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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

[번역괴담][2ch괴담][540th]아버지의 교육

괴담 번역 2015. 1.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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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후 2개월이던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보다 다섯살 많은 누나와 나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내가 4살 되던 해에 재혼을 하셨다.


새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병적으로 혐오해, 낙서 하나 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림 그리는 걸 싫어하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나 누나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그린 그림을 가져오면, 그걸 스스로 찢고 태우게 시킬 정도였다.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그림책 같은 것도 우리 집에서는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다.




새아버지는 결코 폭력을 휘두르는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나가 중학교 2학년 때, 지역 그림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자 반년 가량 누나를 완전히 무시하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


누나는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자 아버지와 누나 사이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누나가 학교 만화 동아리에서 만든 회지나 몰래 만든 동인지를, 아버지가 누나 없을 때 방을 뒤져 찾아낸다.


그리고는 누나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 스스로 욕하게 시키고, 자기 손으로 찢고 태우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몇번이고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림 따위는 제대로 된 인간이 그리는 게 아니야. 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간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누나는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지만, 당연히 아버지가 허락할리 없었다.


결국 어머니가 몰래 삼촌에게 상담을 해, 아버지에게는 일반 대학에 다닌다고 속이고, 누나를 삼촌댁에 머물게하고 미대에 보내줬다.




하지만 우연히 숙모가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게 아버지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격분하더니 그 자리로 주민센터를 찾아가, 누나의 사망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게 수리되는 바람에, 나중에 큰 소란이 일어났고 결국 누나는 미대를 자퇴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누나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그 사건으로부터 몇년 후, 누나는 나와 두 동생에게만 말한 뒤 결혼해 집을 나왔다.


나와 두 동생은 누나의 조언도 있고해서, 집에서는 아버지 뜻대로 따랐다.




근래 들어 몸상태가 영 좋지 않은 탓인지, 아버지도 과거처럼 방을 뒤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에, 나는 독립해 집을 얻을 때까지 혼자 조용히 숨어서 그림을 그릴 요량이었다.


그리고 몇년 전, 아버지는 말기암 진단을 받고 반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신고 사건 이후 단 한번도 집을 찾지 않았던 누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장례식에는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십여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장례식 내내 계속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지만,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슬픈 모양이구나, 하고 나도 두 동생도 생각했다.


장례식이 순조롭게 끝나, 각자 헤어지기 전날 밤, 누나가 나를 불러 누나네 차에 올라탔다.




누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너한테만 좋은 걸 보여줄게!] 라며 차 안에 있던 큰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납으로 된 인형이 수백개 들어있었다.


거기다 그 인형 하나하나마다 무수한 바늘이 박혀있었다.




누나는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


[이거 말이야, 그 때부터 계속 저 새끼를 저주하면서 만든거야. 하루에 하나씩, 저 새끼 얼굴을 떠올리면서 '죽어, 죽어! 괴로워하면서 죽어버려!' 라고 빌면서 찔렀단다. 그랬더니 신도 내 소원을 들어줬나봐. 드디어 죽어버렸잖아!]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누나는 계속 말했다.


[장례식 때는 너무 기뻐서 웃어제끼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시체에 침이라도 뱉을 걸 그랬어. 이번에는말이야, 이걸 하루에 하나씩 '지옥에서 괴롭게 지내라!' 라고 빌면서 태울거야! 죽어도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을거니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저주할테니까!]


그 때 본 누나의 얼굴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만화 같은 데서 보면 정신이 나간 사람의 눈을 ◎◎ 같은 형태로 그리곤 한다.


그 때 누나의 눈은, 정말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누나의 모습이 너무도 무서워서 나는 점차 누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그 무렵 두 동생들도 성인이 되어 각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동생 부부에게, [큰누나가 너무 무서워.] 라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물었더니, 한 달에 두세번씩 누나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전화 내용을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문법이나 문맥이 이상한 게 아니라,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었다.




[노쿠싯카타칸! 요맛솟로메라츠나치키시! 하노키세!]


이런 식으로, 그저 아무 소리나 입에서 나오는대로 소리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한 주에 몇번씩 조카들에게서 [엄마가 이상한 말을 해서 너무 무서워요.] 라고 전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당시 매형은 파견을 나가있어, 혼자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 탓에 아이들이 전화로 엄마가 이상하다고 호소를 해도 [또또 그러네. 아빠를 놀래키려고 해도 안 속는다니까!] 라면서 웃어넘기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나와 어머니가 매형에게 연락을 했고, 그제야 매형은 녹음된 누나의 전화를 듣고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후 누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밖에서 문이 잠겨있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린데다 24시간 감시카메라가 작동하는 병실이다.


그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매형과 삼촌, 어머니가 수많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에게 누나를 데려갔고, 몇번이고 대형 병원 정신과에 입원을 시켰었다.




하지만 원인은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고, 증상이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무렵, 딱 한 번 누나에게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봤던 누나의 눈은, 아버지 장례식 때와 똑같은 ◎◎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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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철이 들 무렵부터 배를 타 온, 진짜 어부 중의 어부다.


오랜 세월 바다 위에서 살아온 할아버지는, 바다의 대단함과 두려움에 관해 자주 잠자리에서 말해주시곤 하셨다.




개중에는 [집채만한 상어랑 7일 밤낮을 내리 싸웠다고!] 라던가 [회오리에 배가 말려 올라가 하늘까지 다녀왔단말이지.] 하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내게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새빨간 얼굴로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을 읊어대는 할아버지가 만화 주인공보다 몇배는 근사하게 느껴졌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날, 평소와는 다른 진지하고 무서운 얼굴로 해주신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동료들과 고기잡이를 나섰다가,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무언가에 올라타는 바람에 좌초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해도에는 그 근처에 암초나 섬이 있다는 정보는 없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배 밑 상태를 확인하려 동료 한 명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고작 허리 정도까지만 물에 잠기고 발이 바닥에 닿았다.


시험삼아 할아버지도 뛰어들자, 수심 1m 정도 깊이에서 발이 바닥에 닿았다고 한다.


거기서 주변을 좀 걸어다니며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감을 잡으려 했지만, 20m 가량 주변을 걸어봐도 계속 바닥이 보였다고 한다.




동료 중 한 명이 물속으로 잠수했다 올라와서는, 적갈색의 울퉁불퉁한 바닥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간 발견되지 않았던 암초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암초가 이렇게 난데없이 튀어나와 있을리가 없다.


고래나 무슨 다른 동물의 시체인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커도 너무 컸다.




여러 의견을 나누던 도중, 동료 중 한 명이 불쑥 중얼거렸다.


[이거 혹시 우미보즈(海坊主, うみぼうず)라는 거 아닌가...?]


'우미보즈'.




먼 옛날부터 전설로 내려오는, 어부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바다 괴물의 이름이다.


평상시라면 웃어넘길 소리지만, 눈앞의 모습을 보고는 그렇게 태연히 있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사이, 처음 말을 꺼낸 동료가 뱃머리에 주저앉더니 온 정신을 다해 경을 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포함해 나머지 동료들도 뒤따라 배에 올라타고서는, [나무아미타불...] 하고 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어! 살아 돌아가고 싶어!] 라고 계속 바랐다고 한다.




그 염불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잠시 뒤 우지끈하고 큰 진동이 배를 뒤흔들었다.


그리고는 곧 배가 올라타있던 '무언가' 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공포에 질린 할아버지와 동료들은 고기잡이를 내팽개치고 서둘러 항구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들이 보고 온 것을 이야기해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여러번 같은 곳에서 고기잡이를 했지만, 그 '무언가' 를 만난 건 그 때 한 번뿐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뭐였는지 알고 싶던 시절도 있었다만... 결국엔 단념했다. 그건 분명 인간이 관계해서는 안 되는 것일게야.]


지금도 현역인 할아버지는, 고기잡이에 나설 때면 반드시 불단 앞에서 손을 모아 빈다고 한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풍어가 되기를,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그것과 만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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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38th]편의점의 점장

괴담 번역 2015. 1. 2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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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무렵 이야기다.


대학생이던 시절, 나는 도쿄 로컬선 역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가게 점장이던 U씨는 무척 특이한 사람이었다.




U씨는 무척 인품이 좋은 분이라, 손님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원래 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점장까지 맡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기에, 점장이라고는 해도 당시 고작 24살이었다.


그 탓인지 나이가 비슷한 내게 무척 잘 대해주었고, 나도 마치 형처럼 따랐다.




U씨는 정말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사실 학창시절에는 지역에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한 양아치였다고 했다.


옆 동네에 살던 아르바이트 동료의 말에 의하면, 학교 다닐 무렵에는 눈도 못 마주칠 정도였다나.


그 탓인지 U씨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겁에 질리는 일이 없었다.




양아치부터 야쿠자, 또라이에서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라도 손님이면 친절하게 맞이한다.


하지만 상대가 도를 넘은 짓을 하면, 그대로 목덜미를 낚아채 가게 밖으로 던져버리는 단호한 남자가 바로 U씨였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아르바이트를 낮잡아 보고 막 대하거나, 상품을 일부러 손상시키는 짓을 하는 등 도를 넘었을 경우에만 나오는 행동이고, 그 외에는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연히 심야 아르바이트 동료가 병 때문에 빠져 U씨와 내가 같이 가게를 지키던 날의 이야기다.


그 날은 일요일로, 막차가 끊기고 1시 반에 상품 입하가 끝난 터였다.


3시 반에 잡지 신간 물량이 들어올 때까지는 손님도 끊기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개 그런 날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거나, 그도 아니면 교대로 휴식을 취하곤 한다.


그 날은 다음날 주문 관련 문제때문에 U씨가 카운터를 지키고,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 반품하기 위해 회수한 철 지난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편의점이 대개 그렇듯, 우리 가게 역시 손님이 들어오면 가게 안에 멜로디가 흐르게 되어 있다.




나는 U씨에게만 카운터를 맡겨놓는 게 미안해서, 손님이 오면 계산 정도는 내가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귀만큼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잡지 입하 때까지, 가게에는 단 한 번도 멜로디가 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약 수십분 가량, 나는 그저 천천히 만화책만 읽고 있었다.


몇 권 정도 읽고나자 슬슬 질리기 시작해서,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사무실 안에 있는 CCTV 모니터로 슬쩍 눈을 줬다.


모니터에는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U씨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멜로디가 울리는 걸 못 들었나 싶어, 나는 당황해 사무실에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 뭔가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원래 그닥 선명하지 않은 CCTV 영상인데다, 모니터 하나로 가게 곳곳에 있는 5개의 카메라를 모두 중계하다보니 칸칸이 나뉘어 가까이서 봐도 확실하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모니터를 조작해 카운터 쪽 영상만을 확대했다.


확대된 영상 속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U씨를 카운터 너머로 째려보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상황을 정리하려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그게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우선 입구부터 그 여자가 서 있는 곳까지, 전혀 피가 떨어진 자국 같은 게 보이질 않았다.


여자는 CCTV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옷까지 피에 물들어 새빨갰다.




그런 꼴을 했는데도 바닥에는 핏방울 하나 없다니, 분명히 이상했다.


그리고 더욱 기묘한 것은, 여자의 머리였다.


어떻게 보더라도 움푹 패여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던 것이다.




마치 빵을 크게 한 입 베어먹은 것 마냥 머리가 패여 있고, 거기에 핏덩어리 같은 것이 고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영상을 바라봤지만,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익숙한 가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있을 수 없는 광경에 놀라, 나는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된 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여자 앞에서, U씨는 팔짱을 끼고 떡하니 서서 그 여자를 마주 째려보고 있었다.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내게는 시간 감각조차 확실하지 않았지만,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그 여자가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팔은 곧바로 카운터 위에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더니, 곧이어 서서히 얼굴도 카메라를 향해 돌렸다.




그 영상을 보고 있던 내게는, 마치 나를 가리키는 것 같은 느껴졌다.


여자의 얼굴은 피에 젖은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여자와 모니터 너머 시선이 마주쳤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벌벌 떨면서도, 모니터를 계속 바라봤다.


이상한 소리지만 그대로 눈을 돌리기라도 하면 그 순간 살해당할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여자는 카운터에 등을 돌리고, 가게 안 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느린 걸음으로, 마치 달팽이가 기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는거지?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여자가 향하는 곳에는 사무실 입구가 있다는 것을.


나는 공포에 질려 사무실 문으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 사무실 문은 미닫이문이고 잠궈놓지도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열쇠도 없기에, 밖에서 들어오려고 하면 그냥 들어올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서둘러 문에 달라 붙은 후, 문을 손으로 꽉 눌러 열지 못하도록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문을 누른 채 고개를 들자, 사무실 문에 붙어있는 반투명한 유리창으로 서서히 붉은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겁에 질린 채, 그저 온힘을 다해 문을 누르고 있었다.


귓가에는 서서히 다가오는, 무언가를 질질 끄는 것 같은 습기찬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너무 힘을 쏟아부은 탓인지, 밖에서 문을 열려고 하기도 전에 내 팔은 서서히 힘이 빠져 떨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저려오는 팔에 힘을 쏟아부으며 문을 누르고 있었다.


갑자기 문은 엄청난 힘에 의해 열리고 말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말고서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공포로 온몸이 떨리고, 눈물과 땀이 바닥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끝이다.


살해당한다.




나는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대로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열린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비틀비틀 일어서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며 사무실에서 나왔다.


손님이 없는 탓에 라디오 방송만 크게 울리고 있는, 평소대로의 가게였다.


아연실색하고 있는 내 눈에, 가게 밖에서 들어오는 U씨의 모습이 들어왔다.




[야, 저기 선반에서 소금 좀 가져다주라.]


U씨는 그렇게 말하고, 소스와 케찹 같은 게 진열되어 있는 선반을 가리켰다.


나는 휘청거리며 선반에 다가가 소금을 집어 건네주었다.




U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것을 받았다.


카운터 밖에서 계산기를 조작해, 바코드를 찍고 자기 집에서 돈을 꺼내 소금값을 채워넣었다.


그리고는 소금 봉지를 뜯어 손으로 소금을 가게 이리저리에 뿌리기 시작했다.




[너 잠깐 밖에 따라나와라.]


그리고는 가게 밖에서 내게 소금을 몇번이고 뿌렸다.


그렇게 소금 한 봉지를 다 뿌린 후에야, U씨는 [나 좀 쉴게.] 라며 사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뒤를 따라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U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 깜짝 놀랐네.]


담배 한 개피를 다 피우고 나서야 U씨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U씨의 말에 따르면, 카운터 안에서 다음날 주문 업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눈 앞에 서 있더라는 것이었다.


여자가 피투성이라는 걸 보고 U씨는 당황해, 큰 부상이라도 당한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기에 자세히 봤더니, 그제야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공포라는 걸 모르는 것인지, U씨는 귀신을 보고도 당황해 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U씨에게, 그 여자가 갑자기 소근소근 말을 걸어왔다.


[같이 와 줄래?]




분명 내가 들은 것은 U씨의 목소리인데,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물 속에서 들리는 것 같은 습기찬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을 듣고 U씨는 [업무 중이라 안 됩니다.] 라고 넌센스적인 대답을 건넸다고 한다.


그 순간, 그 여자로부터 대단한 악의 같은 것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며, U씨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터무니 없는 걸 만나고 말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먼저 싸움을 걸어왔는데, 지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주 째려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U씨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서로 한참을 마주보고 있는 사이 갑자기 여자가 감시 카메라를 가리키고 카운터에서 사라져갔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줄 알고 마음을 놓았다며,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U씨는 말했다.


그런데 여자가 가게 출입구를 지나 사무실 입구로 향하기에 당황해서 뒤를 쫓았다고 한다.




U씨가 여자를 따라잡자, 여자는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네가 안 된다면 저 녀석을 데려가겠다. 방해하지 마라.]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어딜 감히 내 아르바이트생을 건드리냐는 생각에 머리에 피가 치솟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머리채를 잡아 가게 밖으로 내던져버렸어. 여자한테 손을 대다니 나란 놈은 한심하기 짝이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처럼 낙심하는 U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신간 잡지 입하가 들어왔기에 나와 U씨는 그대로 업무에 복귀했다.




그렇게 잡지를 받아 진열하고, 조간 신문이 들어오자 점차 가게에 손님들이 오기 시작해서, 그대로 평소처럼 바쁜 아침 업무가 이어졌다.


결국 그 귀신이 무엇이었는지, 어째서 가게에 나타났던 것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 후 나와 U씨는 가끔씩이지만 점장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관계를 넘어 같이 놀러다닐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그 때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는 사이, 나와 U씨는 같이 심령 스폿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한 번 더 보면 비교 검증할 수 있을 거 아냐. 한 번 가지고서는 모자라다고. 데이터는 많을수록 정확하게 검증이 가능한 거라니까.]


그렇게 말한 건 U씨였다.




나도 그 발언에 동의했기에 딴말을 꺼내기는 좀 그랬지만, 그 말을 하면서 삼각김밥 판매실적과 눈싸움을 하고 있던 U씨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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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37th]죽은 딸의 사진

괴담 번역 2015. 1. 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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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원에,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받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친구 2명이 병문안은 온 어느날,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와 친구들의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나마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병상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아이를 가운데에 두고, 두 친구가 좌우에 선 후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이는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


결국 예고되었던 3개월마저 채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조금 슬픔에서 벗어난 어머니는 문득 생전에 마지막으로 찍었던 딸의 사진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진관에 찾아가, 필름 현상을 맡겼다.


하지만 돌려받은 사진에는 마지막으로 찍었던 딸의 사진이 없었다.




당황한 어머니는 사진사에게 물었다.


[우리 딸 사진이 없는데, 어떻게 된건가요?]


그러자 사진사는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니, 그게... 그, 현상이 잘못되서요...]


수상하다는 생각과, 딸의 마지막 사진을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끈질기게 사진사를 추궁했다.


결국 사진사는 마지못해 사진을 꺼내와서는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솔직히 안 보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사진에는 세 명의 여자아이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가운데, 죽은 딸의 모습만이, 마치 미라 같은 형태가 되어 찍혀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어머니는 기절할 듯 놀랐지만, 공양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받아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영능력자에게 공양을 받으며, 사진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물었다.




영능력자는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계속 달라붙어, 결국 대답을 듣고야 말았다.


영능력자는 이렇게 말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따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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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7년 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의 상당 부분을 잊어버렸기에, 약간 남은 기억에 그간 남겨뒀던 메모를 읽으며 최대한 과장 없이 기억을 복원해 봤습니다.


나의 고향은 꽤 시골이었습니다.




기억 나기로는 논과 산에 둘러싸여서, 놀 곳이라 해봐야 오토바이를 타고 1시간은 걸려야 나오는 노래방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런 벽촌에 1991년, 어느 신흥 종교단체의 시설이 건립되었습니다.


건설 예정 단계부터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우리 부모님도 종종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시장과 현지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지역 언론에 호소해가며 투쟁을 이어갔지만, 종교 단체 측에서 '어떤 조건'을 내세우면서 계획은 강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조건에 관해서는 현지에서도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나돌았는데, 아마 인구 감소로 인해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현에 거액을 기부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추측이었습니다.


지자체가 돈에 눈이 멀어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했다는 것이었죠.




종교 시설은 우리가 사는 지역 가장자리에 지어졌습니다만, 그 부지 면적은 도쿄돔 2, 3개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었습니다.


사는 사람도 없이 척박하게 버려진 땅이라 값이 쌌던 거겠죠.


그 시설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쯤 완공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이미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저기 가까이 가지 마라.] 던가, [그 쪽 신자들이랑 말 섞지 마.] 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습니다.


시설이 완성된 후, 나는 반 친구들과 함께 슬쩍 거기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주변은 모두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 양쪽 위에는 마치 한냐 같은 모습의 무서운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친구놈들은 [우와, 저게 뭐야! 악마교가 틀림없어, 악마교!] 라고 신나서 떠들어댔구요.


그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학교에서는 그 종교를 "악마교" 라던가, "한냐 단체" 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가끔 한가할 때면 호기심도 있고, 심심풀이도 할 겸 그 주변을 자전거로 돌아보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럴 때마다 신자가 되었건 시설 관계자가 되었건,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혀 인기척도 없는데다, 딱히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다보니, 건설 단계에는 시위까지 하며 반대했던 마을 사람들도 점차 그 시설에 대해 관심을 잃어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후, 다들 그 시설에 관해 까먹어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느날 같은 반 A가 [야, 저기 담력 시험하러 가 볼까?]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A가 말하길, [우리 부모님이 그러던데, 악마교 건물에 예쁜 여자가 드나든다더라. 매일 가게에 물건 사러 온다던데?] 라는 것이었습니다.




A네 집은 지역에서 그나마 가장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A의 말에 따르면, 그 "악마교" 사람들이 매달 2, 3만엔어치씩 쇼핑을 해 가서 부모님이 무척 신나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아빠 말로는 거기 사람들 착하고 좋은 사람만 있대. 별로 무섭지도 않을 거 같은데 한 번 가볼래?]




나는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도, 딱히 놀 곳도 없는 동네에서 하루하루 지루하게 시간만 때우고 있었으니 그 제안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다들 신이 나서 [그럼 한 번 가보자!] 는 분위기가 되어, 담력 시험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멤버는 나랑 같은 반이던 A, B, C, D 4명과, 후배였던 E와 F까지, 남자만 7명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쯤 되면 몸도 다 크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습니다.


게다가 7명씩이나 있으니 별로 무섭지도 않더라구요.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집합 장소는 시설 근처에 있는 문 닫은 우체국.


내가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A, B, C와 E는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분이 지나도록 D와 F가 오지를 않아, 결국 우리는 5명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시설 근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문 앞으로 갑니다.


[우와, 역시 한밤중에는 무섭네.]


[랜턴 하나 더 갖고 오길 잘했다.]




잡담을 나누며 문 앞에 섭니다.


거대한 문 앞에 서자, 문에서 한참 떨어진 시설 안 건물 한 곳에 불이 켜진 게 보였습니다.


[우와, 신자들은 아직도 안 자나봐.]




[악마 소환하고 있는거 아니냐?]


다들 낄낄거리며 농담을 건네고 있는 와중에, C가 [이거 이래서는 안에 못 들어가잖아.]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A가 [내가 다 알아놨지. 옆으로 돌아가면 작은 문이 있어서 거기로 들어갈 수 있어.] 라고 말합니다.




[그런 건 빨리 좀 말해라.]


우리는 벽을 따라 코너를 돌아 걸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작은 문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A가 손으로 문을 밀자, 안으로 문이 열렸습니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 크기의 문으로, 5명이 차례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 후엔 랜턴을 켰다 껐다하면서 건물 앞 공터를 빙빙 돌았습니다.




[야, 아무 것도 없잖아.]


[건물 가까이 가면 위험할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다가, 아무 것도 없어서 너무 시시한 나머지 시설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부지 안은 정문에서 시설까지 100m 정도, 아무 것도 없는 공터였습니다.


그 앞으로는 큰 건물이 3개 늘어서 있었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괴상야릇한 디자인의 외관이었습니다.




시설 주변을 살금살금 걷고 있자니, 건물과 건물 사이에 불이 켜진 깨끗한 공중 화장실 건물이 보였습니다.


덩그러니 지어진 화장실 주변은 하얗고 깨끗한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고, 벤치까지 놓여 있었습니다.


난데없이 A는 [야, 좀 쉬자.]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뭐? 들키면 위험하잖아.] 라던가 [들키면 위험하니까 빨리 한 바퀴 돌고 가자.] 라고 말합니다.


나 역시 [들키면 경찰 부를지도 몰라. 좀 있으면 졸업인데 괜히 사고치지 말고 빨리 돌아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A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한 대만 피우고 갈까...]


다들 그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자 A가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라고 말하더니 그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B랑 C는 [저새끼 몰래 들어온 주제에 화장실 쓸 생각도 하냐.] 라던가, [똥 싸면 악마한테 저주 받는 거 아냐?] 라며 낄낄대며 담배를 피웁니다.


잠시 뒤, A가 화장실 안에서 [야, 좀 와 봐. 여기 재밌는 거 있어.]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몰래 안으로 들어가보니, A는 [이거 봐. 이게 뭐 같아 보이냐?] 라며 화장실 개인실을 가리켰습니다.




B가 [화장실이잖아.] 라고 대답하자, [문을 열어봐.] 라고 말했습니다.


B는 [뭐야...] 라고 투덜대며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자 어째서인지 안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A는 [이상하지, 이거? 다른 칸은 다 변기인데 여기만 계단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애시당초 A의 언동이 계속 수상했습니다.




갑자기 담력시험을 제안한 것도 그렇고, 옆에 있는 문을 알고 있었던 것, 화장실 문을 일부러 연 것까지...


나는 A에게 [너 설마 여기서 똥 싸려고 그랬냐?] 라고 물었습니다.


A는 [아니, 뭐, 그런거지.] 라며 대충 말을 돌린 후, [밑에 내려가 보지 않을래?] 라며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너 임마, 이상한 소리 하지마. 빨리 가자고. 여기서 꾸물거리면 무조건 들킨다.]


그러자 A는 [하하, 너 무서워서 그러지? 잠깐 내려가 보는 것 뿐인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그러냐?] 라고 놀리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A가 나를 도발하려는 것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래로 어떻게든 끌어들이려구요.


B 역시 [나도 안 갈래. 돌아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왠지 재미있을 거 같은데, 잠깐 내려갔다 올까.] 라며 A에게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A는 [너희들은 용기 있네.] 라면서 계속 나와 B를 도발했지만, B는 [난 안 갈거야. 너희는 마음대로 갔다오든 말든 해라.] 라고 내뱉듯 말했습니다.


A는 [그럼 우선 셋이서 내려가볼게.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계단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나와 B는 화장실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화장실 주변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건물에는 창문도 잔뜩 있었기에 밖에 나갔다가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B는 [야, 오늘 A 좀 이상하지 않냐?]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러게, 오늘 좀 이상해. 왠지 일부러 우리를 여기에 데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B 역시 같은 생각인 듯 했습니다.




그 후 나는 B와 함께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만약에 들키면 어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분 가량 지날 무렵, [얘네 너무 늦는 거 아니야?] 라며 슬슬 나도, B도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B는 [그냥 우리끼리 돌아갈래?] 라고 말을 꺼냈지만, 2개 있던 랜턴을 다 계단 밑으로 간 녀석들이 가져가 버린 터였습니다.




이 어둠 속에서, 그 작은 문을 찾는 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마지못해 계속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벅저벅하고,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나도 B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잔뜩 긴장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소리로, [큰일 났다... 사람이 왔어. 위험한데...] 라고 속삭였습니다.


한순간에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찼습니다.




발소리는 멀리서 들렸기에 어느 방향에서 들리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지금 밖으로 뛰쳐나가면 주변 구조도 모르는 우리는 길을 잃을 위험이 컸습니다.


B는 [큰일이다... 이리로 오고 있어... 어쩌지?] 라며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속으로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이리로 오는 게 아닐 수도 있을거야. 오면 안으로 숨자.]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발소리는 확실히 우리가 있는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B가 갑자기 계단이 아닌, 다른 칸의 문을 밀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칸도, 그 옆칸도 문이 열리지를 않습니다.




B는 [젠장! 문이 닫혀있어!] 라며 작게 소리쳤습니다.


발소리는 대략 15m 부근까지 다가왔습니다.


직감적으로, 나는 그 사람들이 분명히 화장실까지 올 것이라 느꼈습니다.




B 역시 나와 같은 예감을 한 듯 했습니다.


나도, B도, 그 자리에 딱 굳은 채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B는 [...어쩔 수 없네. 내려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진심이냐...?] 라고 반문했습니다.


저 정체 모를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만은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화장실 안에는 숨을 곳도 없고, 뛰쳐나간다 하더라도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은 채 그대로 잡힐 것만 같았습니다.




심야의 종교시설에 숨어들어왔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판단력이 떨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발소리가 화장실 근처에 다가오자, 나와 B는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콘크리트로 된 계단은 의외로 짧아서, 10단 정도 내려가자 바닥이 나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보다 앞에서 걷던 B가 앞을 더듬더니 문을 찾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방이 있었습니다.


천장에는 오렌지색 꼬마전구가 몇 개 달려있어서, 방 전체가 옅은 오렌지빛에 잠겨있었습니다.




나와 B는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습니다.


방 안을 둘러보니 다다미 15장 정도 크기의, 아무 것도 없는 콘크리트 방이었습니다.


다만 방 가운데에 커다란 원형의 물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거대한 철제 훌라후프 같은 게 세로로 매달려 있는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그 훌라후프는 무척 거대해서, 방 양 쪽 벽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A랑 다른 애들은 어디 갔지? 여기 없잖아...] 하고 내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B는 [모르겠어, 모르겠어...] 하고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쫓던 발소리는 예상대로 화장실에 들어온 듯 했습니다.


위쪽에서 발소리가 콘크리트를 타고 들려옵니다.




3, 4명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움직이지 않고,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곧이어 뭐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언가를 논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무슨 말을 중얼대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B는 아래로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나는 뭔가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당시 유행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내용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화장실에서 들리는 중얼중얼대는 목소리는 서너명에서 10명 가량으로 늘어나있었습니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숨어있는 걸 알아차린 게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워서 다리가 벌벌 떨려왔습니다.


중얼중얼중얼중얼하고 들려오는 기분 나쁜 말소리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목소리가 뚝 그치더니, 끼익하고 문이 2개 연속해서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다시금 끼익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가 화장실 칸을 열어보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리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애초에 다른 칸들에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들어있던 건 아닐까.]




B도 그 가능성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는 분명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밖에서 연 게 아니라, 안에서 누군가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와 인내심의 한계였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데는 15초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B의 팔을 꽉 잡았습니다.




발소리가 계단을 중간쯤 내려왔을 무렵, B가 [으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내 손을 뿌리치고 방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B가 그 둥근 고리 안을 향해 점프한 순간, B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 앞에서 B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공포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문과 훌라후프 사이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차라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죄송합니다. 함부로 들어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곧이어 뒤에서 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열린 문 틈에서, 일부러 그러는 듯 얼굴만이 슬쩍 나타납니다.


왕관 같은 걸 쓰고 있는 노인이 얼굴만 내민 채 나를 보고 있습니다.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로.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긴 백발에 왕관을 눌러쓴 주름투성이의 노인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악의에 가득 찬 미소였습니다.




한눈에 나는 '아, 이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코 내가 사과를 해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노인의 그 소름끼치는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는 [흐아아악!] 하고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B처럼 훌라후프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눈을 뜨자,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는 멍해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팔에는 주사바늘이 박혀 있고, 나는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누워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겨우 상반신을 일으키는데만도 3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습니다.


창 밖을 보자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방에는 나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잠시 후 철컥하고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나타났습니다.




간호사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곧 의사 몇 명이 방으로 들어와 내게 말을 건넸지만,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의식이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아까 ○○ 네 가족분들에게 연락을 드렸어. ○○ 너는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었단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괜찮을거야.] 라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놨습니다.


일어난 후에도 시간의 감각은 영 돌아오질 않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어머니인 듯한 사람과 젊은 여자가 울면서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도 아닙니다.


어머니를 자처하는 여자는 [다행이야... 다행이야...] 라며 울면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아이는 나를 보며 [오빠... 잘 돌아왔어...] 라며 쓰러져 울었습니다.


하지만 내게 여동생은 없습니다.


3살 많은 대학생 형은 있지만, 여동생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저는 [누구세요? 누구세요?] 하고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후유증인 것 같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라는 소리를 어머니인 듯한 여자와 여동생인 듯한 여자에게 격려하듯 말했습니다.


어머니인 듯한 사람은 내게 [오늘은 엄마가 계속 같이 있을게.]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의사에게 [나는 ○○이라는 사람도 아니고, 저 분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에요. 나는 여동생도 없다구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음... 기억에 좀 이상이...] 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습니다.




[○○ 너는 2년 가까이 혼수 상태에 빠져있었어. 그러니 아직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조차 없어, 충격마저 느껴지지 않았던 겁니다.




의사는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나를 필사적으로 격려하려 했습니다.


어머니인 듯한 사람은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며, 충격에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화장실에 갈래요.] 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일어나자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무겁게 느껴져 도췌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의사와 간호사, 여동생 같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나는 바로 아까 전 같이 느껴지는 그날 밤 일을 떠올렸습니다.




기묘하게도 정신을 차리고 몇시간 동안 한 번도 그 일에 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화장실 자체가 두렵기도 했지만, 부축해준 의사와 여동생 때문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용변을 본 후, 손을 씻으려던 나는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거기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딴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 나는 심각한 혼란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 후 나는 그대로 한 달 가량 입원해 있었습니다.


나는 부모라고 말하는 이들과, 여동생이라는 여자, 병문안을 온 친구라는 이들에게 [나는 ○○가 아니고, 당신을 모릅니다.] 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A와 B에 관해,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에 관해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모두가 기억 장애라고 받아들일 뿐이었습니다.




A나 B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득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다만 모두들 내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습니다.


의사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나는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 쓰러졌고, 그 후 입원했다는 것 같았습니다.




내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정보는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는 카나가와 현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카나가와라는 현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통화 단위도 엔이 아니었고, 도쿄나 일본이라는 이름도 완전히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의사에게 [그럼 원래 네가 있던 세계에서는 뭐라고 불렀지?]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떠올리려해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A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아 같은 반 친구라고 몇번이고 설명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아이는 없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그 시설에 들어가 훌라후프 안으로 뛰어든 이야기를 의사에게 몇 번 더 필사적으로 설명했지만, [그건 네가 자고 있을 때 꾼 꿈일 뿐이야.] 라며 부정당했습니다.


하지만 무섭게도, 나 자신 역시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고, 이전에 살던 삶과 세계는 다 꿈이었다고 진지하게 믿어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선택지 밖에는 없었으니까요.




퇴원 후 가족과 함께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기억나지 않니?] 라고 부모님은 내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집에, 처음 보는 거리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담을 받아가며 필사적으로 이 새로운 인생에 순응해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게 들려오는 단어와 정보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뉘었습니다.


지명이나 나라 이름은 전부 처음 듣는 것이었고, 역사에 관한 것들도 금시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 쓰이는 단어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적응하지 못해 존댓말을 쓰고, 바지나 속옷 같은 것도 보여지기 싫어 직접 세탁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진짜 가족이라고 마음을 먹자, 이전의 인생이 마치 전생이나 꿈 같은 걸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서서히 이전까지 살아왔던 기억들이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부모님과 형의 얼굴도, 옛 시골거리도 떠올리려면 한참을 생각해야만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밤, 종교시설에서의 기억만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노인의 얼굴을요.


새로운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상담 횟수도 줄어간 끝에 반년만에 나는 고등학교로 돌아갔습니다.


20살에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애매모호한 위치였지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지내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TV도 본 적 없는 방송투성이라 무척 재미있었으니까요.


이전에 살던 곳과는 달리, 카나가와현은 도시였기에 하루하루가 새로운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돌아오고 4달 정도 지나고 나서, 뜻밖의 형태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통점이 나타났습니다.




여름방학이 다가올 즈음, 나는 숙제 때문에 서점에서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들 중에 "○○○○" 이라는 글자가 적힌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종교 관련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라는 그 이름은, 내가 마지막 밤 들어갔던 그 시설을 지은 신흥 종교의 이름과 똑같았습니다.


나는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손에 들고 필사적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은 이 세계에서는 꽤 거대한 종교 단체인 듯 했습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던 무명 신흥 종교 단체였는데...


여기서는 세계적인 종교 단체인 것입니다.




나는 그 종교 관련 책을 몇권씩 사서 읽었지만, 아무 의미 없는 짓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책을 읽는다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내 과거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건 무의식 중에 "○○○○"이 꿈에 나온 것 뿐이야.] 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거기에 기껏 친절하게 대해주는 새 가족과 친구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겨우 고등학교에 복학하고, 사고의 그늘을 떨쳐낸 것처럼 보이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걸고 있는 기대를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과거를 잊고, 못 본 척하기로 결심하고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 때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도쿄에서 일하고 있는 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지, 의아하시겠지요.




지난달, 우리 집에 편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익명으로 쓰여진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갑작스레 편지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당신은 아마 나를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당신을 찾는데 무척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어요.


당신은 ○○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나중에 다시 한 번 편지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약혼자에게도요.


부탁드립니다.




거기 써진 이름을 보고도 내게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과거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편지를 보내온 사람에게, 이상하게 나는 공포도, 기대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남의 일처럼만 생각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난주 두번째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내 이름은 ○○입니다.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여기에는 나와 당신만이 있는 듯 합니다.


이번달 25일, 저녁 7시에 ○○역 앞 ○○로 꼭 와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급히 전할 것이 있습니다.


꼭 혼자 와주시길.




내겐 ○○라는 이름을 봐도, 그것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어쩐지 만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거기에 서 있든,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날 밤의 일을 말하다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지요.


기왕이면 B였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만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렇게라도 모든 사실을 적어 남겨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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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35th]커피를 바치다

괴담 번역 2015. 1. 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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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可愛い奥様:2013/03/15(金) 20:12:16.92 ID:CifVhgtlO


시아버님 성묘 관련해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시아버님은 남편이 20살 때 돌아가셔서,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남편에게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무렵이면 꼭 시아버님이 내 꿈에 나옵니다.


대개 남편이 자고 있으면 머리맡에 시아버님이 앉아 계시며, 앞으로 생길 일에 관해 말씀을 해 주시는 꿈입니다.


꿈을 꾸기 전에는 시아버님 얼굴도 뵌 적이 없지만, 어쩐지 '아 이 분이 우리 시아버님이시구나.' 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곧 성묘를 하러 갈 때가 됐는데, 시아버님이 꿈에 나와서 [올 때 커피를 좀 가져다주시겠소.] 하고 부탁을 해 오셨습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시아버님은 생전에도 커피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다만 블랙커피를 올려야 할지, 설탕이나 크림은 어떻게 할지가 고민됩니다.


시어머님과 남편에게도 물어봤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하네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블랙으로 내린 다음 제삿상에서 설탕이랑 크림을 타야하나...





141 :可愛い奥様:2013/03/15(金) 20:18:44.31 ID:b/kH4YWoO


>>140 


양쪽 모두 괜찮을 거 같은데.


그나저나 일부러 부탁하러 오시다니...





142 :可愛い奥様:2013/03/15(金) 20:54:31.28 ID:fDRfiIg5O


향이 좋은 걸로 올려드리면 될 거야.




143 :可愛い奥様:2013/03/15(金) 21:04:09.60 ID:QthGTqRGT


커피를 좋아하는 고인을 위해 만들어진, 커피 향기가 나는 향도 있을거야.





145 :可愛い奥様:2013/03/15(金) 21:19:19.47 ID:b/kH4YWoO


>>142 


드립커피를 포트에 담아가면 아버님도 기뻐하시겠지.


그나저나 커피를 부탁하기 위해서 직접 찾아오다니...


꽤 시아버지한테 신뢰받고 있는 증거인 거 같네.





146 :140:2013/03/15(金) 21:25:33.31 ID:CifVhgtlO


>>141-143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2종류 다 올리는 방법도 있겠네요. 


시아버님은 생전에 직접 커피콩을 갈아서 마셨다고 합니다.


드립커피를 공양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47 :140:2013/03/15(金) 21:34:39.47 ID:CifVhgtlO


>>145 감사 인사를 빼먹었습니다. 


죄송해요!


말씀하신 것 같이 포트에 넣어간 다음 무덤 앞에서 컵에 따라 올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감사해요.


시어머님이나 남편은 영능력이 별로 없어서 제게만 나타나시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분께 신뢰를 받는다니, 며느리로써 인정 받는 것 같아 기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커피 향기가 나는 향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번에 찾아봐야겠네요.




231 :147:2013/03/18(月) 21:58:02.79 ID:b0NxQIQ7O


전에 커피를 바치는 것에 대해 상담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덕에 무사히 시아버님께 커피를 올려 드릴 수 있었어요. 


드립커피를 포트에 넣어가, 묘 앞에서 블랙이랑 카페오레 두 종류를 만들어 따라 올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어머님이 갑자기 생각나셨는지, 25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있었던 기묘한 일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례와 입관을 마치고, 친척들을 맞아 바삐 시간을 보낸 후 어머님이 지쳐 졸고 계실 무렵, 시아버님 목소리로 [커피도 부탁해!] 라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일어났었다는 겁니다.


그닥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분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셨었다고 합니다.


남편도 지금까지 몰랐었다고 하네요.


크림도 넣어드셨다고 합니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생전에 정말로 커피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 앞으로는 꼭 성묘 때마다 챙겨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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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34th]방송실 괴담

괴담 번역 2015. 1. 1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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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건 무서운 이야기 하나 둘은 전해 내려오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어째서인지 유독 무서운 이야기들이 죄다 방송실에 관련된 것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소문들 중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섞여 있기도 하다.




학교에 다닐 무렵 같은 반 친구가 실제로 방송실에서 이상한 일을 겪은 것을 계기로, 나는 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혹시 말을 꺼낼 기회가 되면 학교 방송실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중 몇을 골라, 모자란 글솜씨로나마 정리를 해 보았다.




좀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전해들은 소문을 먼저 소개하고 그 소문의 진상을 덧붙이는 식으로 기술하려 한다.


이것은 모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한 곳에 떠도는 소문이다.


각 시기에 따라 순서대로 정리했다.




1. 방송 사건


80년대 초의 일이라고 한다.


오전 10시 넘어, 2교시 수업이 한참 진행될 무렵이었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더니, 교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세요. ...집니다. ...주세요. ...집니다.]


성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억양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로봇 같은 목소리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저학년 중에서는 울기 시작한 아이들도 나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달래기 바빴다.


이윽고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A 선생님이 가장 먼저 방송실로 달려갔다.


곧이어 다른 선생님과 직원들도 따라갔지만, 방송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학교에 있던 여자 선생님들은 모두 수업 중이었다.


학교에서는 외부인이 침입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방범을 강화하는 선에서 사건을 정리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가장 먼저 달려갔던 A 선생님은 그 날 이후 몸상태가 좋지 않다며 학교를 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선생님들이 대신 수업을 진행하며, A 선생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결국 A 선생님은 3주 후 퇴직했다고 한다.


그 반 아이들이 편지를 쓰거나 연락을 하려 했지만 그나마도 닿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A 선생님이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마저 퍼져 나갔다.


방송되었던 수수께끼의 메세지는 지직거려 잘 들리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많은 의견은, [보지 말아주세요. 이상해집니다.] 였다고 한다.




2. 유리창 파괴 사건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방송부 B군이 방과후에 1층 방송실 창문에 몸을 내던졌다.


산산조각난 창문과 함께, B군은 그대로 교정에 나뒹굴었다.


창문 유리조각 때문에 B군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한동안 입원해야만 했다.




이건 내가 실제 재학 중이던 때 일어났던 사건이다.


B군은 같은 반 친구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내가 방송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입원해있던 B군에게, 나를 포함해 같은 반 친구 몇 명에 병문안을 가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B군의 말에 따르면, 방과후에 방송실에서 부 활동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방송실에 웬 여자가 나타나더라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은 긴데, 등을 돌리고 방 구석에 서서 움직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B군은 깜짝 놀라 도망치려고 방송실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여자가 이번에는 문 앞에 서서, 마치 문을 막는 것처럼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그 등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저 여자가 자신을 노리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위기감을 느낀 B군은 그만 문 반대편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갔다.


슬쩍 보인 창문에는, 여자의 얼굴 윤곽이 비치고 있었다.


즉, 아까와는 달리 이제 여자가 몸을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B군은 공포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창문을 여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에, 그대로 창문에 몸을 던져 방송실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숨죽인채 B군의 이야기를 듣고는 물었다.


[어떤 얼굴이었어?]


[글쎄, 유리창에 비친 걸 슬쩍 본 것 뿐이라 그건 잘 모르겠어.]


[옷은?]


[낡고 오래된 천을 몇 겹씩 겹쳐 입은 것 같더라.]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학급신문에 실으려 했지만, 선생님한테 혼만 났다.


이후 B군은 폐소공포증을 앓다가, 퇴원한 후 그대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버렸다.




3. 자살 사건


90년대 중반, 당시 교감이던 C 선생님이 밤에 학교에 잠입했다.


그리고는 방송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계단에서, 테이프를 계단 난간에 묶어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서 일하던 경비원이 발견해 큰 소동이 났던 사건이다.




4. 사라진 관상어 사건


두 달에 걸쳐 학교 수조에서 관상어가 한 마리씩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방송실 자료보관소 서랍에서 말라붙은 대량의 관상어 사체가 발견되었다.


사건이 잠잠해진 후 동네 유지분이 새로 관상어를 기증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조카에게 들은 이야기로, 수조 안의 관상어가 하루하루 줄어들더니 거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되니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어,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 학생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갔고, 그 아이를 데려다 물어봤다고 한다.


그 아이는 순순히 자신이 한 일이라고 자백했다.


기묘하게도, 발견된 물고기 사체에는 그 아이가 빼낸 것인지, 아니면 썩어버린 건지 전부 눈이 없었다고 한다.


범인이 학생이었던 탓에 따돌림을 우려해 사건은 비밀에 붙여졌지만, 그 무렵 난데없이 전학을 간 아이가 있었기에 학생들은 다들 그 녀석이 한 짓이라며 수군댔다고 한다.


더욱 기묘한 것은 왜 이런 짓을 했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서는, [그 얼굴을 봐도, 이렇게 하면 살아날 수 있으니까.]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말고도 여러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대개 공통적으로 방송실에 여자가 나오고, 그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우선 그것에 의해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는 선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보려고 한다.




B군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초등학교 시절 내게 트라우마였고, 소문에 상당한 일관성이 보여 그 여자가 실존하는 건 아닌가 두려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B군에게 처음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무렵부터, 그 방송실에 얽힌 사연에 계속 관심이 간다.


최근 들은 소문으로는, 70년대 어느해 졸업 앨범에 그 여자가 찍힌 사진이 있다고 하기에, 근시일 내에 직접 찾아나서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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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33rd]지액

괴담 번역 2015. 1. 1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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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C라는 이름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해, T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무척 밝고 건강한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T는 영감이 강하다 못해, 신비롭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당시 주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대충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누군지 알만큼 당시 지역에서는 유명한 아이였다.




나는 T와 같은 반이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 나름 머리가 굵었다고 그런 이야기는 잘 믿지 않게되는 법이다.


나 뿐 아니라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다 거짓말 취급하자, T는 [그럼 보여줄게.] 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나는 왠지 무서워서 따라가지 않았지만...




다음날 우리 반은 대소동이었다.


전날 T는 집에 가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온 후, 3장의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3장 모두, 누가 봐도 알 정도로 확실하게 귀신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선명히 그 사진들이 떠오른다.


한 장에는 나무 옆에 서서 고개를 푹 수그린 중년 남자가, 다른 한 장에는 얼굴이 흐물흐물해진 갑옷 차림의 사람이,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뭔가 소리치고 있는 듯한 얼굴이 사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리 의심하려 한다해도, 이렇게까지 확실한 물증을 보고서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이 사건으로 T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인이 되었지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꺼림칙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무섭다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는 녀석들도 꽤 있었지만...


하지만 T는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정말로 건강하고 잘 웃는 밝은 아이였다.




솔직히 나도 그 무렵에는 T를 좋아하고 있었다.


T는 마을 변두리의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괴상하게도 그 집 반경 100m에는 다른 집은 한 채도 없었다.




어느날 T와 친하던 남자아이 한 명이 [왜 그런 곳에 사는거야?] 라고 물었다.


T는 [엄마가 여기 안 살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그랬어.] 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T네 엄마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 우리 집은 월셋집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돈을 모은 덕에, 집을 지을 계획이 잡혀 땅을 찾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답게 그저 T네 집 근처에 살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마을 변두리에 공터가 있어!] 라고 슬쩍 말해 T네 집 근처에 집을 짓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 땅에 관해 알아보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T네 집 근처는 죄다 현에서 땅을 사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에 문의해봐도 그 땅은 팔 생각이 없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현에서 보유한 땅에, T네 집 한 채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무렵에는 안 된다는 말에 그저 낙심하고 말 뿐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기묘한 일이다.


이 일을 다음날 T에게 이야기했더니, T는 웃으며 [그거야 그렇겠지. 그러면 안 돼! 그런 곳에 살겠다는 생각 같은 거 하면...] 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게 나중에 그렇게 큰 사건으로 번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을 꺼낸 걸 계기로, T를 좋아하던 남자아이들이 다들 몰려 T네 집에 놀러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T는 평상시와는 다른 냉정한 얼굴로, [위험하니까 절대 안 돼!] 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떻게든 T네 집에 가보고 싶다는 남자아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마음대로 T네 집에 찾아가기로 하고 방과후에 다같이 T네 집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T네 집을 중심으로 크게 철조망이 둘러쳐져 T네 집으로 통하는 길 외에는 모든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몰래 T네 집에 가는 게 목적이었기에, 우리는 길로 가지 않고 철조망을 넘어타고, T네 집 뒤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땅바닥은 흙에 자갈들이 잔뜩 섞인 것 같아,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 난다.




대략 철조망과 T네 집 중간 정도까지 갔을 때, 같이 왔던 남자아이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 끌려가듯, 나를 포함해 다른 아이들도 겁에 질려 도망쳤다.


다들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철조망을 넘어, 학교까지 도망쳤다.




겨우 숨을 고른 후, 가장 먼저 도망쳤던 녀석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 녀석의 말에 따르면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안개 같은 걸 본 건 그 녀석 한 명 뿐이었지만, 그 놈은 우리 중 가장 공부도 잘 하고,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할 녀석도 아니었다.




애시당초 T가 위험하다고, 절대 안 된다고 말했으니 뭔가 위험할 것이라는 인식은 다들 하고 있었고...


다음날, 우리는 학교에서 T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T가 잔뜩 화가 나서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무슨 짓을 한거야!]




처음으로 본, T의 화난 얼굴이었다.


그 후, T의 말에 의해 우리는 수업을 받지 않고 T네 집을 향해 끌려갔다.


철조망에서 대략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춘 후, T는 우리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집으로 향했다.




1시간 반 정도 기다렸을까.


여자 한 명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T네 엄마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정말 미안해. 괜찮을거야.] 라며 왠지 불안해지는 말을 했다.


그대로 우리는 T의 엄마와 함께 T네 집으로 향했다.


집 벽에는 부적 같은 타원형 종이가 잔뜩 붙어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흰 옷을 입은 T가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T네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힘을 다해 T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니!] 하고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T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엄마에게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라고 울면서 사과했다.


[내가 아니라 이 아이들한테 사과해!] 라고 T의 엄마가 말하고, T는 우리들에게 몇번이고 [미안해, 미안해.] 라고 사과했다.


우리는 어린 나이인데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깜짝 놀라있었다.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T가 우리 대신 혼이 나고 코피까지 흘리면서 사과를 하다니...


우리는 그만 참지 못하고, 다들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고 말았다.


T네 엄마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곧이어, 그 자리에 모인 아이들의 집이랑 학교에 전화를 했다.


전원의 어머니와, 형제가 있는 집은 형제자매까지 모두.




1시간 정도 걸려 모든 이들이 모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현청에까지 연락이 닿았었다고 한다.


그 후 1시간 정도가 더 지난 후, T와 같은 옷을 입은 20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가 도착했다.




그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꽤 많이 빼앗겨버렸네요... 서두릅시다.] 라고 말했다.


이미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그저 엉엉 울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엄마도 울고 있었기에, 그 상황이 더욱더 무서웠다.




아마 불제였으리라 싶지만, TV로 봐 왔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여자는 말 한마디 않고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점점 의식이 몽롱해지더니, 귀 안쪽이랄까, 머릿속에서 신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신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간으로는 10분 정도였을까.


T네 엄마는 [우선 이걸로 괜찮겠지만, 어머님들은 남아주세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 오후 수업을 듣게 되었고, T 역시 같이 학교로 왔다.


선생님에게도 연락이 갔었던지, [큰일이었겠구나.] 라며 위로를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다음날부터, T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말을 잃고 어두워졌다.




우리가 아무리 말을 건네도 그저 무시할 뿐이고, 웃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후, 우리는 선생님에게 T가 전학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잘못으로 T가 떠나가버렸다는 생각에 후회로 점철된 나날을 보낼 따름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25년만에 T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에 의해 이전에 T가 살던 집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우리를 보내고 어머니들만 남았을 때, T네 어머니가 25년 후 다시금 찾아와야 한다는 말을 전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려나갔다.


일의 시작은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4월 4일에 꼭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자세한 설명도 없이, 4월 5일까지는 있어야 하니 휴가를 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4월 4일, 일을 마친 후 나는 2시간 반이 걸려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저녁밥을 차려주셨지만, 왜 돌아오라고 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셨다.




4월 5일.


아침 4시 반에 어머니가 나를 깨웠다.


나가야하니 어서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전날 집에 돌아오던 도중, 역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났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역시나 T네 집이었다.


하지만 근처에 이르러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철조망이 쳐져있던 곳에는, 3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콘크리트 담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가시철조망이 쳐져있었다.


마치 감옥 외벽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철조망을 만지면 감전된다는 간판까지 세워져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사건 이후 이 근처로 오는 건 금지되어 있었기에, 나 역시 그 때 이후로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걸어가자, 철로 만든 문이 나오고, 입구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어머니가 이름을 말하자, 신분증을 요구했다.




겨우 본인 확인이 끝나고서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라고 안내를 받았다.


나는 이 안 한가운데에 T네 집이 있으리라는 예상을 했지만,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어릴 적 보았던 자갈 섞인 흙바닥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3명의 여자가, 어릴 적 보았던 기억이 있는 흰 옷을 입고 서 있었다.


[A군이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첫눈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T였다.


나는 어떻게든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T에게 달려가 울면서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 때 그 남자아이들이 죄다 모였다.


다들 생각은 똑같았던지, T를 보자마자 사과를 했다.


무릎까지 꿇은 건 나 뿐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기뻤던 건, T가 옛날처럼 다시 밝은 모습이었던 점이었다.


곧이어 설명이 시작되었다.


나머지 두 여자는 T네 어머니와 25년전 불제를 해줬던 그 여자였다.




T를 포함해 3명 모두 평범한 속세의 이름이 아니라, 무언가 굉장히 긴 계명 같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를 부른 이유는 이 토지의 해방과, 우리들의 수호영혼에게 공양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담으로 둘러싸인 이 땅에는 '지액(地厄, 진야쿠)' 라 불리는 땅에 깃든 악령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박령보다 더 강한 영혼이라고 할까...


그 땅에 발을 들인 이에게 온갖 불행과 저주를 퍼부어, 급사하거나 실종되게 만드는 흉악한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런 지액을 없애기 위해서는, 반년 정도의 시간 동안 지액만 전문으로 담당하는 불제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불제는, 현에서 의뢰를 받아 T네 어머니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액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리고 도중에 희생자가 나오면, 그로부터 또 25년의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사람들도 이런 땅에는 육감적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기 마련이지만, 의식적으로 거기에 들어가려는 마음을 먹은 경우에는 그마저 소용이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경우에는 다들 T를 좋아하고 있었기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도 애써 무시했던 것이리라.


다만 검은 안개 같은 것은 아마 환각이었을 것이라 했다.




지액은 그저 슬쩍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감이나 수호령에 의한 경고와 공포심으로나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 땅은 기복이 심한 삼림지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토지 개발이 시작되며 주택가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공사 도중 인부 2명이 행방불명되면서 흉흉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실제 공사 도중 고분 같은 것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어, 오랫동안 재직했던 공무원이 지액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현에서 이 땅을 사서 불제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이었지만, 25년 전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따로 있었다.


우리는 그간 불제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달랐다.


우리의 수호령이 우리 대신 지액에게 소멸당했던 것이었다.




25년전의 불제는 원래대로라면 지액에 의해 해꼬지 당했어야 할 우리 대신, 수호령을 바치기 위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토지를 지액에게서 해방시키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바닥에 앉아, 다리를 펼치고 묵념한다.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공기가 변한다고 할까, 지액이 소멸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느껴졌다.


곧이어 수호령에 대한 공양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우리도 정좌를 한 채 묵념을 했다.




공양이 끝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수호령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이었다.


새삼 25년간 수호령도 없이 잘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우리는 간만에 신나게 떠들어대며 그간 밀린 추억을 되돌아보았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T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가 T를 좋아한다는 걸 T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교류를 끊었던 것이라 했다.




새삼 그 시절이 떠올라 부끄러우면서도, T가 이전처럼 건강해보인다는 게,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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