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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몽상가적인 음악 선생님이 있었다.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굉장한 중량감이 있는 분이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를 몸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었다.




그날은 독감이 유행해, 한명이라도 더 조퇴하면 그대로 학급폐쇄 수준까지 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밖에는 비가 엄청 내리는데다 번개까지 내리치고 있었다.


여자아이 한명이 진짜로 몸 상태가 안 좋았던 탓에, 반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수업은 듣지도 않고 학급폐쇄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1교시가 시작되고 음악 선생님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문득 선생님이 혼잣말을 하듯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았다.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여기 전하고 싶을 뿐.




[선생님의 피는 더럽단다. 다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음악가였어. 어둠의 곡을 만들어왔지. 결코 남에 눈에 드러나지 않는 감각을 전개해, 폭발시키는 곡을 말이야. 그건 일부 부자나 귀족들만 들어왔어. 우리 선조들은 거기 모든 걸 바쳐왔고.]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하지만 진짜 어둠의 곡은 완성할 수 있을지 누구도 모른단다. 우리 할아버지는 완성하지 못했지. 60년 동안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지만, 결국 자신의 감각을 전부 악보 위에 나타내지 못했어. 우리 선조들이 만든 곡은 지금까지 딱 5개 뿐이야. 고작 다섯 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바쳐졌을까.]


선생님은 고개를 떨궜다.


[모든 선율이, 피 한방울 한방울을 끓어오르게 하려 온 감정을 쏟아붓고 있어. 우리 선조들은 곡을 만들어 낸 후, 모두 자살했단다. 우리 아버지도 말이야. 아버지가 죽은 건 내가 어릴 적이라 잘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매일 같이 발광해서, 피아노 건반을 후려치고 있던 건 기억 난다.]




여전히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어두운 교실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발광을 멈추고, 안도한 얼굴로 악보를 써내려 가시더군. 그리고는 어느날 사라졌어. 혼자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지. 나도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곡을 만들고 있단다. 하지만 전혀 되지가 않아. 선조들이 만든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봤어.]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뭐라고 할까... 마음의 모든 부분이 한점으로 향하는 기분이었어. 천국으로 이어진 나선 계단을 오르는데, 곁에 천사가 날고 있는거야. 나선 계단에 끝은 없어. 하지만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건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문득 천사를 바라보면, 그건 천사가 아니야. 악마처럼 웃고 있지. 하지만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거야.]


선생님은 숨이 가쁜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거람. 미안하구나. 나는 아마 그런 곡은 만들지 못할거야. 진짜 음악이라는 건 더럽혀져 있단다. 적당한 곡을 만들고, 적당히 약한 마음을 노래하는 곡이 이 세상을 석권하면 된다고 생각해. 나는 진짜 음악의 세계를 짊어질 수 없어.]


한숨을 내쉬고,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진짜 소리를 연주하고, 모든 이의 마음을 휘잡을 수 없는거야. 음악으로 누군가의 운명을 짊어진다니, 나에게는 불가능해. 선조들이 왜 곡을 완성시키고 자살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하지만 알 뿐, 그 높은 곳에 오를 용기가 내겐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기 올라 음악의 모든 것을 이해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아. 존재 의의가 이 세상에는 없을테니까.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 선조의 혈통을 이어받아 여기에 있다고. 나는 아무 것도 부정할 수 없어.]


선생님은 어딘가 슬픈 것처럼 보였다.




[유일한 구원은 일본에서 그 피를 이어받은 건 나 뿐이라는 거겠지. 곡은 귀족들이 보관하고 있어. 결코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없지. 나 하나 죽는다고 곤란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또 누군가가 중독된 귀족에게 곡을 바치겠지. 걸작을 만드는 이가. 설령 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작게 중얼거렸다.


[선생님도 모차르트나 바흐, 아니면 요새 스피츠 같은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멋진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 감정을 적당히 나타내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평범한 곡을. 내 피는 더럽지만, 숭고하고 갈고 닦인 피도 흐르고 있어. 나는 살고 싶어.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죽음이 눈 앞에 있으니...]




다른 아이들은 끝까지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선생님 스스로도 [오늘은 자습이야.] 라고 말하기도 했고.


나는 친한 친구가 독감으로 쉬었기 때문에, 계속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자리도 피아노에서 가까웠고.


다음날, 학급 연락망으로 독감 때문에 학급이 폐쇄됐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선생님이 자살했다는 말과 함께.




상당히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지만, 음악 담당이라 담임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동요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지금 왜 이 일이 떠오른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선생님은 누구였던걸까.


왠지 모르게 안타까워진다.


선생님은 진정한 고독을 맛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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