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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

[번역괴담][2ch괴담][433rd]할머니의 일기

괴담 번역 2014. 4. 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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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를 무척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늘 할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곤 했다.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내가 어릴 때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마저 먼저 보내셨던 할머니는, 유일한 혈육인 나를 무척 사랑해 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할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지,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언제나 나 혼자 갈 뿐 어머니는 함께 오지 않았다.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마다 할머니와 함께 신사에 참배를 가곤 했다.

할머니는 몹시 신앙이 깊었기에, 비가 오는 날이라도 참배는 반드시 가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매주 일요일마다 신사를 찾았다고 한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는 것이 무척 기분 좋아서, 나는 참배 가는 것을 좋아했었다.

신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언제나 손을 모으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단히 오랫동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나는 언제나 단순한 소원만을 빌고, 할머니의 진지한 옆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할머니의 기도가 끝나면 [할머니, 뭘 빌었어?] 라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싱긋 웃을 뿐 한 번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사 주시던 아이스크림을 기대하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며 돌아오곤 했다.

그러는 한편, 나는 어릴 적부터 영능력이 강하다고 할까, 계속해서 나쁜 영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곤 했다.



매일 가위에 눌리다보니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다.

자고 있는 와중에도 누군가 다리를 만지는 것이 느껴지거나, 뱃 속에서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등 점점 괴롭힘도 심해져 갔다.

어머니와 함께 영능력자라는 사람을 몇 번 만나보기도 했지만, 무슨 일을 해도 소용이 없는데다 돈도 엄청나게 들어서 나도 체념하고 그저 괴로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될 무렵에는 그 정도가 점차 심해져, 교통사고도 여러번 당하고 매일 밤마다 가위에 눌리곤 했다.

거기에 귀신 때문인지 환각마저 보이기 시작해, 학교에도 못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집에 혼자 있는 내가 걱정되셨는지, 어머니가 회사에 가면 언제나 집에 와서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그나마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만이 내게는 유일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일 때문에 집에 돌아오는 게 늦어서, 그다지 이야기도 잘 나누지 못했다.

그 사이 나는 거식증에 걸려 매일 구토를 하다가 반대로 과식증에 걸리기도 하는 등, 몸 상태와 정신이 모두 불안정한 상태였다.



자살 시도도 몇 번이나 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실패해서, 사는 게 너무나도 괴로운데 정작 죽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그 탓에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하던 참배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엇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펑펑 울었다.

한동안 할머니 방에 틀어박혀서 할머니의 옷이나 이불을 꼭 끌어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평소처럼 태연하게 회사에 출근을 했다.

솔직히 어머니 덕분에 먹고 살고는 있지만, 그런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주 정도 지났을까.



점차 내 주변에서 나쁜 영에 의한 괴롭힘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게 딱 4명만 있던 친구 중 한 명은 전화로 [네가 가지고 있던 아픔들을 할머니가 모두 가지고 천국으로 가신 걸거야.] 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1년 정도 지나자 나는 완전히 괴롭힘에서 해방되었다.

제대로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팔게 되었다.



짐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았다.

이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고, 매일 무덤을 찾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무렵이었다.

서랍 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보자기에 싸인 할머니의 낡은 일기장이 몇 권 나왔다.



그것은 매주 일요일마다 쓴 것이었다.

일기를 읽고나서,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일기가 써진 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실은 자살이었다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원인은 어머니의 바람이었다고 한다.

충격이었고,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거기에는 나를 향한 할머니의 증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것이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였다.



나는 어머니가 바람 피운 상대의 딸이라는 문장부터 시작해, 죽이고 싶다던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등 내가 알고 있던 할머니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언제나 신사에 갈 때면 내가 괴로워하며 죽기만을 신사에서 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긴 세월 동안, 매주마다, 천천히.



바로 옆에 있는 어린 내가 저주 받아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염원이 통했던 것인지, 나는 무척 괴로웠다.

그리고 할머니도 괴로워하며 세상을 떠났다.



일기는 그 자리에서 태워버렸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차마 잊을 수 없는 일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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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432nd]먼저 탔던 손님

괴담 번역 2014. 4. 1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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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씨는 신주쿠에서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살고 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지만 밀린 업무를 끝내기 위해 출근했던 터였다.

마침내 기나긴 프로젝트를 다 해치웠기에, 기념으로 동료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M씨 회사 근처 역 앞에는 평소에도 택시가 잘 안 다녀서, 밤이 늦으면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곤 했다.

평소에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지만, 요 일주일 새에는 야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일 택시를 타고 있었다.

지금쯤 가면 야근 끝나고 온 사람들 때문에 줄이 엄청 길겠다 싶어 각오를 하고 역 앞으로 나섰지만, 웬일인지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그저 중년 여성 한 명이 서 있을 뿐이다.

아, 그렇구나.

오늘은 토요일이었지.



다행이라 여기며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웬 샐러리맨이 뛰어와 M씨를 추월해서 중년 여자 뒤로 끼어들었다.

M씨는 어안이벙벙함과 동시에 조금 화가 났지만, 어차피 그래봐야 두 명 뿐인데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군소리 없이 남자 뒤로 가 줄을 섰다.



그러자 곧장 택시 1대가 나타나 중년 여자를 태우고 간다.

좋아, 이제 한 명만 더 가면 내 차례야.

첫 택시가 가고 15분쯤 지났을 무렵, 뒤에서 역 계단 셔터가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뒤를 돌아보니 역무원이 점검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택시를 기다리는 사이 전기가 나가면 어쩌지?

역무원도 퇴근해버리나?



걱정이 된 M씨가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를 하는 동안, 택시 전조등이 보였다.

도착한 택시에 샐러리맨이 탄다.

점점 멀어져가는 택시를 보며, 문득 M씨는 생각했다.



이 택시가 오는데까지 20분 정도가 걸려다.

평소보다 훨씬 대기시간이 긴 것이다.

마침 첫번째 택시도 검은색이었고, 지금 것도 검은색이다.



휴일 밤이라 택시를 1대만 운영하고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20분쯤 기다리자 택시가 왔다.

이번에도 검은색이다.



역시 한 대가 계속 오가고 있는 것이다.

M씨는 택시에 올라타 행선지를 말했다.

[A 마을까지 가 주세요. K 중공업에서 내려주시면 되요.]



K 중공업은 M씨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기업의 하치장이었다.

M씨의 집은 작은 용수로 건너 시골길에 있어서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늦은 시간이데 고생이 많으시구만. 뭐, 야근이라도 하셨소?]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지만, M씨는 너무 피곤해서 [아, 네.] 하고 대충 대답만 했다.

어느덧 하치장이 가까워져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는데, 다시 기사가 말을 건다.

[손님, 혹시 여기서 일하시나?]



쓸데 없이 참견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아뇨, 아닌데요.] 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하자, 어째서인지 택시는 하치장을 지나쳐간다.



깜짝 놀란 M씨가 [아, 여기서 내려주세요.] 라고 말했지만, 기사는 대답이 없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달라구요!]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해서 M씨가 소리를 치자, 택시기사는 [손님, 화요일에도 이 택시 타지 않았수?] 라고 물었다.



그 와중에도 택시는 계속 달려가고 있었다.

확실히 이번 주는 계속 야근을 한 탓에 매일 밤마다 택시를 탔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거지?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어서, M씨는 뭐라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 3분 정도 지났을까.

도로변에 편의점 간판이 보이자, 택시는 그 곳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택시를 멈춘 뒤 운전기사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손님. 그렇지만 그게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거요.]

운전기사는 명함을 꺼내 M씨에게 건넸다.



[여기 우리 회사 번호가 있으니까, 혹시 불만이 있으면 전화해서 말해도 상관 없소.]

그리고는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M씨가 화요일에 탔던 것은 바로 이 택시였다.



택시기사도 처음에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K 중공업이라는 이름을 듣고 생각이 났다고 한다.

[실은, 손님이 타기 전에 어떤 남자를 태웠었거든.]

M씨 앞에서 새치기를 해 택시를 탔던 그 샐러리맨이다.



[그 남자도 K 중공업에서 내리지 뭐람?]

택시 안에서 남자는 계속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도착할거야.] 라던지, [20분 정도 기다려야 돼.]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택시기사가 난데없이 야근이 어떻다느니, K 중공업이 어떻다느니 했던 것이 생각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여기까지 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M씨가 그것을 묻자, 택시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손님은 K 중공업에 다니는 분도 아닌 것 같고, 화요일에도 이 택시를 탔었잖수. 뭐, 나도 처음에는 그냥 그 남자가 좀 이상한 손님이려니 했지.]



하지만 K 중공업은 불이 다 꺼져 있어서 인기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모습에 남자가 적어도 여기 사원은 아닐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차를 돌려 역으로 돌아가려는데, 반대편 차선에 승합차 한 대가 멈춰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4명 정도 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내 차 라이트가 비치니까 모두 고개를 푹 수그려서 숨더란 말이지. 이상하잖아. 게다가 그 차 운전석에 있던 건, 틀림없이 아까 내 차에서 내린 그 남자였다니까! 그걸 보니까 나도 등골이 다 오싹해지더라구.]

순간 M씨는 아까 택시를 기다리며 어머니에게 했던 전화 내용이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응... 지금 역이야. 택시 타려고... K 중공업에서 내리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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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필 무렵이 되면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난꾸러기 친구 3명과 친했고, 우리의 우정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A, B, C와 나.



그리고 또 한 명,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사쿠라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사쿠라는 우리들 사이에서 떠받들어질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지만, 딱히 따로 친한 여자아이가 있던 것도 아닌데다, 그녀는 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탓에 다들 [사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로 그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 답답하지만, 돌아보면 그리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우리 5명은 축제가 끝난 뒤 술을 사서 근처 공원에서 마시게 되었다.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어느덧 화제는 담력시험으로 넘어가 있었다.

근처 숲 속에는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 앞에서 합장을 하면 무서운 꼴을 한 여자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면 미쳐버린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도시전설처럼 유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끼리 한 번 가보자구.]

그 무렵, 우리 사이에서 가장 폼을 잡기 좋아하던 C가 말했다.



조금 경박한 성격의 B는 어째서인지 기운 없이 [그만두자...] 라며 비 맞은 강아지마냥 C를 바라 보았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 신경도 뛰어난데다, 정의감도 강해서 우리 사이에서는 리더 격이었던 A는 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사쿠라에게 [너는 어떻게 할래? 돌아갈까?] 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어땠냐고 하면, 사쿠라와 함께 가서 내가 얼마나 용기가 있는지 보여줘서 환심을 사고 싶었다.



아마 당시에는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A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 사쿠라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갈래! 너희들만 가면 혼자 남아서 불안하잖아.]



결국 사쿠라도 같이 가기로 해서, 우리들은 숲으로 향했다.

거기서 어떤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상상조차 못한채.

숲 속을 가로질러 묵묵히 나아간다.



술기운도 서서히 옅어져 말수가 적어진다.

운 좋게도 사쿠라는 내 옆에서 걷고 있어서, 내 셔츠의 소매를 잡고 있었다.

한밤 중의 숲 속에서, 우리는 달빛과 A가 들고 있는 랜턴의 가냘픈 빛만을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겨우 소문의 그 무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합장을 하는 거였나?]

C는 아직 술이 덜 깬 건지, 무서움을 애써 참는 것인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장난스런 모습으로 무덤에 다가간다.



B는 이미 얼굴이 창백해져서 [돌아가자...] 라며 나와 A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A는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하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사쿠라는 변함없이 내 소매를 잡고 있었지만, 겁에 질린 탓인지 셔츠가 뜯어질 것 같이 꽉 잡고 있었다.



소매를 잡은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으아아아악!]



B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순간 우리는 공포와 긴장의 극에 달해 토끼처럼 도망치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도망쳤는지,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어두운 구름에 휩싸인 채, 주변은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나는 겨우 숲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원에 돌아와 망연자실해 있자, 잠시 뒤 A가 나타났다.



[다른 녀석들은? B랑, C랑, 사쿠라는 어디 갔어? 같이 안 온거야?]

A에게 추궁당한 나는 혼자 도망친 것을 후회하면서, 못 봤다고 대답했다.

A는 혀를 차고 함께 찾으러 가자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A라도 무서웠던 것인지, 도망치는 와중에 랜턴을 떨어트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원에서 가장 집이 가까웠던 내가 랜턴을 가지고 와서 다시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서 랜턴을 가지고 공원에 돌아왔을 때는 C도 간신히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C도 나처럼 B와 사쿠라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게다가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싫다는 것이었다.

[장난하냐? 애초에 거기 가자고 한 건 너였잖아!]



A는 C에게 잔뜩 화를 냈다.

C는 난처하다는 듯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라고 계속 사과했다.

[그렇지만 난 봤단 말이야. 여자 같은 그림자가 무덤 뒤에서 나오려고 했어...]



평소에는 짓궂게 우리를 비웃던 C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당장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자가 얼굴을 들려는 순간 B가 소리를 질러서, 너무 무서웠어...]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아까 전의 광경이 떠올라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다시 숲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C.

가서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는 A.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매한 나.



3명이 의견의 합의를 보지를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을 무렵, 숲 속에서 흙투성이가 된 B가 터벅터벅 걸어 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 쉬고, T셔츠는 찢어진데다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괜찮아?] 라며 달려가서 [사쿠라는?] 이라고 B에게 물었다.



B는 울면서 [모르겠어.]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날 밤은 동네 사람들이 총출동해서 사쿠라의 행방을 찾았지만 사쿠라는 찾을 수 없었다.



문제의 무덤 주변을 중점적으로 수색했지만, 단서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 몇 주간에 걸쳐 수색은 계속 되었지만, 사쿠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매일 숲에 모여서 사쿠라를 찾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는 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쿠라의 시체를 찾는 게 아니라, 사쿠라를 찾는거야!] 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계속 찾았다.

결국 사쿠라가 발견된 것은 다음해 봄, 벚꽃이 필 무렵에서야였다.

사쿠라는 숲의 출구 부근에서 뼈만 남은 채 발견되었다.



옷과 소지품을 확인한 결과 사쿠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 속은 빠짐없이 찾았는데 왜 진작 찾아내지 못했을까.

우리는 자책하면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사쿠라의 부모님은 우리를 전혀 탓하지 않고, 딸의 친한 친구로서 대해주셨다.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어려운 일일지, 당시의 우리도 아플만큼 느끼고 있었다.

A가 사쿠라의 부모님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우리는 사전에 같이 정했던 부탁을 했다.



[혹시 사쿠라의 뼛조각을 나눠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쿠라의 부모님은 어안이벙벙해져서 A를 바라본다.

[다섯명이 늘 같이 놀던 공원 벚꽃나무 아래에 사쿠라를 묻어주고 싶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너희 기분은 알겠지만, 납골묘를 관리할 스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부모님이 당황해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주지 스님이 [가족만 허락한다면 저희는 상관 없습니다.] 라고 허락해 주셨다.



우리는 장례식이 끝난 뒤 울면서 사쿠라의 일부를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 묻었다.

그 후 우리들은 진학, 취직 등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나와 A는 대학에 갔고, B는 백수로 남았고, C는 취직을 했다.



서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점차 사쿠라의 비참한 죽음은 마음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래도 무언가 기념할만한 날에는 공원을 찾아 그 벚꽃나무 아래 앉아서 사쿠라를 생각하며 말을 걸기도 했다.

제멋대로기는 해도 사쿠라와의 아름다운 추억만을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해 성인의 날.

오랜만에 4명이 다 모여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옛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슬슬 취기가 올라올 무렵, C가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사쿠라 만나러 갈까?]

A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너, 잘도 그런 소리를...]



당황해서 C가 해명한다.

[아니, 공원에 가보자는 거야!]

B는 그 때처럼 여전히 내켜하지 않았다.



[유, 유령이라도 되서 나오면 어떻게 해...] 라며 무서워하고 있었다.

C는 B의 등을 두드리며 [야, 사쿠라라면 귀신이라도 만나고 싶다!] 라고 웃었다.

C 나름대로 그 사건을 추모하고 싶어하는 거라고 여긴 나와 A는, 같이 공원에 가기로 했다.



네 명이 다같이 공원에 온 것은 사쿠라를 묻은 그 날 이후 처음이었다.

밤바람은 술로 데워진 몸을 가차없이 식힌다.

벚꽃나무 아래는 무척 추워서, 아직 봄은 멀었다는 생각만 든다.



[사쿠라, 만나고 싶다...]

C가 중얼거렸다.

[어릴 때부터 계속, 좋아했었는데...]



이어진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말하고 싶었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도야.] 라고, A가, 그리고 내가 말한다.



마지막으로 B가 말하고, 우리는 누구 하나 먼저랄 것 없이 합장을 했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그 날처럼 B가 소리쳤다.



벚꽃나무 뒤에서 사쿠라가 그 날 그 모습 그대로 천천히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날과 다른 것은, 분노에 가득 찬 표정과 몸 전체에 가득한 상처들뿐.

그리고 다리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파과의 혈흔이었다.



사쿠라는 천천히 우리들에게, 그 중에서도 B에게 다가간다.

B는 깜짝 놀라 기겁한 것인지,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나와 A, C는 가위에 눌린 것마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용서해 줘! 용서해 줘!]

B는 벌벌 떨면서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쿠라는 B의 눈 앞까지 다가가더니, B 속에 비집고 들어가듯 슥 사라졌다.



순간 B가 무서운 기세로 구토를 시작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토한다.

피도 섞여 나오고 있었다.



다 토하고 나자 이번에는 말도 안 되는 모습으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B의 입 안에서 피와 살점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혀와 입 안을 씹어 뱉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무렵, B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음소리를 내며 흰자를 치켜떴다.

간신히 B의 곁으로 달려간 우리 머리 위에서, [미안해.]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올려다 본 위에는 아름다웠던 모습 그대로의 사쿠라가 있었다.



희미하게 눈물을 머금은 채, 사쿠라는 사라졌다.

[사쿠라! 가지마!]

A가 소리쳤다.



C는 쓰러져 있는 B에게 달려가 정신을 잃은 B를 후려갈겼다.

[네가! 네가! 왜 그런 짓을!]

C는 울면서 B를 계속 때렸다.



나는 그것을 말릴 수조차 없었다.

B는 그 후 구급차로 후송되어 어떻게 목숨은 건졌지만, 입 안과 내장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광대뼈도 부러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신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상처가 회복된 후에도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C는 B가 입은 상처의 책임을 모두 지게 되어 상해죄로 체포되었지만, 취중에 일어난 가벼운 싸움으로 취급되어 벌금형으로 끝났다.

봄이 되고 나와 A는 다시 공원을 찾았다.

사쿠라는 무사히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뒤에서 A가 말했다.

[사쿠라는 강했어... 그 날 무덤 뒤에서 여자가 나왔을 때, 나도 무서워서 도망치고 말았지만, 그 와중에 문득 뒤를 돌아봤다가 봤거든. 사쿠라가 뒤늦게 겁에 질려 도망치던 B를 기다리고 있던 걸... 그런데도 B 그 자식은 사쿠라를...]

A의 목소리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허무함이 배어있었다.



나는 벚꽃나무에 손을 모아 빌었다.

부디 사쿠라가 천국에서는 행복하기를.

해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환하게 웃던 사쿠라의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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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430th]친절한 선배

괴담 번역 2014. 4. 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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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동아리 친구에게 억지로 끌려나온 미팅은 예상대로 머릿수나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같이 나온 친구 2명은 미팅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커플끼리 참석했다.

게다가 상대편 남자들도 그냥 머릿수나 채우려고 나온건지, 전혀 K의 취향이 아니었다.



[2차로 노래방이라도 가자.] 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K는 술집을 나와 역으로 향했다.

바로 그 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2차는 안 가니?]



같이 미팅에 참가했던 S였다.

미팅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학교 선배라기에 말을 몇 마디 섞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라, 남자들의 주목을 한껏 끌었었다.



그 S가 둘이서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하니, K로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이 역 앞의 술집으로 향했다.

[K씨, T현 출신이라고 그랬지?]



망해버린 미팅을 안주 삼아 떠들고 있던 와중, S가 물었다.

[아까 자기소개할 때 들었어. 여름방학 때는 집으로 돌아가는거야?]

마침 모레부터 여름방학이다.



[어떻게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집까지 가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라고 K가 대답했다.

그러자 S는 [마침 T현에서 하이킹 코스 청소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는데, 같이 참가하는 게 어때?] 라고 물었다.

S가 가입한 캠핑 동아리가 T현에서 바베큐 캠핑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하이킹 코스 사이에 있는 캠핑장과 계약을 맺고, 청소를 해 주는 대신 캠핑장을 무료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바베큐 재료까지 대 준다고 했다.

[어때? 자원봉사 개념이라 따로 돈은 안 나오지만, 내 차로 가면 교통비는 굳잖아. 뭐, 캠핑이 끝나면 우리 동아리도 따로 일정이 있으니까 돌아오는 건 K 네가 알아서 어떻게 해야하지만 말이야.]



사실 T현의 친가에는 2년 가까이 가지 않은 터였다.

왕복하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들기에 올해도 딱히 돌아갈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가는 게 공짜인데다, 캠핑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솔직히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 가족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그럼 저도 가 볼까요?]

K가 대답하자, S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분명 재미있을거야. 그럼 모레 아침 7시에 학교 앞에서 만나자.]

K는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S와 헤어졌다.

다음날, 오랫동안 집을 비우니만큼 청소와 세탁을 한 뒤, 캠핑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집에서 온 부모님 전화였다.

오랜만에 집에 간다는 말에,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일단 내일은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서 아는 선배랑 캠핑했다가 모레 집으로 갈게요.]

그러자 어머니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머, 거기 캠핑장 같은 게 있니?]



[하이킹 코스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던데요. 그 근처 어디에 있대요.]

[얘는, 무슨 소릴하는 거니? 하도 집에 안 오니까 동네도 다 까먹었구나, 너? 거긴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서 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잖아.]

그 말을 듣자 K의 머릿 속에도 어린 시절 기차 창문 너머로 보았던 회색 민둥산들이 퍼뜩 떠올랐다.



도저히 S에게 전화해 따질 용기가 안 나서, K는 동아리 친구에게 전화해 S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아, 그 미팅 때 나왔던 예쁜 언니?]

놀랍게도 K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S와는 초면이었다.



주선자에게 알아보니, 원래 나오기로 했던 여자아이가 사정이 생겨서 못 나오게 되었다면서 S가 대신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사정이냐고 물었더니, S는 친구의 친구라 자기는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대답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K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S가 전화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와 함께 S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신호음만 이어질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나마도 이틀 후에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만 나올 뿐이었다.



지도를 찾아봤지만 S가 말한 하이킹 코스나 캠핑장은 없었다.

그 뿐 아니라 학교에 문의하니 S라는 학생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S가 누구였는지, K에게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날 사정이 있다며 미팅에 못 나왔던 여자아이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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