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등정은 보기 드물게 사람이 많았다.
사전 회의 끝에 조를 2개로 나눠 행동하게 되었다.
소형 무전기를 나눠가지고, 1시간마다 정시에 서로 연락을 하는 통신 훈련도 겸해서.
첫날은 기가 막힐 정도로 날이 맑아, 눈밭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과 코가 바싹 마를 정도였다.
이쯤 되면 정시연락도 훈련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워진다.
그 분위기가 확 바뀐 건 몇번째인가 정시연락을 주고받으려 무전기 전원을 켠 직후였다.
[이 채널에 누구 안 계십니까? 아사히다케 등산 중입니다.]
침착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쪽에서도 답을 보낸다.
[네, 여기 있습니다. 호출하신 분 들리십니까? 감도 양호합니까?]
잠시 텀을 두고, 대답이 돌아온다.
[긴급사태 때문에 구조를 요청합니다.]
난데없이 들려온 구조요청에 다들 얼음물이라도 얻어맞은 듯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다들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인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사히다케 서쪽 능선, 산 정상 기준으로 좌측 경사면입니다.]
우리가 내일 오를 산이었다.
알고 있기로는 등산로가 있는 곳은 아니다.
다른 조에서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정시연락이 들어왔다.
조난당해 긴급구조를 요청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혼선된다.
장난일리 없다.
저쪽 조에는 조난당한 사람들 목소리는 안 들리는 듯 했다.
긴급구조 요청을 받았다고 알리고 정시연락을 종료한다.
능선 좌측이라고는 들었지만, 정확한 위치 파악은 안된 터였다.
[구체적으로는 어느 부근입니까?]
[어... 산 정상으로 향하는 최종 봉우리 바로 아래입니다.]
여기서 몇km 정도만 가면 된다.
가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겠지.
[어떤 상황입니까? 인원수도 알려주세요.]
[남자 다섯 명이고 텐트를 치고 있습니다.]
[실족으로 인한 부상인가요?]
[아뇨, 어젯밤은 야영했고, 멤버 중 한명이 피로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상했다.
이렇게 맑은 날씨인데, 멤버 중 한두명이 하산해 구조 요청을 하면 하루 안에는 구조될 터였다.
왜 움직이질 않는거지?
[어젯밤부터 폭설이 내려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아직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서 저희 쪽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
우리는 다들 놀라 소리를 쳤다.
폭설이라고?
너무 맑아 반사광 때문에 설맹이 될 지경인 이 날씨에?
다섯명.
무전기.
폭설.
아사히다케.
그제야 나는 떠올렸다.
그들이 누구였는지를.
분명 조난사고였다.
악천후를 무시하고 무모하게 산행에 나선 끝에 조난당했던터라, 산악잡지에서도 비판적인 칼럼이 여럿 기고되었으니까.
나는 조원들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무전기 안에는 그때 눈 속에서 구조를 원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잠시 무전기를 응시하고, 나는 말했다.
[전원 끄자.]
내 말에 다들 아무 말 없이 동의하고, 곧 우리 무전기는 조용해졌다.
그들이 보내오는 구조요청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그들이 말했던 정상 오르기 전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다.
담배를 경사면에 던지고, 위스키를 한컵 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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