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번역괴담][2ch괴담][517th]린폰

괴담 번역 2014. 11. 17. 22:28
320x100




얼마 전, 앤틱한 것들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드라이브 겸 골동품 가게와 리사이클 숍을 돌아다녔다.


나도 헌 옷 같은 건 꽤 관심이 있어서, 종종 오래된 게임 카트리지나 헌 옷 같은 게 있으면 같이 다녔던 것이다.


관심이 있는 물건의 종류는 서로 달라도, 물건을 파는 곳은 같기에 그 날도 즐겁게 여러 가게를 순회하고 있었다.




꽤 구하기 힘든 것들도 몇 개 손에 넣을 수 있어서, 우리는 둘 다 잔뜩 신이 나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길 옆에 낡아빠진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와, 의외로 이런 오래된 가게에 진귀한 게임 소프트가 숨어 있을지도 몰라!]




잔뜩 들뜬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친구.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편의점 정도 넓이의, 별 거 없는 가게였다.




주로 헌 책이 대부분이고, 가구나 헌 옷은 그닥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게임이라곤 고작 하나, "궁극 하리키리 스타디움"이 먼지더미에 쌓인 채 놓여 있을 뿐이었다.


여자친구에게 나가자고 말을 걸려던 참이었다.




[앗.] 하고 여자친구가 경탄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가가보니, 인형과 장식품 같은 걸로 가득 차 있는 바구니 앞에 여자친구가 서 있었다.


[뭐 좋은 물건이라도 있어?]




[이거, 대단해.]


여자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바구니 가장 아랫바닥에 떨어져 있던, 야구공만한 정20면체로 된 장식품을 꺼내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바구니 밑바닥에 있어 보이지도 않을 그게 여자친구 눈에 들었는지...




이상한 일은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뭔데, 이게?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거야?]


[아니, 나도 처음 보는건데... 이거 사면 어떨까?]




뭐, 확실히 보기 드물게 착 가라앉은 색깔의 장식품이다.


가지고 놀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싸면 사자.] 라고 대답했다.




카운터에 그 정20면체를 들고 갔다.


초라한 모습의 할아버지가 헌 책을 읽으며 앉아 있다.


[실례합니다. 이거 얼마인가요?]




그 때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책에서 시선을 들어, 정20면체를 보았을 때의 표정을.


경악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표정이 한순간 떠올랐다가, 금새 원래의 평범한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앗, 아아... 그거 말인가... 으, 으음, 얼마면 되려나. 자, 잠시 기다려주겠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인 것 같은 할머니와 무언가 말다툼을 하는 게, 단편적으로 들려왔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그건 말이지, 말하자면 장난감 같은 건데, 린폰이라는 이름일세. 이 설명서에 자세한 게 써 있지만 말이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누렇게 바랜 더러운 종이를 펼쳤다.




꽤 낡은 종이 같았다.


종이에는 정20면체의 그림과, "RINFONE"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곰", "매", "물고기" 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말들도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라틴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는 듯 했다.


[이렇게 이 장난감이 온갖 동물로 변화할 수 있는걸세. 우선 린폰을 양 손으로 잡고, 주먹밥을 만드는 것처럼 어루만져보시게.]




여자친구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린폰을 양 손으로 쥐고 주무르듯 어루만졌다.


그러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정20면체의 면 중 하나가 솟아올랐다.


[우와, 대단해!]




[그 튀어나온 부분을 돌려보거나, 더 위로 올라오게 해보시게나.]


할아버지의 말대로 여자친구가 그것을 만지자, 이번에는 다른 면이 푹 꺼졌다.


[대단해! 퍼즐 같은 거네요! Y군도 해봐!]




그 구조를 말로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혹시 "트랜스포머" 라는 장난감 시리즈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카세트 테이프가 로봇으로 변하기도 하고, 권총이나 트럭이 로봇으로 변하기도 하는, 지금은 유행이 지난 장난감이다.


린폰 역시 정20면체의 어느 부분을 만지거나 누르면, 곰이나 매, 물고기 등의 여러 동물로 변화한다고 보면 된다.




여자친구는 이미 린폰에 푹 빠져든 후였다.


나 역시 대단한 장난감이라고 생각했고.


[저기... 그래서 이거 얼마인가요?]




여자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말이지, 꽤 오래된 물건이란 말이지... 거기에 우리도 그런 게 있는지도 까먹었었으니... 뭐, 특별히 만엔에 드리면 어떨까? 인터넷 같은 데서 팔면 몇십만엔은 내려는 사람도 있을게야.]


하지만 여자친구는 흥정의 고수였다.




결국 6500엔까지 깎는 데 성공했고, 우리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가게에서 나왔다.


그 다음날은 월요일이었기에, 같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각자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Y군, 이거 엄청난 거 같아, 린폰 말이야. 정말 퍼즐 같은 느낌인데, 동물 모양으로 변했다구. 일하는 와중에도 머릿 속이 그걸로 가득 차서, 일도 제대로 못했다니깐. 진짜 왠만한 게임보다도 훨씬 재미있어.]


여자친구는 잔뜩 흥분해 일방적으로 마구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사진을 첨부한 문자가 왔다.


린폰을 들고 있는 그녀의 두 손에는, 곰의 머리 같은 것과 두 발이 보였다.


나는 잘도 만들었다 싶은 마음에, 대단하다고 문자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을 마치고 차를 타고 오고 있는데, 여자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이거 진짜 재밌어. 어제 밤 새서 만져댔더니, 드디어 곰이 됐어. 보러 와.]


완전히 제멋대로인 문자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경로를 바꿔 여자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야, 밤까지 샜다면서? 출근은 제대로 한거야?]


도착하자마자 나는 물었다.




[했어, 했어. 하지만 그 탓에 커피만 잔뜩 마셔서 기분이 영 안 좋았어.]


테이블 위에는 네 발로 서서 살짝 고개를 든, 곰 모양으로 바뀐 린폰이 있었다.


[우와, 진짜 대단하네, 이거. 무슨 구조로 만들어진걸까]




[대단하지? 이거 진짜 중독성 있어. 다음에는 이 곰에서 매로 바뀌는 거겠지? 어서 해보고 싶다.]


[야, 야.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밤 새면 안 돼. 내일 해.]


[그것도 그러네.]




그 후 여자친구가 만든 단순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둘이서 먹고, 그 날은 돌아갔다.


수요일.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번엔 내가 문자를 보냈다.




[어제 제대로 잤어?]


곧 답장이 왔어.


[어제는 제대로 잤다구! 이제 돌아가서 가지고 놀 생각에 엄청 기대돼.]




그리고 밤 11시 정도 됐을까.


내가 게임에 한참 빠져 있는데, 사진을 첨부한 문자가 왔다.


[매도 만들었어! 진짜 실물 같아. 이거 만든 사람 진짜 천재인가봐.]




사진을 보자, 날개를 펼친 매 모양으로 바뀐 린폰이 찍혀 있었다.


예술적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정교한 작품이었다.


당장이라도 날갯짓을 할 것 같은 매의 모습이었다.




물론 장난감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굴곡은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무척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대단하다. 다음에는 물고기구만. 그럼 너무 빠지지 말고 천천히 만들어 봐.] 라고 답장을 한 뒤,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목요일 밤.




목욕탕에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다.


[Y군, 아까 전화 했었어?]




[아니? 왜 그런데?]


[5분 정도 전부터, 30초 간격으로 전화가 와. 통화 버튼을 눌러도, 무슨 혼잡한 거리에서 웅성거리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만 들려서 바로 끊었거든. 통화내역을 보면 번호가 뜨거나 사람이름이 떠야하잖아? 근데 그 전화는 "저편" 이라고만 나오는거야. 이런 이름 등록한 적 없는데... 기분이 나빠서...]


[그렇구나... 내가 거기로 갈까?]




[아냐, 오늘은 이만 잘래.]


[그래. 뭐, 아마 혼선이라도 있던 거겠지. 아, 그러고보니 린폰은 어떻게 됐어? 물고기로 됐어?]


[으응, 그것도 금방 될 거 같아. 완성되면 Y군한테도 빌려줄게.]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금요일.


어제 여자친구가 말했던 기묘한 전화가 내심 신경쓰였기에, 나는 여자친구네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린폰은 거의 물고기 모양을 갖춰, 남은 건 등지러미와 꼬리지느러미만 만들면 다 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낮에 또 이상한 전화가 왔었다고?]


[응. 점심시간에 빵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이번에는 그냥 아무 이름도 안 떠서 받았었어. 그래서 통화 버튼을 눌렀더니, "꺼내줘!" 하고 수많은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오는거야. 깜짝 놀라서 끊었어.]




[역시 혼선이 됐거나 장난전화가 아닐까? 내일 전화회사에 찾아가 보는 건 어때?]


[그러네. 그렇게 해볼까.]


그 후, 린폰은 정말 대단한 장난감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물고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매만져봤지만, 좀체 지느러미를 꺼낼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역시 맨 마지막 퍼즐이니만큼 어렵구나, 하고 이야기하며 계속 매달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잠이 오기 시작해, 다음날은 토요일인데다 갈아입을 옷도 가져왔기에, 나는 그대로 여자친구네 집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기분 나쁜 꿈을 꿨다.




어두운 계곡 밑에서, 벌거벗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어오르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언덕을 올라 도망친다.


이제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다.




살 수 있다.


정상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어떤 여자에게 발목을 붙잡혔다.


[나 도  데 려 가 ! ! ]




땀범벅이 되어 눈을 떴다.


아직 새벽 5시를 막 지난 즈음이었다.


다시 잠을 청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나는, 멍하니 여자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토요일.


휴대폰 대리점에 찾아갔지만, 괴전화의 원인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던 중 기분 전환 겸 점이나 보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내에는 잘 맞는 걸로 유명한 "고양이 아줌마" 라는 점쟁이 아줌마가 있었다.


집에 고양이를 몇 마리씩 기르면서, 점도 자기 집에서 보는 사람이었다.


사전에 예약을 해야한다기에 전화를 해 보니, 운 좋게도 바로 내일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토요일은 그대로 대충 쇼핑을 한 뒤 외박을 했다.


일요일.


정오가 지날 무렵, 고양이 아줌마네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른다.


[네.]


[예약을 했던 Y라고 합니다만.]




[네, 이야기 들었습니다. 들어오시죠.]


현관을 열자, 복도에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경계하는 듯 소리를 치고,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복도를 지나가자 서양식 방에 고양이 아줌마가 있었다.


말 그대로 주변에 고양이 투성이다.


우리가 방에 들어간 순간, 일제히 고양이들이 캬악하고 적의에 가득찬 목소리로 외치고는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기분이 나쁘다.


여자친구와 곤란하다 싶은 얼굴로 마주 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돌아가주세요.]




고양이 아줌마는 그렇게 말했다.


조금 짜증이 나서,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키우고 있는건, 이런 경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에요. 고양이들이 점을 쳐도 괜찮은 사람과 안 될 사람을 구분해주는거죠. 이런 반응을 보인 건 당신들이 처음입니다.]




나는 웬지 마음에 걸려, 여자친구에게 걸려왔던 기묘한 전화와, 내가 꿨던 악몽에 관해 아줌마에게 이야기했다.


[여자분 뒤에... 동물의 오브제 같은 게 보입니다. 지금 당장 버리도록 하세요.]


아줌마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부탁이니 돌아가 주세요. 이 이상은 말하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자친구는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나는 집요하게 달라붙어 물었다.


[그게 뭔가요? 저주를 받은 물건이라던가, 사연이 있는 앤틱 물건인건가요?]


아줌마가 대답할 때까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자 아줌마는 일어서며 말했다.


[그건 응축된 자그마한 지옥입니다! 지옥의 문이라구요! 당장 버리세요! 그리고 여기서 돌아가요!]


[저기, 돈은...]




[필요 없어요!]


그 때 절규하던 아줌마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리고 여자친구의 집에 돌아간 우리는, 곧바로 린폰과 누렇게 바랜 설명서를 신문지에 싸서, 청테이프로 감아 내다버렸다.




그리고 몇 주 뒤, 여자친구네 집에 갔는데, 아나그램도 좋아하는 그녀가 펜과 종이를 가져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린폰이라는 건 RINFONE이라고 쓰는 거잖아. 우연이랄까, 이걸 아나그램식으로 늘어놓고 재배열하면 INFERNO가 되는데...]


[...하하하, 설마, 우연이겠지.]




[만약에 우리가 물고기까지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였을까...]


[하하하...]


나는 그저 마른웃음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쓰레기로 처리되었기를,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