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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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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 Y에게 들은 이야기다.

몇년 전, 큰 태풍이 왔던 날 밤.

Y는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 침수된 도로를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정 근처.

저녁 지날 무렵부터 호우경보가 내린 상태였기에, 그 무렵에는 다른 차도 거의 없었다.

그저 수십미터 간격으로 놓인 가로등 불빛만 따라갈 뿐, 시야는 최악이었다.



도로는 점점 불어나는 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Y는 어떻게든 쏟아지는 빗속에서,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켠 채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침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와버렸다.



창을 열고 차 아랫쪽을 살피니, 타이어가 거의 물에 잠길 수준이 되어, 문틈새로 물이 서서히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Y는 자신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 회사에 전화해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분명 특약 중 "집중 호우 상황에서의 구조" 관련 조항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런 걸 부르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하며 전화를 했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사 측에서는 바로 대응에 나섰다.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하자, 곧바로 구조 팀을 파견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Y는 자신이 현재 있는 위치를 상세하게 전한 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바람도 요란하다.

밖은 어두운데,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

빨리 안 오려나, 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사이드 미러에 뒤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다가오는 게 보이더란다.



겨우 구조가 왔구나 싶어, Y는 안심했다.

소형 트럭 같은 차가 Y의 차 뒤에 딱 멈추더니, 우비를 입은 스태프가 나타났다.

창문을 콩콩 두드리기에 살짝 열자, [괜찮습니까?] 하는 질문이 날아왔다.



생각보다 더 젊은, 아직 청년 같은 남자였지만, Y에게는 구세주처럼 보였다.

[빨리 오셨네요.]

[나오실 수 있겠어요?]



[수압 때문에 문이 안 열릴 거 같네요...]

[그럼 창문으로 나오시죠. 제가 끌어드릴게요.]

솜씨 좋은 스태프 덕분에, Y는 무사히 차에서 나왔다.



스태프는 자신이 입은 것과 같은 우비를 Y에게 건네고, 뒤편 트럭까지 안내했다.

Y는 구조 차량 조수석에 타고, 스태프가 건넨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스태프는 Y의 차 엔진과 침수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아, 이건 서비스입니다. 몸이 좀 따뜻해질거에요.]

스태프는 Y에게 보온병을 내밀고,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서비스 좋네, 하고 감탄하며, Y는 보온병 안에 든 것을 컵에 따랐다.



홍차였다.

따뜻하다.

김과 함께 좋은 향기가 차 안 가득 퍼져나간다.



뜨거운 걸 잘 못 먹는 탓에 야금야금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보험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구조가 잘 도착했나 확인하려고 전화했나 싶어, Y는 전화를 받았다.



[아, Y씨 되시나요? A보험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떠신가요?]

[아, 네, 감사하게도...]

[실은 정말 죄송하게도, 지금 B길이 호우경보 때문에 출입통제 중입니다. Y씨가 계신 곳까지는 크게 우회해서 가야되서, 아마 스태프가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최소 40분 내지 50분은 걸릴 거 같아요.]



[...네?]

[여보세요?]

[......]



[여보세요, Y씨? 괜찮으신가요?]

[저...]

[네.]



[저기, 스태프 분, 벌써 오셨는데요.]

[네?]

[10분 전쯤에... 남자분, 젊은분이요. 벌써 덕분에 차에서 나왔습니다.]



[네? 정말이신가요?]

[네. 지금, 홍차도 주셔서...]

[홍차요?]



대화가 영 이어지질 않는다.

보험사 직원은 잇달아 질문을 해온다.

그 구조 차량은 몇시쯤 왔는지, 어떤 차량인지, 어떤 인상착의에 몇명이 와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하나하나 대답하는 사이, 휴대폰을 쥔 Y의 손에는 식은땀이 배어갔다.

불안 때문에 자신이 점점 빠르게 말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보험사 직원은 [Y씨, 일단 진정하세요.] 라고 말한 뒤, 한 호흡 쉬고 이렇게 물었다.



[저... 그 사람, 정말 저희 직원입니까?]

보험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Y에게 온 남자는 복장이나 차량 모두, 자기네 회사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통상 호우로 인한 구조를 나갈 때는 최소 두명 이상의 인원이 편성되는데다, 홍차 같은 걸 서비스로 준비하지도 않는다고.



Y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보험사 직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구조 인력과 연락해서, 현황을 확인하는대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Y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Y는 잠시 멍하니 있었지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천천히 돌아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란다.

앞에 보이는, Y의 차량 옆에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우비를 입은 남자.



저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보험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소형 트럭은 대체 무엇일까.

이 홍차는 왜 준걸까.



여기서 도망을 쳐야할지, 아니면 가만히 기다려야 할지, Y는 혼란스러운 와중 열심히 생각했다.

창밖을 보니 비는 아까 전보다는 약해져 있었다.

만약 도망친다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로?

게다가 도망치기에는 물이 불어나 최악인 상황이었다.

문득 앞을 보니, 남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당황한 Y는 앞유리에 서린 김을 닦고 다시 살폈지만, 역시나 아까 전까지 보이던 우비 입은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걸까.

Y는 결국 큰맘 먹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아까 남자가 준 우비를 입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차에서 내리니 물은 무릎 밑까지 차 있었다.

Y는 조심스레 소형 트럭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남자와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영락없이 비명을 질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순간, 전화가 왔다.

보험 회사였다.



[아,Y씨 괜찮으신가요?]

[네.]

[10분 정도 있으면 구조 인력이 도착할 거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괜찮으신거죠?]



[별로 괜찮지 않아요.]

[저기, 혹시 몰라서 경찰에도 신고를 했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고 있을거에요.]

[저는 여기 계속 있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도망치는 게 나을까요?]



[저, 사실은요...]

[네.]

[Y씨가 계신 그 근처, 교도소가 있다고 하거든요.]



[네?]

[그 주변에 평소 같으면 경찰차가 밤에 순찰도 돈다고 하는데, 오늘밤은 태풍이 와서 순찰도 쉬고 있던터라, 금방 출동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불안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전화는 끊겼다.



전화는 끊겼지만, Y는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소형 트럭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남자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진 것이 어쨌든 불안했으니까.



그리고 Y가 딱 소형 트럭 바로 뒤까지 돌아간 순간, 갑자기 트럭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싶었지만, 쏟아지는 빗속에서 소형 트럭은 지축을 흔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후진으로.



Y는 황급히 물을 헤치며 뒤로 도망쳤다.

하지만 소형 트럭은 아직 후진하고 있었다.

무척 느린 속도로.



Y가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굳이, 느린 속도로 천천히 후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Y는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진 채였다.

도망쳐도 도망쳐도 트럭은 뒤에서 계속 따라온다.



그때, 헤매던 Y의 눈에 이리로 다가오는 자동차 불빛이 들어왔다.

Y는 그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번에는 보험 회사의 로고가 찍힌 진짜 대형 트럭이었다.



소형 트럭은 Y를 쫓아오던 걸 그만 두고, 전방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

Y는 지친 나머지 빗속에 주저앉았고, 보험 회사 구조 인력에게 부축을 받았다.

보험 회사 직원 두명도 Y를 덮치려 하던 소형 트럭을 분명히 봤다고 했다.



Y의 차에는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유리창이 깨지거나 문이 뜯어지거나, 시트를 칼로 난자하거나, 타이어가 모두 펑크가 나 있거나 앞유리에 손자국이 잔뜩 나 있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비로 인한 침수 피해만 있고, 인위적인 손상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그 남자가 빗속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수수께끼의 홍차도, 독이나 수면제 같은 걸 탄 것도 아닌 그냥 홍차였다.

Y는 경찰에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알렸지만, 지명수배범 중 그런 사람은 없었고, 근처 교도소에서 그날 탈옥한 죄수 또한 없었다.



그 근처는 사고가 있었다거나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곳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그 청년이 누구고 무엇이 목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 갑자기 Y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후진을 했는지도 수수께끼인 채다.



단지 묘하게 기분 나쁜 사건이었던 때문인지, 그 후 보험 회사 쪽에서는 Y에서 계약 해지를 먼저 제안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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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973rd]저주 받은 산

괴담 번역 2020. 7. 1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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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도시에 이사해서 살고 있지만, 어릴적에는 시골 마을 같은데 살았었다.

우리집 뒤에는 산이 있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산이었는데,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마을에서는 그 산을 "저주 받은 산" 이라고 불렀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절대로 그 산에 가면 안된다고 나에게 당부했었으니까.



나 역시 산에는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산에 들어서면 그걸 기점으로 뭔가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산에 들어간 사람은 그대로 실종된다고 하고.



마을에서는 유명한 심령 스폿이었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심령 스폿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언제나 일정하게 누군가는 산을 찾았다.

이른바 여행객이었다.



저주 받은 산이라는 건, 아마 마을 안에서만 도는 소문이었겠지.

마을에는 딱히 기념품을 파는 곳 하나 없었기에, 솔직히 왜 이 마을에 관광을 오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하필 산을 찾는 것도 의문이었고.



하지만 여행객들은 산에 들어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려온다.

아니,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어느 여행객이 말하길, 산 속에는 허물어진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다른 여행객들도 저마다 그렇게 말했기에, 정말이겠거니 하고 나도 생각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친구가 산 속에 있는 신사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궁금한 것 같았다.



"왜 신사가 있는데도 산이 저주를 받았는지" 말이다.

나도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러자 친구는 내게 함께 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마 그때 내게, 공포심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여행객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사히 돌아오는 걸 봤었으니까.

분명 저주 같은 건 미신이라고 결론 내린 나와 친구는, 방과 후 같이 산에 가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 회중전등과 모기약, 간식을 가지고 나섰다.

친구랑 산에서 같이 간식을 먹자고 얘기했었거든.

친구도 우리집에 들렀다가 같이 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행선지가 어디인지, 어른들에게는 말하지 않은채로.

산에 들어섰지만,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다.

잔뜩 들뜬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학교를 마치고 온 탓에, 해도 슬슬 기울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간식 먹을 시간은 없겠네...] 하고 아쉬워하며, 나와 친구는 무난하게 신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 도착해서야, 우리는 후회하게 되었다.



신사... 딱 사당 안에서, 뭔가가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옴짝달싹 못하게 멈춰서버렸다.

무언가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실제로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는데...



기분이 나빠졌다.

친구는 얼굴이 완전히 굳어있었다.

도망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발길을 돌리려해도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다.

저주 받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질 않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그러다 어딘가 먼 곳에서, [덜컥!] 하는 소리가 났다.

망치를 땅에 떨어트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가위가 풀려, 나는 친구의 손을 잡아 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도중 몇번이고 나무 뿌리에 발을 걸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넘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필사적이었으니까.

문득 나는 깨달았다.



아직까지는 은은하게 아직 밝은 기운이 남아있던 하늘이, 점차 어둠에 깔리고 있다는 것을.

공포심이 점점 커질 무렵,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뒤에서 뭔가가 쫓아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쫓아오고 있었다.

버석거리며 풀을 헤치고, 확실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잡히면 죽는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뒤를 흘끗 보자, 거기에는 끔찍한 꼴을 한 검은 원숭이가 쫓아오고 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이대로 죽을거라고 생각하며, 미친 듯이 달려 겨우 산에서 빠져나왔다.



산에서 나오니 검은 원숭이도 쫓아오지 않았다.

겨우 한숨 돌린 뒤, 나는 떨리는 손발로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집안 사람들은 왠지 어두운 얼굴이었다.



특히 할머니는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불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들켰나 싶어 동요했지만, 딱히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을 다 먹을 무렵, 전화가 왔다.

나는 아직 산에서 겪은 공포를 잊지 못해, 어머니 곁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어머니가 든 수화기에서 전화 내용이 새어 들려왔다.



나는 망연자실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나와 산에 같이 같던 친구의 어머니였으니까.

[A가 아직 집에 안 왔네요. 혹시 그 댁에 있지 않나요?]



더는 뭐가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공포에 질려 산을 달려 내려올 때, 같이 손을 잡고 있던 친구는 사실 없었던 것이다.

친구는 산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내 바로 곁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혹시 모르니?] 하고 물어봐도, [몰라요.] 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실로 어마어마한 거짓말쟁이였다.

전화는 끊어졌다.

친구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고 한다.



죄책감이 나를 에워쌌다.

거실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대뜸, [산에 갔느냐.] 하고 물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노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째서 간거냐! 그곳은 저주 받은 곳이야! 너는 이미 씌어있어. 곧 찾으러 올게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찾으러 온다니...



그 원숭이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네 친구도 갔었지? 그 녀석은 너를 대신해 잡혀간거야.]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친구가 나 대신 잡혀갔다는 말을 듣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나에게는 다행히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에게는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일이다.

저주 받은 산.



과거 내가 살던 마을은, 식인 마을이었다고 한다.

식인종의 더러운 피를 증오한 나머지, 산의 신성한 신사가 저주를 내렸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사의 저주가 너무 강해 잦아들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저주를 직접 받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오르면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행객들이 아무 문제 없이 산을 내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친구는 나를 대신해서 잡혀간 탓에 나는 멀쩡한 것이고.



처음부터 저주를 받은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였던 것이다.

저 원숭이 같은 것은 산신인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이후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않고 있다.



다음에 가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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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다른 사람의 심령 현상이나 공포 체험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은 심령 현상이라...

어제라고 해야하나, 자정이 넘었으니 시간으로는 오늘 있었던 일이다.



나는 외식업에 종사하다보니 날이 바뀌고서야 귀가하는 일도 잦다.

어제는 오늘 휴가인 것도 있고, 단체 손님 예약이 들어오기도 해서 혼자 남아 좀 마무리를 했다.

새벽 1시 반쯤 지날 무렵, 슬슬 집에 가야겠다 싶어 가게를 나왔다.



문제는 바로 그 귀갓길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올 때는 역 가운데를 가로질러 오면 약간 지름길이 된다.

그런데 그 역 벤치에 아주머니 한 명이 앉아 있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페트병에 든 차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에도 사람 한둘은 앉아있는 곳이었기에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줌마가 나를 째려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병을 입에서 결코 떼질 않았다.

괜히 엮이지 않으려 재빨리 앞을 지나가는데, 내가 지나가자마자 아줌마는 일어서서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속으로 제발 좀 그냥 봐달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혹시 단순한 자의식 과잉은 아닐까 싶어, 걷는 속도를 늦춰 봤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아줌마가 나를 추월해 지나가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뒤쪽에서 [까륵... 까륵...] 하고 뭔가를 씹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아줌마가 아까 그 페트병을 깨물며 뒤에서 따라오는 거라 생각해, 완전히 미친 사람에게 찍혔구나 싶었다.



조금만 더 가면 편의점이 있으니까, 일단 거기까지만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제든지 달려서 도망칠 각오를 하며,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

3분 정도 걸어, 곧 있으면 편의점이 나올 무렵이 되자 뒤에 있던 아줌마가 걸음을 재촉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온힘을 다해 편의점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겨우 살았다 싶었는데, 아줌마도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이라도 불러야하나 싶었던 순간,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무슨 일 당한건 아니고?]

...?

무슨 말을 하는건가 싶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하고 되받아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줌마 말을 들어보니, 내가 편의점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뒤에 누가 달라붙어 있었다고 한다.

아줌마는 역 앞에서 마중 나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뒤에서 머리가 길고 흑백 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오더라는 것이다.



옆을 지나칠 무렵, 뭔가 이상하다 싶더란다.

앞서가는 나는 뒤를 전혀 신경 쓰질 않고, 뒤에 따라가는 여자는 딱 달라붙어 걷는데 서로 말 한마디도 없었으니까.

혹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달라붙은 게 아닌가 싶어 따라왔다는 것이다.



편의점 다가와서 속도를 냈던 건, 나를 잡고 편의점에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편의점으로 뛰쳐들어가고, 여자는 그대로 걸어나갔다고 한다.

아줌마는 내가 걱정이 되서 일단 편의점에 들어왔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줌마가 뒤를 쫓아온다고 느낄 때부터 몇번이고 뒤를 돌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결코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지만, 더 얽히고 싶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줌마는 곧바로 역 쪽으로 돌아갔다.

조금 무서웠기에 편의점에서 잠시 어물거리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바로 자려고 옷을 벗었는데, 등골이 오싹해졌다.



옷 뒤에 긴 머리카락이 잔뜩 붙어있었다.

언뜻 봐도 열 올은 족히 될 것 같았다.

혼자 살고 있으니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고, 직장에도 머리를 기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내 머리카락도 아니고.

기분 나빠서 옷을 버린 뒤 샤워를 했다.

새벽 가장 먼저 오는 쓰레기차에다가 던져버리고.



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줌마는 그 뒤 여자가 어딘가로 걸어갔다고 말했지만...

혹시 내 뒤에 다시 붙어 우리 집까지 온 건 아닐까...



누군가 도와줬으면 한다.

정말로 무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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