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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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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학에 다닐 무렵, 사정이 있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목수 견습생으로 일하던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한 적이 있다.


옆집에는 여든 가까운 나이인데도 정정한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할머니는 이사를 오자마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도 만들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나 동생도 잡혀서 이야기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자기 남편이 옛날에 목수였다느니, 지금 혼자 살 수 있는 건 교사 출신이라 연금이 나오기 때문이라느니, 손주가 올해부터 대학교에 다닌다느니.


별 흥미도 없는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분이었다.




당시 살던 집은 방이 두개로, 나와 동생이 방을 따로 썼다.


그리고 내 방은 옆집 할머니 방과 벽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었다.


어느날, 자려고 드러누웠는데 옆방에서 즐거운 듯 [캬하하하] 하고 웃는 젊은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학생인 손주가 있다 했으니, 혹시 놀러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도 손주는 자주 놀러오는건지, 옆방에서 [캬하하하] 하는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는 종종 들려왔다.


그 당시 나는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새벽 4시가 되도록 게임을 하다 자는 적도 많았다.


그 날 역시 그렇게 게임을 하다, 4시 반쯤에야 손을 놓게 되었다.


막 자려는 찰나, 옆방에서 또 [캬하하하하] 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손주가 와 있는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번에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슬픈 듯, 안타까운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직후, 또 [캬하하하] 하고 웃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곧이어 불단의 방울이 딸랑 울리고, 다시 [여보, 여보...] 하고 부르는 할머니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린다.


그 후에는 다시 [캬하하하하] 하고 웃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할머니의 목소리도 심상치 않았을 뿐더러, 그저 여자 웃음소리라고만 생각했던 그 목소리는, 할머니를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노인학대"였다.


손주가 유산을 목적으로 할머니를 학대하는 건 아닐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새벽 5시에 출근하는 동생이 일어났기에, 나도 부엌으로 가 금방 들려온 소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보니 옆집 할머니, 못 본지 좀 된 거 같은데...]


확실히 얼마 전까지는 집 앞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반찬을 너무 만들었다며 나눠주시며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곤 하셨는데...




최근 한 달 들어 그런 일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들어, 나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을 좀 나눠담아 옆집에 가보기로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할머니가 나왔다.




오랜만에 본 할머니는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고 무척 여위어 있었다.


기운도 하나도 없고.


가져간 반찬을 건네자, 할머니는 [아... 아아, 고마워라...] 라고 중얼거리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후에도 신경이 쓰여 나는 계속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종종 들려오는 [캬하하하] 하는 큰 웃음소리와, 이른 아침에만 들려오는 [여보...] 라는 슬픈 목소리 외에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딱 한 번, 동생도 새벽까지 깨어있다 같이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동생은 얼굴이 새파래져 [이거 위험해... 진짜 위험한 거 같아.] 라며 벌벌 떠는 것이었다.


얼마 후, 할머니의 방이 소란스러웠다.


잠시 후, 할머니의 딸이라는 여자와 그 남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어머니랑 연락이 닿지를 않아요. 방 안에도 안 계시고... 옆집 분이시니까 혹시나 해서 그런데 아시는 게 없으신가요?]


당연히 나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저도 짐작갈만한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동네 여기저기를 찾아봤다.




아무리 찾아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었다.


그 사이 잠시 할머니네 집을 들여다 봤다.


이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방안은 무척 황폐해져 있었다.




딸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있어봤자 딱히 도움도 못되는 입장이라 그냥 돌아올 뿐이었다.


그리고 몇시간 후, 1km 정도 떨어진 대형마트 앞에서 맨발로 걷고 있던 할머니가 발견되었다.




우리 집에는 수색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딸이 답례품을 보내왔다.


나는 손주가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해야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말하지 않았다.


그 후 할머니는 그 집을 떠났다.




그 때 처음 대학생이라는 손주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캬하하하] 하고 웃을 것 같지는 않을 뿐더러, 대학도 저 멀리 칸사이 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과 밥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치매 증상 중 하나인걸까? 무슨 정신질환 같은 거 때문에 인격이 둘로 나뉘기라도 했던건지 뭔지...] 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은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고 내게 되물었다.


[형은 정말 웃음소리 밖에 못 들었어?]


[캬하하하 하는 소리 밖에 안 들렸는데?]




[아니... 캬하하하 하고 웃은 다음, 똑같은 여자가 낮고 작은 목소리로 "죽어" 라고 말했었어...]


동생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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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68th]탄광사고

괴담 번역 2015. 6. 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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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일인데도 묘하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다.


내가 살던 시골 근처에는 탄광이 있었다.


그 탄광이 무너져내려, 일고여덟명이 탄광 안에 생매장이 된 사건이 있었다.




그 중에는 우리 옆집에 사는 스무살 난 형도 있었다.


옆집 아줌마는 매일 같이 현장에 찾아가, 반쯤 미친 것처럼 울부짖으며 빨리 구해내라며 울며 소리쳤다.


그런데 나흘째 되는 날, 갑자기 아줌마는 악령이 들렸던 사람이 정신을 찾은 것 마냥 얌전해졌다.




그리고는 [아들은 이제 죽었을거야...] 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우리 어머니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단다.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아침부터, 불단에 올려두던 차에 계속 거품이 일었어. 그게 어떻게 봐도 아들이 내쉬는 괴로움에 찬 숨 같아서...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거품이 일지를 않았어. 아들도 숨을 거둔거겠지...]


며칠 뒤, 탄광이 열리고 형은 싸늘한 시체로 땅 위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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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 혹시 이 주변에 양옥집이 어딨는지 아시는지요?]


쇼핑 도중, 누군가 어머니를 불러세웠다.


돌아보니 웬 노신사가 서 있었다.




이 주변에 있는 양옥집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양옥집은 "추억의 마니"[각주:1]에 나오는 습지저택 같은 느낌의 집인 듯 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양옥집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훌륭한 집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주변에 그런 건물은 없다.


어머니는 미안하지만 모르겠다고 노신사에게 말했다.


노신사는 유감스러워하며 어딘가로 가버렸다고 한다.




나는 도쿄 세타가와구에 산다.


주변에는 확실히 고급 주택가도 있다.


하지만 그건 세이죠 등 일부 지역이고, 우리 집은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이 곳 토박이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집에서만 살고 계시기에, 어머니는 일찌기 근처에 양옥집이 있었는지 아버지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역시 금시초문이었다.


과거 세타가야는 밭이나 양돈장 뿐인 시골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동네에서 오래된 집들은 다 일본식 단독주택이다.


양옥집하고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것이다.


나는 주변에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들께 여쭤봤지만, 역시 아무도 몰랐다.




다만 잡화상을 운영하는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전에 그런 걸 물어본 아저씨가 있었는데 말이야.]


잡화상 아저씨도 양옥집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우리 어머니처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분명 이 근처인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것이었다.


웬지 그 양옥집이 신경쓰여서, 나는 산책하는 김에 그 건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집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녀도 그런 건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도중, 학교에 갔다 주변에서 하숙을 하는 친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만 길을 잃었지 뭐냐. 너네 집 주변은 꼭 미로 같더라. 똑같이 생긴 주택가에 비슷한 집들 투성이라 몇시간 넘게 헤맸다니까.]


그건 그렇다.




우리 집 주변 뿐 아니라, 세타가야라는 동네 자체가 그런 곳이다.


길에 익은 사람이 아니면 쉽게 헤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길도 꽤 복잡한데다, 주변을 둘러봐도 닮은 곳 뿐이다.




몇십년 넘게 살아온 사람도, 자기 집 주변을 벗어나면 길을 잃기 십상인 것이다.


[음, 그건 그렇고 엄청 고급스러운 집을 봤어. 역시 세타가야에는 부자들이 많이 사는구만.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양옥집이 있더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바로 친구에게 그 양옥집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갑작스런 내 부탁에 친구는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양옥집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돌로 된 담으로 둘러싸여있고, 철책으로 된 문이 엄청 멋있더라. 문패 같은 건 잘 기억이 안 나네. 어두워서 뜰은 잘 안 보였지만, 나무가 몇 그루 있었던 거 같아. 건물 곳곳에는 담쟁이덩굴이 얽혀서,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느낌이었어. 석양의 오렌지색 빛이 창문에 반사되서, 무척 아름다운 집이었지. 사람 모습은 못 봤지만 웬지 빈 집이 아니라 누가 사는 집 같더라.]




노신사가 어머니에게 물어봤던 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양옥집의 위치를 물었지만, 친구도 길을 잃고 헤매며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었기에 정확한 장소는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필 그 무렵 친구는 지방에서 막 상경했던 터라 길이 눈에 익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우리 집 근처 대로로 나왔었으니, 우리 집 근처일 것이라고 친구는 덧붙였다.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은 그런 집을 본 적이 없는데, 지방에서 막 올라온 친구는 보았던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아직 세타가야의 고향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


아직까지 그 양옥집은 본 적이 없다.


그 외에도 양옥집을 본 사람이 있을까?




찾아낸 사람은 안에 들어가 봤을까?


만약 안에 들어갔다면, 집 주인과 만났을까?


안에는 무엇이 있는걸까?




그리고 누가 살고 있는걸까?


신경은 쓰이지만 알 도리가 없다.


지금까지 양옥집을 본 사람은 모두 외지인이었다.




혹시 지역주민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하고보니 전혀 있을 것 같지 않는 소리지만...


혹여나 당신도 세타가야에서 길을 잃은 후, 훌륭한 양옥집을 발견한다면 그 집일지도 모르겠네.





 

"추억의 마니"에 나오는 습지저택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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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브리 스튜디오의 2014년작 장편 애니메이션. 지브리 스튜디오 최후의 작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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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66th]참수지장

괴담 번역 2015. 6. 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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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무렵, 부모님이 이혼했다.


나는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어, 외갓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토호쿠 지방에 있는 마을로, 꽤 쇠락한 곳이었다.




집도 드문드문 있을 뿐이고, 마을에 가게라고는 작은 슈퍼 하나와 편의점 하나가 전부였다.


그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전교생을 합쳐도 스무명이 안 됐다.


나하고 동갑은 세명 뿐이었다.




전학을 오고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날부터, 나는 한 학년 위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차피 시시한 거였겠지.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싫어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문득 나는 참수지장을 떠올렸다.


참수지장이라는 건 막 이사왔을 무렵 외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작은 공원 안쪽 숲에 있는 목이 없는 지장보살 3개.


거기에 절대로 공양물을 바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지만, 나는 학교에서 친구에게 듣고 말았던 것이다.




그 지장보살에게 공양을 하고, 누군가를 죽여달라고 부탁하면 그 상대를 죽여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참수지장에게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도시락을 먹는 날.




어머니가 싸주신 주먹밥 2개를 안 먹고 참은 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참수지장에게 바치고 소원을 빌었다.


그날 밤, 자고 있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하고 갑옷을 입고 걷는 듯한 소리였다.




[모자라.]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런가.




지장보살은 모두 셋이었지.


주먹밥이 하나 모자랐던건가.


이튿날 아침, 나는 주먹밥을 하나 가지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도중에 참수지장 앞으로 가니, 어제 바쳤던 주먹밥 2개가 그대로 있었다.


가져온 주먹밥을 공양하려던 순간이었다.


[이 미친 자식이! 뭐하는 짓이냐!] 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눈에 익은 아저씨가 달려오더니, 생각할 틈도 없이 얻어맞았다.


곧이어 나는 아저씨한테 질질 끌려 집으로 왔다.


아저씨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고함을 치며 뭐라 말하고 돌아갔다.




저녁이 되자, 많은 어른들이 집으로 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그저 사과만 하고 있었다.


토호쿠 사투리 때문에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몰랐지만, 나도 같이 열심히 사과를 했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큰일이 난 것 같았다.


그게 며칠이고 이어진 끝에, 우리 집은 마을 전체로부터 따돌림당하게 되었다.


참수지장에게 공양을 한 집은 따돌린다는 게 옛부터 내려오는 규칙이었다고 한다.




우리 집 사람들과는 아무도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슈퍼든 편의점이든 우리한테는 물건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바로 해고당했고 나는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동사무소에 항의하러 갔지만, 거기서도 무시할 뿐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이 마을에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도쿄로 이사하자고 했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기에, 이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괜찮으니 둘이서 도쿄로 가려무나.]


어머니는 남겨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걱정했지만, 여기에서는 어머니도 일할 수 없고, 나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생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도쿄로 다시 이사했다.


외갓집에는 매일 같이 전화를 하고, 먹을 것이나 옷도 택배로 자주 부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선이 끊긴 것인지 전화가 먹통이 되었다.


마을에 쇼핑하러 나왔을 때 공중전화로 외할머니가 전화를 걸 때를 빼면, 편지만이 유일한 연락수단이 되었다.


시골에 내려갔을 때 전화를 고치자고 제안했지만, 두 분은 이대로 괜찮다고 한사코 거절하셨다.




아마 그 외에도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있었지만, 이미 모든 걸 포기했달까,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내 머릿 속에는 언제나 그 마을 일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때 저지른 일을 후회한다던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미안해서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 발소리와 [모자라.]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기 때문이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저 소리가 들릴 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어느날 택배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외갓집에 보낸 택배 때문이었다.


몇번을 찾아가도 집에 아무도 없어 배달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예감이 엄습했다.




아니, 반 정도는 아마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다면 전화가 왔을터인데, 그런 것 하나 없이 부재중이라니...


나는 어머니와 곧바로 외갓집에 향했다.




외갓집에 도착한 것은 밤 늦게였다.


외갓집은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현관문을 두드려봐도 아무 대답이 없다.




현관은 미닫이 문이라 가볍게 열 수 있었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한걸음 들여놓은 순간 확신했다.


코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썩은내가 풍겼다.




어머니는 소리를 죽인채 오열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불을 켠다.


어디일까.




침실일까?


현관을 들어가 오른쪽으로 돌면 침실이다.


침실에 가는 도중, 왼쪽 방문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불간이다.


안을 보니 할머니가 떠 있었다.


목을 매달고 있다.




할아버지는 같은 방에서 이불 위에 누운 채 죽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처럼 울었다.


우선 밖에 나가자고 어머니를 달랬지만,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려 했지만 막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이라, 시골에서는 전파가 닿지를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가까운 파출소까지 걸어가 신고했다.


할아버지는 병사, 할머니는 자살인 것 같다고 경찰은 말했다.




병을 앓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 할머니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따로 장례식은 치루지 않기로 하고, 스님을 영안실에 모셔 경을 올리고 화장했다.


집에 돌아가는 날, 사진 같은 걸 챙길 요량으로 외갓집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두 분이 남긴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말고는 없었기에, 어머니는 상속도 하지 않을 생각인 듯 했다.


이 마을에 오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다.


어머니가 집에서 이런저런 처리를 하는 동안, 나는 그리운 길을 걸었다.




등교길이다.


공원에서 그네를 타면서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더 이상 이 마을과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갈까?


하지만 그 발소리와 목소리는...




그걸 끊어내야만 이 마을과의 관계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 안에 들어가, 참수지장에게 가져온 주먹밥을 하나 바쳤다.


무엇을 바랄까.




누구를...


바로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다.


나는 누구를 죽이고 싶은걸까.




이 마을 사람 전부를 죽여주세요.


그렇게 빌었다.


공원 쪽을 보자 대여섯명의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면식이 있던 사람도 있었다.


아마 저 사람들도 내가 누구인지 금새 알아차렸겠지.


내가 다가가자 눈을 돌리고,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지나쳤다.


그 이후 발소리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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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65th]작은 공원묘지

괴담 번역 2015. 6. 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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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친구가 죽은지 4년이 지났다.


지난주, 대학에서 같이 부활동을 했던 친구들이 모여 그 녀석 무덤에 성묘를 하러 갔다.


한적한 시골의 작은 공원묘지였기에, 휴일 낮인데도 우리 말고 다른 참배객은 없었다.




묘비를 깨끗이 닦고, 꽃을 바친 후 손을 모은다.


따로 할 일도 별로 없고, 남자 다섯이 흉하게 몰려와 참배나 하고 있었기에, 주변에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도 찾아 거기서 옛날 이야기나 하기로 했다.


그래서 뒤로 돌아 공원묘지를 나가려는데, 출구에 사람이 있었다.




그 곳은 무척 작은 곳이라, 출입구는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것 하나 뿐이었다.


우리 다섯이 거기를 우격다짐으로 지나가면 분명 폐가 될테니, 우리는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꽤 거리가 있어 얼굴은 보이질 않지만, 딱히 뭔가 하는 듯한 낌새도 없었다.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가려고 하는데, 문득 처음 있던 사람 옆에 사람들이 잔뜩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모임이라도 하는건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화창한 날이라 조금 거리는 있어도 저편 모습은 잘 보였다.


출입구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 있고, 그 밖은 주차장이다.


누가 출입구 쪽으로 다가온 거라면, 바로 눈에 들어왔을 터였다.




게다가 출입구에 서 있던 사람이 비키면 지나갈 요량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던 터였다.


처음 우리가 봤을 때 출입구에는 한 명 밖에 없었다.


그게 한순간에 10명이 넘는 무리로 늘어나 있었다.




당황해 주변을 보니, 친구들도 뭔가 미묘하다고 할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창한 휴일 낮이다 보니 아직 공포감이 엄습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기분 나빴다.


뭐야, 저건...


한 번 더 출구 쪽을 보았다.




더욱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해도 워낙에 맑은 날이다 보니 다른 것들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기묘하게 그 사람들의 얼굴만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두가 우리 쪽을 보고 있다.


보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친구 중 한 명이 [도망쳐야... 겠지?] 라고 입을 열었다.




어디로 도망치자는걸까.


철조망 너머는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있다.


길쭉한 공원묘지는 우리 정면에 출입구가 있었다.




왼쪽은 가까운 절로 이어지는 철조망.


오른쪽은 도로.


뒤는 강이었다.




누군가가 [도망치자!] 라고 외친 걸 시작으로, 다들 뒤쪽으로 강을 향해 달렸다.


등 뒤의 출입구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강과 묘지 사이를 가르는 철조망에 올라타, 찔려서 피가 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기어올라 굴러 떨어지듯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올려다보니 아직 철조망에 붙어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 파카의 후드를 붙잡고 있는 손이 하나, 그리고 뒤에서 뻗어오고 있는 팔이 여럿 보였다.


그 녀석은 철조망에서 손을 떼더니, 뛰어내리는 것처럼 몸을 던져 겨우 팔을 뿌리쳤다.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녀석을 부축해서, 어떻게 겨우 전부 도망쳤다.


다행히 크게 다친 놈은 없었지만, 묘지와 강 사이에 높이가 좀 있었던데다 철조망에 긁히기도 해서 다들 상처투성이였다.


차는 여전히 주차장에 있는 채였다.




몇시간이 지나고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아, 우리는 절에 전화해 스님과 동행해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일단 스님에게 상황 설명은 했지만, 곤란하다는 얼굴만 할 뿐 제령이나 뭐 다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우리도 혼란해하고 있었으니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내 차였기 때문에 내가 가지러 갈 수 밖에 없었다.


친구 중 한 놈은 따라와줬지만, 다른 녀석들은 더는 묘지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며 멀리서 떨어져 기다렸다.


매정하다고 말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너무나 무서웠으니까.


저녁이 되어 주차장에서 본 묘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소름 끼쳤다.


이제 그 녀석 무덤의 성묘는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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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는 해운회사에서 항해사로 일했다.


입사 직후 있었던 일이다.


내가 타던 배가 정기점검 때문에 조선소로 보내져, 평소에는 닫아두던 곳들도 전부 개방해 내부를 점검하게 되었다.




그 배는 전체 길이 300m 이상의 초대형 유조선이었다.


원유탱크와 이어진 파이프에 누수나 파손이 있지는 않은지 내부에서부터 정밀점검을 하게 된 것이었다.


워낙 큰 배다 보니 갑판과 배 밑바닥 사이에는 30m 가량 공간이 있었고, 파이프는 배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굵기가 직경 60cm 정도인 파이프가, 200m 가량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구부러진 형태가 아니라 일직선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이프 안은 암흑천지다.




상사와 둘이서 점검을 위해 들어가게 되었지만, 폐소공포증이 있는 내게는 도저히 참기 힘든 곳이었다.


가로로 늘어선 파이프 중, 딱 한 곳 세로로 서 있는 곳이 있어, [거기 들어가면 나올 수도 없어. 도울 방법도 없으니까 조심해라.] 라고 선배가 말했다.


파이프 입구부터 시작해, 밸브 사이의 좁은 틈새를 억지로 파고든다.




팔꿈치와 무릎에는 보호대를 차고, 회중전등을 든 채 새까만 파이프 안을 네 발로 기어간다.


앞에 먼저 기어가는 선배를 필사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조선소였기에, 날씨도 찌는 듯 더웠다.




일단 내부점검 때문에 들어온 것이었지만, 말단이었던데다 공포 때문에 책임감도 전혀 없었던 내게는 주위를 점검할 여유 따윈 없었다.


단지 어떻게든 빨리 출구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내가 들어간 파이프는 직경 60cm 짜리였지만, 같이 들어갔던 상사는 이전에 45cm 짜리 파이프에도 점검차 들어갔던 적이 있다고 한다.




직경 45cm 파이프를 200미터나 기어가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미칠 것 같았다.


유조선의 기름탱크는 최소 10개 이상으로 나뉘어 실려 있다.




특별히 작은 걸 제외하면, 탱크 면적 하나가 체육관 급이다.


아까 언급했다시피, 탱크가 있는 곳은 높이 30m의 넓은 공간이다.


출입구는 천장에 있는 직경 1m 정도의 해치를 제외하면 주변의 맨홀 몇개 뿐이다.




입구를 열고 빛이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간에 어슴푸레한 빛이 머금어드는 무척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허나 안에 직접 들어가보면 배 밑바닥과 외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보강재 때문에 가려지는 곳이 많아, 위에서 본 것과는 달리 사각이 많다.


그리고 점검이 끝난 후 위에서 대충 내려다 보기만 하고 확실하게 체크하지 않은 채 해치를 닫아버리면, 안에서 점검하고 있던 사람은 그냥 갇혀버리는 것이다.




유조탱크는 정전기 같은 작은 자극에도 인화성 물질이 반응해 대폭발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한 번 내부 점검이 끝나면, 산소농도가 엄청나게 낮게 조절한 가스를 탱크 내부로 넣어, 산소를 없애 폭발이 일어날 조건 자체를 없애버린다.


즉, 안에 갇힌 사람은 암흑 속에서 천천히 산소결핍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것이다.




이전 어느 배에서 실제로 그런 사고가 있었고, 발견된 시체는 입구 부근에 넘어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해치를 미친듯 손톱으로 긁어, 핏자국이 남아있었다던가.


뭐, 실제 탱크 안에 가스를 넣는 건 출항 이후고, 그 때까지 승무원 중 누가 사라졌다면 선내 수색이 이루어질테니 아마 거짓일테지.




하지만 요새 정기점검을 도맡는 조선소는 대개 경비 절약을 위해 동남아시아 부근에서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곳에서 점검을 맡는 건 대개 일용직 노동자지.


그들 중 하나가 유조탱크에 갇혀 행방불명이 되더라도, 그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공허하고 어슴푸레한 공간에 혼자 들어가 있노라면, 이런 생각마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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