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2015/11

320x100




내가 아직 아버지의 고환 속에서 3억명의 형제자매와 살고 있던 무렵 얘기다.


아버지는 친구 둘과 가을산행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연휴였던데다 날씨도 좋고, 한가하게 노래나 슬슬 부르며 순조로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다.




하지만 낮이 지나갈 무렵, 갑자기 날이 흐려졌다.


아가씨의 마음과 산 날씨는 모른다는 말처럼, 순식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뭐, 자칭 베테랑이라는 아버지와 동료들은 날이 흐릴 무렵부터 자켓을 꺼내 입어 별 문제는 없었다고 하지만.




그대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고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숙박할 예정인 오두막에 도착할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 중 한 명인 히구치씨가 [...추워...] 라고 중얼대며 쭈그려 앉았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말을 걸며 이마에 손을 대니 불덩이 같았다.


히구치씨의 얼굴은 새파랬다.


큰일이다 싶어 아버지와 다른 동료가 양쪽에서 부축해 간신히 오두막까지 다다랐다고 한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히구치씨의 안색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어서 어디에서든 재워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은 꼬리를 이어 일어난다던가.




오두막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복도에도 연휴라 산행을 떠난 사람들로 가득해 먼저 왔던 사람들도 돌아나갈 정도였다.


[적어도 이 친구만이라도 좀 재워주세요.]




아버지는 오두막 관리인에게 애원했다.


[미안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억지로 묵을만한 곳이 있지만 그 정도로 아픈 분이어서야...]


[아직 괜찮습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아버지의 억지에 관리인도 포기한 듯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쪽으로...]


그대로 안내된 방을 보고, 아버지는 어이가 없었다.




그 어슴푸레하고 곰팡이 냄새나는 다다미 8장 정도 되는 방에는, 아버지와 동료들을 합쳐 넷 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와 있던 한 사람은 방 가장자리에 누워 얌전히 자고 있었다.


다만 곰팡이와는 다른, 뭔가 알 수 없는 냄새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 방만 비워둔 거지?


밖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아버지는 의문을 느꼈지만 우선 히구치씨를 간호하는 게 먼저였다.




코펠로 물을 끓여, 따뜻하게 죽을 만든 후 히구치씨에게 먹였다.


하는 김에 아버지와 동료도 밥을 챙겨먹고, 7시 무렵 히구치씨를 가운데로 두고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질 않는다.


이상했다.


평소라면 완전히 곯아떨어지고도 남았을 정도로 지쳤는데...




[야... 너 아직 안 자냐?] 


다른 동료가 아버지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어. 왠지 잠이 안 오네. 너도 그래?]




[응. 근데 이 방 좀 이상하지 않냐.]


[역시, 이상하지? 다른 방은 다 사람들로 꽉꽉 차있는데.]


[나 아까 전에 말이야... 화장실 갔다가 게시판을 봤거든.]




아버지는 순간 등골에 정체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고 한다.


[행방불명 8명, 사망 1명이라고 적혀 있었어.]


들은 적 있다.




이런 산 속 오두막에는, 긴급사태를 대비해 병원 영안실 역할을 하는 시체 안치소가 있다는 걸.


저 멀리 방 한켠에서 같이 누워 있는 먼저 온 손님은...


그 손님의 정체는...




[이제 자자.]


아버지는 침낭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튿날 그 먼저 온 손님은 다른 사람들이 하산, 등정하느라 다 빠진 후에 운구되었다.




구조대 헬기로 하산한다는 듯 했다.


그 다음날에는 히구치씨도 건강을 되찾아, 오두막 관리인을 놀래켰다고 한다.


다만 히구치씨의 말에 의하면, 그 날 열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의 이마를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계속 어루만져 주었다고 한다.




[뭐, 등산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지. 그 손이 없었으면 나도 헬기 타고 내려왔을지도 몰라.]


히구치씨는 껄껄 웃으며,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611st]산축제

괴담 번역 2015. 11. 6. 21:31
320x100




오랜만에 휴가를 받았다.


단 이틀 뿐이니, 날 찾는 전화가 올 일도 아마 없겠지.


보너스도 나왔겠다, 어머니에게 뭔가 맛있는 거라도 먹여드려야겠다.




그리 생각하고 교토 키부네(貴船) 쪽 여관에 전화를 걸어봤다.

 

 

 

 


 

가와도코(川床) 성수기였지만 평일이라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리니 무척 기뻐하며 쿠라마(鞍馬) 쪽도 돌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내게 이견이 있을리 없다.


데마치야나기역에서 쿠라마역까지 약 30분.


그 사이 경치는 바둑판 같은 도시에서 뒷동산을 지나, 깊숙한 산 속으로 변해간다.




쿠라마에서 산을 넘어 키부네로 빠지는 코스는, 발에 맞는 신발만 있으면 가족끼리도 2시간 전후면 다녀올 수 있다.


당일치기라면 반대로 키부네에서 쿠라마로 나와 쿠라마 온천에 들렀다 돌아갈 수도 있고.


그 날 역시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짐을 들고 걷기도 귀찮아, 숙소에 부탁해 맡기고 쿠라마산으로 향한다.


위풍당당한 신사 입구에 발을 들여놓자,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다.


나를 향해 낙엽들이 데굴데굴 날아온다.




낙엽 질 계절은 아니건만, 어머니와 함께 산에 오면 반드시 이런 일이 생긴다.

 

 

 


 

[텐구가 꽃을 뿌리는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텐구란 놈, 귀찮은 녀석이군.


도중에는 케이블카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걷는 편을 더 좋아하신다.


군데군데 비탈이 섞인 참배길을 지나, 본전으로 향한다.


 

 

 


 


유키신사를 지나자, 앞에 있던 거목 중간에 있던 가지가 미묘하게 휜다.


이것 역시 매번 겪는 일이다.

 

 

 

 


 

쿠라마사 금당에서 참배를 하고, 안쪽 사원을 향해 오솔길을 걷는다.

 

 

 


 



마왕전 앞에, 몸집은 작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노인이 혼자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꽃이 피면, 말하지 않아도 산에는 찾아온다네. 쿠라마산에 벚꽃 소용돌이...]


언령이 주변 나무에 퍼져가는 것 같아, 무심코 발을 멈추고 노래에 푹 빠졌다.




마지막 노랫가락이 여운을 남기고 하늘로 사라지자, 우리처럼 발을 멈추고 노래를 듣던 사람들이 다같이 탄성과 박수를 올렸다.

 

 


 

 

노인은 생긋 웃고, 오오스기곤겐(大杉権現) 쪽으로 갔다.

 

 

 

 

쿠라마산을 내려와, 키부네강을 따라 걷는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공기가 서늘해 기분 좋다.

흐르는 강 위에 가와도코가 몇 보인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흘러넘치겠지만 오늘 같은 평일은 그렇지도 않다.




조금 먼 곳에는 청명한 흐름 속, 강까마귀가 작은 물고기를 쫓아 물로 뛰어든다.


왜가리도 가만히 사냥감을 기다린다.


어느덧 길게 자란 참억새가 흔들리는데, 그 위를 잠자리들이 돌아다닌다.




키부네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사람은 많지만, 오쿠미야까지 찾는 이는 드물다.

 

 


그 고요함을 즐기며, 오쿠미야 선형석 옆 작은 사당에 손을 모은다.


동생들도 데려왔으면 좋겠다 싶지만, 평일에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은 내가 잘못이다.




학생이면 몰라도 사회인이 그렇게 일을 멋대로 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어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뒤돌아보니, 아까 마왕전 앞에서 노래하던 노인이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노인도 싱긋 웃으며 한 손을 든다.




[아까 전에는 좋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아니, 부끄럽구만.]


노인은 겸손히 고개를 흔들고 나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부모자식끼리 여행 온건가? 좋구만. 좋은 날에 여길 찾아왔어. 오늘은 산축제가 있거든.]


[어머, 축제를 하는건가요?]


축제라는 말을 듣자 어머니는 눈에 띄게 신이 났다.




노인은 가르쳐주었다.


[오늘 밤, 가와도코에 불이 다 꺼지면 이 앞에서 열린다네. 산축제는 때가 맞아야만 열리는 데다 한밤 중에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 만약에 올 거라면 유카타를 입고 오는 게 좋을걸세. 그래야 춤을 출 때도 어울릴테고 말이야.]


어머니는 이미 가고 싶어 두근대는 듯 했다.




젊을 적에는 춤에 푹 빠져있었다니 그럴만도 한가.


뭐, 괜찮겠지.


나는 춤 같은 건 관심 없지만, 기왕 왔으니 어울려 드려야지.




강줄기 따라, 복숭아 같이 둥근 등불이 점점이 켜져있다.


우리말고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쿠미야에 가까워짐에 따라, 피리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와 바람을 탄다.




산축제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그런 춤이나 추는 건 아닌 것 같다.


안쪽 키부네다리 옆에서 왼쪽으로 꺾어, 산 속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들어서자, 피리 소리는 더욱 확실히 들려온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잔잔한 멜로디를 여러개의 피리가 함께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나무 사이에서 수많은 흰색 제등과 그 불빛이 보였다.


체육관 정도 넓이의 공터에서, 피리 소리에 맞춰 수십명의 사람들이 춤추고 있었다.


옷은 흰 바탕에 감색 물흐름 무늬의 유카타다.




여자는 다홍색 띠를 메고, 남자는 검은 바탕에 금색 비늘 무늬가 들어간 띠를 메고 있다.


신나게 춤을 춘다기보다는, 우아하게 춤을 추는 듯한 사뿐사뿐한 움직임이다.


보통 축제 때 추는 춤에서 느껴지는 활기찬 느낌은 전혀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 곁에서 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둥글게 손 잡고 춤추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그 중 한 사람과 손을 마주 잡았다.


아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앞에서 낮에 만난 그 노인이 미소를 띄우며 조용히 나와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아아, 오셨구만.]


[안녕하세요. 이상한 축제네요.]




노인은 이상한 말을 했다.


[저 안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게야.]


만나고 싶은 사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는 멍해졌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가 달려간 저 편에,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친가에 살 무렵 언제나 보던 사람이다.


사진 속에 서서 웃고 있던, 나와 무척 닮은 청년.




내가 2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죽을 힘을 다해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어머니를, 춤추는 이들이 공기처럼 비켜서 지나가게 해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춤을 춘다.




어머니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불과 3년 가량이었던 아내로서의 나날과, 그 몇배는 될 어머니로서의 시간.


지금,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어머니는 말문이 터진 듯 계속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때때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




두 사람 사이 눈물은 없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내게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 말로서 시간을 녹이고 있으리라.


시간을 넘어 부모님은 연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부모님의 모습이다.


아, 아버지는 저렇게 웃는 분이었구나.


어머니가 저렇게 수줍어 하는 모습도 있었구나.




그 기나긴 세월을 넘어,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을 보니, 무심코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버지가 권해 어머니도 춤에 참여한다.


꽤 잘 춘다.




정말로 즐거운 듯 춤추고 있다.


내 머릿 속에서는 샤미센 소리가 울고, 악사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니, 다정하고 다정하구나. 저기에 날아오르고 여기에 날아오르니, 저기도 여기도 바람이 펄럭펄럭대네. 날개와 날개를 맞댄 소매가 물든 모양은 꽃이로구나...]




부모님의 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어머니는 나를 떠올렸는지 아버지의 손을 놓고 내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걸까.


대범하고 의젓한 동생과 무척 비슷한 분위기의 아버지는, 당황해 말도 못하는 나를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았다.




나보다 꽤 홀쭉한 몸이지만, 강하고 따뜻했다.


아버지에겐 이렇게나 확실한 존재감이 있는걸까.


[많이 컸구나...]




만감이 가득한 아버지의 말.


가슴이 감상으로 가득 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입에서 나온 것이라곤...




[아버지...]


[응.]


따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아까 어머니가 마구 이야기를 하던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완전히 신이 나 아버지에게 친구에 관해, 일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건 내 일이고, 다른 사람한테는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조차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어머니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조용한 대답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기뻤다.


아이가 부모에게 하루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기분을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내 이야기가 잠시 멈추자, 아버지는 쓸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구나. 더 함께 있고 싶지만 이제 슬슬 가야할 거 같아.]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싫다고 떼쓰며 잡아봐도 소용 없는 일.




소중한 이에게 걱정을 끼칠 뿐이다.


그래, 이미 알고 있다.


웃으며 배웅하자.




[너희한테 힘이 되어줄 수 없어 애석하구나...]


[괜찮아요. 걱정마. 내가 있으니까.]


장남인걸.




나는 엄지를 세워 아버지에게 보이며, 잘난 척 하며 허세부렸다.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상냥한 시선을 보낸다.


아버지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럼, 이제 가볼게.]


아버지는 춤의 고리 안으로 향한다.


[아버지.]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가 되돌아 본다.


[나,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기쁜 듯 웃고, 그대로 연기가 사라지듯 자취를 감추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버지가 자취를 감춘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단념한 듯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자꾸나.] 라며 나를 재촉했다.


이튿날 아침, 아직 자고 있는 어머니를 방에 두고 안쪽 키부네다리 옆까지 가 보았다.


다리 옆, 산으로 이어진 오솔길은 역시 없었다.




그 노인이 말한 산축제는 때가 맞아야만 열리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것은 나와 어머니가 본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나고 싶던 사람을 만나고, 전하고 싶던 마음을 전했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610th]장난전화

괴담 번역 2015. 11. 4. 21:52
320x100




10엔짜리 동전이 수중에 있으면, 종종 공중전화에서 장난전화를 걸곤 했다.


적당히 번호를 눌러서, 연결이 되면 상대가 끊을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는다.


연결이 되지 않으면 한 번 더 대충 번호를 누르고 말이지.




그 날 역시 공중전화에서 장난전화를 하고 있었다.


웬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요?]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장난전화인가...]


상대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올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집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전화를 받겠지만, 그 날은 하필 집에 나 혼자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투덜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요?]




전화를 걸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뭐가요?]


[아까 전에, 전화 걸었었잖아. 무슨 일이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아까 내가 장난전화를 걸었을 때 연결됐던 그 남자 목소리와 같았다.


겁에 질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혀를 쯧, 차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장난전화를 때려쳤다.


동네에 있는 7개의 공중전화 중, 집에서 그닥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장난전화를 했던 터였다.




공중전화에서 걸었던 장난전화를 기반으로, 전화를 건 사람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게 가능할까?


심지어 나는 장난전화를 걸어 말 한 마디 안 했었는데...


2001년 무렵 겪은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내게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일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지난 8월부터, 아프리카 TV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 방송국에서 괴담의 중심 블로그의 번역괴담들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에 블로그에도 본 블로그의 괴담을 기반으로 제작된 라디오 드라마를 게재하려 합니다.

 

아프리카 TV와 유투브에서 검증된 컨텐츠를 즐겨주시고, 괴담의 중심 블로그와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 방송국 모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아프리카 TV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 방송국 : http://afreeca.com/happylife777 

유투브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 채널 : https://www.youtube.com/user/ssammui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609th]심야의 주유소

괴담 번역 2015. 11. 3. 19:39
320x100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나는 24시간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주유소는 손님이 직접 기름을 넣은 후, 영수증을 가져오면 사무실에서 정산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심야에는 두 명이 같이 일을 하는데, 한 명은 아르바이트생이고 다른 한 명은 주유소 사장 부부가 하루씩 교대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사장네 집은 주유소 맞은편에 있어서, 한밤 중에는 사실 집에 들어가 자는 일이 많았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심야에는 나 혼자 주유소를 보는 셈이었습니다.


그 동네는 한밤 중이 되면 폭주족들이 몰려오는 걸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밤 중 주유소를 찾는 손님들은 대개 남자 혼자 스포츠카를 몰고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밤 중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기에, 나는 사무실에 앉아 대학 논문을 쓰며 시간을 때우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3주 가량 지났을 무렵, 한 남자 손님이 왔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 주유소 단골로,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사람이었습니다.


매번 같은 푸른 스포츠카를 타고 오곤 했죠.


나는 별 생각없이 주유하고 있는 남자를 사무실 창문 너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갑자기 자기 목 뒤를 왼손으로 벅벅 긁기 시작했습니다.


10초 정도 지나자 긁는 것도 멈췄지만, 주유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 남자가 사무실로 오자 아까 전처럼 목 뒤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모기라도 물렸나 싶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금발의 20대 남자가 왔습니다.


이 남자도 심야 단골로, 튜닝한 흰 스포츠카를 타고 다닙니다.


그야말로 폭주족의 전형이라고 할 느낌이었죠.




남자가 주유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그 사람도 어제 왔던 남자처럼 가끔 목 뒤를 긁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상한 위화감 같은 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 날부터 나는 웬지 신경이 쓰여, 손님이 올 때마다 손님의 행동을 섬세하게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목 뒤를 긁는 건 폭주족 남자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다만 알아차렸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하루하루 시간만 흘렀지만요.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나기 1주일 정도를 남겨 둔 어느밤, 나는 무서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역시, 단골인 30대 남성이 푸른 스포츠카를 타고 주유를 하러 온 터였습니다.


나는 논문도 다 썼겠다, 딱히 할 것도 없어 평상시엔 눈길도 안 주던 CCTV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주유기마다 하나씩 달려 있고, 손님이 주유기를 조작하면 얼굴 정면을 비스듬이 비추는 형태였습니다.


나는 남자가 찍히고 있는 CCTV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모니터에는 남자의 정면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 어깨 뒤에, 축구볼 정도 크기의 검고 둥근 덩어리 같은 게 찍히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긴 머리를 한 여자의 얼굴이었습니다.




여자는 공허한 눈을 한 채, 입을 헤벌레 반쯤 벌리고 있었습니다.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질 않는 얼굴입니다.


그런 꼴을 한 채 남자 어깨 뒤에 찰싹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유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여자는 남자 목 뒤로 얼굴을 가져가더니 입을 모아 입김을 내뿜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자기 목 뒤를 오른손으로 긁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본 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턱을 조금씩 진동시켜 낄낄거리며 기분 나쁘게 웃었습니다.


나는 이전에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이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몸을 감싸는 공포에 벌벌 떨었습니다.




한동안 나는 못이 박힌 듯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무실 입구 자동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는 차임벨이 울리고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아까 그 남자가 계산을 하러 이리로 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남자의 어깨를 유심히 봤지만, 아까 모니터에서 봤던 여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못 봤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계산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거스름돈을 꺼내려는 순간, 남자는 다시 자기 목 뒤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저기 있구나, 있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저 남자 어깨에 여자 얼굴이 붙어 있는거야! 그리고 지금도 낄낄대며 웃고 있는거야!]


나는 마음 속으로 절규했습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남자는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계산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 주유소를 떠났습니다.


남자가 주유소를 떠난 후에도, 나는 여자의 기분 나쁜 미소가 계속 생각나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사무실 의자에 앉아, 벌벌 떨면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너무 무서워 차마 CCTV 모니터를 볼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침까지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기에, 아무 일 없이 날이 밝았습니다.


그 후 나는 남아있는 일정 내내 병을 핑계로 일을 쉬었고,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그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습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608th]세공상자

괴담 번역 2015. 11. 2. 22:42
320x100




할아버지가 목수로 일할 무렵, 무슨 세공상자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러 온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격노하며 거부했다.


[그런 걸 받아줄까 보냐! 아직 시집도 안 간 손녀가 둘이나 있단 말이다!]




의뢰인은 50대 남자 둘이었는데, 작은 보자기에 무언가를 싸서 들고 왔다.


내가 차를 들고 가자, 방 앞에서 할아버지가 내 목덜미를 잡고 마당으로 밀어냈다.


[들어오면 안 된다! 어서 나가!]




의뢰인이 돌아갈 때, [후후, 후후후후, 아하하, 우후후.] 하고 보자기 안에서 아이 웃음소리가 났다.


새까만 안개가 보자기를 휘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곧장 소금을 뿌리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내게도 술을 먹였다.


나는 먹었던 아침식사를 전부 토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떨면서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




이 일은 잊으라고 말한 채.


할아버지는 95살로, 아직 살아계신다.


하지만 그 때 이야기를 들으려 해도 이젠 귀도 어둡고 정신도 맑지 않으셔서 무리겠지.




아이의 웃음소리는 당장이라도 보자기에서 뛰쳐나올 것 같이, 바로 가까이서 들렸다.


어머니에게 물어봐도 상자의 연결고리가 부서져서 새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였다는 것 말고는 아무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 상자와 웃음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던 걸까.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사진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포토샵을 써 본 경험이 있다면 그닥 어렵지 않은 내용의 일이었던데다, 월급도 꽤 후한 편이라 즉시 수락했다.




아르바이트 첫 날, PC가 한 대 주어지고 담당자가 설명을 했다.


미리 들었던대로, 사진 일부를 잘라내거나 색 조정을 하는 게 주된 일이라 어려울 건 없었다.


나는 꿀알바를 물었다는 생각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담당자는 [그럼 모르겠는 게 있으면 물어봐.] 라고 말한 뒤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아, 그리고 혹시 말인데, 찍혀 있으면 지워버려.] 라며 양 손목을 축 늘어트리고는 팔랑팔랑 움직였다.


저거, 귀신이 원망스럽다고 하는 포즈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괜찮아, 괜찮아. 보면 금방 알테니까.] 라고 말하고 담당자는 씩 웃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싶어, 나는 그대로 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담당자 말대로, 금방 알았다.




시선이 마주친다.


사진 속 어두운 곳에, 눈만 덩그라니 보인다.


예를 들면 전원이 나간 모니터, 턱이 접혀 생긴 그림자, 발 밑 그림자...




그렇게 약간이라도 어두운 곳이 생기면, 거기서 눈이 나를 들여다 보고 있던 것이다.


특별히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금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곧 눈이 마주친다.




체감상 5, 6장에 하나 정도로 그런 사진이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꺼림칙했지만, 주변 색과 비슷하게 합성하면 금새 지울 수 있었다.


한동안 작업을 계속하자, 그 시선에도 익숙해져 갔다.




기계적으로 심령사진을 고쳐나가는 사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디지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심령사진이라는 문화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해야 하나.


덧붙여 그 후 담당자와 술자리를 가졌을 때 들은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그 회사는 위치부터가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했다.




회사 문 앞에 소금을 두면 사흘만에 새까맣게 변해버린다고 했던가.


나한테는 그 이야기가 가장 무서웠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