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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20th]오래된 SF 소설

괴담 번역 2014. 11. 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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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얘기다.


그 무렵 나는, 오래된 SF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권선징악이나 당시 사람들이 상상하던 공상과학 자체가 무척 재미있어서, 복각판 문고본을 사서 잔뜩 읽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책을 읽다 문득 잠에 들었는데, 웬 낌새가 느껴져 눈을 떴다.


방 한 구석에 사람이 있었다.


서른을 좀 넘은 듯한 여자였다.




여름인데도 스웨터와 길고 두터운 스커트를 입고, 벽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대단히 놀랐지만, 잠에 취한 탓인지 묘하게 두렵지는 않았다.


아줌마지만 자세히 보니 전에 봤던 "아멜리에" 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닮았기에,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멍하니 계속 보고 있자니, 여자는 나를 의식한 것인지 내 쪽을 보며 씩 웃었다.


[이런 책 좋아하면, J한테 물어보렴. 아직 남아 있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책을 들어 표지를 내게 보인다.




자기 전에 읽고 있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이상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방 한 구석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샀던 SF 소설이 여러권 쌓여 있던 것이다.


그리고 맨 위에는 자기 전에 읽었던 책이 놓여 있었다.




설마 진짜인가 싶어 소름이 끼쳤지만, 문득 신경이 쓰였다.


그 여자가 말한 J란 건 누구지?


내 주변에서 J라는 이름을 가진 건 우리 아버지 뿐이다.




그 밖에 딱히 짚이는 데도 없었기에, 아버지가 일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려 물어봤다.


일단 어제 읽었던 책과 "아멜리에"의 DVD를 구해 놓고서.


내가 말을 꺼내자, 아버지는 이게 제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책과 DVD를 보여주자, 아버지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마 누님인가... 그러고보니 곧 추석이구만. 좋아, 이번 주말엔 성묘를 가야겠다. 너도 따라와라.]


그 누님이라는 분은, 아버지의 사촌누나였다.




아버지보다 10살 가량 나이가 많아, 아버지를 곧잘 챙겨주셨다고 한다.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 책이랑 향수, 향수병 모으는 걸 무척 좋아했었다고 한다.


35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계속 독신으로 살았었지만, 무척 상냥한 사람이라 아버지 뿐 아니라 주변 사람은 다들 그녀를 좋아했었던 듯 하다.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았기에, 나중에 어머니한테도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머니가 보물로 가지고 있는 향수병 콜렉션이, 그 분에게서 선물로 받은 거였다나.


절판된 귀한 물건이라, 어릴 적에 누나가 함부로 손을 댔다 엄청 혼난 적이 있었다.




[왜 그 분이 절 찾아오셨을까요?] 라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기분 좋았던 거겠지. 누님은 이런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셨으니까. 분명 조카뻘 되는 네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기쁘셨던게야.]


주말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시골을 찾아 성묘를 한 뒤 시골집에 갔다.




창고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귀한 SF 문고본 초판들도 가득하고, 내가 찾던 책들도 잔뜩 있었다.


지금도 가끔 책을 꺼내볼때면, 그 분이 살아계셨다면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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