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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

[번역괴담][2ch괴담][502nd]배수관의 점검

괴담 번역 2014. 10. 3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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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배수관을 점검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맨홀을 통해 지하로 들어가, 관에 이상이 없는지 조사하는 일이었다.


맨홀로 들어가는 그 특이한 일이 마치 모험 같아, 나는 매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일하곤 했다.




그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관 속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조심해라.] 하고 선배가 말했다.


사람을 만나면 일단 말을 걸어보고, 만약에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쫓아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몇 번 일을 거듭하며 알게 된 것이었지만, 장소에 따라 배수관 중에도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의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종종 거기에 눌러 붙은 노숙자를 만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노숙자는 그나마 말도 듣고 안전한 편이지만, 그 무렵만 해도 아직 과격한 좌익 운동 같은 게 성행할 무렵이었다.




종종 돌아다니다, 그런 과격파 사람들이 시위에 쓰려고 화염병을 만들어 둔 걸 발견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위험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하로 10m 정도 내려가면 완전히 새까맣기에, 심리적으로 꽤 위축이 되기 마련이다.




한 번은 맨홀을 타고 내려가는데 안 쪽 벽에 경 같은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어 소름이 끼쳤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하고 있던 어느날, 강가에 있는 맨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관은 가장 깊은 곳까지 가면 배수관이 모이는 곳으로 연결되는 형태다.




주변에는 온갖 곳에서 관이 모여들어 물이 흐르고 있고, 안에는 거대한 폭포도 있어 그야말로 절경이다.


그걸 볼 생각에 신이 나서, 나는 의기양양해 안으로 들어갔다.


20m 정도 관을 지나가자, 안 쪽에 사람 그림자 같은 게 보였다.




[거기서 뭐 하십니까!] 하고 바로 소리를 쳤지만, 대답이 없다.


그 곳은 물이 모이는 곳이라 애초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곳이 아니었다.


쓰레기가 쌓여 있는 걸 잘못 본건가 싶어 다가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가까이 가니 역시 인간이다.


[이봐, 위험하니까 이리로 나와.] 라고 말을 걸며 다가갔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안 쪽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뭔지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벽을 때리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슬슬 일이 손에 익고 있던 나는, 그 사람을 잡기 위해 뒤쫓으려 했다.


하지만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배수관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이었다.




그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폭포 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니까 쫓아가지 말랬잖아!] 라며 화를 냈다.




아무래도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을 본 게 여럿 있어서,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나는 무서워서 일을 그만 뒀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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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VKRK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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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미스터리 매거진>이 리디북스 소설 부문 주간 베스트셀러 14위에 안착했고,



더불어 "이상한 옴니버스" 출판사의 첫 단행본인 <철가면을 쓴 남자>가 인문/사회/역사 부문에서 2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하여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주간 한정 특별 이벤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11월 2일까지, 이 글에 비밀 덧글로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는 모든 분께


<철가면을 쓴 남자> 와 <미스터리 매거진> 중 원하는 도서 한 권을 증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리디북스 계정이 필요하는 점 숙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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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몇 년 전에 겪은 이야기다.


그 녀석은 고속도로 순찰대로 근무하고 있는데, 어느날 다른 과 과장이 자기를 불렀다고 한다.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주일 전에 도호쿠 자동차도로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해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사고는 일가족 네 명이 탄 자동차가, 평일 심야에 질주하다가 중앙 분리대에 격돌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고였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트럭기사가, A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차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는 신고를 했다.


야간조로 대기하고 있던 친구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직행했지만, 친구가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다.




그 후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검시가 이루어졌고, 치아 구조와 병원 기록을 대조해 사망자가 도쿄 니시타마 지역에 사는 일가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K씨와 그 아내, 그리고 아들과 딸까지 네 명이었다.


체내에서 알코올이 발견되지도 않았고, 시야를 가릴만한 것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 특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사고는 곧 핸들 조작 실수로 인한 보통 사고로 처리되었다.


그래서 친구도 [별 특징 없는 평범한 교통사고였습니다.] 라고 과장에게 설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장은 [그게 말인데...] 라며 불러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에 따르면, 어젯밤 한 소년이 도쿄 J 경찰서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죽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럼 도대체 난 누구라는 건가요?]


소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저께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집에 가족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이다.


어딘가 다들 놀러 갔나 싶어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밤이 늦도록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없다.


걱정이 되어 경찰에 신고를 하려 했지만, 소년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 여겼는지 무시당했다고 한다.




친척들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대로 아침까지 뜬눈으로 지새고 있는데, TV 뉴스에서 가족들의 이름이 흘러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자신까지 포함해, 가족 전원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지만 자신은 멀쩡히 살아있기에,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어 경찰서에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그 사고의 자료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가족들의 치과 치료 기록을 통해, 부모와 딸은 틀림 없이 본인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아들의 시신만은, 머리 부분의 손상이 심각해 판명이 불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고 현장은 아오모리 근처였지만, 양친 모두 츄부지방 출신이라, 토호쿠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조사 결과 드러났던 것이다.




당시에는 여행이라도 갔다가 사고가 난 게 아닌가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친구는 일단 자료를 제출하고, 며칠 뒤 과장에게 그 소년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물어봤다고 했다.


그러자 과장은 우물우물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 소년은 신체적 특징이나 외형은 죽은 아들과 꽤 비슷했지만, 치아 치료 기록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는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 소년은 정신 착란을 일으켰기에 곧바로 경찰 병원 정신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사고사한 가족의 집을 조사했지만, 사고 후 누군가 살고 있었던 듯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 이야기를 소년에게 전하자, 결국 소년은 완전히 정신 이상을 일으켰다고 한다.


결국 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채,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차 안에서 발견되었던 시체는 누구고, 아들을 자처했던 소년은 누구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 가족은 어째서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을, 그것도 평일 심야에 달리다 사고를 당했던 것일까.


나는 그 가족이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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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00th]아케미

괴담 번역 2014. 10. 2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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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 일어났던 일이다.


대학교에 들어와 슬슬 친구도 여럿 생기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친구 A가, B랑 C가 자기네 집에서 술을 먹고 있는데 나도 오라고 전화를 했다.




시간은 이미 밤 9시를 넘긴 터였다.


게다가 A네 집은 우리집과는 대학을 사이에 두고 정반대 방향에 있어, 전철 환승까지 해야 할 정도로 꽤 멀리 있다.


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는데다, 마침 토요일 밤인데 혼자 있기도 심심했던 나는 A네 집에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환승을 하려고 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무척 적다는 걸 깨달았다.


토요일 밤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나 싶었지만, 전철이 도착했기에 별 생각 없이 올라탔다.


그런데 전철 안도 텅 비어서, 만취한 남자 둘만 앉아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앉아서 휴대폰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다음 역에서 술에 취한 두 남자는 내리고, 그 대신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타서 내 바로 앞에 앉았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문득 휴대폰을 보다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그 여자아이가 정말 예뻤던 것이다.


어깨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조금 어른스러운 얼굴이라 딱 내 타입이었다.


딱히 여자아이랑 말하기 힘들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태 솔로인 내가, 초면인 여자한테 선뜻 말을 걸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특별한 일이 생길리가 없지' 하고 체념한 채, 슬쩍슬쩍 그 얼굴만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와중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뿔싸, 뭔 이상한 놈인가 싶겠구나.




당황한 나는 눈을 슬쩍 돌려서, 계속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것 마냥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누가 봐도 빤히 들통났을 것이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다섯 정거장이나 남았다.




나는 '이걸 어쩐다. 다음 역에서 내릴까... 하지만 그러면 괜히 더 부자연스럽겠지?' 하고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후훗.]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라?' 싶어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즐거운 듯 웃고 있다.


그리고 재밌다는 듯, [왜 그러세요?] 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와, 뭐지? 만화 같은 데서나 나올 일이잖아!' 하고, 마음 속으로 잔뜩 들떴지만, 어떻게든 겉으로는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아니... 그냥 밖을 보고 있었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킥킥 웃으면서, [나 다 봤다구.] 라면서 자리를 내 옆으로 옮겼다.




솔직히 기뻐 날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겉으로는 미안하다는 듯 [미안, 보고 있었어...] 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그리고 15분 가량, 나는 그 아이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은 아케미라고 하고, 학과는 다르지만 우리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그 때 나눈 대화를 떠올려보니, 분명히 아케미의 말은 좀 이상했다.


최근 화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몇 년 전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시사 관련해서는 무척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난번 지진 무서웠었지.] 라고 말을 건네자 갑자기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저 단순히 예쁜 여자아이랑 친해졌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어서 당시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면 분명한 부자연스러움과 위화감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자신이 겪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얻은 정보를 그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들떠있는 와중에도, 딱 한가지 신경 쓰이는 것은 있었다.


전철이 달리며 철컹철컹 흔들릴 때마다, [철컥... 철컥...] 하고 플라스틱 같이 가볍고 딱딱한 게 서로 부딪히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도췌 알 수가 없었다.


아케미는 그 모습을 보고 [왜 그래?] 라고 물었지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니다 싶었던 나는 [아니, 별 거 아니야.] 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 소리의 정체에 관해 나중에 알게 되리라곤, 그 땐 차마 상상도 못했다.




전철이 목적지 전전 역까지 도착했을 때, 아케미의 가방 속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아케미는 가방을 열고 휴대폰을 안에서 꺼냈다.


그리고 가방 안에 들어있던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나는 보고 말았다.




여기저기 잔뜩 녹이 슬어있는, 엄청나게 큰 식칼 두 자루였다.


10대 여자아이가 들고 다닐 리가 없는 물건이다.


아니, 굳이 10대 여자아이가 아니더라도, 이런 걸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아케미는 휴대폰을 꺼내고 바로 가방을 닫았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그 사이에도 [철컥... 철컥...] 하는 이상한 소리는 계속 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겨우 주변 상황을 분석할 생각을 했다.




'애초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눈이 마주쳤다는 것만으로 나한테 말을 걸어온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잖아? 그렇게 일이 휙휙 잘 풀릴리가 없는데... 혹시 이 아이 위험한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의심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이대로 원래 내리려던 역에서 내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일단 다음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내리려하면, 혹여나 따라 내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변명도 못하고 괜히 궁지에 몰릴게 뻔해서, 나는 전철이 역에 도착하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도망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머릿 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는 사이, 전철이 역에 도착했다.


아케미는 아직 전화를 하고 있지만, 그 사이 계속 슬쩍슬쩍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거짓웃음을 띄우며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곧 문이 닫힌다는 방송이 나온다.


나는 그와 동시에 [미안, 나 여기서 내려야 해.] 라고 일방적으로 고한 뒤 전철에서 뛰쳐내렸다.


아니나다를까, 아케미는 제대로 반응도 못했고, 금새 전철은 역을 떠났다.




겨우 상황을 모면한 나는,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싶어 오싹하면서도,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A네 집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아니, 애초에 대학에 온지 2개월 정도 밖에 안 된 나에게는, 이 동네 지리는 도췌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전철을 탔다가, 다음 역에서 아케미가 기다리고 있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A에게 전화를 해, 사정은 가서 이야기 해주겠다고 한 뒤, 주소를 물어 택시를 탔다.


아케미를 다시 한 번 만나느니 택시비 내는 게 훨씬 싸게 먹힐테니까.




A네 집에 도착한 뒤 조금 안정을 되찾은 나는, [야, 진짜 큰일이었어. 엄청 무서운 일을 당했다니까. 무섭다, 무서워.] 라며 호들갑을 떨며 친구들에게 지하철에서 겪은 일을 떠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거짓말 하고 앉았네.] 라며 비웃을 뿐이었다.


그 때, 딩동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 가까운 터였다.


이런 시간에 찾아올 손님은 왠만해서는 없다.


나는 혹시 아케미가 아닐까 싶었지만, 분명히 제대로 뿌리치고 도망쳐 왔으니 아닐 것이라는 마음 뿐이었다.




B는 그런 나를 보고 농반진반으로, [혹시 아케미 아니야?] 라며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 말을 꺼낸 B는 물론이고, 거기에 있던 전원이 움찔하고 말았다.


A는 [야... 아까 그 이야기 진짜였냐...?] 라며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문에 달린 구멍으로 누가 있는지 보고 오겠다며 현관으로 향했다, 잠시 뒤 조용히 돌아왔다.


[야... 엄청 예쁜 여자아이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문 앞에 서 있어...]


그 사이에도 초인종은 몇 번이고 계속 울린다.




C는 얼굴이 새하얘져서 [너 진짜였냐... 어떻게 따라온거야...] 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고 싶은 건 내 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온거지?




나는 [일단 아케미가 맞는지 직접 확인해볼게.]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까 전 A처럼 조심스레 발소리를 죽이고 현관으로 향해, 문에 달린 구멍에 눈을 갖다댔다.


거기에는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의 아케미가 있었다...







큰일이다.


애초에 도대체 어떻게, 왜 날 따라온거지?


우린 잠깐 말만 섞었을 뿐이지 깊은 관계도 아니잖아?




잠깐 전철에서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이게 뭐람.


온갖 생각이 머릿 속에서 휘몰아친다.


일단 나는 방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밖에 있는게 아케미가 맞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척 하자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지만, 어불성설이었다.


당장 방에 불도 켜 있을 뿐더러, 아까 전까지만 해도 술 마시며 큰 소리로 떠들었으니 문밖으로 소리가 다 새나갔었을 터였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옷장 속에 숨어있고, 집 주인인 A가 그런 사람은 못 봤다고 대충 말로 때우자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소리만으로 얌전히 믿고 물러나줄지도 의문일 뿐더러, 흉기까지 가지고 있다.




아무 대책 없이 문을 열어주는 건 너무 위험했다.


그 사이 문 밖에서는 [K군, 여기 있지? 여기로 들어오는 거 다 봤어. 왜 인사도 안 하고 도망쳐버린거야? 너무해. 제대로 이야기 해야지...] 라는 아케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A는 [너 완전히 미행당했잖아! 애초에 이름은 왜 알려줬던거야!] 라며 초조한 듯 따져물었다.




목적지 전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왔는데, 어떻게 따라왔는지, 내 머릿 속은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이제 와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피하려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 때였다.


현관문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끼이익! 끼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금속끼리 마찰되어 나는, 무척 기분 나쁜 소리였다.


A는 다시금 문으로 향해 밖을 내다보고 돌아와,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야, 진짜 큰일났어... 저 여자 식칼로 문을 긁고 있어... 어떻게 하냐...]




그 사이에도 문 밖에서는 [K군...], [나와서 이야기 하자.] 라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때, 소란스러움에 화가 났는지, 옆집에서 [시끄러! 지금이 몇신데 뭐하는 짓이야!]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금속음도, 아케미의 목소리도 잠시 멈추더니, 잠시 뒤 [으악! 뭐야, 너!]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곧이어 아까 들려오던 소리가 들려온다.


[끼기기기기기기기긱!]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옆집 사람은 괜찮은 걸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갈 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거듭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문득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경찰차가 보였다.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누가 이 상황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한 듯 했다.




우리는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았다.


곧이어 문 밖에서 [거기 서!]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바삐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리고 조용해졌다.


곧 초인종이 울리고, [괜찮으십니까?] 하는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겨우 끝난 것 같았다.


A가 문을 열고, 우리는 경찰관에게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케미는 경찰관이 다가오자, 냅다 밀치고 아파트를 벗어나, 담장을 타고 넘어 도망쳐, 현재 추적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아케미라는 것, 우리 대학에 다니는 거 같다는 것, 아무래도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전했다.


그러자 경찰은 한동안 아파트 주변을 순찰해보겠다며, 위급할 때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주고 돌아갔다.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은 옆집 사람이었다.




하도 시끄러워 옆집 사람이 문을 열고 소리를 쳤더니, 아케미가 식칼을 들고 덤벼들었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 바로 문을 닫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다행히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나는 그 다음날로 학교를 찾아가 아케미라는 이름의 학생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그런 학생은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결국 경찰도 아케미를 추적하는데 실패했고, 신원 파악도 전혀 불가능했기에 수사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이렇게 모든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리라 생각할 무렵이었다.




그 사건으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6월 말.


그 무렵이 되자 경찰에서도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순찰을 종료했다.


나 역시 이제 별 일 없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었다.




그게 실수였다.


그 날, 밤에 배가 출출해진 나는 뭐라도 사오려고 역 앞의 편의점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시간은 대략 밤 11시 즈음이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 막차 끊길 시간도 아닌데 역 앞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난번 아케미랑 만났을 때와 똑같았지만, 나는 그저 사람이 없구나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동안 어두운 밤길을 걸어, 언제나 지나다니던 공원에 도착했다.




그러자 가로등 불빛 아래, 누군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꽤 있었던데다 가로등이 그리 밝지 않아서 누구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혼자 저기서 뭐하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앞을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그 사람이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그게 여자 같다는 걸 깨닫자, 나는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했다.


예상대로, 달려온 것은 아케미였다...




아케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드디어 만났네.] 라고, 기쁜 듯 말했다.


손에는 지난번 봤던 그 가방이 들려있다.


그 안에 식칼이 들어있으리라는 것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혼란스러운 나머지, ‘상대가 아케미만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시덥지 않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도망쳐야한다는 생각만은 확고했다.


아케미와는 아직 4, 5m 가량 거리가 있다.




그녀가 신고 있는 건 굽이 높은 구두니, 분명 달리는데 걸리적거릴 것이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있던데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부였기에 체력에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 아케미를 뿌리치고 도망치면 충분히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집 방향으로 뛰면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타이밍을 노려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도중, 문득 경찰관에게 위급 상황에 전화하라던 연락처를 떠올렸다.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휴대폰이 없다.




그러고보니 금세 먹을 거만 사고 돌아오리라는 생각에, 휴대폰은 충전기에 꽂아 두고 나왔었다...


후회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아마 1km은 족히 달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괴이하게도, 그 사이 차는 몇 대 지나갔지만 사람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늦은 밤중이었다고는 해도 이상한 일이다.


과연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달리다 지친 나는, 설마 이 정도 달리면 괜찮겠지 싶어 일단 멈춰선 후,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득 그 공원에는 요새 보기 드물게 공중전화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도중에 아케미를 만날지도 모르지만, 요새 공중전화는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들다.




지금 온 길과 다른 경로로 공원에 돌아가,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온 신경을 쏟아가며, 신중하게 다른 길을 택해 공원으로 돌아왔다.


공원에 도착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한 바퀴 돌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심한 나는 공중전화로 향해 문을 열었다.


그 때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생애 최대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발 아케미가 아니었으면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뒤돌아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당연하다는 듯, 사랑스러운 얼굴로 싱긋 웃고 있는 아케미가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한심하게도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케미는 그게 우스웠는지, 나를 내려다보며 킥킥 웃고 있다.




그 웃는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그렇기에 더욱 기분 나빴다.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나는 어떻게든 허세를 부리며 큰 소리로 물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거야!]




그러자 아케미는 또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K군 바지 주머니에 '내가' 있으니까 그렇지. K군이 어디에 있던 찾아낼 수 있어.]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멍하니 앉아 있자, 아케미는 [오른쪽 뒷주머니야.] 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주머니를 뒤져보라는 것 같다.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나는 바닥에서 허리를 살짝 들어,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안에 무언가 길쭉한 것이 잡힌다.




건전지인가 싶어 그것을 꺼냈다.


하지만 가로등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그것은, 사람의 손가락 같이 생긴 것이었다.


[으아악!]




나는 또 한심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그것을 멀리 내던졌다.


하지만 던지는 순간 느꼈지만, 그건 감촉이나 질감에서 결코 진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마네킹 같은 것의 손가락인 듯 했다.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아케미는 생긋 웃으며, [버리면 안 돼.] 라며 손가락을 주웠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주머니에 다시 손가락을 넣고, 귓가에 속삭였다.


[또 '나'를 버리면 죽여버릴 거니까.]




나는 뭐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되어 그저 그녀에게서 얼굴을 피할 뿐이었다.


위험해.


이 아이는 정상이 아니야.




어떤 수를 내지 않으면 살해당할거야...


하지만 머릿 속은 패닉 상태라, 도저히 냉정한 사고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아케미는 [이런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네. K군네 집으로 가자.] 라고 말하며, 내 팔을 잡고 한 손으로 나를 일으켰다.




참고로 내 키는 175cm에, 몸무게는 72kg이다.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이, 보통 여자아이가 한 손으로 일으킬 수 있는 체구가 아니다.


아케미의 힘은, 도저히 10대 여자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셌다.




상식을 벗어난 일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내 팔을 잡고, 아케미는 계속 내 집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이 어디인지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알아차렸다.




지난번 전철에서 들었던 철컥...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플라스틱처럼 가볍고 딱딱한게 서로 부딪히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다.


아케미는 싱글벙글, 기쁜 듯이 웃고 있다.




그제야 간신히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 철컥거리는 소리는 아케미가 걸을 때마다 나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걷고 있는동안 아케미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내 팔은 꽉 잡고 있어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집까지 가는 동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데다, 도망쳐도 금새 찾아내는 아케미를 뿌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마침내 집까지 와 버렸다.




방에 들어오자 아케미는 재밌다는 듯 내 방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남자 혼자 살면 역시 난장판이구나...] 라며 여기저기를 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불안해 죽을 지경이다.




당장은 웃고 있지만, 이 제정신 아닌 여자가 언제 기분 나빠질지 모른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지면, 분명 나는 살해당할 것이다.


그 사이 그녀는 [방이 어지러우니까, 내가 치워줄게!] 라고 말했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참 보기 좋을 것이다.


마치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여자친구를 처음 집에 데려온 것 같이 보이겠지.


하지만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커다란 식칼을 가방 속에 숨겨 다니는 정신 나간 여자다.




그리고 나는 그 정신 나간 여자에게 사로잡힌 불쌍한 사냥감인 것이다.


아케미는 또다시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방 구석에 어지럽게 쌓여 있던 잡지와 만화 같은 것들을 종류별로 나눠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머리카락이 걸리적거렸던지, 살짝 뒷덜미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그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아케미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을 때 보였던 목덜미에는, 얇은 선이 연결되어 그게 등까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딱 목덜미 윗 부분만은 선이 느슨하게 풀려 있어, 거기만 목과 등이 부딪히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느슨한 부분이, 아케미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혀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본 것이었지만,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아케미의 목과 등은 실로 이어져 있었다.




내 머릿 속은 물음표로 가득찼다.


도대체 저게 뭐란 말인가.


내 눈 앞에 있는 저건 무슨 존재인 것이가.




그제야 나는 아케미가 정신병자가 아니라, 혹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간이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계속 아케미의 목덜미를 바라보고 있자, 그것을 깨달았는지, [왜 그래... 부끄럽잖아.] 하고 귀엽게 웃으며 계속 방 청소를 한다.


그 때, 선반 위 쪽에 놓여 있던 전공서랑 사전이 그만 아케미의 머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쾅!


큰 소리가 난다.


곧이어 아케미가 [아파라...] 하며 머리를 문지르며, 멋쩍다는 듯 나를 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상했다.


느슨해진 부분 때문에, 목과 몸이 이상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케미는 [어라...] 하고 목을 다시 들어올려 끼워 맞춘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방 청소를 이어갔다.




내 머릿 속은 완전히 패닉이었다.


도대체 저것은 뭐란 말인가.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내 눈 앞의 저것이 결코 인간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당황스러운 와중에서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침대 옆에 놓여있는, 충전기에 꽂혀 있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이걸로 경찰관에게 연락을 하자.


나는 아케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그리고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침대 옆으로 향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핸드폰 만지면 안 돼.]


아케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말 한마디 못 하고 멍하니 있었다.


곧 아케미는 일어서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핸드폰을 충전기에서 뽑아 자기 가방 안에 넣고, 다시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든 궁리를 해야겠지만, 연이은 충격 때문에 생각도 잘 할 수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자, 안에 물이 들어있는 전기 주전자가 눈에 띄었다.


그걸 보자, 평소라면 결코 생각지 않을 방법이 떠올랐다.




이 안에는 적당히 물이 차 있어 꽤 무겁다.


이걸로 머리를 후려치면 아무리 아케미라도...


딱히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평소라면 당연히 여자아이를 때리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다.


거기에 아케미는 성별을 떠나, 애초에 인간이 아니다.


주저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주전자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소리지르며, 아케미의 머리를 전력으로 때렸다.


아케미는 그대로 반대쪽 벽까지 날아가 쓰러졌다.




그리고 내가 상태를 보려 하자, 벌떡 상반신을 일으켜, [아파라... 뭐하는 짓이야!] 라고 마치 장난이라도 당해 화난 척 하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아케미를 보고 무서워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대답이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아케미의 얼굴이 무서웠던 것이다.


얼굴 중 코에서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 코에서 아래만 남은 얼굴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인간이 아니다.


충격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조차 없었지만, 곧 나는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들고 있던 주전자를 아케미에게 내던지고, 나는 현관으로 뛰쳐나가 그대로 도망쳤다.




그리고 도로에 나와 아파트 쪽을 뒤돌아 보았다.


거기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펄쳐지고 있었다.


내 방은 2층이다.




거기서 아케미가,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한 손에는 식칼을, 다른 한 손에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얼굴을 든 채, 나를 바라보면서.


나는 공포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마구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생각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뒤 쪽에서는 작게나마 철컥거리는 소리가 난다.


분명 아케미가 나를 쫓아오고 있는 소리겠지.




나는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 때 문득, 전에 아케미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또 '나'를 버리면 죽여버릴 거니까.]




'나'라는 게 뭐지?


본체가 그 손가락이라는 건가?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게 열쇠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버리지 않으면 어디까지고 쫓아올 것이다.


하지만 버리면 죽인다고 했고...




그러나 애초에 지금은 손가락을 버리던 버리지 않던 잡히면 그대로 죽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버릴지 버리지 않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버릴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큰 도로까지 나왔다.




그리고 도로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 앞에, 신사 기둥문이 보였다.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여기다!' 라고 생각했다.


이미 온 몸에 힘이 없어 어질어질할 정도였지만,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전력질주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신사 기둥문에 들어서, 주머니에서 손가락을 꺼내 그것을 신사 안으로 던졌다.


그와 동시에 도로에서 [끼이이이이익!] 하고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쾅!]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신사 기둥문 앞에, 차가 멈춰서 있는 게 보인다.




혹시 아케미가 치인걸까?


조심스레 도로로 가보니, 3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차 앞에 서서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다.


경찰에 연락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딜 봐도 치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슨 일 있나요?] 라고 묻자, 아저씨는 [그게... 지금 사람을 친 것 같은데... 아무도 없어서 말이야. 일단 경찰한테 신고를 해야겠다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타이밍으로 봐서는 차에 치인 것은 분명 아케미일텐데...


문득 도로 구석을 보니, 잔해 같은 것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보니, 그것은 인형의 잔해였다.


그리고 몸이나 다리 부분의 옷은, 어떻게 봐도 아케미가 입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아케미는 분명 인형 같아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조잡한 게 아니라, 분명 누가 봐도 인간 같이 보였다.


이건 도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손가락을 신사에 던져서 액운이 끊긴걸까?


그렇게 쉽게 모든 게 끝난걸까?




머릿 속은 다시금 물음표로 가득 찼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잠시 뒤 경찰이 왔다.




나도 일단은 목격자라고 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이기에 온갖 사정을 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당연히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소리기에, 경찰도 믿어주질 않았다.


아케미 같은 걸 치었던 사람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인지, 왠지 흥분해서 경찰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딱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개 인형은 손과 다리를 동체와 연결하는 조인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인형은 그런게 전혀 없었다.




경찰도 그것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즉, 도대체 어떻게 팔과 다리가 몸에 붙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없던 것이다.


아케미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안에 무언가 들어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온갖 두려운 상상을 해봤지만, 이제 와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형의 잔해는 그대로 경찰이 증거품으로 가지고 돌아갔고, 이후 그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결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 내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보니 옆집 사람이 하도 시끄러워 신고했는지, 경찰이 와 있었다.




경찰은 방에 남아 있던 아케미의 가방을 증거품으로 가져갔지만, 결국 그녀의 신원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었다.


다만 핸드폰에 관해, 나중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케미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은 벌써 몇 년 전에 해약한 것이라, 서류상으로는 이미 폐기처리되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내 눈 앞에 아케미가 나타난 적은 없다.


다만 지금도 갑자기 인기척이 줄어들거나, 원래 사람이 드문 곳에는 가기가 꺼려진다.


인형에 관해서는 따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지만, 별로 억측을 가져다 대고 싶지도 않고, 이상한 상상을 했다 그게 현실이기라도 하면 그게 더 두려울 것 같다.




모든 것은 이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내가 직접 겪은 일이라는 것 뿐이다.





Illust by 느림보(http://blog.naver.com/loss1102)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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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총 분량: 공백 제외 본문 글자 32,159자

 

 

'미스터리 매거진'은 본래 2011년 10월 8일에 창간한 국내 유일의 미스터리 전문 웹진이었다.

'미스터리 매거진'은 종래의 '미스터리=오컬트'라는 무조건적인 공식을 탈피한 '전문지'로,

그간 독자에게 종착 없는 신비함만을 주입하던 미스터리물들과는 분명 노선을 달리했다.

이처럼 불가사의로만 치부하던 미스터리물을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데서 탄생한 이 웹진은,

창간호서부터 수많은 누리꾼에게 어필하면서 국내 최대 전자 게시판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내

운영진이 선정하는 추천 게시물, 즉 'HIT 갤러리'에 무려 16회나 오르며 최다등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미스터리 매거진'은 월간지 'A-Z[include]'의 창간서부터 폐간까지 고정코너를 맡아 연재했으며,

월간지 형태로 2년 가까이 전자책 판매되어 오는가 하면 'tvn' 다큐멘터리 <농부가 사라졌다>에서

국내 미스터리 전문 잡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꾸준히 국내 유일의 미스터리 전문 월간지로 발행되던 '미스터리 매거진'이,

2014년 가을호를 시작으로 단행본 형식의 계간지라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었다.

 

 

 

저자 소개

 

[메데아]


'이상한 옴니버스' 운영

'제임스 랜디 교육재단(James Randi Educational Foundation)' 멤버

前 월간지 <미스터리 매거진> 편집장 및 現 <미스터리 매거진> 시리즈 공동저자

<세기의 이상한 미해결 사건> 저자

'tvN' 다큐멘터리 <농부가 사라졌다>에 미스터리 전문가역으로 출연


로즈웰 UFO 사건, 초능력자들, 달착륙 음모론, 인체 자연 발화, 오파츠, 버뮤다 삼각지대,

필라델피아 실험, 미스터리 서클, JFK 암살 음모론, 퉁구스카 대폭발, 라스푸틴, 철가면 사나이,

잭 더 리퍼, 51구역, 엑소시즘, 911테러 음모론.


'진실'은 본래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때론 '많은 사람이 믿는 이야기'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위의 것들은 우리 대부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진실이라고 믿는 미스터리들이다.


그런데 이 미스터리들이 정말 거짓 없는 사실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걸까?


네이버 블로그 '이상한 옴니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는

지금껏 많은 사람이 믿어왔던 미스터리들에 대해 전혀 다른 진실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작가의 블로그 '이상한 옴니버스'를 통해 50가지가 넘는 세기의 미스터리들이

객관적 증거와 회의적인 고찰로 발가벗겨진 채 진짜 진실을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제 작가의 존재는 미스터리 마니아들에게 있어

'미스터리는 없었다.'라는 논제의 산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VKRKO]


'괴담의 중심' 블로그 운영

<일본 도시 괴담> 저자

前 월간지 <미스터리 매거진> 집필진 및 現 <미스터리 매거진> 시리즈 공동저자


우리는 누구나 무서운 이야기라는 것에 한 번쯤은 심취하게 된다.

이는 무서운 이야기, 즉 괴담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국내 굴지의 괴담 블로그인 '괴담의 중심'을 운영하며

본인이 수집한 400여 편 이상의 괴담을 통해 누리꾼들과 이러한 공포를 나누고 있다.


지금까지의 뻔하디뻔한 무서운 이야기들이 아닌, 작가가 그만의 경로를 통해 수집한 이 괴담들로 인해

'괴담의 중심'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장 손꼽히는 괴담 블로그로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목차

 

Chapter I: 괴담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해 보자

피규어의 저주

투고괴담


Chapter II: 토픽을 말하다

왕국을 세워라

외계인을 호출하는 데에 성공?


Chapter III: 자유주제

일본 최악의 짐승 습격 사건

로스앤젤레스 UFO 전투 사건


Bonus Track

귀신 보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 현재 리디북스에서만 먼저 판매되고 있으며, 곧 국내 유통망을 통해 모든 전자책 구입처에서 판매됩니다.

 

* 해당 도서는 전자책입니다. 전자책 뷰어는 PC로는 어도비 디지털 에디션, 그리고 스마트폰 앱으로는 리디북스 뷰어를 권장합니다. 리디북스 뷰어의 경우 PC 및 스마트폰 모두에서 뷰어가 가능하며, 특히 앱의 경우 스마트폰 인터넷 앱에서의 일반적인 뷰어보다도 더 높은 편의성 및 가독성(사용법, 사용자 편의성, 자동 폭맞춤으로 인한 높은 가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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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499th]배달 아르바이트

괴담 번역 2014. 10. 2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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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다.


나는 자취방 근처에 있는 요리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뭐, 원래는 배달원으로 채용된 거였지만, 전화를 받고, 위치 검색을 하고, 포장에 배달까지 요리 빼고 왠만한 건 거의 나 혼자 다 했다.




손님 중 대부분은 나처럼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이었기에,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자 건물 이름만 듣고도 위치는 물론이고, 거기 누가 사는지도 대충 알 정도가 되었다.


그 날 역시 평소처럼 배달을 몇 번 뛰고, 슬슬 퇴근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전화가 왔다.




[네, 감사합니다. OO반점입니다.]


[배달 좀 부탁합니다.]


[네, 그러면 성함이랑 주소, 전화번호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반대편에서는 대답이 없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곳 주소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의외로 꽤 있기 마련이다.


분명 주소를 찾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대답이 들려왔다.


[A입니다. OO쵸 XX번지, 080...]


나는 안심하고 평소처럼 주문을 받았다.




지도 검색 서비스로 찾아보니, 근처 학생용 아파트였다.


음식을 짐받이에 싣고, 5분 정도 달려 시골길로 들어서자 그 아파트가 있었다.


꽤 큰 건물이었기에 멀리서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근처까지 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꽤 낡아보이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밖에서 보기만해도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오후 9시를 지난 늦은 시간인데도, 건물에는 어디 불 켜진 집 하나 없었다.




솔직히 만엔짜리 월세방이라도 이런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도중, 나는 한심한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손님의 방 번호를 묻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이런 실수를 하면 대개 내 휴대폰으로 직접 손님에게 전화를 하지만, 갑자기 모르는 번호에서 걸린 전화를 흔쾌히 받는 사람이 드문 게 문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일단 전화를 걸어봤다.


놀랍도록 빨리 받았다.




[여보세...]


[관리인실입니다.]


말도 안 듣고 바로 알려주는 그 모습이 왠지 기분 나빴지만, 우선 감사하다고 말하고 오토바이를 세운 채, 입구로 들어섰다.




어둡다.


먼 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다.


인기척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미닫이 문이 좌우로 늘어선 복도만이 이어진다.


복도에는 형광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굳이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느니,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었기에, 나는 그대로 안 쪽으로 나아가 관리인실 문을 노크했다.




철컥하고 문이 열렸다.


방 안의 빛이 복도로 새어나왔다.


전화로 들은 목소리처럼, 추레한 모습의 남자가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라며 맞아주었다.




나는 방 안의 불빛과 그 공손한 인사에 안심해서, [어두워서 여기까지 오는데 무서워 죽겠더라구요.] 하고 웃으며 이야기 할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음식을 건네주고 돈을 받은 후, 나는 돌아왔다.


그리고 문을 닫을 시간까지 점장님과 이야기를 하며 청소를 하고, 하루 매상을 정리하러 갔다.




주문 받았던 전표를 대조해 나가며 계산기로 계산을 하는데, 2000엔 넘게 매상이 모자랐다.


10엔 정도 차이는 종종 나기도 하고, 그럴 때면 알아서 내 돈으로 채워 넣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큰 차이가 난 적은 처음이었다.




옆에서 내가 정산하던 걸 보던 점장님도, [어디 짐작 가는 데 없어?]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지폐 한 장 떨어트리는 일은 분명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금액이 어중간하게 빈다.


나는 다시 그 날 배달했던 전표를 들고 액수와 차액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곧 해답이 나왔다.


아까 그 아파트에서 배달 갔을 때의 금액만큼의 돈이 빠져 있던 것이다.


아마 배달을 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돈을 잃어버렸나 보다고 말을 하자, 점장님은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 이름 잘못 된 거 아니야? 다시 잘 한 번 봐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다시 지도 검색을 켜서, 그 곳을 찾아 보여드렸다.


그러자 점장님은 안에서 꺼내온 배달 주소 기록부를 넘기며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금액이 펑크난 것에 대해 별다른 혼도 안 나고, 야식을 먹은 뒤 돌아갔다.


평소에는 조금이라도 펑크나면 한참 동안 설교를 하던 점장님이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었지만, 그 이유는 며칠 후에 알게 되었다.


출근을 했는데, 점장님 왈, [만약 지난 번 A씨한테 전화가 오면 대충 둘러대거라.]




그럴 듯한 이유를 대서 배달을 거절하라는 것이었다.


장난 전화나 악질 손님에게 종종 취하는 조치였지만, 너무 갑작스런 소리였기에 나는 [무슨 일 있었나요?] 라고 물었다.


점장님은 [뭐, 들으면 너도 기분 나쁠 이야기일텐데...] 라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아파트는 5, 6년 정도 전까지는 가게 단골이던 사람이 운영하던 곳이라, 그 덕에 거기 사는 사람들도 우리 가게를 애용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인이 병사하고 난 후 관리를 맡을 사람이 없어서 아파트 자체를 폐쇄했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일이고, 근래 부동산 사정을 보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폐쇄된 곳에 내가 배달을 갔다는 내 이야기를 듣자, 혹시 친척이 인수해서 운영을 시작했나 싶은 생각에, 점장님은 인사도 할 겸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황폐한 채라, 누가 봐도 사람 사는 곳은 아니었다.


역시 내가 돈을 흘렸나보다 싶어 그대로 돌아가려는데, 관리인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오시죠.]


깜짝 놀라 그 자리에 한동안 굳어 있었지만, [오시죠.] 라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기에 조심스레 관리인실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은 완전히 폐가 수준의 난장판이라, 몇 번인가 누구 있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발 밑을 내려다 본 후, 점장님은 그대로 아파트를 뛰쳐나와 쏜살같이 도망쳤다고 한다.


거기에는 내가 지난번 배달했던 요리가, 여기저기 고스란히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았다.




유령인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것과, 나는 그 아파트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웠던 것이다.


내가 적어뒀던 전화번호에도 전화를 해 봤지만,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몇달 뒤, 나는 가게를 그만뒀다.




1년 반 정도 근무를 했으니 슬슬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일을 하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그 때 그 일이 떠오른다는 게 속마음이었다.


그만 두는 결심을 하게 된 건, 그 사건으로부터 1달 정도 지났을 무렵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그 때 그 A에게 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일부러 점장님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A씨시죠?] 라고,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소리쳤다.


그것을 알아차린 점장님은 자신에게 바꿔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곧 수화기를 넘겨받은 점장님은, 지금 배달은 사정이 있어 잠시 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기 직전, 점장님의 얼굴이 무척 동요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후, 점장님은 나를 보고 말했다.


[지금 가게에 직접 찾아오겠다는데...]




그 이후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 날, 결국 A는 가게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이사를 갔기에 그 후 일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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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498th]물고기 꿈

괴담 번역 2014. 10.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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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 어릴 때는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런데 5살 정도였을 무렵, 무서운 꿈을 꿔서 자던 도중 겁에 질려 깼던 적이 있다.


꿈은 낡아빠진 폐가 같은 게 3채 있는데, 그 입구에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상상도 못하게 큰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이 너무나 무서워,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엉엉 울며 할머니를 찾았다.


처음에는 웃으며 나를 달래주던 할머니었지만, 내가 '물고기'라고 말하자, 바로 안색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밤 중인데도 어딘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비몽사몽간에 옷을 갈아 입고, 아빠의 차를 타고 나섰다.




도착한 곳은 증조할머니댁이었다.


할머니가 초인종을 누르자, 친척이 나왔다.


할머니는 [물고기가 나와서 왔네.] 라고 말했다.




증조할머니 방에 들어가자,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눈도, 입도 한 눈에 보자마자 돌아가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증조할머니네는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와, 친척분 둘이서 사는 곳이었기에, 부모님과 할머니는 바로 거들어 장례 준비를 시작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할머니는 가르쳐 주셨다.


[내가 물고기 꿈을 꾸면, 반드시 친척 중 누군가 죽더라. 그런데 이번에는 꿈을 꾸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대신 물고기를 본 거란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어쩐지 모르게 [아, 그런거구나.] 싶었다.




할머니와 따로 자게 된 후부터, 나는 물고기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할머니는 계속 물고기 꿈을 꾸었다.


이윽고 나는 다른 지방의 대학으로 가게 되어, 집을 나와 자취를 하게 되었다.




간만에 집에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하니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입원하신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치매가 온 것도 아니라고 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기에, 나는 바로 귀성했다.




할머니의 방은 텅 비어있었다.


소중히 여기던 기모노도, 줄곧 좋아하던 책도, 가구도, 무엇 하나 남김 없이 사라지고 이불만이 남겨져 있었다.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주변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더니, 쓸모 없는 것은 뜰에서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무슨 일 있어?]


손자인 내게라면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 나는 물어봤다.


할머니는 말했다.




[물고기를 봤단다. 하지만 그건, 사실 물고기가 아니었어. 동굴도 아니고, 폐가도 아니야.]


그리고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않았다.


할머니는 그날 밤,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나는 물고기 꿈을 꿨다.


전에는 몰랐지만, 폐가 안에는 수많은 이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듯 했다.


동굴은 동굴이라기보다는 깊은 도랑으로, 붉은 듯 푸른 듯, 기분 나쁜 액체로 메워져 있었다.




물고기의 등지느러미가 보인다.


큰 물고기가 떠오른다.


사람의 얼굴 같은 비늘이 보인다.




아니, 저것은 사람의 얼굴이다.


물고기가 땅을 울리며 뛰어 올랐다.


물고기는 물고기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모여 물고기의 형상을 이룬 것이었다.




할머니나 증조할머니의 얼굴이 그 안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나도 죽으면 저 물고기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신변정리를 해 두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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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497th]되풀이하는 가족

괴담 번역 2014. 10. 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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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등학교 3학년인 내 동생이 겪은 일이다.


동생은 그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가,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 놀러 나갔었다.


저녁이 될 무렵,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엄마, 아빠랑 나까지, 가족 전원이 그 공원으로 마중을 나왔다.




그게 동생에게는 꽤 기분 좋은 일이었던지, 숨바꼭질을 중간에 그만 두고 친구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소리를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동생이 숙제를 시작하자, 왠일인지 내가 동생의 숙제를 봐 주러 왔다.


숙제를 하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게임 이야기 같은 걸 하며 잔뜩 신이 나 있었다고 한다.




꽤 기분이 좋았던지, 나는 계속 동생의 곁에 있었다.


이윽고 저녁 시간이 되서, 엄마가 1층 거실에서 우리를 불렀다.


방은 2층이기에, 큰 소리로 대답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무 날도 아닌데, 저녁 식사는 진수성찬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햄버그 스테이크도 잔뜩이었다.


평소에는 과묵한 아빠도, 금새 자기 몫을 먹어치운 동생에게 [아빠 거 반 줄까?] 라며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맨날 챙겨보던 만화영화 할 시간이 되어서 TV를 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화면은 지지직거리기만 할 뿐.


채널을 돌려봤지만 다른 곳도 똑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엄마가 리모콘을 손에 쥐더니, TV를 껐다.


싱글벙글 웃고 있었기에, 조금 기분 나빴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역시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가족들이 말을 걸어온다.




엄마는 [케이크가 있어.] 라고, 아빠는 [같이 목욕할까?] 라고, 나는 [새로 게임 샀는데 같이 하자.] 라고 각자 무척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 동생은 약간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친절을 받으면 되려 심술을 부리고 싶어지는, 아이다운 성격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에 간다고 말한 뒤 어디 숨어 돌아오지 않는 장난을 치기로 했다.


우리집 화장실은 문을 잠그면 손잡이가 아예 돌아가지 않는 구조라,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왠만해서는 열 수가 없다.


동생은 매번 화장실에서 그런 장난을 해대서, 나는 언제나 10엔짜리 동전으로 열쇠 구멍을 비틀어 겨우 문을 열곤 했다.




이번에도 동생은 평소처럼 화장실 문을 잠그고, 화장실 맞은편 탈의실에 있는 지하 창고에 숨어 가족들을 골탕먹이려 했다...고 한다.


말투가 확실치 않은 것은, 사실 동생이 공원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후, 행방불명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숨바꼭질 도중 갑자기 [먼저 집에 갈게!] 라고 소리를 지르고 가버렸기에, 누가 데리러 왔는지 본 사람이 없었다.




동생은 해가 지고서도 집에 돌아오질 않았고, 우리는 걱정한 나머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동네 마을회관에 가서 스피커로 방송까지 했다.


아버지는 동생 친구들 집에 다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까지 당황해 이성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완전히 기력을 잃고 쓰러져 울고 있었다.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남동생이 놀았던 공원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캐묻고 있었다.


솔직히 그 무렵에는 정말 큰일이 나버렸다는 생각 뿐이었다.




한편 동생은, 지하 창고에 숨어있던 와중에 자신을 찾는 동네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깜짝 놀라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3명이 우르르 화장실 앞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리고 아까 전처럼, [케이크가 있어.], [같이 목욕할까?], [새로 게임 샀는데 같이 하자.] 라며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 목소리가 아까와 완전히 같았다.


동생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문틈으로 몰래 그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러자 그 세 사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케이크가 있어.]


[같이 목욕할까?]


[새로 게임 샀는데 같이 하자.]




그렇게 말하면서, 화장실 문 손잡이를 미친 듯 흔들며,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치 문을 때려부술 것 같은 기세로,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생은 들키면 죽을 거라는 생각에, 겁에 질려 벌벌 떨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부서지고, 기분 나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그 가족 같은 무언가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케이크가 있어.]




[같이 목욕할까?]


[새로 게임 샀는데 같이 하자.]


그것을 반복하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는 것이다.




동생은 그 틈을 타 뛰쳐나와, 신발도 신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고 한다.


정신 없이 그저 도망만 치다가 고개를 드니, 아까 숨바꼭질을 하던 공원이었다.


공원에는 경찰차가 수색차 나와있었기에, 동생은 울면서 경찰관에게 매달렸다고 한다.




그 경찰에게 연락을 받고 근처에 있던 내가 달려갔고, 무사히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은 당시에도 경찰관에게 이 이야기를 했지만, 당연히 믿어주질 않았다.


일단 남동생은 발견된데다 건강에 문제도 없으니, 단순한 가출로 처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겨우 집에 돌아온 후, 진지한 얼굴로 TV 채널 하나하나를 다 확인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자, 도저히 장난이었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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