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년 전 친구가 겪은 이야기.
공양 삼아 올려보는 것이다.
내 친구, N은 역사를 좋아해서 옛날부터 취미 삼아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무렵 그녀가 쓰고 있던 것은 어느 성이 함락될 당시의 이야기였다.
성의 함락 당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희생됐는데, 소설은 그 성에 살고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었다.
다만 당초 N은 낙성 뒤 살아남은 주인공의 여생 이야기를 쓰려고 했었고, 성이 함락된 것 자체에는 크게 파고들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N이 소설에서 낙성 부분을 집필하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작은 괴이가 일어났다고 한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추위가 끊이질 않거나, 아무 것도 없는 아파트 옥상에서 한밤 중 이야기소리와 발소리, 신음소리가 나기도 하고.
컴퓨터에서 소설 파일이 사라진 적도 두어번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윽고 N은 낙성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이변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 삼아 원고에서 낙성 부분을 지우고 나니 이변이 그쳤지만, 원래대로 되돌리면 똑같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N은 제법 감이 좋은데다 종종 이상한 일들과 마주치는 사람이라, 이 시점에서 섣불리 건드리면 안되는 소재인 것 같다고 여겼다.
하지만 N은 아무래도 이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다지 유명한 성은 아니라 직접 성 터에 찾아간 적은 없었지만,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데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터였다.
이야기의 줄거리도 믿기 힘들만큼 순조롭게 구성되었고, 상상해서 묘사한 것이 나중에 보니 실제 기록과 일치하는 일도 몇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N 나름대로는 운명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N은 이 소설에 상당히 기합을 넣고 있었고, 결코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한동안 N은 괴이를 무시하며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해 오봉.
낙성한 날이 그로부터 한달 정도 뒤인 탓인지, N은 묘하게 쫓기듯 소설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심한 더위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탓에 잠시 쉴 요량으로 N은 방에 누웠다.
그러는 사이 잠에 들고 말았는데, 묘하게 현실적인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 속에서 N은 어느 산에 있었다.
이야기의 무대 속에 등장하는 성과 꽤 가까이 있는, 관광명소인 산과 닮은 곳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 매점이 있었다.
매점 뒤에는 경사면이 보였는데,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녹지 않은 눈이 꽤 쌓여있었다.
눈이 있는 쪽 근처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이 잔뜩 몰려 있었다.
하지만 미끄러질 수 있어 위험하다며, 제대로 된 등산화를 신지 않은 사람들은 담당자가 막아서고 있었다.
N은 등산화를 신고 있었기에, 그대로 지나갈 수 있었다.
[위에는 지장보살님이 계시니까 합장하고 와 주세요.]
담당자의 말에, N은 별 생각 없이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쌓인 경사면을 올라가자 조금 평평한 곳이 나왔다.
하지만 지장보살은 보이질 않는다.
N이 주변을 돌아보니, 50m 정도 떨어진 곳에 간소한 나무 문이 있는게 보였다.
문 안쪽에는 길이 이어져 있는 듯 했다.
[아, 저쪽인가.]
N은 그리로 잠시 걸어가다, 흠칫 멈춰섰다.
문 아래에 아이가 앉아서 N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N의 말에 따르면, 중국 접시에 장식으로 그려진 어린 아이 얼굴과 닮았었다고 한다.
수수한 옷을 입은 아이 같으면서도, 싱긋 웃는 석상 같이도 보였다고 한다.
[지장보살님이라는 건, 저걸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걸어가려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다시 한번 문에 있는 아이를 보자, N은 갑자기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저 아이 외톨이구나, 불쌍하게도.
지금 바로 다가가서 안아줘야 해!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지금 당장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냉정한 성격의 N은, 아무래도 낯선 감정 속에 멈춰서 있었다.
문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서 확실히 껴안거나, 단호하게 한걸음도 내딛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N은 곧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주변 일대가 모두 설원이었는데, 그 문 너머에는 전혀 눈이 쌓여있지 않았다.
N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아까까지는 없었던 큰 지장보살이 서 있었다.
여러 사람이 향과 꽃을 든 채 참배를 하고 있었다.
[뭐야, 저 쪽에 있었네?]
N은 아이에게서 등을 돌리고 지장보살을 향해 길을 거슬러 갔다.
도중 뭔가 아쉬운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과감히 발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지장보살 참배 줄에 선 N은 곁눈질로 아직 문 아래에 아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참배객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아이가 있는 거 보이세요?]
[응? 아이? 그런 거 없잖아?]
[아아, 역시 그렇구나.]
그래서 N은 지금까지 지장보살이 보이지 않았던 게, 그 아이가 보이지 않도록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N은 지장보살에게 저 아이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손을 모은 뒤, 눈 덮인 경사면을 내려왔다.
경사면을 내려와 눈 쌓인 곳으로 나오자, 담당자가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말을 걸어왔다.
N은 [천만에요.] 하고 대답한 뒤 문득 산을 돌아보고 깨달았다.
이 산은 죽은 자가 모이는 산이라는 것을.
이 산이 실제 성 근처에 있는 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종류의 산이라는 걸, 그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고 한다.
소름이 끼침과 동시에 N은 눈을 떴다.
가위에 눌렸던지 식은땀 투성이라,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멎질 않았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N은 단순히 추석 무렵이라 그런 가위에 눌린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꿈에서 깬 N은 [K다. K에 가야겠어!] 라고 아무 맥락 없이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K라는 것은 교토에 있는 어느 신사였다.
마침 칸사이 출신이었기에, 귀성을 겸해 불제라도 받을 겸 가게 되었다고 한다.
왜 K였는지, N은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고향으로 귀성하고서도 N은 마음에 켕기면서도 그 소설을 계속 써내려갔다.
알 수 없는 소리나 신음 같은 괴이는 고향에서도 변함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K를 찾아 참배하고 난 뒤 몸이 가벼워져서, 교토에 머무르는 사이 이것저것 생각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성 성주의 묘가 있는 절에 무심코 참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N은 나를 동행 삼아, 낙성과 관계 있는 사적에 함께 가기도 했다.
나를 데려간 이유는 취향이 비슷한데다 영감이라고는 일절 없으니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나.
사정을 들은 내가 [그럼 그 성에 직접 가보는 건 어때?] 하고 묻자, N은 [아직 너무 이른 거 같아... 나한테는 아직 그 꿈이 생생하니까 무서워서 갈 수가 없어.] 라고 대답했다.
만약 꿈속에서 본 산이 성 근처에 있는 산이라고 하면, 낙성 전 전투로 수많은 백성과 패잔병이 숨어들은 산이다.
N은 성터에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그 산에는 나도 N도 어릴 적 학교 소풍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장보살이 있었는지는 우리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생각한 건데, 지장보살님은 보통 아이들을 지켜주는 분이잖아. 만약 지장보살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 아이한테 이끌려서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두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을지도 몰라. 지장보살님이 도와주신 거 같아.]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그 성에서는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적군의 난폭한 처사를 두려워하여, 성 인근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벼랑 아래에는 채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여성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삼일밤낮 동안 끊이지 않아,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고 전해진다.
교통의 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나그네들은 그 근처에 다가가기조차 꺼렸다고 한다.
N은 이렇게 분석했다.
[희생자 중에는 우리처럼 젊은 나이의 여성이 많았지. 내가 쓰고 있는 건 그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고. 옛날이었으니 희생자 중에는 우리랑 나이가 비슷하더라도 이미 아이를 가진 젊은 어머니도 많았겠지. 그런 어머니나, 어머니를 그리던 아이의 영혼이 싱크로했던 건 아닐까.]
N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어딘가 현대의 감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아. 전쟁의 희생양이 된 불쌍한 여성들이라고,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그 때문에 이야기가 어정쩡해진 탓에, 영혼들이 불쾌해 한 걸지도 모르겠네. 아예 쓰지 않거나, 쓸거면 제대로 파고 들어서 그 입장에 선 뒤, 같은 시선에서 써야만 할 거 같아.]
N은 그 부분부터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이, 밤중에는 수많은 발소리가 들리고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데이터가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괴이는 이어졌던 모양이지만, 부적을 PC 위에 올려두고 계속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글의 방향성이 달라지자, 괴이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침내 성주에 관해 쓸 때는 다시 조금 괴이가 활발해졌다고 한다.
산속에서 계속 도망치는 꿈이나, 깊은 산 속 암자에서 홀로 낙성에 관계된 이들의 명복을 비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국 글을 다 쓸 무렵에는 괴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 시작할 때의 구상과는 꽤 다른 이야기가 되었지만, N에게는 상당히 공부가 된 듯하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걸까.] 하고, 글을 마친 뒤 N은 문득 생각했다는 것 같다.
작년 낙성일을 앞두고, N은 성터에 꽃을 바치러 갔다.
딱히 이상한 일도 없었고, 고요한 성터를 거니는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한다.
N은 지금도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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