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이 밝혀지는 건 싫으니까 장소랑 시간은 감춰둔다.
실화지만 증거 내놓으라거나 하는 건 참아줘.
그냥 털어놓고 싶을 뿐이니까.
몇년 전, 일 때문에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에 몇번 오가게 되었다.
인구가 줄어들어 집도 뜨문뜨문하고, 밤에도 가로등 하나 없는데다, 휴대폰 전파도 겨우 잡히는 곳이었다.
주민센터에 마을 이름을 말한 순간 [아...] 하는 반응을 하길래, 그때부터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마을 입구에는 돌이 2개 세워져 있고, 새끼줄 같은 게 감겨 있었다.
신사에서 쓰는 금줄 같은 게.
결계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빴다.
차를 세우고 내리자, 갑자기 근처에 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이름을 대지 마라.]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싶었다.
[네? 일 때문에 온 건데요.]
[직함도 필요 없다. 이름을 말하지 마라. 여기서 이름을 대면 불려간다.]
할아버지 눈빛은 진지해서,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내 발밑을 보면서, [다시 밟고 들어와라.] 라고 말했다.
입구 지면에 작은 돌로 선이 그려져 있었는데, 거길 넘어가기 전에 신발 밑을 닦으라는 것이었다.
[더러운 걸 털어내는 건가요?]
[바깥 흙을 뭍힌 채로 들어오면 섞인다. 섞이면 돌아갈 수 없어.]
무슨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그 말대로 신발 밑을 닦고 선을 넘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이걸로 흙은 네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기분 나쁜 말이다.
뭐란 말이야, 흙이 내 거라니.
마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상이 좋았지만, 질문을 하면 공기가 얼어붙었다.
특히 옛날부터 전해지는 행사나 풍습 같은 걸 물어보면 노골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날 작업이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밤길이 위험하니 자고 가라.] 는 말을 들었다.
거절하면 묘하게 떫은 표정을 지어서, 호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머물게 된 집은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다만 벽 한 면만 널빤지가 새것이었다.
거기만 새로 덧댄 티가 노골적으로 났다.
게다가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저녁 식사 때 할머니가 말했다.
[밤에는 문을 열지 마라. 창문도 열지 마라. 밖에 나가지 마라.]
[곰인가요?]
[곰은 문을 두드리지 않아.]
할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문을 두드리는 건 곰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무척이나 집에 가고 싶어졌다.
밤에 잠들기 직전, 밖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딸랑딸랑하는 게 아니다.
불규칙하게 [딸랑... 쨍, 쨍...] 하는 식의 소리였다.
짐승을 쫓는 방울이려니 했지만, 소리가 가까웠다.
집 외벽 근처였다.
할머니가 불을 끄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소리를 내는 날인가.]
할아버지는 [입, 다물고 있어라.] 라고 말했다.
내가 [무슨 날...] 이라고 물으려 하자, 할머니는 쉿, 하고 제지했고 곧 불이 꺼졌다.
어둠 속, 밖에서 무언가가 걷는 소리가 났다.
흙 위를 걷는 소리가 아니었다.
젖은 걸레를 질질 끄는 듯한, 축축한 발소리.
[철벅... 철벅...] 하는 듯한.
그러더니 현관 앞에서 멈췄다.
[똑... 똑...] 하는, 얌전한 노크 소리.
예의 바른 노크였다.
결코 강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대답하지 마라.] 고 했고, 할아버지는 [이름을 불려도 대답하지 마라.] 고 했다.
이름? 이라고 생각한 순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줘.]
여자 목소리.
젊다고 하기보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다음 순간, 그 목소리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 마을에서 한번도 내 이름을 댄 적이 없었다.
주민센터에서도 전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이름을 다 불렀다.
등골이 오싹해진다기보다 내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는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고, 할아버지가 귓가에 대고 말했다.
[불려도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면 빌려주게 된다.]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입을.]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어머니 목소리와 똑같았다.
[A야, 열어줘. 추워.]
여기에 진짜 어머니가 있을 리가 없는데도 마음이 흔들렸다.
목소리에 온도가 느껴진다.
옛 기억을 직접 어루만지는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열어줄 뻔 했다.
그때 다시 방울 소리가 울렸고, 노크 소리가 바뀌었다.
[똑... 똑...] 하던 소리가, [드득... 드득...] 으로 변했다.
손톱으로 긁는 소리.
나무를 깎아내는 소리.
할아버지가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여는 날이다. 네가 와서 앞당겨졌어.]
[뭘 여는거에요...]
[길을.]
할머니가 [옛길.] 이라고 말했다.
그 단어만 묘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날 밤, 긁어대는 소리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조용해졌고, 새가 울 무렵에야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현관 앞 흙바닥이 파헤쳐져 있었다.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 발자국이 아니었다.
맨발 같은 자국이 겹겹이 찍혀 있었는데, 발가락 수가 많은 느낌이었다.
개수를 세어보려 하자, 할머니는 [보지 마라.] 라며 빗자루로 단숨에 지워버렸다.
그 후, 마을회관 같은 곳으로 끌려갔다.
젊은 남녀도 모여 있었지만 다들 말수가 적었다.
촌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땅에 소금을 뿌려 원을 그렸다.
그 원 안에 새끼줄을 놓게 했는데, 줄이 축축하고 무거웠다.
검붉은 얼룩도 묻어 있었다.
촌장이 [입을 다물어라.] 라고 하자, 전원이 일제히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따라 했다.
말을 꺼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위험할 정도였다.
그러더니 촌장이 수풀 뿌리 쪽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스윽.
수풀이 갈라지더니, 그곳에 길이 나타났다.
진짜 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풀이 무성하던 곳에 흙길이 한 줄기 뻗어 있었다.
일직선이라 안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변했다.
습한 흙냄새가 단숨에 짙어졌다.
흙이라기보다는 젖은 이불 같은 냄새.
길 안쪽에서 발소리.
[철벅... 철벅...]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나도 볼 수 없다.
보면 끝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발소리가 멈췄다.
바로 눈앞에서 멈췄다.
있다.
거기에 "무언가" 가 있다.
그런데도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촌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올해는 누가 닫을텐가.]
침묵.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야 그렇겠지.
닫는다니, 대체 뭐람.
촌장이 나를 보았다.
[외부인. 빌려준 입이 있구나.]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젊은 남자들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부축하는 듯한 손길이었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재워줬던 할아버지가 내게 소근거렸다.
[미안하다. 규칙이다. 열린 해에는 외부인이 필요해.]
나는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물었다.
[왜 하필 내가.]
[온 시점에서 경계를 넘었다.]
눈앞의 무언가가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척이 났다.
그리고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귓가.
어머니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렴.] 하고.
나는 울컥해서 고개를 들 뻔했다.
할머니가 내 등을 치며 [보지 마라!] 고 소리쳤고,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탁 풀렸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촌장이 내게 새끼줄 끝을 쥐게했다.
길 입구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줄을 둘러, 좌우의 돌기둥에 묶으라고 했다.
손이 떨려서 제대로 묶을 수가 없었다.
[매듭은 대충 지어도 된다. 조이는 것만큼은 틀리지 마라.]
내가 새끼줄을 두르고 있는데, 줄이 움직였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길 안쪽으로 당겨졌다.
내 몸까지 통째로 끌려가서, 발이 길 안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발바닥의 감촉이 최악이었다.
흙이 아니다.
미지근한 고기를 밟은 것처럼 물컹하고 가라앉는다.
가라앉는다기보다 얽혀든다.
발이 먹히는 기분이었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만 울릴 뿐.
뒤에 있던 젊은 남자들이 나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당겼지만, 새끼줄의 힘이 강하다.
길 안쪽에서 목소리.
[착한 아이네.]
[이쪽이야.]
[추워.]
[열어줘.]
전부 어머니 목소리 그대로였다.
촌장이 소리쳤다.
[조여라!!]
나는 반사적으로 새끼줄을 꽉 조였다.
매듭을 힘껏 당겼다.
그 순간, 길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자의 비명이 아니었다.
짐승 같은, 짓눌린 목구멍에서 나는 비명.
발밑의 "고기 같은 흙" 이 움찔하며 수축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고,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 길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손놀림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널빤지를 들고 뛰어나와 길 입구에 못질을 하고, 흙을 덮고, 수풀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마지막으로 방울을 매달았다.
너무 익숙했다.
지나치게 능숙했다.
방울이 불규칙하게 울렸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날뛰는 것처럼 요란하게.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스윽 조용해졌다.
길은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당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제지당했다.
[오늘은 안 된다. 경계가 열려 있어. 밤을 넘기고 가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자 또 방울이 울렸다.
이번엔 현관이 아니었다.
집 안, 새로 판자를 덧댔던 그 벽 쪽에서 소리가 났다.
바로 곁에서.
[쨍... 쨍...] 하고 무척 가깝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절대로 벽을 보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그런데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려줘.]
[입, 돌려줘.]
내 입안이 갑자기 미지근해졌다.
혀 위에 까끌까끌한 감촉.
모래인가 싶었는데 흙이었다.
씹으니까 자작거리며 이빨에 닿는다.
뱉어내려 해도 뱉어지지 않았다.
입이 안 열렸다.
진짜로 안 열렸다.
아침이 되자 할아버지가 나를 깨우며 말했다.
[신발 밑창을 문질러라. 돌아보지 마라. 여기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마라.]
나는 시키는 대로 입구의 돌 위에서 신발 밑창을 문지르고, 선을 넘어 나왔다.
정말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무서워서.
산길을 다 내려와 휴대폰 전파가 잡힌 순간,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괜찮니?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 라고 하셨다.
그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평범한 세계로 돌아왔구나 싶어서.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반년 정도 지난 겨울의 끝자락.
집에서 욕실 청소를 하던 중 배수구에 얽힌 쓰레기를 끄집어 낼 때였다.
손가락에 가느다란 새끼줄 섬유 같은 것이 엉겨 붙었다.
실부스러기인가? 싶어 냄새를 맡아보니, 그 냄새였다.
젖은 이불 같은 흙냄새.
그 순간, 현관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쨍... 쨍...]
불규칙하게.
우리 집에는 방울 같은 건 달아두지 않는다.
현관으로 가보니, 문고리에 작은 방울이 묶여 있었다.
매듭법이 그 마을의 방울과 똑같았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줘.]
어머니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된다.
어머니는 본가에 계시고, 열쇠도 나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린다.
[추워.]
[흙이 말라버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문 너머가 아니다.
방 안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 뒤에서, [드득... 드득...] 하는 소리.
손톱으로 긁는 소리.
나무를 깎는 소리.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 목소리 "같은" 게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사용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온도가 느껴지고, 그래서 거역할 수 없게 된다.
방울은 떼어서 버렸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문고리에 달려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말하는 순간 정말로 "빌려준 입" 이 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 마을 입구에서 할아버지가 했던 말,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다.
[이걸로 흙은 네 것이다.]
아니다.
내가 흙을 가진 게 아니다.
흙이 나를 가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베개 밑이나 신발장 구석에서 축축한 흙이 나온다.
청소를 해도 계속 나온다.
그리고 방울이 울릴 때면, 가끔 속삭임이 들린다.
[올해도 열려.]
[닫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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