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320x100
300x250




문화인류학 강의를 하러 온 선배에게 들은 악령 관련 이야기입니다.

츄부지방(中部地方) 어느 대학 민속학 연구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씌인 악령에 관해 조사하던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 연구팀에서 8명의 학생이 현지조사를 나가게 됐습니다.



각각 담당을 결정하게 됐죠.

A는 이번이 첫 현지조사였기에, 악령 중 가장 유명한 견신[각주:1]을 지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그걸 말렸습니다.



[견신은 아직 A 자네가 맡기에는 이르네. 무서운 존재거든. B군과 C군이 맡아주지 않겠나? A 자네는 여우귀신 쪽으로 가게나.]

그리하여 A는 D와 함께 여우귀신[각주:2]이라는 잘 알지 못하는 악령을 조사하게 되었고, 선배인 B와 C가 견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A는 녹음용 테이프 같은 취재 도구를 가득 준비해, D와 함께 키타칸토(北関東)의 어느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무렵은 가을이고 태풍 예보가 나온터라, 여기저기 농가에서는 태풍을 대비해 여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찾아가는 바로 그 집, 악령 들린 집만은 아무 것도 하지않고 한가로이 있어 이상했다고 합니다.

여우 들린 집에서는 친절하게 A 일행을 맞이해, 훌륭한 다다미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큰주인님으로 불리는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는 바로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여우귀신이라는 것은 손을 타고 넘을 정도의 작은 여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듣던 와중,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을 멈췄습니다.

[이야기를 하니 저 봐, 여우귀신이 나왔군.]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통풍창을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A와 D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우 들린 집은 교수님도 신세를 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날도 저녁식사와 방을 그냥 내어주었다고 하네요.



밤이 깊어져 녹음도 끝날 무렵, A는 태풍이 걱정되어 큰주인님에게 괜찮을지 여쭈었다고 합니다.

큰주인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람도 구름도 집을 피해서 지나갈테니 말이야.]



이튿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는 태풍 흔적이 엄청나게 남아있었지만, 여우 들린 집에는 나뭇잎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실로 돌아와, 교수님과 다른 멤버들 앞에서 녹음해 온 테이프를 재생했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째서인지 녹음한 큰주인님 목소리는 안 들리고, 기묘한 소리가 잡힐 뿐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게.]

교수님의 말에, A는 녹음 테이프를 감았다가 다시 재생했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때 여자 선배가 [멈춰!] 라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 그건 빙의했을 때 나는 소리야!]



그 선배는 민속학과 더불어, 전통극인 노[각주:3]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노에서 노래하는 빙의의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는 소리가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의 역사는 무로마치 시대[각주:4]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옛 사람은 괴이의 소리를 알고 있던 것일까요.



[괜찮아!]

다들 아연실색해 있었지만, 교수님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유감이지만 이건 묻어두도록 하세.]



그 후 A와 D는 적어온 기록을 정리하기만 하고, 발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견신을 조사하러 간 팀도 있었습니다.

B와 C는 견신 들린 집에 찾아갔지만, 가는 도중 신이 나 있던 B가 갑작스레 그만 두자느니, 돌아가자느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답니다.



자신이 죽는 꿈을 꿨다고 하면서요.

C는 B를 열심히 설득해, 견신 들린 집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훌륭한 분위기의 노인이 두 사람을 맞이해 여러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B는 얼굴을 푹 숙인채 말 한마디 없어서, C는 무척 곤란했습니다.

허나 노인은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윽고 준비된 다다미방에 안내되어, 두 사람을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더랍니다.

밤이 꽤 깊어질 무렵, 복도로 난 미닫이문에서 바스락바스락, 무수한 동물이 모여드는 기척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는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신호였던 것처럼, 미닫이문이 잇달아 찢어지더니 쥐같은 것이 끝도 없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C는 정신이 없어 눈을 꽉 감고 있었지만, 문득 B가 신경 쓰여 눈을 떴습니다.

B는 멍하니 텅빈 눈을 한채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이튿날 아침, 미닫이도 이부자리도 다다미도 난장판이 된 방에서, B와 C는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견신 들린 집의 젊은 며느리가 아침 식사가 준비됐다고 부르러왔습니다.

방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C가 횡설수설해서 설명하자, 젊은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습니다. 처음 오신 손님이 계실 때는 자주 그렇거든요.]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다른 다다미방으로 짐을 옮겨주었습니다.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인사를 올리자, 노인은 [아무래도 여러분은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마음에 걸리는 소리를 하더랍니다.

두 사람이 도시로 돌아오자 이미 밤이었고, 그대로 B와 C는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이튿날 아침, 대학에 나온 C에게 B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눈을 부릅뜬 채,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인은 심장발작.



B의 장례식이 끝난 뒤, C는 연구실에 모인 동료들 앞에서 울며 소리쳤습니다.

[견신 때문이야! 그 녀석, 정말 가기 싫어했는데 내가 억지로 끌고 간 바람에...]

그 후 C는 박사 과정을 밟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의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지조사를 나갔다가 행방불명 되어, 벌써 1년이 넘도록 소식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1. 犬神, いぬがみ. 인간에게 씌이는 개 귀신의 일종으로, 일본 서부에서 매우 유명하다. [본문으로]
  2. オサキギツネ. 인간에게 씌이는 여우귀신의 일종. [본문으로]
  3. 能, のう. 일본의 전통극으로, 가면을 쓴 채 말없이 진행되는 무언극. [본문으로]
  4. 室町時代. 일본 역사 중 무로마치 막부가 통치하던 시기. 1336년부터 1573년을 뜻한다. [본문으로]
  1. 와아!! 보통 여우가 더 유명한줄 알았는데.. 견신도 무시무시한가봐요~ 주인장님 댓이 없어서 쪼끔 아쉽네요..ㅠ
  2. 나쁜교수 2017.01.16 01:30
    교수나빴어요
  3. 알티도야지 2017.01.16 09:58
    주인장님 댓 다시 달아주심 안되나요? 그거 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4. 흑요석 2017.01.16 12:31
    정적인 이야기인데.. 무척 박진감있게 읽었습니다.
  5. 개연성 2017.01.16 14:40
    개연성 같은건 1도 없는 괴담이네요 괴담들 질이 엄청 떨어진듯...
  6. 슬림핏 2017.01.16 19:30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알게되서 보는데 식상하지도 않고 재밌어요 ㅋㅋ
    오늘도 그냥 보고 가려다 왠지 감사인사 드리고 싶어서요. 정말 꾸준하시네요 ㄷㄷ;
  7. 도미너스 2017.01.17 07:14
    마음에 안든다고 죽이다니...
    무서운 견신이네요. 차라리 여우가 낫네요.
    집도 지켜주고 말이죠.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8. 이누가미는 그 강력한 요력때문에 음양사들에 의해 식신으로서도 쓰여졌다던데, 역시 양날의 검인 걸까요? 다뤄지지 못하는 힘은 그저 없느니만 못한 요괴에 지나지 않는군요.
  9. 이해안되긴하내 2017.02.07 01:29
    개연성없다는말도 공감은함 아무튼잘보고갑니다
  10. 노 라는게 뭔가요
    한자라도 알면 짐작해볼텐데 감이 안오네요
  11. 소설에 쓸 캐릭터를 만들기위해 이누가미와 식신에 대해 조사한 제가 이야기를 해보죠.
    음양사의 식신은 요괴를 사로잡거나, 또는 쌍방향의 합의하에 식신이 되는 경우도있고
    또는 직접 사람이 식신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누가미를 만드는방법은 그중에서도 악질에 속합니다.
    가장 잘알려진 방법은, 굶주릴대로 굶주린 개를 참수하는것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특히나 이누가미가 될 개가 사랑을 받고 자랄수록. (즉 동네에 그러한개를 음양사가문이 사들여서)
    그리고 참수하기전에 진수성찬을 대접하는듯히 하다가 개가 입을 대기 직전에 참수할때가 가장 효과적이라고합니다.
    이렇게 이누가미를 만드는경우 음양사는 대부분 이누가미를 주살을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평범하게 식신으로써의 대접을하는것으로 해코지를 피하면서 이누가미를 부려 저주를 거는것과
    또는 이누가미의 생전의 목을 주살의 대상이 평소에 잘다니는 거리나, 또는 집에 묻는것으로 저주를 거는방법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식신이 아니라 완전히 무차별테러 라고도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이누가미가 무서운이유는 만들어질때의 원념때문입니다. 어쩌다보니 그러한 존재가 된것과.
    악의를 가지고 원한을 최대한 품게만들고서 만들어진 존재는 사람을 해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겁니다.

    조금 어두운이야기인 고로 마지막은 밝은 이야기를 하도록하죠.
    이누가미를 만드는 방법은 위에쓴 방법보다는 마이너하고 더 손이가는 방법이 하나더있다고 합니다.
    이누가미는 모계혈통으로 유전이 가능하다고 일컬어집니다.
    만드는 방법은 개를 최대한 사랑을 주면서 키우는것으로, 그개가 위의 방법과는 전혀 상관없이.
    천수를 누리고 죽거나 또는 어쩔수없는 사고를 당해서 죽었을경우, 개는 수호신적인 존재로써 이누가미가 되는경우가 있다고합니다.
    물론 주살을 하기위해 만든 이누가미랑은 다른 존재라고 해도 될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누가미가 만들어졌으면 그다음은 그 개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만으로 이누가미를 만들수있다고합니다.
    그런고로 개를 키우는 여러분들, 좀더 견공을 사랑해주도록합시다.
    언젠가 자신의 곁을 떠날지몰라도 그아이가 여러분을 지켜주러 남아있을지 모르니까요.
  12. 인생무상 2017.05.07 22:37
    댓글을보니 세상에 인간처럼 사악한존재는 없단걸다시느낍니다. 하는짓이 가끔 우주급사탄이 아닌가. 어떻게그런짓들을 한것인지
  13. 인생무상 2017.05.07 22:42
    혹여나싶어 써보는것이지만, 저주를했을때 그 반작용을막는 일종의 꼼수들에대해 이런저런 방법들이 있다고들었습니다만..효과는별로없는듯... 하늘에다 큰죄를지으면 빌어도소용이없댔는데 그러니 애초에 안하는것만이답..옆나라에 악의가있는건아니지만 가끔 저는 개인적으로 그나라역사에 너무 이런저런 살생이 많았어서 사건사고들이 더 자주나는건 아닐까 하는생각이 듭니다.아... 이나라는 개를많이 죽여서 그렇다는 소문이있지요.(?)
  14. 지나가던놈 2018.04.19 21:08
    노(能)는 무언극이 아닙니다. 속터질 정도로 느릿느릿하긴 하지만 노랫가락 형식의 대사가 있고, 춤도 춥니다.

    그리고 “오오오오오”라는 소리가 빙의될 때 난다고 했는데, 여태까지 노를 여러편 감상해 봤지만 빙의될때만 나는 특이한 소리 같은건 없네요. 뒤에 앉은 악기 연주자들이 추임새를 “오오오오”, “이요오옷” 하는 식으로 좀 이상하게 넣어서 그런 오해가 퍼진건지도 모르겠네요. 추임새도 빙의될 때만 넣는게 아니고 북을 칠때마다 사이사이에 자주 넣어줍니다. 애초에 노라는게 유파마다 노래도, 춤도, 악기 연주도 조금씩 다르다보니 사실 같은 작품이어도 다른 유파의 것이면 아예 다른 추임새를 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빙의될 때만 내는 소리가 있다’라는건 사실무근에 가까운 겁니다. 아무래도 괴담 원작가분도 노가쿠에 대해 잘 모르셨던 듯...

    https://youtu.be/bKN_c4stmvA&t=17m48s
    이해를 돕고자 노 작품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칸제류(観世流)의 후타리시즈카(二人静)라는 작품에서 여인이 빙의되는 장면(17:57부터)입니다. 딱히 특별한 효과음 같은건 없습니다.
  15. 댓글을 보니 다들 한 상식하시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