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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번역괴담][2ch괴담][902nd]열이 나던 날

괴담 번역 2017. 12. 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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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아직 대학생이던 무렵 이야기다.


그날은 몸에 열이 좀 있어서, 아침부터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침 8시쯤, 엄마가 [일 다녀올게.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전화하렴.] 하고 말한 뒤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나는 고양이가 침대에 들어오면 신경 쓰여서 잠을 못 이룬다.


몸도 안 좋고, 한숨 푹 자야겠다 싶어서 고양이는 방 밖에 내어놓았다.


집이 낡은 탓에 고양이가 문을 세게 밀면 문이 열리기 때문에, 문도 잠그고.




잠시 누워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친구와 라인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몸상태가 확 나빠졌다.


몸이 너무 무겁고 추운데다, 눈앞이 마구 흔들려 기분이 나빴다.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전파 상태가 나빠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문 밖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야옹.] 하고, 평소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어딘가 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목소리가 아랫쪽이 아니라 윗쪽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바닥이 아니라, 사람이 말하는 정도 위치에서.


너무 무서운 나머지 나는 문도 못 열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걱정되서 돌아왔어.]


분명 엄마 목소리인데, 그것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목소리 톤이나 단어 선택 같은게,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직 엄마가 일하러 나간지 2시간도 안 된 터였다.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올리가 없었다.




문밖에, 뭔가 알 수 없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워서 문을 바라보려 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춥고 무서워서 이가 덜덜 떨렸다.




다음 순간, 문 손잡이가 덜컹덜컹하고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물쇠도 오래 되서 약한 탓에, 저렇게 돌리면 금세 열려버릴텐데...


숨도 못 쉬고 있는 사이, 문 손잡이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문 앞에서 "무언가" 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나지막하게 들었다.


휴대폰을 보니 전파가 닿고 있어서,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했다.


역시나 엄마는 집에 돌아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후, 걱정이 되어 일찍 돌아온 어머니는 현관에서 고양이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운차던 고양이가, 상처 하나 없이 누운 채 죽어있었다.


우리 고양이는 문 밖에 있던 "무언가" 가 데리고 가 버린 것일까.




만약 그때 문을 열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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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

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2017. 12. 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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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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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




롱펠로는 사형일을 목전에 둔 죄수이다.


이제 롱펠로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이란 사형 직전에 먹을 메뉴를 미리 상상하는 것뿐이다. 그런 롱펠로가 오래전부터 면회를 거부해왔던 한 사내와의 면회를 승낙했다. 사내는 아주 오래전부터(사실 롱펠로가 교도소에 수형되고 직후서부터) 지금껏 꾸준히 면회 신청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롱펠로는 어찌하여 갑작스레 면회 신청을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그 사내가 누구이길래 롱펠로는 지금껏 면회를 거부해왔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죽음을 앞둔 자의 단순한 변덕과 유희.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그 사내는 바로 롱펠로가 죽인 두 자녀의 아빠.


엄마의 승진을 축하하고자 서프라이즈 선물을 사러 동네의 중고 물품점을 향하던 어린 남매를 차량 납치, 납치 당일 남매를 교살한 후 지하 육류용 냉동고에 시신 유기, 이후 한 달간 총 4번에 걸쳐 남매의 부모를 협박해 14만 달러를 갈취, 결국 부모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사건에 개입해 체포. 이게 롱펠로의 죄질이다.



"..지난달 인터넷 뉴스에 나온 사진보다 여위어 보이는군, 롱펠로."


"뉴스보다 훨씬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니까. 여긴 SNS를 할 수가 없거든. 봐봐, 지금은 앞머리가 더 벗겨졌지? 그리고 요즘 소식하고 있어. 최후의 만찬을 더 기껍게 만끽하려고 말이야."


"..왜 갑자기 면회를 승낙했지?"


"이봐, 그럼 너는 내가 매번 거절하는 데도 어째서 포기하지 않은 거야? 내가 변덕이라도 부릴 거라고 희망한 거야? 뭐, 그렇다면 축하해. 자네 감이 맞았어."


"왜 죽인 거지?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었어! 왜 죽인 거야!"


"얼마든지 주기는, 경찰에 신고했잖아.."


"네가 29일 동안 내 아이들의 목소리를 첫 통화 말고는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으니까! 단 한 번도! 왜 죽였어!"


"왜 죽였냐니.. 그야 계속 울어대니까. 이웃이 눈치라도 채면 어떡하라고? 그리고 난 시끄러운 게 세상에서 제일로 싫어."


"...."


"이봐봐, 당연히 예상은 했지만 말이야.. 그런 말만 할 거면 이만하겠네. 스트레스는 건강에 좋지 않거든. 자네한테도, 나한테도."


"..롱펠로, 환생이란 걸 믿나?"


"뭐? 이 친구, 맛이 갔구먼."


"사람의 영혼은 그 육신이 다 하고 나면 새로운 육신으로 삶을 시작해."


"그럼, 어째서 우리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데?"


"새 생명으로 태어난 직후 아주 일시적으로만 기억하는 거니까. 곧 동시에 전생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거지. 새 시작을 알리면서 말이야. 하지만 가끔은 몇 년이 지날 때까지도 전생의 기억을 유지하기도 해. 그리고 그러한 환생은 때론.."


"그래? 그럼 네 자식들에게 잘 된 거구먼. 적어도 이번 생에는 나를 다시 볼 일이 없을 테니까."



롱펠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의 교도관을 한 차례 바라보곤 몸을 돌렸다. 동시에 맞은 편의 사내는 자신을 제지하고 나선 다른 교도관 너머로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롱펠로! 널 기억하겠어! 네 그 눈망울을 내 심장에 박아놓으마! 네가 환생해서 어디에 있건 한눈에 알아보도록!

롱펠로! 내 말 똑똑히 기억해! 널 기억하겠어!"



롱펠로는 돌아보지 않은 채 중지를 치켜들었고, 그게 롱펠로와 이 사내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0달러를 꽉꽉 채운 롱펠로 최후의 만찬은 다음과 같았다. 꽃등심 스테이크, 물론 미디엄 레어로. 감자튀김 듬뿍, 물론 얇게. 소시지구이, 물론 스모키하게. 디저트는 저먼 초콜릿 아이스크림, 물론 1.5 쿼터 통들이로.


그리고 롱펠로는 약물 투입으로 아주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교도소 내에 떠도는 도시 괴담, 즉 재수가 없으면 바로 죽지 않고 1시간 넘게 발작 증세가 이어진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롱펠로는 10분도 채 안 되어 잠자듯 세상을 떠났다. 롱펠로의 마지막 기억은 눈이 감기면서 동시에 아주 많은 빛이 내리쬐던 기억이다.


한편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으나 롱펠로는 감긴 눈꺼풀 바깥으로 그 빛들이 여전히 가득하게 내리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빛들이 사라지고.. 어째서인지 롱펠로는 울고 있었다.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롱펠로의 감긴 눈앞으로 의료용 캡을 눌러쓴 한 남자의 얼굴이 들이밀어 졌다. 남자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러한 환생은 때론.. 전생에 자신과 연이 닿았던 이와 가까운 사이로 이루어지곤 하지."



감히 사람이 품을 수 없는, 그런 슬픔과 환희가 뒤섞인 표정을 한 남자가 재차 말을 이었다.



"우린 아주 오래도록 함께할 거다, 롱펠로."








-fin-




















후기


나는 독자의 바람이 담긴 그릇에다 침을 뱉는 걸 좋아한다. 물론 몰래 뱉어야 한다. 아니면 그러려고 한 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뱉거나.




http://blog.naver.com/medeiason/22115714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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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901st]남자의 사진

괴담 번역 2017. 12. 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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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은 된 이야기다.


친구 A가 갑자기 배낭여행을 떠나겠다고 말을 꺼냈다.


산지 얼마 안된 디지털 카메라를 시험해보고 싶었으리라.




나도 별 생각 없이, [조심해서 다녀와.] 라고 말한 뒤 배웅했다.


하지만 사흘 정도 있다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나흘이 지나도 닷새가 지나도 A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연락도 없었고.




마침내 A의 가족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일주일 뒤, A가 발견됐다.


익사체가 해변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 속 유류품을 통해 신원이 판명됐다고 한다.


며칠 뒤, 나는 A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경찰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사진 한장을 보여주며, [혹시 이 남자 모르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거기 찍혀 있는 것은 웃고 있는 A였다.


그리고 그 옆에, 본 적 없는 수염 난 남자가 서 있었다.




30대쯤 된 것 같았다.


이 사진은 A의 디지털 카메라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A가 죽기 직전 찍은 마지막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진이 몇장 더 있었다.


혹시 이 남자가 A를 죽인 건 아닐까?


나는 남자를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역시 그렇겠죠...] 라고 고개를 떨궜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입니까?]


경찰은 넌지시 귀띔했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 이 남자는 10여년 전에 실종된 사람이에요. A씨가 사고를 당한 부근에서 사라졌고요. 지금도 저희가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A가 이 남자와 만난 직후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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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동창회 소식을 알리는 편지가 왔다.


중학교 동창회로, 20살때 한번 만났던 친구들이다.


어느덧 10년이 지나, 이제는 서른이 됐다.




어릴적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이제는 왕래가 뜸해졌다.


오랜만에 만나 옛 정을 되살리고 싶어, 참석하기로 했다.


동창회 당일, 꽤 많은 친구들이 나와 왁자지껄 사는 이야기도 늘어놓고, 어릴 적 추억도 풀어놓았다.




정말 즐거운 모임이었다.


서른살쯤 되니 아저씨 아줌마가 다 된 친구들도 있고, 머리가 벗겨진 친구도 있다.


새삼 다들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나 스스로도 아저씨가 됐다는 건 애써 무시하면서.


결혼한 친구들이 꽤 많아서, 아직 미혼인 나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렸던 모양이지만, 지병 때문에 거동이 어려우셔서 아쉽게 못 오셨다고 한다.




서서 식사하는 곳에서 가볍게 1차를 마친 뒤, 2차는 술집으로 향했다.


반 조금 넘는 인원이 2차에 참여했다.


나도 다음날 일이 없었기에, 조금 과음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2차에 따라갔다.




조금 취기가 돌고, 다들 1차 때보다 개방적이고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던 그때.


새로운 참가자가 나타났다.


A였다.




A는 중학교 시절 친구가 많지 않은 녀석이었다.


나 역시 그와 이야기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10년 전 동창회에도 참석했었고, 그때는 나름대로 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다만 중학교 시절부터 겁먹은 듯한 태도라, 이야기하다 왠지 모르게 말문이 막혀 맥이 끊기곤 했다.


하지만 다들 술도 들어갔겠다, 기분이 거나해진 친구들은 A를 반가이 맞이했다.


[이야, A잖아!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난입이냐!]




간사인 B가 먼저 말을 건넸다.


B는 나와 사이가 좋아, 지금도 가끔이나마 연락을 하는 몇 안되는 동창이다.


다른 친구들도 제각기 [오랜만이다! 앉아, 앉아!] 라던가, [지금 분위기 딱 좋은데 잘 맞춰왔네.] 라면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A는 B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나는 A를 보고 새삼 놀랐다.


전혀 늙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조금 힘이 없어보였지만, 10년 전 동창회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마가 조금 넓어져가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A는 이전보다도 더 과묵해져 있었다.




무언가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는 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 마실래?] 하고 B가 물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이 없었다.


[일단 생맥주 한잔 시키지 그럼. 안 마시면 내가 먹는다.]




하지만 A는 그렇게 시킨 생맥주도, 안주에도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그쯤 되자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나말고 다른 녀석들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하던 일이 안 풀려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했다.




그래서 가급적 밝은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이야, 그나저나 A 너는 정말 늙지도 않았네. 부럽다. 나는 완전 아저씨가 다 됐어.]


A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 몇도 거들었다.


[그러니까! 한눈에 알아보겠더라니까. 전혀 안 변했지 뭐야. 뱀파이어라도 되는 줄 알았어!]


[안 늙는 체질도 있더라니까.]




A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B도 한마디 거들 생각이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 혹시 A는 진짜 사람이 아닌 거 아냐?]




결코 바보취급 하거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고, 그저 농으로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에, 그제껏 미소만 띄우던 A의 표정이 달라졌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 모습에 놀란 B는 곧바로 [아, 내가 말실수를 했나보네. 기분 나빴어? 미안, 미안.] 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듯, A는 계속 벌벌 떨 뿐이었다.


다른 녀석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다들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역시 마음에 병이 있는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하기 짝이 없게, B의 가벼운 농담에 과민반응해서 분위기를 깨버린 A를 책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말 미안해. 마음 풀고 다시 마시자.]




B는 다시 사과했다.


다른 녀석들은 아까 일은 잊은 듯, 다시 잡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A의 떨림은 점점 커져서, 의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나도 말을 걸었다.


[야, 괜찮냐?]


그러자 A가 기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웃는 듯, 화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등과 손등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하고, 일정한 박자로 박수를 친다.


"우와, 뭐지 이녀석. 무섭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A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절규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그 순간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괴물 같던 그 얼굴.




우리 동창회 멤버들은 물론이고, 다른 손님과 점원까지 다들 놀라서 망연자실했다.


다시 술을 마실 분위기도 아니고, 결국 그날은 그대로 모임이 파했다.


훗날, B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자기 때문인 거 같아 죄책감도 들어, A네 집에 연락을 해봤단다.


B는 A의 가족에게 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을 에둘러 전하고, 혹시 연락을 받은 건 없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그것이 사실인지, 어디 있는 가게인지 되묻더니, 한참 있다 A가 10년 전 실종됐다고 말하더라는 게 아닌가.


10년 전 동창회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이번 동창회 초청장을 받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바빠서 답장을 잊고 있었단다.




10년 전 사라진 A가, 동창 중 누구와도 연락이 없던 A가, 어떻게 동창회 2차 자리를 알고 찾아온 것일까.


나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돌이켜보면 10년 전 동창회 때, A가 말문이 계속 막혔던 건 사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꺼내놓지 못해서는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A는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건강하지는 않더라도, 부디 어디에선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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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도쿄 여행 4박 5일 - 5일차

잡동사니 2017. 12. 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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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날.

아침에 일어나 짐을 숙소에 맡긴 뒤 체크아웃.

체크인 당일과 체크아웃 당일 모두 짐을 맡아주는 좋은 숙소라서 끝까지 덕을 봤습니다.

오늘 행선지는 시부야에요.


그런데 구글 맵이 무슨 말썽을 부렸는지, 곧이곧대로 믿고 내린 하쓰다이역에서 시부야까지는 또 30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걷기만 엄청 했네요.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 구경이나 했습니다.

날씨는 참 좋더라고요.




제 목적지는 NHK.

일본의 공영방송국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방송국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스튜디오 파크라고 방송 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저 네모난 친구는 NHK의 마스코트 도모군.


오픈 시간인 10시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앞에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수학여행철이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잔뜩 견학을 온 거였어요...

200엔 내고 일단 표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체험 코너는 미래의 주역들이 와글와글.

저는 옆에서 구경만 하고 지나왔습니다 흑흑.




방송 관련 스튜디오나 8K 고화질 영상, 이런저런 소품 구경 정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본 방송에 관심이 있으시면 더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거 같네요.

과거 방송을 돌려볼 수 있는 타임머신도 구비되어 있었고요.




스튜디오 파크 내부를 돌아다니며 퀴즈를 맞추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일본어 힌트를 읽을 수만 있으면 정답은 다 알려주는 수준이라 가볍게 기념품 획득.

왼쪽 노란 건 메모장입니다.




NHK를 나온 뒤, 바로 옆에 있는 요요기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운 좋게 마침 스포츠카 행사가 열리고 있더라고요.

평소에는 보기 힘든 스포츠카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어, 열심히 구경했습니다.

NHK보다 여기가 더 재밌었어요.




실제 카레이서를 만나는 행사도 있더라고요.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레이스에 나서는 분들인 것 같았습니다.

스폰서로는 타미야하고 레드불이 있었는데, 타미야 쪽에서는 미니카를 그대로 실물 크기 자동차로 만들어 놓은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요기 공원 옆에는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사이타마 스타디움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바로 이곳이 일본 축구의 심장이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당시, 도쿄대첩도 이곳 요요기 구장에서 터진 기적이었죠.

지금은 가끔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리기도 하고, J리그 중립 경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2022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전면 재건설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니, 이 경기장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입니다.




시부야에 온 이상 하치코 동상을 안 보고 갈 수가 없죠.

천천히 걸어서 또 이동을 시작합니다.

가는 길에 발견한 시부야 소방서.

이곳 맞은편은 패션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소방서 근처라 파이어 스트리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와서 문을 연 가게가 없더라고요...


타워레코드도 크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앞에는 짝퉁 하치코 동상도 있었습니다.

뭔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더라고요.

입구 중 한면은 우리나라 아이돌 JBJ 광고가 붙어 있어서, 새삼 한류의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여기는 디즈니 스토어.

안에는 온갖 디즈니 관련 상품들을 팔고 있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풍경들도 재현해 놓았습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못난이 난쟁이, 피노키오를 만드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작업대,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앤디의 방...

추억을 되살려주는 기분 좋은 공간이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하치코 동상.

주인을 기다리다 죽은 개 이야기는 다들 아시겠죠.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응?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두마리가 있었는데 왠 아저씨가 데려다놓은 거 같더라고요.

정작 하치코보다는 고양이를 더 열심히 봤습니다.

고양이 넘나 귀여운것.




하치코 동상 바로 앞에는 시부야의 명소 중 하나인 스크램블 교차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태원역처럼 여러곳의 신호등이 한번에 보행 신호로 바뀌고, 그 순간 쏟아져나오는 인파가 장관인 것으로 유명하죠.

여기서도 사진 한장.




조금 걸어가니까 109 쇼핑몰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는 방탄소년단이 크리스마스 광고판을 달고 있더라고요.

새삼 우리나라 아이돌들이 대단하다는 걸 외지에서 느끼게 되더랍니다.




어느덧 밥때가 되었기에 눈에 보이는 요시노야로 슝.

치즈 부타동 오오모리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109 앞에서는 도쿄 코믹콘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드로리안을 전시해 놨더라고요.

실물 크기로 만들어오니 멋있더라고요 확실히.

어느덧 백 투 더 퓨처의 미래였던 2012년도 한참 지나가버렸네요.

세월이란 참...




주변에는 일반 돈키호테보다 더 큰 메가돈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도 짝퉁 하치코가...

멍멍이 발 모양 빵도 만들어 팔고 있더라고요.

돈키호테는 할 일 없을 때 들어가보면 이상한 걸 많이 팔고 있어서 구경하기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여기까지 돌아보고나니 슬슬 공항 갈 준비를 해야겠더라고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은 뒤, 오시아게역에서 나리타 스카이 엑세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넉넉하게 2시간 정도 잡고 이동한 덕에,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 마쳐도 시간이 꽤 남더라고요.




그래서 2 터미널에 있는 포켓몬 스토어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공항이다보니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마스코트인 기장 피카츄가 참 귀엽더라고요.

나리타 공항 한정 상품도 팔고 있어서 열심히 구경하고 왔습니다.




도쿄에서 먹은 마지막 밥.

공항 내 푸드코트에서 파는 교자 정식입니다.

교자 15개에 밥은 오오모리 서비스가 된다고 해서 시켜봤습니다.

밥 반찬으로 교자를 먹는 건 좀 안 어울리는 거 같애요 확실히...




이렇게 4박 5일간의 여행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밌게 잘 돌아다닌 거 같아 만족스럽네요.

다음에 또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다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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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집

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2017. 12. 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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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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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집




우리 자매가 어릴 적 할머니는 종종 뽐내듯 말하곤 했다.



"불행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불행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지도 말거라. 불행은 불안과도 같아서 자기를 두려워하고 자기를 쳐다보는 이에게 반드시 찾아간단다."



뭐, 요즘은 할머니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이미 죽은 지 오래라서.


어쨌건 결과적으로 나는 할머니의 말을 따랐다. 불행을 두려워하지도,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굳이 둘러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아니었다. 동생은 다가올 불행을 두려워했고 잔뜩 웅크린 채 불행이 오지는 않았나 항상 사방을 살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흠, 이번 여름방학 때 있었던 일을 말해줘야겠군.


어릴 때부터 동생은 내 껌딱지였다. 두 살 터울인 동생은 심약하기가 그지없는 아이였다. 사람 얼굴을 3초 이상 쳐다보면 얼굴이 벌게져서 터져버릴지 모르는, 그런. 동생이 가족을 제외한 사람에게 가장 큰 목소리로 말한 건(실상 가족들에게조차 늘 기어가는 목소리였지만) 바로 이웃집 참전용사 지미 할아버지에게 한 인사였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는 동생의 성격을 고쳐보겠다며 이웃집 지미 할아버지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오지 않으면 평생 집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마 전날 어디서 시답잖은 자녀훈육계발서 따위를 읽었을 거다. 아니면 동네에서 방귀 좀 뀌는 아줌마에게 귓동냥을 받았거나.


그날 마당에 나와 팔짱을 낀 채 노려보는 엄마 앞에서 동생은 얼굴이 눈물 반이 된 채로 몇 번이고 지미 할아버지(비만 오지 않으면 매일 현관 앞 오크나무 의자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글쎄, 지미 할아버지에게 그 인사가 제대로 전달됐을는지 모르겠다. 그 양반 원체 가는 귀가 먹어서 말이다.


물론 그런 발작적인 훈육은 당연히 장기적인 효과가 없었고, 엄마는 이내 손을 떼고 말았으며, 아빠는 사춘기가 지나면 자연히 성격이 바뀔 거라며 태평을 부렸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각종 심부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옆집의 다 죽어가는 영감쟁이에게도 말 한마디 못하는 동생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동생이 염치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심부름을 도맡는 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서 동생은 매번 나를 따라나서선 아무리 가벼운 짐이라도 나누어 들곤 했다. 그렇게, 내가 사는 오하이오 주 시골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나와 내동생을 '껌딱지 자매'라고 불렀다.


자, 그럼 시간을 이번 여름방학으로 돌려볼까?


내가 사는 마을에선 차라도 끌고 나가지 않는 이상 10대가 즐길 수 있을 만한 게 도통 없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중학생이라 면허증이 없었고 후져 터진 6단 기어 자전거로는 어디 멀리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근처 숲(사실 숲이라고 표현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규모지만)으로 가 꼬불쳐 둔 떨 따위를 피우는 게 최고의 여가였다.


당연히 항상 옆에는 내 껌딱지도 있었다. 내내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시간을 보내던 동생을 나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같이 있어 줘야 했고 그건 방학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방학마다(꼭 방학이 아니더라도) 숲으로 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 동생도 수다를 떨었냐고? 그렇다. 동생은 나와 있을 때면 제법 명랑했다. 말도 곧잘 했고. 사실 동생은 말주변이 썩 괜찮은 편이었다.


어쨌건, 내가 하려는 말은 이렇게 볼 것 없는 시골 마을에선 으레 도시 괴담 하나둘 정도는 나돈다는 거다. 당연히 우리 마을에도 도시 괴담이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숲 가장자리의 귀신 들린 집과 관련된 것이었다.


숲 가장자리에는 녹을 띤 허름한 울타리 안쪽으로 오래된 목조 집 하나가 있었다. 그 목조 집에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얌전하고 상냥하기만 하던 그녀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모습이 존재했다. 그녀는 지독한 카니발리즘 소유자로, 몰래 꾀어낸 동네 여자애들을 집으로 데려가 한 점 한 점 음미하며 뜯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에게 덜미를 잡힌 끝에 유죄를 선고받곤 죄수들이 가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건 이후 법적인 소유 문제로 인해 덩그러니 남아버린 목조 집 주변으로 철조망이 설치됐고, 정신병원에 수용된 그녀는 며칠이고 식사를 게워내더니 어느 날 알몸인 채로 입이 닿는 곳의 자기 살점들을 모조리 뜯어먹어 과다출혈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이지, 그녀는 죽어서 이 목조 집으로 돌아와 여자애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대."


"..언니, 근데 왜 여자애들이야? 그 여자는 여자애들만 잡아먹는 거야?"


"그건 말이야.. 아이들의 살점에서 누린내가 덜 나고 여자가 씹는 맛이 더 부드러워서래. 그녀는 산채로 사람을 잡아먹는 주의거든. 그래서 먼저 혓바닥과 목구녕을 칼로 헤집는 거지."


"..언니는 그 이야기를 믿어?"


"글쎄다. 사실은 상관 안 해. 중요한 건 지금 이거보다 재미있는 게 우리한테 있느냐는 거지. 자, 나 먼저 간다."



나는 철망 하단으로 흉하게 뚫린 구멍을 기어 통과한 뒤 동생이 따라 넘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문이 열려있는데?"


"..언니, 그냥 돌아가자."


"안에 잠깐만 들어갔다가 가자. 전리품은 챙겨가야지."


"..그냥, 가자. 느낌이 안 좋아."


"너 겁먹은 거야? 그녀에게 잡아먹힐까 봐?"


"...."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내딛는 거야. 그리고 전리품을 챙기면 넌 이제 학교에서 적어도 두 달간은 인기스타가 되어있을 거라고."



한참을 주춤이던 동생은 결심한 듯 내 얼굴을 올려다봤고, 그렇게 우리는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환장하겠네, 있는 거라곤 거미줄뿐이고. 뭐 챙겨갈 만한 것 좀 보여?"





아무 대답이 없어 동생 쪽을 돌아보니 동생은 그야말로 분칠한 듯한 얼굴색으로 굳어있었다. 동생의 시선은 어느 바닥에 머물러있었는데 그곳엔 자그마한 뼛조각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떨구어진 듯한 핏자국들이 아직 선명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미친 사람마냥 뛰쳐나가는 공포영화 속 클리셰는 모두 엉터리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날, 나와 동생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망각한 채 자빠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비틀비틀 오두막을 빠져나오곤 울타리를 기어 나와서도 한참을 기어댔다.


그리고, 그날부터였다. 동생은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는지 밤마다 '그날' 못 질렀던 비명을 지르느라 분주했다.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동생은 이따금 발작적으로 어떤 음식이든 게워내기 일쑤였다. 원래부터 마른 몸이었던 동생은 곧 삐쩍 마른 형상으로 변해갔다.


엄마 아빠는 손쓸 방도가 전혀 없었다. 의사는 동생의 몸에 특별한 이상을 찾을 수가 없으며 아마 심리적인 문제로 보이는데 식이장애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은 가정에서 좀 더 세밀한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면서 만약 상황이 지속될 경우엔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아빠가 직장에서 의료보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말이다.


엄마는 마을의 신부님에게 주기적인 가정방문과 기도식을 간곡히 부탁했고(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기 싫어 갖은 핑계로 내빼곤 하던 아빠도 마지못한 얼굴로 동의했다. "그래, 뭐. 와서 기도만 하는 거라면야, 뭐."), 그 열의와 신앙심에 감복한 신부님은 매일마다 저녁 식사 전 우리 집에 들러 다정한 음성으로 동생 앞에서 기도를 올리곤 했다.


그러나 동생의 발작적인 증상은 그대로였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그리고 또 새로워졌다. 어느 날부턴가 동생의 팔 주변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물어뜯은 듯한 상처였는데 정작 동생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 했다. 병원에선 사람의 치아로 인한 상처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이 신고를 한 탓에 엄마와 아빠는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동생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또 늘어났다. 다양한 부위들로. 더불어 그에 비례해 악몽으로 인한 비명 또한 더욱 거세져 갔다. 이제 엄마, 아빠는 매일 밤마다 동생을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니 말아야 하니로 싸워댔다.


그렇게 그날이었다. 언제나 보다 조금 이른 새벽녘. 평소와는 달리 마치 짐승의 울부짖는 듯한 소리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깨어나 동생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자 어둠 속임에도 동생이 침대 앞에 우뚝 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스위치를 더듬어 불을 켜자(아마 아빠였을 거다) 우리는 동생의 모습과 행동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동생은 만면에 웃음꽃이 핀 얼굴을 하고서 이제는 하얀 뼈가 드러나기 시작한 한쪽 팔의 살코기를 게걸스레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압도적인 광경에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수 초 후에나 아빠가 나와 엄마를 살짝 감싸 안은 채 동생을 향해 말했다.



"마리아, 너 지금 뭐하는 거니? 가만히 있으렴. 아빠가.."



그러자 동생이 정말 미친 사람처럼, 마치 고장 난 인형마냥 얼굴을 격렬하게 흔들며 웃어 젖혔고 곧 덜렁거리는 살코기 한 점이 동생의 입에서 툭 떨어졌다. 동생이 말했다. 생전 처음 듣는 쾌활하고 명료한, 그리고 탁한 음성으로.



"난 마리아가 아니야. 사람 잘못 봤수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온몸이 굳어버려 그저 꼼짝도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런 우리를 재미있다는 듯이 훑어보던 동생이 다시 덧붙였다.



"자빠지겠네! 니들은 지금 내가 마리아로 보이는 거니?"



여기까지가, 내 동생이 여름방학 중에 결박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일련의 이야기이다. 동생은 다가올 불행을 두려워했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불행이 오지는 않았나 항상 사방을 살핀 끝에 불행과 눈이 마주쳐졌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강력했다.


동생은 여름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금에도 여전히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다. 종종 음식물을 게워내고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집중 감시를 받으며 종종 악몽을 겪은 후에나 하루를 시작하면서 말이다.


자, 이야기 끝이다. 나? 나는 문제없다. 나는 불행이라는 놈을 다룰 줄 안다. 무엇보다도 나는 '목조 집의 그녀' 이야기를 결코 믿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낸 거니까.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성가시기는 했지만 효과는 내 예상 밖이었다. 덕분에 말이지, 나는 학교에서 같이 노는 친구들이 생겨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그저 좀 놀래켜서 여름방학만이라도 껌딱지에서 해방된 채 홀로 바깥에서 호사를 좀 누리고 싶었던 건데 이렇게나 자유의 몸이 되다니!


그리고 지금 나는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행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지도 않는다. 불행은 불안과도 같아서 자기를 두려워하고 자기를 쳐다보는 이에게 반드시 찾아가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나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내 동생은 오래도록 입원해있을 것이다.





-fin-




















후기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사람의 마음'을 들 수 있겠다. 특히나 '상대방의 마음'이. 그래서 뻔뻔한 사람들이 오래도록 잘 사는 거다.


"불행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불행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지도 말거라. 불행은 불안과도 같아서 자기를 두려워하고 자기를 쳐다보는 이에게 반드시 찾아간단다."





http://blog.naver.com/medeiason/22115428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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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도쿄 여행 4박 5일 - 4일차

잡동사니 2017. 12. 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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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흘째.

어제 오후부터 내리던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비 오니까 나가기가 싫어서 커피 끓여먹으면서 숙소 라운지에서 한참 있었네요.

왼쪽 위에 있는 건 이로리라는 일본식 화덕인데, 저 화덕으로 희망자에 한해 아침식사를 만들어 줍니다.

이 숙소 이름도 저 이로리에서 따왔더라고요.




아무튼 아무리 비가 쏟아지더라도 기왕 온 여행 열심히 돌아다녀야 보람이 남겠죠.

우산을 쓰고 출발합니다.

오늘 목적지는 아키하바라.

숙소에서는 걸어서 20분 남짓 거리입니다.

커다란 취미 전문 서점도 보이고, 아키하바라역과 연결된 요도바시 카메라도 보이네요.

열시쯤 도착했는데, 마침 딱 요도바시 카메라 오픈 시간이었습니다.




요도바시 카메라는 우리나라 하이마트 같은 전자제품 전문 매장입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지만요.

아키하바라점 역시 온갖 PC 용품, 모바일 용품, 게임, 취미용품 등을 잔뜩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본어가 각인된 키보드, 직접 레이싱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레이싱 기어 등 이거저거 신기한게 많았습니다.




아키하바라점은 입지가 입지인만큼 취미용품 관련해서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포켓몬스터 인형이나 스타워즈 굿즈 같은 것도 잔뜩 있고, 장난감 매장도 한층을 통채로 쓰고 있더라고요.




근처에 AKB48 극장이 있다보니, 새 싱글 발매 기념으로 직접 찾아와서 싸인을 하고 간 모양이더라고요.

오른쪽은 최근 스위치로 신작이 발매된 슈퍼마리오.


게임 관련 잡지나 공략집도 많았습니다.

아랫줄 오른편은 종이로 만드는 페이퍼 시어터라는 건데, 입체적인 구성을 하고 있어서 참 신기했어요.




이곳저곳 독특한 가게가 많아서 걸어다니기만 해도 신기한게 참 많은 거리였습니다.

원래 취미가 레트로 게임 쪽이라서 중고 매장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가격이 전체적으로 만만치가 않아서 뭘 사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이 차라리 더 싸더라고요.




요도바시 카메라와 비견되는 대형 전자제품 매장 빅 카메라.

중고제품 전문 매장 트레이더.

아랫줄 왼편에는 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 광고판이 보이길래 찰칵.

비는 오전 내내 계속 내렸습니다.




돌아다니다 문득 하드오프가 눈에 들어와 잠깐 들어가봤습니다.

책이나 음반을 취급하는 북오프와는 달리, 게임기나 오디오 기기, 전자제품 등을 취급하는 매장입니다.

이거저거 많기는 한데 딱히 건질 건 없더라고요.

싸게 파는 정크품도 있긴 한데 동작 보증이 없으니 손이 안 갔습니다.


아래쪽은 길 가다 발견한 고전게임 전문매장 레트로 게임 캠프.

젤다의 전설 테마를 계속 틀어놓고 있어 절로 발이 갔는데, 역시나 가격이 정말 천정부지로 뛰고 있었습니다.

레트로 게임 취미 자체가 돈이 들 수 밖에 없는거지만, 아무래도 한국이 더 싸긴 한 거 같아요.




점심은 야로라멘이라는 곳에서 먹었습니다.

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인데,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위에 쌓인 숙주나물만 한참을 파먹으면 그제야 면이 나옵니다.

제가 시킨 건 그나마 양을 좀 줄인 거였는데도 저 지경이었어요.

그래도 맛은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나니 슬슬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접고 또 여기저기 돌아다녀봅니다.

스루가야라는 중고 게임 매장인데, 가격 비싼거는 매한가지더라고요.

슈퍼 마루오라는 해적판 패미컴 게임이 무려 270,000엔에 팔리고 있더랍니다.




한켠에는 지하주차장을 빌어 정크품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맞은편에는 인텔 8세대 프로세서 출시 기념 행사 중이라 뭔가 대비가 됐습니다.

아키하바라답게 메이드 카페부터 시작해 온갖 카페가 많더라고요.

고슴도치 카페랑 고양이 카페가 같은 건물에서 경쟁하고 있기도 했고요.




왼편의 커피우유는 패밀리마트에서 105엔으로 할인하길래, 1엔짜리 해결할 겸, 잠시 앉았다 갈 겸 쉬엄쉬엄 마시고 갔습니다.

어느 매장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오른편에 있는 이상한 걸 파는 곳도 있었어요.

처키의 핏빛 파스타 소스랑 핏빛 카레...




여기는 레트로 게임 전문 매장으로 유명한 슈퍼 포테이토.

맨윗층은 옛날 게임만 돌아가는 오락실이었습니다.

잠깐 구경하고 내려와보니 온갖 옛날 게임 관련 물건은 다 팔고 있더라고요.

비싸서 구경만 하긴 했지만, 왠만한 게임기는 다 갖추고 있어서 참 부러웠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버추얼 보이 시연도 해봤네요.




여기는 돈키호테 8층에 있는 AKB48 극장.

인기가 최전성기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이날도 공연이 있는지 팬들이 앞에 줄을 쫙 서 있었습니다.

앞에서 슬쩍 안을 들여다보기만 하고 내려왔어요.




7층과 6층은 오락실 겸 파칭코였는데, 게임 체험해보라고 코인 10개를 주더라고요.

덕분에 난생 처음 파칭코도 해보고 슬롯머신도 돌려봤습니다.

결과는 죄다 꽝이었어요.

역시 도박은 하면 안되는 거 같습니다.

인형 뽑기도 한번 해볼까 싶었는데,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도 안 떨어지는 거 보고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근처에는 AKB48 카페도 있었습니다.

기념품점에는 크리스마스 상품들을 잔뜩 판매하고 있더라고요.

딱히 좋아하는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라 구경만 하고 나왔습니다.




걷다 지친 것도 있고, 카페에서 좀 쉬다가기로 했습니다.

밥때도 아니고 가격도 비싸서 식사메뉴는 스킵.

딸기모카라는 게 있어서 시켜봤는데 커피 뒷맛에 묘한 딸기향이 섞여 올라와서 그저 그랬습니다.

500엔.

추가로 음료를 시키면 종이 랜덤 코스터를 뽑게 되는데, 저는 이와타테 사호라는 친구가 나왔네요.

지난번 총선거에서 42등 했다는군요.




카페 내부에서는 계속 AKB48 관련 영상을 틀어주더랍니다.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 같은 게 주로 나오고, 중간중간 멤버들이 나와서 카페 메뉴 추천도 해주더라고요.




이제 쉴만큼 쉬었겠다, 아키하바라도 다 돌아봤으니 천천히 또 이동을 해야겠죠.

가는 길에 부엉이를 머리에 얹은 부엉이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있길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머리에 있는 부엉이가 꽤 무거운 모양이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니까 복장이 호그와트 교복 코스프레네요.




다음 목적지는 우에노 아메요코 시장.

원래 미군 부대 옆에서 시장을 열었던 게 점점 커지면서 지금 규모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도쿄에서 찾아갈만한 전통시장 중 하나입니다.

인근 우에노 동물원에서 팬더가 새끼를 낳았는지, 우에노 이곳저곳에 아기 팬더 탄생 축하 플래카드가 붙어있더라고요.




1,000엔에 초콜렛 마구 담아주는 걸로 유명한 가게도 있었는데, 이날은 어째 손님이 없는 거 같았습니다.

불닭볶음면도 만났네요.

전통시장이라고는 해도 꽤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걷다보니 하드오프와 하비오프가 같이 있는 건물이 있길래 또 들어가봤습니다.

하비오프는 취미용품 전문 매장으로, 중고 악기 같은게 잔뜩 있더라고요.

장난감이나 게임기도 많이 있었지만, 이건 아키하바라에서도 질릴만큼 봤으니.




사람들도 바글바글하고, 이런저런 가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입니다.

돌아다니면서 참 재밌었어요.

어느 나라를 가던 시장 구경은 꼭 해봐야하는 거 같습니다.




저녁으로는 텐동 체인점 텐야에서 올스타 텐동을.

마침 우에노점에서는 올스타 텐동 가격을 200엔이나 깎아주고 있더라고요.

덕분에 550엔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튀김이 바삭바삭하고 아주 꿀맛이었어요.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아키하바라를 거쳐가는 길.

버스 타이어로 카메라 렌즈를 표현한 센스 있는 광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옛날 전자상가 시절 아키하바라의 상징이었다는 라디오 회관도 스쳐 지나갔고요.




아키하바라에도 겨울맞이 일루미네이션 행사가 있더라고요.

이름은 후유하바라 일루미네이션.

가을을 뜻하는 "아키(秋)" 대신, 겨울을 뜻하는 "후유(冬)" 를 넣은 언어유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 마지막까지 예쁜 걸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녁 야식은 딸기 롤케이크랑 초코 수플레 케이크를 냠냠.

숙소에서 자는 것도 마지막이라니, 참 아쉬운 마음 뿐이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었는데도 돌아가려니 아쉬운 건 사람 욕심인 거 같아요.

다음날 짐을 뺄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 날은 25,942 걸음이나 걸었네요.

왠만하면 교통비가 좀 들어도 전철을 타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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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도쿄 여행 4박 5일 - 3일차

잡동사니 2017. 12. 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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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세번째날, 조금 넉넉하게 일어나서 시나가와 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넉넉하게 일어난 시간이 하필 딱 출근 시간대...

도쿄 남부 최대역이고 환승 노선도 여러개인 곳이라 사람이 바글바글 하더라고요.

시나가와 역을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보니,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 소니 본사가 눈에 딱 들어옵니다.

안 가볼 수가 없죠.


소니 본사에도 트리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도 아닌 나라인데도, 여기저기 큰 곳 가면 트리는 꼭 있더라고요.

트리 아래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마스코트격인 캐릭터, 토로도 보이네요.

소니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시연대도 있었습니다.




곧 새롭게 발매될 예정인 로봇 강아지, 아이보도 보였습니다.

뒤에는 역대 아이보 세대별로 쫙 전시를 해놓은게 인상적이었어요.

음향 기기 시청대와 플레이스테이션 4 시연대도 있었습니다.

잠깐 앉아서 게임을 하긴 했는데, 남들 출근하는 와중에 혼자 앉아서 게임하기도 뭐해서 금방 내려놨네요.




좀 느긋하게 나온다고 나온건데, 그래도 여전히 너무 일찍 나와버렸더라고요.

목표로 하고 나온 10시 30분까지는 아직도 한시간 가량 남은 상황.

어쩔 수 없이 또 천천히 역 근처를 돌아다녀봅니다.

헌법 9조 수호와 아베 내각의 개헌 저지를 외치는 일본 공산당 포스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니 본사 근처에는 게임 쪽 업무를 맡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건물도 있더군요.

여기도 플레이스테이션이 있긴 한데 소니 본사보다 규모가 작아서 밖에서 슬쩍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한참 시간 때우다가, 겨우 10시 30분이 됩니다.

오늘 시나가와 역까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오다이바까지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시나가와 역에서 오다이바까지 무료로 보내주는 셔틀버스가 있거든요!

셔틀버스를 탑승하고 30분 정도 이동해서 오다이바에 입성합니다.


오다이바는 익히 알려져 있듯, 상업지구와 관광지구가 뒤얽혀 있는 인공 섬입니다.

개중 제가 타고 온 셔틀버스는 오오에도 온천이야기라는 온천에서 제공하는 교통편이에요.

여기도 입장하려고 한국에서 미리 티켓을 사왔지만, 일단 오다이바를 돌아보고 저녁에 입장할 요량으로 발을 옮깁니다.

오다이바는 원래 1980년대 버블 시기 개발이 시작됐는데, 버블이 꺼지면서 주거지구는 제대로 조성이 못 됐다고 합니다.

그 탓에 관광지가 여기저기 막 섞여 있는데다 교통편도 애매해서 여행객 입장에서는 참 곤란한 곳이기도 하죠.


어쩔 수 없이 걸어서 30분 정도를 이동합니다.

특히나 오오에도 온천이야기가 자리잡은 텔레콤센터 쪽은 딱히 볼 것도 없거든요.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해양박물관.

실제 배를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거라네요.

하지만 제 행선지는 오른쪽 아래, 멀리 보이는 둥근 전망대의 후지 TV입니다.




후지 TV는 특히 저 25층 원형 전망대로 유명한데, 다른 곳은 돈을 안 받아도 저 전망대 입장은 칼같이 돈을 받습니다.

오른쪽의 파란 강아지는 후지 TV의 마스코트 캐릭터 라프군.

전망대 입장권을 사려고 7층에 올라갔더니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했던 배, 고잉 메리호의 선수가 전시되어 있더군요.

원래 배 전체를 건조해서 오다이바에 띄워놨었는데, 현재는 철거하고 선수만 따로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것도 머리만 덩그러니 놓고 보니 묘하게 기분 나쁘더라고요.




성인 입장료는 550엔입니다.

후지 TV는 스탬프 랠리 프로그램도 준비를 해놨는데, 이걸 완성시키려면 꼭 전망대에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스탬프 5개를 다 모았더니 라프군 스티커를 한장 주더라고요.




원형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오다이바 풍경입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예보가 있었는데, 슬슬 구름이 끼고 있더라고요.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육안으로 보면 도쿄타워랑 스카이트리가 눈에 다 들어오는 괜찮은 뷰더라고요.




후지 TV 안을 쓱쓱 돌아보며 지나갑니다.

우리나라 아침마당 격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스튜디오도 있었는데, 출연자 싸인 중 우리나라 가수 빅뱅이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다음 목적지인 DECKS가 보이길래 찰칵.




내부 전시관은 딱히 대단한 건 없어도 재미삼아 돌아볼 정도는 됩니다.

후지 TV의 양대 간판 애니메이션 원피스와 드래곤볼, 한류 드라마 소개.

장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사자에상과 마루코는 아홉살.




점심은 DECKS로 이동 후, 태양루라는 중식 뷔페에서 먹었습니다.

1,500엔이었는데 그냥 배고프면 먹을만한 정도였어요.

배는 불렀지만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느낌.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래도 드링크바 종류가 다양해서 이거저거 마실 거는 많이 마셨습니다.

7층에 위치한 가게라서 테라스 뷰가 괜찮은 것도 장점이네요.


DECKS에는 게임 업체 세가의 실내 테마파크 조이폴리스가 입점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을 보면서 할 수 있는 독특한 게임들이 설치되어 있더라고요.

별 거 아니지만 독특한 아이디어입니다.




다음 행선지는 3층에 있는 바로 그 조이폴리스.

원래 굳이 올 생각은 없었는데, 800엔인 입장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1층에서 입장료 300엔 할인 쿠폰을 나눠주길래 신나서 냉큼 들어가버렸죠.


이 곳은 원래 세가가 온힘을 다해 밀던 사업인데, 생각만큼 흥하질 못하면서 세가가 망하는데 한몫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들어가니까 세가가 최근 열심히 만들고 있는 프로젝트 디바, 하츠네 미쿠의 미니 라이브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사람 음성을 컴퓨터로 대신 흉내내어 노래를 부르게 하는 보컬로이드라는 프로그램인데, 캐릭터가 갖추어지고 이제는 아예 아이돌 같은 입지에 올라섰더군요.

직접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참 재미난 경험이었습니다.

라이브 후에는 목소리 담당 성우가 나오는 영상으로 게임 홍보를 하더군요.



조이폴리스는 일본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입니다.

옛날부터 세가가 강세를 보였던 오락실 게임, 이런저런 놀이기구 등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성을 해뒀더라고요.

이니셜 D 어트랙션은 진짜 자동차에 올라타고 플레이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가의 마스코트인 소닉도 여기저기서 얼굴을 구경할 수 있었고요.




왼쪽 위의 소닉 어트랙션은 진짜 육상화로 갈아신고 소닉처럼 달리기를 하는 독특한 게임이었어요.

세가말고 캡콤 쪽 게임들도 어트랙션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하우스 오브 더 데드나 바이오하자드 같은 공포 게임이 특히 눈에 띄더군요.

오른쪽 아래는 얼굴을 가져다대면 바다사자 몸에 얼굴을 합성해주는 괴상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바로 이 어트랙션, 역전재판 in 조이폴리스 때문입니다.

캡콤의 법정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변호사가 되어 의뢰인을 혐의에서 해방시켜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으며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 조이폴리스에서는 이걸 어트랙션으로 만들어놨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조이폴리스 곳곳에 놓여있는 게임용 기기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원래 게임하고 다 똑같은데 법정기록 하나만 오프라인으로 직접 작성한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저기 보이는 아래쪽 바코드를 읽히면 게임기 플레이하듯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총 3개의 시나리오가 있는데, 저는 무난하게 첫번째를 선택했습니다.

시나리오의 난이도는 일본어만 할 줄 알면 누구나 풀 수 있는 수준입니다.

굳이 추리력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역전재판 시리즈의 팬이면 쉽게쉽게 진행할 거 같네요.

사실 다 어디서 보던 얼굴들이기도 하고...

역전재판 어트랙션으로 놀려면 600엔을 추가 지불해야합니다.


다 끝나고 나오는데, 생전 세가 팬으로 유명하던 마이클 잭슨의 싸인이 보이더라고요.

새삼 아까운 사람이 너무 일찍 갔다 싶어 마음이 짠했습니다.




DECKS 4층에는 복고풍 물건들을 파는 다이바 잇쵸메 상점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80년대풍으로 추억 어린 불량식품이나 장난감들을 잔뜩 팔고 있죠.

한번 들러볼만한 곳입니다.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볼 수 있는 곳이에요.

오락실 게임기도 다 옛날 게임이더라고요.




그 외에도 4층에는 독특한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부디 만져달라고 써 있는 남성용 속옷이 있질 않나, 근육맨 상품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질 않나.

왼쪽 아래에 있는 건 자기가 태어난 날 신문을 인쇄해주는 자판기입니다.

생각보다 비싸서 해보지는 않았지만요.

그 외에도 타코야키 뮤지엄이라고, 일본에서 유명한 타코야키 가게들을 모아놓은 푸드코트도 있으니 좋아하시는 분들은 들러보시길.




하지만 제 목적은 바로 여기, 다이바 괴기 학교입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귀신의 집인데, 주간지에서 선정한 일본 귀신의 집 랭킹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한 곳입니다.

진짜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도 돌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 괴담을 정말 좋아하는 저로서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입장료는 800엔입니다.


기본적인 설정은 40여년 전, 목매달아 자살한 아이가 나온 이후 온갖 사건이 들끓다 폐교한 학교라는 설정입니다.

여기 들어가 네명의 지박령 중 한명을 골라, 그 영혼을 성불시켜주는 미션을 받는거죠.

저는 분신사바하다가 여우 귀신이 들려 친구를 살해하고 실종됐다는 메이코라는 아이를 골랐습니다.

결과만 말하자면 성불 실패했어요 ㅠㅠ


혼자 들어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확실히 꽤 무서웠습니다.

다만 사운드로 해결하는 요소가 좀 강하다보니 일본어를 좀 알아들으셔야 더 무서울 거 같네요.

막판에는 진짜 오싹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좀 짧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오다이바의 상징 대관람차...

원래 계획은 저기로 가서 비너스포트와 메가웹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오다이바의 또다른 상징 건담을 안 찍어왔더라고요.

발을 옮겨 건담이 있는 다이버시티로 이동합니다.




근데 이럴수가, 다이버시티에 오니까 아예 건담 특별전을 하고 있더라고요.

거기다 제가 좋아하는 스탬프 랠리까지!

결국 메가웹과 비너스포트를 포기하고 다이버시티에 올인하기로 했습니다.

여행 다니다보면 이렇게 계획이 바뀌는 것도 재미있는 거 같아요.




건물 전체에 건담이 가득해서 유쾌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도 건담, 유리난간에도 건담.

스탬프 랠리는 각 층마다 있는 건담 조형물 근처에서 스탬프를 찍으면 됐습니다.

총 4개 있고, 다 모으면 7층에 있는 건담 베이스에서 기념품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기념품으로는 모바일 클리너 스티커라고 받았는데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네요.




도쿄 건담베이스는 규모부터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집이 용산이라 용산역 건담베이스를 자주 다니곤 하는데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더라고요.

내부에는 프라모델 제작 과정이나 역대 건담 주역 기체들 전시도 있어서, 재미있게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다이버시티에는 재밌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개중 메이저리그 모자로 유명한 뉴에라는 포켓몬스터와 콜라보를 했더라고요.

차마 쓰고 다니기는 좀 그렇지만 보기에는 참 재밌었습니다.




괴상한 물건들 전문점인 뱅가드 빌리지에서도 구경할 게 많았어요.

만화에 나오는 통짜고기 모양 인형, 만화가 이토 준지 작품을 모아놓은 서가.

똥 모양 머그컵과 카레 그릇, 심지어는 똥 카레까지 있더랍니다.




오른쪽 위에 있는 책은 페이퍼크래프트 책인데, 그 소재가 에가시라 2:50이라는 개그맨이었습니다.

상반신은 홀딱 벗고 하반신은 검은 타이츠를 입고 온갖 저질개그를 난발하는 개그맨인데, 이런 상품을 보게되니 참 재밌더라고요.

중2병 환자를 위한 어려운 한자어 사전,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범인 코스프레 의상 등 온갖 유쾌한 물건들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인형도 있더라고요.

평소에는 순둥이 같다가, 뒤통수를 누르면 괴물로 돌변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타워레코드도 있길래 슬쩍 들어가봤습니다.

역시 은퇴를 앞둔 아무로 나미에 코너가 제일 크고, 한류 관련 코너도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일본인 멤버가 3명이나 있는 트와이스를 많이 밀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다이바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거대 건담!

밖에 나오니 예보대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랍니다.

하지만 그래도 큰 건담 보니까 재밌고 신기했어요.

바로 앞에는 건담 카페도 있고, 건담 조형물도 세워져 있어서 건담 팬들이라면 꼭 와볼만한 거 같습니다.




건담 카페에서는 머리가 열리는 자쿠 머그컵이나 빔 샤벨 우산 같은 걸 팔더라고요.

별로 실용성은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왔습니다.

비도 내리겠다, 다음 행선지로 빨리 이동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요.

다음 행선지는 아까 오다이바 처음 왔을 때 봤던 그곳, 오오에도 온천이야기입니다.




오오에도 온천 이야기는 이름 그대로 온천입니다만, 그와 동시에 테마파크이기도 합니다.

안에서는 입장객 모두 유타카를 입고 움직이고, 안에는 우리나라 찜질방처럼 이런저런 가게들도 있어요.

아예 여관까지 내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온천여관 느낌으로 여기서 하루 묵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보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행 도중 가장 만족한 곳이기도 합니다.

여행 도중 쌓였던 피로를 따뜻한 온천에 들어가서 싹 풀고 나니 참 행복하더라고요.

비 내리는 날씨도, 노천탕에 나가 비 맞으며 온천을 즐기니 그것마저 풍류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예 맨손으로 가도 수건이랑 샴푸, 바디샤워, 린스, 면도기에 치약, 칫솔까지 다 제공이 되니 여행객 입장에서는 참 편리하고 좋았습니다.

오다이바 가신다면 꼭 온천 한번 즐기고 오시길 추천하고 싶네요.




내부 인테리어도 후지산 아래, 축제가 벌어지는 온천마을이라는 테마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타카를 직접 입어볼 기회도, 유타카 입은 사람을 볼 기회도 많지 않은데 여기서는 둘 다 가능하다는 것도 있고요.

한국 분들도 많이 찾아오는지, 한국 음식점도 있더라고요.




여기는 족욕탕입니다.

하지만 비가 오다보니 우산 쓰고 잠깐 들어가보기만 했네요.

여기는 유타카를 입고 들어가기 때문에 남녀 모두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된다고 합니다.

탕 안의 돌들이 너무 뾰족해서 지압이 너무 아프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목욕을 마치고, 가뿐한 몸으로 온천을 나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유리카모메를 타고 돌아왔어요.

무인 열차기 때문에 맨앞 칸에 타면 마치 놀이기구처럼 즐길 수 있다는 독특한 장점을 가진 노선입니다.

신바시역까지 이동한 후, 신바시역에서 또 지하철 환승 없이 한번에 숙소로 이동.

숙소가 참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 행복했습니다.



이날은 점심을 뷔페로 먹었던터라, 저녁은 걸렀었습니다.

그래서 야식으로 몰아서 냠냠.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돈까스덮밥과 포도 사와를 먹고 셋째날 여정도 마무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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