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jh5967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는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괴담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사람이 하는 말 치곤 웃긴 이야기지만, 저는 평소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아마 어느 순간 괴담에서 귀신으로 나오는 존재는 억울한 일로 원한을 품게 된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걸 깨달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부조리를 당하다 자살한 병사의 귀신이나, 성적을 비관하다 결국 자살한 학생의 귀신은 수없이 많지만, 재벌집 귀신이나 국회의원 귀신 얘기는 들어본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거기다가 귀신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지만,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하는 등 타인의 악의로 인한 고통을 겪은 경험은 있다보니 아마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된 것 같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러한 제 가치관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경험 중 하나입니다.
때는 약 3개월 전, 제가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혹시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뉴욕시는 크게 맨하튼, 브루클린, 퀸스, 그리고 브롱스 총 4개의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보통 사람들이 뉴욕하면 생각하는 곳은 맨하튼이죠.
저는 맨하튼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맨하튼의 월세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서 맨하튼이 아닌 퀸즈에 친구와 집을 구해 살고 있었습니다.
퀸즈라고는 해도 맨하튼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저희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약 30~40분 정도 거리였기에 통학하는 게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가지 불편했던 점은, 아마 마지막 학기여서 그랬을까요.
제가 듣던 수업 중 반 이상이 밤이 돼서야 끝이 나는 수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이라곤 해도 오후 9시 즈음, 한국이라면 돌아다니기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뉴욕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치안이 좋지 않아 조심스럽게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요새 뉴욕의 치안은 과거에 비하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고, 저도 밤에 친구들과 같이 놀러다닌 적도 많았지만, 진짜 문제는 지하철이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뉴욕 지하철은 더럽고 냄새나기로 유명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스크린 도어도 없어 위험하고, 시궁쥐가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노숙자들입니다.
뉴욕 지하철은 한국의 1호선 빌런들은 우습게 보일만큼 노숙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냥 조용히 앉아있는 노숙자들도 있지만, 지하철 자리 한 열 전체를 차지하고 누워서 자는 사람은 물론이고, 노상방뇨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끽해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정도인 한국 노숙자들과는 달리, 이곳의 노숙자들은 마약에 중독되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미국 특유의 의료제도 덕에 치료를 받지 못해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 역시도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지하철로 통학을 하며 이런 일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무서웠던 일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수업을 마치고 혼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타는 역과 내리는 역은 둘 다 출입구가 플랫폼 양 끝에 위치해 있는 형태였습니다.
쉽게 말해 지하철 맨 앞 열차쪽, 그리고 맨 뒷쪽 열차쪽에 출입구가 있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서 가까운 쪽의 출입구는 남행열차 기준으로 맨 뒷칸 열차쪽에 위치해 있었지만, 학교가 있는 역의 출입구는 맨 앞칸쪽으로 나가야 했기에, 항상 지하철 양쪽 끝으로 오고 가곤 해야 했습니다.
평소와 같이 전철 플랫폼에 내려가, 반대쪽 방향 맨 끝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플랫폼 반대편 끝에, 어느 한 노숙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타 노숙자와 다를 바 없이 꾀죄죄한 옷차림에, 면도는 하지 못한 듯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숙자들은 먼저 눈을 마주치거나 다가가지 않는 이상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기에, 저는 평소대로 그 노숙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시선을 다른곳에 두면서,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계속 시선 한켠으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몇달 전, 한 아시아인 여자가 노숙인에 의해 선로에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기에 평소에도 조금은 경계를 하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문득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습니다.
다른 노숙자들과는 달리, 그 노숙자는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 노숙자들이랑 눈을 마주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날처럼 그렇게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노숙자와의 조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플랫폼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수업에 지쳐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그냥 노숙자가 있던 플랫폼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플랫폼 반대편으로 계속 움직이니, 점차 노숙자와 거리가 가까워져 어느덧 그 노숙자와는 한 3m 정도 거리만을 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노숙자는 저를 계속 쳐다보곤 있었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을 하진 않았기에 그냥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차가 오기까진 2분 정도가 남았기에, 노숙자로부터 시선을 돌려 핸드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에어팟을 끼고 있었기에 주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문득 신경이 쓰여 고개를 노숙자 쪽으로 돌리자, 그 노숙자가 빠른 속도로 저를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그 노숙자가 저를 선로로 떨어뜨리기 위해 밀려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순간 몇달 전 살해당한 아시아인 여자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저도 이렇게 죽나 싶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부모님 생각과 오만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노숙자는 저를 밀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안이 벙벙해 있자, 그 노숙자는 마치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는 듯 누런 이빨을 보이며 기분 나쁠 정도로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툭툭 치며 농담이었다는 듯 뭐라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순간 맞장구를 치며 웃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웃음을 짜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아마 마약이나 조현병 등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고,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남자가 저한테 뛰어든 후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마치 영겁의 시간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 일은 제가 여태까지 겪은 일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목숨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정말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타인의 악의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실제로 겪고나니 너무나도 오싹해졌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존재 여부가 불분명한 귀신과는 달리, 마약에 취해있거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환각을 보는 노숙자는 흔하디 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언제든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
원한을 품고 저주하는 귀신도 당연히 무섭지만, 저에게는 이유도 없이 제게 달려드는 노숙자가 더 실질적인 위험이자 공포의 존재였습니다.
새삼 느끼지만, 저는 역시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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