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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에 있는 쿠라시키라는 동네를 알고 있을까?

오컬트판 보는 놈이라면 "뚜껑" 이야기 하면 아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거기 미관지구라는 관광지가 있다.



나는 일 때문에 그 근처를 종종 거닐곤 한다.

아이비 스퀘어라고, 지역에서는 유명한 호텔 옆을 지나, 수제 전병집이나 외국인 대상으로 기모노나 조리 같은 걸 파는 가게가 널린 대로를 지나 수로로 향하는 게 내가 다니는 루트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그날따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념품점이나 먹을거리 파는 노점들도 쉬는 날인지 문을 닫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로를 운행하는 나룻배에도 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미관지구가 통째로 죽은 거 같구나, 하고 멍하게 있자니, 배가 한 척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손님은 타고 있지 않다.

노 젓는 연습이라도 하는걸까? 싶어, 별 생각 없이 계속 지켜봤다.

움직임으로 보아하니 사공은 꽤 나이 먹은 노인인 듯 했지만, 삿갓을 쓴 탓에 얼굴은 그림자 져서 보이지 않았다.



오하라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람 하나 없는 관광지도 꽤 희귀한 풍경이다 싶어, 사진이라도 찍을 요량으로 천천히 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다리도 있고 사진 찍을 구도가 나올테니.



다리 근처와 강과 버드나무를 찍으며, 배에서 눈을 뗐지만 아마 3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배는 사라지고 없었다.

배가 없으니 당연히 사공도 없다.



배가 나아가던 방향은 지나가지 못하게 경계를 세워둔 곳이었다.

그렇다고 뭍에 상륙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배를 끌고 올라왔다면 그야 한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수로에 백조는 떠 있는데, 배는 없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그대로 수로변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곧 다리 아래, 물은 지나가도 백조는 지나가지 못하는, 게다가 배라면 더더욱 지나가지 못할 은빛 경계가 보였다.



역시 못 지나가겠지?

개폐식이라도 있던 것도 아닐테고, 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계 너머에서 사람 얼굴이 쑥 나타났다.

[으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쳤다.



누가 강 아래 떨어지기라도 한건가 싶어 경계 너머 쪽으로 돌아가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없고, 아까와 방향만 달라졌을 뿐.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한순간 보았을 뿐인 그 얼굴은, 내 기억 속에 기분 나쁘게 달라 붙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 알 수 없었고 무표정했지만, 몹시 분노한 것 같은 느낌이 시선에서 전해졌기에.

겁에 질린 것은 아니었지만,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방금 전까지 더웠는데도 양팔에는 소름이 쫙 돋아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귀에 뚜껑이라도 덮인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뭐라고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철벅, 철벅...] 하고, 물에 젖은 맨발로 걷는 듯한 소리가.

뒤돌아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었지만, 누가 됐건 이런 곳에서 흠뻑 젖어 맨발로 걸어다니는 존재는 멀쩡할 리 없다 싶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아까 그 경계 너머로 보였던 얼굴이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제발 착각이었으면 좋을텐데.

돌아봐야 하나, 고민했다.

기분 탓일거라 생각하며 확인하고 싶은데, 몸이 굳어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조금씩 발소리가 다가온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양팔에는 소름이 돋아있는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더운건지 추운건지, 이제는 분간도 잘 가지 않는다.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몇분이나 서 있었을까.



뒤에서 다가오는 것과는 다른, [철썩.] 하고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니, 배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아까 사라졌던 그 배인 거 같지만, 어째서 앞쪽에서 다가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배는 내 근처, 아까 그 경계 앞에서 멈췄다.



역시 저기를 넘어갈 수는 없는 거겠지.

[타겠습니까?]

사공이 그렇게 물었다.



의외로 쉬지 않은, 조금 높은 목소리였다.

눈앞에 있는데도, 고개를 수그리고 삿갓을 써서 역시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 나에게 묻는건가?



안 탈거에요, 저는 관광객이 아니니까.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말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사공은 다시 한번, [타겠습니까?] 하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제 바로 뒤까지 그놈이 와 있는데. 타겠습니까?]

그놈이라니, 누구야, 뭐야!

무서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확실히 발소리는 바로 뒤라고 느껴질만큼 다가온 터였다.

어찌 되었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게 안전할까?

뱃삯은 얼마지?



돈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타겠습니...] 까지 입을 움직였다.

바로 뒤에서 철벅거리는 발소리.

사공이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씩 웃는 입가가 보였다.



장사꾼이니까 손님을 받으면 웃는 게 당연하겠지, 하고 나는 최대한 희망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삿갓 그림자 아래 가려져 있던 얼굴이 보인 순간.

더는 못 돋겠다 싶을 정도로 돋은 소름이, 한단계 더 맹렬하게 돋고야 말았다.



[타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걸 이 악물고 [안 타요!] 라고 바꿔 외친 뒤, 나는 미친 듯 달렸다.

전력 질주할 생각이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휘청거렸기에, 아마 누가 봤다면 얼빠진 꼴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몸이 움직여 준 덕분에, 휘청거리면서도 겨우 넘어지지 않고 원래 있던 길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전병집 할머니가 평소처럼 가게를 지키고 있는 걸 보고서야, 겨우 마음 깊이 안도했다.

주차장에서 정산할 때, 손이 떨려서 동전을 떨어트릴 뻔 했을만큼, 나는 정말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잠깐 세워뒀을 뿐인데 요금이 천엔이나 나왔던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설령 5천엔쯤 나오더라도 그대로 던져주고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요새는 국내여행도 좀 늘어서 미관지구에도 관광객이 드문드문 보이게 되었다.

그날은 밤에 잠도 못 이루고 벌벌 떨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점점 기억이 흐려진 탓인지, 사실 현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 현실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 배의 사공, 양 눈알이 파인 것마냥 텅빈 구멍만 보여서, 지릴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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