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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위대한 유산

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2017. 8. 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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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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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오, 하늘에 계신 하느님!"



네이트의 입에서 탄성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네이트는 그 말이 어쩐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만 느껴졌다. 적어도, 1973년 그날의 네이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제 와 그분을 찾다니. 더 일찍 좀 찾았다면 그간 아내한테 주말마다 바가지 긁힐 일도 없었을 텐데. 허나 별수 있으랴. 불신자들에게 있어 '그분'이란 항상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머리를 디미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아니던가. 그러고선 뻔뻔하게도 품평을 늘어놓지. 파티 뒷정리는 조금도 도우려 들지 않으면서.


네이트는 연신 뜬눈으로 고개를 휘저어댔다.



그래도 조는 아니잖아. 시카고에서 조만큼 미사를 열심히 드렸던 자가 있던가? 남쪽 놈들은 당신보다야 메리 제인 여사를 찾고 나머지 여피족 놈들도 스스로를 당신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족속들 아니던가. 하지만 조는 아니었다고.



네이트는 굽혀진 무릎을 펼 여력이 없었다. 날마다 링컨공원을 뛰어다닌 끝에(물론, 그분을 찾아봬야 할 시간에도) 생후 10개월짜리 코끼리의 뒷다리만 한 하체를 가지게 되었지만 네이트가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던 건 그저 맥이 풀려서였다. 그러다 문득 이 사실을 아내에게 무어라 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혼 조정 기간이 아니고서야(그리고 아내가 아르마니 수트의 변호사 놈을 대동하지 않고서야) 그 어떤 남편이 아내를 슬픔에 빠뜨리고선 기분이 찝찝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 슬픔이 몇 시간짜리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네이트는 아예 엉덩이를 깔고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어차피 쏟아진 물이 아니던가. 네이트는 다음 일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곤 아내에겐 이 사실을 내일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서 말해주어야겠노라고 결심했다. 오늘 같은 기분에선 '어째서 조 같은 사람이..'라며 흐느낄 아내 면전에다 화풀이할 것만 같아서였다.



어째서긴! 이게 모두 다 그분의 계획이지! 언제나처럼! 늘 그래 왔거든! 왜냐고? 그야 자기 멋대로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조는 분명 조금 별난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 그를 그처럼 관대하게 표현하는 건 네이트네 부부뿐이었다. 모두들 조를 싫어했다. 그리고 모두 조를 유령처럼 취급했다.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조는 항상 같은 옷을 걸치고 다녔으며(게다가 값비싼 옷도 아니었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게 하루의 일과였고, 그 역시 다른 이들을 유령처럼 취급했으니까. 맙소사, 설상가상으로 그는 한쪽 다리를 절기까지 했다. 하나 더? 그가 노인이었다는 거였다. 쓰레기를 뒤지는 단벌 노인네를 그 누가 동정하겠는가. 적어도 이곳 시카고에서는 아니다.


그래도 네이트는 사람들이 조금은 비열하다고 여겨졌다. 그건 값싼 동정심에서 우러나오는 비겁한 우월감은 아니었다. 그저, 썩 잘나가는 포토그래퍼의(자식놈 셋과 아내 하나를 여태껏 굶주리게 한 적 없으니, 제법이잖은가!) 관찰안에서 나온 지극히 합당한 결론이었다.


조는 비록 1년 내내 단벌 행색이었지만, 쓰레기를 뒤질 땐 항상 겉옷을 야무지게 개서는 근처 땅바닥 중 가장 깨끗한 곳에다가 조심스레 모셨다. 또, 그에게선 생각과 달리 어떠한 기분 나쁜 악취도 나지 않았다. (뭐,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도중에야 모르겠다만) 이 쓰레기 뒤지기 일과는 그가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마다 출근하는 직장 일(그는 지역 병원에서 네이트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청소부였다)이 끝난 뒤에야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말인즉슨, 하루 내내 스스로를 기꺼이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호로잡놈들과는 명백히 달랐다는 뜻이겠다. 그는 스스로를 돕는 사람이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게 뭐 어떤가? 우리 모두도 조금씩은 쓰레기를 뒤지며 살지 않는가. 그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있을 뿐. 그리고 다리를 저는 거?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노인네가 온전한 몸뚱이를 지니고 있다면 그건 그자가 지독한 악당임을 나타내는 거니까.


사람들이 처음부터 조를 '격렬하게'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 대해 좋지 못한 소문이 나돌면서부터 급격히 여론이 악하되었다고 할까. 늘 그런 법이다. 언제나 그놈의 소문이 문제다. 조와 관련한 대표적인 소문 두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하나는, 그가 정신병원에서 도망 나와 이곳 시카고 일대를 돌던 떠돌이였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밤마다 그가 집안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들을 내며 끊임없이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댄다는 것이었다.


허나 네이트는 조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조는 벌써 10년 넘도록 네이트가 세놓은 6평짜리 아파트 방(네이트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로 와 처음 세 들었던 방이었다)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월세를 밀린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일리노이 주에서 그토록 계약을 잘 이행하는 사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전 세입자들마냥 거렁뱅이들을 끌고 와 떨을 피워대곤 체 게바라 흉내를 내며 이웃집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지도 않았다.


조는 또한 지독한 신사도를 갖추고 있었다. 간혹 이웃 주민이 화풀이할 요량으로 면전에다 이유 없이 치졸한 비난을 퍼부어대도 그저 수줍은 미소로 이렇게 답하기 일쑤였다. 그것은 근사한 무시 표명인 동시에 상대의 품위를 나락으로 떨구는 기발한 인사법이었다.



"안녕하시오. 내일은 아침부터 비가 올 것 같구려. 우산을 꼭 챙기시오."



사실, 네이트와 조가 사적으로 친해진 것은(적어도 네이트가 조에게 말을 걸면 다음 날 기상예보를 답변으로 듣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1년 전이었다. 정확히 1년 전.


네이트는 큰 목소리로 웃어젖히며 시답잖은 농담과 함께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그건 비겁한 기만일 뿐이다) 남자가 아니었다. 네이트의 천성은 접근하는 게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었으니까. 처음 그건 그저 변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날은 아마 수요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목요일이었거나. 확실한 건, 1972년 4월 12일이었다. 네이트는 퇴근 중이던 조와 마주친 자리에서 자못 유쾌한 어조로 물었다.



"풀먼 씨, 퇴근하나 봐요? 이제 보물섬에 가겠군요."

 

그러자 조가 대답했다.

 

"아니, 오늘은 일 없다네."

 

"예? 어째서요?"

 

"오늘은, 오늘은 내 생일이거든. 그래서 퇴근 후의 일은 하루 쉬려고 하네."



네이트는 그 짧은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날 남은 6시간을 조가 어찌 보낼지가 그려졌다. 생일날 거실 한가운데에서(거실이 따로 있겠느냐마는) 폴란드인이 만든 콘독을 씹어대는 조. 그래도 생일이라고 호사를 부려 큰맘 먹고 산 눅눅한 프라이드 포테이토가 풍미를 더해주겠지만, 어쨌든. 그건 너무도 불공평한 처사였다. 적어도 네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네이트는 그날 조를 끌고 가다시피 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네이트의 아내는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그것도 네이트의 손님이), 특히 조가 바로 그 '조'라는 것을 알고선 꽤나 놀라워했다. 허나 그건 경멸에서 비롯되는 놀라움은 아니었다. 아이가 비에 쫄딱 젖은 들고양이를 당당히 집에 데려왔을 때 엄마가 품는 그런 감정도 아니었다. 다만, 정신병원을 탈출해 밤마다 잡아먹을 아이를 찾아 나선다는(아이가 없다면 길가의 새라도) 이 허튼 소문의 절름발이 노인네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녀는 조에게 생일을 축하해주면서도, 미처 준비할 틈이 없어 네이트 家 식의 전형적인 기름진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것에 대해 그에게 사과했다. 그것은 진실된 사과였다. 그녀가 간혹 네이트의 누이 도로시에게 하곤 했던 사과와는 달랐다.


저녁 식사 후, 네이트는 생일 케이크를 대신해(허긴, 조가 어느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겠느냐마는) 싸구려 와인 하나를 땄다. 그 와인은 얼마 전 아내와의 외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식료품점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종이 재질 포장곽의. 조는 제법 위트가 있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네이트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동의도 없이 와인을 딴 것에도 개의치 않아 했다.


그래도 가장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조였다.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넘기더니 이내 답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네이트 부부가 그때껏 들어본 적 없던 것으로 어느 지방의 마더구스를 비튼듯한 노래였다. 노래를 읊는 조의 목소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미성이었던지라 네이트 부부는 마치 크리스마스날 소년소녀 합창단 앞에 선 기분이었다.



"옌장할...."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한참을 한탄하던 네이트는 아파트 단지를 나와 공중전화가 있는 곳까지 기어가듯 걸어나갔다. 조의 집엔 당연히 전화 따위는 설치되어있지 않았고 그의 이웃들에게 들러 전화를 빌리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조의 소식을 내 입으로 그런 불한당들에게 알릴 수야 없지.



그렇다. 적어도 이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는. 네이트가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침통한 어조로 내뱉었다.



"여기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건 따위가 아니니까 최대한 조용히 와주세요."



비록 마피아의 궁둥이를 봐주는 시카고 경찰이라지만 그들도 이러한 케이스에선 유능함을 발휘했다. 조는 죽을 때가 되어 죽은 것이었다. 속병 몇 개 정도는 훈장처럼 가지고 있는 나이였으니까. 또, 조는 하늘 아래 혼자였다. 아내가 있었던 적도 없었으며 당연히 자식 또한 없었다. 그는 이미 어린 시절 고아였고 끝내 고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것도 생일날 아침 이 골방 한구석에서. 어쩌면, 조는 그 날 처음으로 생일 케이크와 선물을 받았을 것이다. 그분의 빌어먹을 계획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단 문 씨, 집주인 되시죠?"

 

"네, 그리고 신고자죠."

 

"사망하신 분과는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친구입니다."

 

"이분이 당신 앞으로 유서를 남겼네요."

 

유서라니, 마지막에 가서야 그렇게 보통 사람 흉내를 내는구먼.

 

"무슨 내용이죠?"

 

"뭐, 아무래도 유서다 보니 여러 내용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정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잠깐 보기만 해도 될까요?"



경관은 잠시 네이트를 바라보더니 곧 그러라고 허락했다. 아마, 그는 돈을 받지 않고 부탁을 들어준 최초의 시카고 경찰이었을 것이다. 네이트는 조가 자신 앞으로 남긴 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몸 한번 뒤척이지 않고선 읽어내렸다. 경관의 말대로 여러 내용이 든 유서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정말이지 예상 못 한 것이었다.


아니, 아니지. 그 내용은 계시였다. 네이트는 지난 40년 넘도록 잊고 있었던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어린 시절 교회(부모를 따라 다니던)에서 주최한 성경 암송 대회를 위해 외웠던 구절이었다. (어떤 기억은 어린 시절의 것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기도 한 법이다) 당시 네이트는 1등을 해 가죽 커버로 된 조그마한 성경책을 받았는데 아마 상품이 뭔지 알았다면 그토록 열심히 성경 구절들을 외우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건, 그토록 오랜 세월 잊고 지내던 다음의 구절 하나가 네이트의 머리를 강타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건, 네이트가 처음으로 그분의 계획을 신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그 주 주말엔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갔으니 말이다.



나단 문에게.

 

자네에게 내 모든 것을 남기겠네. 그런데 그러려면 먼저 사과를 해야할 것 같군. 이건, 엄밀히 말해 그냥 종이 더미이거든. 그러나 이보게, 네이트. (내가 자네를 이렇게 부르는 것을 용서해주게나) 이건 내게 가장 소중하고 또 가장 값진 물건이라네. 그래서 어쩌면 자네도 이걸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네. 쓰레기를 뒤지는 노인네에게 관심을 갖는 자네니까 말일세.

 

이 종이 더미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15,145페이지짜리 동화라네. 내가 50년 넘게 써 내려간 이야기이지. 궁금하면 읽어봐도 좋네. 어차피 자네만 원한다면 이건 이제 자네 것이니까.

 

네이트, 내 자네에게도 왜 날마다 쓰레기를 뒤지는지 말해주지 않았지. 학교도 변변찮이 못 나온 이 노인네가 별수 있었겠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스스로 자료를 찾고 나설 수밖에. 나는 나를 받아줄 선생과 조언자가 필요했던 거라네.

 

그리고 이보게, 네이트. 이 변변찮은 노인네가 그래도 자네에게 하나 알려줄 게 생겼으니, 그건 스스로를 도울 것들은 그 어디에서든 찾을 수가 있다는 걸세. 구하라! 그럴 지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이보게, 네이트. 나는 걸음마를 뗄 때부터 혼자였네. 내 옆엔 절름발이 아버지(웃기지 않나?) 하나뿐이었지. 내 아버지는 내가 다 자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버렸다네.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거였지. 그때부터 지금껏 나는 노인네였네.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유령, 누구와도 영혼을 나누지 못하는 이방인. 그렇게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의 삶을 살아왔네. 내게는 어린 시절이 없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네.

 

자네는 어린 시절 어른이 되고 싶었는가? 그랬겠지. 모두들 그러니까. 그런데 나는 아니었네. 애초에 내겐 어린 시절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나는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어린아이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가 펼쳐질 세계를 창조한 거라네.

 

이야기의 주인공은 비비안이라는 이름의 소녀일세. 용맹함과 不死라는 축복을 받은 아이이지. 그녀는 아이들을 노예로 부리는 이웃의 군사 국가와 싸우기로 결심했네. 대단하지 않나? 정면으로 시스템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말일세.


네이트, 이 이야기는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휴식처였네. 그래서 이렇게 꽁꽁 숨겨왔던 것이지. 누구든 힘든 하루를 끝내고선 자기만 사용하는 해먹에다 몸을 뉘일 권리가 있는 게 아니겠나. 그러나 이제는 이 해먹을 자네에게 선물하겠네. 말했듯 이 이야기는 이제 자네 것이고 자네의 권리이니 오롯이 자네의 뜻대로 하게나. 이미 그 값은 내 생일날 와인으로 지불이 끝났으니 말일세.


자네 부부에게 주님의 은총과 자애가 항상 함께하길 기도하겠네.


추신. 이미 몇 년도 전부터 내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을까 의심했네. 내 육체는 진즉에 죽어버려 주님꼐서 걷어가셨으니 말일세. 그렇지만 여기까지 버텨냈고 이제 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네. 자비로우신 마리아께서 내 영혼을 기다려주기로 하신 거지. 아마, 내년 이맘때즈음 비비안의 여정과 함께 나 조 풀만의 삶도 마침표를 찍게 되겠지. 네이트, 고마웠네. 자네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주게나.


1972년 4월 12일 조가




 
 
 
-fin-



















후기

이 이야기 속 조 풀먼은 실제 모델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1892년생인 헨리 다거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10대 후반 무렵 이미 고아였고 고향인 시카고로 건너 와(물론, 걸어서) 평생을 병원 청소부로 일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청소부 일과 미사를(물론, 쓰레기를 뒤지는 일과도) 제외하곤 아파트 방에서 은거하며 동화책 <The Story of the Vivivan Girls, in What Is Know as the Realms of the Unreal, of the Glandeco-Angelinnian War Storm, Caused by the Child Slave Rebellion>을 집필한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소지품 처분 여부를 묻는 집주인 사진작가 나단 러너 에게 그 권리를 이양했고, 그렇게 훗날 상업적 가치로 100만 달러가 넘게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장편은 나단 부부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들은 헨리 다거의 방을 보존하는 한편, 그의 작품들을 각종 컬렉션 및 전시회에 출품한다.

전편인 <창백한 유령>과 마찬가지로 해당 이야기에도 목회적 분위기가 첨가되어있다. 사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을 배경으로 한 창작에 그러한 게 빠질수가 없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세대가 지나면서 종교로 인해 파생되는 문학적 색체에 나 개인이 적잖은 흥미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헨리 다거는 해당 장편의 자료 수집 및 삽화를 위해 매일마다 쓰레기를 뒤지며 잡지 등을 스크랩했다. 말 그대로 평생을 글쓰기에 쏟아부은 셈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있어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해당 이야기에 아주아주 진부한 제목을 붙였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제목 외에는 다른 게 떠오를 수가 없어서였다.





http://blog.naver.com/medeiason/221072979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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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유령

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2017. 8. 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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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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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유령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부자가 되니 나는 내 신세를 왕과도 바꾸지 않으리.

- 셰익스피어





나는 지금 40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 (노인네가 달리할 게 옛날이야기 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건 내 이마 위 검버섯들이 있는 곳에 머리카락이라 불리우던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그때가 언제인고 허면.. 그래, 제퍼슨당의 먼로가 재선한 해였다. 우리 버지니아의 자랑스러운 아들 제퍼슨과 먼로에게 신의 가호를!


당시 나는 린치버그에서 워싱턴이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여행자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은 제퍼슨이 말하곤 하던 곳이었다. '린치버그는 버지니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요, 린치버그 마을에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나니.' 그 무렵 린치버그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담배 교역으로 입방아에 오르던 상업지였다. 하여지건 미국에서 가장 발전 중인 곳이었으니까.


어쨌건, 나는 제퍼슨이 이따금 거닐던 포플러 숲의 근방에서 호텔을 운영하던 자였다. 그리고 실로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내 호텔을 지나쳐갔다.


그 남자가 처음으로 내 호텔에 들린 건 1820년이 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호텔에 머물던 대부분의 사람처럼 그 역시 선금을 내곤 장기투숙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아주 잘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또, 다부지고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있었는데 그럼에도 결코 오만함이 느껴지지 않던 사내였다. 나는 그를 처음 보고 아마 다른 많은 치들처럼 새로이 교역에 뛰어든 개척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게 전부였다. 사실, 그는 그저 내 호텔을 지나쳐갈 숫자 중 하나에 불과했었으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가 명부에 이름을 'Thomas J. Beale'이라고 써넣는 게 아니겠나? 오, 젊은이들. 그땐 말이다, 미들네임을 쓰는 사람의 수가 연방당을 지지하는 놈들만큼도 안되었었다. 나는 대뜸 그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그 가운데 J는 대관절 뭐의 J요?"



그러자 그가 하얀 이들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미소 짓고는 대답했다.



"제퍼슨, 제퍼슨의 J입니다."


"뭐요? 그럼, 토머스 제퍼슨 빌이라는 게요?"



그는 재차 미소 지었고 나는 단박에 그가 마음에 들어버렸다. 왜냐고? 이름이 토머스 제퍼슨 빌이라는데 내가 어찌 마음에 들지 않아 하겠는가? 그 역시 내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우린 제법 잘 맞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는 곧 '모리스 씨, 제가 당신을 클린트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물어왔다. 그래서 대답했다. '물론이네. 그럼 나는 자네를 토머스 제퍼슨이라고 불러도 될까?'


토머스는 한마디로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매력 있으면서도 결코 티 내지 않는 타입이었다. 호텔 내의 사람들 모두가 토머스를 좋아했다. 특히나, 여자들이. 우리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인네들이 사람을 더 깊게 들여다볼 줄 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네들은 우리와 달리 사랑엔 배신당해도 사람에게 배신당하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토머스가 이따금 풍기는 무언의 눈빛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곤 했던 것 같다.


토머스가 언젠가는 로렌이라는 여성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영국에서 온 여류작가로, 다른 모든 작가가 그러하듯 그럴듯해 보이는 필명 하나를 내세워 자기 자신을 포장하던 치였다. 그래도 이건 인정해야겠다. 풍성하고 맵시 있는 적발을 지니고 있던 그녀는 분명 우아하고 인텔리하면서도 자못 세속적이지 않은 여인이었음을. 물론 그녀 역시 여인네였기에 아름다운 것에 아이마냥 열광하곤 했지만, 사실 아름다운 걸 좇는 게 천박한 것만은 아니잖은가.


그녀는 매우 진취적인 여성으로, 미국의 여인네들이 기회를 박탈당한 채 재봉 따위나 배우며 자기 목소리를 피력할 수 없는 풍토를 개탄해 했다. 또, 그녀는 여인네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에게 의지하지 못해 조혼해야만 하는 관습에 분개하기도 했다. 그녀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드물게 미혼이었는데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그 연유를 묻는 남정네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환장하겠군! 잘 들어, 길가다 처음 눈에 보이는 사람과 결혼하는 수준의 무신경함이 내게는 없다고. 난 기꺼이 내 삶을 바치지 못할 치들과는 결코 평생을 함께하지 않을 거야."



그런 그녀가 토머스를 붙들고선 세상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던 때였다. 말미에 그녀는 영국 내 여류작가들이 책을 팔기 위해 여성향의 소설들에만 매진해야 하는 현실과 함께 자신 역시 도리가 없음을 토로했고(그녀는 극렬히 반대하는 출판사를 뒤로 한 채 개척자들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자 이곳을 찾았었다), 그때껏 턱을 괸 채 귀담아듣던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다독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로렌. 하나님은 본디 골치 아픈 일을 나중에 처리하거든요. 철은 뜨거울 때 쳐야 하는 법입니다."



동시에 천상의 미소를 한 토머스가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고, 그 행동이 너무도 천진했던지라 평소 까탈스러울 만큼 교양을 따져대던 그녀 역시 그저 너털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던지 그녀는 그날 군말 없이 토머스의 술값까지 지불했다.


토머스는 기꺼이 모두와 어울렸다. 하지만 실지론 누구와도 영혼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잘 웃어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던 게다. 토머스는, 마치 짙게 깔린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창백한 유령과도 같았다.


토머스가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호텔에 머무르는지 나는 몰랐다. 그저 호텔 주변을 거닐며 사람들과 인사하거나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이따금 며칠씩 어딘가를 다녀오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던 3월이었다. 3월 말,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다. 토머스는 쪽지 하나만을 남기고선 홀연히 사라졌다.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쪽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클린트, 예정보다 일찍 떠나게 됐네요. 서둘러 가야 했던 저를 이해해주시길. 잔금은 제가 당신께 사는 술이라고 생각해줘요. 클린트, 늙은 토머스 제퍼슨이 틀렸어요. 그는 버지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리치몬드이고 그다음이 린치버그라고 했죠.



남자에게 있어 말동무 하나가 사라지는 건 제법.. 유감스러운 일이다. 허나 별수 있겠는가?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내게 주어진 일은 해야하는 법이지. 바울도 그랬잖는가.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소.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니.'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다시 또 한 해가 흘러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젊은 토머스 제퍼슨이 호텔에 나타났다. 예의 그 사람 홀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이다. 우리는 다시 둘도 없는 말동무가 되었다. 토머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때면 나는 어쩐지 소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나 나는 토머스에게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진 않았다. 그건 토머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우리 사이의 그러한 암묵적인 룰이 서로의 관계를 지탱했던 것이다.


토머스는 처음 호텔에 왔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주로 호텔 주변을 거닐며 사람들과 인사하거나 나와 농치기를 하며 시간을 축냈고, 이따금 며칠씩 어딘가를 다녀오곤 할 뿐이었다.


겨울기 가고 봄이 올 무렵이었다. 어느 밤, 토머스가 나를 찾아왔다. 아마 그 전날까지 며칠 동안을 어딘갈 다녀온 뒤였던 거로 기억한다. 토머스는 무언가를 계속 주저하던 끝에 말했다.



"클린트, 저 지금 떠납니다."


"뭐? 이봐, 토머스.."


"클린트, 미안해요. 본래는 어제 호텔로 돌아오지 않고서 그대로 떠나려던 거였어요."


"토머스, 우린 서로 개인사에 대해선 함구했었지. 그렇지만 말이야, 정말 내게 말해줄 게 없나?"



토머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들여다봤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클린트, 내겐 친구가 없어요. 가족도요. 그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전부죠. 검은 자두도 흰 자두만큼이나 달다지만.. 내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걸까요?"


"이보게, 토머스. 하나님께서 창세 무렵에 말씀하셨잖은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하니.' 비록 그 말이 있고서 아담이 자기 갈비를 내줘야했지만 말일세."



토머스는 내가 과장되게 옆구리를 두드리며 말하자 크게 웃어젖히더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한참 후에야 짐을 챙겨 나왔다.



"클린트, 당신이라면 뱀의 속삭임에 넘어가거나 하지 않겠죠. 이 상자를.. 보관을 부탁할게요. 제게 아주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상자예요. 곧 다시 찾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만 맡아주세요."







토머스가 내민 상자는 꽤나 전형적인 외형의 금속 상자였다. 가운데에 자물쇠가 달린. 토머스는 그대로 짐을 동여맨 채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곧 상자를 찾으러 온다던 토머스는 대신 그해 여름에 편지 하나를 보내왔다.



친애하는 클린트에게. 클린트, 제가 맡긴 상자에는 저와 동료들 모두의 재산과 관련한 아주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습니다. 만약 아무도 상자를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이 편지의 날짜로부터 10년간 상자를 보관해주세요. 그 10년 동안 저 또는 제게 위임된 자가 상자의 반환을 요구해오지 않을 경우에는 자물쇠를 파괴하고 상자를 열어주었으면 합니다.


내 친구 클린트, 당신에게 항상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나는 기꺼이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금고 깊숙이 상자를 보관했다. 토머스의 말대로 그 혹은 그가 위임한 자가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10년을 보관했건만, 상자를 찾으러 오는 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상자를 계속해서 보관했다. 글쎄다. 어쩌면 토머스를 기다렸던 건 상자만이 아니었던가 보다.


토마스가 내게 상자를 맡긴 뒤로 23년이 흘러, 나는 호텔을 넘기고서 은퇴를 준비하며 마침내 상자를 열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가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만사가 모두 그런 법이다. 결심하기까지가 어려운 거. 자물쇠를 깨부수고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문서 석 장과 쪽지 하나가 덩그러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쪽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클린트, 저는 지금 당신에게 제 비밀을 말하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커다란 비밀을요.


1819년 3월, 저와 제 동료들은 뉴멕시코 산타페를 따라 버펄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는 이름 모를 계곡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연찮게 발견한 겁니다. 황금을요.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선 이내 채굴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이 지나고서 잠시 채굴을 중단해야 했죠. 그때껏 채굴한 황금들을 보다 안전하도록 비밀장소에 숨길 필요에서였습니다. 그래서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저는 린치버그까지 흘러들어왔던 겁니다. 최초로 클린트 당신과 알게 된 게 바로 이때입니다.


마침내 안전한 장소를 찾은 우리는 다시금 채굴을 재개했고 저는 주기적으로 황금을 비밀장소에다 은닉했습니다. 그렇게 2년 넘게 작업한 결과 우리는 대량의 금과 은들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것들 모두 은닉장소에 보관 중이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 재차 동료들에게 합류해 채굴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이 상자를 맡긴 이유는 혹여 모를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입니다. 유다는 고작 은화 서른 개에 예수를 넘겼다죠.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은 분명 그보다 많답니다. 하여 저는 신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 황금과 관련한 문서를 맡기고자 합니다. 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바로 클린트 당신이에요.


여기 이 석 장의 문서에는 각각 황금의 내역, 황금을 분배받을 사람, 은닉 장소가 적혀있답니다. 물론, 암호로 말이죠. 이 암호들은 암호 자체만으론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추가로 단서가 있어야만이 해독이 가능해요. 해독에 필요한 각각의 암호 단서는, 불행히도 일이 틀어질 경우에 제가 서신 또는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친구, 토머스가.



암호가 적혀있다던 문서들을 보니 웬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토머스의 말대로 단서가 없으면 애초에 암호를 풀 수가 없도록 만들어진 거였다. 그래서, 뭐? 난 은퇴한 뒷방 노인네였다고! 내게 주어진 건 시간뿐이었다. 곧 나는 그 단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볼 건 하나였다. 토머스는 어느 날 갑자기 감당 못 할 비밀을 얻게 된 젊은이였다. 과연, 그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밝혔을까? 그렇다면, 토머스가 '토머스 제퍼슨 빌'이라는 이름을 꾸며낸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 말은, 왜 하필 토머스 제퍼슨이었느냐는 게다. 혹시, 토머스에게 있어 생전 그 이름은 의미 있고 상징적인 존재였던 게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친 나는 집에 모셔두던 독립선언문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그리곤 문서들 속 숫자들을 독립선언문에 이리저리 꿰맞추어 보았다. 유레카! 독립선언문은 나를 세 문서 중 첫 번째 문서의 일부 숫자들로부터 의미심장한 단어들로 인도했다. (언제나 독립선언문은 옳은 법이다) 그 단어는 '금', '은', '채굴장'이었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흥분이었다. 헌데 몇 시간을 해독해도 단어들만 나올 뿐 제대로 된 문장은 나오지가 않았다. 왜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깨달았다. 암호문은 독립선언문 원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음을. 그 뒤로 며칠동안 온갖 독립선언문들을 모은 끝에야 비로소 첫 번째 문서의 암호문을 해독할 수 있었다.




 



동봉 문서 3에 적어놓은 채굴장에다 지면으로부터 6피트 깊이에 이하의 것들을 묻어놓았다.


금 2,921파운드, 은 5,100파운드, 수송상의 안전을 기하고자 은과 교환한 13,000달러 상당의 보석.


상기의 것들은 철 용기에 넣은 뒤 철제 뚜껑으로 봉했다. 채굴장은 비록 엉성한 돌담처럼 보일지라도 용기는 제대로 돌을 쌓아 은폐해 놓았다.



허나 이게 다였다. 첫 번째 문서의 단서가 독립선언문인 건 알아냈으나 두 번째, 세 번째 문서의 경우 감도 안 잡혔다. 게다가 독립선언문이야 성격상 각각의 것들마다 차이가 미미하다손 쳐도, 다른 문서에 단서로 사용되었을 서적들은 그 개체마다 차이가 어마무지할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는 나머지 암호문을 끝내 포기해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20여 년간 이 문서들을 소중히 보관해왔다. 그리고 그간 문서들은 내게 좋은 꿈을 꾸게 해주었다. 이제는 가누기 힘든 몸뚱어릴 안마당 오크나무 의자에다 쑤셔놓고는 눈을 감고서 떠올리는 거다. 날마다 야생을 누비며 짐승과 대치하는 젊음, 어느 날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찬란한 황금빛.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황금을 채굴하는 젊은이들.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무리로 나도 함께 노래하고 있게 된다. 젊은 시절의 클린트 모리스가 말이다.





-fin-




















후기



이 이야기는 내가 처음으로 쓴 본격적인 창작단편이기에 남다른 애정이 간다. 특히나, 제목인 '창백한 유령'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배경 또한 적잖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사건이 일어나는 법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신경을 쓴 건 로렌이다. 주인공들이 지나쳐가는 인물이 생기있을수록 언제나 이야기가 사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어쨌건 그렇게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주요 소재인 '보물'은 현실에 모델을 두고 있다. 이야기 속 배경과 같은 때에 빌이라는 한 젊은이가 호텔 주인인 로버트 모리스에게 상자를 맡겼던 게 그것으로, 그 안에는 보물에 대한 정보가 담긴 암호문서가 있었다고 한다. 허나 현실에서도 끝내 암호문은 일부만이 해독되었을 뿐이다.


빌의 암호문서를 둘러싸고서 치열한 진위공방이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무게추는 회의적인 시선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고. 하지만 여기선 그러한 것들을 소개하지 않겠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오늘 하루는 의자에 기대어 꿈을 꿀 수 있도록.




http://blog.naver.com/medeiason/22106754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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