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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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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름방학도 일주일 남았겠다, 나는 뒤늦게 고향에 내려왔던 터였습니다.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 A랑 밥이나 한끼 먹으려고 같이 걷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길 건너 저편, A와 나 둘다 잘 아는 친구 B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야아! 둘 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냐!]


나도 진짜 간만에 B를 만난 게 기뻐서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야아! B잖아! 오랜만이다! 너도 같이 밥 먹으러 갈래?]


그리고 B가 있는 길 건너로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A가 나의 어깨를 확 잡았습니다.




[기다려. 저 사람 누군데?]


[어? 무슨 소리야, B잖아.] 라고 말하고 뒤돌아 본 순간.


A가 나를 잡지 않았더라면, 내가 있었을 곳을 자동차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갔습니다.




아까 전까지는 차가 오는 소리도, 낌새도 전혀 없었는데 마치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경적 한 번 울리지 않은채요.


완전히 겁에 질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A가 잡아주지 않았으면 아마 확실히 치였을 겁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까 A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어라... B가 누구지...?]




나에게도, A에게도, B라는 친구는 없습니다.


어째서 나는 아까 그 남자를 우리 둘 다 아는 친구라고 생각한거지...?


소름이 끼쳐 길 건너편을 보자, 그 남자는 아직 거기에 있었습니다.




웃지도, 화내지도 않은채, 무표정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남자는 우리가 갈 때까지 계속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영감을 지닌 A의 말에 따르면, 죽음의 신 비슷한 존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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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9th]할아버지의 고백

괴담 번역 2015. 11. 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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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짧은 이야기 해주는 걸 좋아하셔서, 직접 겪은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상한 이야기를 종종 해주셨다.


그 중 가장 무서웠던 이야기다.


[나는 사람을 죽였어. 전쟁 때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에 말이야.]




비오는 날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노망이 났나 싶었지만, 뭐, 간만에 이야기나 들어보자 싶었다.


[누구를?]




[잘 모르겠지만 작은 여자아이다.]


[언제요?]


[지난주 금요일에.]




[어떻게 죽였는데?]


[늪에 던져버렸어.]


[왜 그랬는데요?]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니, 할아버지...




더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할아버지는 마음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멋대로 몸을 잡아끈단 말이야. 머리든, 팔이든, 다리든.]


손목 부근을 보여준다.




아이 손자국 같은 반점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늪에 던지기 전에는 차도에 냅다 밀쳐버렸어.]


[그건 늪에 던졌던 거랑 같은 아이야?]




[그래.]


이제 슬슬 그만하자 싶을 무렵, 현관문이 덜컹덜컹 울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왔는가.]




아니아니, 그럴리가.


문도 잠겨있고 열리는 소리도 안 들린데다 인기척도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할아버지.


...하지만, 발소리는 나지 않아도 확실히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굵은 새끼줄을 서랍에서 꺼내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뜰로 나갔다.


벽 쪽으로 돌아가더니, 새끼줄로 무언가를 맸다.


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지만, 작은 아이의 목을 끈으로 매면 저런 느낌일까.




잠시 후,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작은 아이는 물론 없었다.


[몸 닦을 걸 가져다다오.]




방에 들어온 할아버지가 젖은 옷을 벗으며 말했다.


팔에는 반점이 있다.


나는 수건을 가져와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팔의 반점이 늘어난 게 아닌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리고 있자, 할아버지의 발목이 보였다.




발목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내게는 진흙이 손자국 모양으로 보였다.


[오늘은 두 명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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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8th]나르, 나슈

괴담 번역 2015. 11. 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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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현재도 진행 중인 이야기입니다.


혹시 읽는 분에게 재액이 옮을지도 모르니, 걱정되는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7, 8년 전, 나는 파워스톤에 푹 빠져 여러 돌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딱히 어떤 대단한 효과를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돌이 예뻐서 모으기 시작한 거였죠.


남자인 주제에 반짝거리는 걸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갓 사회인이 됐던 무렵이라 고가의 보석을 사모으는 건 도저히 무리였고, 그 대신 좀 저렴한 편인 파워스톤에 눈을 돌린 것이었습니다.


한번 모으기 시작하자 거기에 열중하기 되어, 어느새 나는 작은 컬렉션 수준으로 여러 돌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다, 검은 달걀 모양 돌을 발견했습니다.




달걀형의 라브라도라이트로, 세로 길이 10cm 정도의 돌이었습니다.


라브라도라이트는 나도 몇개 가지고 있지만, 상품 소개란에 있는 그 돌의 사진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싶어.




정말 가지고 싶어.


어째서인지 강한 집념에 사로잡혀 가격을 보니, 의외로 즉시구매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았습니다.


거의 헐값 수준의 가격이라, 나는 [이거 꽤 등급 높은 거 같은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같은 돌이라 해도 등급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이 돌은 어떻게 봐도 최상급이었습니다.


출품자의 설명을 보자, 해외 여행 때 산 것이라 적혀있었습니다.




한번 사람 손을 탔으니 이렇게 싸게 파는 건가...


파워스톤의 경우 다른 사람이 썼던 건 절대 안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나는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성격이라, 곧바로 즉시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얼마 후, 그 돌이 도착했습니다.


정성스레 포장되어 있었고, 사진으로 봤던 것과 같이 굉장히 예쁜 라브라도라이트였습니다.


너무 쌌기 때문에 혹시 사진과 다른 싸구려나 벽돌 같은 게 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사진에 나와있던 돌이 틀림없었습니다.




좋은 구매를 했다싶어 기분도 좋고, 출품자한테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인터넷을 켰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출품자의 등록 정보가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그 라브라도라이트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습니다.




그 창백한 빛을 보고 있노라면 뭐라 말할 수 없는 황홀감이 느껴져, 결국 그날은 그 돌을 손에 꼭 쥐고 잤습니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딘가의 어슴푸레한 숲속, 나는 큰 나무에 묶여 있었습니다.




눈앞에는 작은 아이들이 열 명 가량 서 있습니다.


모두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


반나체에 가까운 복장입니다.




마치 어딘가의 원주민인 듯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한결같이, 나를 가리키며 [나르, 나슈.] 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나슈...?




무슨 소리인가 싶어 멍하니 있는데, 내 머리 위에서 스르르륵 하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낌새가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커다란 게, 내가 묶여있는 나무 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확인하려 해도 목이 움직이질 않아 위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눈앞에서는 아이들이 변함없이 [나르, 나슈.]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은 전부 무표정한데다 전혀 생기가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갑자기 두려워진 나는, 겁에 질려 정신없이 몸을 비틀어 도망치려 하다... 잠에서 깼습니다.




숨은 거칠고, 온몸은 땀범벅이었습니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침.




그제야 아까 그게 꿈이라는 걸 알아차린 나는 안도했습니다.


이상한 꿈을 꿨네...


샤워라도 하려고 2층 방에서 1층으로 내려오자, 먼저 일어나 있던 누나와 만났습니다.




[안녕, 누나.]


[안녕... 어, 너 눈이 왜 그래? 그게 뭐야?]


[눈?]




거울을 보자, 오른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사이, 나는 자주 그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묶여있는 나.




[나르, 나슈.] 라고 중얼거리는 아이들.


나무 위에 있는 무언가.


그 때마다 땀범벅이 되어 일어난 후, 꿈이라는 것에 안도하고...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처음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게 되자 나는 이게 그냥 평범한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그 꿈을 꾼 다음날에는, 언제나 오른쪽 눈이 충혈된 상태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꿈을 꾸게 된 건 그 검은 돌을 산 후부터였습니다.


그 돌에 무슨 관계가 있는걸까?


돌을 산 이후, 나는 그 검은 돌을 항상 가지고 다녔습니다.




바라보면 이상한 황홀감에 사로잡혀,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고 싶질 않았습니다.


외출할 때는 주머니에 넣고 나가고, 목욕을 할 때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잘 때도 손에 쥐고 잤죠.




말그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정도네요.


하지만 계속 같은 꿈을 꾼다는 게 왠지 기분 나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거실에 앉아, 테이블 위에 그 돌을 올려두고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마침 그 날은 친척분들이 놀러온 터였는데, 그 중 조카 둘이 내가 바라보는 돌을 알아차린 것인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5살인 S와 7살인 K였습니다.




[삼촌, 뭐 보는거야?]


S가 물었습니다.


[뭐야, 그게! 보여줘, 보여줘!]




K도 보채옵니다.


지금까지 이 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카들이 보여달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다 싶어 나는 아이들에게 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와, 대단해! 예쁘다!]


[...아...]


경탄하며 신을 내는 K와는 달리, S는 왠지 무서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러니?]


[그거, 무서워.]


어째서인지 S는 그 돌을 무서워했습니다.




K는 [뭐야, 그게!] 라며 S를 비웃었지만, 금새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둘이 같이 밖으로 놀러 나갔습니다.


그 후, 밤이 되고 저녁밥까지 먹은 후, 슬슬 친척분들도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등뒤에서 누군가가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K가 서 있었습니다.


[K야?]


무언가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안색이 새하얗고, 눈도 멍합니다.


입가에는 거품이 일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습니다.


[K야, 왜 그래? 괜찮아?]




허리를 굽혀 얼굴을 바라보자, K는 툭하고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나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나는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얼굴을 감싼 채 넘어져 있었습니다.


귓가에는 S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구요.


그걸 우연히 들은 삼촌이 달려왔고, 내 모습을 본 뒤 [무슨 일이냐!?] 라며 크게 당황했습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났지만, 삼촌은 [움직이지 말거라.] 라고 말하며 나를 의자에 앉혔습니다.


나는 오른쪽 눈가에서 피가 흘러,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뭐지?




어떻게 된거지?


금방 전까지 K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삼촌, K는요?]




[K? K는 거기 있잖니. 잠깐만 기다려라. 지금 형수가 수건 가지러 갔어.]


그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K는 내 옆에 서 있었습니다.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형, 왜 그래?] 라고 말하며.




발밑에는 피가 묻은 과도가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래, 방금 전 저걸로, 갑자기 내 얼굴을.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K는 나를 찌르기 전, 확실히 말했습니다.


[나슈.] 라고.


곧바로 나는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다행히 눈알은 무사했습니다.


오른쪽 눈 위, 눈썹 근처에 흉터가 남았지만, 시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었습니다.


K가 나를 찌르는 모습은 아무도 보지 못했기에, 나는 내가 굴렀다가 과도에 눈을 찔렸다고 얼버무렸습니다.




나중에 슬쩍 K에게 물어봤지만, [정신을 차리니 형이 넘어져 있었어.] 라고 대답하며 아예 기억을 못하는 듯 했습니다.


나 역시 K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나슈.] 라고 중얼거렸던 게 기분 나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검은 돌을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게 원인이야.


생각해보면 K도, 나를 찌르기 전에 그 돌을 만졌던 터였습니다.


이 돌은 뭔가 이상해...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돌을 손에서 떼어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버릴 수도 없어, 영감이 있다는 친구 Y에게 상담해 보기로 했습니다.


Y에겐 자신이 겪었다는 심령 체험 등에 관해 몇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언제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반쯤 장난삼아 나온 말이었기에 진짜 영감이 있는지는 반신반의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나는 연락해서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아, 너구나? 오랜만이네.]


Y와 연락을 한 건 몇개월만이었습니다.




나는 잠시 이야기를 늘어놓다, 원래 목적으로 넘어갔습니다.


[야, Y야. 너 영감 같은 게 있다 그랬잖아. 그건 진짜냐?]


[응...? 아, 역시 그 이야기구나.]




아무래도 예감을 했던 것인지, Y의 목소리가 갑자기 기묘해졌습니다.


[너, 내가 파워스톤 모으고 있는 건 알지? 최근에 좀 이상한 게 손에 들어와서 말이야.]


[그걸 좀 봐줬으면 하는거지?]




[응...]


Y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괜찮긴 한데... 너, 지금 주변에 누구 다른 사람 있어? TV 켜고 있거나?]




[아니? 방에 나 혼자 있는데?]


[아... 어떻게 하냐...]


[왜? 뭐 위험한 거야?]




[아냐... 그럼 내가 내일 너희 집에 갈까?]


[응? 아냐, 내가 찾아갈게. 내가 부탁한 건데.]


[그건 됐어. 내가 너희 집에 갈게. 기다리고 있어.]




다음날, 오후가 되자 Y가 집에 찾아왔습니다.


[간만이다.]


[잘 왔어. 어서 들어와.]




그날은 마침 가족이 전부 외출한 터였기에, 평소와 다르게 굳은 얼굴을 한 Y를 거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보여주겠다는 돌이 어느건데?]


[이거야.]




내가 돌을 꺼내자, Y의 안색이 바뀌었습니다.


[......]


[Y?]




Y는 가만히 돌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너, 이런 걸 어디서 난거야... 누구한테 받았어?]


[아니, 인터넷 옥션에서 산 건데...]




[아...]


Y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평상시 밝은 성격인 Y가,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는 모습에 나는 왠지 무서워졌습니다.




[이거 뭔가 위험한거야?]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신체(神体) 같은 게 아닌가 싶은데.]


[신체라고?]




[일본이 아니라 어디 외국 거... 뭐, 제대로 된 장소에 맡기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거 같지도 않고.]


Y는 숨을 가다듬고, 내게 물었다.


[너, 눈 괜찮아? 오른쪽 눈.]




[어...]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 기묘한 꿈을 꾸면 반드시 오른쪽 눈이 충혈하곤 했죠.




[이 돌을 보면 눈이 아파.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이건.]


[......]


[...저기, 괜찮으면 이 돌, 내가 맡아둘까?]




Y가 꺼낸 뜻밖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걸 제대로 맡아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전해줄게. 더 이상 여기 두는 것도 좀 그렇고 말야...]


솔직히 Y의 제안은 무척 고마운 이야기였습니다.




나로서도 공포심이 싹터 어서 이 돌을 치워버리고 싶었거든요.


[나는 고마운데... 괜찮겠어?]


[응. 뭐, 내친걸음에 해버려야지. 분명 그 아이들한테도 그 편이 나을 것 같고.]




[고마워. 덕분에 살았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라니?]


[네 주변에, 아이들이 잔뜩 있어. 어째서인지 모두 너를 가리키고 있다고.]


그 말을 듣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럼, 돌 처리가 끝나면 연락할게.]


그리하여 그 날, Y는 그 돌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나는 겨우 걱정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안심하고 잘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또 꿈을 꾸었습니다.




어슴푸레한 숲속.


큰 나무가 있고, 반나체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습니다.




다른 건, 아이들이 전부 내게 매달려 있고, 눈앞에 보이는 나무에 Y가 묶여 있다는 것.


Y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내게 무언가를 소리치며,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도망치려 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오른눈이 도려내져, 검은 진흙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아이들은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열명이나 되니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르.]




[나슈.]


아이들이 중얼거리자, Y가 묶은 나무 위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였습니다.


평소에는 내가 묶여있었기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위치에서는 보입니다.


큰 뱀.


창백한 비늘의 큰 뱀이, 나무를 타고 Y에게 스르륵 내려와 Y 머리 위에서 크게 입을 벌렸습니다.




Y는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Y의 얼굴은 뱀의 입에 쑥 들어가고, 뱀이 몸을 비틀자 싹둑 Y의 목이 잘려나갔습니다.




나는 그걸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무에 묶여 몸만 남겨진 Y 위에서, 뱀이 내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오른눈이 없는 뱀이.




눈을 뜨자,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숨은 거칠고 심장은 미친 듯 뛰는데다, 온몸은 땀범벅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겁에 질려 울었는지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한동안 침대 위에서 스스로 꽉 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Y가 죽었어.


뱀한테 먹혀버렸어.




하지만 꿈이야, 저건 꿈이라고.


그저 꿈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 겨우 안정을 되찾은 후, 나는 혹시나 싶어 Y에게 연락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여, Y가 먼저 연락을 하는 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Y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걸 알게된 건, 그로부터 나흘 뒤였습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터널 입구 부근에서 반대 차선으로 뛰어들어가 맞은편에서 오던 차와 부딪혔다고 합니다.




내가 사고현장에 갔을 때는 사고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도로변에 흩어져 있는 유리파편과 타이어 자국 뿐.


...어째서 Y는 죽은 걸까.




그 흔적을 보며 나는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나 때문인걸까요.


내가 상담을 했기 때문에, Y는 그 검은 돌에 의해 살해당한걸까요.




그 사고가 나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후회하고 있을 뿐입니다.


도저히 그 꿈이 Y의 사고와 무관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뱀과 아이들은 무엇일까요.




누구에게든 묻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또한, 미안합니다.


K나 Y 일도 있었던데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한 적이 없어서 이걸 읽으면 당신한테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뱀은 꽤 집념이 강한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꿈을 꾸고 있고, 내 오른쪽 눈은 백내장으로 인해 실명했으니까요.


Y의 사고 현장에서 주운 그 검은 돌의 조각은, 지금도 내 손안에 있습니다.




역시, 굉장히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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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7th]홈비디오

괴담 번역 2015. 11. 1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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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오오시마(奄美大島) 어느 해안가에서 비디오 촬영을 했던 적이 있다.


가족여행을 떠난 김에 추억으로 삼으려고, 비디오 카메라를 삼각대로 고정해 놓은 채 계속 찍었던 영상이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세워놓고, 신나게 바다에서 놀았다.




아마미에 사는 삼촌과 사촌동생들도 함께였다.


열심히 놀고 잔뜩 지쳐, 우리는 삼촌네 집에 가 비디오를 틀어보았다.


처음부터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영상이 찍혀있었다.




영상 한가운데 정도였던가.


벌거벗은 여자가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길었는데, 얼굴은 분명히 표정까지 보일 정도였다.




희미한데 표정은 확실히 보인다니 뭔가 이상하지만, 진짜로 그랬다.


심령영상 같은 데 종종 나오는, 뭔가 째려보거나 억울해하는 표정도 아니고 웃고 있었다.


그것도 즐거운 듯.




뭐가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다들 뭔가에 씌인 것처럼 TV를 바라보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그 여자가 서서히 카메라에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다들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지만 순간, 나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 여자 앞을 사촌동생이 지나쳤다.


그런데도 여자는 비디오에 찍힌 영상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보통 누군가가 앞을 지나가면 잠시라도 가려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순간 한 번 없이, 여자는 계속 영상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적어도 나와 삼촌은 깨닫고 말았다.


저 여자는, 비디오에 찍힌 게 아니라 화면에 비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즉, 저 여자는 지금 우리 등 뒤에...


삼촌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말았던 것 같다.


삼촌이 비명을 지르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TV 옆에 거실로 이어진 문이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됐으니까.


밖은 이미 어두워진 후였지만, 다들 황급히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다들 얼굴이 새파랬지만, 그 중 삼촌의 안색이 제일 나빴다.


아버지는 삼촌한테 [무슨 일이었던거야?] 라고 물었지만, 삼촌은 그저 덜덜 떨며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결국 삼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와서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 후 다시 그 비디오를 틀어봤지만, 여자의 모습은 없었다.


역시 우리 뒤에 있었던걸까.




삼촌의 그 두려워하는 모습은, 여자를 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삼촌은 원래 영감이 있어서, 심령체험은 몇번이고 했던 담력있는 분이었다.


그런 삼촌이 그렇게까지 두려워했던 이유도 이제는 알 수 없다.




삼촌은 그 일이 있고 나흘 뒤, 목욕탕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문은 어떻게 여자가 TV 화면에 비쳤는지이다.


우리는 모두 TV 앞에 앉아있었다.




즉, 여자의 모습은 우리한테 막혀 TV 화면에 비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4년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실화다.


나는 아직도 그 여자의 즐거운 듯 웃는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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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6th]표적이 된 가족

괴담 번역 2015. 11. 1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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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도 아직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내가 겪은 일입니다.


고향은 호쿠리쿠 쪽이지만, 내가 철이 들기 전부터 우리 가족은 각지를 전전했습니다.


무슨 빚쟁이한테 쫓기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부모님은 야반도주 하듯 이사를 거듭했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이라곤 이사를 가면 바로 제령사나 영능력자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고, 그 때마다 쫓겨났던 것뿐입니다.


그렇게 잦은 이사가 멈추게 된 건, 내가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됨과 동시에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병이었습니다.




아버지도 [더 이상 이사를 하는 건 무리겠구나. 하지만 어머니만 놈들한테 넘겨줄 수는 없어.] 라고 말했습니다.


어릴 적 몇번이고 이사의 이유를 물었었지만,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부모님은 아무 말이 없어지곤 했습니다.


계속 물어보면 평상시엔 상냥하던 어머니가 미친 듯 고함을 질렀기에,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죠.




하지만 어머니가 쓰러진 후, 나는 이유를 굳이 듣지 않고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곳에 머물게 되고, 반년 가량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 생각했지만, 어디에선가 무거운 쇠장식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끼기긱, 끼기긱하고.


그것도 수많은 소리가요.


소리가 나날이 가까워진다는 걸 알아차린 나는, 아버지에게 상담했습니다.




완전히 여위어버린 아버지는 [그런가... 너 혼자서라도 도망치거라.]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곳에 머문 적이 없던터라 어디 얻어살 곳도 없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니는 발작적으로 날뛰는 일이 잦아져 일반 정신병원 병동에서 중증 정신병 환자를 수감하는 특수병실로 옮겨진 터였습니다.




아버지 역시 눈에 띄게 야위었고, 언제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눈을 희번덕거리며 있는 때가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평소보다도 더 많이, 그 쇠장식 끄는 소리가 들렸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A야! 도망쳐라!] 라고 외치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집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어서 멍하니 서있는데, 집안에서 그 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왔습니다


마치 집안 가득 빽빽하게 갑옷을 입은 무사들이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피비린내마저 감돌았습니다.


절박했던 아버지의 도망치라는 말과, 그 소리가 너무나 무서워 나는 도망쳤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전철을 타고 옆 동네까지 온 후였습니다.




잠옷바람에 샌들 하나 신은 채였습니다.


어떻게 할지 발만 동동 구르다, 너무 추워 불이 켜진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지갑도 못 가져 나왔으니 들어가서 있기만 할 뿐이었지만요.




해가 떠오를 무렵, 이상하다 싶었는지 점원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아무 대답도 못하는 나를 보고, 점원분은 상냥하게 이야기하며 따뜻한 음료를 대접해주셨습니다.


무척이나 상냥하게, 금방 일이 끝날테니 같이 경찰서에 가보자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거절했습니다.




경찰에 가도 아무 의미 없을테니까요.


그 때, 또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망치려던 내 팔을, 그 점원이 잡았습니다.




놀라서 바라보자, 점원분도 똑같이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사람 역시 내가 듣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기에, 놀람과 동시에 나는 약간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간략히 이야기만 하고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점원분은 친구 중에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며 나를 설득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게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당시 나는 따뜻한 음료에 같은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원을 믿은 게, 내게는 무엇보다도 다행이었습니다.


그가 소개해 준 건 그보다 조금 젊은 듯한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무척 침착하게,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지금까지 힘들었죠?] 라고 말을 걸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울면서 지금껏 있었던 일을 털어놓자,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점원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금, 물, 달이라는 단어가 들렸던 것 같습니다.


점원은 소년의 말을 마지못해 따르면서도,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는 것인지 밝은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어느새 소년의 처치는 끝나 있었습니다.




울면서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 무엇을 했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나기 직전, 대량의 피비린내와 무서울 정도로 많은 갑옷 소리가 들린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의식이 끝나자마자 나는 집에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질 않았습니다.




점원은 아르바이트가 끝났다며, 학교도 쉬고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집안에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저 옛날 사람들이 신을법한 짚신 자국이 집안에 가득해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덜덜 떠는 나를 지탱해주며, 점원분은 집안을 찾아봤지만 아버지는 역시 없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피비린내도 감돌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그 소리도, 피비린내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발작은 멈춰 가까운 시일 내에 일반 병동으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잘 회복되면 오오미소카 즈음에는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퇴원을 하면, 같이 점원분과 소년에게 인사를 하러 갈 생각입니다.




지금도 그 소리와 피비린내의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좀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물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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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전국.


아직 천하는 그 끝을 모를 때였다.


카나가와 산중에는 숯구이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도 없지만, 겨울만 되면 일시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숯을 굽는 것이다.


산기슭 마을에서는 내려오지도 않는, 괴짜들만 모여 사는 곳이었다.


어느날 그 작은 마을에 아가씨 한 명이 도망쳐 왔다.




산 셋 너머 있는 작은 마을에서 왔다며,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혼자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새하얀 옷에 맨발, 머리는 산발이라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았을 정도의 몰골이었다.


손발이 얼음장 같이 차고 눈이 풀려 있었기에, 숯구이들은 황급히 여자를 오두막 안으로 옮겼다.




[다른 마을사람들은?]


숯구이들은 여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여자는 벌벌 떨기만 할 뿐 요령부득이었다.


얼마 후 겨우 안정을 찾은 아가씨가 간신히 털어놓은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가씨가 살던 마을에 [영주를 저주하기 위해 산제물을 바치고 있다.] 는 소문이 흘러들어온 건, 이번달 들어서였다.


이미 몇몇 마을은 습격당해 전멸당했다던가.


의심스러운 이야기라 아무도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을에는 불온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닷새 전, 아가씨네 마을에 기묘한 가면을 쓴 일행이 나타났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액막이 의식을 하라는 영주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라 했다.


영주의 편지를 가져온 일행의 대장 같은 사람은, 촌장에게도 경계를 풀기 위해서인지 무언가를 건넸다.




무얼 건네줬는지는 아가씨도 보지 못했지만, 그 때를 기점으로 촌장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마을에는 [돈이라도 받았나보지?] 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날 밤, 마을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꿈을 꾸었고 마을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형용할 수 없는 질척질척한 무언가가 마을을 삼키는 꿈이었다.


그것이 마을사람들까지, 하나도 남김 없이 먹어치우는 꿈.


그런 꿈을 꾼 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마을사람 거의 대부분이 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건 분명 가면을 쓴 사람들이 하고 있는 기묘한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 여겨, 촌장은 마을 바깥쪽에 머무르고 있던 가면 쓴 사람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이변은 시작된 것이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촌장과 몇몇 젊은이가, 갑자기 마을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무언가를 소리내 "먹고 있다".


곧이어 관솔불에 비친 것은, 굴러들어온 촌장의 목이었다.




어안이벙벙하던 마을사람들은 곧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후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아가씨는 말했다.


산속으로 도망친 아가씨는 등 뒤, 마을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절규에서 귀를 막고, 산 속을 이리저리 헤맸다고 한다.




눈을 먹고 늪의 물을 마시며, 기어이 숯구이 마을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아무리 보아도 아가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산길이 눈에 파묻히기 전에, 산기슭 마을에 전해야만 한다.


숯구이들은 아가씨를 짊어매고 산을 내려왔다.


촌장은 괴짜지만 성실한 숯구이들의 말을 믿어주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오면 마을에 들여보내서는 안 됩니다. 영주님한테 보고도 하시고요.]


숯구이들은 신신당부한 후, 아가씨를 맡기고 마을로 돌아갔다.


적어도 이상한 의식을 치루지 않는다면 마을은 괜찮을 것이라 믿으며...




다음날, 겨우 자기네 마을로 돌아온 숯구이들은 경악했다.


가면을 쓴 수상한 자들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도망치려 해도 지친 그들에게는 그럴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잡혀 바라만 볼 뿐.


[마을은 구했어. 너희들한테 속을까 보냐!]


숯구이 중 가장 나이 많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제꼈다.




그 순간, 이상한 자들의 대장인 듯한 사람의 안색이 바뀌었다.


[네놈들... 누구를 마을에 데려다 준거냐!]


숯구이는 그 박력에 놀랐지만, 허세를 부리며 대답했다.




[네놈들이 덮친 마을에서 도망친 아가씨를 데려다줬다!]


[이 어리석은 놈!]


이상한 자들의 대장은 숯구이의 말을 막고, 노성을 내질렀다.




[네놈들이 "이끌어다 준 것"은 사람의 탈을 쓴 귀신이다!]


숯구이들은 어안이벙벙했다.


그 사랑스런 아가씨가 귀신이라니, 믿을 수가 있겠는가.




[거짓말 마! 네놈들의 말을 믿을까보냐!]


[...네놈들... 이런 겨울산에서 평범한 아가씨가 어찌 혼자 살아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 말을 듣자 숯구이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는 당연히 이미 죽은 몸이었다. 눈은 보았느냐? 몸은? 생기가 있더냐?]


숯구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듣고보니 이상한 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자들의 대장은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몰살당한 마을에서 개중 깨끗한 시체가 있으면, 안에 들어가 몸을 조종해 다음 마을을 덮치는 것이다. 마을 중에는 악령을 막으려 부적을 붙인 곳이 많아, 인간의 모습을 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너희들처럼 마을 안으로 "이끌어 줄" 다른 인간이 필요한게지.]


그 이야기를 듣고, 숯구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 누구 하나 말이 없다.


황급히 산기슭 마을로 향하려는 숯구이들을, 가면을 쓴 남자가 말린다.


[...이미 늦었을게다. 이틀도 더 지났으니... 이번에도 막지 못했단 말인가...!]




애석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숯구이들에게 이 땅을 멀리 하라고 말한 뒤 아무 말 없이 마을로 향했다.


다시 귀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숯구이들은 단지 멍하니 내내 거기 서 있을 뿐이었다.


이 마을에 관한 기록은 향토자료관 지하서고에 잠들어 있는 "붓코쿠산손기(仏黒山村 記)에 남아있을 뿐이다.


[마을 거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 남김없이, 홀연히 사라진 후였다. 개도, 고양이도, 소도, 말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 들러붙은 핏자국만이 여기서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싸운 흔적은 없다. 허나 고여서 딱딱히 굳은 피를 보아 알 수 있듯, 분명히 살해당한 흔적은 남아 있었다. 시체도 없이, 단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당시 이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에게 전해진 보고에 적힌 것은 이것 뿐이다.


아마 도적에게 살해당해, 살아남은 사람은 끌고가고 시체까지 끌고 간 것이라 여겨진다.


전국시대에 산속 작은 마을이 사라지는 일 자체는 그리 드문 게 아니었다.




허나 제대로 된 진상이 밝혀질 일 또한 없었다.


숯구이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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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4th]꼬리

괴담 번역 2015. 11. 1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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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체험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타이쇼 시대 이야기라니, 꽤 옛 이야기지요.


증조할아버지는 사냥이 취미라, 틈만 나면 사냥을 나서곤 했다고 합니다.




멧돼지나 산토끼, 꿩에 이르기까지 온갖 동물들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엽총 솜씨도 빼어났기에, 같은 사냥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인이었다고 합니다.


산이라는 곳은 때때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하는 곳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증조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또 할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죠.


이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이야기입니다.




화창하게 개인 5월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엽총을 메고, 평소처럼 혼자 산에 올랐다고 합니다.


곁에는 애견 타케루가 함께였습니다.




오랜 사냥 경력을 지닌 증조할아버지는 그렇게 혼자 사냥을 나설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산에는 증조할아버지가 직접 세운 오두막도 있어, 잡은 사냥감을 거기서 요리해 술안주 삼는 게 가장 큰 낙이었다고 하시네요.


그 날은 이른 아침부터 사냥을 시작했지만, 사냥감이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날은 어느새 저물어, 산속은 어슴푸레해지고 있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한 시간만 더 찾아보는 생각에 사냥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나서였습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오늘 사냥은 공쳤다고 거의 포기할 무렵, 갑자기 눈앞에 큼직한 멧돼지가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새끼를 데리고요.


증조할아버지는 조용히 총을 겨눠 목덜미를 쏘려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눈치챘는지 멧돼지는 방향을 휙 바꿔 산길을 뛰어 올라갔습니다.




아뿔싸 싶어 곧바로 한 발 쐈지만 아무래도 빗나간 모양입니다.


옆에 있던 타케루가 재빨리 멧돼지를 쫓아갑니다.


증조할아버지도 열심히 험한 산길을 달려 올라갔습니다.




15분 정도 그렇게 따라갔을까요.


결국 증조할아버지는 멧돼지 모자를 놓치고 말았답니다.


타케루도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타케루가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의지해, 증조할아버지는 산길을 질주했습니다.


그렇게 10여분을 달려가니, 거기 타케루가 있었습니다.


깊은 수풀을 향해 격렬히 짖고 있었습니다.




양쪽에 거대한 소나무가 우뚝 솟아 있어, 마치 무슨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곳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냥꾼들은 물론이고, 그 지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암묵적 터부였습니다.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곳."


증조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몇번이고 부모님의 당부를 들었었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산신님이 계신단다. 멍청하게 들어갔다간 그대로 잡아먹힐거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냥감이 쏠쏠하게 잡힌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다만 규칙을 깨고 침입한 사냥꾼은 행방불명당한다는 전설도 함께였지요.


타케루는 계속 그 수풀 안을 향해 짖고 있습니다.




그 멧돼지 모자가 이 근처에 있는 건 틀림 없을 터였습니다.


결국 증조할아버지는 유혹에 져, 금단의 땅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시간은 오후 5시를 지날 무렵이라 아직 어떻게든 맨눈으로 주변 식별은 가능했지만, 사냥을 하기에는 위험한 수준이었습니다.




타케루도 아까 전부터 짖는 걸 멈췄습니다.


이제 그만둬야 하나 증조할아버지가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타케루가 사납게 짖더니 달려나갔습니다.


증조할아버지도 그걸 쫓아 50m 가량 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기서, 타케루가 낑낑대며 납죽 엎드리더니, 위협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찾아냈다고 생각한 증조할아버지는 앞을 봤습니다.


열린 광장 같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검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뜯어먹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심한 짐승 냄새가 주변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한 무릎을 꿇고 엽총을 곁에 두었습니다.




멧돼지가 아닌데.


증조할아버지는 그렇게 판단했다고 합니다.


멧돼지치고는 몸이 너무 가는데다, 털도 그닥 나 있질 않았습니다.




늑대인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산에 늑대가 산다니,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땅에 놓여진, 아까 증조할아버지가 쫓던 새끼 멧돼지를 먹고 있었습니다.


사냥감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화가 나, 증조할아버지는 엽총을 들고 그 놈을 쏘아버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방아쇠에 건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온몸이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어금니만은, 공포에 질려 덜덜 떨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그것"은 식사를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고 합니다.




어떻게 봐도 그건 사람 얼굴이었습니다.


그것도 2,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


키는 고작 150cm 정도로, 표범 같은 몸에 얇게 털이 나 있었습니다.




[괴물이다...]


증조할아버지의 공포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것"은 멧돼지 피로 질척한 입을 혀로 핥으며, 증조할아버지에게 다가왔습니다.




잡아먹힐거다.


증조할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타케루가 "그것"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타케루는 "그것"의 오른쪽 앞발을 꽉 물고, 목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것"은 갓난아이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왼발로 타케루의 코끝을 세게 긁고 있었습니다.


잠시 아연실색에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증조할아버지였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니 몸이 움직이더랍니다.


곧바로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하지만 불발이었습니다.


[이럴수가...]


증조할아버지는 엽총 손질을 매일 빼놓지 않고 할 뿐더러, 그날 역시 사냥 나서기 전에 총을 점검했던 터였습니다.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번에도 불발이었습니다.


장전 때문에 증조할아버지가 땀빼는 사이, "그것"은 타케루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타케루가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차고 있던 칼로 그 놈의 등을 후려쳤습니다.


[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마치 고양이가 우는 것처럼, "그것"은 울어제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타케루의 목덜미를 물어댑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다시 칼을 휘둘러, "그것"의 꼬리를 잘라냈다고 합니다.




꼬리가 잘린 "그것"은 [아루루루루루루루루루!]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더욱 깊은 수풀 안으로 사라져 갔다고 합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한동안 그저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괴로운 듯 내쉬는 타케루의 숨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타케루의 목덜미에는 사람 잇자국을 빼닮은 이빨자국이 잔뜩 찍혀 있었습니다.


피가 나기는 해도 그리 상처가 깊지는 않았기에, 증조할아버지는 소독약으로 소독을 하고 옷을 찢어 타케루의 상처를 감싸주었습니다.


다행히 증조할아버지도 타케루도 걸을 힘은 남아 있었습니다.




우물쭈물대다가는 또 그 놈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증조할아버지는 타케루를 데리고 서둘러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이윽고, 증조할아버지가 지은 오두막이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마을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입니다.




안도한 증조할아버지는 한층 더 걸음을 바삐해 마을로 향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 15분 정도 지나서였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산은 증조할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놀러다닌 곳이기에, 눈 감고서도 찾아다니는 곳이었습니다.


길을 잃을리가 없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증조할아버지는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5분 가량 더 지난 후, 눈 앞에는 아까 그 오두막이 있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증조할아버지는 혼란한 와중에도, 혹시 아까 그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아 길을 헤맸나 싶어 다시 평소 내려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증조할아버지는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결국 오두막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타케루도 지친지 숨이 가쁘고, 목에 감아준 헝겊은 이미 피로 붉게 젖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 느낀 증조할아버지는,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오두막 안에 들어서자 시간은 이미 밤 8시를 넘은 후였습니다.


갑자기 안도감과 피로감, 공복감이 한번에 몰아쳐 증조할아버지는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까 만난 괴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건 산신님이었던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몸이 벌벌 떨려, 증조할아버지는 오두막에 뒀던 소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비상식량을 챙겨둔 멧돼지 육포도 꺼냈지만, 영 목으로 넘어가질 않습니다.


타케루한테 던져주지 잘 주워먹습니다.


오늘은 도저히 못 자겠다.




그렇게 생각한 증조할아버지는, 엽총을 곁에 두고 밤을 새우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끽끽, 끽끽.]


무언가를 세게 긁는듯한 소리에, 증조할아버지는 잠에서 깼습니다.




피곤하기도 했고 술도 들어갔던 탓에, 어느새인가 잠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1시가 넘은 때였습니다.


[끽끽, 끽끽.]




그 소리는 오두막 지붕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타케루도 눈을 떴는지, 낮게 그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무의식 중에 엽총을 손에 쥐었습니다.




설마, 그 녀석이 다시 온 건가...


하지만 차마 밖에 나가 확인할 용기도 없고, 그저 엽총을 꽉 쥔 채 오두막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여분간, 천장을 손톱으로 세게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나 이윽고 그것도 그칩니다.


증조할아버지에게는 영원히 이어지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소리는 그쳤지만, 증조할아버지는 천장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리...리...]


증조할아버지는 공포에 떨면서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갑자기 타케루가 굉장한 기세로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오두막 지붕 위를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무거운 게 지면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타케루는 이제 오두막 입구를 향해 짖기 시작했습니다.




[끽끽, 끽끽.]


아까 지붕 위에 있던 무언가가, 이제 땅으로 내려와 오두막 입구를 세게 긁고 있는 듯 했습니다.


타케루는 꼬리를 둥글게 말고 뒷걸음질치면서도, 용감히 계속 짖고 있습니다.




[누, 누구냐!]


무심코 증조할아버지는 소리쳤습니다.


엽총은 문을 향해 겨눕니다.




그러자 세게 긁는 소리는 멎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 저편에서, 분명히 아이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꼬리, 꼬리.]




그 놈이구나!


증조할아버지는 공포에 질렀습니다.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정신을 잡고, [무슨 일이냐!] 라고 외쳤습니다.




타케루는 아직도 계속 짖고 있습니다.


[꼬리, 꼬리. 내 꼬리를 돌려다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말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대꾸하지 않고 문을 향해 산탄을 한 방 날렸습니다.


[끼야악!]


기묘한 비명이 문 저편에서 들려오고, 증조할아버지는 곧이어 2발, 3발 총탄을 날렸습니다.




산탄 때문에 문에 뚫린 구멍 너머,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보였습니다.


[꼬리, 꼬리. 내 꼬리를 돌려다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그것"은 말했습니다.




[꼬리 따위 모른다! 돌아가!]


증조할아버지는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꼬리, 꼬리. 내 꼬리를 돌려다오.]




"그것"은 망가진 카세트 테이프처럼, 단지 그 말만을 반복했습니다.


[모, 모른다! 저리 가, 가라고!]


[꼬리, 꼬리. 내 꼬리를 돌려다오.]




다시 손톱으로 문을 세게 긁으며, "그것"은 문에 뚫린 구멍으로 증조할아버지를 보며 반복해 말했습니다.


광분한 새빨간 눈을 한 채요.


타케루도 겁에 질렸는지 짖지도 못하고 꼬리를 만 채 움츠러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모른다! 네놈 꼬리 따위 모른다고! 저리 사라지거라!]


증조할아버지는 움직이지도 못한 와중에 그저 절규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은 [아니, 네놈이 잘랐다!] 라고 외치며 문을 찢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 증조할아버지의 기억은 아주 단편적이라고 합니다.


문을 찢고 나타난 아이 얼굴의 괴물.


분노가 가득찬 붉게 충혈된 눈.




날카로운 그 놈의 발톱.


얼굴에 느껴지던 타는 듯한 아픔.


"그것"을 향해 달려들던 타케루.




무아지경에 빠져 산탄총을 난사하던 자신.


증조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을 병원 침대 위였습니다.


사흘간 혼수상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짐승 발톱 같은 걸로 왼뺨이 찢어져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부러진데다 온몸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고 합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저 [곰에게 습격당했어.] 라고만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어쩐지 증조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차린 듯 했고, 점차 증조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증조할아버지는 도쿄로 이주했고, 거기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증조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할아버지에게만 몰래 알려준 이야기라고 합니다.


와카야마현 어느 깊은 산 속에서 있었던 일이라면서요.




덧붙여 타케루는 마치 증조할아버지를 지키는 듯한 모양새로 증조할아버지 위에 누워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살과 뼈는 온전히 남아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내장만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진 채였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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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3rd]오오, Y냐

괴담 번역 2015. 11. 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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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Y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Y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Y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가 업어 키우다시피해서, 장례식 때는 나잇값도 못하고 콧물까지 질질 흘리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확히 이레째 되던 날이었다.


그 날은 Y가 사는 지역에 폭풍경보가 내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다 떨어져서 버스비도 없었던 Y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와야만 했다.




도중 몇번이고 날아갈 뻔 하며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저녁 7시 반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연다.


그러자 Y의 귀가를 기다려 준 것처럼, 딱 좋은 타이밍에 현관에서 바로 정면에 있는 Y의 방문이 열렸다.




방안에는 불도, TV도 켜져있었다.


게다가 유일한 난방기구 할로겐 히터까지 스위치가 켜져 있었다.


"하하, 이건 엄마가 집에 오면 따뜻하게 있으라고 준비해 주신 거구나."




Y는 기뻐져서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라면 돌아올 대답이 오늘은 없다.


이상하다 싶어 아까 벗은 신발을 돌아보니, 현관에는 금방 벗은 자기 신발만 나뒹굴고 있고 어머니는 커녕 아버지나 누나 신발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다른 가족들은 모두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집에 늦게까지 안 돌아올 터였다.


순간 Y의 머릿속에 옛날 영화에서 본, 깜깜한 방안에 서 있는 긴 머리 여자 유령이 떠올랐다.


설마하는 생각이었지만, 유령이나 괴물이 아니라 도둑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Y는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주의하며, 방 입구로 다가가 살며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방안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등을 보이며 앉아 있었다.


그게 할아버지라는 걸 알아차리자 Y의 공포심은 단번에 사그라들었다.




옛날부터 공포영화 하나 혼자서는 못 보는 겁쟁이 Y였지만, 설령 진짜 귀신이더라도 할아버지가 찾아와줬다면 반가울 따름이었다.


Y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만나러 일부러 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무심코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생전 버릇이었던 특징 있는 기침을 2, 3번 하고, 어색한 동작으로 머리 없는 후두부를 긁었다.




[할아버지.]


Y가 부르자, 할아버지는 느릿하게 일어나 뒤돌았다.


기분 탓일까.




뒤돌아 선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윤곽선이 어쩐지 비뚤어진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잉크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붉었다.


[오... 오오, Y, Y인가.]




할아버지가 Y의 이름을 부른다.


듣고 싶었던 그리운 할아버지 목소리다.


하지만 억양이 이상하다.




너무 평탄하다.


생전 할아버지는 강한 지방 사투리를 썼다.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PC로 만든 인조음성 같았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이리로 한걸음씩 다가온다.


[할아버지, 왜 그래.]


너무나 모습이 이상한 할아버지에게 묻자, 할아버지는 다시 아까 전처럼 기침을 하고 머리를 긁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온거야?]


Y가 그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는 듯 천장 근처를 보았다.


[오... 오오, Y, Y냐.]




아까와 완전히 같은 말을, 아까와 완전히 같은 발음으로 반복했다.


그걸 보고 Y는 조금 두려워졌다.


이건 할아버지가 아닌 거 같아...




할아버지는 아직 천장을 보고 있다.


손가락 끝에서 방울져 떨어진 빨간 액체가, 방 카페트 위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팔꿈치 바깥쪽으로 팔이 굽어져 있다.




무엇보다 어깨부터 팔꿈치 사이 거리가 굉장히 길었다.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 모습은 결코 이런 게 아니었다.


이건 혹시 할아버지 흉내를 내고 있는 다른 무언가가 아닐까?




Y는 조금씩 조금씩,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슬슬 뒷걸음질쳤다.


그걸 깨달았는지, 할아버지 행세를 한 그 녀석은 목만 이상하게 길게 늘여 Y를 보았다.


Y는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눈 앞에 그 녀석의 얼굴이 있었다.


어깨부터 위쪽 부분만이 부자연스럽게 늘어나 있었다.


쭉 늘어난 목이 마치 고무 같다.




눈앞에서 그 녀석의 입이 열리고 부글부글 빨간 거품이 일었다.


[오... 오오, Y, Y냐.]


Y는 절규했다.




Y는 그대로 정신없이 집을 뛰쳐나가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갔다.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웠다.


9시를 지나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차마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Y는 가족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결국 Y는 그날 밤, 그 붉은 할아버지가 나왔던 자기 방에서 자게 되었다.


Y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붉은 얼굴이 보일 것만 같아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자, 공포와 긴장을 졸음이 억눌러 Y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에 빠졌다고 한다.


새벽녘이 되어 깨어났는데, 어쩐지 얼굴이 간지럽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자, 얼굴이 시뻘건 액체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날부터 Y는 자기 방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번에 또 그 녀석이 나온다면 이젠 도망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면서.




Y는 요새도 말한다.


[그건 절대 할아버지가 아니었어...]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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