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을 적에 게임 잡지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당시에는 게임 업계와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었기에 업체 이름 같은 것을 말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회사 자체도 망했고 시간도 꽤 흘렀으니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 당시 우리 잡지에는 이른바 비법 코너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게임의 묘수나 버그, 비법 같은 것을 모은 책을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최신 게임 뿐 아니라 패미콤이나 메가드라이브, 혹은 그보다 훨씬 마이너하거나 진작에 망해서 사라진 게임의 기술까지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에 넣은 비법에 대한 독자 질문은 신인 편집자가 전화로 대답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책에 적혀 있는 한 어떤 게임이라도 무조건 대답을 해주는 것이 신조였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독자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게임은 세가 새턴의 고전강령술 백물어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게임에 들어있는 101번째 괴담을 어떻게 해야 실행할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100개의 이야기를 모두 보면 특전으로 딸려 나오는 것이었을 겁니다.
담당자는 그것을 전화로 이야기했지만, 전화를 건 독자는 [그렇지만 안 나와요. 초판에만 들어있거나 한 거 아니에요?] 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 우리가 확인해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저희가 확인해 볼테니까, 다시 전화 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데 내일까지 좀 부탁드릴게요.]
전화를 끊었을 때는 저녁 6시였습니다.
독자는 다음날 오후 4시에 전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게임을 구하고, 100화를 모두 플레이 한 후, 101번째 이야기가 나오는 조건을 확인할 것.
그것을 기사 작성과 더불어 해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날은 잡지 마감날이어서 끝날 때까지 아무도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덕에 시간이 나는 사람은 무조건 새턴을 잡고 게임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선 신인 편집자와 제작팀의 여사원들이 교대로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게임을 감수한 이나가와 준지씨가 직접 나와 이야기를 읽어주기도 하기 때문에, 플레이를 하는 사람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어폰을 끼고 했습니다.
무서운 것을 싫어하거나 흥미가 없는 사람은 내용은 읽지도 않고 버튼만 누를 뿐이었지만, 이따금씩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나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새벽 4시 즈음이었습니다.
게임은 약 70화 정도까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시간이 이쯤 되면 자기 기사를 마감한 뒤 그대로 책상에 엎어지거나 숙직실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 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어, 결국 나 혼자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어폰에서는 이나가와씨의 말이 빠르게 들려옵니다.
체력이 고갈될 수준이다보니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꽤 지쳐 있었는지, 무의식 중에 눈을 감아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소리가 멈췄습니다.
[어라, 끝났나?] 싶어서 나는 눈을 떴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것이라면 하나씩 불이 꺼지는 100개의 양초가 있는 타이틀 화면이 보일 터였습니다.
그러나 화면에는 다른 것이 나와 있었습니다.
얼굴의 아랫쪽 반쪽이 이리저리 비뚤어진 노파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는 어떤 이야기에서 깜짝 놀래킬 용도로 넣어둔 사진이었을까요.
크게 입을 벌린 노파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디스크의 읽기 에러인지도 모릅니다.
화면의 아랫쪽은 경련하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거기에 맞춰 노파의 입도 흐물흐물 비뚤어집니다.
이어폰에서는 이나가와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물끄러미 보고 있습니다...물끄러미 보고 있습니다...물끄러미 보고 있습니다...물끄러미 보고 있습니다...]
그 부분만이 반복 재생됩니다.
묘하게 느린 목소리가 더 무서웠습니다.
게임이 오류를 내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런 에러는 처음이었습니다.
이윽고 반복되던 이나가와씨의 목소리에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게임기는 디스크를 읽어들이려 하는지 윙윙거리고 있었습니다.
세이브 안 한 진행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너무 무서워서 전원을 끄기 위해 손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이나가와씨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지더니 게임의 효과음들이 엉망진창으로 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의 클락션, 바람 소리, 까마귀 울음 소리, 흐느낌, 빗소리, 그리고 기분 나쁘게 웃는 소녀의 목소리...
노파의 사진 역시 계속 일그러져, 얼굴 전체가 화면을 덮은 것처럼 길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게임기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게임이 꺼지는 순간,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늦어.]
그런 데이터는 없었을텐데...
나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쓰러져 있던 동료를 흔들어 깨우고, 억지로 패드를 넘겼습니다.
그는 갑자기 잠에서 깬 뒤 게임을 하라는 소리에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무서우니까 대신 해 달라는 내 부탁에 능글능글 웃으며 승락했습니다.
그렇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기분 나쁜 듯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데이터가 날아 간 것 같아.]
전원을 켠 TV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희미하게 아까 그 노파의 윤곽이 남아 있었습니다.
본체의 뚜껑을 연 채로 전원을 넣어 세이브 데이터를 확인했지만, 데이터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정상이라면 게임 제목란에 가타카나로 [백물어] 라고 써 있을텐데, 거기에는 [기기기기기기기기] 라고 써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전화를 건 독자에게는 미안했지만, 게임기가 데이터를 제대로 못 읽어서 그런 것이라고 대충 둘러댔습니다.
게임 개발사나 출판사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쉽다고 합니다.
밤낮의 감각이 애매하며 언제나 사람이 있고, 피곤한 사람이 잔뜩 있다보니 어쩌면 이상한 것들이 꼬이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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