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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번역괴담][2ch괴담][637th]어느 마을

괴담 번역 2015. 12. 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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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상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15년 가량 된 옛날 이야기라나.


당시 아직 초짜였던 상사는, 어느 현에 새로 생긴 사무소로 배치를 받았다고 한다.




공장 옆에 붙어 있던 그 사무소는,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당연히 밤에는 차도 한대 안 지나가는 벽지 중의 벽지였다 한다.


사무소 앞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오른쪽으로 나가면 슈퍼마켓이 하나 있고, 왼쪽으로 한동안 가면 주변 마을이 나온다.




하지만 거기서 마을 중심부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걸리는 장소였다고 한다.


그날, 상사는 혼자서 남아 잔업을 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사무소 문을 닫고 나왔다고 한다.


자취하는 아파트로 차를 타고 가는데, 문득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른쪽으로 가야하는데 왼쪽 길을 타버린 것이었다.


이미 차는 마을 쪽으로 들어서서 꽤 와버린 터였다.


다른 차도 지나다니지 않으지 그냥 거기서 차를 돌려 돌아갔으면 됐을텐데, 상사는 그냥 옆길로 들어가버렸다고 한다.




빙빙 돌다보면 원래 길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획 정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시골길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 있을리가.


계속 달리다 나오는 길로 다시 빠지는 걸 몇번 반복했지만, 어디를 어떻게 온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주변은 어둡고 길은 좁다.


이제 와서 돌아나가는 것도 무리였다.


하지만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나타나는 길 사이에는 바퀴 자국이 있었기에, 적어도 여기에 누가 살거나 마을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상사는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작은 마을이 나왔다.


몇채인가, 불이 켜진 집이 흩어져 있다.


방향감각에 오류가 없다면 마을 중심부는 아마 아닐 터였다.




하지만 돌아갈 길을 물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했다.


늦은 시간에 폐를 끼치는 건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사는 불이 켜진 집앞에서 차를 멈추고 라이트를 껐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다 피우고, 차에서 내린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어둠 속, 열명도 넘는 마을 사람들이 서 있었던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 뿐으로, 한결같이 째려보고만 있어 누가 봐도 환영받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 중 한명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다른 마을 사람들도 같이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


뭐하러 왔냐, 돌아가라, 이방인, 도둑, ...하게 두지는 않겠다! 못할게야! 돌아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좀 있었지만, 지역 방언으로 그런 말을 하는 듯 했다.


상사는 오해를 풀려 해명을 하면서도,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문득 등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보니 거기에 또한 열명 가량의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무언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상사가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상사의 얼굴 바로 아래, 몸집이 작은 노파가 염주를 든 채 상사를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외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광경에 압도되어, 상사는 허둥지둥 차에 올라타 액셀을 밟았다.




마을 사람들은 상사를 쫓아내려는 것 뿐이었던 듯, 쫓아오지는 않았다.


아득한 뒤편에서, 아마 노파의 목소리인 듯한 큰 외침이 들려왔다.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그것은 노파가 외던 염불 같은 것이 마무리였겠지.




분명 상사에게 향한 것이었을테고.


상사는 미친 듯 달려 마을을 빠져나왔다.


나와보니 다른 현에 와 있었다.




국도를 타고 한참 돌아 집에 도착하니 이미 아침이었다나.


그리고 다음날부터, 상사는 눈에 띄게 컨디션이 떨어져 갔다.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은 무겁고 식욕도 없었다고 한다.




무리하게 먹기는 먹었지만, 사흘만에 체중이 5kg나 빠질 정도였다니.


일주일이 지날 무렵에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동료들도 진심으로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병원에도 찾아가봤지만, 딱히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을에서 겪은 일 때문에 쇼크를 받았던 것이라 스스로 타일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이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사무소의 기업 담당 부서를 찾아갈 일이 있었다고 한다.


동사무소 담당자는 동년배의 젊은이였기에, 사적으로도 상사와 꽤 친한 편이었다고 한다.




같이 술을 마시다가 담당자가 자기 입으로 영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믿질 않았던 상사였기에, 그냥 웃어넘겼었다나.


그런 담당자를 일 때문에 찾아갔는데, 그 양반이 일 얘기는 하는둥마는둥 하더니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어차피 진지하게 들어주지는 않을 거 같은데, 몸 상태에 관련된 이야기니까 좀 잠자코 들어봐.]




그의 말에 따르면, 상사의 컨디션 난조는 저주 때문에 악령이 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불제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잘 아는 절을 소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상사는 그의 영감은 여전히 믿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가 알려준 절에 찾아갔다.




절 주지스님은 침착한 모습으로 상사를 맞아, 지극히 담담하게 불제를 해주었다.


불제가 끝난 후, 상사는 거짓말 같이 컨디션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주에 관해서는 반신반의였기에, 그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지스님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주지스님은 그 마을이, 고대부터 내려오는 토착 풍습을 지금도 완고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먼 옛날, 마을에 찾아왔던 여행자를 재워줬더니, 그 여행자가 아이를 훔쳐 도망쳤던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있을 때는 외부 사람들이 마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막아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 풍습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도를 더해가, 쫓아낸 외지인이 두번 다시 마을에 돌아오지 못하는 게 목적이 되었다.


기도사를 동원해 외지인을 저주해 죽이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다.


상사는 그날 밤 봤던 노파와, 들었던 외침이 떠올라 오싹했지만, 그럼에도 저주 같은 걸 믿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그 마을에서 봤던 건 남자도 여자도 노인 뿐이었던게 떠올랐다.


왜 젊은 사람들은 없었던 걸까?


애시당초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요즘 시대에 젊은 세대가 그런 인습에 묶여 살리가 없을텐데...




그런 의문이 들어, 상사는 주지스님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주지스님은 순간 몹시 놀란 듯 했지만, 곧 미소지으며 가르쳐주었다.


[당신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나 보군요? 그 마을은 고령화가 꽤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완고하게 주변과 교류를 거부하고, 있지도 않은 갓난아이를 구실로 내세워 외지인들을 내쫓았죠. 그런 마을이 온전히 대가 이어지겠습니까? 그 마을이 완전히 폐촌이 된지도 30년이 훨씬 더 됐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온몸에 느껴졌던 오한을, 상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후, 동사무소에서 관련 상담회를 한 후, 동사무소 담당자가 운전을 해 상사는 다시금 그 마을에 갔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


동사무소 담당자는 진심으로 싫어했다고 했지만, 상사는 꼭 한번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죽어라 매달렸다고 한다.


옆에 있다 끼어들은 거래처 사람은 왠지 모르게 재미있을 거 같다며 신을 냈다고 하던가.




그날 밤 상사가 갔던 길과는 반대쪽으로 마을에 도착했지만, 거기에는 다 무너질 것 같은 폐허 뿐이었다.


도저히 이전에 봤던 마을과 같은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하지만 마을 안쪽까지 들어가 되돌아 본 풍경은 그날 밤 본 마을이 틀림없었다.




상사는 아연실색해 식은땀만 흘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상사는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고.


동사무소 담당자는 폐허 그늘에서 자신을 보는 마을사람이 보인다며 끝끝내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거래처 사람까지 셋이서 다시 절을 찾았다.


이번에도 불제는 받았지만, 상냥했던 주지스님이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바람에 지독하게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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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심령 체험 같은 건 겪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일은 몇번 본 적 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그건 정말 맞는 말이야.




2달 정도 전, 어느 환자분이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질식사.


아무래도 가족이 보낸 음식을 몰래 먹다가, 그게 목에 걸려 질식한 듯 했다.




그 분은 꽤 견실한 분이었던데다, 퇴원 일정도 잡혀 있었고 가족들도 상냥한 사람들 뿐이라 간호하는 입장에서도 무척 유감이었다.


가족들은 사체를 대면하자 통곡했고, 손자부터 딸, 사위까지 사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사람의 죽음에 익숙해진 우리들도 울컥해, 신입들 중에서는 따라 우는 녀석까지 있을 정도였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건 이렇게 무거운 거구나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분 후, 영안실 문이 갑자기 쾅하고 열리고, 화장을 진하게 한 아줌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사체에 덤벼들더니 소리쳤다.




[이 쓰레기 같은 할아범이!]


가족도,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도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잡고 그 아줌마를 말리기 시작했다.




[뭡니까, 당신은!]


[시끄러! 불만이 있으면 이 할아범한테 말하라고!]


아줌마는 그렇게 외치며, 침대 위에 있던 할아버지 사체를 바닥으로 던져내렸다.




당연히 그 광경을 보자 가족들은 광분해 아줌마에게 덤벼들었지만,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을 듣고 가족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 아줌마는 죽은 환자의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계속해서 콧김을 씩씩 내쉬며 말했다.




[이 할아범, 유산은 전부 아케미인가 뭔가 하는 여자한테 넘겨줬다잖아! 장난 치는것도 아니고 정말!]


그 말을 듣자, 조금 전까지 울고 있던 딸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사체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세요! 침착하세요!]




직원들이 말렸지만, 딸은 낄낄 웃으며 미친듯 계속 사체를 발로 찼다.


[장난 치지마, 이 할아범아! 돈 한푼 안 남기고 죽었다고? 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뒈져!]


가족들을 따라 울던 신입은, 이제는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그저 망연자실하고 있을 뿐.


나를 비롯해 경력이 좀 된 직원들은 계속 환자를 걷어차는 아줌마와 딸을 말리러 갔다.


손자는 어머니의 급변한 모습에 울부짖는다.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그 후, 원장이 달려와 소란은 수습되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딸의 그 귀신 같은 모습과 발로 미친 듯 걷어차인 불쌍한 사체 뿐이었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건을 눈앞에서 겪은 것이다.




병원에서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흔한 법이다.


하지만 그 사건은 무서웠다.


살아있는 사람이 어디까지 무서워질 수 있는지를 나 자신이 절감했으니.




그 후, 그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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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35th]야마구치씨

괴담 번역 2015. 12. 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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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토요일 해질녘 거실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인터폰이 울려, 수화기를 들었다.


[네.]




[야마구치씨 댁인가요?]


[아뇨, 아닙니다.]


그 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끊어졌다.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냐고 투덜대며 거실로 돌아왔는데, 다시 벨이 울린다.


[네.]


[야마구치씨 댁인가요?]




[아니, 아까도 아니라 그랬잖아요. 누구세요, 도대체?]


아까 전 인터폰에서 들려왔던 그 목소리였다.


왠지 모르게 울적한 여자 목소리.




말투도, 질문도 처음이랑 똑같았다.


명패는 문앞에 제대로 붙어있다.


풀네임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야마구치가 아니다.


애시당초 이름에서 한 글자도 같은 게 없다.


그러는 사이, 세번째로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수화기를 들지 않고, 직접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구멍을 들여다 봤다.


하지만 밖에 있어야 할 사람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체인을 걸고 슬쩍 문을 열어봤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벨튀인가 싶어 잔쯕 짜증이 나, 나는 문을 닫고 등을 돌렸다.


그 순간, 다시 벨이 울렸다.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곧바로 뒤돌아 문구멍을 내다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리 없다는 생각에 체인까지 풀고, 문을 활짝 열어 밖을 확인했다.


문 뒤, 사각까지 전부 확인했지만 역시 아무도 없다.




문을 열면 긴 복도만 펼쳐져 있을 뿐, 숨을 곳 따위 어디에도 없다.


나는 멍하니 현관문에 우뚝 서 있었다.


갑자기 등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열어주는거야?]


지옥 밑바닥에서 울려퍼지는 듯한, 원망스러운 목소리.


그게 등뒤, 내 방안에서 들려온다.




차마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열 수 있는 최소한만 문을 열었고, 상반신만 내밀어 밖을 내다봤었다.


결코 누가 들어올 여유는 없었는데.




나는 샌들만 신고 그대로 뛰쳐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도망쳤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부동산에 전화를 건다.


[야, 야마모토 하이츠 101호실 콘노인데요.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제 방에 있어요.]




전화를 받은 부동산 직원은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저... 그럼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 그, 그게, 뭐라고 해야하지...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사장님 바꿔 드릴게요.]


부동산 직원은 내 애매한 말에서 뭔가를 알아차린 듯, 곧바로 사장을 바꿔주었다.


그 후 사장과 이야기 해보니, 아무래도 이 아파트에는 옛날부터 종종 그 이상한 여자가 찾아오곤 한다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서는 나타나지 않았기에 이제 괜찮을 거라 여겼다나.


덧붙여서, 옛날에는 실제로 "야마구치씨"라는 남자가 이 아파트에 살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집세도 내지 않고 연락도 안되서 방을 뒤져봤더니, 짐도 그대로 두고 사람만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야마구치씨"를 찾는 이상한 방문자가 아파트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그 여자가 내 방을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밤에 혼자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파트를 나와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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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34th]작은 석회동굴

괴담 번역 2015. 12. 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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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이야기다.


내 고향에는 작은 석회동굴이 있다.


논과 산 밖에 없는 촌구석이었기에, 마을 사람들도 그 석회동굴을 기반으로 관광사업을 일으키려 노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금 문제로 인해 반쯤 개발하다 그대로 방치하게 되었던 터였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석회동굴이, 사실은 좀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동굴이니 미로 같은 내부 구조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보다 특이한 건 입구에서 10m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넓은 공간이었다.


사방 25m 정도 되는 공간이 뻥 뚫려있고, 천장에 있는 둥근 구멍에서는 따스한 햇빛이 쏟아진다.




발밑을 흐르는 차가운 물은 그 빛을 반사해, 마치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반짝반짝 빛난다.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물이 1m 정도 고인 웅덩이도 있어서, 그 무렵 마을 아이들에게는 천연 물놀이장 겸 비밀기지로 애용되던 곳이었다.


물론 어른들은 석회동굴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우리에게 훈계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아직 어렸던 우리들 중, 왜 석회동굴에서 놀면 안되는 건지 납득한 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질리지도 않고 석회동굴에서 놀았다.


집에서 몰래 과자를 가져와 먹기도 하고, 반쯤 자기 방처럼 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와 만난 것은 그런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마침 마을 최대 이벤트인 여름축제가 열린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우리도 석회동굴이 아니라 축제가 열리는 신사에 모여, 어른들이 준비하는 걸 곁눈질하며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여름축제 준비를 하던 어른들 중 누군가를 따라왔던 듯 했다.


할일이 없는 나머지 그저 심심해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고.


그는 우리가 놀고 있는 걸 한동안 바라만 보더니, 술래잡기를 하다 내가 술래가 되자 말을 걸어왔다.




[나도 끼워주지 않을래?]


[그건 괜찮은데, 너 누구야?]


시골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깔끔한 분위기를 한 소년을 보고, 나는 당황해 조금 뒷걸음질 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는 웃으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K라고 해. 여름방학이라 할아버지댁에 놀러왔어.]


우리는 타지 사람인 K를 약간 경계했다.




하지만 K가 말해주는 도시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함께 노는 사이 곧 우리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동안 마을에 머물거라는 K에게, [그럼 내일 우리 비밀기지에 너도 초대해줄게!] 라고 말했던 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날 모인 건 친구 A, B, C, 그리고 나와 K까지 모두 5명이었다.




K는 우리에게 석회동굴 이야기를 듣자, 눈동자를 빛내며 [빨리 가보고 싶어!] 라며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좁은 길을 지나, 예의 그 공터가 나오자 K는 흥분해 소리쳤다.


[우와, 대단해! 게임에 나오는 거 같아!]




그렇게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해졌다.


K에게 안쪽에는 물웅덩이가 있다고 알려주자, K는 곧 가져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푸르게 빛나는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우리도 뒤따라 들어가, 다들 물놀이장에 온 것처럼 물을 마구 뿌려대며 시간도 잊고 떠들며 놀았다.




한동안 즐겁게 놀고나니 배가 고파져, C랑 K는 남겨두고 나머지 셋이 집에 가 간식을 가져오기로 했다.


집에 들렀다 다시 동굴에 모이기까지는 그로부터 2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칼피스를 물통에 담고, 과자를 챙겨서 A, B랑 같이 동굴로 향했다.




그리고 셋이서 동굴 안에 들어갔는데...


거기 있어야 할 C와 K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처음에는 C와 K가 같이 장난을 치려 숨어있는 거라고 생각해 바위 뒤나 안쪽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기척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슬슬 초조해져 뭔가 위험한 일이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방금 전까지 우리가 헤엄쳤던 물웅덩이 표면에, 작은 거품들이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A와 B도 그걸 알아차렸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 거품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 거품을 바라보고 있자, 서서히 거품은 작아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도대체 뭔가 싶은 생각에, 친구들과 눈을 마주친다.


그 순간, 방금 전 거품이 올라왔던 곳에서 축구공 같은 둥근 물체가 소리 없이 떠올랐다.


순간 얼어붙었지만, 곧 그게 축구공이 아니라, 사람 머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본 적 있는 그 긴 머리는, 틀림없이 도시에서 왔던 그 소년, K였다.


[야, K! 너 괜찮아?]


[C가 안 보여! 너 혹시 C 어디 갔는지 알아?]




[우선 이리로 좀 나와봐!]


우리는 K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물에 떠오른 그 머리는, 좀처럼 우리 쪽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러자 A는 화가 치밀었는지, [야, 너 무시하지 말라고!] 라며 소리를 지르고 수면에 떠오른 머리를 향해 작은 돌을 던졌다.


[야, 기다려!]


[뭐하는 짓이야!]




돌을 던지기 직전, 나와 B가 A에게 외쳤지만 A를 막을 수는 없었다.


돌은 곧바로 날아가, 작은 소리를 내고 수면에 떨어졌다.


다행히 돌이 머리에 맞지는 않았지만, 꽤 근처에 떨어진 탓에 물이 튀었다.




[위험하잖아!]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가 A를 질책하자, A는 낙담한 듯한 모습으로 [그치만...] 이라고 중얼거렸다.




문득 수면 쪽을 보자, 분명 거기에 있던 머리가 어느새인가 사라진 후였다.


[야, 저기...!]


내가 소리를 내려던 순간, 안쪽으로 이어진 석회동굴 안에서 [자박... 자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장화를 신고 걷는 듯한 소리가, 동굴 벽에 울리며 들려왔다.


작은 소리였기에, 말다툼을 하고 있던 A와 B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소리가 들려오는 안쪽 어두운 구멍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나는 무의식 중에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그러는 사이 A랑 B도 내 모습이 이상한 걸 깨달았는지, 마치 얼싸안는 것처럼 서로를 부여잡고 소리 나는 쪽을 보고 있었다.


안쪽으로 이어진 길에서는 [자박... 자박...]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인지 소리도 점점 커진다.




큰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못할 일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물가에 몰려 있었다.


[자박... 자박...] 하는 소리는 더욱 가까워온다.




그리고 그 순간, 물에 젖은 바위 때문에 미끄러져 B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우리는 [도망치자!] 라고 외치며 온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는 안쪽 구멍 반대편, 출구를 향해.




한눈도 안 팔고, 정신없이 달려 출구까지는 얼마 안 남았을 무렵.


우리는 세번째 충격을 받았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지저로부터 울리는 듯한 신음소리가, 출입구 부근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이젠 출구로 도망칠 수도 없다.


안으로 들어가자니 그런 기분 나쁜 곳에 다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오금이 저리고 허리가 아파,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끝이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피할 생각이었을까, 나는 꽉 눈을 감았다.




곧이어 머리를 바위로 얻어맏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눈 안쪽에서는 별이 빛난다.


귀신한테 맞았어!




귀신은 사람을 때릴 수 있구나...


공포 때문에 나는 이상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라졌던 C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괜찮아?]


[어...?]


나와 A, B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C와, 머리끝까지 화가 난 B네 아버지랑 C네 아버지가 있었다.


그 세 사람은 멍하니 있는 우리를 내버려두고, 셋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자식아! 여기는 들어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먹냐!]




화를 잔뜩 내는 C네 아버지와 달리, B네 아버지는 C에게 물었다.


[C! 여기서 놀던 건 이녀석들 뿐이냐?]


[아뇨... 한명 더, 도시에서 온 K가...]




[뭐? K라고? 어느 집 아이야, 그건!]


[그게... 분명 저 쪽 할아버지네 집 손자라고...]


하지만 C의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그 집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입원해서 그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누구랑 놀았다는 것인가.




[우선 우리가 좀 찾아보고 갈테니, 너희는 집에 가거라.]


의문의 답을 찾을 시간도 없이, 우리는 B네 아버지 등쌀에 떠밀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뭘 할 기력도 없어, 그저 에어콘을 틀어놓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건 해질녘이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내 방에 뛰어들어온 아버지는, [이 바보같은 놈!] 이라고 소리치며 나를 때렸다.


평상시에는 온후한 아버지에게 맞은 것에 놀라, 나는 아픈 줄도 몰랐다.




멍하니 아버지를 올려보고 있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저긴 말이다, 예로부터 그리 좋은 소문이 있는 곳이 아니었어. 사람이 사라지거나 상처를 입는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마을에서는 반대했지만 시에서 억지로 밀어붙인거고.]


몰랐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착공은 하게 됐지만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계속 일어났지. 그래서 개발도 중단된거야. 너희들이 같이 놀았다는 아이가 누구인지는 아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는 그 석회동굴에 들어가지 말거라. 더 이상 아버지를 걱정시키지 말아줘.]


진지한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두 번 다시 그 동굴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A, B, C도 마찬가지였던지, 우리는 그 사건 이후 석회동굴 이야기는 입에도 담지 않게 되었다.




사라진 소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그 할아버지네 집에서 살았던 흔적이 없었고, 결국 우리가 집단으로 환상이라도 본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어른이 된 후, 술자리에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은근슬쩍 그 동굴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천연 감옥으로 썼다는 이야기나 전쟁 중에 방공호였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만 있을 뿐 무엇이 진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그 동굴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 [자박... 자박...]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왠지 그 동굴 안에서, K가 아직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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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나 이야기다.


누나한테 직접 듣거나 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리 누나는 영감이 있는 것 같다.


이건 내가 중학교 때 일이다.




그날 학교가 끝난 후, 친구 A랑 B가 우리 집에 놀러왔었다.


2층의 내 방에서 평범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


해가 저물 무렵, 슬슬 친구들이 돌아가려 하는데, 꽝하고 엄청난 기세로 방문이 열렸다.




다들 깜짝 놀라 얼어있었다.


문밖에는 우리 누나가 서 있었다.


누나는 B를 가만히 째려보더니 한마디 툭 뱉었다.




[...고양이 13마리. 이 쓰레기야. 너 어떻게 한거야, 걔들한테.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낼거야.]


순간 방안이 어슴푸레해졌다.


불은 그대로 켜져 있는 상태였는데도.




그와 동시에 털이 흠뻑 젖은 개한테서 날 법한 비릿한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찼다.


구역질을 느껴 입을 막고 몸을 숙이자, B의 발목이 보였다.


내장까지 전부 뜯겨나가 피투성이가 된, 갈기갈기 찢어진 동물의 시체가 보였다.




삼색털, 검은털, 갈색털 죄다.


정말 끔찍했다.


피거품까지 일고 있었으니.




[너, 두번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마.]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방문을 닫고 가버렸다.


이상하게 누나가 나가자 곧 내 방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얼굴이 창백해져서 A와 마주 보고 있는데, B가 바닥에 주저앉아 말했다.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어... 왠지 말이야, 달라붙어 오는 고양이를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면 죽일수록 시원했거든...]


서 있는 내게 B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등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평소 B란 녀석은, 성실하기 그지 없고 상냥한 친구였다.


그런 짓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으니.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나와 B는 점차 소원해졌다.


서서히 B의 모습도 이상해져갔다.




혼자말을 중얼중얼 되뇌이기도 하고, 벽을 보며 사과하기도 하고.


얼굴도 초췌해져서, 원래 나이보다도 훨씬 더 늙어보일 정도가 됐다.


B는 그 다음해 봄에 전학을 갔기에, 그 이후 소식은 나도 모른다.




최근에 들어, 나는 누나에게 문득 그 때 일이 떠올라 물어봤었다.


[혹시 그 때 B 녀석,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었을까, 누나?]


누나는 또 한마디 툭 던질 뿐이었다.




[어떻게든 찾아보면 방법은 있었겠지. 근데 귀찮잖아.]


나는 B나 고양이들의 원한보다, 우리 누나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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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32nd]관상

괴담 번역 2015. 12. 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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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영감 따윈 없고, 특히 무서운 일을 겪은 적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한테 들은거구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집 오기 한참 전, 아직 두분 다 젊을 무렵 이야기랍니다.




아버지 친가는 O현 어느 해변에 있고, 주변에는 바다를 매립해 농업용지로 쓰고 있는 지대가 쫙 펼쳐져 있습니다.


바다를 매립하기 전까지는 완전 섬이었고, 있는 땅이래봐야 산이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기슭, 얼마 안 되는 평지에 집들이 잔뜩 몰려지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어업을 하며 먹고 사는 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무렵에는 어부를 그만두고 그냥 회사일이나 하는 집이 더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어머니를 데리고 사촌 F씨네 집에 놀러갔었다고 합니다.




F씨 역시 그냥 회사원이었지만, 쓸데없이 출장을 다니는 일이 잦아 아버지도 가끔 만날 뿐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F씨와 만난 적이 없었구요.


목적지에 도착하니, F씨 어머니가 마중나왔다고 합니다.




환영받으며 현관을 지나 집에 들어오자, 안에서 F씨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고, 어머니는 우뚝 멈춰섰다고 합니다.


몸은 그냥 평범한 남자 몸인데, 얼굴은 인간이 아니라 말 같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말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 같이요.


뭐가 어찌되었든, 멀쩡한 사람 얼굴로는 보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놀랐지만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자니 예의가 아니고, 어머니는 그저 주변 분위기를 따랐다고 합니다.




F씨는 꽤 상냥한 분이었던데다, 말도 잘하는 재밌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F씨가 [다음주부터 또 출장이지 뭐에요.] 라고 말을 꺼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째서인지 어머니는 [그럼 두번 다시 여기는 못 돌아오겠네요.] 라고 말해버렸다고 합니다.




정말 자기 의지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고 하더군요.


당황한 어머니를 보며, F씨는 쓴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아뇨, 일주일 후에는 돌아올 거에요.]




하지만 F씨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출장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거든요.


즉사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장례식에 갔을 때, F씨의 영정을 보고 어머니는 또 놀랐다고 합니다.


거기 찍혀 있는 F씨 얼굴은, 온화해 보이는 보통 남자 얼굴이었으니까요.


처음 봤을 때 그 말 같은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 때 봤던 그 F씨 얼굴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는 장례식에 참석한 내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부모님은 결혼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지금까지 살고 계십니다.




아버지 고향은 태풍이 올 무렵이면 자주 산이 무너져, 그 때마다 많은 사람이 죽곤 했다고 합니다.


또 해변이었기에 옛날에는 익사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네요.


F씨는 출장지에서 교통사고 죽은 것이니 큰 관계는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죽기 직전에 인간말고 다른 얼굴로 보이는 일이 정말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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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내가 겪은 이야기다.


당시 나는 시골에 있는 친가에 살고 있었다.


친가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일본식 주택이었지만, 맞닿는 한 면에 논이 펼쳐져 있는 시골 동네라는 걸 빼면 극히 평범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집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구직도 않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매일 같이 잔소리를 했지만, 곧 들은체만체 하는 내 모습에 기가 막혔는지 그냥 내버려두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생 최악의 시기였던 것 같다.




어느날,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평소처럼 툇마루에 멍하니 누워있을 때였다.


[마사.]


누가 이름을 불러 뒤돌아보니, 툇마루 너머 옆방에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런닝 셔츠에, 갈색 복대와 잠방이를 입은 채다.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할아버지랑 빼닮은 모습을, 우리 할아버지는 언제나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내게 이런저런 체험을 시켜주신 분이라,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어릴 적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너, 취직 안하냐?]


[할게. 조금만 있다가.]




[하, 거짓말 하고 있네. 평생 부모 그늘 밑에서 얻어먹고 살 작정이지?]


[들켰어?]


[어이, 마사. 이 시골에는 정말로 필요한 놈 아니면 바보 멍청이만 있는게야. 너는 어느 쪽도 아니니 멀리 나가서 일해라.]




[그게 뭐람.]


나는 할아버지의 말에 코웃음 쳤다.


[너를 위해 말하는게다.]




그 때 봤던 할아버지 눈은 묘하게 무서웠다.


목소리는 평소의 상냥한 할아버지 목소린데, 눈매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날카로운 것이었다.


얼빠진 내 기억에도 선명히 남을 정도로.




그 때는 아직 할아버지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몰랐다.


그날 밤, 저녁식사 후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마사.]




또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낮과 변함없는 모양새다.


[왜요, 또.]




계속 TV나 보고 싶었지만, 낮에 봤던 할아버지의 무서운 눈초리가 떠올라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너한테 이야기 해야만 하는 게 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으랏샤.] 하고 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에게 이 집의 비밀을 가르쳐주마.]


[집의 비밀?]


[이 집 천장에서, 가끔씩 이상한 소리가 나지. 너도 알고 있지?]




[...응, 아, 뭐...]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나 자라며, 천장에서 소리가 나는 걸 수십번은 들은 터였다.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지만, 누군가 미친 듯 달려 천장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은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상하게 경을 읊는 목소리 같은 게 들리기도 했다.


그것은 그 무렵에도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 언제나 나 혼자 있을 때 뿐이라,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만은 예외였지만.


[그게 뭐 어쨌는데?]


내심 두근대며,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저것은 천장과 지붕 사이에 모시는게다.]


[...뭐를?]


할아버지는 [아...] 하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췄다.




[아... 이름을 말하면 안되겠구나...]


[아니, 그게 뭐야? 나는 안 되겠는데. 뭔가 위험한 거 아냐?]


그 때, 촉이 확 꽂혔던 것이다.




[뭐, 일단 가보자고.]


할아버지 손에는 언제 가져온 것인지, 회중전등이 2개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향하는 다리가 무겁다.


20년 넘게 살아온 정든 집인데, 완전히 생소한 심령 스폿으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가 준비할 시간을 주겠다며 30분 정도 있다가 움직였으니, 확실히 시간은 9시 반 넘어서였을 것이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일이 있어, 그날은 이미 잠을 청하고 계셨다.


거참, 잘도 주무시네.




아들은 죽을 각오로 끌려가고 있는데 말이야.


나와 할아버지는 툇마루를 지나, 복도를 걸었다.


[여기다.]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탁 멈추더니, 오른쪽에 있던 문을 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놀이방으로 썼던 방이었다.


패미컴을 가지고 놀거나, 인형 가지고 군인놀이를 하기도 했던 추억 어린 곳이었다.




지금은 그냥 창고지만.


그러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할아버지... 저거...]




내가 가리킨 곳에는 옻칠된 새까만 여닫이 문이 있었다.


내 기억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저 하얀 벽장문이었는데...




기억과는 다른, 너무나 이상한 상황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네가 여기 들어오지 않게될 무렵에 바로 바꿔버렸지.]


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벌벌 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문에 손을 댔다.




끼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은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할아버지에게 속이 안 좋다고 호소했지만, [곧 익숙해질게다.] 라는 한마디만 듣고 무시되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회중전등을 켜, 문 안쪽 천장을 비추었다.


[보거라, 마사.]




할아버지는 내 팔을 잡고, 억지로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거기에는 또 부자연스럽게 옻칠된 네모난 문이 있었다.


우리는 그 문을 통해 천장과 지붕 사이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밀어 올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그 공간에 들어섰다.


그 순간, 아까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오한과 구토가 나를 습격했다.


분위기가 무겁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준이 아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생명의 위험을 느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등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입안은 바싹바싹 말라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공간이 멀쩡한 것일리 없다.


이런 데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 할아버지... 나 더는 안되겠어. 나 좀 살려줘...]




그 나이를 먹은 주제에, 나는 할아버지에게 울며 매달렸다.


[아니된다. 너는 똑바로 봐두거라.]


할아버지는 낮에 봤던 것 이상으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이런 곳에 끌고 오다니,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마음 속으로는 할아버지를 살인자라고 울부짖고 있었으니.




어쨌든 나는 안정을 되찾으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숨이 콱 막힌다.


당연하지만 먼지투성이였던 것이다.




깊게 들이마셔봐야 숨이 막힐 뿐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지은지 90년은 된 집의 대들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회중전등을 휘둘러 보는데, 어느 구석에 번쩍 빛나는 게 있었다.




뭔가 싶어 다시 그 쪽으로 빛을 비춰보니, 거기 있었다.


신단 비슷하지만, 무언가 조금 모습이 다른 게.


잘은 모르겠지만 사당 같은 게 이상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거기 있었다.




[할아버지, 저게 뭐야?]


입술은 벌벌 떨리고 혀는 마구 꼬이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물었다.


[저게 소리가 나는 원인이다.]




할아버지도 사당에 빛을 비췄다.


하지만 갑자기 할아버지는 놀란 얼굴을 하더니, 내게서 전등을 뺏고 두개 다 불을 껐다.


눈앞에는 어둠 뿐이다.




할아버지는 꽤 초조해하고 있는 듯 했다.


[할아버지?]


나는 눈앞에 닥친 어둠과, 당황해 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반쯤 패닉에 빠져있었다.




[쉿, 조용히 하거라!]


할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마사, 지금부터 출구로 간다. 그때까지 숨을 참거라.]




[엣, 숨을 참아?]


[됐으니까 서둘러라! 출구에 도착할때까지 저것에서 눈을 떼면 안된다!]


저것이라는 건 분명 사당을 말하는거겠지.




하지만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숨을 참고 사당을 보며 출구로 가야하는거지?


물론 반쯤 패닉이었기에, 나는 그 말대로 했다.




그쯤되니 어두운 곳에 눈이 익숙해져, 사당의 윤곽은 눈에 들어올 정도가 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참자, 곧 이변이 일어났다.


사당 문에서, 이상한 그림자 같은 게 스르륵 나왔다.




"그것"을 본 내 움직임은 한순간 얼어붙었다.


더 이상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사람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어둠보다 더 어둡다.


움직임은 둔하다.


좌우로 흔들리기도 하고, 갑자기 넘어지더니 거미처럼 기어오는 등, 차마 내가 말로 다 전하지 못할만큼 기분 나쁜 움직임이었다.




처음으로 본 "그것"은, 공포보다는 흥미가 느껴지는 존재였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분명히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 다리는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에서 눈을 떼어놓지 않고 있자, 할아버지는 내 옷자락을 잡고 출구까지 뒤로 물러나도록 이끌었다.


다행히 놈은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우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했다.


아마 숨을 참으라고 할아버지가 말한 건, 놈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우리는 가능한 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가까스로 출구까지 나왔다.


출구에서 조용히 내려올 때까지, 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에서 기분 나쁜 발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방으로 내려오자마자, 할아버지를 버려두고 거실까지 미친듯 달렸다.


불을 켜고 TV를 틀어, 방금 전까지 있었던 비상식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곧 할아버지가 거실로 왔다.




[보았겠지? 굉장하지 않냐, 저건.]


할아버지는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닐 지경이었다.




저게 만약 알아차렸다면 분명 나는 죽었을 터였다.


틀림없다.


[도대체 저건 뭐야! 할아버지는 뭘 하고 싶은건데!]




흥분한 나는, 소리치며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와하하하하, 저건 선조에게 원한을 품은 영혼이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너무 위험한 거라 우리 선조가 사당에 모시고, 저걸 천장과 지붕 사이에 넣은거다. 검은 문은 결계 같은게지. 안전을 위해 근처 신사에 부탁해 만든게야.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건, 그 이름을 들은 사람은 홀려버리기 때문이다.]


홀린다...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거기서 의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름 알고 있는거잖아? 근데 어째서 멀쩡한데?]




[비밀이다.]


그 후 몇번이고 이유를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또 툇마루에 있었다.




어제 일은 혹시 꿈을 꾼 게 아닐까?


아마 그렇겠지?


우리 집에 그런게 있을리 없어.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넘기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또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 할아버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인사는 했다.




옛날 사람이라 인사를 안하면 경을 치시니.


[그래, 안녕이다.]


할아버지도 웃는 얼굴로 받아줬지만, 곧 나를 보고 양 무릎에 두 손을 얹었다.




[OOOOO.]


어? 할아버지가 지금 뭐라고 말한거지?


[할아버지?]




[OOOOO.]


나는 곧바로 그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틀림없이, "그것"의 이름이다!




내가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하려고 애썼던 어제 일이, 단번에 다시 떠올랐다.


꿈일리가 없다.


그 뿐 아니라 이 정신나간 할배는, 내게 "그것"의 이름을 알려줘버렸다.




[오, 뭔지 알겠나? 안심해라. 이 집에 머물지 않으면 홀릴 일도 없어. 저 놈은 이 집 밖으로는 나가질 못하니까 말이다.]


할아버지는 태평하게 웃어제낄 뿐이었다.


그 후 나는 곧바로 도쿄에서 일자리를 찾아내, 집에서 도망쳤다.




덧붙이자면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혹시 "그것"에게 홀리지는 않을까 잔뜩 겁을 먹은 채 집으로 돌아가 장례식에 임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아마 할아버지가 나를 집에서 내쫓으려고 거짓말로 전해준 이름이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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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호전문대에 다닐 무렵 이야기입니다.


간호학과 학생들은 종종 아르바이트 삼아, 간호조수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 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집에 손을 벌릴 상황이 못됐습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이 되지만 생활비는 벌어써야 했죠.


그랬기에 야근 아르바이트 모집이 있으면 언제나 맨 먼저 신청하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은 대학과 연계해 실습을 받는 병원이기도 했기에, 야근이라고는 해도 실습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서 심야 근무를 맡은 간호사분과 함께 느긋하게 일하면 되는 거였죠.


마침 그 무렵 학교에서는 외과 쪽 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내가 맡았던 환자 A씨가 수술을 하게 되어 수술실 앞까지 배웅하러 갔습니다.


A는 70대 할머니로 조금 치매가 와서, 나를 보면 손녀 이름으로 부르는가 하면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거나, 몸을 닦을 때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씩 웃곤 하셨습니다.




실습하는 입장에서는 곤란하다 싶은 적도 종종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A씨가 가족같이 느껴졌고 자주 이야기도 나누던 터였습니다.


A씨는 치매라고는 해도 수술 받는 걸 알고 있는지,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동안 쭉 내 손을 잡고 불안한 듯한 시선을 보내왔었습니다.


[괜찮아요. 힘내세요.]




그렇게 격려하며, 수술실 앞까지 나는 손을 잡고 함께 갔습니다.


하지만 수술실에 도착해 인계가 끝났음에도 A씨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거절하고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결국 집도를 맡은 외과부장님이 나와 곤란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그럼 이 사람도 수술실에 들어오게 해주면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A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나는 재빨리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후, A씨 옆에 서서 손을 잡고 수술에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를 지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를 보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4시간 예정이었던 수술은, 11시간이 넘는 대수술이 되어버렸고, 그 시간은 내게 고문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건 A씨의 손이었습니다.


전신마취된 노인의 손아귀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땀이 나도 닦지도 못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와 점점 고통은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A씨 수술도 무사히 끝났고,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손도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풀려났구요.


수술이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 진행되었기에, 실습 시간은 훨씬 전에 끝난 후였습니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그대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실에 함께 들어갔던 간호사분들과 의사분들이 과자나 도시락을 가져다 줘, 나는 어떻게든 야근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순찰시간이 와서, 나는 외과 병동을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걱정이 되서 한번 더 A씨 방에 가봤습니다.


A는 의식을 찾은 상태였습니다.


나와 이야기 하고 싶다기에, 나는 간호실에 들러 함께 야근하던 간호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A씨에게 갔습니다.




A씨는 무척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 내용도 평소에는 치매 기운이 있어 무슨 소리인지 태반은 알아 들을 수 없었는데, 그 때만은 명확했어요.


사실은 손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 내 명찰을 보고 이름을 알았다는 것, 수술 도중 손을 잡아줘서 든든했다는 것...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A씨에게 말했습니다.


[수술 직후라 지금은 몸이 피곤하실거에요. 오늘은 일찍 주무시고 다음에 같이 휠체어 타고 산책 가요.]




A씨는 정말로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불을 끄고 병실을 나오기 직전, A씨는 [고마워요.] 라고 말하며 아름답게 웃으셨습니다.


그날, 별일없이 야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피로 때문에 잠에 빠졌을 때 나는 꿈을 꿨습니다.


 

 

 

 


A씨가 병원 옥상에서 떨어지려는 와중, 내 손을 잡고 버티는 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A씨 다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이루며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A씨는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며, 필사적으로 다리를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점점 팔에 느껴지는 A씨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팔은 뜯어져 나갈 듯 아파옵니다.


하지만 이대로 A를 놓쳤다간 그대로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필사의 힘을 다해 어떻게든 A씨를 끌어올렸습니다.


A씨의 다리에는 아무 것도 붙어 있지 않았고, 병원 옥상에서 내려다 본 아래는 깜깜하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두려워져 병실로 들어가려는데, 병원 밑에서 엄청난 돌풍이 불어왔습니다.


그리고 귓가에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쓸데 없는 짓 하지마...]




그리고 나는 깨어났습니다.


온몸이 식은 땀으로 축축해, 샤워를 하러 갔죠.


문득 오른손에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져 보니, 손목에 사람이 잡아당긴 것 같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A씨가 걱정되어, 화장도 하는둥 마는둥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A씨가 어떤지 간호사분에게 붇자, 어젯밤 한 번 위독했었지만 다행히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겨우 마음을 놓은 동시에, 어젯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라 나는 몸을 떨었습니다.




마침 근무가 끝난 것인지, 간호사 I씨가 [밥 살테니까 같이 먹을래?] 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야근할 때 도시락 얻어 먹은 거 빼곤 아무 것도 안 먹은 터였기에, 나는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I씨는 개인실이 여럿 있는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이자카야에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다만 기묘한 얼굴을 한채, 말도 그닥 않고 주문하고 한동안 시킨 걸 먹고 술을 마실 뿐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람, 이상하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쳐 배도 차고, 한숨 돌릴 무렵 I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혹시... 이상한 꿈 꾸지 않았어?]


나는 잔뜩 겁에 질려, 혹시 I씨도 그 꿈 꾼 적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I씨는 얼굴이 창백해진채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 환자분의 손을 놓아버렸어...]


I씨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환자분은 정말로 죽어버려, I씨는 매일 후회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몇번이고 꿈에 환자분이 나와, I씨에게 매달려 [도와줘... 도와줘...] 라고 애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자분 다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잔뜩 붙어 있어, 마치 환자분을 끌어들이는 것 같은 모양새라고 했습니다.


나는 벌벌 떨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때 A씨의 손을 놓았더라면...


결국 이 사건 이후, 나는 간호사의 꿈을 포기하고 보건사 자격증 취득에 나섰습니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그 후 I씨는 자살했다고 합니다.




내가 전문대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정신에 이상이 와 퇴직한 후, 정신과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입버릇처럼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되뇌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병원 옥상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다행히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A씨도 잘 회복해 지금도 매년 연하장을 보내오고 계십니다.


그것만이 내게는 유일한 위안이네요.



 

 

Illust by 느림보(http://blog.naver.com/loss1102)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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