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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실화괴담][72nd]주희

실화 괴담 2016. 11. 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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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tistory.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리나무님이 방명록에 적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경상북도 문경시 견탄 옆, 태봉사택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마을은 마을 주민들 90프로가 광부인 탄광촌이었죠.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마을이었습니다.




슈퍼도 한개밖에 없고, 공중전화도 한개에 가로등마저 한개밖에 없는 아주 외진 마을이었습니다. 


시내로 나가려면 마을 밖으로 나가서 큰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가는 길에 강이 하나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1차선 도로가 있어요. 




그 뒤로는 기차길이고요.


시골 아이들이 다들 그렇듯, 여름이 되면 항상 그 강에서 친구들과 놀곤 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집 앞에 사는 주희라는 아이였는데, 엄마들끼리 친하다보니 덩달아 저희도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냈죠.


그렇게 지내다 제가 10살이 되던 해, 저희 집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와도 울면서 이별을 했죠. 




저는 꼭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가고 3년 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여름 방학. 


저는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고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마냥 들떠 있었죠.


문경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 다리에 도착한 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려갔습니다. 


그때, 강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대부분 모르는 아이였지만 신나게 놀고있는 갈색머리 아이는 분명 내 친구 주희였습니다. 


저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가파른 길을 뛰어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있던 아이들이 없어진겁니다. 




그때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절 부르며 따라오시더라고요. 


등을 때리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러셨죠.


전 엄마에게 [엄마, 여기 주희 못봤어?] 라고 물었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니? 빨리 마을로 가자.] 라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한 저는 친구들과 반가운 재회를 했고, 곧바로 주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얼굴이 어두워지더라고요.


곧이어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3년전, 주희는 진영이라는 아이와 시내를 다녀오다 마을앞 도로에서 트럭에 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이 진영이는 다리만 다쳤지만, 주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요.


마을은 난리가 났고, 주희 할머니는 그 일로 정신이 이상해지셔서 죽은 주희 허파를 봉지에 넣어 집앞에 매달아 두는 지경이었답니다.




그때부터 주희의 가족들은 점점 다른 주민들과 멀어져갔고, 결국 1년 뒤 어딘가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주희가 살던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되어버렸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전 제가 살던 그 마을은 아예 폐촌이 되어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곳을 떠올리노라면 주희가 생각납니다.


그때 보인 주희는, 3년전 내 약속을 기억하고 마중을 나왔던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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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88th]새까만 사내아이

괴담 번역 2016. 11. 2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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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이야기다.


그날 밤은 친구들이랑 회식을 해서, 꽤 귀가가 늦어졌던 터였다.


막차도 놓치는 바람에 이대로 날 샐때까지 마시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나는 당장 다음날 일용직을 뛰어야 했기에, 혼자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 집은 신주쿠에서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타고 역에 내리면 금방이다.


하지만 걸어서 못 갈 거리도 아니고, 술도 깰겸 천천히 걸어 돌아가기로 했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었다.


떠들썩한 번화가를 지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기분 좋은 밤바람을 느끼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뭐가 툭 튀어나왔다.




[마중나왔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온몸이 새까만 사내아이였다.


내가 [뭐?] 라고 말하며 당황해하고 있자니, 사내아이는 내 얼굴을 지긋이 응시했다.




그리고는 [아, 미안해요! 잘못 봤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휑하니 달려가 버렸다.


뭐였지, 저건...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은 터였다.




이런 한밤 중에 어린 아이가 혼자 밖에서 돌아다니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의심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날은 어쨌거나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그때까지 안 자고 있던 동생한테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거 저승사자 아닐까? 안 끌려가서 다행이네, 형.] 이라며 웃어댔다.




나도 [그러게 말이다.] 라고 대답하며 웃어 넘겼다.


며칠 뒤, 이웃에서 부고가 날아왔다.


죽은 건 나와 같은 나이의 여성이었다.




원인불명의 돌연사라고 했다.


그 여자의 집은 그날 밤, 새까만 사내아이가 달려간 쪽에 있다.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내아이가 진짜 저승사자라면...


만약 그날 밤, 내가 오해받은 채 그대로 끌려갔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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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71st]성모상의 은혜

실화 괴담 2016. 11. 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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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tistory.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카엘님이 방명록에 적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귀신은 믿지 않는 편입니다.


영감 같은 것도 없고요.


다만... 보이지 않는 상대의 괴롭힘은 받아본 적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은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양산된 4층짜리 주공 저층아파트 단지였는데, 집은 튼튼하지만 오래된 동네다보니 불빛 없는 새벽이 되면 정말 무서웠죠.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가끔 산에서 안개가 내려오면 동네 전체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감돌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침대를 선물받아, 부모님 대신 안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낮잠을 자건 밤에 잠을 자건 이상한 가위에 자주 눌리게 되었습니다.


온 몸이 굳어서 뻣뻣한 시신마냥 움직일 수가 없는데, 귀에 남자, 여자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죽어,죽어버려! 깔깔깔깔...]


상스러운 욕설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나중에는 급기야 목이 졸리면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움직일 수는 없는데 숨은 막히고, 귀에는 남녀의 목소리로 [죽어,죽어버려! 깔깔깔깔, 꼴보기 좋네.] 하고 욕설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저는 가위에서 깨기 위해 "이건 가위야, 어서 깨어나야 해." 라고 생각하며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귓전에서 [깔깔깔깔, 꼴 보기 좋다. 너같은 건 없어져버려.] 하고 지껄일 뿐이었습니다.




형체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한번에 여러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그 방엔 여자 말고도 남자도 있었고, 젊은이들의 목소리였습니다.


10대 또래의 목소리라기엔 앙칼지고 굵은 느낌이었고요.




그들은 가위에 걸린 나를 비웃고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 증상이 끊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해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성모상과 성가족상을 받았습니다.




마땅히 장식장도 없고 어디도 둘 곳도 없어, 결국 책상의 책장 위에 두었죠. 


그렇게 올려두니 성모상과 성가족상이 제 침대를 바라보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낮잠을 자도 밤잠을 자도,  움직이지 못 하고 목을 졸리는 가위는 끊기게 되었습니다.




가끔 몸을 못 움직이는 가위가 걸리긴 해도 쉽게 풀려날 수 있더라고요.


1, 2분 정도 가위에 걸려도 갑자기 [쳇...] 하고 혀를 차며 물러 나더라구요.


당시 연이은 고입과 대입으로 지쳤던 내 심리의 무의식이었는지,  아니면 오래된 집에 남은 무언가들이었는지.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눈에 그들이 보였다면 정말로 난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상이 나타난 이후로 그런 현상이 줄어들더니, 끝내는 사라진 것을 보면...


신부님이 축성하며 [수험 생활로 지치고 힘든 미카엘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기도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간절했던 보호 요청의 힘이 나타난 것일까요? 


지금도 신기합니다.


이제 그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 후 으리으리한 초고층 아파트동네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후에도 몇번이고 이사를 했지만, 아직도 그때 그 성가족상과 성모상을 모시고 다닙니다.


물론 제 침대를 바라보게 두고 있고요.


저는 더 이상 괴롭힘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잠도 밤낮으로 잘 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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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87th]물려받은 물건

괴담 번역 2016. 11. 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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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우리집은 무척 가난했다.


부모님은 내가 가지고 싶은 게 있다해도 하나 사주질 않으셨다.


옷은 주변 이웃집에서 물려준 걸 받아다 입었고, 간식이라곤 얼음사탕[각주:1] 뿐이었다.




의무교육은 제대로 받았지만, 필기구나 교과서는 다 물려받은 것이었다.


태어나서 내내 물려받은 물건만 써왔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다만 딱 하나, 싫은 게 있었다.




물려받은 책상이었다.


그 책상은 물려받은 물건인데도 아직 새것처럼 윤이 반짝반짝 났다.


서랍을 열면 나무냄새가 훅 풍겨와, 나는 그 향기 맡는 걸 즐기곤 했다.




처음 그 책상을 받고 나서는 너무 마음에 들어, 한가할 때면 분수에 맞지 않게 거기 앉아 책을 읽는 게 내 기쁨이었다.


하지만 책상을 받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이상한 체험을 했다.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책상에서 책을 읽는데, 오른쪽 다리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다리에 느껴지는 감각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다리를 조금 빼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게 할 뿐.


그러나 잠시 뒤, 또 서늘한 것이 다리에 닿았다.




기분 나빠서 나는 오른발로 서늘한 것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러자 발끝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시선은 책에 꽂혀 있었지만, 의식은 책상 아래 발끝에 몰려 있었다.




나는 오른쪽 다리를 슬쩍 움직여, 그것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듯 했다.


부드러운가 싶으면 딱딱한 곳도 있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발끝은 핥듯 그것의 표면을 훑다가, 마지막으로 위쪽을 향했다.


가는 실 같은게 수도 없이 느껴진다는 걸 알아차림과 동시에, 나는 내 발에 뭐가 닿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살그머니 몸을 숙여 책상 아래를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창백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내 발끝은 사내아이의 머리에 닿고 있었다.


나는 놀라 의자에서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책상 아래 사내아이를 향하고 있었다.


사내아이 역시 미동도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나는 엉금엉금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가 금방 본 걸 울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믿어주질 않았다.


만약 믿어주더라도, 우리 집에 책상 살 돈은 없으니 바꿔줄리도 없었고.




결국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그 책상을 사용했다.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노라면 종종 다리에 서늘한 것이 닿을 때가 있었지만, 책상 아래를 보지는 않았다.


또 그 아이와 마주칠까 무서웠으니까.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보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속여 넘길 생각이었다.


중학생이 된 후, 나는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봤다.


내가 쓰고 있는 책상은 누구한테 받아왔냐고.




어머니는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그 책상은 와타루군네 집에서 받아온거야.] 라고 가르쳐주었다.


와타루군은 나와 동갑으로, 함께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 와타루군은 강에 떨어져 죽었다.




머리가 좋았던 와타루군은 입학하기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책상에서 공부하며, 앞으로 시작될 학교 생활을 두근대며 기다린 게 아니었을까.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책상 아래 있는 와타루군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




와타루군이 이루지 못한 꿈만큼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할 작정이었다.


그 후로도 와타루군은 내 다리를 만지곤 했다.


나는 와타루군이 다리를 만질 때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는 것이라 여겼다.




와타루군의 격려 덕분인지, 나는 상당히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서는 야구가 유행하게 되었다.


나도 끼고 싶었지만 야구배트나 글러브를 살 돈이 없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아버지에게 졸랐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 기다려라.] 라고 말했다.


몇개월 뒤, 아버지는 배트와 글러브를 내게 건네주었다.




또다시 물려받은 것이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 야구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나는 다른 아이들 틈에 끼어, 신나게 야구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날, 한 친구가 내 글러브를 보고 말했다.


[그거, 요시로 글러브 아니냐?]


요시로는 학교 야구부에서 뛰던 같은 반 친구였다.




재능이 있어 신입생인데도 주전으로 뛸 정도였다.


하지만 요시로는 얼마 전 죽은 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강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내가 쓰는 글러브가 요시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다짐했다.


요시로가 아쉬워하지 않게, 그 녀석 몫까지 열심히 야구하자고.


그때, 문득 생각했다.




요시로와 와타루군은 묘하게 닮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찍 죽은데다, 사인도 죽은 장소도 같다.


그리고 두 사람의 유품을 내가 쓰고 있다.




이런 우연이 있는걸까?


몇개월 뒤, 나는 다시 아버지를 졸랐다.


이번에는 게임기가 갖고 싶었으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조금 기다려라.] 라고 말했다.


2주 뒤, 아버지는 게임기를 가져다 주었다.


또 물려받은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게임기를 받기 얼마 전, 신문에 실렸던 기사가 떠올랐다.


근처 강에서 중학생이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날 밤, 평소처럼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몇년간 나는, 그게 죽은 와타루군이 나를 격려해주는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무언가는, 필사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책상 아래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1. 氷砂糖. 순도 높은 설탕 결정을 굳혀 만든 사탕으로, 겉모습이 얼음조각과 비슷해 보여 얼음사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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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86th]미친 가족

괴담 번역 2016. 11. 2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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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전하려는 건 내가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야할까요.


나는 23살 남자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간병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52살, 어머니는 44살, 동생은 18살.


가족 넷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동생은 이번 봄부터 취직을 위해 자취하러 나갈 예정이었지만요.




그날 역시, 저녁을 먹은 뒤 거실에서 부모님이랑 함께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동생 방은 어디다 잡아 주실거에요?] 라던가, [혼자 사려면 이거저거 준비할 게 많을텐데?]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생은 자기 방에서 취직 관련해서 뭘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지직... 지지직... 지직...


갑자기 TV에 노이즈가 꼈습니다.


하지만 금새 멀쩡해졌기에 나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 TV를 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말인데...]


문득 부모님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제야 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입을 반쯤 벌린 채,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TV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 왜 그래, 다들...?]


나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부모님의 표정에 놀라 물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를 무시하고 계속 TV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두 사람은 부릅뜬 눈만 돌려 나를 보았습니다.


[왜 그래!]




하지만 다음 순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응, 그렇지만 자취라니 말이야...]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괜찮지 않겠어?]


[아니, 잠깐... 잠깐 기다려! 지금 그건 뭐였어? 뭐였냐고?]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옛날부터 농담도 잘 말하지 않는 딱딱한 분들입니다.




장난으로 그런 짓을 하실리 없었습니다.


[지금 그거라니?]


하지만 부모님은 둘 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게 지어낸 게 아니라 진짜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어... 지금 그거라니...]




부모님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텐데...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웅얼거리며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 죽을거야?]


[어?]




나는 당황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합니다.


[그러네, 그 이야기도 해야겠구만. 언제로 하지? 자살이 좋을까, 사고가 좋을까?]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아... 뭐...? 죽어? 누가...? 응?]




완전 횡설수설하고 있었죠.


하지만 부모님은 신경도 안 쓰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나도 그동안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제 딱 좋은 거 같네.]




[도와줄테니 걱정 말아요.]


부모님은 더욱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목을 매달면 뒷처리가 어렵다느니, 수면제가 좋다느니, 뛰어내리다 도중에 기절하면 아프지 않다느니...




마치 그걸 다 체험해보기라도 했다는 듯이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뭐가 재미있는 것인지 하하호호 웃기까지 했습니다...


[자, 잠깐만!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분명히 이상한 부모님 모습을 보고, 불안과 무서움에 그만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동시에 나를 바라봅니다.


[헉...!]




부모님의 눈동자는 양쪽 모두 반대방향을 향해 치켜뜬 채였습니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시선은 어딜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얼굴만은 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꼴을 하고, 망가진 로봇처럼 죽으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동생 방으로 도망쳤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동생이 깜짝 놀라 기겁했습니다.


[으악! 깜짝 놀랐잖아, 형!]


동생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그게 말이야! 아버지랑 어머니가! 눈동자가 반대로... 죽으라고 말하고 막... 아, 그 전에 TV에 노이즈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하나도 모르겠잖아.]


나 스스로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결국 머리를 움켜쥐고 말았습니다.




[아, 아무튼 부모님이 이상해!]


문득 눈을 들어 동생을 봤습니다.


동생은 입을 반쯤 벌린채, 눈을 부릅 뜨고 있었습니다...




[아... 아...]


부모님이 이상해진데 이어, 동생까지...


서서히 동생의 눈동자가 반대 방향을 향하는 걸 보고, 나는 현관을 향해 달렸습니다.




뭐야, 이게!


도대체 뭐냐고!


현관에서 밖으로 나가기 직전, 슬쩍 시야에 거실이 들어옵니다.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눈동자는 반대방향을 향한채...


전속력으로 사람이 많은 대로까지 달려나왔습니다.




그 후, 조금 안정을 찾고 휴대폰으로 혼자 사는 직장 선배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선배네 집으로 갔습니다.


선배는 영능력이 있는 사람이기에, 보통 사람은 믿어주지 않을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줬습니다.


[그러냐... 좋아, 내일 아는 절에 가서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자. 오늘은 우선 푹 쉬어. 너 얼굴이 장난이 아니다.]




그날은 선배네 집에서 묵었습니다.


다음날, 선배는 야근이고 나는 휴일이었습니다.


아침 6시, 선배네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절에 가, 거기 주지스님에게 어젯밤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내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 말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큰일이었군요, 얼굴이 초췌하십니다.]


그 후, 그대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말에, 나는 선배와 주지스님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안은 지옥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양팔, 양다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거실과 복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실 구석에는 피가 묻은 식칼이 몇자루 버려져 있었습니다.




[앞으로 2번 왕복하면 오른쪽 다리 혈관을... 앞으로 3번 왕복하면 팔뚝 혈관을...]


중얼중얼 혼잣말을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목욕탕에 있었습니다.




물이 가득한 욕조에 스스로 머리를 잡고 쑤셔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직접 머리를 눌러가면서...


[아가가가가각... 아가가가가각... 죽어, 네놈! 죽어, 네놈! 죽어, 네놈!]




동생은 책상에서 글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다만 손에는 커터칼을 들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거울이 있었습니다.


[OO시 OO쵸...]




집 주소를 몸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서워 엉엉 울었습니다.


그 후 세명 모두 주지스님과 다른 절에서 도와주러 오신 스님 덕에 정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지스님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가족들이 그렇게 되어버린 건 선조에게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사극에서 종종 [후손까지 저주해주마!] 라고 말하는, 그런거라고요.


게다가 저주하는 방법도 잔혹해서,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가족에게 빙의해, 천천히 시간을 들여 옭아매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저주하는 쪽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랍니다.


나는 전생에 덕이 높은 스님이었기에, 나한테는 차마 손을 못 댔다는 겁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그런 상황이 이어지니, 참다못해 가족에게 손을 넓혀 압박을 가해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와 동생 몸에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어, 같이 목욕이라도 가면 늘 우울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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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85th]오래된 화장대

괴담 번역 2016. 11. 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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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내가 옛날 일하던 디자인 회사 거래처에서 알게 된 여성에게 들은 것입니다.


그녀도 나도 작은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라, 공통 화제가 많았습니다.


서로 일이 빨리 끝나면 함께 저녁을 시켜먹기도 하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장래 전망을 늘어놓으며 자주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고백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인이라 섣불리 고백했다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가끔 둘이서 밥이라도 같이 먹는 사이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녀에 대한 마음을 가슴 가득 품은채 한달에 두어번 있을까 말까한 식사자리만 기다리며 보내고 있었죠.


그렇게 그녀와 몇번째인가 같이 저녁을 먹던 날, 우연히 그날 밤 방송되는 공포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혹시 무서운 일이라던가 직접 겪어본 건 없어?] 하고 슬쩍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딱 한번... 무서운 일을 겪어본 적 있어요.] 라며 그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그녀, A는 갓 상경한 미대생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탓에 겁도 많고 낯도 가렸지만, 워낙 성격이 밝았던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도 잔뜩 생기고 즐거운 학창생활을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A씨는 휴일마다 친구와 함께 잡화상, 앤틱 숍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였습니다.


어느날 저녁, 유럽 가구를 주로 다루는 작은 가구점에서 꽤 낡은 화장대를 발견하고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그 화장대는 거울 주변에 전구가 달려 있어, 옛날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분장실에서 쓰던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무척 화려한 물건이었죠.


다다미 8장짜리 원룸에서 사는 입장인데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기에 한번은 A도 포기하고 돌아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화장대가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아, 결국 중학교 때부터 모아온 저금에 2개월치를 먼저 보내주시던 부모님 용돈까지 탈탈 털어 그 화장대를 사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날 밤, 샤워를 마친 A는 빨리 그 화장대 앞에 앉아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습니다.


원래부터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A입니다.




거울 주변에 달린 라이트의 부드러운 불빛 덕인지, 거울 속의 A는 평소보다 더욱 희고 아름답게 보였다고 합니다.


A는 마치 자신이 진짜 할리우드 여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잠겨 황홀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과제에 치여 사는 매일매일 중에, 그 거울 앞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A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A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거울 앞에 앉아있을 때를 빼면, A는 조금씩 성격이 나빠지기 시작했답니다.




대학에서 친한 여자 동기가 [요즘 더 예뻐진 거 같은데? 남자친구라도 생겼어?] 라고 말을 걸어오곤 하는데, 기쁜 마음도 있지만 속에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 이 못생긴 것아! 너희들이랑 나는 달라." 하고, 친구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피어오르더랍니다.


A는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의 애매모호한 태도에도 분노가 솟아올랐다고 합니다.


어느새 그것은 A의 마음 밖으로 나와, 태도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많던 주변 친구들도 슬슬 A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좋아하던 남자 역시, A가 권해야 마지못해 어울려 주곤 했습니다.


그 모습 또한 A의 초조함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요.




어느날, 노천카페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뚱하게 있는 그를 보고, A는 입을 열었습니다.


[왜 그러는데? 나한테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확실히 말하지 그래. 그런 태도, 짜증나거든?]


그러자 잠시 가만히 있다, 그는 A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럼, 확실히 말할게. A 너, 처음 만났을 때랑 성격이 꽤 달라진 거 알아? 전에는 온화하고, 누구하고든 상냥하게 이야기했었다고. 거기다 얼굴도...]


거기서 그는 말을 멈췄습니다.


[뭐라고? 내 얼굴이 뭐가 어떻다는건데? 똑바로 말하라고!]




A는 소리를 빽 질렀다고 합니다.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그게 말이야... A 너, 성형한거야? 다른 애들도 다 수군대고 있어. 확실히 얼굴이 바뀌었다고. 원래는 귀여웠었는데... 왜 그렇게 인상이 센 얼굴이 되어버린거야?]




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A는 앞에 있던 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일어섰다고 합니다.


[내가 성형 같은 걸 했을리 없잖아! 장난치지마!]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 하고, 화가 잔뜩 나 어지러운 머리로 A는 휘청휘청 카페 화장실에 들어섰습니다.




성형이라니, 내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왜 다들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거야?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 문득 눈앞의 거울을 물끄러미 봤답니다.


그 순간, A는 자신의 얼굴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어... 내 얼굴이 이랬던가...?




그 순간, 집에서 그 화장대 거울 비치던 자기 얼굴이 떠오르더랍니다.


지금까지 왜 깨닫지 못했는지, 왜 아무렇지도 않게 그 거울을 바라봤던 것인지...


A 스스로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거울에 비치던 A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인도 아니고, 아예 본 적 없는 백인 여자였다고 합니다.


눈은 A보다 크고 조금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눈이었고, 눈썹도 강해보이게 생겼다고 합니다.




무척 아름다운 북유럽계 여성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붉고,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였습니다.


그걸 자랑스럽게 브러쉬로 빗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합니다.




문득 거울을 다시 보고, A는 오싹해졌습니다.


자기 얼굴이 그 거울 속 여자와 닮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의 얼굴에 물을 뿌리는 행동 따위 원래 자신이었다면 할 리가 없었을 터입니다.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주변을 업신여기는 기분 따위 이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 분노와 초조함 또한 그녀의 것일 터입니다.


그녀가 나를 취해, 변해가고 있다니...




공포로 덜덜 떨면서도, A는 이미 돌아간 그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모든 것을 털어놨습니다.


그 거울이 있는 방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싼 화장대라 원래 샀던 곳에 반품할까 싶기도 했지만, 자기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또 나올까봐 결국 그대로 해체했다고 합니다.




그 후, 몇 주 지나지 않아 A의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성격 또한 온화하고 상냥한 원래 A씨 성격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원해졌던 친구들과도 다시 친해졌고요.


한동안은 겁에 질려있었지만, 화장대를 해체했다고 딱히 저주가 내린 것도 아니었고, 이상한 일은 그걸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녀는 그 무렵 찍은 사진을 휴대폰으로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확실히 눈이 지금 그녀보다 컸고, 눈꼬리도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그녀와는 다른 얼굴을 보니,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혹시 성형하기 전 얼굴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그런 판단에는 자신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이 진짜 외국인 같았기에 진심으로 믿게 되었죠.


더불어 나는 그녀에게 고백도 제대로 못하고, 회사 간 거래가 끊기면서 지금은 그저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제일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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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84th]헤어진 여자친구

괴담 번역 2016. 11. 2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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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사귄 여자가 있었습니다.


5년이라는 세월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4년째가 지날 무렵부터, 여자친구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도 나중에 결혼하자고 이야기하곤 했고, 언젠가는 진짜 결혼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막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직처를 찾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나 자신조차 가누지 못하는 상황인데, 왜 결혼 이야기를 대뜸 꺼내는 걸까.




여자친구는 자기도 일하겠다고 말해왔지만, 남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결혼하고 살다보면 아이도 생기겠지요.


적어도 가정을 나 혼자 부양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길 때까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의견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몇번이고 설득에 나섰지만, 서로의 의견은 어긋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있으니 결혼하고 싶다.


지켜주고 싶으니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우습게도, 그런 마음이 오히려 이별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던 입은 끝내 서로에게 더러운 말을 내뱉고 말았고, 그녀가 외친 [두번 다시 보기 싫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관계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반년 정도 지났을까요.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이라며 울며 호소했습니다.


매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터지고 말았던 큰 싸움 탓에, 나는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졌던 터였습니다.


관계를 회복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뒤, 나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흘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한번 만나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만나서 얼굴을 보면 마음이 움직일 거라 여긴거겠죠.


나는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잘 못내리는 성격이라, 사귀고 있을 무렵에는 모든 결정을 여자친구에게 미루곤 했었습니다.




그런 내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제안을 했던 거겠죠.


물론 나는 거절했습니다.


다음 전화는 이틀 뒤였습니다.




세번째나 전화를 받으니, 슬슬 기분이 나빠지더군요.


전화기에 여자친구 이름이 뜨는 것도 보기 싫어, 쿠션 아래 핸드폰을 던져넣고 없는 척 하기로 했습니다.


진동이 다 울리고 멈췄나 싶으면,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견딜 수 없어 큰맘 먹고 핸드폰을 집어드니, 부재중 통화가 30통 넘게 찍혀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기분 나빠 견딜 수가 없더군요.




뭐라고 한마디 해줄 생각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 순간이었습니다.


[왜 안 받는거야!]


귀에 전화기를 채 대지 않아도 들릴 정도로 심한 절규였습니다.




한심한 이야기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지더군요.


그녀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문득 떠오른 거짓말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핸드폰을 잊어먹고 나갔다가 지금 막 돌아왔다고.


그리고 가능한 한 상냥한 목소리로,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크크크...]




낮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울고 있는건가 싶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껄껄 웃기 시작했습니다.




[너희 집 앞에 자판기 있지? 지금 보여?]


내 방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곳에 자판기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창밖을 바라본 순간,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그녀가 귀신 같은 얼굴을 한 채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사귀던 5년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습니다.


아니, 한번이라도 봤다면 당장 이별을 고했을거라 생각할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무서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침해가 떠오르자, 나는 겨우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밝은 햇빛을 받으면 마음이 달라질거라 여겼죠.




살짝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봤지만, 자판기 쪽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안심하고 커튼을 활짝 열었습니다.


창문 정면, 가느다란 전봇대에 기대듯 앉아, 그녀는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습니다.


안녕, 하고 입이 움직이는 듯 했습니다.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힘껏 커튼을 닫았습니다.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구나 싶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알아채지 못하게 슬쩍 밖을 보니, 그녀는 여전히 전봇대 옆에 앉아 내 방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집에는 일주일 정도는 버틸 식량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녀라도 배는 고플 것이고, 목은 마를테며, 화장실은 가고 싶겠죠.


나는 틈을 봐서 방을 나온 뒤, 당분간 친구네 집을 돌아다니며 묵을 작정으로 짐을 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가 들여다보지 않을 때만 볼일을 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볼 때는 늘 거기 있었습니다.


나흘째 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희희낙락해서 방을 나오려다, 현관문을 보고 우뚝 멈춰섰습니다.


우편물 구멍이 기묘한 형태로 열려 있었습니다.




신문 정도만 들어올 수 있게 열리는 타입이라 다행이었습니다.


90도로 돌아가서 열리는 타입이었다면, 나는 거기서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을테니까요.


더 열기 위해 손가락이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저기, 들여보내 줘.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서로 사랑했었잖아. 한번 더 이야기를 하자.]


뇌리에 떠오른 것은, 오랜 세월 봐왔던 사랑스런 웃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자판기 옆, 귀신 같은 얼굴만 떠오를 뿐.




나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미친듯이 벌벌 떨었습니다.


그럼에도 몇시간 정도는 잠을 자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린 뒤, 조심스레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가만히 현관문을 바라봤습니다.




우편물 구멍에서 새빨간 줄이 수도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끼익, 하고 철판이 살짝 열리더니, 무언가가 던져져 들어왔습니다.


붉은 줄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림과 동시에, 나는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고기토막이었습니다.


그녀는 작아져서 내 방에 들어올 생각이었던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구급차 불러!] 하고 소리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더욱 소란스러워지더니, 잠시 지나 [문 열어주세요.] 하고 말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문을 열었습니다.


사실은 열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는 경찰일테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현관문도 그 앞 복도도 새빨갰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구급차로 옮겨진 듯 했고, 경찰 쪽에서도 배려를 해줘 대면하지는 않았죠.




발견됐을 때, 그녀는 자기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엇다고 합니다.


나는 곧바로 이사했습니다.


새 집은 건물 입구에 우체함이 있는 곳으로 골랐습니다.




처음 이사했을 때는 커튼을 열때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몇개월 뒤, 그녀가 자살했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솔직히 안심했습니다.




안됐다 싶었지만 안도하는 마음이 더 강했죠.


어느덧 내 마음도 안정을 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여자친구도 생겼습니다.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끼익, 철컥, 끼익.


불규칙하게 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현관문에서요.




끼익, 철컥, 끼익.


다른 곳으로 가도 소리는 들려옵니다.


노이로제 증세까지 생겨,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습니다.




그러자 소리는 멎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그건 기분탓이었으리라 여기고, 나는 다시 새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끼익, 철컥, 끼익.




끼익, 철컥, 끼익.


나는 지금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은 평생 할 수 없겠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평생 홀로 남을 수 없을 겁니다.


아직도 그녀가, 문 앞에서 스스로를 작게 잘라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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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83rd]반어인의 마을

괴담 번역 2016. 11. 1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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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지방에서 도쿄로 상경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친구네 고향은 해변마을인데, 이상하게 여자아이의 출산율이 높다고 한다.


뭐, 쌍둥이가 많이 태어난다는 마을도 있다고 하니, 그 정도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높은 확률로 기형아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난치병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은 의료 기술도 발전해서 그나마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옛날에는 멀쩡한 사내아이 찾아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고 한다.


어느 시기에는 아예 마을에 남자가 없어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헤매다 흘러들어온 남자 여행자가 있으면, 그대로 단 하루 뿐인 천국을 즐기게 되었다.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뒤, 마을 젊은 여자들이 번갈아 가며 아이를 배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더 이상 남자에게 쓸모는 없었다.


취해서 자고 있는 사이, 죽여서 토막낸 후 바다에 버리는 것이다.




태어나버린 기형아들도 마찬가지로 죽여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어느날부터인가, 바다에서 괴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고기에 사람 손발이 달린 것 같은, 반어인이.




그놈은 한밤 중, 바다에서 올라와 집 밖에 나와있는 마을 사람들을 덮쳤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나는 웃음 섞인 질문을 던졌다.


[정말? 너 본 적 있어?]




[아니, 없어. 그렇지만... 있을거야, 분명.]


[왜 그렇게 단언하는거야? 근거라도 있어?]


친구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죽은 기형아들에게 공양 하나 드리지 않았잖아? 처음 찾아왔던 여행자가 살해당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식이 기형아라면 자식까지 살해당하는거야... 공양이던 뭐던 하질 않으면 그 원한이 풀릴리가 있겠냐...]


그 녀석은 "본 적 없다" 고 말했지만, 이야기하는 내내 무언가를 숨기는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 녀석은 보고만 게 아닐까.




기형아가 태어나는 확률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태어나기는 할 터다.


그 녀석은 기형아가 살해당해, 바다에 버려지는 모습을 봐버렸을지도 모른다.


[밤 10시 이후에는 절대 밖에 나다니지 말거라!] 라고 엄포도 들었을테고.




그 녀석의 고향이 해변마을이기는 해도, 걔네 가족은 그 녀석이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가족끼리 그 마을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물어보면 장소 정도는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컬트는 좋아해도 직접 체험하기는 싫었다.


어떻게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마치며, 그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기형아나 여행자의 시체를 물고기들이 먹어치웠겠지...?]


그게 묘하게 무서웠다.




역시 이 녀석, 본 적 있구나 싶었다.







Illustration by j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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