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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

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2017. 12. 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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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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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




롱펠로는 사형일을 목전에 둔 죄수이다.


이제 롱펠로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이란 사형 직전에 먹을 메뉴를 미리 상상하는 것뿐이다. 그런 롱펠로가 오래전부터 면회를 거부해왔던 한 사내와의 면회를 승낙했다. 사내는 아주 오래전부터(사실 롱펠로가 교도소에 수형되고 직후서부터) 지금껏 꾸준히 면회 신청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롱펠로는 어찌하여 갑작스레 면회 신청을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그 사내가 누구이길래 롱펠로는 지금껏 면회를 거부해왔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죽음을 앞둔 자의 단순한 변덕과 유희.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그 사내는 바로 롱펠로가 죽인 두 자녀의 아빠.


엄마의 승진을 축하하고자 서프라이즈 선물을 사러 동네의 중고 물품점을 향하던 어린 남매를 차량 납치, 납치 당일 남매를 교살한 후 지하 육류용 냉동고에 시신 유기, 이후 한 달간 총 4번에 걸쳐 남매의 부모를 협박해 14만 달러를 갈취, 결국 부모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사건에 개입해 체포. 이게 롱펠로의 죄질이다.



"..지난달 인터넷 뉴스에 나온 사진보다 여위어 보이는군, 롱펠로."


"뉴스보다 훨씬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니까. 여긴 SNS를 할 수가 없거든. 봐봐, 지금은 앞머리가 더 벗겨졌지? 그리고 요즘 소식하고 있어. 최후의 만찬을 더 기껍게 만끽하려고 말이야."


"..왜 갑자기 면회를 승낙했지?"


"이봐, 그럼 너는 내가 매번 거절하는 데도 어째서 포기하지 않은 거야? 내가 변덕이라도 부릴 거라고 희망한 거야? 뭐, 그렇다면 축하해. 자네 감이 맞았어."


"왜 죽인 거지?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었어! 왜 죽인 거야!"


"얼마든지 주기는, 경찰에 신고했잖아.."


"네가 29일 동안 내 아이들의 목소리를 첫 통화 말고는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으니까! 단 한 번도! 왜 죽였어!"


"왜 죽였냐니.. 그야 계속 울어대니까. 이웃이 눈치라도 채면 어떡하라고? 그리고 난 시끄러운 게 세상에서 제일로 싫어."


"...."


"이봐봐, 당연히 예상은 했지만 말이야.. 그런 말만 할 거면 이만하겠네. 스트레스는 건강에 좋지 않거든. 자네한테도, 나한테도."


"..롱펠로, 환생이란 걸 믿나?"


"뭐? 이 친구, 맛이 갔구먼."


"사람의 영혼은 그 육신이 다 하고 나면 새로운 육신으로 삶을 시작해."


"그럼, 어째서 우리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데?"


"새 생명으로 태어난 직후 아주 일시적으로만 기억하는 거니까. 곧 동시에 전생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거지. 새 시작을 알리면서 말이야. 하지만 가끔은 몇 년이 지날 때까지도 전생의 기억을 유지하기도 해. 그리고 그러한 환생은 때론.."


"그래? 그럼 네 자식들에게 잘 된 거구먼. 적어도 이번 생에는 나를 다시 볼 일이 없을 테니까."



롱펠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의 교도관을 한 차례 바라보곤 몸을 돌렸다. 동시에 맞은 편의 사내는 자신을 제지하고 나선 다른 교도관 너머로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롱펠로! 널 기억하겠어! 네 그 눈망울을 내 심장에 박아놓으마! 네가 환생해서 어디에 있건 한눈에 알아보도록!

롱펠로! 내 말 똑똑히 기억해! 널 기억하겠어!"



롱펠로는 돌아보지 않은 채 중지를 치켜들었고, 그게 롱펠로와 이 사내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0달러를 꽉꽉 채운 롱펠로 최후의 만찬은 다음과 같았다. 꽃등심 스테이크, 물론 미디엄 레어로. 감자튀김 듬뿍, 물론 얇게. 소시지구이, 물론 스모키하게. 디저트는 저먼 초콜릿 아이스크림, 물론 1.5 쿼터 통들이로.


그리고 롱펠로는 약물 투입으로 아주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교도소 내에 떠도는 도시 괴담, 즉 재수가 없으면 바로 죽지 않고 1시간 넘게 발작 증세가 이어진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롱펠로는 10분도 채 안 되어 잠자듯 세상을 떠났다. 롱펠로의 마지막 기억은 눈이 감기면서 동시에 아주 많은 빛이 내리쬐던 기억이다.


한편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으나 롱펠로는 감긴 눈꺼풀 바깥으로 그 빛들이 여전히 가득하게 내리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빛들이 사라지고.. 어째서인지 롱펠로는 울고 있었다.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롱펠로의 감긴 눈앞으로 의료용 캡을 눌러쓴 한 남자의 얼굴이 들이밀어 졌다. 남자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러한 환생은 때론.. 전생에 자신과 연이 닿았던 이와 가까운 사이로 이루어지곤 하지."



감히 사람이 품을 수 없는, 그런 슬픔과 환희가 뒤섞인 표정을 한 남자가 재차 말을 이었다.



"우린 아주 오래도록 함께할 거다, 롱펠로."








-fin-




















후기


나는 독자의 바람이 담긴 그릇에다 침을 뱉는 걸 좋아한다. 물론 몰래 뱉어야 한다. 아니면 그러려고 한 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뱉거나.




http://blog.naver.com/medeiason/22115714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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