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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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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대부분 어머니에게 들은 소문이라,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장례식 자체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 무사히 끝났다.



철야가 끝나자 모였던 친척들도 다들 돌아가고, 어머니와 두 삼촌만 남아 술에 취한 채 조의금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고 있던 숙모가 다가왔다.

[여보, 참배를 하고 싶다는 분이 왔는데...]



상당히 취해있던 어머니와 삼촌들은 이상하다고 여겨, 혹시 참배를 하는 척 조의금을 훔치러 온 사람은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동요하고 있었으리라.

모처럼 찾아와 준 사람인데,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을테고.



조의금도 다 꺼냈겠다, 유사시에는 삼촌들 둘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거라 낙관적으로 생각해, 그 남자를 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물어봤지만, 남자의 모습은 확실치 않다고 한다.

어쨌거나 남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중년인 것 같기도 하고, 노인인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옷차림도 올 때와 갈 때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남자의 몸에서 생선 비린내 같은 게 났던 점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웃고 있는데도 어쩐지 기분 나쁘고 섬뜩했어.] 라고 말했다.

남자는 불단에 들어서자마자, [향을 끄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묘한 말을 꺼냈다.

무례한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껏 찾아온 참배객이니만큼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는 [저와 고인 둘만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상주를 물리는 무례한 부탁이었지만, 향도 다 치웠고 조의금도 없는데다 딱히 불심이 깊은 집안도 아니라, 남자가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장지문을 닫고 옆방에서 상황을 살피는데, 경을 읽는 기색도 없다.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생각에, 유체에 해코지라도 하는건 아닌가 싶어 슬쩍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자는 할아버지의 얼굴 코끝에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대고, 빙그레 웃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그 상태로 할아버지를 만지려는 것 같았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결코 유체를 만지려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동안 보고 있자니, 남자의 중얼거림이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남자는 그렇게 분명히 되뇌이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삼촌들은 갑자기 겁이 나, 장지문을 조심스레 닫고 옆방에서 한마음이 되어 경을 읊었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쾅!] 하고 장지문이 열렸다.

남자는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돌아갔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혹시 할아버지에게 해코지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 관을 확인했다.



관 바깥쪽에는 무수한 발톱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짐승 털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발톱자국은 커녕, 짐승의 털 한 올도 묻어있지 않았다고 한다.



안도감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어머니와 삼촌들은 급히 청소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스님이 찾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스님은 [짐승 냄새가 나는구려. 만약을 대비해 돌아가신 분 방에 향을 피워두길 잘했소.] 라고 말했다.



어제 일이 현실이었구나 싶어,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나는 그런 짓을 하는 건 필시 여우일거라 여겨,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바보야, 괜찮아. 여우님은 그런 나쁜 짓은 하지 않아. 우리 집에서는 모시지 않지만, 여우님을 나쁘게 말해서는 안된단다.] 라며 나를 꾸짖었다.



[그럼 뭔데?] 라고 되묻자, 어머니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그날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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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18th]모르는 사람

괴담 번역 2023. 2. 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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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늦게 끝난 날 저녁, 퇴근길에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하지만 이미 폐점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마땅히 먹을만한 것도 없고, 피곤에 찌들어 멍하니 서성이고만 있었다.

장바구니를 축 늘어트리고 이런저런 상품들을 보며 별다른 목적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손을 잡았다...



뭐, 그래도 손을 잡힌 느낌으로 아이의 손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부모님이라고 착각한 건가 싶었다.

돌아보니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 아이였다.



미묘하게 웃으며 [착각했구나?] 라고 농담처럼 말을 건네자, 그 아이는 나를 올려다봤다.

조금 비웃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에엥?] 하고 대답해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상한 사건이 재미있어서, 그 아이와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이상한 억양으로 말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눈 앞에 여성이 나타나더니 [저기요.] 하고 아이 손을 잡고 있는 내 팔을 잡았다.

이 아이 엄마인가 싶었다.

혹시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어 변명거리를 열심히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유괴범이라고 착각당할 상황이었으니까.

그 여성은 아이를 향해 [안된다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라고 냉정하게, 조금 지겨운 듯 말했다.

[아니, 저도 어울려서 장난을 쳤으니까...] 라고 당황하면서도 아이를 옹호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라고 쏘아붙이고는, [이제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약속했잖아.] 라며 설교를 이어갔다.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아도 될텐데 싶었지만, 집마다 다른 사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멍하니 내 손을 양손으로 잡은 채로 계속 흔들고 있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그런 거 몰라!] 하고 말하더니, 손을 놓고 도망쳐버렸다.

반사적으로 아이를 쫓으려던 순간, 갑자기 주변의 소음이 한순간에 밀려들어왔다.

그제야 방금 전까지 주변 소리가 노이즈 캔슬링이라도 된 것마냥 전혀 들리지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계속 보고 있었고, 아이가 뛰쳐나간 방향도 바라보고 있었기에 바로 쫓아갈 생각이었는데,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당황하고 있었는데, 아까 그 여성이 여태 붙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아주었다.

[모르는 사람을 멋대로 따라가면 위험해요.]



그리고 그 여성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후, 계산대에서 그 여성을 다시 발견했지만, 아이는 데리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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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30년 정도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스님이었습니다.

어느 사진의 위령을 의뢰받았다고 합니다.



의뢰인은 30대의 남자로,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등산이 취미라고 합니다.

그 스님은 조상을 공경하고 추모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지만, 영혼이나 영능력, 나아가서는 귀신 같은 것까지 내심 믿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이라는 직업상, 가끔 이렇게 사진의 위령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곤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본 이른바 심령 사진들은, 풍경을 사람 모습으로 착각했다던지, 유리에 비친 사람 얼굴을 귀신으로 착각했다던지 하는 별 거 아닌 게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뢰인들에게도 그 점을 설명하며, 마음먹음, 마음가짐, 기분다스림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그 남자가 의뢰한 사진도 비슷할 것이라 여기며 의뢰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진은 의뢰인이 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에 등산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너덧명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흔히들 찍는 단체 기념사진처럼 보였습니다.



스님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위령을 하기 전에 묻고 싶은데, 이 사진의 어디가 신경 쓰여서 의뢰를 하신 건가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아마도 풍경 어딘가에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거나 하는 것이리라 여겼다고 합니다.



의뢰인은 고심하며 되물었습니다.

[그 사진에서 무언가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확실히, 처음 봤을 때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지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스님도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어딘지 모를 가벼운 위화감을 실제로 느꼈다고 합니다.

[등산 동료들과 찍은 기념 사진이지요?]

그러자 의뢰인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역시 그렇게 보이시는군요...]

그 대답이 신경 쓰여서, 스님은 다시 한번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의뢰인을 중심으로 등산 동료들이 서서, 다같이 찍은 기념 사진.



그런 구도의 사진인데, 다시 보니 오히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더 커졌습니다.

[아닌가요? 다같이 찍은 기념 사진으로만 보입니다만...]

의뢰인은 더욱 우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 사진, 셀프 타이머로 저 혼자 찍은 겁니다.]

스님은 농담이라도 하는건가 싶어 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그제야 처음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의뢰인은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표정이 어둡고 침울했습니다.

무엇보다 맑은 날씨에 찍은 사진인데도, 의뢰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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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16th]시골 학생

괴담 번역 2023. 2. 1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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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이야기다.

시골 학생이라면 보통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 혼다 스쿠터를 타고 통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다녔다.

가끔 시골에서 도시까지 30km 가까이 달리기도 하고, 더 나가서 바다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처음으로 이동수단을 얻은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대형 쇼핑몰에 있는 서점 겸 잡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이유는 두 가지.



내가 쓸 돈이 필요했고, 취업 준비 때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빨리 자립하고 싶었다.

시골에는 일자리도 적고, 월급도 높지 않다.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해봐야 밭일을 돕는 정도인데, 그것도 계절마다 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먼 곳에서라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것이었다.

스쿠터를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당연히 여름에는 타서 시꺼매지고, 겨울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온수를 틀고 욕조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스쿠터를 타는 기분만큼은 참 좋았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상쾌함이, 덥고 추운 고생은 다 잊을만큼 즐거웠으니까.



그리고 춥지도, 아직 그리 덥지도 않던 6월에 그 일이 일어났다.

아르바이트 하는 쇼핑몰에서 나와 귀로에 오른 나는, 평소처럼 스쿠터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낮이 길어졌으니 슬슬 선글라스를 끼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저녁과 밤 사이 무렵의 거리를 달렸다.



해가 막 질까 말까할 즈음,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스쿠터를 타고 있는데 선글라스를 꺼내는 것도 귀찮아 그대로 달렸다.

간선도로에서 차선을 바꿔 다리를 건너고 있던 때였다.

저녁놀이 강하게 비치며 시야를 가렸다.



무심코 눈을 감았다가, 시속 60km로 달리고 있는데다 주변에 차도 많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을 떴다.

시야가 새하얘서,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서서히 시력이 돌아왔고, 마음을 놓은 나는 그대로 다리에서 내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 다리는 예전부터 특이한 곳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위치가 특정될테니 설명은 않겠지만, 다리 중간에서 도로의 종류가 바뀌는 특이한 형태라, 지역 주민들에게는 애칭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런 이상한 도로이다보니 사고도 잦았기에, 달릴 때면 늘 조심해야 하는 도로였다.



문득 사고가 잦은 것은 햇빛이 비치는 타이밍과도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리를 내려왔다.

거기서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그 다리에서 내려가는 길은 항상 막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어째서인지 차가 한대도 없었다.

처음에는 [어라? 운이 좋네.] 라고 생각하며 달렸지만, 그 다음 교차로에도, 그리고 그 다음 교차로에도 차는 커녕 사람 한명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달려 집에 도착했다.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길가에 보이는 집들은 불이 켜져 있었고, 가로등과 신호등도 평소대로였다.

그 불빛에 의지해 집까지 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없었다.



이미 주변은 어둑어둑하다.

평소 같으면 어머니가 집에 있을 시간인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하다 싶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할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당연히 들어있어야 할 휴대폰이 주머니 속에 없었다.

당황해서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거기에도 없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두고왔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집에 두고온걸까 싶어, 일단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찾아보기로 했다.

집 전화로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고 수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에서도 진동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두고온 거 같은데... 하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던 찰나, 불현듯 위화감을 느껴 수화기를 다시 귀에 가져갔다.

통화연결음이 들리지 않고, 누군가 받은 것 같은 낌새가 느껴졌다.

누가 주워서 받았거나,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점장님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일단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그 휴대폰 주인인데요. 혹시 받으시는 분은 누구실까요?]

대답은 없다.



나는 귀를 기울이며 상대의 동향을 살폈다.

희미하게 수화기 너머의 주변음이 들려온다.

무슨 가게인지, 음악이 흐르고 있다.



클래식 음악 같지만, 무슨 노래인지 파악할 정도의 음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집 전화 번호 안내판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이런 시간까지 밖에 있고. 어디야?]

내가 말을 걸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전파가 안 좋은 거 같은데. 들려요? 여보세요?]

그렇게 내가 말을 걸자, 점차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는 ...괜찮니?]

[어? 뭐라고?]

그렇게 대답하는 사이,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와, 지진인가? 그쪽은 괜찮아?]

그러는 사이에도 흔들림은 점점 커져만 간다.

[...라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다.

지진의 흔들림이 점점 커져가서, 이대로는 위험하다 싶어진 나는 어머니에게 [미안, 일단 책상 밑에 숨어 있을게!]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트럭에 치여서 지금 구급차 안이잖아!]

[어?]

대답을 하는 순간, 내 눈 앞에 흰 옷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내 오른쪽 귀에는 수화기 같은 게 걸려있고, 나는 들것에 실려 있었다.

창밖을 보니 가로등이 빠르게 지나간다.

분명히 구급차 안이었다.



모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큰일 나버렸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렇다.



나는 귀가 도중 트럭과 충돌해 정신을 잃고 이송되는 중이었다.

그때까지 본 풍경은 아마 무의식 중에서 본 꿈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다음에 깨어난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바로 옆에서 울리는 너스 콜에 잠이 깼다.

한밤 중에 눈을 뜨니, 간호사가 와서 안심하라고 말을 하고 갔다.



다시 기절했다 눈을 뜨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사고 때문인지 온몸이 퉁퉁 부어있어 깜짝 놀랐다.

의사는 웃으며 다 나을 거라며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안와골절이 온데다 망막에도 작은 상처가 나서, 경과를 관찰하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병상의 나를 보고 어머니와 누나는 엉엉 울었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생명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원 중에도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큰 수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랬지 싶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두번 다시 이런 사고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되기 전에는 복학할 수 있었다.

학점도 꽤 떨어졌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매일 여러 곳을 다니며 설명회를 듣고, 면접을 보고, 시험을 치뤘다.

순조로이 진행될 것 같지 않은, 긴 터널 같은 나날이었다.

오사카 우메다의 지하상가를 취업준비 기간 중 틈틈이 걷곤 했다.



나에게 휴식이 되는 시간은 라멘을 먹는 것 정도라, 여러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날은 탄탄멘이었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명한 샘의 광장을 나오면 그 앞에 바로 있는 곳이다.



정통 탄탄멘 가게로 향해 주문을 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혹시 합격 연락인가 싶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입에 손을 밀어넣은 게 아닐까 싶을만큼 입이 경련을 일으켜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왜 이런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지병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귀를 기울여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들려온 목소리는 뜻밖의 것이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그 휴대폰 주인인데요. 혹시 받으시는 분은 누구실까요?]



틀림 없는 내 목소리였다.

그리고 곧 전화가 끊겼다.

그 순간, 마비된 것만 같던 내 입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바보 같은 일이라고, 착신오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탄탄멘이 나왔다.

음식을 먹으려는 순간, 내 귀에 들려온 것은 가게에 울려퍼지는 클래식 음악이었다.

모차르트 레퀴엠, 저주받은 자들에게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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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폐쇄된 터널이 있다.

과거 철도용으로 사용하던 터널인데, 지역에서는 조금 유명한 심령 스폿이다.

건설 당시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개통 후에도 터널 내에서 여러차례 인명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고가 거듭되다 끝내는 터널의 사용이 중지된 것이다.

그 터널에서,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경험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어릴 적, 그 터널은 이미 사용이 중지되었지만 봉쇄까지는 하지 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터널 옆에 위령탑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잇달아 사용 중지까지 갔다보니, 그 무렵에도 이미 터널은 지역에서 심령스폿 취급이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이던 아버지는 친구들과 함께 한여름밤, 그 터널로 담력시험을 하러 갔다고 한다.

해가 진 후 모여서 손전등과 이것저것 도구를 챙겨 터널로 들어갔다.



꽤 깊숙이 들어갔는데도 아버지는 아무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친구가 갑자기 [도망쳐!] 라고 외치기에, 덩달아 놀라 터널 입구까지 도망쳐 나왔다.

터널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도망치고 나서야, 친구는 터널 안에서 무슨 기운을 느꼈다고 말했다.



맨 뒤에 있던 아이는 무언가가 등을 차갑게 쓰다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흔해빠진 담력시험 엔딩에, 이렇다 할 체험도 하지 못한 아버지는 조금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전날 할아버지가 막차를 놓쳐 자정 지나 걸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할아버지는 술자리 때문에 막차를 놓치면 택시비를 아끼려 매번 걸어서 집에 돌아오셨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기 위해 선로를 따라, 사용이 중지된 터널을 통해서.

할아버지에게 폐터널을 지나오는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던 사이,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터널 안의 모습이 자신의 전날 기억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할아버지 말로는, 언제 그 터널을 지나가더라도 불이 환히 켜져 있고, 사람들이 안에서 공사를 하고 있기에 무섭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나가며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건네면, 얼굴이 더러워진 작업자들이 웃으며 반갑게 맞아준다고 한다.

시간대의 차이는 있지만, 아버지가 담력시험을 갔을 때는 조명은 커녕 아무 것도 없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터널인데, 할아버지가 지나갈 때마다 공사를 하고 있을리 없고, 터널에서 공사를 하는데 외부 사람을 들여보낼리 없다며 아버지는 귀신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만난 작업자들은 정말 귀신이었을까?

나는 겁쟁이라 밤에 그 터널 가까이 가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터널이 폐쇄되고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안에서 계속 공사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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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친구와 역에서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마을에 갔었다.

예전 친구가 살던 마을의 옆마을인데, 단 한번 친구가 어릴 적 이상한 행사를 봤던 기억이 계속 남아있다며,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를 초대한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밖을 걸어다닌다는, 좀비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대부분 잘못된 기억에 불과할테지만, 그 이야기만큼은 결과적으로 사실인 것 같다.

애매한 것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고,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이 줄어서 노인들만 있는 곳이라, 묵을 곳도 없어서 주민 분에게 부탁해서 하룻밤 묵었는데 거기서 보게 되었다.



가로등은 있지만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고, 위치도 꽤나 떨어진 곳이었다.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걷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는다.



죽은 줄 모르는 죽은 사람이 걷고 있다.

밖에 나가면 끌려간다.

믿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밖에 나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믿는 사람은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아침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찾아보아도 없다.

그리고 다음 죽은 자의 행진 때, 그 사람들이 섞여있다고 주민 분에게 들었다.



우리는 겁쟁이라 아무도 밖에 나가질 않았다.

아침까지 잠도 못 이루었고.

충격이 너무 커서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지만, 도호쿠 지방의 어느 마을에서 겪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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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이 겪은 이야기다.

나는 이렇다 할 체험은 한 적이 없어서, 아마 영감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영감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지금도 친척들만 모이면 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내가 2살 무렵, 내륙의 현에 살던 우리 가족은 바다가 있는 근처 현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넓은 부지의 어느 신사가 관광명소인 지역이었는데, 인파가 가득한 곳에서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자니, 점심 즈음에 이미 녹초가 되었단다.

어느 가게고 사람이 붐빈 탓에, 번잡한 관광지를 벗어나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에 들리게 되었다.



거기서 카이센동 같은 걸 점심으로 먹었다.

시골 해안 관광지에는 대개 비슷한 종류의 낡은 해물 요리집이 늘어서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을은 개중에서도 규모가 작아 관광객보다 늘상 다니는 지역주민 같아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 작은 식당가는 바다와 접해있었는데, 부두에서 50m 가량 떨어진 바다 위에는 이쓰쿠시마 신사를 방불케 하는 토리이 같은 게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물이 차 있지만, 오늘 저녁에는 썰물이라 저리로 내려가 걸어갈 수 있다오.]

가게 주인장이 토리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단골손님 왈, 근처 유명 관광지에 묻힌 이 마을의 자랑이란다.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점원이나 손님이 말 걸어오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 부모님이지만, 붙임성만큼은 좋아서 이야기를 적당히 들어주다 가게를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모처럼 왔으니 보고 가야겠다 싶어,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가 지난 신사로 돌아가 몇시간 산책을 하다, 저녁 무렵 다시 그 어촌으로 돌아왔다.

낮에 들렀던 작은 식당가는, 라디오에서 울려퍼지는 음악과 아저씨들의 사투리 섞인 말소리가 들려와 낮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를 알아차린 아저씨가 손을 흔들었다.

추천을 받았던 바다의 토리이는, 날씨와 타이밍이 좋았던 덕에 수평선에 잠기는 저녁놀에 비쳐 마치 잘 찍힌 사진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빠지자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갯벌이 드러나, 여기저기 웅덩이처럼 고인 바닷물이 저녁놀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 평범한 신발을 신은 채로도 토리이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 광경에 크게 감동한 아버지는 부두에 딸린 돌계단을 내려가 토리이까지 가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품에 안고 있던 나를 내려놓고 가방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꺼낼 참이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나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어머니의 소매를 꽉 쥔 채 내려가려 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원래 잘 우는 편이었고, 근처에도 들릴만큼 소리를 내서 울곤 했다지만, 그 때만큼은 뭔가 낌새가 이상했단다.

영화 같은 데서 무언가에게 습격당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듯, 순간적으로 엄청난 소리를 숨조차 쉬지 않고 10초 가까이 비명처럼 질렀다는 것이다.

[끼야아아아악!]



다만 그때 얼굴에서 보이는 필사적인 표정과 눈물 때문에, "울고 있구나" 라고 어머니는 판단했다고 한다.

그 지경이 되니 아버지도 이상한 비명에 놀라 어머니 쪽을 돌아보고, 내 상태를 확인하러 부두로 돌아왔다.

​​당황한 어머니가 나를 다시 안아올려 달래기 시작하자, 곧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았다.



[아니, 왜 그런담, 이 녀석.] 하고 안심하며 웃은 순간, 이번에는 아버지가 발등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내려다보니 발목부터 그 아래, 신발과 양말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썰물은 커녕 부두 바로 아래까지 시커먼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다.



돌계단은 방금 전까지 아버지가 서 있던 위치까지 물에 잠겨, 파도 소리도 똑똑히 들려왔다.

석양에 물든 붉은 하늘과 저녁놀에 빛나던 토리이는 변함 없는데, 오직 바다만이 이상하게 거무칙칙했다.

저녁놀 하늘색이 전혀 비치치 않는 새까만 수면에 군데군데 하얀 파도거품이 인다.



물이 발 아래 부두에 철벅철벅 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붉은 하늘과 검은 바다로 양분된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어? 썰물... 이었지?]



[썰물이었지... 물이 빠졌으니까 들어갔던거고...]

아버지는 자신이 착각해서 바다로 들어간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지만, 어머니도 분명히 물이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둘 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할 뿐이었다.

젖은 양말과 신발부터 갈아신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낮에 갔던 카이센동 집에서 잠시 쉴 요량으로 바다에 접한 그 가게로 향했다.



그러나 몇발짝 다가가자마자 깨달았다.

사람이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가게의 단골 같아 보이던 노인들도, 점원 아저씨도.



아까까지는 있었을 터인데,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싶어 돌아보면 라디오 소리였다.

문득 아버지의 시야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움직여서 돌아보니, 1층에는 가게고 2층은 민가인 듯한 집의 커텐이 막 닫힌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다른 가게 2층을 자세히 보니, 창문 너머 안쪽에 사람이 있었다.

다들 노인으로, 낮에 본 얼굴도 있었다.

그 몇개의 시선은 모두 무표정하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도 똑같은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토리이로 가보라고 부모님을 권했던 이들이, 감정 없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등을 밀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어제낀 이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차 있었다는 것보다도, 그 토리이에 가보라고 추천했던 마을 사람들이 다들 아버지가 바다에 들어가는 걸 보고만 있던 게 무서웠어. 사실 처음부터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게 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웃으며 이 이야기를 해줬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그대로 물에 빠졌을지도 몰라.]

나중에 찾아봤지만, 그런 토리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토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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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근무하던 회사 거래처에, 영업부 Y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일도 실수 없이 잘하는 분이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 언제나 손목시계 아래 아대를 차고 다녔다.



그리고 왼팔이 오른팔보다 조금 길었다.

첫 대면 때부터 신경이 쓰였지만, 신체적인 특징이니만큼 굳이 물어보지는 않고 지냈다.

그 이유를 듣게된 것은 함께 일하고 몇년이 지난 후에야였다.



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우리 회사와 Y씨네 회사가 합동으로 회식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내 자리는 Y씨 옆이었는데, 일 이야기나 잡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Y씨는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분이었지만, 소탈하고 좋은 분인데다 영업할 때만이 아니라 사석에서도 무척 말을 잘하셨다.



약 한시간 가량 주거니받거니 술잔이 오가는데, 우연하게도 Y씨의 아대가 좀 늘어져서 그 아래가 슬쩍 보였다.

내 문장력이 서투른 탓에 잘 표현은 못하겠지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흉터가 있었다.

켈로이드처럼 조금 부풀어 올라있었지만, 화상하고는 또 달랐다.



[Y씨, 그 흉터는 괜찮으신가요?]

술이 들어간 탓에, 나는 무심코 무신경한 화제를 입에 올리고 말았다.

[이거? 딱히 대단한 건 아니야.]



Y씨는 아대를 고쳐매더니, 모호하게 말을 흐린 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니, 내가 실언을 했다는 게 느껴져서 순식간에 취기가 달아났다.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마음 깊이 사과했다.

그 사이 아대 너머로 손목을 쓰다듬고 있던 Y씨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 귀신 이야기 같은 거 믿는 타입이냐?]



뜻밖의 질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옛날 이나가와 준지 공연도 가고 그랬으니까요.]



그러자 Y씨는 [그런가. 좋아, 그럼 말해주지.] 라며 천천히 상처의 유래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Y씨는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와 함께 담력시험을 하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담력시험이라고는 해도 본격적인 심령 스폿 같은 게 아니라, 변두리 작은 잡목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던 정도의 곳이었단다.



Y씨는 방과 후 여자친구와 함께 잡목림에 가 봤지만, 그럴듯한 건 전혀 없었다.

속은 듯한 기분이었지만, 후미진 곳에 작은 토리이와 사당을 발견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인지, 사당은 여기저기 나무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담력시험이고 뭐고 싫증이 난 Y씨는 여자친구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어째서인지 사당 앞으로 가더니, 당연하다는 듯 문을 열었다.



[뭐야, 이게? 이거 봐, 이거.]

안에는 부적과 촛대, 그리고 어째서인지 제단 위에 돌이 올려져 있었다.

크기는 주먹만하고, 딱히 별다를 것 없이 어디에나 굴러다닐 법한 돌이었다.



여자친구는 사당에 손을 넣더니 아무렇게나 돌을 쥐더니 Y씨에게 내밀었다.

[저기, 기왕 온 거 기념품으로 이거 가져갈까?]

Y씨는 여자친구에게서 돌을 받았다.



[그만두자, 바보 같잖아.]

그리고나서 원래 자리에 돌려놨으면 좋았을텐데, Y씨는 돌을 숲 안으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담력시험은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큰일이 일어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전철을 타고 통학하던 Y씨는, 그날도 평소처럼 역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둘이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랫폼에 들어서자 여자친구의 상태가 어쩐지 이상해 보였다.

술취한 것마냥 비틀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야, 위험하잖아. 컨디션이 안 좋기라도 한거야?]

걱정하는 Y씨의 물음에도 여자친구는 [괜찮아, 괜찮아.]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걸음걸이는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다.



비틀비틀대던 여자친구는, 그만 몸의 균형을 잃더니 선로로 떨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위험해!]

Y씨는 왼손으로 여자친구의 팔을 잡고, 떨어지려는 것을 겨우 막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왼손은 Y씨의 의사와는 반대로, 한번 잡은 여자친구의 팔을 다시 놓아버렸다.

여자친구는 그대로 선로에 떨어져, 역에 진입하고 있던 전철에 치이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Y씨는 주저앉아 울며 여자친구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변 사람들이 Y씨가 여자친구를 도우려 했다고 증언한 덕분에 사건은 불행한 사고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Y씨는 강한 자책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여자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이레째 되는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Y씨는, 심한 숨막힘에 눈을 떴다.

[헉, 헉, 헉...]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상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시 옆으로 누워 자려했지만, 또 숨이 막혀 깨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참을 수 없게 된 Y씨는 밤을 새야겠다 싶어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소름이 끼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목에는 손으로 조른 듯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뭐야, 이게...]



그제야 처음으로 심령현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Y씨는, 방으로 돌아가 불을 켜 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마는 덮쳐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Y씨에게, 다시금 심한 숨막힘이 찾아왔다.



이불을 걷어찬 Y씨는, 그제야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왼손이었다.

잠에 들면 왼손이 자아를 가진 것처럼 멋대로, Y씨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Y씨는 침대 옆에 있는 책장에 끈을 걸어, 왼손을 묶은 채로 잠에 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말이지, 잘때는 계속 왼손을 묶어 두는거야. 벌써 30년이 다 됐군.]

Y씨는 힘없이 웃으며 아대를 벗어 왼손목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손목이 계속 쓸리다보면 이렇게 되는거라고.]

같은 곳에 계속 쓸린 상처가 거듭되다 보면, 이렇게 뭐라 설명도 못할 흉터가 남는 것인가.

[왼팔이 조금 더 긴 것도 그거 때문인가요?]



기왕 이리된 거, 궁금했던 걸 다 물어보자 싶어 나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 그렇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른손이랑 양 발목도 묶어두고 잘 걸 그랬다 싶어.]

그렇게 말하며 Y씨는 평소처럼 껄껄 웃었다.



[씻김굿 같은 건 받아보셨나요?]

[가봤지, 가봤어. 몇번이고 씻김을 받았어. 그 사당에도 다시 가서 몇번이고 사죄했지만 안되더라. 용서해 주질 않아.]

[그때 던졌던 돌은 어떻게 됐어요?]



[찾아봤지만 결국 못 찾았어. 뭐, 특이한 거 없는 그냥 돌이었으니까. 그날 던져버리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

내가 생각할 수 있을만한 대책은 이미 다 해본 듯 했다.

나는 얕은 질문으로 안 좋은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죄송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뭐랄까, 죄송합니다. 아무 도움도 못 되어드리면서 이야기만 듣고...]

[됐어, 됐어. 딱히 숨기는 이야기도 아니고, 내가 정신만 차리면 왼손도 나쁜 짓은 못하니까.]

처음 들은 내게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지만, Y씨는 이미 이 괴기현상과 타협이 끝난 거겠지.



[뭐, 그렇지만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아마 왼손한테 살해당하는 게 아닐까 싶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Y씨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이직을 하게 되었고, Y씨와도 연락이 끊겼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Y씨가 살아계시다면 지금은 환갑을 바라볼 나이겠지.

분명 지금도 잘 때는 왼손을 묶어두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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