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조선

320x100


인조 병자년때 초봄에 초시를 치루고, 복시는 나라에 일이 있어서 다음해 봄으로 미뤄졌다.

이 때 초시에 합격한 유생 네 명이 북한산에 모여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고 공부했다.

그런데 하루는 웬 스님이 와서 선비들에게 말했다.



[이 곳에 신통하신 큰스님이 계시니 선비님들은 과거 문제와 향후 운세에 관해 여쭤보시지요.]

네 선비가 같이 모여 큰스님에게 물었더니 큰스님이 말했다.

[소승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관상에 관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한 분씩 천천히 살펴보고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네 선비가 그 말에 따라서 한 명씩 큰스님의 방에 들어가서 관상을 보고 나왔다.

서로 모여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보자 한 선비가 말했다.

[나는 자손이 천명이 넘을거래!]



다른 선비가 말했다.

[나는 도적들의 장수가 될거래!]

또 다른 한 선비가 말했다.



[나는 신선이 될거래!]

마지막 선비가 말했다.

[나는 과거에 합격해서 반드시 너희 셋을 만날거래!]



네 선비는 각자의 점괘에 한바탕 웃고 떠들며 정신 나간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그 해 말에 청나라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와서 강화도를 함몰시키고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네 선비는 각자 달아나서 목숨만 겨우 건졌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만나지 못하고 소식마저 끊겼다.



그 중 한 선비는 정말로 과거에 급제해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봄에 경상도를 순찰하면서 안동에 도착했는데, 안동에서 떠나려는 와중에 문 밖에 한 손님이 소를 타고 와서 명함을 내밀고 만나기를 청했다.

그렇지만 관찰사는 명함을 받아봐도 그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들어오게 해서 만나보았더니, 평소 알지 못하던 사람인데 다 떨어진 도포에 망가진 삿갓을 쓴 가난한 선비였다.

인사를 나눈 뒤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았더니, 그는 바로 지난날 북한산에서 함께 공부했던 선비 중 한 명이었다.

큰 전쟁이 있은 후 각자 생사도 알지 못하고 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관찰사가 사는 곳을 물었더니 순찰 경로 근처였다.

선비가 말했다.

[영감의 행차가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깝습니다. 옛 정을 생각하여 부디 와 주셔서 가난한 집이나마 빛내주시지 않겠습니까?]



관찰사는 관복을 벗고 평범한 옷을 입은 다음 혼자 말을 타고 선비를 따라갔다.

한 골짜기에 도착하자 높고 큰 누각이 온 계곡에 가득했는데, 마치 궁궐 같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소를 타고 왔던 선비는 장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관찰사가 놀라서 물었다.

[자네의 모습을 보니 자네는 도적 수령이 아닌가?]

[그렇소.]



[어쩌다 이렇게 된거요?]

[북한산에서 관상을 봐 주었던 스님의 말을 기억하시지요? 당시에는 비웃었는데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더군요. 전쟁통에 가족들은 모두 죽고 나만 혼자 살아남아 도망치다 이 산에 도착했습니다. 나말고도 피난하여 온 사람들이 산 속에 모여 살다가, 내가 공부를 좀 했다고 나를 두목으로 뽑았습니다. 나는 약탈해 온 물건들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인심을 얻었지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여기 남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님이 말했던 우리 관상은 역시 정해져 있던 운명이었나 봅니다. 나는 이 곳에서 부귀를 누리고 있으니 당신이 조금도 부럽지 않소. 마침 그대가 이 곳 근처를 지나간다기에 내가 일부러 불러서 이 곳을 보게 한 것이오. 당신이 비록 관찰사라도 병사는 아마 나보다 적을 것입니다. 돌아가서 나를 잡으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나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닥 좋은 일은 없을게요.]

관찰사는 무서워서 [알았네, 알았네.] 라고 말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 후 관찰사는 경상북도를 순찰하다 어느 군에 도착하였다.

일을 마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느 선비가 만나기를 청해왔다.

그를 만나보니 역시 옛날 북한산에서 같이 공부하던 선비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선비가 말했다.

[영감께서 이 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사는 곳이 이 근처입니다. 부탁컨대 잠시 들렀다 가시지요.]

관찰사는 지난 번에 당한 것을 생각하고 이번에는 관찰사답게 큰 행렬을 거느리고 갔다.



그 집에 도착하니 집이 매우 컸고, 주변에 집이 거의 수백개가 넘게 있어서 마을 하나 정도 크기였다.

그 선비는 많은 하인을 데리고 나와서 관찰사를 맞이했다.

그 예의와 대접이 왠만한 도시에서 받는 것보다 더 대단할 정도였다.



관찰사가 놀라서 물었다.

[시골에서 살면서 어떻게 이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있으며, 이렇게나 부유하게 살고 있단 말이오?]

선비가 말했다.



[당신도 옛날 북한산에서 스님이 우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겠지요? 병자년 전쟁 이후 집을 버리고 도망쳤다가 이 곳 영남에 흘러 들어왔소. 마친 한 산골에 들어갔더니 피난 온 여자들이 모여 살고 있더군요. 남자인 내가 그 곳에 도착하니 여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다들 나와 함께 살자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밭을 갈고 베를 짜서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떠받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같이 여기서 살아서 이미 여러해가 지났습니다. 내가 낳은 남자아이가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는데, 그 아이들이 각각 결혼해서 또 아이들을 낳았으니 늘그막에 자식들, 손자들 재롱에 편히 살고 있소. 이렇게 행복하니 나는 관찰사 영감이 그닥 부럽지도 않구려.]

이야기를 다 들은 관찰사는 망연자실했다.

그 후 또 순찰을 하다가 하동 경계에 도착해서 지리산 자락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관찰사의 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찰사가 의아해하면서 가마에서 머리를 내밀었더니, 그 소리는 산 위에서 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 절벽 위에 앉아 관찰사를 부르고 있었다.

관찰사가 행렬을 멈추고 누구냐고 물으니 산 위에 있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나는 아무개요.]

관찰사가 생각해보니 그 역시 옛날 북한산에서 같이 공부했던 선비였다.

관찰사가 손을 들어 그를 부르며 말했다.



[이리로 내려 오시오.]

[그대가 올라오시지요.]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동자 두 명이 내려와서 관찰사의 겨드랑이를 부축해서 산을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매우 험한 산길인데다 마치 맨땅을 걷는 듯 편안했다.

옛 친구와 만난 관찰사는 악수를 나눴다.

친구가 말했다.



[당신은 북한산 스님이 우리들의 관상을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그 때 나에게 신선이 될 것이라 말해서 나는 비웃고 넘어갔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분이 정말 신통하신 분입니다. 지난번 전쟁 때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나는 산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굶주리고 피곤해도 먹을 것이 없었지요. 그런데 물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풀이 통통하고 색깔이 먹음직스럽더군요. 먹어보니 달고 씁쓸해서 맛있는지라 모두 캐 먹었다오. 그 이후로 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입지 않아도 따뜻하며, 산길을 가다 거기서 그냥 자도 아프지 않고 한 번 걸어서 천리를 갈 수 있더이다. 내 몸이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며 걱정이 없고, 이익을 따지지 않으니 관찰사가 사는 것보다 내가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소? 내가 먹은 것은 장생초였으니 관찰사의 식사보다 결코 꿀리지 않을 것이오.]

신선은 말을 마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위로 던져 학의 등에 올라 탔다.

시동 두 사람도 좌우에서 함께 서서 공중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관찰사는 망연자실해서 자신이 관찰사라는 것도 잊어 버릴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이는 모두 하늘이 정한 것이다.

또한 지나가던 스님의 말이 모두 맞아 떨어졌으니 그 스님 역시 이인이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8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옛날 선조 임금 때 1584년 1월에 한양 선비 이생이 강릉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걸음이 느린 말을 타고 피곤하게 길을 가다 깊숙한 두메 산골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사람은 사람대로 지치고 말은 말대로 피곤한데, 날은 저무는데 머무를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숲 속에서 한 목동을 만나게 되어 길을 물었더니, 목동은 언덕 너머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아무개 양반집이 있습니다. 그 곳을 빼면 주변에 사람 사는 곳은 없습니다.]

선비가 목동의 말을 따라 언덕을 넘어갔더니 세칸짜리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어떤 한 노인이 나왔는데, 나이는 60여세 정도였고 머리에는 다 떨어진 모관을 쓰고 있었고 한 소년이 옆에서 노인을 모시고 있었다.

노인이 선비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이렇게 깊은 시골에 손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비가 산에 왔다 길을 잃어버린 사정을 설명하자 노인은 그 집에서 묵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노인은 조용히 앉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선비 또한 가볍게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그냥 방 한 쪽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시중을 들던 소년이 저녁밥을 차려와서 먹었다.

황혼녘이 되자 노인은 소년에게 말했다.

[날이 벌써 저물었는데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다니 몹시 이상하구나. 네가 문을 열고 멀리 내다보거라.]



소년이 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 막 앞 시냇가를 건너 오십니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선비를 보며 말했다.



[부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옆에서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평범한 선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님 옷을 입은 늙은 스님이었다.

방에 들어온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정화수 한 그릇을 떠오게 해서 소반 위에 올리고 향로에 향을 살랐다.

그 후 세 사람이 모두 북쪽으로 꿇어 앉아 주문 같은 것을 한참 외웠는데 선비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시간 하다가 노인이 소년을 불러 말했다.



[문 밖에 나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거라.]

소년이 밖으로 나갔다 곧 들어와서 말했다.

[별 하나가 지금 동쪽에서 떨어져서, 그 빛이 온 땅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인과 두 손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시하다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늘이 내린 수명이니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선비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엉겁결에 물었다.



[주인께서는 무슨 일로 한숨을 쉬십니까?]

[숙헌이 곧 죽게 생겼기에 내가 이 두 손님과 함께 하늘에 기도하며 경을 외어서 그 분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했던 것이라오. 운이 좋아야만 했는데, 끝내 아무런 효험이 없겠습니다. 조금 전 별이 떨어졌으니 이미 숙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가 물었다.



[숙헌이 누구입니까?]

[율곡 이이라는 분이오.]

[제가 이번달 초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그 분은 병조판서를 맡고 있었고 몸도 건강하셨는데요?]



[7, 8년 뒤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범할텐데, 숙헌이 살아 계신다면 그 난리를 능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우리백성들은 모두 고깃조각이 될 것입니다. 살아날 방도가 없습니다.]

조금 뒤 두 손님이 집을 나서는데 안색이 정말 처참했다.

선비가 물었다.



[나라가 그렇게 난리를 맞게 된다면 저같은 불쌍한 선비는 어떻게 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만약 충청남도 당진이나 면천으로 간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선비가 또 물었다.

[저 두 손님은 누구십니까?]

[선비 분의 이름은 말해 줄 수 없고, 스님은 바로 백제 때 고승인 검단대사님입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트리면 안 됩니다.]



선비가 한양에 돌아와 수소문해보니 과연 율곡 이이가 별이 떨어지던 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선비는 곧 충청남도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7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남대문 밖에 사는 심씨 성을 가진 양반이 있었다.

집이 무척 가난하여 외출을 할 때면 남편과 아내가 한 벌의 옷을 서로 바꿔 입고 번갈아 나갈 정도였다.

그나마 병마절도사 이석구와 친척이어서, 간혹 이석구가 도움을 주어 죽이나 겨우 먹고 다녔다.



작년 겨울 한낮에 심씨가 한가롭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방 지붕에서 쥐가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심씨는 쥐를 내쫓으려고 담뱃대로 천장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당신을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여기에 왔으니 나를 박대하지 마십시오.]

심씨가 놀라서 분명 도깨비인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대낮에 어떻게 도깨비가 나오겠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하는데 다시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내가 먼 길을 와서 몹시 배가 고프니 밥 한 그릇만 주시오.]

심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가족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심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당신들끼리 모여서 나 몰래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과 부인들이 놀라 달아나니까 귀신도 부인을 따라가면 계속 외쳤다.



[놀라서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것입니다. 곧 한 집안 식구가 될텐데 나를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부인들이 여기저기 가서 숨었지만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머리 위에서 밥을 달라고 계속 소리를 쳤다.

결국 밥과 반찬을 한 상 차려서 대청마루에 놓아 두었더니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이 밥을 잠깐 사이에 다 먹어 치웠으니, 다른 귀신들이 제사를 지내면 음식의 향만 맡고 가는 것과 달랐다.

심씨가 놀라서 물었다.

[너는 어떤 귀신이고, 무슨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이라 합니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 집에 들어온 것이오. 배부르게 밥을 먹었으니 이제 가겠소.]

곧 작별을 하고 귀신이 떠났다.



그런데 다음날 귀신이 또 찾아와서는 어제처럼 먹을 것을 요구하고 다 먹은 다음 가 버렸다.

이후 귀신을 매일 찾아왔고, 어느 날은 하룻 밤을 자고 가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온 집안 식구들이 익숙해져서 귀신이 와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심씨가 귀신을 쫓아내려고 벽에 부적을 붙이고 온갖 잡귀를 쫓아내는 물건들을 구해 집 앞에 내어 놓았다.

그랬더니 귀신이 또 와서 말했다.

[나는 요귀가 아닙니다. 그런 수작이 무서울리가 있겠습니까? 빨리 그것들을 치워서 나같은 손님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주시오.]



심씨가 어쩔 수 없이 물건들을 치우고 물었다.

[너는 미래의 운명에 관해 알고 있느냐?]

귀신이 말했다.



[아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은 미래에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69살까지 살겠지만, 평생 불우할 것입니다. 당신 아들은 몇 살까지 살 것이고, 손자에 가서야 겨우 과거에 급제할 것이오. 하지만 그나마도 쉽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심씨가 그 말을 듣고 놀랄 뿐이었다.



집안 식구 중 어떤 부인은 몇 살까지 살고, 아들은 몇 명이나 낳을지 물어보니 귀신은 일일히 다 대답해주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쓸 곳이 좀 있으니 엽전 200냥만 좀 베풀어 주십시오.]

심씨가 말했다.



[네 눈엔 우리 집이 가난해 보이냐, 부자로 보이냐?]

[가난이 뼛 속까지 사무치지요.]

[네가 봐도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냥을 마련해 주겠냐?]



[당신 집안에 숨겨둔 상자 속에 조금 전 빌려온 200냥이 있는 걸 내가 아는데 왜 그 돈을 나한테 주지 않습니까?]

[내가 쓸 돈도 없어서 겨우 빌어서 꿔 온 돈인데, 이 돈을 지금 너한테 주면 나는 저녁 먹을 거리도 없을 것이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당신 집에 아직 쌀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저녁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오. 어째서 거짓말로 때우려 하는 것이오? 내가 이 돈을 가져갈테니 화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귀신은 훌쩍 가버렸다.

심씨가 상자를 열어보니 자물쇠는 제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돈은 사라지고 없었다.

심씨는 손해가 점점 커지는 것에 고민하다 부인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도 친한 친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랬더니 귀신은 친구 집까지 쫓아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어째서 나를 피해 이런 곳까지 와서 빌어 살고 앉았소? 당신이 만약 천 리를 달아난다 해도 내가 못 찾을 것 같소?]

귀신은 이번에는 그 집 주인에게 밥을 달라고 했다.



주인이 밥을 안 주자 귀신은 온갖 욕을 해대며 그릇들을 깨부쉈다.

이토록 밤새도록 소란을 피우니까 주인은 심씨에게 원망을 하며 깨진 그릇 값까지 물게 했다.

심씨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귀신은 부인들의 친정까지 찾아가 똑같이 소란을 피워서 부인들도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귀신은 평소처럼 심씨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귀신이 말했다.



[이제 오랫동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할테니 부디 몸을 잘 관리하시구려.]

심씨가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던 좋으니 부디 빨리 여기서 떠나라. 우리 집안 사람들도 편하게 좀 살아보자!]



귀신이 말했다.

[우리 집은 경상도 문경에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노잣돈이 없구려. 그러니 유엽전 천냥만 내게 주시오.]

심씨가 말했다.



[내가 가난해서 밥도 잘 못 챙겨 먹는건 너도 알 거 아니냐? 그렇게 많은 돈을 내가 어디서 구하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 친척인 절도사 이석구 집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면 쉽게 빌려줄 겁니다. 어째서 돈을 안 구해 와서 내가 집에 못 가게 합니까?]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안의 모든 것은 절도사께서 주신 것이다. 입은 은혜가 너무 큰데 하나도 보답을 못해서 항상 부끄러워 하고 있는데 또 천냥을 빌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귀신이 말했다.



[내가 당신 집에서 소란을 피운 걸 이미 절도사도 알고 있을 것이오. 당신이 이것만 해주면 요괴를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하면 어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즉시 이석구의 집으로 달려가 사정을 모두 말했다.



이석구는 화를 냈지만 결국 돈을 주었다.

심씨가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상자 깊숙이 감춰 두고 앉아 있으니 곧 귀신이 와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잣돈을 넉넉히 가져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덕분에 노잣돈을 얻었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테요.]



심씨가 귀신을 속이려고 말했다.

[내가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와서 너한테 노잣돈을 주겠냐?]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 번에 선생이 봐서 알텐데 왜 쓸데 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잠시 뒤 귀신은 또 말했다.

[내가 이미 상자 속의 당신 돈을 가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250냥은 남겨 두었으니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십시오.]



귀신이 인사를 하고 사라지니 심씨 집안의 모든 이들이 좋아서 기뻐 날뛰며 서로 축하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자 또 공중에서 귀신이 인사를 했다.

심씨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 쳤다.



[내가 다른 사람에서 구걸까지 해서 천냥을 마련해서 고향에 가게 해 줬으면 너는 감사한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니 너는 은혜도 모르는구나! 내가 관우 사당에 가서 너에게 벌을 주라고 빌어야겠다.]

귀신이 말했다.

[저는 문경관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은혜를 저버렸습니까?]



심씨가 말했다.

[문경관이 아니라고? 그럼 너는 누구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의 아내입니다. 당신 집에서 귀신을 잘 대접한다고 남편이 그러길래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반갑게 맞이해야지 욕이나 하고 있군요. 남녀를 모두 공경하는 게 선비일텐데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도 없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웃었다.

귀신은 또 날마다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심씨의 소식이 끊겨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호사가들은 앞다투어 심씨 집에 가서 귀신과 이야기를 했으니 심씨 집 문 앞이 시장바닥 같았다.

학사 이희조는 심지어 그 집에 하룻밤 묵으면서 귀신과 대화까지 했다고 한다.

아!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9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박천의 한 포수가 묘향산에서 사냥을 했다.

묘향산은 큰 산이어서 인적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았다.

포수가 사슴 한 마리를 보고 거의 잡을 뻔 했으나 결국 잡지 못했다.



하루 종일 쫓아다녔지만 결국 사슴을 잡지 못하고 떠돌다 깊은 산 속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날까지 저물어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위태로운 상황에 겁을 먹고 있는데, 깎아 세운 듯한 골짜기 가운데 작은 길이 있어 앞으로 몇 리를 나아가니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은 12칸이 길게 통해 있었는데, 한 칸만 주방이었을 뿐 나머지는 문도, 창도, 벽도 없이 길게 통해 있었다.

주방에서는 아름다운 한 여자가 저녁밥을 짓고 있었는데, 포수를 보고도 별로 놀라거나 이상히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포수가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그 예쁜 여자는 정성스럽게 응대하였다.



포수가 젊은 나이의 치기로 시험 삼아 유혹을 했더니 여자 또한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 없어 쉽게 관계를 맺었다.

잠시 후 여자가 저녁밥을 내왔는데 반찬은 곰발바닥, 사슴포, 산돼지 고기 등이었다.

포수가 남자는 없느냐고 물어보자 여자는 [사냥 나갔다.] 고 대답했다.



4시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자 여자는 바로 뛰어나가 맞이하였다.

포수가 나가보니 거인이 뜰에 서서 등에 지고 온 짐을 땅에 풀어 놓고 있었고, 그 짐의 크기는 집 한 칸만 했다.

그 사람은 몸도 크고 키도 커서 지붕보다 30m는 더 높이 솟아 있었기에 방 안에서는 도저히 그 사람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거인이 아내를 보며 말했다.

[오신 손님을 잘 대접하였소?]

[예, 잘 대접해 드렸습니다.]



거인이 마침내 방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키가 너무 컸으므로 방으로 똑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리부터 서서히 구부려 들어와
그대로 누웠다.

그 누운 길이가 11칸의 방을 모두 채웠다.

그 거인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누운 것은 그의 앉은 키가 대들보보다 높아 몸을 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인이 포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종일 사슴을 쫓았지만 잡지는 못하지 않았소?]

[예, 그렇습니다.]



[당신은 저 여자와 관계를 갖지 않았소?]

포수는 [저 거인이 이처럼 신령하고 거대한데다 내가 지은 죄를 이미 헤아리고 있구나!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며 사실대로 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거인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내 비록 저 여자를 이 곳에 두고 있지만 음식을 시중들게 한 것 뿐 처음부터 가까이하지 않았다오. 당신이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해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니 두려워할 필요 없소.]

그리고 거인은 여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먹을 것을 준비해 오시오.]



여자는 명령을 받들어 조금 전 거인이 메고 왔던 큰 돼지 한 마리를 잘라 큰 그릇에 가득 담아 내왔다.

모두 날고기였고 다른 음식은 없었다.

거인이 고기를 모두 먹고난 뒤, 잠잘 때가 되자 다시 여자에게 말했다.



[저 손님과 함께 자시오.]

여자가 비록 포수와 함께 누워 있었지만, 포수는 의아스럽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밤새 그냥 잠만 잤다.

다음날 아침 다시 그 거인을 보자 그저 사람과 비슷할 뿐, 진짜 사람은 아니었다.



포수의 마음 속에서는 별의별 괴이한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날이 밝자 그 거인은 누운 채 여자를 불러 말했다.

[손님의 밥과 내 밥을 같이 차려오시오.]



여자가 명령을 받들어 밥을 준비하여 내왔다.

포수의 것은 밥과 반찬을 익혔으나, 거인의 것은 어제처럼 날고기만 그릇 가득 담겨 있었다.

음식을 다 먹자 거인은 긴 몸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왔는데, 마치 긴 이무기가 요동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부터 똑바로 기어나온 거인은 바깥 뜰에 나와서야 드디어 앉고 말했다.

[내가 당신의 관상을 보니 정말 복이 대단하구려. 그대가 어제 이 곳에 온 것 역시 내가 유인했던 것이오. 저 여자는 이 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니 두려워말고 데려 가시오. 또 내가 모아 놓은 호랑이, 표범, 노루, 사슴, 곰, 돼지 등의 가죽은 이 곳에 쌓아 놓아도 소용이 없으니 당신에게 주겠소. 그렇지만 당신은 힘이 약하여 많이 짊어질 수 없을테니 내가 힘을 다해서 운반해 주리다.]

거인은 동굴 속에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던 가죽들을 큰 그물에 담아 어깨에 메고 나오더니 말했다.



[당신은 저 여자를 데리고 나보다 먼저 가다가 어느 곳이던 배가 멈추는 곳에서 멈추시오.]

포수가 안주 항구에 이르니, 그 거인도 산더미 같은 가죽을 등에 짊어지고 그 곳에 도착해서 말했다.

[이것들을 팔면 당신들 집안이 평생 먹고 살 재산을 될거요. 나 또한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소. 닷새 후 소를 두 마리 잡고, 소금을 100석 사서 이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내가 그 때 반드시 다시 오리다.]



마침내 포수와 거인은 거기서 작별했다.

포수는 배를 빌려 여자와 가죽을 실었다.

여자는 아내로 삼고, 가죽은 팔아서 엄청난 돈을 얻었다.



그 거인이 사람인지 아닌지는 여자 역시 모르는 것 같았다.

닷새 뒤 포수는 소를 잡고 소금을 구해서 약속한 장소에 나가 기다렸다.

역시 거인이 왔는데, 지난번처럼 등에 가죽을 지고 왔다.



거인은 소는 모두 먹어 치우고, 소금 100석은 가죽을 담아온 그물에 넣어 짊어졌는데,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거인은 또 [닷새 후에 또 소금 100석을 가져와서 이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라고 말하고 갔다.

포수는 거인의 말대로 소금을 준비했는데, 혹시 소는 거인이 잊어먹고 말하지 않은 것인가 싶어 소 두 마리도 잡아서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거인은 또 가죽을 등에 잔뜩 짊어지고 왔다.

역시 예전처럼 소금을 그물에 넣어서 가져가다, 잡아온 소를 보고는 보기도 싫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만일 소가 먹고 싶었다면 먼저 내가 말했을 것이오. 이치상 이번에는 당연히 먹지 않아야 하오.]



고개를 흔들면서 가는데, 포수가 절실한 마음으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아니고 또 오랜 친구도 아닌데 당신은 나에게 예쁜 아내와 큰 재산을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소를 잡아온 것은 비록 당신의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한 입 먹어보지도 않고 가십니까?]

포수가 또 간청하니 거인이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고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비록 5일의 기한을 늦추더라도 정성을 받아들여야겠구려.]

거인이 고기를 다 먹고 가면서 말했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오. 좋은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부디 스스로를 안전히 보호하시오.]



포수가 다시 거인 앞에 꿇어 앉아 길을 막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상대를 대함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마당에 아직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으니 마음이 아파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짐승이십니까? 도깨비십니까? 아니면 산신령이십니까?]

거인이 말했다.



[정해진 법이 있어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대는 내년 단오날에 낙동강 나루터에 가서 기다리다가 초립을 쓰고 청색 도포를 입은 채 검은 말 위에 앉아 있는 미소년을 만나면 그에게 물어보시오.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거인은 홀연히 가버렸다.

포수는 한편으로는 이상하고 괴이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슬펐다.



집으로 돌아와 가죽을 모두 팔아버리고, 드디어 평안도 지방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포수는 다음해 단오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낙동강 나루터에서 기다렸다.

과연 한 미소년이 보였는데, 거인이 말한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포수는 말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고 그 소년에게 거인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 분은 우 임금이십니다. 우 임금이 물체로 존재하면 다행이지만 없어지는 것은 불행입니다. 보통 천지의 정기가 변화하여 영웅, 호걸이 됩니다. 임금이 성스럽고 신하가 충직하고 국가가 태평하며 백성이 편안하면,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도 세상을 구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웅이 되지 못한 정기들이 모여서 우 임금의 모습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우 임금은 깊은 산 골짜기에 몸을 감췄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져서 액운이 나타날 것 같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때 소금이 꼭 필요하지요. 우 임금이 목숨을 거두면 정기가 우주에 흩어져 수많은 영웅들이 무더기로 태어납니다. 영웅이 태어나는 것에 어찌 까닭이 없겠습니까? 그가 소금을 달라고 했던 것은 소금을 먹고 죽으려 했던 것입니다. 소금은 첫번째 5일 동안 먹으면 몸이 쇠약해지고, 그 후 두번째로 5일 동안 소금을 먹으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중간에 만약 생고기를 먹으면 5일을 더 버틸 수 있게 됩니다. 우 임금이 두번째에 굳이 쇠고기를 사양했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 이제 30년 안에 우리나라에 중국 삼국시대처럼 영웅 호걸들이 넘쳐날테니 우리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복은 정말 축하를 받을만 하군요. 우 임금은 당신을 친구로 삼고, 덕 있는 아내를 주었습니다. 그가 그 여자를 범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사람이 타고나는 기는 남자는 양기이고 여자는 음기입니다. 그러나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여자라고 음기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에게는 양기 중에 음기가 있고 여자에게는 음기 중에 양기가 있어서 그 때문에 교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 임금은 완전히 양기만을 가진 신령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와 관계할 수 없지요.]



포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신기해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소년이 말했다.

[내 이름은 정몽주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갔다.

이후 30년도 되지 않아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고, 수많은 영웅들이 연달아 나타났으니 이것은 죽은 우 임금으로 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백성들이 전란에 시달려 고깃덩이가 되는 것이 예삿일이었지만, 그 포수만은 온 집안이 무사하여 죽은 사람 하나 없었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6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밤이 깊자 함께 뜰을 거닐었는데, 갑자기 별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 죽었구나.]



그리고 노인은 또 탄식했다.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어찌할꼬?]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행랑 속에 있던 책에 그 날짜를 적어두고 노인에게 물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화를 피할 수 있습니까? 부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강릉이나 삼척 쪽으로 피난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다음 날 선비가 석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평구에 들러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날짜를 물어보니 과연 별이 떨어지던 그 날 밤이었다.



그 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을 생각해내서 아내를 데리고 삼척으로 피난을 가서 온 집안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4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옛날 밀양 사또가 중년에 아내를 잃었다.

그에게는 단지 첩과 며느리,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딸만 있었다.

딸은 태어난지 몇개월만에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서 자라서, 유모를 어머니처럼 대했다.



딸은 유모와 별당에서 살았는데, 밀양 사또는 이 딸을 끔찍하게 아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딸과 유모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읍내 마을들을 두루 뒤졌으나 그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또는 놀라서 정신을 잃더니, 미쳐버려서 껄껄 웃기도 하고 마구 떠들어 대다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이에 부득이하게 사또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후 밀양 사또가 된 자들은 부임하는 그 날 모두 죽었다.



서너명이 이렇게 급살을 맞으니 사람들은 모두 밀양 관가를 흉가로 생각해서 밀양 사또 되기를 꺼렸다.

아무리 밀양 사또를 임명하려고 해도 그 곳에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조정에서는 이 일로 크게 근심하였다.

그래서 어느날 모든 관리와 전직 관리들을 대궐 안에 모두 불러 지원자를 찾기로 했다.



그 때 한 무관이 있었는데, 그는 금군으로 오래 근무하다 무신 겸 선전관을 역임하여 겨우 6품에 올랐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셔 관직을 그만둔 지 20여년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가 60에 가까웠는데 춥고 배고픈 생활을 했고, 옷 한 벌로 10년이 넘도록 살면서 밥도 사나흘에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 탓에 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명사나 재상들 중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가 밀양 사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절실한데 죽는 것이 무서워서 차마 갈 수가 없구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죽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비록 부임하는 날 죽는다고 해도 사또라는 명예는 얻을 것이고, 만약 죽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주저하지 말고 지원하십시오.]

무관이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대궐에 나아가 임금님께 아뢰었다.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밀양에 가보겠습니다.]

임금님이 가상하게 여겨서 그 날로 바로 밀양 사또에 임명되었다.

무관은 집에 돌아가 탄식했다.



[비록 당신 말을 따라 지원하기는 했지만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오. 나는 그래도 사또 자리라도 올라가니 죽어도 한이 없지만, 집안 식구들은 어떻게 하겠소! 이제 죽으러 가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소?]

부인이 말했다.

[이전 사또들이 죽은 것은 모두 그들의 운명일 뿐입니다. 귀신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비록 여자지만 도움이 될테니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를 데리고 짐을 챙겨 밀양으로 출발하였다.

밀양에 도착하니 부하들이 차례로 인사를 왔다.

하지만 낌새를 보아하니 사또가 곧 죽을 것이라 여기는지 공경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고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



게다가 아내까지 데려온 것을 보고 표정은 더욱 나빠졌다.

관아에 들어가니 관사 꼴이 말이 아니었다.

벽은 허물어져 있고, 구들장은 깨져있어 온통 심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황혼 무렵이 되자 관가의 심부름꾼들이 사또에게 고하지도 않고 돌아갔다.

관아는 마침내 텅 비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부인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무서울 것입니다. 서방님께서는 안에 들어가 주무십시오. 제가 남자 옷으로 갈아 입고 관사에 앉아 동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또의 아내는 촛불을 켜고 혼자 앉아 있었다.

밤 12시쯤 되자 갑자기 음기 가득한 바람이 어디에선가 불어와 촛불이 꺼지고, 한기가 뼈에 사무쳤다.



조금 뒤 방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한 처녀가 온 몸에 피를 흘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벌거벗은 몸으로 손에 주기[각주:1]를 들고 섬광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부인은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으며 말했다.

[너는 필시 풀지 못한 원한이 있어 호소하러 온 것이구나. 내가 너를 위해 원수를 갚아줄테니 조용히 기다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거라!]



그러자 처녀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부인은 곧바로 안채로 들어가 사또에게 말했다.

[귀신이 조금 전에 왔다갔으니 이제 두려워하실 게 없습니다. 바깥 관사에서 주무시지요.]



사또는 두려웠지만 부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대담히 먹고 밖에 나가 누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는데, 어느덧 동이 터오르자 밖에 인적이 많아지고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전, 군교, 관노, 통인배들이 멍석과 빈 가마니를 들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네가 먼저 관사 문을 열어라.] 라며 미루고 있었다.

사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앉아 창을 열고 말했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끄러운고? 들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냐?]



아전들이 크게 놀라 신선이 내려오신 것이라 여기고 새나 짐승마냥 놀라 달아났다.

그들은 곧 기러기나 집오리처럼 줄을 지어 서서 공손히 절을 했다.

사또는 그제야 어제 자신을 소홀히 대한 이들의 죄를 다스렸다.



이방들을 호령하고 법에 따라 엄하게 다스리니 이방들은 무서워서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가 부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물었더니, 부인이 모두 말했다.

[이것은 분명 어느 사또 딸의 원혼일 것입니다. 분명 흉악한 놈의 손에 억울하게 죽었을텐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염탐해서 이름이 주기인 사람이 있으면 엄한 형벌로 심문해서 증언을 받아내십시오.]



사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아침 이방들의 인사를 받고 우연히 그들의 이름을 살폈는데, 본청 집사 중에 주기라는 자가 있었다.

사또는 그 즉시 관청에 형장을 갖추고 그 위엄을 떨친 후 주기를 잡아들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주기를 결박하여 큰 칼을 채운 뒤 형틀에 올려놓으니, 온 읍 사람들이 놀랐다.

사또가 주기에게 물었다.

[이전 사또의 딸이 어디에 있는지 너는 반드시 알고 있을터이니 맞기 전에 순순히 불어라!]



사또가 부임한 날 죽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신선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었으니 감히 속일 수가 있었겠는가?

하물며 이 놈은 자신이 큰 죄를 지었으니 사람들이 몰라도 마음 속으로는 항상 불안해 했었다.

이렇게 잡혀오고 나니 정신이 나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터였다.



주기는 감히 숨길 생각도 못하도 전후 사정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아뢰었다.

이전 사또가 영남루로 행차를 나갔다 올 때, 이 놈이 행차를 엿보고 정욕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처녀가 어머니처럼 따르던 유모에게 많은 뇌물을 바쳐 내아 후원에 있는 대나무 누각으로 나오게 했다.



대나무 누각은 몹시 구석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그 곳은 부녀자들이 종종 달을 보러 나가는 곳이었다.

유모가 재물을 탐내 처녀를 데리고 달을 보러 나갔다.



그 놈은 대나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와 처녀의 허리를 껴안고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강간하려 했다.

그러나 처녀는 울부짖으며 끝내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놈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칼을 빼 처녀를 찔러 죽였다.



또 입을 막기 위해 유모까지 죽이고, 담을 넘어가 관가 뒷산에 암매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해가 지나도록 이 사건의 진상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증언을 들은 사또는 정식으로 감영에 이 사건을 보고했고, 그 날로 주기를 때려 죽였다.



처녀의 시체가 묻힌 곳을 파보니 얼굴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 핏자국이 낭자했다.

사또는 의복과 관을 갖춰 제대로 시신을 수습하고, 본가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시체를 들고 나가 선산 앞에 장례를 지낸 뒤 대나무 누각을 부숴버리고 대나무 숲을 베어버렸다.



그리하여 읍이 드디어 안정을 찾았고, 사또가 신통하다는 칭송이 전국에 떠들썩했다.

이후 사또는 변방의 방어사와 병사, 수사를 옮겨 다니다 평안도 통제사까지 이르렀다.

어디를 가던 밀양에서의 소문이 함께 따라다녀, 명령하지 않아도 부하들이 알아서 일하고 예를 갖춰 편하게 잘 다스렸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22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1. 朱旂. 교룡이 그려지고 방울이 달려있는 붉은 깃발. [본문으로]
320x100
320x100


이익저는 경상북도 의성의 사또였다.

하루는 잔치를 벌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는 여름철이었는데, 갑자기 미친듯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이익저는 급히 잔치를 그만두게 하고 감영으로 가서 감찰사를 만나 돈 5천냥을 꿔서 그 돈으로 햇보리를 샀다.

그 해는 풍년이 들어 보리 값이 무척 쌌다.

그는 보리를 사서 각 동에 나누어 잘 봉해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7월 초 어느 저녁 이익저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심부릉종을 불러 후원에 가서 풀잎 하나를 따오게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럼 그렇지! 역시 생각했던 대로구나!] 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난데없이 혹독한 서리가 내려 초목이 모두 시들어 못 쓰게 되어 버렸다.



그 해 가을 영남 전체의 들에 푸른 초목이 하나도 없고 죄다 말라 죽은 곡식 뿐이었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비축한 곡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곡식을 나누어 주어도 곡물 값은 계속 뛰어올라 초여름에는 3, 4전 하던 보리 한 가마 값이 무려 300전 가까이 치솟았다.



이익저는 보관해 두었던 보리로 의성 사람들을 구하였고, 나머지 보리는 내다 팔아 꾸어왔던 5천냥을 모두 갚았다.

이는 이익저가 바람을 보고 앞일을 점치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익저는 이웃 읍의 사또로 옮겨 갔는데, 그 때 감찰사는 조현명이었다.



이익저가 일이 있어 감영에 가서 감찰사를 알현하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고 마구 헝클어져 머리카락이 망건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였다.

이익저가 물러나자 감찰사는 이익저를 따라온 아전을 잡아들어 사또의 모습이 흉하도록 가만히 있던 죄를 꾸짖었다.

그러자 이익저가 감찰사를 다시 뵙기를 청하고 들어가 사죄하며 말했다.



[제가 늙고 기운이 다 되어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윗분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이 같은 죄를 짓고 어찌 사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님께 이를 고해 저를 파면시켜 주십시오.]

감찰사가 말했다.

[조금 전 일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저 의식에 불과한 것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부하가 상관을 섬기는 도리를 알지 못하였으나, 어떻게 하루라도 그 일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빨리 임금님께 알리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익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또께서 끝내 저를 파직시키지 않으실 것입니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익저가 말했다.



[사또께서는 부하에게 꼭 해괴한 일을 시키셔야겠습니까?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이익저는 즉시 하인을 불러 말했다.

[내 삿갓과 도포를 가지고 오너라.]



이익저는 곧 사모관대를 벗고 부신을 풀어서 감찰사 앞에 놓은 뒤 크게 꾸짖었다.

[내가 부신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여지껏 너에게 허리를 굽혔지만, 이제는 부신을 풀어버렸다. 너는 바로 내 옛 친구의 아들놈이 아니냐? 나와 네 부친은 죽마고우로 같은 베게를 베고 자고, 먼저 장가 가는 사람이 신부의 이름을 알려주기로 했던 사이였다. 너의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장가를 가서 너희 어머니 이름을 나에게 말해줬던 그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나를 이렇게 괄시하다니, 너는 아버지를 잊어버린 불효자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은 것이 상관과 부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늙도록 죽지 않아 먹고 사느라 네 부하가 되었다만, 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결코 이렇게는 못할 게다. 너는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구나.]

이익저는 말을 마치고 비웃으며 나갔다.



감찰사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이익저의 집에 달려가 간곡히 애걸했다.

[어르신, 이 무슨 일입니까? 이 못난 것이 어르신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으니 부디 사퇴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익저가 말했다.



[부하가 공관에서 상관을 질책하고 욕을 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아전과 백성을 대하겠습니까?]

이익저가 매섭게 떨치고 일어나니 감찰사는 어쩔 수 없이 사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었다.

이여송은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런데 이여송은 평양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설득해 그 곳에서 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여송은 대동강 옆의 연광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열었다.

그 때 강변의 모래사장을 검은 소에 탄 노인 한 명이 지나갔다.

보초병들이 큰 소리로 노인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섰으나, 노인은 그것을 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이여송이 몹시 화를 내며 그 노인을 잡아오라 일렀다.

그러나 소가 느릿느릿 걷는데도 도저히 병사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직접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았다.



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다 말이 나는 듯이 달리는데도 노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촌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타고 있던 검은 소가 시냇가 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갔다.



노인은 마루 위에서 일어나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여송이 화가 나서 꾸짖었다.

[너는 어떤 늙은이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 건방지느냐!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군대를 구하러 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건방지게 소에 탄 채 우리 군대 앞을 지나가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산촌의 노인네이나 어찌 장군의 위대함을 모르겠습니까? 오늘 제 행동은 오직 장군을 누추한 이 곳에 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간절한 부탁이 있는데 장군께 말씀 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런 계책을 쓴 것입니다.]

이여송이 물었다.



[부탁이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노인이 말했다.

[저에게 불초자식이 둘이 있는데, 글 읽고 농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강도짓만 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습니다.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도 알지 못하는 한심한 놈들이지만 제 기력이 쇠해서 아들들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의 용맹이 세상을 뒤덮으실만 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장군의 위엄을 빌려 이 패륜아들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아들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뒷마당의 대나무 숲에 있습니다.]



이여송이 칼을 차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두 소년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여송이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너희가 이 집의 패륜아들이냐?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없애라하니 이 칼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둘러 아이들을 내리치는데, 소년들은 목소리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죽간으로 칼을 막아내서 도저히 소년들을 해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소년이 죽간으로 칼날을 내리치자 칼날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동강이 나 버렸다.

이여송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다.



조금 있자 노인이 들어와 아이들을 꾸짖었다.

[어린 것들이 어찌 이리 무례하냐!]

노인이 소년들을 물러나게 하자 이여송이 노인에게 말했다.



[저 패륜아들의 힘이 대단해서 당해낼 수가 없소. 그대의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구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10명이 와도 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구하러 오셨으니, 왜구를 없애서 우리나라를 다시 안정되게 하시고 본국으로 개선하시어 이름을 역사에 남기시면 이것이 곧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이런 위대한 일은 하지 않으시고 평양에 눌러 앉을 생각이나 하시니, 이것이 어찌 장군님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제가 꾸민 일은 장군님께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군님이 만약 계획을 고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낭비하신다면 늙은 몸이 장군의 목숨을 뺏으러 갈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산에 묻혀사는 늙은이의 말이 당돌할지 모르나 장군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이여송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기운 없이 있다가 이내 [예, 예.] 하고 군중으로 돌아갔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9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