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세이브 데이터를 지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시 파는 중고 게임가게가 많았다.
슈퍼패미콤용 RPG 만들기를 샀더니, 전 주인이 만든 게임이 있길래 재미삼아 해봤다가 후회했던 적이 있다.
그 무렵 우리 지역에는 RPG 만들기 유행이 돌고 있었다.
성질 더러운 체육 선생님이 최종보스인 게임이나, 인기 있는 여자아이랑 결혼하는 중2병스러운 내용 같은.
동네에서나 통할법한 소재의 "희귀게임" (당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만들기가 유행이었다.
다른 학교랑 교환 목적으로 만들어서 중고로 사고팔고 하는게 반복되다보니, 곧 온갖 희귀게임들이 돌아다니게 됐다.
그리고 개중에는, 증오와 원념을 품고 만든 작품도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하필 그 중 하나를 손에 넣은 탓에, 곤혹을 치루고 말았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손을 거치느라 너덜너덜해진 케이스를 열자, 카트리지 뒤에 직접 만든 스티커 라벨이 붙어있었다.
[약한 꽃·뿌리가 지닌 독] 이라는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어쩐지 중2병 느낌의 제목에 기대가 더해졌다.
게임 밸런스는 나쁘지 않았고,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며 빠져들었다.
하지만 중반 무렵부터 어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기분 나쁜 할머니나 점원이 중간 보스가 되더니, 인근의 등교거부자나 행방불명 된 양아치를 죽이러 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스토리는 이 동네에 "하얀 그림자" 가 나타나게 되어, 그 그림자가 살해당하는 사람 안으로 파고 든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PRG 만들기" 를 통해 자신이 살해당하는 시나리오를 직접 플레이하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혼을 뜯어낸다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게임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만둔 그 날부터 꿈에 흰 연기 같은게 쫓아오게 되었다.
잡히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어온다.
[너는 어떤 방식으로 죽기를 원하는가?]
게임을 몇번이고 다시 중고 게임가게에 내다팔았지만, [이거, 네거지?] 라며 친구를 통해 반드시 내게 돌아왔다.
꿈속의 하얀 그림자에게 습격당해, [XX의 숨통을 끊은 건 네놈이다!] 라던가, 지금까지 쓰러트린 캐릭터(실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랜덤으로 나타나길 어언 20일.
나는 무심코 철도 건널목에 발을 들여놨다가, 내려온 차단기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하얀 그림자가 머릿속에서 크게 소리를 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렵에는 아직 살아계시던, 시골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순간, [빙의체를 두거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방에서 게임 카트리지를 꺼내 선로 위에 두고, 달려 도망쳤다.
수십초 뒤, 열차가 지나가며 카트리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하얀 그림자가 꿈에 나왔다.
[곧 있으면 다 죽여버릴 수 있었는데!] 라며 적반하장으로 날뛰었지만, 마지막에는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갈가리 찢어지더니, 파란 불꽃 속에 불타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시골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와서 잠에서 깼다.
[이쪽 절에서 씻김을 해준다니 묵으러 오렴.] 하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다음날 귀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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