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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를 동경하던 나는, 앞뒤 생각 않고 오키나와행 여객선에 올라탔다.

베트남 전쟁 말기, 오키나와에는 미군 불하품이 대량으로 나돌고 있었다.

나는 군복 바지와 전투화를 싼값에 손에 넣었다.



짐짓 미군 기분을 내며 걷고 있는데, 초면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헤이, 브라더! 이리 보러 오라고!]

가게 없이 땅에 돗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는, 흑인 같은 일본인 남자였다.



간단한 영어를 섞어, 잔뜩 수상한 토크를 이어갔다.

그래도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라,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의 이름은 톰.



미군 기지에서 일하던 여자를 현지처로 삼는 건 흔한 이야기다.

톰도 그런 성장과정을 거친 듯 했다.

내가 히피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톰은 더플백과 침낭을 건네줬다.



나는 오키나와 본도를 거쳐 이시가키 섬, 이리오모테 섬으로 향했다.

이리오모테 마을 반대편에는 히피들이 모이는 해변이 있었다.

그곳을 목표로, 이리오모테 종단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리오모테에는 섬을 일주하는 도로가 없었기에, 그 해변까지 가려면 정글을 헤치고 가야만 했다.

정글에서의 첫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엄청 무서운 일을 겪었다는 느낌만은 남아 있었다.



침낭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났다.

다음날 역시 악몽을 꾸었다.

역시 강한 공포감을 느낀데다, 그날은 엄청난 고통까지 함께 찾아와 눈을 떴다.



해변까지는 사흘에서 닷새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매일밤 꾸는 악몽 때문에 좀체 발걸음이 나아가질 않아 일정은 지연되고 있었다.

정글에서 일정이 지연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다.

나는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흘째 밤, 역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고통부터 찾아왔다.

배가 타는 듯, 뜨겁고 날카로운 게 박힌 것 같은 아픔이다.



오른손은 뜨거웠다 차가웠다, 쿵쾅쿵쾅 통증이 멈췄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주위는 무언가 외치고 있어 시끄럽다.

내 몸이 둥실 공중에 떴다.



아니, 몇명이 나를 옮기고 있는건가?

그리고는 귓가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영어 같았다.



내가 끄덕이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잦아들고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다시 귓가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내가 끄덕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걸 몇번이고 반복했다.

눈을 뜨자, 처음으로 꿈 속의 광경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좁은 시야 가운데, 주변은 흑인 병사들 투성이.



그 중 한 사람이 키스라도 할 것 마냥 가까이 얼굴을 가져오고, 다음은 귓구멍을 보인다.

그 남자가 고개를 가로젓고, 나는 강제로 눈이 감겨진다.

무언가에 갇히고, 지퍼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후로부터는 더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완전한 무를 느꼈다.

완전한 무? 아니, 다르다.



이건 죽음, 죽음이야!

그렇게 이해한 순간, 눈을 떴다.

그리고 해변까지 며칠 더 걸려 가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더 죽음을 체험했다.



해변에 도착하자, 수많은 히피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 다들 맨몸이다.

나도 발가벗고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해변에 오고서도 악몽과 죽음의 체험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체험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말했다.



[네가 자는 그 침낭, 그거 영현백이야.]

그제서야 나는 겨우 깨달았다.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던 것이다.



왜 빨리 가르쳐주지 않았냐고 묻자, 죽을 때 맞는 대량의 모르핀이 주는 쾌감을 즐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히피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라고 한다.

영현백 드러그라고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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