때에 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사당에 알현할 때, 공중에서 신참의 신고식을 하라고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이경류의 늙은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그 때가 5월 즈음이었다.

노모가 목이 말라 시종에게 말했다.



[어떻게 귤 하나만 구할 수 없을꼬? 그걸 먹으면 갈증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며칠 뒤 하늘에게 이경류가 형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뜰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 속에서 이경류가 귤 3개를 던지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귤 생각을 하시기에 제가 동정호에서 귤을 얻어왔습니다. 이것을 드리면 어머님의 병이 곧 나을 것입니다.]

도암 이재가 신도비에 [공중에서 귤을 던지니 정신이 황홀하구나.] 라고 쓴 것이 바로 이 광경을 뜻하는 것이다.

이경류의 제삿날이 되면 언제나 병풍 뒤에서 밥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종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 계집종이 실수를 해서 머리카락이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제사가 끝난 뒤 바깥채에서 시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자세히 들었더니 그 소리는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시종이 사랑방에 들어가자 이경류의 목소리가 떡을 만든 계집종을 잡아오게 하고 분부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머리카락을 꺼린다. 너희는 어째서 머리카락이 있는지 잘 살피지 않았느냐? 그 죄는 매를 맞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계집종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릴 것을 명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는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감히 후손들이 이경류의 제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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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 김윤신은 점술사 남사고와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남사고의 집에 가면 언제나 베옷 입은 노인이 남사고와 점괘를 논하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파란 옷과 나막신으로 나라 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소.]

남사고가 한참 생각하고 말했다.

[그렇군요.]



노인이 또 말했다.

[머지않아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고, 임금이 궁궐을 떠나는 재앙이 이를 것이며, 서쪽 변방까지 가서야 겨우 도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남사고가 또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노인이 또 말했다.

[두번째 들어올 때는 한강까지 오지 못할 것이오.]



남사고는 이번에도 한참을 생각하고 말했다.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김윤신이 옆에서 그 말을 주워 들었지만, 도저히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옷과 나막신이 세상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나막신이 없었는데, 임진왜란 직전에 나막신이 들어와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두루 신게 되었다.

또한 기자가 흰 옷을 입고 이 땅에 온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흰색 옷을 입었는데, 임진왜란 전에 흰 옷을 입지 못하게 금지하여 모두 파란 옷을 입었던 것이다.



임진년 여름이 되자 왜구가 우리나라 깊숙이 들어와서, 마침내 선조 대왕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임금님의 가마가 의주에서 머무르다가 왜구가 평정된 후에야 서울로 돌아왔으니 과연 베옷 입은 노인의 말이 모두 들어 맞은 것이었다.

정유년이 되어 왜구가 다시 쳐들어와 서울이 혼란에 빠졌다.



그 당시 명나라 장군 양호가 우리나라에 와 있었다.

선조 대왕과 양호가 남대문에 나가서 조정의 여러 신하들과 적을 막아낼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

김윤신도 그 때 음사 미관으로 임금님을 따라 맨 끝에 서 있다가,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두번째는 한강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 소리에 모든 조정의 신하들이 놀라고, 임금님마저 놀라서 물으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그래서 김윤신을 임금님 앞에 데려와서 물었다.

[방금 전 두번째는 한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한 것은 무슨 소리냐?]



김윤신은 이전에 베옷 입은 노인에게 들었던 것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보면 그 노인의 예언이 모두 들어맞았나이다. 그러니 이번 두번째에 한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 역시 반드시 맞을 것입니다.]

임금님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셨다.



즉시 김윤신의 벼슬을 껑충 올려서 첨지로 삼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호가 보낸 부하 마귀가 충청도 직산 소사평에서 왜구를 만나 기병으로 물리치고 경상도까지 밀어냈다.

이로써 베옷 입은 노인의 마지막 예언까지 모두 맞아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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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거사는 안동 사람으로, 서애 류성룡의 숙부였다.

생김새가 보잘 것 없고 행동거지마저 어리석고 실속이 없었으며, 평소에는 말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류거사는 초가집을 하나 지어서 문을 닫고 혼자 책만 읽어서, 류성룡은 삼촌이 그냥 멍청한 줄 알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류거사가 류성룡에게 말했다.

[자네, 나와 바둑이나 두면서 놀지 않겠나?]

류성룡은 바둑의 고수였다.



게다가 그 전까지 숙부의 어리석은 모습만 보아 왔지 바둑 두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숙부님도 바둑을 두실 줄 아십니까?]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바둑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당대 조선의 국수였던 류성룡이 내리 3판을 숙부에게 내주고 말았다.

류성룡이 깜짝 놀라 의아해 하는데 류거사가 말했다.

[이제 바둑은 그만 두세. 오늘 저녁 어떤 중이 분명 자네 집을 찾아올걸세. 그 중을 만나면 내 집으로 오라고 말하게나.]



류성룡은 마음 속으로는 숙부의 말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겉으로는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날 밤, 과연 어떤 중이 류성룡의 집에 와서 말했다.

[저는 묘향산에서 온 중입니다. 오늘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을런지요?]



류성룡은 평소 멍청하던 숙부의 말이 들어맞은 것에 신기해하며 중에게 저녁을 먹이고 숙부의 집으로 보냈다.

류거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중의 안색이 변하면서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류거사가 말했다.



[조금 전 내 조카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요. 반드시 이 조용한 곳에 와서 잘 것이라 생각했소.]

말을 마친 뒤 류거사는 다른 말 없이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척을 했다.

그러자 중 역시 잠에 들었다.



중이 잠든 틈을 타서, 잠든 척하던 류거사는 몰래 중의 바리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우리나라 지도 한 장이 있었다.

지도 곳곳에 관문, 성, 관청의 위치, 험한 곳, 우리나라의 주요 인물 등에 관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 바리 안에는 단검 한 쌍이 있었는데, 그 칼날이 매우 날카로웠다.

류거사는 단검을 쥐고 중의 배 위에 걸터 앉아 가토 기요마사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말했다.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중이 놀라서 잠에 깨어 났더니 번쩍번쩍 빛나는 날카로운 검이 머리 위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중이 말했다.

[소승은 죄가 없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류거사가 말했다.

[주머니 속에 지도를 만든 것은 네놈의 죄가 아니냐? 조선에 몰래 세 번 들어온 것 역시 네 죄가 아니냐?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것 또한 너의 죄가 아니냐?]

중이 입을 다물고 차마 대답조차 못하다가 애걸복걸하며 말했다.



[제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바다를 건너가서 다시는 조선에 오지 않고, 반드시 은혜를 갚겠나이다.]

류거사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우리나라에 7년간 전쟁이 일어날 것은 하늘이 정한 운수다. 내가 쥐새끼 같은 네놈들을 죽여봐야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지금은 네 목숨을 살려주겠지만 나중에 왜놈들이 안동 땅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는다면 내가 모두 죽여버리겠다. 너는 당장 네 나라로 돌아가라.]



중은 [예, 예] 하고 정신 없이 대답하고 도망치듯 떠났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국이 왜구에게 유린당했으나, 안동만은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못하였다.

이것은 곧 류거사의 공덕 덕분인 것이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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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 유진항은 젊었을 때 선전관이어서 대궐에서 숙직했다.

그 해는 1762년 영조 대왕 때로 금주령이 내려 엄하게 지켜지던 때였다.

어느날 한밤 중에 임금님이 갑자기 숙직 중인 선전관은 궁으로 들어오라는 명을 내리셨다.



마침 숙직 중이던 유진항이 명령을 받들어 궁으로 들어가니 임금님이 긴 검 하나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소문을 들었더니 아직도 백성들이 몰래 술을 빚어 먹는다더구나. 너는 이 검을 가지고 가서 3일 내로 술을 빚는 사람을 잡아들이도록 하거라. 만약 술 빚는 사람을 잡아오지 못하면 네 목을 벨 것이다.]

유진항은 명령을 받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유진항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누웠다.

그러자 애첩이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기운이 없고 힘들어하시는가요?]



[내가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건 임자도 알 것이네. 그런데 술을 못 마신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목이 말라 죽겠구만.]

[날이 저물면 술을 구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셔요.]

밤이 되자 첩이 말했다.



[제가 술이 있는 집을 알고 있는데, 제가 직접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그녀는 술병을 들고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집을 나섰다.

유진항은 몰래 첩의 뒤를 따라갔는데, 첩은 동촌의 한 초가집으로 들어가 술을 사오고 있었다.



유진항이 이 술을 맛있게 마시고 다시 사오라고 시키자 첩은 또 그 집에 가서 술을 사 왔다.

유진항이 이번에는 직접 술병을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첩이 이상하게 여기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유진항이 대답했다.

[이 근처에 사는 아무개가 내 술 친구인데, 이렇게 귀중한 술을 얻었으니 어떻게 혼자만 마실 수 있겠나? 가서 친구와 함께 마시고 오겠네.]

유진항은 집을 나서 술을 팔던 동촌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 집에 들어서니 몇 칸 되지 않는 누추한 집이어서 비바람도 가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집 안에는 한 선비가 등잔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다가, 유진항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 일어나 맞이했다.

[손님께서는 이런 깊은 밤에 무슨 일로 이런 누추한 집에 오셨습니까?]



유진항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임금님의 명을 받들어 왔소이다.]

그러면서 유진항은 허리에 차고 온 술병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 술은 이 집에서 판 것이 맞겠지요? 임금님께서 엄히 명하시어 모든 백성에게 술을 금하였는데 어찌 그대는 술을 파는 것이오? 그대의 혐의가 모두 드러났으니 나를 따라가 그 벌을 받아야겠소.]

선비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말했다.

[법으로 임금님께서 금한 것을 어겼으니 어찌 용서를 빌겠습니까? 하지만 집에 늙은 어머니가 계시니 부디 하직 인사 한마디라도 하고 궁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유진항이 말했다.

[그러도록 하시오.]

선비가 안쪽 방으로 들어가서 낮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니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다.



[얘야, 왜 아직 자지 않고 어미를 부르느냐?]

선비가 대답했다.

[전에 제가 어머님께 사대부는 비록 굶어 죽더라도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니께서는 끝내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못난 아들이 붙잡혀 가니 다시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늙은 어머니가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내가 몰래 술을 빚은 게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라 너에게 아침에 죽이라도 먹이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된 게 모두 이 못난 어미 탓이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그 사이 부엌에 있던 선비의 아내도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비가 차분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왔는데 울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게 아들이 없으니, 내가 죽더라도 부디 어머님을 잘 보살펴주시오. 그리고 옆 동네에 아무개에게 아들 몇 명이 있으니,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중 한 명을 양자로 삼아 편안히 살도록 하시오.]

선비가 아내에게 부탁을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유진항이 가만히 옆에서 그 모습을 보니 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유진항이 선비에게 물었다.

[어머님의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



[70살이 넘으셨습니다.]

[아들은 있는가?]

[없습니다.]



유진항이 말했다.

[이런 광경을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구려. 나는 아들도 둘이나 있고 부모님을 모시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당신 대신 내가 죽겠소. 그대는 마음을 놓고 술병을 모두 가지고 나오시오.]

아내가 술병을 내오자 유진항은 선비가 술을 한 잔 하고는 술병을 깨트려 집 뜰에 묻고 말했다.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는데 집안 꼴이 말이 아니구려. 내가 이 검을 줄테니 이것을 팔아 어머님을 잘 모시구려.]

유진항은 차고 있던 검을 주고 그 곳을 떠났다.

선비가 따라오며 한사코 자신이 죽으러 가겠다고 외쳤으나 유진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선비가 지쳐서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부디 은인의 성함만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나는 선전관이오. 이름은 알아서 어디에 쓰겠소?]



말을 마치고 유진항은 멀리 떠났다.

다음날은 임금님이 말한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대궐에 들어가니 임금님이 물으셨다.



[너는 술 빚는 사람을 잡아왔느냐?]

[잡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치셨다.



[그런데 감히 네 놈이 아직도 머리를 목에 붙인 채 내 앞에 나타났느냐!]

유진항은 땅에 엎드려 아무 말도 못했다.

한참 뒤에야 화를 가라앉히신 임금님은 유진항을 평소보다 3배 멀리 돌아서 제주도에 유배하도록 명하셨다.



유진항은 유배를 간 지 몇 년뒤에야 비로소 풀려났고, 10여년 동안 가난하게 살다가 복직되어 경상북도 합천군 초계 사또가 되었다.

그런데 유진항이 가난히 살았던 탓에 원한이 사무쳤는지 그 마을에서 오로지 자신 혼자 잘 사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백성들은 모두 근심하며 매일 사또의 욕을 했다.



그러다 마침 그 주변을 돌아다니던 암행어사가 출도해서 창고를 봉하고 관가로 들어섰다.

어사는 이방과 아전들을 모두 잡아들인 다음 매를 칠 준비를 했다.

유진항이 두려워하며 문 틈으로 엿봤더니, 놀랍게도 어사는 바로 옛날 동촌에서 술을 팔다 자신에게 걸렸던 선비였다.



유진항은 아랫 사람을 시켜서 어사를 알현하기를 청했다.

어사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감히 탐관오리가 암행어사를 보겠다고? 정말 양심도 없구나!]



유진항은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어사 앞에 절을 했으나, 어사는 얼굴도 보지 않고 정색을 한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유진항이 물었다.

[어사께서는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어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혼잣말을 했다.

[내가 그대를 어찌 알겠는가?]

유진항이 말했다.



[혹시 어사의 집이 옛날에 동촌에 있지 않았습니까?]

어사가 놀라서 말했다.

[어찌하여 그것을 알며, 또 어찌하여 그런 것을 묻는 것이오?]



유진항이 말했다.

[임오년에 임금님이 내리셨던 금주령을 어겨서 당신을 찾아갔던 선전관을 기억하십니까?]

어사가 더욱 놀라서 궁금해하며 말했다.



[그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진항이 말했다.

[제가 바로 그 선전관입니다.]



어사는 급히 일어나 유진항의 손을 잡고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말했다.

[은인이 여기 계셨군요.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만난 것은 하늘이 이어준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뒤 어사는 죄인들을 모두 석방하고, 밤이 새도록 풍악을 울리며 유진항과 회포를 풀었다.



어사는 그 곳에서 며칠 동안 머문 뒤 서울로 돌아가 보고서를 올렸는데, 유진항을 칭찬하는 내용이 가득이었다.

임금님께서는 그 보고서를 보고 흡족해 하시어 유진항을 특별히 평안도 삭주부사로 임명하셨다.

그 후 어사는 대신의 지위까지 올라갔는데, 가는 곳마다 유진항과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조정에는 유진항과 어사의 의리에 대한 칭송이 가득했다.

유진항은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까지 역임했다.

어사는 소론의 대신인데, 내가 그 이름을 잊어버려서 여기에는 적지 못했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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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이유가 홍문관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종묘 담 밖에 있는 순라곡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때 마침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밀짚모자를 쓰고 도롱이를 입은 사람이 보였다.



두 눈이 횃불 같이 빛나는데 외발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이유와 시종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이유가 갑자기 시종에게 물었다.

[지나 오면서 혹시 가마 한 대를 보지 못했느냐?]



[못 봤습니다.]

그 사이 외발로 뛰던 이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유가 오다가 제생동 입구에서 가마 하나를 만났던 것이 떠올랐기에, 바로 그 뒤를 쫓아 제생동으로 갔다.



마침내 제생동에 있는 어느 집에 도착했는데 그 집은 이유의 먼 친척집이었다.

그 집 며느리가 괴질에 걸려 여러 달이 되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 날은 제생동 친척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이유는 말에서 내려 그 집으로 들어가 주인을 만났다.



그리고 자기가 길에서 보았던 것들을 말하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부탁했다.

방에 들어갔더니 조금 전 길에서 만났던 그 귀신이 부인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유는 아무 말 없이 귀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그 귀신은 밖으로 나가서 마당 한 가운데에 섰다.

이유가 따라나가 또 바라보았더니 귀신은 다시 용마루 위로 올라갔다.

이유가 계속해서 올려다보자 그 귀신은 결국 공중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아파서 정신도 못 차리고 있던 며느리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는데, 마치 전혀 아프지 않았던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이유가 그 집을 떠나자 며느리는 곧바로 다시 앓아 누웠다.

결국 이유는 종이를 백장 정도 구해서 손수 서명을 하고 방 안 가득히 그 종이를 붙였다.



그러자 드디어 귀신이 물러나고 며느리의 병도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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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병자년때 초봄에 초시를 치루고, 복시는 나라에 일이 있어서 다음해 봄으로 미뤄졌다.

이 때 초시에 합격한 유생 네 명이 북한산에 모여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고 공부했다.

그런데 하루는 웬 스님이 와서 선비들에게 말했다.



[이 곳에 신통하신 큰스님이 계시니 선비님들은 과거 문제와 향후 운세에 관해 여쭤보시지요.]

네 선비가 같이 모여 큰스님에게 물었더니 큰스님이 말했다.

[소승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관상에 관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한 분씩 천천히 살펴보고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네 선비가 그 말에 따라서 한 명씩 큰스님의 방에 들어가서 관상을 보고 나왔다.

서로 모여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보자 한 선비가 말했다.

[나는 자손이 천명이 넘을거래!]



다른 선비가 말했다.

[나는 도적들의 장수가 될거래!]

또 다른 한 선비가 말했다.



[나는 신선이 될거래!]

마지막 선비가 말했다.

[나는 과거에 합격해서 반드시 너희 셋을 만날거래!]



네 선비는 각자의 점괘에 한바탕 웃고 떠들며 정신 나간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그 해 말에 청나라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와서 강화도를 함몰시키고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네 선비는 각자 달아나서 목숨만 겨우 건졌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만나지 못하고 소식마저 끊겼다.



그 중 한 선비는 정말로 과거에 급제해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봄에 경상도를 순찰하면서 안동에 도착했는데, 안동에서 떠나려는 와중에 문 밖에 한 손님이 소를 타고 와서 명함을 내밀고 만나기를 청했다.

그렇지만 관찰사는 명함을 받아봐도 그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들어오게 해서 만나보았더니, 평소 알지 못하던 사람인데 다 떨어진 도포에 망가진 삿갓을 쓴 가난한 선비였다.

인사를 나눈 뒤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았더니, 그는 바로 지난날 북한산에서 함께 공부했던 선비 중 한 명이었다.

큰 전쟁이 있은 후 각자 생사도 알지 못하고 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관찰사가 사는 곳을 물었더니 순찰 경로 근처였다.

선비가 말했다.

[영감의 행차가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깝습니다. 옛 정을 생각하여 부디 와 주셔서 가난한 집이나마 빛내주시지 않겠습니까?]



관찰사는 관복을 벗고 평범한 옷을 입은 다음 혼자 말을 타고 선비를 따라갔다.

한 골짜기에 도착하자 높고 큰 누각이 온 계곡에 가득했는데, 마치 궁궐 같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소를 타고 왔던 선비는 장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관찰사가 놀라서 물었다.

[자네의 모습을 보니 자네는 도적 수령이 아닌가?]

[그렇소.]



[어쩌다 이렇게 된거요?]

[북한산에서 관상을 봐 주었던 스님의 말을 기억하시지요? 당시에는 비웃었는데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더군요. 전쟁통에 가족들은 모두 죽고 나만 혼자 살아남아 도망치다 이 산에 도착했습니다. 나말고도 피난하여 온 사람들이 산 속에 모여 살다가, 내가 공부를 좀 했다고 나를 두목으로 뽑았습니다. 나는 약탈해 온 물건들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인심을 얻었지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여기 남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님이 말했던 우리 관상은 역시 정해져 있던 운명이었나 봅니다. 나는 이 곳에서 부귀를 누리고 있으니 당신이 조금도 부럽지 않소. 마침 그대가 이 곳 근처를 지나간다기에 내가 일부러 불러서 이 곳을 보게 한 것이오. 당신이 비록 관찰사라도 병사는 아마 나보다 적을 것입니다. 돌아가서 나를 잡으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나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닥 좋은 일은 없을게요.]

관찰사는 무서워서 [알았네, 알았네.] 라고 말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 후 관찰사는 경상북도를 순찰하다 어느 군에 도착하였다.

일을 마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느 선비가 만나기를 청해왔다.

그를 만나보니 역시 옛날 북한산에서 같이 공부하던 선비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선비가 말했다.

[영감께서 이 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사는 곳이 이 근처입니다. 부탁컨대 잠시 들렀다 가시지요.]

관찰사는 지난 번에 당한 것을 생각하고 이번에는 관찰사답게 큰 행렬을 거느리고 갔다.



그 집에 도착하니 집이 매우 컸고, 주변에 집이 거의 수백개가 넘게 있어서 마을 하나 정도 크기였다.

그 선비는 많은 하인을 데리고 나와서 관찰사를 맞이했다.

그 예의와 대접이 왠만한 도시에서 받는 것보다 더 대단할 정도였다.



관찰사가 놀라서 물었다.

[시골에서 살면서 어떻게 이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있으며, 이렇게나 부유하게 살고 있단 말이오?]

선비가 말했다.



[당신도 옛날 북한산에서 스님이 우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겠지요? 병자년 전쟁 이후 집을 버리고 도망쳤다가 이 곳 영남에 흘러 들어왔소. 마친 한 산골에 들어갔더니 피난 온 여자들이 모여 살고 있더군요. 남자인 내가 그 곳에 도착하니 여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다들 나와 함께 살자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밭을 갈고 베를 짜서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떠받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같이 여기서 살아서 이미 여러해가 지났습니다. 내가 낳은 남자아이가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는데, 그 아이들이 각각 결혼해서 또 아이들을 낳았으니 늘그막에 자식들, 손자들 재롱에 편히 살고 있소. 이렇게 행복하니 나는 관찰사 영감이 그닥 부럽지도 않구려.]

이야기를 다 들은 관찰사는 망연자실했다.

그 후 또 순찰을 하다가 하동 경계에 도착해서 지리산 자락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관찰사의 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찰사가 의아해하면서 가마에서 머리를 내밀었더니, 그 소리는 산 위에서 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 절벽 위에 앉아 관찰사를 부르고 있었다.

관찰사가 행렬을 멈추고 누구냐고 물으니 산 위에 있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나는 아무개요.]

관찰사가 생각해보니 그 역시 옛날 북한산에서 같이 공부했던 선비였다.

관찰사가 손을 들어 그를 부르며 말했다.



[이리로 내려 오시오.]

[그대가 올라오시지요.]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동자 두 명이 내려와서 관찰사의 겨드랑이를 부축해서 산을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매우 험한 산길인데다 마치 맨땅을 걷는 듯 편안했다.

옛 친구와 만난 관찰사는 악수를 나눴다.

친구가 말했다.



[당신은 북한산 스님이 우리들의 관상을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그 때 나에게 신선이 될 것이라 말해서 나는 비웃고 넘어갔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분이 정말 신통하신 분입니다. 지난번 전쟁 때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나는 산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굶주리고 피곤해도 먹을 것이 없었지요. 그런데 물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풀이 통통하고 색깔이 먹음직스럽더군요. 먹어보니 달고 씁쓸해서 맛있는지라 모두 캐 먹었다오. 그 이후로 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입지 않아도 따뜻하며, 산길을 가다 거기서 그냥 자도 아프지 않고 한 번 걸어서 천리를 갈 수 있더이다. 내 몸이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며 걱정이 없고, 이익을 따지지 않으니 관찰사가 사는 것보다 내가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소? 내가 먹은 것은 장생초였으니 관찰사의 식사보다 결코 꿀리지 않을 것이오.]

신선은 말을 마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위로 던져 학의 등에 올라 탔다.

시동 두 사람도 좌우에서 함께 서서 공중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관찰사는 망연자실해서 자신이 관찰사라는 것도 잊어 버릴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이는 모두 하늘이 정한 것이다.

또한 지나가던 스님의 말이 모두 맞아 떨어졌으니 그 스님 역시 이인이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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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조 임금 때 1584년 1월에 한양 선비 이생이 강릉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걸음이 느린 말을 타고 피곤하게 길을 가다 깊숙한 두메 산골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사람은 사람대로 지치고 말은 말대로 피곤한데, 날은 저무는데 머무를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숲 속에서 한 목동을 만나게 되어 길을 물었더니, 목동은 언덕 너머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아무개 양반집이 있습니다. 그 곳을 빼면 주변에 사람 사는 곳은 없습니다.]

선비가 목동의 말을 따라 언덕을 넘어갔더니 세칸짜리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어떤 한 노인이 나왔는데, 나이는 60여세 정도였고 머리에는 다 떨어진 모관을 쓰고 있었고 한 소년이 옆에서 노인을 모시고 있었다.

노인이 선비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이렇게 깊은 시골에 손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비가 산에 왔다 길을 잃어버린 사정을 설명하자 노인은 그 집에서 묵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노인은 조용히 앉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선비 또한 가볍게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그냥 방 한 쪽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시중을 들던 소년이 저녁밥을 차려와서 먹었다.

황혼녘이 되자 노인은 소년에게 말했다.

[날이 벌써 저물었는데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다니 몹시 이상하구나. 네가 문을 열고 멀리 내다보거라.]



소년이 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 막 앞 시냇가를 건너 오십니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선비를 보며 말했다.



[부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옆에서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평범한 선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님 옷을 입은 늙은 스님이었다.

방에 들어온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정화수 한 그릇을 떠오게 해서 소반 위에 올리고 향로에 향을 살랐다.

그 후 세 사람이 모두 북쪽으로 꿇어 앉아 주문 같은 것을 한참 외웠는데 선비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시간 하다가 노인이 소년을 불러 말했다.



[문 밖에 나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거라.]

소년이 밖으로 나갔다 곧 들어와서 말했다.

[별 하나가 지금 동쪽에서 떨어져서, 그 빛이 온 땅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인과 두 손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시하다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늘이 내린 수명이니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선비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엉겁결에 물었다.



[주인께서는 무슨 일로 한숨을 쉬십니까?]

[숙헌이 곧 죽게 생겼기에 내가 이 두 손님과 함께 하늘에 기도하며 경을 외어서 그 분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했던 것이라오. 운이 좋아야만 했는데, 끝내 아무런 효험이 없겠습니다. 조금 전 별이 떨어졌으니 이미 숙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가 물었다.



[숙헌이 누구입니까?]

[율곡 이이라는 분이오.]

[제가 이번달 초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그 분은 병조판서를 맡고 있었고 몸도 건강하셨는데요?]



[7, 8년 뒤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범할텐데, 숙헌이 살아 계신다면 그 난리를 능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우리백성들은 모두 고깃조각이 될 것입니다. 살아날 방도가 없습니다.]

조금 뒤 두 손님이 집을 나서는데 안색이 정말 처참했다.

선비가 물었다.



[나라가 그렇게 난리를 맞게 된다면 저같은 불쌍한 선비는 어떻게 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만약 충청남도 당진이나 면천으로 간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선비가 또 물었다.

[저 두 손님은 누구십니까?]

[선비 분의 이름은 말해 줄 수 없고, 스님은 바로 백제 때 고승인 검단대사님입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트리면 안 됩니다.]



선비가 한양에 돌아와 수소문해보니 과연 율곡 이이가 별이 떨어지던 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선비는 곧 충청남도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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