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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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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딱 요맘때 있었던 일이다.


1년여가 지나고서야 겨우 냉정하게 떠올려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내겐 큰 충격이었던 사건이다.


그 날은 금요일로, 나는 회사 동료 몇 명과 4차까지 술을 퍼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있었다.




당연히 막차는 이미 끊긴 후였고, 결국 동료들 중 나처럼 집이 먼 다른 3명과 함께 캡슐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캡슐 호텔에 들어가 프런트에 4명이라고 말하자, 방이 2개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개중 가장 선배인 나와, 집이 그나마 가까워서 택시를 타고 가도 숙박비랑 비슷한 정도가 나오는 동료가 양보하기로 했다.




캡슐 호텔을 나와, 동료는 택시를 잡기 위해 역 쪽으로 갔다.


나는 다른 캡슐 호텔 한 곳에 전화를 걸어, 방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빈 방이 있다는 말에, 나는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10m 정도 걸었을 무렵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2, 3초 후, 전방 3m 정도에서, 갑자기 사람이 떨어졌다.




콰직하는 소리가 나고, 남자는 거꾸로 처박힌 채 미동도 앉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머리가 완전히 얼어 붙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1분 정도는 가만히 서 있었을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괜찮아요?] 라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가까워지면서, [아, 이건 안 되겠어... 기분 나쁜 일에 얽혀 버렸구나...] 하고 느꼈다.


일단 머리의 모습이 이상했다.




직각으로 구부러져서, 오른쪽 머리가 움푹 패여 있었다.


코피도 어마어마하게 흐르고 있었다.


50대 전후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저씨였다.




그는 캡슐 호텔의 유카타를 입고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호텔에 뛰어들어 직원을 불러냈다.


그 후엔 구급차가 오고, 경찰에게 사정 청취를 받으며 꼬박 2시간은 잡혀 있었다.


죽은 이가 캡슐 호텔에서 묵던 사람이라는 게 확실해지고, 3층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게 확인되고나서야 나는 단순한 목격자라는 걸 인정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면허증과 회사 주소를 알려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4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 캡슐 호텔에 들어가봐야 돈만 아깝다는 생각에, 나는 만화카페에서 새우잠이라도 자기로 했다.




하지만 아까 봤던 광경에 눈에 선해,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기분 나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그날 밤부터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는 서 있다.




이윽고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가 눈 앞으로 떨어진다.


아저씨는 천천히 일어서서, 머리를 좌우로 휙휙 돌리며 내게 다가온다.


도망치려해도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눈 앞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내가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가 달라붙는 그 순간, 나는 아저씨와 함께 깊고 깊은 곳으로 떨어져간다...


그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다시 잠을 청하면 또 같은 꿈을 꾼다.


그런 꿈을 하룻밤에 5, 6번은 족히 꾸는 것이다.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무서움은 곧 익숙해진다.


그것보다 매번 같은 꿈을 꾸기 때문에, 자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지는 게 문제였다.


밤에 숙면을 취할 때뿐만이 아니라, 전철 안에서 깜빡 졸 때도 어김 없이 꿈을 꾸기에, 도췌 쉴 틈이 없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주 수요일이었으리라.


동료가 [오늘 술 한 잔 하자구.] 라고 말을 걸어와, 같이 선술집에 갔다.


하루하루 점점 안색이 나빠지는 게 눈에 보여서,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건 아닌가 걱정한 나머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던 듯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매일 같은 악몽을 꿔서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요새 잠을 영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료는 [그럼 술이라도 진탕 마셔서 푹 자 버려.] 라며 술을 권했다.




잔뜩 술을 마신 후, 나는 집에 돌아가 죽은 듯이 잤다.


이상하게 꿈도 꾸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매일 저녁, 나는 미친 듯 술을 마셨다.




다음날은 숙취에 시달리지만, 그것 이상으로 꿈을 꾸는 게 싫었다.


당연히 그런 생활이 계속되자 일에도 지장이 오게 되었다.


지각도 잦아지고, 영업 도중에 술기운을 빼내기 위해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아졌다.




당연히 상사에게 질책당했기에 그 날은 술을 안 마셨지만, 아니나다를까, 바로 악몽이 찾아왔다.


솔직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정신과 진료를 받을까 고민할 무렵이었다.


술을 끊고 1주일 정도 된 어느날, 영업처에 가던 도중 전철에서 그만 졸고 말았다.




어두운 공간 속에 혼자 서 있는 나.


또 이 꿈인가 싶었지만, 그 날은 꿈이 좀 달랐다.


언제나 휙휙 목을 젓고,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오던 아저씨가, 그날만은 머리를 제끼고 눈을 크게 뜨고서는, 이를 악문 채로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 대신, 입을 벌려 [악! 악!]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거기서,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형씨, 형씨.]




웬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딱 봐도 완고해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혹여나 내가 조는 사이 부딪혀서 화라도 났나 싶어,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를 해버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웃으며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다음 역에서 내리라구.] 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네.] 라고 대답하고, 다음 역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내렸다.


역에서 내린 후 영업처에 가야한다는 게 생각났지만, 전화를 걸어 오늘은 못 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저 쪽 가게에서 좀 쉬자구.] 라며, 역 앞에 있는 카페로 쓱 들어가버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채 카페에 들어갔다.


나는 커피를, 할아버지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점원이 주문을 받고 가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형씨, 곧 죽을거야. 스스로도 조금은 느끼고 있겠지?]


어째서인지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와, 울면서 [네.] 라고 대답했다.




일련의 경위를 이야기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묵묵히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제 우리 집에 형씨를 데리고 갈거야. 시간이 꽤 걸릴테니 회사에는 조퇴한다고 연락 해 놓으라구.] 라고 말했다.


나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했다.




카페를 나와,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집까지 갔지만, 할아버지는 입을 꽉 다문채 말 한마디 없었다.


할아버지의 집은 아까 내렸던 역에서 전철로 세 정거장을 가야 나오는 동네 주택가에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 친절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후, 일본식 방에 안내되어 차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다른 방에 가 있었지만, 30분 정도 후에 염주와 경전을 들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내 앞에 앉아, 차를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어. 형씨를 지켜온 부적의 힘이 없었더라면 나랑 만나지도 못하고 죽었을거야.]




나는 또 눈물이 나왔다.


[나는 말이야, A사라는 절의 둘째아들이야. 어릴적부터 경문을 외거나 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노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게 보이게 되더군. 하지만 내 힘은 그리 센 게 아니야.]


할아버지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전철에 형씨가 탔을 때, 꽤 악질인 것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걸 바로 알았어. 아마 제대로 상대한다면 나 따위는 금새 빙의당해 살해당하고 말겠지. 우리 형이라면 어떻게든 해냈을 테지만, 이미 죽은지 한참 된데다 조카놈은 영 시원치 않아. 그래서 원래는 형씨를 그냥 모른 척 할 생각이었다.]


나는 눈물을 훔쳤다.


[형씨는 죽은 그 남자가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정말 나쁜 건 그 남자에게 빙의해서 죽여버린 놈이야. 그 남자가 떨어진 것도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구. 형씨 위에 떨어져서 죽이려 했던거야.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무고한 이들을 죽여서, 힘을 늘려가는 거지. 누가 됐든 상관 없이 손을 대서, 무차별적으로 죽여버리는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놈이 형씨한테 붙어있수.]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좀 낌새가 이상하더라구. 분명히 악령한테 잡아먹히기 직전이어야 하는데, 희미하게 뭔가가 그걸 막고 있었어. 그 기척을 찾아보니, 부적이 필사적으로 형씨를 지키려 하고 있더구만. 하지만 부적의 힘으로도 악령을 막아내는 게 고작이지, 떨어져 죽은 남자의 원한은 신경쓸 겨를이 없던거야. 그래서 형씨가 그 남자한테 시달린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면 그 이상한 남자를 쫓아내서 악령과 형씨의 인연을 끊어낼 수 있어. 그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다 싶더구만. 그래서 졸고 있던 형씨를 깨운거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버리는 건 영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지.]


내가 엉엉 울며 멍하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 할아버지는 다시 설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형씨를 잡아채려는 괴물이 있는거야. 필사적으로 형씨에게 손을 뻗고 있지만, 장애물이 사이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고, 손도 안 닿아. 하지만 손가락 끝에 형씨가 걸려 있는거야. 그걸 어떻게든 잡으려는거지. 여기서 장애물이 형씨의 부적이고, 손가락 끝이 꿈에 나오는 죽은 남자라는 거야. 그러니까 괴물이 장애물을 치우기 전에 손가락 끝을 떼어내고, 형씨를 잘 숨겨두자는거지. 그렇게 하면 괴물도 포기하고 다른 사냥감을 찾으러 갈테니까. 그 정도라면 내가 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할아버지는 염주를 들고 2시간 가량 경을 읊었다.


[이제 됐어.] 라고 말한 후, 할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셨다.




[이 염주는 우리 아버지 유품이라 엄청 소중한거지만, 형씨한테 빌려줄게. 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으면 안 돼. 염주를 가지고 있으면 괴물놈도 간단히는 형씨를 찾을 수 없을거야. 그리고 괴물이 형씨를 포기했는지 봐야 하니까,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매달 우리집에 찾아오도록 해. 그리고 그 때 그 남자가 죽었던 곳은 두번 다시 가면 안 돼. 쫓아낸 남자는 아마 거기로 다시 돌아갈거야. 그리고 그 근처에는 분명 괴물이 있겠지. 그렇게 가까이 가버리면 아무리 염주가 있어도 소용이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있었던 일은, 괴물도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던거지 형씨에게 손을 댄 건 아니야. 간단하게 빙의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생각치도 못한 반격을 당해서 형씨는 도망쳐버렸구. 만약 한 번 놓친 사냥감이 다시 눈 앞에 나타난다면, 그 놈은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형씨를 죽여버릴거야. 그렇게 되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도와주기는 커녕 형씨한테 빙의해서 나까지 죽이러 올거야. 그렇게 되면 모두 죽어. 그러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모든 건 잊어버려. 그게 제일 좋을거야.]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갔다.


그 날부터 악몽은 꾸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꿀 때는 있다.




하지만 깨어났다 다시 잠을 청하면 편히 잘 수 있고, 그나마도 극히 가끔 있는 일이다.


염주는 계속 내가 가지고 있다.


잘 때는 팔에 끼고, 아예 테이프로 칭칭 감아둔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일주일 뒤에는 회사도 그만두었다.


시골로 내려와 작은 회사지만 집 근처에서 일자리도 구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무조건 할아버지네 댁에 찾아갔다.




지난달에, 마침내 할아버지가 이제는 안전할 것이라 말해주셨다.


나는 그간 소중히 지녀왔던 염주를 돌려드렸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염주를 받았다.




테이프로 붙이는 짓까지는 하지 않지만, 지금도 잘 때는 언제나 염주를 끼고 잔다.


이제 더 이상 안 와도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할아버지 댁을 찾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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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모 대학교 앞을 지나가게 된다.


그곳은 사각도 없이 탁 트인 평범한 직선도로지만, 어째서인지 사고가 잦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 길을 자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매일 그 곳을 지나가는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그 길에 있는 어떤 아저씨 한 명 때문이다.


그 아저씨는 학교 앞 횡단보도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것도 매일.




비가 오는 날에도, 낮에도, 밤에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거기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매번 바라볼 때마다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아저씨의 존재를 처음 자각하고 한동안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가 정말 이상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볼 때마다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예를 들어 횡단보도 30m 전방에서 아저씨를 발견했다고 치자.


[아, 오늘도 있구나. 그리고 날 보고 있네...]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 재빨리 백미러로 아저씨를 보면, 역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괴상한 것인지 알겠는가?


그 아저씨는 언제나, 반드시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 기척 하나 없이, 계속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확신했다.


저 아저씨는 인간이 아니구나, 하고.


오싹해진 나는 직장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 녀석 역시 아저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한테는 "뒤통수 없는 양반" 으로 유명한 듯 했다.


확실히 그 아저씨는 정면 외에는 본 기억이 없다.




뒤통수나 등은 전혀 보여주질 않는 것이다.


이상한 귀신도 다 있네, 하고 동료와 웃어제끼고 그 날은 넘어갔다.


하지만 그 때부터였다.




내가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어떤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떻게든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아저씨를 관찰한다.


그냥 지나가면서 보는 것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된다.


아저씨에게는 전혀 틈이 없었다.




옆을 지나간 후 백미러로 눈을 돌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아저씨는 금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며칠 후, 야근 때문에 늦게 퇴근한 나는, 서둘러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에 도착했다.


눈을 돌리자, 역시 아저씨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뒤통수 없는 양반" 이라는 별명을 떠올리며, 나는 재빨리 주변을 스캔했다.


한밤 중의 직선도로.


다행히 전후좌우에 다른 차도 없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다.




신호도 파란불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기회가 온 것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자동차 속도를 늦추고, 핸들을 풀었다.




천천히, 앞으로 쭉 나아가도록.


아저씨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나를 보고 있다.


눈에는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시금 자세히 본 아저씨의 모습은, 평소보다 기분 나쁜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질 않는 것이다.


이윽고 차는 천천히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시선은 아저씨에게서 떼어놓질 않는다.


무서웠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가 시선을 돌리지 않는 탓에 몸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인지, 언제나 정면으로만 보이던 아저씨의 얼굴이 서서히 옆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의 움직임에 맞춰서 천천히, 천천히.


아저씨는 처음 내가 바라보기 시작했던 방향에 시선을 맞춘 채 끄떡도 않는다.


마침내 아저씨의 완전한 옆 얼굴이 보이자, 나는 이제 됐구나 싶었다.




아저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기 위해선 나도 계속 몸을 돌려 시선을 고정시켜야만 한다.


지금은 아예 운전석에서 등을 돌려, 차 뒷창으로 아저씨를 보고 있다.


당연히 앞은 보지도 않고 운전하는 셈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뒷통수 없는 양반"의 뒷통수를 볼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뒷통수 없는 양반"의,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 없던 뒷통수가, 등이 지금 확실히 보이고 있다.


그건 어이없을 정도로 평범한 뒷모습이었다.


무엇 하나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작은 달성감이 가득 차, 두근거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만족감에 차서, 나는 그제야 시선을 돌려 앞을 봤다.


아니, 보려고 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앞을 보려했지만, 시선을 돌리는 도중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조수석에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엄청나게 분노한 얼굴을 한 채.




심장이 그대로 멈추는 줄 알았다.


[으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분명 서행하고 있던 차는 어째서인지 강한 충격과 함께 그대로 급발진에 전봇대에 부딪혔다.


나는 그대로 실신했다.


이튿날 아침,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곧바로 경찰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해야만 했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나를 빼고 다른 피해자는 없었다.


경찰은 사고의 원인을 과속에 의한 운전 미숙으로 단정지었지만, 나는 항의할 기력도 없었다.


그딴 이야기를 해봐야 믿어줄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 사건 이후로 5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도 출퇴근길에 그 곳을 지나간다.


아저씨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서 있고, 변함 없이 사고도 잦다.




다만 딱 하나 바뀐 게 있다면, 내가 더 이상 아저씨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그 때 사정청취를 하러 왔던 경찰관이 무심결에 말했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양반, 이번에는 안 데려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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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11st]전 여자친구

괴담 번역 2014. 11. 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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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 헤어진 전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헤어진 이유는 전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헤어지고 3달 뒤인 8월,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이미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귄 터였고, 무엇보다도 전 여자친구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것을 정중히 전하고 거절했다.




전 여자친구는 엄청 울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벌써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넌 거짓말쟁이야.]


나는 기가 막혔다.




[이제 절대로 연락하지 마라.] 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새 여자친구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주에 2, 3번씩 가위에 눌린다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가위에 눌려본 적은 한 번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위에 눌릴 때마다, 꿈 속에서 매번 똑같은 일을 겪는다고 했다.


천장에서 눈을 향해 천천히 포크가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눈에 꽂힌다.


가위에 눌린 상태지만, 아픔도 그대로 느낀다고 한다.


여자친구에게 전 여자친구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그 둘 사이에 어떤 접점도 없으니 아마 전 여자친구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딱 하나 무서운 게 있는데...


며칠 전에 라인 친구 목록을 보다가 문득 전 여자친구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전화번호는 이미 지웠지만 어플에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전 여자친구 프로필 사진이 포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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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10th]족자

괴담 번역 2014. 11. 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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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나들에 관한 이야기다.


누나들은 쌍둥이로, 둘 다 영감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큰누나가 특히 더 강하다고 한다.




옛날, 아직 내가 태어나기 전, 명절이 되어 가족이 다같이 외갓집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골이라 친척들이 주변에 모여 살았으니, 모이면 엄청나게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단 잠은 자야 하니, 다들 거실에 모여 이불을 깔고 누웠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누나들도 누워 잠을 청했다고 한다.


잠에 빠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려 큰누나는 눈을 떴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소리가 나는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리는 외할아버지의 머리맡에서 나고 있었다.


작은 백열전구 하나만 켜져 있는 어슴푸레한 방에서, 할아버지 머리맡에 무언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두 마리의 작은 호랑이가, 할아버지의 머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도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누나는 진지했다.


당시 외갓집에는 도코노마가 있고, 거기에는 불단과 족자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족자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머리를 갉아 먹는 호랑이들은 마치 종이장으로 만든 것 마냥 얇고 가늘었는데, 그게 할아버지의 머리를 갉아 먹고 있었다고 한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왠지 보면 안 되는 걸 본 것 같다는 생각에, 누나는 무서워서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런데 문득 옆을 보니, 작은 누나도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은 누나 역시 할아버지의 머리맡을 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앙! 할아버지 머리가아아아!]


이내 작은 누나가 통곡하기 시작해, 가족들이 다들 놀라 일어나 불을 켰다.


작은 누나는 [할아버지가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고 있었어!] 라며 울었지만, 가족들에게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켰을 때는 이미 호랑이는 족자 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할아버지 머리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꿈이라도 꾼 것으로 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틀 후에 할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고 한다.


그 일 이후로 족자는 치워버리고, 칠복신 동상을 들여놨다고 한다.




그 이후로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외가 쪽에는 묘하게 영감이 강한 사람이 많아, 비슷한 이야기는 아직도 종종 듣는다.


그리고 이와는 크게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어느 조각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이 스승에게 신신당부 받았던 게 하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게. 사람이 가진 힘을 간파해야만 해. 그리고 아무리 부탁을 받더라도 힘이 모자란 인간에게 용이나 호랑이는 조각해줘서는 안 되네.]


스승의 말에 따르면, 조각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어서, 조각한 도안의 힘이나 영력이 그것을 가진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힘이 약한 인간에게 용이나 호랑이를 조각해주면, 그 조각의 기운에 인간이 짓눌려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때 할아버지도...


힘이 있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모양을 본뜬 것에는 어떤 힘이 깃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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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산친구인 선배랑 함께 일본 북알프스의 호타카 연봉을 등정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날은 호타카 연봉 북쪽에 있는 야리카타케(槍ヶ岳)부터, 능선을 타고 안쪽에 있는 호타카다케(穂高岳)로 이어지는 종주 루트를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그 루트에는 미나미다케(南岳)와 북쪽 호타카다케(北穂高岳)를 잇는, 다이키렛트(大キレット)라는 V자 모양의 낭떠러지로 구성된 능선이 있습니다.




거친 암벽이 계속되는 이 루트는, 일반 등산로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으로, 매년 실족으로 인한 사망자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당일 아침에는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지만, 미나미다케(南岳)에 이를 무렵에는 옅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예보보다 3시간이나 이른 비였습니다.




우리는 투덜거리며 비옷을 입고, 서로의 몸을 로프로 연결했습니다.


키렛트(キレット)는 암벽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타고 매달리는 힘든 내리막을 시작으로, 200m 정도 내려가야 키렛트의 최하단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평탄한 언덕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비바람은 거세졌고, 우리를 강하게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해서 그만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체력이 충분했기에 오늘 안에 키렛트를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바위산은 우리를 가로막는 것처럼 서 있엇지만, 우리는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암벽을 매달리듯 올라가는데,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등산 시즌도 아니고 이런 악천후 속에 산행이라니...


우리말고도 앞을 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나는 같은 등산객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다다를 무렵까지 분명히 남자 목소리가 들렸지만, 산꼭대기에서 본 광경은 김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모습은 어디 하나 없고, 가늘고 우뚝 솟은 능선만 끝없이 이어질 뿐입니다.


금방 우리가 올라온 루트는 한 번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만큼 폭이 좁아서, 다른 길로 엇갈릴 리도 없습니다.




능선은 아주 좁은 발디딜 틈만 있고, 삐죽하게 높이 솟아 있습니다.


그 아래는 짙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선배, 금방 남자 목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너도 들었냐? 나도 들었어.]


[설마 떨어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리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렸는데다 뭐가 떨어지는 소리도 안 들렸잖아...]




선배의 표정은 불안과 의문이 섞인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환청이겠지. 어서 가자.]


환청이 아닌 것 같았지만, 굳이 반론할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발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곧 죽음인 바윗고개 능선을, 좁은 길을 따라 지나갑니다.


아랫쪽에서는 강풍이 불어와 골짜기와 공명해 기분 나쁜 소리를 퍼트립니다.


바람 소리라고는 해도,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의 절규처럼 들려와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집중해! 바람에 휩쓸리면 끝이야! 절대 몸을 산에서 떼어 놓으면 안 돼.]


그걸 알아차린 것인지, 선배가 해 준 말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키렛트에 들어선지 2시간이 지나, 최하단의 고개를 통과해 북쪽 호타카다케(北穂高岳)로 오르는 험난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야말로 벽 같은 그 곳은, 장비 이전에 고도의 산악 기술이 필요한 곳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선배가 먼저 올라가고, 나는 아래에서 뒤를 맡았습니다.


선배가 올라가기 시작한 후, 나는 선배가 던져준 로프의 자일을 핀에 연결했습니다.




중간 정도까지 올라갔을 때, 귓가에서 공허한 남자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이봐.]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오른다리를 잡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야, 괜찮아?]


만약 자일을 제대로 연결해 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떨어져 죽었겠죠.




선배에게 괜찮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살려줘.]


나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공허하고 생기 없는 그 목소리는, 꿈에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떠올리노라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 날은 결국 호타카다케(穂高岳) 완등은 포기하고, 북쪽 호타카다케(北穂高岳)의 오두막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베테랑 등산인인 50대 남자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오두막에서 여자에게 다리를 잡히는 악몽을 꿔서 깼더니, 친구도 똑같은 꿈을 꿨다는 둥...


산에 자주 오르다 보면 그런 이상한 일도 겪기 마련이라며, 그는 내일 산을 내려가라는 조언을 해 줬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비가 조금 내려 안개가 자욱했지만, 아래까지 내려오자 맑게 갠 후였습니다.


우리는 하산하기 전에 조난자의 영을 기리는 호타카 신사에 들려 지금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조난자의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무사히 집에 돌아온 다음날 아침, 선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 지금 뉴스 봤냐?]


[뭐 있어요?]




뉴스에서는 우리가 이틀 전에 지나갔던 그 길, 북쪽 호타카다케(北穂高岳)에서 한 남자가 실족해 사망했다는 것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북알프스에서 조난당하는 이들 중에는, "끌려간" 사람들도 꽤 있는 건 아닐까요.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직접 그런 경험을 하고 난 입장에서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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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5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오후에 사람 없는 전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가방을 껴앉고 가만히 앉아 있던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일어섰다.


역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아저씨는 이마부터 머리 꼭대기까지가 훤히 벗겨졌는데, 키는 꽤 크고 말랐지만 골격이 굵어 체격이 좋아 보였다.


아저씨는 눈을 반쯤 감고서, 꼿꼿하게 선 채로 무슨 군가 비슷한 걸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는 이렇게 말하더라.




[여러분 중에 들어보신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만, 지금 제가 부른 건 PL학원 교가입니다. 저는 학교에 다닐 때 5번 타자였어요. 하지만 아깝게 코시엔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실은 저, 어제 회사에서 해고당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을겁니다. 야구부 시절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힘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러고는 앉았다.


마지막에 말할 때는 소리도 잦아들어 잘 들리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드문드문 앉아 있던 다른 승객들은 다들 어안이벙벙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개중 한 명, 작은 소리로 [그런가. 힘내라구.] 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 아저씨가 워낙 괴상했기에 기억에 남아, 나는 나중에 회식에서 2차로 선술집에 갔을 때 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랬더니 다들 의기소침해져서는, [이런 불경기에는 그것도 남일이 아니야...] 라며 우울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선술집 칸막이 너머에 앉아있던 한신 야구모자를 쓴 아저씨가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얼굴을 쓱 내밀고는 이렇게 물었다.


[이봐, 그거 한큐 다카라즈카선 열차였지?]




[네, 그런데요.]


[그거 귀신이야. 그것도 순 거짓말쟁이라고. 회사에서 해고된 건 몇 년 전이고, 그 직후에 목 매달아 죽은 양반이야. 1년에 몇 번씩 나타나서 그 열차 타는 사람들한테는 유명하다고.]


[귀신 같지는 않던데요? 그냥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같았는데... 그나저나 거짓말쟁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 자식, 처음 나왔을 때는 PL학원 8번 타자라 그랬었다고. 그게 점점 타순이 올라온거야. 죽고 나서도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건지 원. 다음번에 나오면 4번 타자였다 그럴게 틀림없어.]


그렇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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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07th]금줄

괴담 번역 2014. 11. 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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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시골에서 겪었던 일이다.


나는 코베에 살고 있지만, 어릴적에는 아버지 고향인 시마네 어촌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그 일이 있던 9살 때 여름방학도 시골에 내려가 보내던 터였다.




당시 나는 거기서 만나 친구가 된 A와 매일 신나게 놀러다녀서, 하루하루가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날, A가 [신사에 가 보자.] 라고 말을 꺼냈다.


그 뿐 아니라 신사 신전 안으로 들어가보자는 것이었다.




우선 이 신사가 어떤 곳인지 설명하자면, 산 꼭대기에 있는 곳이다.


당연히 앞에는 기둥문이 세워져 있다.


산에서 산기슭까지 계단이 이어져 있고, 산기슭에도 신사 앞에 있는 것처럼 기둥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신사 앞에 있는 기둥문을 따라 나오면 곧바로 바닷가로 이어지는데, 거기에도 기둥문이 세워져 있다.


즉, 신사 경내에서 바닷가까지 참배길이 쭉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A를 따라 산기슭에 있는 신사 기둥문까지 따라갔다.




하지만 왠지 천벌을 받을 것 같아 두려웠던데다,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려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난 안 갈래.] 라고 말했다.


A는 [너 완전 겁쟁이다.] 라며 비웃으며 열심히 나를 데려가려 꼬셔댔지만, 결국 나는 가지 않았다.




결국 A는 혼자 신사로 향했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A가 돌아왔다.


[하나도 재미없어. 신전 안에는 아무 것도 없더라. 거울만 하나 있고.]




뭐야, 별 거 아니잖아.


왠지 모르게 나는 안심했다.


다음날, A에게 겁쟁이 취급 당했던 것도 잊고, 나는 A와 또 신나게 놀러다녔다.




즐거운 여름방학은 머지않아 끝났다.


집에 돌아갈 때 A는 나를 배웅하러 나왔고, 내년에 또 만날 것을 약속했다.


[내년에도 꼭 와야 해.]




[응, 약속할게!]


그리고 다음해 여름방학, 나는 어김없이 시마네로 향했다.


할머니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고, 큼지막한 수박을 잘라 주셨다.




나는 와구와구 수박을 먹으며, [내일은 A랑 놀래!] 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와 삼촌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삼촌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 너하고 A가 워낙 사이가 좋아서 말을 안 했었는데... 실은 A가 죽었단다.]


[네?]


[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사흘 정도 지났을 때 바다에 빠져서 그만...]




나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작년 여름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 혹시 신사에 함부로 들어간 벌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고작 신전에 들어간 것만으로 신에게 동티를 받을 리 없을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12월 초에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믐날부터 설날까지 이어지는 고향집 제사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삼촌, 저 고베에 있어요. 교통비도 꽤 드는데 꼭 가야 하는 건가요?]


[이 바보 같은 놈아, 당연히 와야지. 형이 죽었으니까 이제 네가 우리 집안 당주야. 우리 집안이 제사에 참가 안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형도 매년 제사에 참가한 다음 설날에야 고베로 돌아갔던거 기억 안 나?]


[엄마는 매년마다 "그 놈의 제사 좀 안 가면 덧나?" 라고 화냈었는데.]




[변명은 됐으니까 꼭 와라. 알았지?]


결국 나는 마지못해 제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제사 당일, 그믐날 저녁 8시가 되서야 시마네에 도착했다.




삼촌은 초조해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은거야. 내가 7시까지는 오라 그랬잖아.]


[죄송해요. 마쓰에에서 도미밥 먹고 오느라... 그래도 어차피 제사는 9시부터니까 아직 시간 좀 있잖아요.]




[이 멍청아, 목욕재계 할 시간은 빼고 계산하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것까지 해야할 정도로 중요한 제사인가?




나는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아버지가 입던 하오리하카마를 입었다.


그리고 제사가 열리는 바닷가까지 달려갔다.


바닷가에는 나처럼 하카마를 입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이 제사는 여자는 들어오지도 못할 뿐더러, 각 집안의 당주만 참석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9시가 되자, 신주가 바다로 향해 축사를 읊고, 신을 맞이한다.


그 다음에는 참배길을 따라 신사 경내까지 신주를 필두로, 솔불을 밝히고 다같이 걸어갔다.



 

그리고 신주가 신을 신전에 안치시킨 후, 노와 카구라 공연이 이어진 후,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밤을 새웠다.


신도 사람도 모두 얽혀 먹고 마시며,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술기운이 올라 거나한 기분이 되었을 무렵, 신전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신전을 빙 둘러친 금줄이 다른 곳과는 달리 왼쪽이 시작이고 오른쪽이 끝이었다.


다른 신사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왜 저렇게 생겼나 싶었지만, 이미 취한 상태였기에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술이 깨고 나서도 왠지 그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나는 삼촌에게 금줄에 관해 물었다.


[저기, 삼촌. 신사에 관한건데, 거기 금줄이 거꾸로 쳐져 있던데요.]




[뭐? 너 그것도 모르고 제사에 참여했던거야?]


[그치만 아버지는 뭐 하나 설명도 안 해주시고 돌아가셨잖아요. 삼촌도 그냥 제사만 오라고 했지 뭐 하나 설명도 안 해줬고.]


[그랬구만... 미안하다. 그럼 제대로 설명해 줄게.]




[부탁드릴게요.]


[그 신사는 보기에는 평범한 신메이샤(神明社)라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섬기는 걸로 되어 있긴 한데... 사실 그게 아니야. 거기서 섬기고 있는 신은 훨씬 무서운 거라구.]


[어, 그런 거였어요?]




[메이지 시대에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지방의 신사마다 어떤 신을 모시는지 조사를 했었어. 그런데 공무원이 이 동네에 와서 신사를 조사했는데, 그 때 마을 사람들은 이 신사에 있는 신을 그냥 "신님" 이라고만 부르고 이름은 몰랐더라는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삼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뭐, 옛날 사람들이니 신님의 이름을 아는 것조차 경외스러운 일이었을테고, 딱히 관심도 없었겠지, 아마. 그래서 공무원이 곤란해하다가 대충 이름을 갖다붙인 모양이야. 그래서 여기 신사에 있는 신이 옛날 신화에 나오던 유명한 신으로 탈바꿈한거지.]




[그럼 원래 무슨 신인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네요?]


[아니, 이름만 모르지 어떤 신인지는 알아. 너, 어령신앙(御霊信仰)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냐?]


[네... 액신이나 원혼을 모셔서 진정시킨 다음에, 좋은 신으로 거듭나게 해서 보호를 받는 거잖아요. 그렇다는 건 설마...]




[그래. 바다는 먼 외국과도 이어져 있잖냐. 그러니까 종종 좋지 않은 게 바다에서 들어오는거야. 특히 이 동네는 지형 때문인지 조수 때문인지, 바다에서 온 악령이나 나쁜 신이 바닷가에 잔뜩 모인다고 하더라고. 그게 쌓이면 고기잡이 배가 침몰하거나, 마을에 재난이 오는거야. 그래서 그게 너무 쌓이기 전에 신들을 신사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거지. 그래서 매년 지내는 제사가 중요한거다.]


삼촌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금줄이 다른 신사랑은 정반대인거야.]




[어, 그건 왜 그런 건데요?]


[금줄이라는 건 속세의 더러운 인간들이 신전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도록 치는 거잖아? 한마디로 바깥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쳐 놓은거지.]


[그렇죠.]




[하지만 저 신사의 금줄은 반대라는거야. 안에 있는 사악한 것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둘러쳐 놓은거야. 즉, 신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둬둔거지.]


순간 어릴 적 일이 떠올라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다면 그 옛날, A가 금줄을 넘어 신전 안으로 들어간 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던 것인가...




A는 신전 안에 갇혀 있던 악령과 악신 사이로 몸을 내던졌던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때 A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신사 안에 들어갔더라면...


온 몸에 소름이 끼쳐서 덜덜 떨다보니, 어느새 손에는 식은땀이 가득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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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동네에 "카미야네 아줌마" 라는 유명인이 있었다.


같은 반 카미야의 어머니였기에 카미야네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 뿐이었지만,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우리 학교에 다니는 녀석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아줌마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말도 잘해서, 동네에서 소문난 양아치도 [카미야네 아줌마한테 혼날 바에는 안 하는 게 낫지.] 라며 나쁜 짓을 때려칠 정도였다.




당시 온갖 잡다한 고민을 안고 살던 중학생들에게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며, 화도 내기도 하고 격려도 해주는 고마운 분이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상담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어른이었다.


모두의 어머니 같았다고 할까.




그리고 지금도 카미야네 아줌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서운 이야기일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를 잘 하는 분이었다.


내용은 흔하디 흔한 괴담이지만, 말하는 방식 같은 게 몹시 능숙한 것이다.


듣고 있노라면 말도 안 되게 무서워서, 남자놈들끼리만 있는데도 꺅꺅거리며 덜덜 떨 정도였다.




바로 그 카미야네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가을,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아마 이름은 아키야마였던 것 같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전학생이 드물어, 그는 꽤 주목을 받았었다.


키가 큰데다 얼굴도 잘 생겨서, 여자애들에게 인기 좀 끌겠구나 싶은 게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아키야마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친해지려 애썼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키야마는 점차 혼자가 되어 갔다.




[개한테 막 돌을 던지는 거 있지 뭐니? 개가 다쳐서 낑낑대고 계속 던져대는거야.]


[고양이를 힘껏 발로 차더니, 쓰러진 고양이를 막 발로 밟으려고 하더라니까.]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은 담임 선생님의 귀에도 들어가 아키야마는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그러자 곧바로 걔네 어머니가 출동했다.


[학교에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공부도 잘 하지 않습니까! 개나 고양이 좀 괴롭혀도 성적만 잘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말 극성 맞은 아줌마였다.




소문에 의하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그런 것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고, 걔네 어머니랑 학교 간의 마찰 끝에 전학을 온 것이라 했다.


그 와중에 부부가 이혼하게 되고, 결국 어머니의 고향인 이 곳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역시 토박이였기에, 아키야마네 어머니를 알고 있었고 그 덕에 나까지 소문을 주워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열혈 교사였다.


그런 학부모를 상대로 알겠습니다 한 마디 하고 물러날 양반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 약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 교육이란 그저 성적이 잘 나오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라며 완전히 불이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평소엔 담임 선생님이 기운 넘쳐 온갖 이상한 일을 끌고 오는 탓에 투덜거렸던 우리도, 다들 신나게 선생님을 응원했었을 정도였다.


어쨌든 아키야마는 꺼림칙한 녀석이었다.


양아치처럼 껄렁껄렁해서 그런 것도 아닌 것이,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 같은 느낌이라 우리는 다들 진심으로 그를 두려워했었다.




어느날, 내가 카미야네 집에 놀러갔는데, 마침 아줌마와 카미야가 같이 쇼핑을 가려던 차였다.


동네 슈퍼에 쌀이랑 이것저것 사야해서 카미야를 짐꾼으로 데려간다는 것이었다.


기왕 놀러온 거, 나도 도와드리기로 하고 셋이서 슈퍼로 향했다.




쇼핑을 하던 도중, 아키야마가 조금 떨어진 곳에 멍하니 서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아키야마네 집은 여기서 꽤 먼 곳이다.


그냥 쇼핑을 하러 온 것치고는 좀 부자연스럽다.




나는 카미야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카미야도 곧바로 아키야마를 알아차린 듯 했다.


[왜 이런데 와 있는걸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자, 아줌마가 뒤에서 쓱 얼굴을 내미셨다.


[저 아이가 그 아키야마라는 애니?]




[용케 아셨네요.] 하고 둘이서 깜짝 놀라서 말했다.


[저 아이는 위험해. 가까이 다가가지 마렴. 그것 밖에 방법이 없구나.]


그렇게만 말하고 아줌마는 다시 물건을 고르러 가셨다.




지금까지 어떤 불량배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줌마가 그런 말을 하다니...


우리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리 엄마가 저렇게까지 말하다니...] 라며 카미야도 깜짝 놀란 채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키야마는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대로 계속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분위기였다.




몇 번이고 아키야마네 아줌마가 학교에 찾아와서 떠들었다.


[너희가 왕따를 시켜서 그래! 그래서 우리 아들이 이상해진거야!]


왕따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반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어머니에게 뭐라 말을 했던 모양이다.




실은 우리 집에도 그 아줌마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 아줌마 역시 우리 엄마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네 아들이 우리 아들을 괴롭힌 거 아냐! 우리 아들이 너무 잘나서 질투한 거겠지. 어차피 글러먹은 녀석이지? 확 미쳐버렸으면 좋겠네.]




처음에는 좋게좋게 되돌려보내려던 부모님이었지만, 결국에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강제로 문을 닫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슬펐다.


아, 이 아줌마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었달까...




3학기가 끝나고 봄방학이 된 어느날, 나는 카미야네 집에 놀러갔다.


아줌마와 셋이서 수다를 떠는 동안, 어쩌다 화제가 아키야마 이야기로 넘어갔다.


실은 마음 한 켠에서 계속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아키야마에게 다가가면 안 된다는 것인지.


아키야마는 결국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완전히 정신에 문제가 생겨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아키야마네 아줌마도 멀리 떨어진 병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아키야마네 할아버지는 연을 끊고, [저런 제정신 아닌 것들은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죽을 때까지 거기 있으라고 해!] 라며 호통을 쳤다던가.


그런 이야기가 지나간 후, 나는 카미야네 아줌마에게 물었다.




[결국 아키야마는 뭐였던 건가요?]


아줌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인간은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한 눈에 알았어.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걸. 진짜 아키야마는 아마 평범한 아이였을 거야.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먹히기 시작해서, 진짜 아키야마는 이제 사라지고 만거야. 아키야마의 탈을 썼지만, 안에는 더러운 생각만이 가득 차 인간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을 뿐인거지.]




그 이야기에 나도 카미야도 경악했다.


지금까지 무서운 이야기는 곧잘 해주셨지만, 이런 영능력자 같은 이야기를 아줌마가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 어째서 그런 일을 당한건가요? 무서워요!]




나도 카미야도 완전히 겁에 질려 새파랳다.


[부모의 업보가 자식에게 내려온다고 말해야 할까... 그 집 할아버지, 몇 명이고 사람을 죽게 했어. 직접 죽인 건 아니지만, 그 할아버지 때문에 죽은 사람이 많이 있는거지. 아키야마네 어머니가 이상한 것도 그 탓이야.]


카미야네 아줌마는 왠지 슬퍼보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던 거야. 그래서 아키야마까지 당해버린거지. 죽은 사람의 원한과 저주가 화를 불러서, 결국 아키야마는 거기에 먹혀버리고 만거야. 불쌍하게...]


[그런 게 어디 있어! 아키야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잖아!] 라며 카미야가 화를 냈다.


[업보라는 건 그런 거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핏줄을 타고 동티가 나지. 친한 사람도 그렇고. 너희들도 마음을 강하게 먹으렴. 그런 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거니까.]




카미야네 아줌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두고 보렴. 나중에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되는지. 자, 그럼 이제 저녁 준비 해야겠네. 아, 키무라 너도 저녁 먹고 가렴.]


그렇게 말하고 아줌마는 평소처럼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와 카미야는 우울함에 젖어 있었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런 꼴을 당하다니...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키야마가 너무 불쌍했다.




어쩐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아줌마가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이야기는 나와 카미야만의 비밀로 남게 되었다.


지금은 나도 마흔이 가까워지고, 어느새 아줌마도 세상을 떠나셨기에 꺼내놓는 것이다.


그 후 아키야마네 할아버지는 병에 걸려, 전신이 마비되어 죽을 때까지 와병 생활을 했다.




할머니는 간병을 하다 과로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는 시설로 옮겨졌다.


아키야마네 할아버지는 옛날 탐욕스런 사채업자여서, 꽤 악독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할아버지가 들어간 시설에는 우리 어머니의 친구가 일하는 곳이라 종종 소식을 듣곤 했다.




할아버지는 온 몸이 마비되어 앉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통증은 가시질 않는다.


거기에 아무리 자세를 돌려 눕히고 치료를 해도, 온 몸에서 욕창이 낫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 욕창 때문에 생긴 상처로 온갖 감염이 일어나 병이 겹치고 겹쳤지만, 그럼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고 한다.


[저게 진짜 생지옥이지 뭐니.] 하고, 어머니의 친구분은 혀를 내두르시곤 했다.


결국 아키야마네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야 세상을 떠났다.




20년 가까이 생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버틴 후에야.


아키야마네 아줌마와 아키야마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결국 이 모든 일은 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키야마네 할아버지는 그저 끔찍한 병에 걸린 것이었고, 아키야마와 아키야마네 아줌마는 정신병을 앓은 것 뿐이니까.


세상에는 아무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병이나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많고.




하지만 나는 그 때 이후로 성묘나 제사에는 꼭 참석하고 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지.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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