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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번역괴담][2ch괴담][590th]TV 프로그램 녹화

괴담 번역 2015. 10. 1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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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년 전 일이다.


제대로 취업 활동도 안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일자리를 찾아 혼자 관동으로 향했다.


우선 아르바이트를 구해 어떻게든 생활은 이어갈 수 있게 됐을 무렵, 나는 어느 지방 방송국 로컬 프로그램에 꽂혔다.




매일 방송을 VHS에 녹화해 돌려보고, 프로그램이 송출되지 않는 지역에 사는 친구한테 빌려주면서 전도할 정도로 광팬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30분 남짓 하는 짧은 방송이었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내내 나오는 일일 방송이었다.


결국 처음 그 프로그램에 빠지고 반년 가량 지날 무렵이 되자, 내 방은 그 프로그램을 녹화한 VHS로 가득차게 되었다.




녹화와 시청이 일상으로 자리잡은 어느날.


나는 여러 사정으로 녹화만 해놓고 쌓아뒀던 며칠분 영상을 정리하며 보고 있었다.


다른 작업을 하며 VHS 영상을 틀어놓고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문득 위화감이 느껴져 TV로 시선을 돌리니, 화면에는 방금 전까지는 전혀 없던 노이즈가 심각하게 잡혀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노이즈라기보다 수신할 수 없는 채널을 잡았을 때의 영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심하게 왜곡된 영상에는 무언가 찍혀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소리도 나고는 있었지만, 잡음이 너무 심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와, 녹화할 채널 설정을 잘못했었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화면은 선명한 영상으로 바뀌고, 평소처럼 로컬 프로그램 오프닝이 나왔다.




하루치 녹화를 망친 건 아쉬웠지만, 그 이후 분량은 제대로 녹화되어 있었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았고, 며칠 후에는 그나마도 잊어버렸다.


혼자 나와 살게 된 이후 첫 설날, 고향에 다녀오려고 집에 연락을 했더니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친가에 사는 남동생이 자기 방에 DVD 레코더를 사다놨다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쓰던 비디오 데크도 멀쩡히 있으니, 2대를 연결하면 VHS에 녹화된 영상을 DVD로 더빙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방에 쌓인 대량의 VHS를 박스에 채워넣고, 친가에 택배로 보냈다.


이윽고 설날, 무사히 친가에 도착한 나는 먼저 와 있던 짐을 뜯고 동생 방으로 가 더빙 작업을 준비했다.




설명서를 정독하고 방법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VHS 영상을 재생하면서 동시에 더빙하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는 듯 했다.


즉, 12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더빙하려면 꼬박 2시간이 그대로 걸리는 것이다.


내가 녹화한 테이프를 다 더빙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테지만, 그렇다고 좁아터진 방에 그걸 계속 쌓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곧바로 더빙 작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귀성하고 사흘이 흘러 설날도 지났지만, 더빙 작업은 그리 빠르게 진행되질 않았다.


내가 어디 다녀올 일도 있었고, 동생도 [방에서 게임할래.] 라며 TV를 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니까.




남은 휴가는 이제 이틀.


집으로 보낸 VHS를 전부 더빙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참에 최대한 많이 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동생은 그날따라 아침부터 파칭코를 하러 나간 터였다.




나는 24시간 달라붙을 각오로 더빙 작업을 시작했다.


비디오 하나 더빙이 끝날 때마다 테이프를 바꿔넣는 지루한 작업을 반나절 동안 계속해서 반복했다.


저녁 6시가 지날 무렵, 조금 이른 저녁밥을 거실에서 먹고 있는데 동생이 돌아왔다.




[이야, 새해 처음 간 날부터 엄청 터졌다니까.]


자랑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동생에게, [더빙하고 있으니까 DVD 손대지 마라.] 라고 엄포를 놨다.


동생은 자기 방으로 올라가고, 식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2층에서 갑자기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생이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야, 저거 뭔데!]


[뭐가, 임마.]




[TV에 이상한 거 나오잖아!]


놀라서 나는 식사하다 동생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저녁밥 먹으러 가면서 불은 끄고 내려왔기에, 동생 방은 깜깜했다.




그 와중에 더빙 작업 중이던 TV 화면만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 나온 영상을 보고, 나는 졸도할 뻔 했다.


군데군데 노이즈가 낀 조악한 화면 속, 눈을 치켜뜨고 입을 쫙 벌린 채 목을 옆으로 기울인 여자 얼굴이 가득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녹화에 실패했던 날을 떠올렸다.


다음날부터는 녹화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잊고 있었지만, 지금 넣은 비디오 테이프가 바로 그 때 그거였다.


동생과 할 말을 잃고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나는 정신을 차렸다.




평정을 가장하며 [어라? 뭔가 더빙이 잘못됐나보네.] 라고 말하고 비디오 데크 리모콘을 들고 정지 버튼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영상이 멈추질 않는다.




비디오 데크 카운터에는 숫자도, 영어도 아닌 이상한 표시들이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DVD 리모콘도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다.


그 뿐 아니라 채널 변경이나 전원 버튼 등 어떠한 조작도 먹히질 않는다.




나는 콘센트에 꽂혀져 있던 코드를 멀티탭채로 뽑아버렸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


TV 불빛으로만 비춰지던 방은 암흑으로 가득 차, 나는 황급히 불을 켰다.




동생은 완전히 놀라서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나도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지만 [우선 밥이나 먹자.] 라고 평정을 가장하며 거실로 나왔다.


진짜 큰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그 비디오를 데크에서 꺼내려고 했는데, 헤드에 테이프가 엉겨 나오질 않았다.


억지로 뽑아내봤지만 쭈글쭈글해져서 감겨있는 테이프를 데크에서 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라이버를 투입구에 집어넣어 어떻게든 감긴 테이프를 뽑아낸 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 후, DVD를 확인했다.


더빙 작업은 도중에 중단됐지만, 그 이전까지 녹화된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DVD를 확인하고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챕터 선택 메뉴의 썸네일 미리보기가 아까 봤던 그 여자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열몇개는 되는 챕터 미리보기가 죄다 똑같이 여자 얼굴이었다.


곧바로 꺼내기 버튼을 눌렀다.




비디오와는 달리 멀쩡히 나온 그 DVD를 나는 양손으로 쪼개버렸다.


그리고 아까 쓰레기통에 버렸던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봉투에 넣은 후, 작게 접어 테이프로 빙빙 돌려 감았다.


부엌에 있던 어머니에게 [이것 좀 버려주세요.] 라고 전했다.




그 후 그렇게 광팬이었던 프로그램이 웬지 싫어져, 녹화는 커녕 보지도 않게 되어 버렸다.


얼마 후 다시 이사를 했기에, 지금은 그 프로그램을 볼 수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종종 심야에 케이블 채널 같은 곳에서 다시보기로 접하게 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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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89th]신호위반

괴담 번역 2015. 10. 1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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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전 일어난 일이다.


차를 운전하다 교차로에서 멈췄다.


파란 불이 들어와 가려는데, 신호위반을 한 차가 오른쪽에서 좌회전을 했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하려 뛰쳐나온 사람을 치고 말았다.


"우와, 큰일이네" 하고 생각하며, 나도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사람을 친 운전기사도 얼굴이 새파래져 차에서 내리고, 모퉁이 편의점에 있던 고등학생 몇 명과 내 차 뒤에 있던 차 주인도 따라왔다.




하지만 치여서 튕겨나간 사람이 어딜 봐도 보이질 않는다.


차 위아래는 물론이고, 수풀 따위도 없는 주차장 바로 옆이었기에 어디 숨을 곳도 없다.


사람을 친 차를 봤지만 어디 긁힌 데나 파인 곳도 없었다.




20분 가량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죄다 투입되서 찾아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신호위반을 한 아저씨는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지만, 피해자도 보이지 않는데 뭐 어쩔 수 있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딪힐 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치여 튕겨나가는 게 보였을 뿐.


흰 폴로 셔츠와 갈색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남자였다.


과연 귀신도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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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있었던 일이다.


우리 가족은 네명으로, 언제나 아내랑 첫째가 같이 자고 나는 막내를 데리고 잔다.


근데 막내가 자꾸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나도 나름 조심한다고 꼭 안고 자지만, 정말 매일 같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러던 와중 꿈을 꿨다.


자고 있었는지 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누워서 옆에서 자는 아이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뒤척임 없이 얌전히 자고 있었지만, 어쩐지 주변에서 무슨 낌새가 느껴진다.


나는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아, 눈동자만 꿈벅꿈벅 아이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걸어온다.




그건 작은 인간 같이 보였다.


세어보니 셋 있었다.


머리카락을 위로 질끈 묶고, 20센치 정도 되는 창을 든 남자가 아이 주변을 걷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무언가를 중얼대며, 종종 아이를 만졌다.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갑자기 그 중 하나가 창으로 아이의 손등을 찔렀다.




아이는 격렬히 날뛰며 뒤척거렸다.


찌른 놈은 악의에 가득찬 얼굴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태 들어본 적도 없는 웃음소리로.




[게데게데게데게데게데게데.]


그놈들은 몇번이고 아이를 찔렀다.


그 때마다 아이는 몸을 비틀며 점점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그놈들은 아이가 구석에 가까워질 때마다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이대로는 또 떨어질 것이다.


어떻게든 해보려 손을 뻗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이는 손발을 계속 찔려 점점 구석으로 몰려간다.


[게데게데게데게데게데게데.] 


기분 나쁜 웃음소리만 귓전에 울려퍼진다.




이제 한 번만 더 찔리면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질 듯 했다.


놈들은 다시금 아이를 찌르려 한다.


그만둬!




나는 강하게 염원하며 손을 뻗었다.


몸이 움직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찌르려는 놈에게 주먹을 내리쳤다.




[푸겍!]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놈을 내버려두고, 옆에 있는 다른 놈도 후려쳤다.


[푸규루.]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또 한놈 사라진다.


다음 순간, 손에 느껴지는 격통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주위를 보니 마지막 남은 놈이 엄지손가락 손톱 사이에 창을 찔러넣고 무언가 소리치고 있었다.




순간 이렇게 아픈 걸 내 아이에게 몇번이고 해댔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놈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잡았다.


그놈은 어디선가 작은 칼을 꺼내 내 손을 마구 찔러댔다.




그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분노에 가득찬 내게는 별 것도 아니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걸레를 짜듯 양손으로 놈의 몸을 힘껏 비틀었다.


[부게부게부게부게.]




그놈 역시 몹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사라졌다.


이상한 놈들은 없어졌다.


겨우 마음을 놓고 아이를 옆에 끌어 온 후, 나는 의식을 잃었다.




다음날,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이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쿨쿨 자고 있었다.


문득 손에서 대단한 고통이 느껴졌다.




손을 보니 손등 여기저기 상처가 나, 피 때문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순간 꿈이 생각나 등골이 오싹했다.


그 날 이후 1주일 가량 지났다.




아이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제는 내가 한밤 중 갑자기 쿡하고 날아오는 아픔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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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87th]전설이 서린 섬

괴담 번역 2015. 10. 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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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제삿날 몹시 취했을 때 해주셨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젊을 무렵 가고시마에서 어부를 했었다.


선주를 겸하는 베테랑 어부의 배에 타서 일하며, 매일 같이 고기잡이에 나섰다고 한다.




그 주변 바다에는 크고 작은 무인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개중 옛날 해적들이 보물을 숨겼다는 전설이 있는 섬이 있었다.


지금 와서는 다들 코웃음치고 넘어갈 이야기지만, 반세기 전에는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꽤 많았다.


잡지 같은 데서도 흥미삼아 다루곤 해서, 한때는 보물찾기 붐이 일어나 수많은 외지인으로 섬이 붐비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몇년 지나는 사이 보물은 나오지도 않으니 점차 시들해져, 대부분의 사람은 떠나갔다.


허나 단 한 명, 돌아가지 않고 섬에 정착한 남자가 있었다.


쉰살 정도로 보이는 겐씨라는 사람이었다.




몸집은 작지만 체격이 튼튼한데다, 얼굴은 무서워도 사람은 좋아 지역 어부들과도 꽤 사이좋게 지냈다고 한다.


할아버지네 선주였던 코우지씨와도 사이가 좋아, 배로 그 섬 옆을 지나갈 때면 해변에 겐씨가 세워둔 허술한 오두막을 향해 손을 흔들곤 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겐씨가 그 섬에 정착하고 2년째가 되던 해 초봄이었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땅거미가 내려올 무렵, 우연히 그 섬 곁을 지나치게 되었다.


처음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코우지씨였다.


오두막에 불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잠자리에 들려면 이르다.


이쯤 되면 분명 불을 켰을텐데...


그저 일찍 잠자리에 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코우지씨는 어쩐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섬에 들러보겠다고 말했다.




섬에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선 후, 코우지씨는 닻을 내리고 작은 배를 내렸다.


할아버지에게는 배를 지키라 말한 뒤, 혼자 그 배에 타고 섬으로 향했다고 한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배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 귀에, 무언가 큰 소리를 지른 것 같은 게 들려왔다고 한다.


당황해서 섬 기슭을 바라보자, 해변에 코우지씨 것 같은 회중전등 불빛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불안했지만, 그 자리에서 더 움직일 수도 없으니 그저 배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거의 한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작은 배가 돌아왔다.


안에는 코우지씨와 겐씨가 타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땀에 흠뻑 젖은데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특히 코우지씨는 엄청나게 떨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할아버지에게 무조건 배부터 출발시키라며 고함을 쳤다고 한다.




무사히 항구에 도착해 조합 사무소에 들어가 한숨 돌리자, 그제야 코우지씨는 섬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섬에 올라 오두막에 다가가자, 무언가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혹시 겐씨가 부상이라도 입어 괴로워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코우지씨는 문을 연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왼쪽 구석에 있는 침대 쪽으로 회중전등을 비추자, 거기에는 이상한 게 있었다고 한다.


침대 위에 번들번들하고 거무칙칙한 게 덮여 있고, 그 밑에서 겐씨가 발버둥치고 있었다.


코우지씨는 무심코 소리를 지르며 회중전등을 떨어트렸다.




그러자 그 번들번들한 것이 [횬.] 하고 울더니, 사사삭 침대 위에 있던 창문으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코우지씨는 회중전등을 주워 침대로 달려갔다.




겐씨는 눈을 감은채, 마치 가위라도 눌리는 것처럼 사지가 경직된 채 신음하고 있었다.


코우지씨가 마구 흔들자 눈을 떴지만, 멍한 듯 초점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일으켜 배에 실어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겐씨도 정신을 차렸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저 누워있다 가위에 눌렸는데, 괴로워하던 중 코우지씨가 깨웠다는 것이었다.


겐씨는 그 날 사무소에서 묵고, 다음날 섬으로 돌아갔다.




코우지씨와 할아버지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해, 겐씨도 고개를 끄덕였기에 다음날 뒷정리를 위해 섬에 돌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데리러 갔더니 겐씨는 집으로 돌아가는 걸 거절했다.


전날에는 그저 피곤했을 뿐이라 우기며, 코우지씨가 본 것마저 착각이라고 말하며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말하는 사이 겐씨가 점점 격앙해 말투고 거칠어지고 안색마저 변했기에, 결국 코우지씨도 단념하고 배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에도 겐씨는 반년 가량 섬에서 살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부들이 총출동해 섬을 뒤졌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결국 바다에 빠져 익사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말았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코우지씨는 그 후에도 한동안 섬 주변을 지날 때마다 겐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섬을 열심히 바라봤다.


하지만 서서히 썩어들어가는 섬 기슭의 오두막이 보기 싫어, 결국 항로를 바꿔버렸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 심정을 "겐씨가 어디 있는 건 아닐까" 에서 "겐씨가 있으면 어쩌지" 로 바뀌어 갔다고 말했다.




만약 겐씨 같은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고.


코우지씨와는 그 후에도 종종 섬에서 본 것에 관해 이야기 했었다고 한다.


몇번째인가 이야기했을 무렵, [그러고보니 회중전등으로 비춘 순간, 그것의 앞부분이 순간 다섯개로 나뉜 다리 같은 걸로 보였었는데...] 라는 말을 들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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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86th]지지 않는 태양

괴담 번역 2015. 10. 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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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은 더 된 이야기지만, 다른 세상 같은 곳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여중생으로, 방과후나 점심시간에는 언제나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곤 했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1년 정도 다니자 흥미가 있을만한 책은 대충 다 읽게 된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있던 도중, 어느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지지 않는 태양".


도서관 가장 안쪽 책장, 맨 아랫단에 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소책자라 부르는 게 어울릴지도 모른다.


표지는 태양이 달을 녹이고, 그 아래 있는 인간계와 인간들도 녹아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표지를 본 순간 핵폭탄을 의미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던 거 같다.




내용은 기묘했다.


어느 페이지에는 눌러 말린 꽃이 끼워져 있고, 다른 페이지에는 "태양은 지지 않는다. 태양이 지지 않으면 숨을 수 없다." 라고 써 있었다.


어느 페이지에는 이상한 그림이 끝도 없이 그려져 있었다.




모든 페이지에는 태양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딱 한 페이지만 레몬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을 뿐인 그림이 있었다.


테이블에는 "어서오세요" 라고 써 있었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그 책은 페이지 수가 완전히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레몬이 그려진 그림은 책 한가운데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페이지였다.


기분도 나쁘고 웬지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책을 내려놓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책을 읽어나갔다.




그대로는 무슨 의미인지 도췌 알 수가 없었기에, 아래 써 있는 페이지를 따라 책을 뒤적이며 읽어나갔다.


레몬 그림은 단순한 표지이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태양이 나와 서서히 모습을 바꾸며 인간을 녹여 갔다.


마지막에는 태양이 인간의 형태가 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완성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멀리서 무언가가 소리치는 게 들려오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초리는 어째서인지 번쩍거리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나는 도서관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어쩐지 공기가 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과민반응일 것이라 스스로를 타이르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무의식 중에 계속 걸어간다.




어째서인지 불안감은 없었던 게 기억난다.


한동안 나아가자, 본 적 없는 방파제에서 낚시꾼 몇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는 먹물처럼 새까맣고, 하늘은 빨간색에 가까운 핑크색이었다.




이상한 모습의 생선이 낚시꾼의 양동이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낚시꾼은 가까이 다가온 나를 보고 순간 놀란 듯 했지만, 시선을 돌려 다시 낚시에 열중했다.


내가 멀어지려는 순간, 속삭임소리가 들려왔다.




[잡아먹힐거야.]


[네?] 라고 반문한 순간, 나는 까마귀 같은 새에게 손을 쪼였다.


그와 동시에 낚시꾼은 양동이 속의 생선을 새들에게 던졌다.




새들은 그리로 모인다.


낚시꾼은 한 방향을 가리키며 [서둘러라.]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중간에 딱 한 번, 뒤를 돌아봤었다.


태양이 다가와 있었다.


낚시꾼도, 새도, 경치도 모두 태양에 녹아들어 증발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병실 침대 위였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말을 걸자, 곧바로 의사를 불러주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책을 읽다 갑자기 넘어져 한 달 넘게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머리맡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쓴 롤링 페이퍼가 있었다.


이윽고 부모님이 왔지만, 두 분 모두 통곡하는 바람에 달래는 게 큰일이었다.




나는 단순히 꿈을 꾼 게 아닐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그게 평범한 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그 세계에서 나를 살려준 낚시꾼은, 내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우리 삼촌이었다.




삼촌이라고는 해도 워낙에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서, 나는 두세번 밖에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옛 앨범을 뒤지다 삼촌의 사진을 발견한 내가 깜짝 놀라 아버지에게 물어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 후로 나는 매년 삼촌 묘에 성묘를 가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그 세계에서 새에게 쪼인 상처는 현실에 온 후에도 내 손에 나 있었다.


나는 임사체험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손에 남은 상처만은 미스터리다.


만약에 그 때 새들에게 온 몸을 쪼이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일어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자살한 것이었다.


K라는 남자아이로, 나와는 별 친분이 없는 양아치스러운 아이였다.




주변 평판도 그닥 좋지 않았고.


그런데 그가 남긴 유서에, "지지 않는 태양"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라곤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더욱 놀랐다.




후일,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한 번 더 그 책을 찾아보았다.


책은 없었다.


얼마 뒤, 나는 K와 친했던 S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K는 내가 기절하기 전 읽고 있던 책을 읽어보려 했었다고.


S는 말렸다지만 K는 무시하고 그 책을 찾아내 빌려갔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읽은 직후에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였고, 오히려 저주 받은 책이라며 그걸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서서히 K는 이상해지더니, 결국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무서워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평범하게 대학도 졸업하고 지금은 열심히 살고 있다.




책은 지금도 무척 좋아한다.


다만 그 때 이후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책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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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더는 혼자 담아두기 힘들어 토해내 본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그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아버지와 조부모님, 그리고 아버지와 재혼한 의붓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15살 차이 나는 배다른 남매 동생들도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정말 싫었던 아버지 곁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가 없을 때를 틈타 종종 조부모님께는 인사를 하러 갔었고, 18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생긴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사이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 세상을 떠나셨고, 이윽고 뒤를 잇듯 할머니도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그 후 10년 가까이 나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리고 몇년 전, 나 혼자 사는 아파트에 갑자기 의붓어머니가 찾아왔다.




솔직히 놀랐었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사는 곳이 찾으면 금방 찾겠지만, 이제 와서 나한테 무슨 용무가 있는걸까.


현관 앞에 서서 무슨 일인지 묻자, 의붓어머니는 도와달라고 말했다.




돈 문제인가 싶었지만, 아버지는 회사 사장이다.


나 따위한테 돈이 필요해 손을 벌릴 일은 없을 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의붓어머니를 방에 들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의붓어머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부모님이 이혼한 원인은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다.


상대는 재혼한 의붓어머니.




하지만 나는 딱히 의붓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찾아온 탓에 오래된 상처가 벌어지는 것 같아 불안했을 뿐이었다.


[할 말이 그것 뿐이면 돌아가 주실래요?]




더 듣고 싶지 않아서, 나는 의붓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의붓어머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동생들을 좀 도와주렴.] 이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병 때문에 장기 이식이 필요한건가 싶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니었다.


의붓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집에 조부모님 귀신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정도라 무서워도 그러려니 하고 가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귀신이 나타나는 횟수가 많아지더니, 점차 조부모님의 형상마저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표정했던 얼굴은 한냐처럼 비뚤어지고, 평범했던 옷도 어느새 소복으로 변했다.


절에 공양을 부탁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개월 전, 잠을 자던 남동생이 울기 시작해 상태를 보러 갔더니, 이번에는 여동생이 방에서 괴로운 듯 신음을 냈다고 한다.


당황해 방에 가보니, 이제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정도로 변모한 그것이 여동생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고 한다.


의붓어머니가 필사적으로 달려들자 그것은 사라졌다고 한다.




아버지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아버지는 귀신이 전혀 보이지 않아 헛소리로 치부했다 한다.


그 후, 귀신은 여동생과 남동생이 자고 있을 때 근처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남동생의 낙서장을 아무 생각 없이 살피던 의붓어머니는 내 이름을 발견했다고 한다.




18살이나 차이가 날 뿐더러 내가 집을 나간 후 태어났으니, 그 아이는 내 존재조차 모른다.


흔한 이름도 아니라 우연히 썼을 것 같지는 않고, 남동생이 갓난아기일 때 집도 새로 이사했었으니 도췌 알 방도가 없었다.


당황한 의붓어머니는 이 이름을 어디서 들었냐고 남동생에게 캐물었다고 한다.




[한밤 중에 누가 계속 이 이름을 중얼거려... 너는 A가 아니야. A는 어디 있느냐 하고...]


이대로는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의붓어머니는 내 주소를 알아내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한 번만 집에 와 달라고 울며 매달리는 의붓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했다.




아버지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오만하고 불쾌한 주제에 겉모습만은 멀쩡하게 생긴 아버지...


성인이 되면 언젠가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로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묘는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조부모님 묘가 있는 장소와 연락처를 받고 의붓어머니를 돌려보냈다.




다음 휴일, 나는 조부모님 무덤에 참배를 갔다.


부모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조부모님은 첫 손자였던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다.


상냥한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향을 바치고 손을 모으자 눈물이 나왔다.


돌아가려고 물을 담은 통과 국자를 정리하고 있는데, 눈 앞에서 향이 뚝 끊어졌다.


바람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기분 나쁜 예감에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절에서 빌려온 물통을 가져다 주려 가자, 스님이 [어느 분 참배 오셨나요?] 라고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성함을 대자, [잠깐 와서 차라도 한 잔 드시지요.] 라고 권해오셨다.


금방 전 향이 꺾인 것도 마음에 걸려, 나는 절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차를 마시며 여러 일들을 물었다.


의붓어머니가 여러번 공양을 부탁했던 탓에, 스님도 걱정하고 있었던 듯 했다.


나는 의붓어머니에게 들은 것들을 그대로 전했다.




스님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랬습니까.] 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길에 부적을 한 장 주셨다.


나는 의붓어머니에게 전화해 성묘하고 왔다는 걸 전했다.




그날 밤, 꿈에 조부모님이 나왔다.


넝마가 된 소복을 입고, 백발은 흐트러지고 눈은 핏발이 선 채, 입이 쫙 찢어진 그 모습은 귀신 같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어린 아이가 되어 어딘가에 숨어 있고, 조부모님은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어디에선가 [찾았다..], [아니야...], [죽어... 죽어...] 하는 낮은 목소리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자 온몸은 땀에 젖어 한기가 감돌았고, 몸은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다음날, 일을 쉬고 스님이 된 동창을 만나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 녀석은 영감이 있는 놈이라, 고야산에서 스카우트 되서 스님이 된 녀석이었다.


그 친구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가 끝나자 무심한 듯 말했다.


조부모님은 나를 너무 아껴서, 다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 한으로 남은 것 같다고.




그리고 그게 영혼이 된 후에도 이어져, 점점 유감이 원망으로 바뀌어 미쳐간 것일거라고.


의붓어머니와 동생들이 죽으면 정식 후계자인 내가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생각조차 할 수 없어, 그저 액을 끼치는 귀신이 된 것 같다고, 그 녀석은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라고 물었다.


[너는 괜찮아. 피는 이어져 있다지만 어머니 쪽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부터 외가 쪽 선조 분들이 너를 지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복 동생들은... 나도 모르겠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을 이었다.




[...손을 대지 않는다면 너에게는 동티가 내리지 않을거야.]


망연자실해서 내가 할 말을 잃자, 그 녀석은 경을 읊어주겠다고만 하고 가 버렸다.


그 후, 일 때문에 나는 이사했고, 의붓어머니와도 다시 연락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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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84th]돌연사

괴담 번역 2015. 10. 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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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친가에 놀러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평소 온화한 어머니, 밝은 성격의 아버지, 아직 두 분과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까지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 그러고보니 아이들 보기 좋은 책을 찾아냈단다.]


그러더니 웃는 얼굴로 서랍을 열고, 아랫쪽을 찾기 위해 앉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뭔가를 찾고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아들이 [할머니, 왜 그래?] 라고 가볍게 어깨를 건드리자, 어머니의 몸은 그대로 조용히 바닥에 넘어졌다.


이야기하고 있을 때 지은 미소 그대로,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손에는 일찌기 내가 어머니에게 선물 받아 소중히 여겼던 그림책을 들고서.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어안이벙벙한채 해부가 이뤄지고, 그대로 장례식까지 치뤘다.


사인도 잘 알 수 없지만 일단 심부전 때문이라는 듯 했다.




둘째 아이한테는 그 일 자체가 상당히 두려운 일이었는지, 그 후 내게서 떨어지려 하질 않는다.


말 그대로, 씻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잘 때도 함께다.


더욱 두려운 건, 내가 이런 광경을 본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적, 이모할머니가 외출하려 현관에 앉아 구두를 신던 도중 죽은 일이 있던 것이다.


[칼피스, 무슨 맛이 먹고 싶니?] 라는 게 이모할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여동생은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으니, 이 사건을 알고 있는 건 나 뿐이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어릴 적에 죽었기에, 어머니는 이모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혹시 할머니도 이 원인불명의 돌연사로 세상을 떠난 건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탓에, 아이를 위로하는 와중에 나 역시도 공포로 떨고 있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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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삿포로에는 심령 스폿으로 유명한 폭포가 있다.


여름철이 되면 한밤중마다 차가 몇 대씩 와서, 젊은이들이 꺅꺅대는 소리가 끝도 없이 울려퍼질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스무살 무렵, 나는 남아도는 시간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남자 넷이서 낡아빠진 차에 올라타고 그 폭포로 향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어, 눈이 내릴락 말락 하는 시기였다.


아직 눈이 쌓여있을 때는 아니라 도로는 말끔했다.




하지만 폭포에 가까워짐에 따라 눈은 점차 두께를 더해, 폭포에 도착할 무렵쯤 되니 바퀴자국이 남은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쌓여 있었다.


시간은 밤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한여름을 넘긴 탓인지, 우리말고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다른 차도 없고, 쌓여있는 눈은 하얀 도화지처럼 자국 하나 없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우리도 시간이 썩어나는구만.] 


친구들과 별 내용도 없는 대화를 나눈다.




[여긴 벌써 눈이 왔네.]


[뭐, 북쪽 지방이니까 그런 거겠지?]


[낮에는 화창했었잖아.]




[아까 눈보라라도 친 거 아닐까?]


추측뿐인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을 지나 그대로 심령 스폿인 폭포까지 내려간다.


쌓인 눈과 바람 속에 울부짖는 고목들 때문에, 분위기만은 확실히 음산했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는다.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뭔가 싶어 투덜거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주차장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산책길에 발자국이 보였다.




[야...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발자국은 하나 뿐이었다.




크기로 보아 여자 발자국인 듯 했다.


게다가 하이힐 같은 구두인지 점 하나와 면으로 구성된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이 딱 하나, 산 위로 올라가는 쪽으로만 이어져 있었다.




즉, 올라간 흔적은 있지만 다시 내려온 흔적은 없는 것이었다.


[이거 언제 찍힌 발자국일까?]


그것 또한 의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소복소복 내리던 눈도 어느새 그친 후였다.


만약 낮에 찍힌 발자국이었다면 그 위에는 새로 내린 눈이 덧쌓여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발자국은 방금 지나간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서 산책길로 이어지는 사이, 우리 차가 남긴 흔적 때문에 그 발자국의 정확한 출발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올라갈 것 같지 않은 겨울 산속 산책길로 이어진 발자국...


안쪽으로, 안쪽으로 단 한 사람의 발자국만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가보자.]


할 일 없는 남자가 넷이나 모여있으면 그런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귀신보다는 차라리 곰이 더 무서울 거라는 농담을 던져가며, 우리는 눈에 묻힌 강변 산책길 따라 발자국을 쫓아 걸었다.




5분, 10분, 15분.


갑작스레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발자국은 멎었다.


그 주변에는 새로 내린 눈만 깨끗이 남아 있었다.




그 발자국을 찍은 이가 멈춰선 것처럼 깊이 파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온 것처럼 평범히 걸어가다 다음 걸음을 내딛으려던 순간, 어딘가 공중에서 끌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모양새로 발자국은 끊겨 있었다.


주변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단지 그 때까지 이어져 온 발자국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뿐.


우리는 잔뜩 쫄아서 주변을 넷이서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한밤중 산 속에, 경사면 옆을 따라 흐르는 강물 소리만.




어느새 눈은 조금씩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돌아가자.] 라고 누군가 말했다.


주차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입을 모아 [도대체 뭐였을까?] 라며 고개를 갸웃댔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심령 스폿에 돌아다녔지만, 이 일말고는 이상한 일 하나 겪은 적 없었다.


논리적인 이유를 갖다붙이면 어떻게든 해석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굳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기이한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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